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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바가바드 기타/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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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바드 기타(भगवद्गीता, THE BHAGAVAD-GITA)
18장
저자: 비야사(Vyāsa(RC) [KH]vyAsa), 애니 베산트(Annie Besant), 영어에서 번역, 역자: Danuri19
98120비야사(Vyāsa(RC) [KH]vyAsa), 애니 베산트(Annie Besant)Danuri19

EIGHTEENTH DISCOURSE.

अर्जुन उवाच ।

संन्यासस्य महाबाहो तत्त्वमिच्छामि वेदितुम् ।

त्यागस्य च हृषीकेश पृथक्केशिनिषूदन ॥ १ ॥

Arjuna said:

I desire, O mighty-armed, to know severally the essence of renunciation,[1] O Hrishîkesha, and of relinquishment[2], O Keshinishûdana[3].(1)
아르주나가 말하였다: '오 위대한 팔을 가진 자여, 나는 당신에게 산냐사(결과의 포기)의 본질과 티야가(포기의 본질 또는 집착의 포기)을 알고 싶습니다, 오 하리(크리슈나)여, 케시를 죽인 자(케시니한트리 또는 케시니한타)여.'[1][2]

श्रीभगवानुवाच ।

काम्यानां कर्मणां न्यासं संन्यासं कवयो विदुः ।

सर्वकर्मफलत्यागं प्राहुस्त्यागं विचक्षणाः ॥ २ ॥

The Blessed Lord said:

Sages have known as renunciation the renouncing of works with desire; the relinquishing of the fruit of all actions is called relinquishment by the wise.(2)
거룩한 주께서 말씀하셨다: '욕망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를 버리는 것을 산냐사(saṃnyāsa)[3]라고 지혜로운 자들은 말하고, 모든 행위의 결과를 포기하는 것을 티야가(포기)[4]라 부른다.'

त्याज्यं दोषवदित्येके कर्म प्राहुर्मनीषिणः ।

यज्ञदानतपः कर्म न त्याज्यमिति चापरे ॥ ३ ॥

"Action should be relinquished as an evil,"[4] declare some thoughtful men; "acts of sacrifice, gift and austerity should not be relinquished," say others.(3)
'어떤 지혜로운 이들은 행위 자체가 결점이 있는 것이라 하여 (모두)버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다른 이들은 희생, 자선, 고행의 행위는 (예외로)결코 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निश्चयं शृणु मे तत्र त्यागे भरतसत्तम ।

त्यागो हि पुरुषव्याघ्र त्रिविधः सम्प्रकीर्तितः ॥ ४ ॥

Hear my conclusions as to that relinquishment, O best of the Bhâratas; since relinquishment, O tiger of men, has been explained as threefold.(4)
오 바라타 가문의 최고자여, 그 포기에 대한 확실한 판단을 이제 내게서 들으라. 왜냐하면 포기란, 오 인간들 중의 호랑이여, 세 가지[5] 방식으로 설명된다.

यज्ञदानतपः कर्म न त्याज्यं कार्यमेव तत् ।

यज्ञो दानं तपश्चैव पावनानि मनीषिणाम् ॥ ५ ॥

Acts of sacrifice, gift and austerity should not be relinquished, but should be performed; sacrifice, gift and also austerity are the purifiers of the intelligent.(5)
희생, 자선, 고행의 행위는 포기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반드시 행해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희생, 자선, 고행은 지혜로운 자들을 정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एतान्यपि तु कर्माणि सङ्गं त्यक्त्वा फलानि च ।

कर्तव्यानीति मे पार्थ निश्चितं मतमुत्तमम् ॥ ६ ॥

But even these actions should be done leaving aside attachment and fruit, O Pârtha; that is my certain and best belief.(6)
그러나 이러한 행위들조차도 집착과 결과를 버리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나의 확고하고 최고의 생각이다, 오 아르주나여.

नियतस्य तु संन्यासः कर्मणो नोपपद्यते ।

मोहात्तस्य परित्यागस्तामसः परिकीर्तितः ॥ ७ ॥

Verily renunciation of actions that are prescribed is not proper; the relinquishment thereof from delusion is said to be of darkness.(7)
정해진 의무(에서 행위)를 버리는 산냐사는 적절하지 않으며, 그러한 포기가 무지(타마스)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दुःखमित्येव यत्कर्म कायक्लेशभयात्त्यजेत् ।

स कृत्वा राजसं त्यागं नैव त्यागफलं लभेत् ॥ ८ ॥

He who relinquisheth an action from fear of physical suffering, saying "Painful," thus performing a passionate relinquishment, obtaineth not the fruit of relinquishment.(8)
‘고통스럽다’고 여겨 육체적 괴로움을 피하려고 행위를 포기한다면, 그 포기는 (욕망)흥분(라자스)의 방식이며, 그러한 자는 진정한 포기의 열매를 얻지 못한다.

कार्यमित्येव यत्कर्म नियतं क्रियतेऽर्जुन ।

सङ्गं त्यक्त्वा फलं चैव स त्यागः सात्त्विको मतः ॥ ९ ॥

He who performeth a prescribed action, saying, "it ought to be done," O Arjuna, relinquishing attachment and also fruit, that relinquishment is regarded as pure.(9)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라는 마음으로 정해진 행위를 집착 없이, 결과를 바라지 않고 수행한다면, 그 포기는 순수성(사트(트)바)에 속한 것이라 여겨진다.

न द्वेष्ट्यकुशलं कर्म कुशले नानुषज्जते ।

त्यागी सत्त्वसमाविष्टो मेधावी छिन्नसंशयः ॥ १० ॥

The relinquisher pervaded by purity, intelligent and with doubts cut away, hateth not unpleasurable action nor is attached to pleasurable.(10)
그는 불리한 행위도 미워하지 않고, 유리한 행위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순수성으로 충만한 지혜로운 자, 그리고 모든 의심이 사라진 포기자이다.

न हि देहभृता शक्यं त्यक्तुं कर्माण्यशेषतः ।

यस्तु कर्मफलत्यागी स त्यागीत्यभिधीयते ॥ ११ ॥

Nor indeed can embodied beings completely relinquish action; verily he who relinquisheth the fruit of action, he is said to be a relinquisher.(11)
육신을 가진 자는 어떤 경우에도 모든 행위를 완전히 버릴 수는 없나니, 그러나 행위의 결과를 버리는 자가 진정한 포기자(tyāgī)라 불린다.[6][7][8]

अनिष्टमिष्टं मिश्रं च त्रिविधं कर्मणः फलम् ।

भवत्यत्यागिनां प्रेत्य न तु संन्यासिनां क्वचित् ॥ १२ ॥

Good, evil and mixed—threefold is the fruit of action hereafter for the non-relinquisher; but there is none ever for the renouncer.(12)
원하지 않는 것, 원하는 것, 섞인 것—이 세 가지가 행위의 결과로 존재하지만, 그것은 포기하지 않은 자들에게만 죽은 뒤에도 따르며, 진정한 수행자(산야신 saṁnyāsin)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पञ्चैतानि महाबाहो कारणानि निबोध मे ।

साङ्ख्ये कृतान्ते प्रोक्तानि सिद्धये सर्वकर्मणाम् ॥ १३ ॥

These five causes, O mighty-armed, learn of Me as declared in the Sâñkhya system for the accomplishment of all actions:(13)
오, 위대한 팔을 가진 자(아르주나)여, 모든 행위의 완성을 위해 상캬(라)[9][10] 철학에서 설명된 다섯 가지 원인을 내게서 들으라.

अधिष्ठानं तथा कर्ता करणं च पृथग्विधम् ।

विविधाश्च पृथक्चेष्टा दैवं चैवात्र पञ्चमम् ॥ १४ ॥

The body, the actor, the various organs, the diverse kinds of energies, and the presiding deities also, the fifth.(15)
그 다섯 가지 원인은 이러하니: 자리를 잡은 기반(몸), 행위자(의지), 다양한 도구(감각기관), 개별적 활동들, 그리고 다섯 번째는 '신성한 요인(daivaṁ)'이다.

शरीरवाङ्‌मनोभिर्यत्कर्म प्रारभते नरः ।

न्याय्यं वा विपरीतं वा पञ्चैते तस्य हेतवः ॥ १५ ॥

Whatever action a man performeth by his body, speech and mind,[5] whether right or the reverse, these five are the cause thereof.(15)
사람이 육체, 말, 마음으로 시작하는 어떤 행위든지— 그것이 정의로운 것이든 그렇지 않든—이 다섯 가지가 그 원인이 된다.

तत्रैवं सति कर्तारमात्मानं केवलं तु यः ।

पश्यत्यकृतबुद्धित्वान्न स पश्यति दुर्मतिः ॥ १६ ॥

That being so, he verily who—owing to untrained Reason[6]—looketh on his Self, which is isolated, as the actor, he of perverted intelligence, seeth not.(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다섯 가지를 모르고 오직 ‘나 자신만이 행위자’라 생각하는 자는, 지혜가 훈련되지 않았기에 제대로 보는 자가 아니다.

यस्य नाहंकृतो भावो बुद्धिर्यस्य न लिप्यते ।

हत्वाऽपि स इमाँल्लोकान्न हन्ति न निबध्यते ॥ १७ ॥

He who is free from the egoistic notion, whose Reason[6] is not affected, though he slay these peoples, he slayeth not, nor is bound.(17)
자기 집착이 없고, 지성(영혼)이 물들지 않은 자는 이 세상을 파괴하더라도 결코 (그는)해힐수없으며, 이로 인해 얽매이지도 않는다.

ज्ञानं ज्ञेयं परिज्ञाता त्रिविधा कर्मचोदना ।

करणं कर्म कर्तेति त्रिविधः कर्मसङ्ग्रहः ॥ १८ ॥

Knowledge, the knowable and the knower, the threefold impulse to action; the organ, the action, the actor, the threefold constituents of action.(18)
"지식, 지식의 대상, 알고자 하는 자—이 세 가지는 행위의 동기이고, 도구(감각), 행위, 행위자—이 세 가지는 행위의 구성이다.

ज्ञानं कर्म च कर्ता च त्रिधैव गुणभेदतः ।

प्रोच्यते गुणसङ्ख्याने यथावच्छृणु तान्यपि ॥ १९ ॥

Knowledge, action and actor in the category of qualities[7] are also said to be severally threefold, from the difference of qualities[7]; hear thou duly these also.(19)
지식, 행위, 행위자는 구나(세 가지 본성)의 성질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뉘니, 이제 그 각각을 설명하겠다. 잘 들어보라.

सर्वभूतेषु येनैकं भावमव्ययमीक्षते ।

अविभक्तं विभक्तेषु तज्ज्ञानं विद्धि सात्त्विकम् ॥ २० ॥

That by which one indestructible Being is seen in all beings, inseparate in the separated, know thou that knowledge as pure.(20)
모든 존재 안에서, 하나의 변하지 않는 본질을 보고, 나뉜 듯 보이나 본질적으로 분리되지 않음을 인식하는 지식— 그것이 바로 사트바(맑고 순수한)[11] 지식이다.[12]


पृथक्त्वेन तु यज्ज्ञानं नानाभावान्पृथग्विधान् ।

वेत्ति सर्वेषु भूतेषु तज्ज्ञानं विद्धि राजसम् ॥ २१ ॥

But that knowledge which regardeth the several manifold existences in all beings as separate, that knowledge know thou as of passion;(21)
(번역1) 그러나 모든 존재 안에 있는 다양한 존재를 분리된 것으로 간주하는 지식, 즉 라자스(묙망)에 관한 지식을 너는 알아야 한다. (번역2)그러나, 전체를 보는 자의 안에 있는 존재들(bhāvān)을 분리된 것처럼(pṛthaktvena), 서로 다른 방식으로(pr̥thagvidhān) 인식하는 그런 지식을, 라자스[13]의 지식으로 알아라.

यत्तु कृत्स्नवदेकस्मिन् कार्ये सक्तमहैतुकम् ।

अतत्त्वार्थवदल्पं च तत्तामसमुदाहृतम् ॥ २२ ॥

While that which clingeth to each one thing as if it were the whole, without reason, without grasping the reality, narrow, that is declared to be dark.(22)
(번역1)그러나(한편) 이치도 없이, 현실도 파악하지 못한 채 마치 전체인 듯이 각각의 사물에 집착하는 것은 좁은 것이며, 그것은 어둠(타마스)[14]이라고 선언됩니다. (번역2)그러나 어떤 지식은, 마치 전체인 것처럼 오직 하나의 행위에 집착되어 있으며, 이유도 없고, 진리의 목적에 기반하지 않으며, 작고(편재(偏在)적이고) 제한적이다. 그것은 타마스적인 것으로 일컬어진다.[15][16]


नियतं सङ्गरहितमरागद्वेषतः कृतम् ।

अफलप्रेप्सुना कर्म यत्तत्सात्त्विकमुच्यते ॥ २३ ॥

An action which is ordained, done by one undesirous of fruit, devoid of attachment, without love or hate, that is called pure.(23)
정해진(niyātaṃ) 행위, 집착 없이(saṅga-rahitam), 욕망과 혐오 없이(arāga-dveṣataḥ) 성과를 바라지 않고(aphala-prepsunā) 행해지는 행위 — 그것이 사트바적인 행위라고 불린다.

यत्तु कामेप्सुना कर्म साहङ्कारेण वा पुनः ।

क्रियते बहुलायासं तद्राजसमुदाहृतम् ॥ २४ ॥

But that action that is done by one longing for desires, or again with egoism, or with much effort, that is declared to be passionate.(24)
욕망에 이끌려, 또는 자아의식(아상)으로 인해, 큰 고통을 동반한 행위는 라자스적인 행위로 불린다.

अनुबन्धं क्षयं हिंसामनपेक्ष्य च पौरुषम् ।

मोहादारभ्यते कर्म यत्तत्तामसमुच्यते ॥ २५ ॥

The action undertaken from delusion, without regard to capacity and consequences—loss and injury to others—that is declared to be dark.(25)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파괴나 폭력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능력도 생각하지 않으며, 무지로 인해 시작된 행위 — 그것이 타마스적인 행위라 불린다.

मुक्तसङ्गोऽनहंवादी धृत्युत्साहसमन्वितः ।

सिद्ध्यसिद्ध्योर्निर्विकारः कर्त्ता सात्त्विक उच्यते ॥ २६ ॥

Liberated from attachment, not egoistic, endued with firmness and confidence, unchanged by success or failure, that actor is called pure.(26)
집착에서 벗어나 있고, '내가 했다' 하지 않으며, 인내와 열정을 함께 갖추고, 성공과 실패 앞에서도 흔들림 없는 자 — 사트바적 행위자라 한다.

रागी कर्मफलप्रेप्सुर्लुब्धो हिंसात्मकोऽशुचिः ।

हर्षशोकान्वितः कर्ता राजसः परिकीर्तितः ॥ २७ ॥

Impassioned, desiring to obtain the fruit of actions, greedy, harmful, impure, moved by joy and sorrow, such an actor is pronounced passionate.(27)
욕망이 강하고, 결과를 탐하고, 탐욕스럽고, 공격적이며, 불순하고, 기쁨과 슬픔에 흔들리는 자 — 라자스적 행위자다.

अयुक्तः प्राकृतः स्तब्धः शठो नैष्कृतिकोऽलसः ।

विषादी दीर्घसूत्री च कर्ता तामस उच्यते ॥ २८ ॥

Discordant, vulgar, stubborn, cheating, malicious, indolent, despairful, procrastinating, that actor is called dark.(28)
준비되지 않았고, 원초적이며, 오만하고, 속이고, 비열하며, 게으르고, 우울하며 질질 끄는 자 — 타마스적 행위자라 한다.[17]

बुद्धेर्भेदं धृतेश्चैव गुणतस्त्रिविधं शृणु ।

प्रोच्यमानमशेषेण पृथक्त्वेन धनञ्जय ॥ २९ ॥

The division of Reason[8] and of firmness also, threefold according to the qualities[9], hear thou related, unreservedly and severally, O Dhananjaya.(29)
지성과 결단은 각각 성향(구나)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뉜다. 이제 그것을 전부 말해주겠다 — 잘 들어라, 아르주나야.

प्रवृत्तिं च निवृत्तिं च कार्याकार्ये भयाभये ।

बन्धं मोक्षं च या वेत्ति बुद्धिः सा पार्थ सात्त्विकी ॥ ३० ॥

That which knoweth energy and abstinence, what ought to be done and what ought not to be done, fear and fearlessness, bondage and liberation, that Reason[8] is pure, O Pârtha.(30)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무엇이 두려움인지, 무엇이 해방인지 분별하는 지성 — 그것이 사트바적 지성이다.

यया धर्ममधर्मं च कार्यं चाकार्यमेव च ।

अयथावत्प्रजानाति बुद्धिः सा पार्थ राजसी ॥ ३१ ॥

That by which one understandeth away Right and Wrong[10] and also what ought to be done and what ought not to be done, that Reason,[11] O Pârtha, is passionate.(31)
옳고 그름, 해야 할 것과 말아야 할 것을 제대로(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지성 — 라자스적 지성이다.

अधर्मं धर्ममिति या मन्यते तमसा वृता ।

सर्वार्थान् विपरीतांश्च बुद्धिः सा पार्थ तामसी ॥ ३२ ॥

That which, enwrapped in darkness, thinketh wrong[12] to be right[13] and seeth all things subverted, that Reason[11], O Pârtha, is of darkness.(32)
그릇된 것을 옳다 여기며, 모든 것을 뒤바꾸어 아는 지성 — 타마스적 지성이다.

धृत्या यया धारयते मनःप्राणेन्द्रियक्रियाः ।

योगेनाव्यभिचारिण्या धृतिः सा पार्थ सात्त्विकी ॥ ३३ ॥

The unwavering firmness by which, through Yoga, one restraineth the activity of the mind[14], of the life breaths and of the sense-organs, that firmness, O Pârtha, is pure.(33)
마음과 숨결, 감각과 행위를 요가를 통해 흔들림 없이 유지하는 결단 — 사트바적 결단이다.

यया तु धर्मकामार्थान् धृत्या धारयतेऽर्जुन ।

प्रसङ्गेन फलाकाङ्क्षी धृतिः सा पार्थ राजसी ॥ ३४ ॥

But the firmness, O Arjuna, by which, from attachment desirous of fruit, one holdeth fast duty[15], desire and wealth, that firmness, O Pârtha, is passionate.(34)
욕망과 이익을 이루기 위해 집착으로 유지되는 결단 — 라자스적 결단이다.

यया स्वप्नं भयं शोकं विषादं मदमेव च ।

न विमुञ्चति दुर्मेधा धृतिः सा पार्थ तामसी ॥ ३५ ॥

That by which one from stupidity doth not abandon sleep, fear, grief, despair, and also vanity, that firmness, O Pârtha, is dark.(35)
잠, 두려움, 슬픔, 절망, 도취에 붙들려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결단 — 타마스적 결단이다.

सुखं त्विदानीं त्रिविधं शृणु मे भरतर्षभ ।

अभ्यासाद्रमते यत्र दुःखान्तं च निगच्छति ॥ ३६ ॥

And now the threefold kinds of pleasure hear thou from Me, O bull of the Bhâratas. That in which one by practice rejoiceth, and which putteth an end to pain;(36)
이제 세 가지 종류의 즐거움(sukha)에 대해 말하겠다. 그것은 익숙해지면 기쁨을 주고, 결국 괴로움의 끝으로 인도한다.

यत्तदग्रे विषमिव परिणामेऽमृतोपमम् ।

तत्सुखं सात्त्विकं प्रोक्तमात्मबुद्धिप्रसादजम् ॥ ३७ ॥

Which at first is as venom but in the end is as nectar; that pleasure is said to be pure, born of the blissful knowledge of the Self.(37)
처음에는 독처럼 쓰지만, 결국은 불사의 꿀처럼 달콤한 즐거움 — 그것은 자기 지성과 평온으로부터 생기는 사트바적 즐거움이다.

विषयेन्द्रियसंयोगाद्यत्तदग्रेऽमृतोपमम् ।

परिणामे विषमिव तत्सुखं राजसं स्मृतम् ॥ ३८ ॥

That which from the union of the senses with their objects at first is as nectar, but in the end is like venom, that pleasure is accounted passionate.(38)
감각과 대상의 결합(viṣaya-indriya-saṃyogāt)[18]에서 오는 즐거움 — 처음에는 불사의 꿀처럼(agre amṛta-upamam) 달콤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독처럼(pariṇāme viṣam iva) 쓰게 되는 즐거움 — 그것이 라자스적인 즐거움이라 불린다.

यदग्रे चानुबन्धे च सुखं मोहनमात्मनः ।

निद्रालस्यप्रमादोत्थं तत्तामसमुदाहृतम् ॥ ३९ ॥

That pleasure which both at first and afterwards is delusive of the self, arising from sleep, indolence and heedlessness, that is declared dark.(39)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을 미혹시키는(mohanam ātmanaḥ) 즐거움 — 잠, 게으름, 착각에서 유래한(nidrā-ālasya-pramāda-uttham) 즐거움 — 그것은 타마스적인 즐거움이라 일컬어진다.

न तदस्ति पृथिव्यां वा दिवि देवेषु वा पुनः ।

सत्त्वं प्रकृतिजैर्मुक्तं यदेभिः स्यात्त्रिभिर्गुणैः ॥ ४० ॥

There is not an entity, either on the earth or again in heaven among the Shining Ones, that is liberated from these three qualities,[16] born of Matter[17].(40)
이 지구(pṛthivyām)에도, 천상의 신들(deveṣu) 가운데에도, 이 세 가지 구나(속성)로부터 벗어난 존재(sattvaṃ)는 없다.

ब्राह्मणक्षत्रियविशां शूद्राणां च परन्तप ।

कर्माणि प्रविभक्तानि स्वभावप्रभवैर्गुणैः ॥ ४१ ॥

Of Brâhmanas, Kshattriyas, Vaishyas and Shûdras, O Parantapa, the duties[18] have been distributed, according to the qualities[16] born of their own natures.(41)
오 아르주나여(parantapa), 브라흐민, 크샤트리야, 바이샤, 수드라 — 이 네 부류의 사람들의 역할(행위)은 각자의 본성에서 발생한 구나(성향)에 따라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다.

शमो दमस्तपः शौचं क्षान्तिरार्जवमेव च ।

ज्ञानं विज्ञानमास्तिक्यं ब्रह्मकर्म स्वभावजम् ॥ ४२ ॥

Serenity, self-restraint, austerity, purity, forgiveness and also uprightness, wisdom, knowledge, belief in God, are the Brâhmana duty[19], born of his own nature.(42)
평정(śama), 자기 절제(dama), 고행(tapaḥ), 청결(śaucaṁ), 인내(kṣānti), 정직(ārjava), 지식(jñāna), 통찰(vijñāna), 신앙(āstikyaṁ) — 이러한 자질들은 브라만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शौर्यं तेजो धृतिर्दाक्ष्यं युद्धे चाप्यपलायनम् ।

दानमीश्वरभावश्च क्षात्रं कर्म स्वभावजम् ॥ ४३ ॥

Prowess, splendour, firmness, dexterity, and also not flying from battle, generosity, the nature of a ruler, are the Kshattriya duty[19], born of his own nature.(43)
용기(śaurya), 활력(tejas), 인내(dhṛti), 능숙함(dākṣyaṁ), 전쟁에서의 두려움 없는 태도(yuddhe apalāyanam), 관대함(dāna), 지도력(īśvara-bhāva) — 이러한 자질들은 크샤트리야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कृषिगौरक्ष्यवाणिज्यं वैश्यकर्म स्वभावजम् ।

परिचर्यात्मकं कर्म शूद्रस्यापि स्वभावजम् ॥ ४४ ॥

Ploughing, protection of kine, and trade are the Vaishya duty[19], born of his own nature. Action of the nature of service is the Shûdra duty,[19] born of his own nature.(44)
농업(kṛṣi), 소 보호(gau-rakṣya), 상업(vāṇijyaṁ) — 이러한 자질들은 바이샤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며, 봉사(paricaryātmakaṁ)는 수드라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18.45

स्वे स्वे कर्मण्यभिरतः संसिद्धिं लभते नरः ।

स्वकर्मनिरतः सिद्धिं यथा विन्दति तच्छृणु ॥ ४५ ॥

Man reacheth perfection by each being intent on his own duty[19]. Listen thou how perfection is won by him who is intent on his own duty[19].(45)
(번역1)각자의 본성에 따른 자신의 역할을 즐겁게 수행하는 사람은 완성을 이룬다. 자신의 역할에 몰두함으로써 어떻게 완성을 이루는지 들어보라.
(번역2)자신안의 내면의 각기의 본성에 따른 그때그때의 자신의 역할을 즐겁게 수행하는 사람은 완성을 이룬다. 자신의 역할을 진정한 자신자신으로 만들어가는 본성에 충실한 삶에 몰두함으로써 어떻게 완성을 이루는지는 (결과는) 부수적인것으로 이해될수도 있다.[19]

यतः प्रवृत्तिर्भूतानां येन सर्वमिदं ततम् ।

स्वकर्मणा तमभ्यर्च्य सिद्धिं विन्दति मानवः ॥ ४६ ॥

He from whom is the emanation of beings, by Whom all This is pervaded, by worshipping Him in his own duty[19] a man winneth perfection.(46)
(번역1)존재들이 시작된 그 근원으로부터, 이 모든 것이 그에 의해 퍼져 있는 존재를, 자신의 행위(본성에 맞는 행위)로 숭배하며 인간은 완성(성취)에 이른다.
(번역2)모든 존재의 기원이자 이 세상 전체에 스며 있는 그분을, 자신의 본성에 따른 행위로 승화(이해하고 실천함)로써, 인간은 완성을 이룬다.

श्रेयान् स्वधर्मो विगुणः परधर्मात्स्वनुष्ठितात् ।

स्वभावनियतं कर्म कुर्वन्नाप्नोति किल्बिषम् ॥ ४७ ॥

Better is one's own duty[20] though destitute of merits than the well-executed duty[20] of another. He who doeth the duty[19] laid down by his own nature incurreth not sin.(47)
(번역1)비록 결점이 있더라도, 자신의 다르마는 다른 이의 잘 수행된 다르마보다 더 낫다. 자신의 본성에 따라 정해진 행위를 수행하는 이는 죄에 이르지 않는다. (번역2)결점이 있더라도 자신의 본성에 따른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완벽하게 수행된 타인의 의무보다 낫다. 자신의 본성에 따라 정해진 행위를 수행하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다.

सहजं कर्म कौन्तेय सदोषमपि न त्यजेत् ।

सर्वारम्भा हि दोषेण धूमेनाग्निरिवावृताः ॥ ४८ ॥

Congenital duty[19], O son of Kunti, though defective, ought not to be abandoned. All undertakings indeed are clouded by defects as fire by smoke.(48)
(번역1)카운테야여, 비록 결점이 있다 해도 자연스레 태어난 그 행위를 버리지 말라. 모든 시작되는 행위는 마치 연기가 불을 덮듯이 결점으로 덮여 있기 때문이다.
(번역2)카운테야(아르주나)여, 결점이 있더라도 자신의 본성에 따른 행위를 포기하지 말라. 모든 행위는 결점으로 덮여 있으니, 마치 연기가 불을 덮듯이 그렇다.

असक्तबुद्धिः सर्वत्र जितात्मा विगतस्पृहः ।

नैष्कर्म्यसिद्धिं परमां संन्यासेनाधिगच्छति ॥ ४९ ॥

He whose Reason[21] is everywhere unattached, the self-subdued, dead to desires, he goeth by renunciation to the supreme perfection of freedom from obligation.[19](49)
(번역1)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자아를 제어하며, 욕망을 버린 사람은,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지혜로써 최고의 완성을 얻는다.
(번역2)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지성으로, 자기를 제어하고, 욕망이 사라진 자는 행위 없음의 완성, 최고의 해탈을 참된 내맡김으로 이룬다.

सिद्धिं प्राप्तो यथा ब्रह्म तथाऽऽप्नोति निबोध मे ।

समासेनैव कौन्तेय निष्ठा ज्ञानस्य या परा ॥ ५० ॥

How he who hath attained perfection obtaineth the Eternal, that highest state of wisdom, learn thou from Me only succinctly, O Kaunteya.(50)
완성을 이룬 사람이 어떻게 브라만에 도달하는지를, 간략히 설명하겠으니 들어보라, 카운테야여. 그것은 지혜의 최고의 경지이다.[20]

बुद्ध्या विशुद्धया युक्तो धृत्याऽऽत्मानं नियस्य च ।

शब्दादीन्विषयांस्त्यक्त्वा रागद्वेषौ व्युदस्य च ॥ ५१ ॥

United to this Reason,[21] purified, controlling the self by firmness, having abandoned sound and the other objects of the senses, having laid aside passion and malice,(51)


विविक्तसेवी लघ्वाशी यतवाक्कायमानसः ।

ध्यानयोगपरो नित्यं वैराग्यं समुपाश्रितः ॥ ५२ ॥

Dwelling in solitude, abstemious, speech, body and mind[22] subdued, constantly fixed in meditation and yoga[23], taking refuge in dispassion,(52)

अहङ्कारं बलं दर्पं कामं क्रोधं परिग्रहम् ।

विमुच्य निर्ममः शान्तो ब्रह्मभूयाय कल्पते ॥ ५३ ॥

Having cast aside egoism, violence, arrogance, desire, wrath, covetousness, selfless and peaceful—he is fit to become the Eternal.(53)
(51)정화된 지성으로 통일되고, 의지로 자기를 제어하며, 소리 등 감각 대상을 버리고, 애착과 혐오를 벗어던진 자는(52)고요한 곳을 거처로 삼고, 소식(적게 먹고), 말과 몸과 마음을 절제하며, 언제나 명상 요가에 몰두하고, 철저한 초연함을 따르는 자는(53)자아의식, 힘, 자만, 욕망, 분노, 소유욕을 내려놓고, ‘나’라는 감각을 초월한 자, (이러한)고요한 자가 브라만의 상태에 이르도록 준비된다(고 말할수있다).

ब्रह्मभूतः प्रसन्नात्मा न शोचति न काङ्क्षति ।

समः सर्वेषु भूतेषु मद्भक्तिं लभते पराम् ॥ ५४ ॥

Becoming the Eternal, serene in the Self, he neither grieveth nor desireth; the same to all beings, he obtaineth supreme devotion unto Me.(54)
브라만 상태에 도달한 그는 평온한 자아를 지니며, 슬퍼하지 않고, 갈망하지 않으며, 모든 존재에게 평등한 자가 되고, 나에 대한 최고의 헌신을 얻게 된다.

भक्त्या मामभिजानाति यावान्यश्चास्मि तत्त्वतः ।

ततो मां तत्त्वतो ज्ञात्वा विशते तदनन्तरम् ॥ ५५ ॥

By devotion he knoweth Me in essence, who and what I am; having thus known Me in essence he forthwith entereth into the Supreme.[24](55)
그는 나에 대한 헌신을 통해 내가 어떤 존재이며, 나는 어떤 본질인가를 진실로 알게 되고, 그렇게 나를 진실로 알게 된 후 그는 곧 나에게 들어온다(흡수된다 또는 받아들인다).

सर्वकर्माण्यपि सदा कुर्वाणो मद्व्यपाश्रयः ।

मत्प्रसादादवाप्नोति शाश्वतं पदमव्ययम् ॥ ५६ ॥

Though ever performing all actions, taking refuge in Me, by My grace he obtaineth the eternal indestructible abode.(56)
모든 행위를 항상 수행하더라도, 나에게 자신을 의지하는 자는 나의 은총으로 영원하고 사라지지 않는 경지에 도달한다.

चेतसा सर्वकर्माणि मयि संन्यस्य मत्परः ।

बुद्धियोगमुपाश्रित्य मच्चित्तः सततं भव ॥ ५७ ॥

Renouncing mentally all works in Me, intent on Me, resorting to the yoga of discrimination[25], have thy thought ever on Me.(57)
자신을 다스리고 욕망을 벗은 자는 고요히 머무르며 모든 존재를 동등하게 보고, 마침내 브라만으로 열린다. 그리고 그를 통해 크리슈나의 은총은 마치 고요한 강처럼 도달한다.

मच्चित्तः सर्वदुर्गाणि मत्प्रसादात्तरिष्यसि ।

अथ चेत्त्वमहङ्कारान्न श्रोष्यसि विनङ्क्ष्यसि ॥ ५८ ॥

Thinking on Me, thou shalt overcome all obstacles by My grace: but if from egoism thou wilt not listen, thou shalt be destroyed utterly.(58)
나를 마음에 두면, 나의 은총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자아의식으로 인해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너는 멸망할 것이다.

यदहङ्कारमाश्रित्य न योत्स्य इति मन्यसे ।

मिथ्यैष व्यवसायस्ते प्रकृतिस्त्वां नियोक्ष्यति ॥ ५९ ॥

Entrenched in egoism, thou thinkest, "I will not fight;" to no purpose thy determination; nature will constrain thee.(59)
자아의식을 의지하여 '나는 싸우지 않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결심은 헛된 것이다. 너의 본성이 너를 강제로 행동하게 할 것이다.


स्वभावजेन कौन्तेय निबद्धः स्वेन कर्मणा ।

कर्तुं नेच्छसि यन्मोहात्करिष्यस्यवशोऽपि तत् ॥ ६० ॥

O son of Kuntî, bound by thine own duty[26] born of thine own nature, that which from delusion thou desirest not to do, even that helplessly thou shalt perform.(60)
카운테야여, 자신의 본성에 의해 묶여, 무지로 인해 하고 싶지 않은 행위도 어쩔 수 없이 하게 될 것이다.

ईश्वरः सर्वभूतानां हृद्देशेऽर्जुन तिष्ठति ।

भ्रामयन्सर्वभूतानि यन्त्रारूढानि मायया ॥ ६१ ॥

The Lord dwelleth in the hearts of all beings, O Arjuna, by His illusive Power[27] causing all beings to revolve, as though mounted on a potter's wheel.(61)
오 아르주나여, 주재자(이쉬와라)는 모든 존재의 심장에 거하며, 마치 기계에 장착된 것처럼 자신의 마야로 모든 존재들을 움직이게 한다.

तमेव शरणं गच्छ सर्वभावेन भारत ।

तत्प्रसादात्परां शान्तिं स्थानं प्राप्स्यसि शाश्वतम् ॥ ६२ ॥

Flee unto Him for shelter with all thy being, O Bhârata; by His grace thou shalt obtain supreme peace, the everlasting dwelling-place.(62)
오 바라타여, 모든 마음으로 그에게 귀의하라. 그의 은총으로 최고의 평화와 영원한 자리를 얻게 될 것이다.

इति ते ज्ञानमाख्यातं गुह्याद्‌गुह्यतरं मया ।

विमृश्यैतदशेषेण यथेच्छसि तथा कुरु ॥ ६३ ॥

Thus hath wisdom, more secret than secrecy itself, been declared unto thee by Me; having reflected on it fully, then act thou as thou listest.(63)
이와 같이 내가 너에게 지식—가장 비밀 중의 비밀을—말해주었노라. 이제 이것을 온전히 깊이 숙고하고, 네가 원하는 대로 행하라.

सर्वगुह्यतमं भूयः शृणु मे परमं वचः ।

इष्टोऽसि मे दृढमिति ततो वक्ष्यामि ते हितम् ॥ ६४ ॥

Listen thou again to My supreme word, most secret of all; beloved art thou of Me, and steadfast of heart, therefore will I speak for thy benefit.(64)
이제 다시, 모든 비밀 중에서도 가장 깊은 비밀인 나의 최고의 말을 들어라. 너는 나에게 소중하며, 확고히 사랑스럽기에, 나는 너에게 유익한 말을 하려 한다.

मन्मना भव मद्भक्तो मद्याजी मां नमस्कुरु ।

मामेवैष्यसि सत्यं ते प्रतिजाने प्रियोऽसि मे ॥ ६५ ॥

Merge thy mind[28] in Me, be my devotee, sacrifice to Me, prostrate thyself before Me, thou shalt come even to Me. I pledge thee My troth; thou art dear to Me.(65)
나를 마음에 두고, 나에게 헌신하는 자가 되며, 나에게 제사를 바치고, 나에게 경배하라. 그러면 너는 오직 나에게로 오리라. 이는 진실이니, 내가 너에게 맹세하노라— 너는 나에게 소중하기 때문이다.

सर्वधर्मान्परित्यज्य मामेकं शरणं व्रज ।

अहं त्वां सर्वपापेभ्यो मोक्षयिष्यामि मा शुचः ॥ ६६ ॥

Abandoning all duties[29] come unto Me alone for shelter; sorrow not, I will liberate thee from all sins.(66)
모든 행위와 의무(다르마)를 버리고, 오직 나 하나만을 의지(śaraṇaṁ)하며 가라. 내가 너를 모든 죄(과오, 업)로부터 해방(mokṣa)시키리니, 슬퍼(두려워)하지 말라.(너의 절반의 권리를 내어주고 나의 권리의 절반을 들여놓으면 너와 나는 비로서 하나다.)[21]

इदं ते नातपस्काय नाभक्ताय कदाचन ।

न चाशुश्रूषवे वाच्यं न च मां योऽभ्यसूयति ॥ ६७ ॥

Never is this to be spoken by thee to anyone who is without asceticism, nor without devotion, nor to one who desireth not to listen, nor yet to him who speaketh evil of Me.(67)
이 가르침은 고행하지 않은 자, 신심 없는 자, 듣고자 하지 않는 자, 그리고 나를 비방하는 자에게는 결코 전해서는 안 된다.

य इदं परमं गुह्यं मद्भक्तेष्वभिधास्यति ।

भक्तिं मयि परां कृत्वा मामेवैष्यत्यसंशयम् ॥ ६८ ॥

He who shall declare this supreme secret among My devotees, having shown the highest devotion for Me, without doubt he shall come to Me.[30](68)
누구든지 이 가장 심오한 비밀을 나에게 헌신적인 이들에게 말하는 자는 나에게 최고의 헌신을 행하며 의심 없이 나에게로 오리라

न च तस्मान्मनुष्येषु कश्चिन्मे प्रियकृत्तमः ।

भविता न च मे तस्मादन्यः प्रियतरो भुवि ॥ ६९ ॥

Nor is there any among men who performeth dearer service to Me than he, nor any other shall be more beloved by Me on earth than he.(69)
인간들 가운데, 나에게 그보다 더 사랑스러운 일을 하는 자는 없으며, 앞으로도 그런 자보다 더 나은 사랑받는 자는 없을 것이다.

अध्येष्यते च य इमं धर्म्यं संवादमावयोः ।

ज्ञानयज्ञेन तेनाहमिष्टः स्यामिति मे मतिः ॥ ७० ॥

And he who shall study this sacred dialogue of ours, by him I shall be worshipped with the sacrifice of wisdom. Such is My mind.(70)
나와 너 사이의 이 의로운 대화를 이것을 공부하는 자는 지혜의 제사를 통해 나는 그에게 존경받게 되리라. 이것이 나의 확고한 생각이다.

श्रद्धावाननसूयश्च शृणुयादपि यो नरः ।

सोऽपि मुक्तः शुभांल्लोकान्प्राप्नुयात्पुण्यकर्मणाम् ॥ ७१ ॥

The man also who, full of faith, merely heareth it unreviling, even he, freed from evil, obtaineth the radiant worlds of the righteous.(71)
신심을 지니고 비방하지 않는 자가 이 대화를 듣기만 해도 해방되며, 공덕 있는 이들이 도달하는 복된 세계에 이를 것이다.

कच्चिदेतच्छ्रुतं पार्थ त्वयैकाग्रेण चेतसा ।

कच्चिदज्ञानसम्मोहः प्रणष्टस्ते धनञ्जय ॥ ७२ ॥

Hath this been heard, O son of Prithâ, with one-pointed mind? Has thy delusion, caused by unwisdom, been destroyed, O Dhananjaya?(72)
아르주나야, 이 모든 가르침을 마음을 집중하여 잘 들었느냐? 너를 사로잡았던 무지에서 온 혼란은 사라졌느냐?


अर्जुन उवाच ।

नष्टो मोहः स्मूतिर्लब्धा त्वत्प्रसादान्मयाऽच्युत ।

स्थितोऽस्मि गतसन्देहः करिष्ये वचनं तव ॥ ७३ ॥

Arjuna said:

Destroyed is my delusion. I have gained knowledge[31] through Thy grace, O Immutable one. I am firm, my doubts have fled away. I will do according to Thy word.(73)
아르주나가 말했다: 혼란은 사라졌고, 진리의 기억을 되찾았습니다. 당신의 은총으로 나는 이제 확고히 섰습니다. 의심은 모두 사라졌고, 나는 당신의 말씀대로 행하겠습니다.

सञ्जय उवाच ।

इत्यहं वासुदेवस्य पार्थस्य च महात्मनः ।

संवादमिममश्रौषमद्भुतं रोमहर्षणम् ॥ ७४ ॥

Sanjaya said:

I heard this marvellous dialogue of Vâsudeva, and of the great-souled Partha, causing my hair to stand on end.(74)
산자야가 말했다: 이렇게 나는 위대한 크리슈나와 아르주나의 경이롭고 전율케 하는 이 대화를 들었습니다.

व्यासप्रसादाच्छ्रुतवानेतद् गुह्यमहं परम् ।

योगं योगेश्वरात्कृष्णात्साक्षात्कथयतः स्वयम् ॥ ७५ ॥

By the favour of Vyâsa I listened to this secret and supreme yoga from the Lord of Yoga, Krishna Himself, speaking before mine eyes.(75)
나는 비야사의 은총으로 요가의 주재자 크리슈나께서 친히 말씀하신 이 지극한 비밀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राजन्संस्मृत्य संस्मृत्य संवादमिममद्भुतम् ।

केशवार्जुनयोः पुण्यं हृष्यामि च मुहुर्मुहुः ॥ ७६ ॥

O King, remembering, remembering this marvellous and holy dialogue between Keshava and Arjuna, I rejoice again and again.(76)
오 왕(드리타라슈트라)이시여, 크리슈나와 아르주나 사이의 이 신성하고 경이로운 대화를 거듭 되새기며 나는 반복해서 기쁨에 휩싸입니다.


तच्च संस्मृत्य संस्मृत्य रूपमत्यद्भुतं हरेः ।

विस्मयो मे महान् राजन् हृष्यामि च पुनः पुनः ॥ ७७ ॥

Remembering, remembering, also that most marvellous form of Hari, great is my wonder, O King. I rejoice, again and again.(77)
또한 크리슈나의 그 너무나 경이로운 형상을 거듭 회상하면서 나는 큰 경이와 함께, 계속해서 기쁨으로 떨립니다.

यत्र योगेश्वरः कृष्णो यत्र पार्थो धनुर्धरः ।

तत्र श्रीर्विजयो भूतिर्ध्रुवा नीतिर्मतिर्मम ॥ ७८ ॥

Wherever is Krishna, Yoga's Lord, wherever is Pârtha, the archer, assured are there prosperity, victory and happiness. So I think.[32](78)
요가의 주재자 크리슈나와 활을 든 아르주나가 있는 그곳에는 언제나 영광과 승리, 번영과 확고한 정의가 있나니— 이것이 나의 확고한 믿음입니다.

इति श्रीमद्भगवद्गीतासूपनिषत्सु ब्रह्मविद्यायां योगशास्त्रे

श्रीकृष्णार्जुनसंवादे संन्यासयोगो नामाष्टादशोऽध्यायः ॥१८॥

Thus in the glorious Upanishads of the Bhagavad-Gita, the science of the Eternal, the scripture of Yoga, the dialogue between Shrî Krishna and Arjuna, the eighteenth discourse, entitled:

THE YOGA OF LIBERATION BY RENUNCIATION.

श्रीकृष्णार्पणमस्तु ॥ शुभं भवतु ॥

Thus the Bhagavad-Gita hath ending.

Peace be to all Worlds.


Fourth Edition. 5000 Copies. November 1922. G. A. Natesan & Co., Madras.

[1]Sannyâsa. [2]Tyâga. [3]Slayer of Keshi, a demon. [4]Some read: "Because it is evil." [5] Manah. [6] Buddhi. [7] Gunas. [8] Buddhi. [9] Gunas. [10] Dharma and Adharma, Right and Wrong in the widest sense, law and lawlessness. [11] Buddhi. [12] Adharma. [13] Dharma. [14] Manah. [15] Dharma. [16] Gunas. [17] Prakriti. [18] Karma; it is action arising from the nature fashioned by past thoughts and desires. [19] Karma. [20] Dharma. There is a subtle difference in these words, here used almost interchangeably. Karma arises from the past; Dharma also so arises, but implies also the law by which the next step in evolution is made. [21] Buddhi. [22] Manah. [23] Some read "dhyânayoga", Yoga of "meditation." [24] That. [25] Buddhi-yoga. [26] Karma. [27] Mâyâ. [28] Manah. [29] Dharmas. [30] Some read "asamsayah," which would mean "being freed from doubts." [31] Literally "memory". [32] Shri Shankaracharya's reading would run, translated: "There is prosperity, victory, happiness, and firm morality."

  1. (바가바드 기타 주요3대 플롯) [플롯 1] 인간적 망설임과 시간의 불가피성, 집착 없는 행위로의 초대 (주요 구조) 아르주나의 붕괴(기타 1장 전체 + 1.46) "전장에서 무기를 내려놓고 주저앉는 아르주나" (인간적 붕괴) 크리슈나의 시간 선언(기타 11.32) "나는 시간이다, 세상을 파괴하는 힘이다." (모든 결과는 이미 예정되어 있다.) 집착 없는 행위로 나아감(기타 2.47, 2.38, 3.30) "행위할 권리는 있으나, 결과에 대한 권리는 없다." "쾌락과 고통, 승리와 패배를 초월하라." [플롯 2] 아르주나와 크리슈나의 '절반의 계약' (주요 구조) 아르주나의 포기와 수락(기타 2.7) "나는 당신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나를 이끌어 주십시오." (인간의 한계 수용) 크리슈나의 조건 제시(기타 11.33) "이미 내가 죽였으니, 너는 단지 도구가 되어라." (행위는 인간의 몫, 결과는 신의 몫) 계약 성립의 선언(기타 18.73) "내 망설임이 사라졌습니다. 나는 당신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플롯 3] 아르주나 = 크리슈나 = (또다른)아르주나 =(또다른)크리슈나 , 미러유니버스(mirror universe)의 숨결 (주요 구조) 죽이는 자와 죽임당하는 자는 하나(기타 11.27–31) "모든 영웅들이 당신의 입으로 삼켜지고 있습니다." 크리슈나가 모든 생명의 씨앗임(기타 14.4) "모든 존재는 브라흐마라는 자궁에서 태어나며, 나는 그 씨앗을 주는 아버지이다." 죽음과 삶의 엉킴(기타 13.27–30) "자연이 행위를 하고, 참된 자는 행위의 주체가 아님을 본다."
  2. 나는 꿈속의 나비였고, 나는 숨결이었고, 나는 너였고, 너는 나였다. 그러나 나는 지금 거울 속에 있다고 거울이 말해주었다. iti. m&b.
  3. संन्यास saṃnyāsa 집착을 버리고 수행하는것
  4. 결과를 버리고 수행하는것, 티야가(포기)는 이 쳅터에서 집착(sanga)과 결과(fala) 버리고 수행하는 맥락으로 기술된다.
  5. 트리구나(tri-guna) : 타마스tamas(어둠),라자스rasas(생명),사트(뜨)바sattva(빛)
  6. 몸은 무시될 수 없고, 행위는 멈출 수 없다. 진정한 해방(moksha)은 그것들과의 '균형' 속에서 얻어진다.' iti. m&b.
  7. 세상의 룰 (rule) karma (행위=원인) → phala (결과) 이것은 불변의 법칙(인과관계)처럼 작동한다. 즉, 세상 자체는 “행위-결과의 연속 고리”로 돌아간다. 생명 현상, 사회제도적 인과, 심지어 우주의 질서(ṛta, dharma)도 이 원리 위에 놓임. 따라서 '세상'은 행위-결과라는 기계적 룰로 돌아가지만, '사람'(진정한 존재로서의 존재)은 그 결과에 집착해서 괴로워함. 얻으면 기뻐하고 잃으면 괴로움에 빠짐. 여기서 크리슈나의 제안은 행위를 버릴 수도 없고 더더욱 원인-결과의 대법칙을 바꿀수도 없다. 몸이 있는 한 karma는 필연이다. 그러나 결과(에 대한) 집착은 버릴 수 있다. 세상의 룰(rule)은 바꿀 수 없지만, 내 마음이 그 룰에 끌려다니느냐, 아니냐는 선택할 수 있다. 이렇게 크리슈나의 존재의 필연성도 동시에 결정되게 된다.
  8. (gita2.45)이 세상의 지식(베다, knowledge)은 세 구나(triguṇa)에 속한 대상들을 다룬다. 그러므로 아르주나여, 그대는 세 구나와, 그리고 한 쌍의 이중성(dvandva) 속에서도, 언제나 빛처럼 머물라 — 브라흐만을 향한 나침판처럼. 취하기만하고 내주지는 않으려고만 하는 욕망에서 자유로워, 자아(ātman)를 확립하려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9. 샹카 철학(아드바이타(비이원 또는 둘이 아님) 베단타) = '오직 하나의 실재만 존재하며(비이원론), 나(ātman)와 브라흐만(Brahman)은 동일하다.'
  10. 샹카라가 외친 핵심 선언은 '브라흐마 사트얌, 자간 미트야'로 'Brahman은 진실이고, 이 세계(자간)는 환영이다.'라는 제안을 이해해볼수있다. 그러나 '심신문제'(body-mind problem)의 동일론하고는 다르게 마음(지식)을 보다더 중요하게 여기는 자칫 오류(철학적 편향 및 절대적 비이원론)를 범할수있다는 점에서 주의를 요한다. 한편 실천적 비이원론으로 심신동일론에 가까운 gita18.11(육신을 가진 자는 어떤 경우에도 모든 행위를 완전히 버릴 수는 없나니, 그러나 행위의 결과를 버리는 자는 그 행위에서도 진정한 포기자(tyāgī)라 불린다.)을(크리슈나의 선언) 참고해볼수있다.
  11. 전체를 보는 통합적 지식
  12. 삼구분(三區分) 18.20: '진리는 하나, 그 안에 모두 있다.' , 18.21: “진리 안의 모든 것을 따로 떼어 보며, 스스로 나눈다.' , 18.22: '진리는커녕, 아무 것도 묻지 않는다. 그냥 집착할 뿐이다.' 그러나 이 또한 사트바안에서 하나된다.
  13. 분리와 구분에 집착한 지식
  14. 협소하고 맹목적인 지식
  15. 어떤 지식은 오직 한 가지 일에만 매달려 마치 그게 전부인 양 생각한다. 그건 근거도 없고, 진실과도 동떨어져 있으며, 생각이 좁고, 미약하다. 그런 지식은 타마스, 어둠에서 피어난 지식이라고 불린다.
  16. 자신의 프레임이 전부라고 착각하는 순간, 이미 진리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크리슈나와 아르주나의 1:1 대응구조는 기타 전반에 걸쳐 매우 중요한 키워드이다. 이거야말로 우리가 기타를 ‘관념’으로만 읽지 않고,‘관계’로 읽어야 하는 이유이자,‘내 안의 전쟁’을 대면하는 방식이 되어 준다.
  17. 삼구분(三區分):사트바(맑음 또는 빛), 라자스(열정 또는 욕구), 타마스(무지 또는 어둠)
  18. [심리학] 고전적 조건형성(古典的條件形成 / Classical conditioning)은 이반 페트로비치 파블로프가 실험한 학습과 관련한 연구이다. 또한 도구적 조건형성(道具的條件形成 / Instrumental conditioning)은 조건형성을 일으키는 유기체 학습의 한 종류로 행동주의 심리학의 이론이다. 벌허스 프레더릭 스키너의 주도로 이론이 정립되었다.
  19. 나는 내 역할을 산다. 그게 어떤 성공이건 간에, 그건 이미 내 안에서 완성된 것이다.
  20. 완성을 이룬 자가 어떻게 브라만에 도달하는지를 내게서 들어라, 카운테야여— 그것은 지혜의 가장 높은 자리이며, 요약해서 말하겠다.
  21. 기타3.9 “세상 모든 행위는 희생을 중심으로 창조되었으며, 희생을 떠난 행위는 이 세상에서 속박을 낳는다.” , 기타4.23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고, 집착 없이 지혜로써 행위하는 자는 희생 속에서 하나가 되어 진리를 얻는다.” , 기타4.33 “물질적 희생보다 더 고귀한 것은 지혜의 희생이다. 모든 행위는 결국 지혜로 완성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