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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바가바드 기타/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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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바드 기타(भगवद्गीता, THE BHAGAVAD-GITA)
5장
저자: 비야사(Vyāsa(RC) [KH]vyAsa), 애니 베산트(Annie Besant), 영어에서 번역, 역자: Danuri19
98107비야사(Vyāsa(RC) [KH]vyAsa), 애니 베산트(Annie Besant)Danuri19

FIFTH DISCOURSE.

अर्जुन उवाच ।

संन्यासं कर्मणां कृष्ण पुनर्योगं च शंससि ।

यच्छ्रेय एतयोरेकं तन्मे ब्रूहि सुनिश्चितम् ॥ १ ॥

Arjuna said:

Renunciation of actions Thou praisest, O Krishna, and then also yoga. Of the two which one is the better? That tell me conclusively.(1)
아르주나가 말하였습니다: 오 주님, 당신께서는 포기의 길(산냐사 또는 내려놓다)[1]과 행위의 요가(카르마 요가) 그 둘 모두가 최고의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그 둘 중에서 제가 따라야 할 하나를 확실하게, 명확하게 가르쳐 주소서.

श्रीभगवानुवाच ।

संन्यासः कर्मयोगश्च निःश्रेयसकरावुभौ ।

तयोस्तु कर्मसंन्यासात्कर्मयोगो विशिष्यते ॥ २ ॥

The Blessed Lord said:

Renunciation and yoga by action both lead to the highest bliss; of the two, yoga by action is verily better than renunciation of action.(2)
포기와 행동에 의한 요가는 둘 다 최고의 행복으로 이끈다. 둘 중 행동에 의한 요가는 행동을 포기하는 것보다 확실히 낫다. (포기의 길(산냐사)도, 행위의 요가(카르마 요가)도 둘 다 참으로 최고의 해방으로 이끄는 길이로다. 그러나 그 둘 가운데서 행위를 내려놓는 길보다는, 행위 속에서 머무는 요가의 길이 더 탁월하도다.)[2][3][4]

ज्ञेयः स नित्यसंन्यासी यो न द्वेष्टि न काङ्क्षति ।

निर्द्वन्द्वो हि महाबाहो सुखं बन्धात्प्रमुच्यते ॥ ३ ॥

He should be known as a perpetual ascetic,[1] who neither hateth nor desireth; free from the pairs of opposites, O mighty-armed, he is easily set free from bondage.(3)
욕망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 자는 항상 포기한 자로 여겨진다. 오 위대한 팔을 가진 자여, 그는 모든 이중성(쌍)을 초월했기에 속박으로부터 고요히 벗어난다.

साङ्ख्ययोगौ पृथग्बालाः प्रवदन्ति न पण्डिताः ।

एकमप्यास्थितः सम्यगुभयोर्विन्दते फलम् ॥ ४ ॥

Children, not sages, speak of the Sânkhya[2] and the Yoga[3] as different; he who is duly established in one obtaineth the fruits of both.(4)
산키야(지혜의 길)와 요가(행위의 길)를 따로 보는 이는 미성숙한 자요, 진정한 지(혜)자는 그것들을 둘로 보지 않는다. 둘 중 어느 한 길에 제대로 머무는 자는 결국 둘 다의 열매를 얻게 된다.

यत्साङ्ख्यैः प्राप्यते स्थानं तद्योगैरपि गम्यते ।

एकं साङ्ख्यं च योगं च यः पश्यति स पश्यति ॥ ५ ॥

That place which is gained by the Sânkhyas is reached by the Yogîs also. He seeth, who seeth that the Sânkhya and the Yoga are one.(5)
지혜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에 요가 수행자도 도달한다. 그러므로 산키야(앎)와 요가(행위)를 동일한 것으로 보는 자야말로, 진실로 보는 자이다.

संन्यासस्तु महाबाहो दुःखमाप्तुमयोगतः ।

योगयुक्तो मुनिर्ब्रह्म न चिरेणाधिगच्छति ॥ ६ ॥

But without yoga, O mighty-armed, renunciation is hard to attain to; the yoga-harmonised Muni swiftly goeth to the Eternal.(6)
오 강한 자여, 포기의 길은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고통을 안긴다. 그러나 요가에 통달한 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브라흐만(절대적 실재)에 도달하게 된다.

योगयुक्तो विशुद्धात्मा विजितात्मा जितेन्द्रियः ।

सर्वभूतात्मभूतात्मा कुर्वन्नपि न लिप्यते ॥ ७ ॥

He who is harmonised by yoga, the self purified, Self-ruled, the senses subdued, whose Self is the Self of all beings, although acting he is not affected.(7)
요가에 통달한 자는 자아가 순수하고, 자신을 다스렸으며, 감각도 제어한 자다. 그는 모든 존재 속에 자신의 자아를 보고, 자신 안에 모든 존재를 담고 있으니, 행위를 하더라도 그에 물들지 않는다.

नैव किञ्चित्करोमीति युक्तो मन्येत तत्त्ववित् । पश्यन्शृण्वन्स्पृशञ्जिघ्रन्नश्नन्गच्छन्श्वसन्स्वपन् ॥ ८ ॥ प्रलपन्विसृजन्गृह्णन्नुन्मिषन्निमिषन्नपि । इन्द्रियाणीन्द्रियार्थेषु वर्तन्त इति धारयन् ॥ ९ ॥ "I do not anything," should think the harmonised one, who knoweth the essence of things; seeing, hearing, touching, smelling, eating, moving, sleeping, breathing.(8)
Speaking, giving, grasping, opening and closing the eyes, he holdeth: "The senses move among the objects of the senses."(9)
참된 앎을 지닌 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가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고, 먹고, 걷고, 잠들고, 숨 쉬고, 말하고, 버리고, 잡고, 눈을 뜨고 감는다 해도, 그는 '감각이 감각의 대상 속에서 작동할 뿐이다.'라고 인식한다.


ब्रह्मण्याधाय कर्माणि सङ्गं त्यक्त्वा करोति यः । लिप्यते न स पापेन पद्मपत्रमिवाम्भसा ॥ १० ॥

He who acteth, placing all actions in the Eternal, abandoning attachment, is unaffected by sin as a lotus leaf by the waters.(10)
자신의 행위를 브라흐만(절대자)에게 봉헌하고, 집착 없이 행하는 자는 죄에 물들지 않느니라. 연잎(파드마)[5]이 물에 젖지 않듯.

कायेन मनसा बुद्ध्या केवलैरिन्द्रियैरपि ।

योगिनः कर्म कुर्वन्ति सङ्गं त्यक्त्वाऽऽत्मशुद्धये ॥ ११ ॥

Yogis, having abandoned attachment, perform action only by the body, by the mind[4], by the Reason[5], and even by the senses, for the purification of the self.(11)
요가 수행자들은 몸으로, 마음으로, 지성으로, 그리고 감각기관들로 행위를 하지만, 집착을 버린 채 자기 정화를 위해 행하느니라.

युक्तः कर्मफलं त्यक्त्वा शान्तिमाप्नोति नैष्ठिकीम् ।

अयुक्तः कामकारेण फले सक्तो निबध्यते ॥ १२ ॥

The harmonised man, having abandoned the fruit of action, attaineth to the eternal Peace; the non-harmonised, impelled by desire, attached to fruit, are bound.(12)
요가에 통달한 자는 행위의 결과를 버림으로써 심오한 평온에 도달하고, 요가에 통달하지 못한 자는 욕망에 따라 결과에 집착하여 속박되느니라.

सर्वकर्माणि मनसा संन्यस्यास्ते सुखं वशी ।

नवद्वारे पुरे देही नैव कुर्वन्न कारयन् ॥ १३ ॥

Mentally renouncing all actions, the sovereign dweller in the body resteth serenely in the nine-gated city,[6] neither acting nor causing to act.(13)
모든 행위를 마음속에서 내려놓고, 감각을 제어한 자는 행위하지 않으면서도 편안히 머무느니라. 그는 몸이라는 아홉 개의 문을 지닌 성(城) 안에 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시키지 않느니라.

न कर्तृत्वं न कर्माणि लोकस्य सृजति प्रभुः ।

न कर्मफलसंयोगं स्वभावस्तु प्रवर्तते ॥ १४ ॥

The Lord of the world produceth not the idea of agency, nor actions, nor the union together of action and its fruit; nature, however, manifesteth.(14)
절대자(Prabhu)는 세상 사람들의 행위나 그 행위의 주체성(내가 했다는 감각), 또는 결과와의 결합을 만들지 않느니라. 이 모든 것은 단지 자기 본성(svabhāva스바바바)에 따라 작용할 뿐이다. (세상의 주님은 행위의 개념이나 행위와 그 결과의 결합을 만들어내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자연이 그것을 드러냅니다.)

नादत्ते कस्यचित्पापं न चैव सुकृतं विभुः ।

अज्ञानेनावृतं ज्ञानं तेन मुह्यन्ति जन्तवः ॥ १५ ॥

The Lord accepteth neither the evil-doing nor yet the well-doing of any. Wisdom is enveloped by unwisdom; therewith mortals are deluded.(15)
주님은 악행도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누구의 선행도 받아들이지 않으신다. 지혜는 지혜 없는 것으로 둘러싸여 있고, 필멸자들은 그것으로 미혹된다. [6]

ज्ञानेन तु तदज्ञानं येषां नाशितमात्मनः ।

तेषामादित्यवज्ज्ञानं प्रकाशयति तत्परम् ॥ १६ ॥

Verily, in whom unwisdom is destroyed by the wisdom of the Self, in them wisdom, shining as the sun, reveals the Supreme.(16)
하지만 지혜가 빛나면, 그 무지를 깨뜨리고 모든 것을 태양처럼 드러낸다. 마치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이 비치듯이.[7]


तद्बुद्धयस्तदात्मानस्तन्निष्ठास्तत्परायणाः ।

गच्छन्त्यपुनरावृत्तिं ज्ञाननिर्धूतकल्मषाः ॥ १७ ॥

Thinking on That, merged in That, established in That, solely devoted to That, they go whence there is no return, their sins dispelled by wisdom.(17)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에 융합되고, 그것에 확립되고, 그것에만 헌신한 그들은 돌아갈 수 없는 곳으로 떠나고, 지혜에 의해 그들의 죄는 사라집니다.(지성이 오직 그것에 머무는 자, 그 마음이 하나로 모인 자는 온전히 정화되어,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다.)

विद्याविनयसम्पन्ने ब्राह्मणे गवि हस्तिनि ।

शुनि चैव श्वपाके च पण्डिताः समदर्शिनः ॥ १८ ॥

Sages look equally on a Brâhmana adorned with learning and humility, a cow, an elephant, and even a dog and an outcaste.[7](18)
참된 지혜를 가진 자는, 브라만이나 소나 코끼리나 개나 그들이 모두 같은 본질을 지녔음을 본다.(현자들은 학식과 겸손으로 치장한 브라만이나, 소, 코끼리, 심지어 개와 천민까지도 똑같이 여긴다.)

इहैव तैर्जितः सर्गो येषां साम्ये स्थितं मनः ।

निर्दोषं हि समं ब्रह्म तस्माद्ब्रह्मणि ते स्थिताः ॥ १९ ॥

Even here on earth everything is overcome by those whose mind[8] remains balanced; the Eternal is incorruptible and balanced; therefore they are established in the Eternal.(19)
이 세상에서 평등한 눈을 가진 자는 이미 이 생에서 해방된 자다. 왜냐하면 그는 완전한 존재와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이 지상에서도 마음이 균형을 유지하는 자는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 영원은 부패할 수 없고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원 안에 굳건히 서 있다.)

न प्रहृष्येत्प्रियं प्राप्य नोद्विजेत्प्राप्य चाप्रियम् ।

स्थिरबुद्धिरसंमूढो ब्रह्मविद्ब्रह्मणि स्थितः ॥ २० ॥

With Reason[9] firm, unperplexed, the knower of the Eternal established in the Eternal, neither rejoiceth on obtaining what is pleasant, nor sorroweth on obtaining what is unpleasant.(20)
그는 외적인 것에 기뻐하지 않으며, 내적인 고통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분별을 초월한 자, 진정으로 ‘앎’을 가진 자다.

बाह्यस्पर्शेष्वसक्तात्मा विन्दत्यात्मनि यत्सुखम् ।

स ब्रह्मयोगयुक्तात्मा सुखमक्षयमश्नुते ॥ २१ ॥

He, whose self is unattached to external contacts and findeth joy in the Self, having the self harmonised with the Eternal by yoga, enjoys imperishable bliss.(21)
그는 감각의 기쁨을 바깥에서 찾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내면에서 평안을 발견하고 고요 속에서 영원한 기쁨을 맛본다. 그 기쁨은 진리에서 오며, 그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ये हि संस्पर्शजा भोगा दुःखयोनय एव ते ।

आद्यन्तवन्तः कौन्तेय न तेषु रमते बुधः ॥ २२ ॥

The delights that are contact-born, they are verily wombs of pain, for they have beginning and ending, O Kaunteya; not in them may rejoice the wise.(22)
감각적 쾌락은, 그 시작이 달콤할지라도, 결국 고통을 동반한다. 그것들은 유한한 존재이기에,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즐기지 않는다.

शक्नोतीहैव यः सोढुं प्राक् शरीरविमोक्षणात् ।

कामक्रोधोद्भवं वेगं स युक्तः स सुखी नरः ॥ २३ ॥

He who is able to endure here on earth, ere he be liberated from the body, the force born from desire and passion, he is harmonised, he is a happy man.(23)
이 세계에서, 욕망과 분노를 떨쳐낸 자는, 몸을 떠나기 전에 이미 행복한 사람이라 불릴 수 있다.

योऽन्तःसुखोऽन्तरारामस्तथान्तर्ज्योतिरेव यः ।

स योगी ब्रह्मनिर्वाणं ब्रह्मभूतोऽधिगच्छति ॥ २४ ॥

He who is happy within, who rejoiceth within, who is illuminated within, that Yogî, becoming the Eternal, goeth to the Peace[10] of the Eternal.(24)
자신 안에 기쁨을 갖고, 자신 안에 활동하며, 자신 안에 빛나는 자는 요가에 의해 완전히 해방되며, 브라흐만(the Eternal)이 되어 브라흐만의 니르바나(brahma-nirvāṇa=절대자=the Peace of the Eternal)에 도달한다.[8][9]

लभन्ते ब्रह्मनिर्वाणमृषयः क्षीणकल्मषाः ।

छिन्नद्वैधा यतात्मानः सर्वभूतहिते रताः ॥ २५ ॥

Rishis, their sins destroyed, their duality removed, their selves controlled, intent upon the welfare of all beings, obtain the Peace[10] of the Eternal.(25)
그들은 모든 생명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자아를 정복했고, 탐욕 없는 이들이다. 그들은 브라흐만을 실현했으며, 니르바나(nirvana)[10][11]에 이른다.

कामक्रोधवियुक्तानां यतीनां यतचेतसाम् ।

अभितो ब्रह्मनिर्वाणं वर्तते विदितात्मनाम् ॥ २६ ॥

The Peace[10] of the Eternal lies near to those who know themselves, who are disjoined from desire and passion, subdued in nature, of subdued thoughts.(26)
욕망과 분노에서 해방된 이들, 마음이 안정된 성자들은 이미 해방되어 브라흐만의 니르바나(brahma-nirvāṇa)에서 하나가 된다.

स्पर्शान्कृत्वा बहिर्बाह्यांश्चक्षुश्चैवान्तरे भ्रुवोः । प्राणापानौ समौ कृत्वा नासाभ्यन्तरचारिणौ ॥ २७ ॥ यतेन्द्रियमनोबुद्धिर्मुनिर्मोक्षपरायणः । विगतेच्छाभयक्रोधो यः सदा मुक्त एव सः ॥ २८ ॥ Having external contacts excluded, and with gaze fixed between the eyebrows; having made equal the outgoing and ingoing breaths moving within the nostrils;(27)
With senses, mind,[11] and Reason[12] ever controlled, solely pursuing liberation, the Sage, having for ever cast away desire, fear and passion, verily is liberated.(28)
눈, 코, 입 등 외부 자극으로부터 감각을 차단하고, 호흡을 코 안에서 균등히 조절하며, 욕망과 두려움과 분노를 버리고, 자유(free)[12]를 향해 집중하는 이들, 이런 요기(명상하는 자)는 언제나 해방(liberated)에 이른다.


भोक्तारं यज्ञतपसां सर्वलोकमहेश्वरम् ।

सुहृदं सर्वभूतानां ज्ञात्वा मां शान्तिमृच्छति ॥ २९ ॥

Having known Me, as the Enjoyer of sacrifice and of austerity, the mighty Ruler of all the worlds, and the Lover of all beings, he goeth to Peace.(29)
나(크리슈나)는 모든 희생과 명상의 수용자이며, 모든 세계의 주인이며, 모든 존재의 친구이다. 이 사실을 아는 자는 평화에 이른다.

इति श्रीमद्भगवद्गीतासूप॰ संन्यासयोगो नाम पञ्चमोऽध्यायः ।

Thus in the glorious Upanishads of the Bhagavad-Gita, the science of the Eternal, the scripture of Yoga, in the dialogue between Shrî Krishna and Arjuna, the fifth discourse, entitled:THE YOGA OF THE RENUNCIATION OF ACTION.
이와 같이, 바가바드 기타의 찬란한 우파니샤드들 속에서, 영원한 것의 과학이자, 요가의 경전인 이 (말씀이), 신성한 크리슈나와 아르주나의 대화 속에서 전해졌으며, 다섯 번째 담화로서,'행위의 포기의 요가'라는 제목을 지니고 있다.

[1] Sannyâsi; one who renounces all. [2] See footnote, page 32. [3] Ibid. [4] Manah. [5] Buddhi. [6] The body, often called the city of the Eternal. [7] Shvapâka, the lowest class of outcastes. [8] Manah. [9] Buddhi. [10] Nirvâna. [11] Manah. [12] Buddhi.

  1. saṁnyāsa 또는 sannyāsa
  2. 포기도, 행위도 다 해방을 위한 진짜 길이다. 하지만 행위를 버리는 것보다, 행위 안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더 강하고 실천적인 길이라는 것이다.
  3. 네가 하는 일을 내려놓을수도 있다. 그리고 너는 그 안에서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다. 포기는 비연소라고 해서 그리고 행위 속의 자유는 더 큰 연소(燃燒)의 길이라고 해서 어느것이 더 큰 행복이라고 말할수는 없다. 행복은 행복일뿐이다.그러나 그러한 맥락에서 역시 더 큰 연소는 더 큰 연소이다.
  4. 더 큰 연소는 더 많이 사라진다. 더 많이 사라진 자는 더 적게 남고, 그 남은 적음 속에서 빛이 있다. (jennifer.m.)
  5. पद्म (padma) 연꽃(lotus)
  6. 신은 어떤 존재의 행위도, 죄도, 공덕도 짓지 않는다. 그러나 무지는 진실을 가리고, 무지 속에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얽매게 된다.
  7. 진실로, 자아의 지혜로 인해 지혜 없는 것이 파괴된 사람에게 지혜는 태양처럼 빛나며 절대자를 드러냅니다.
  8. 니르- 벗어나는(without-), 바나- 소리(sound) , 니르바나(nirvana)- 소리가 잦아들고 없어지는-(또는 불(씨)이(가) 사그라들다)
  9. 요가수트라 1.43 니르비타르카(Nirvitarka), 1.44 니르비카라 (nirvicāra निर्विचार)참고
  10. 궁극의 평온(Peace of the Eternal),(산스크리트어) nirvāṇa (욕망과 고통이)소멸하다(불이 꺼지다) , [참고](불교)열반
  11. 힌두 철학에서 'Eternal'은 흔히 브라흐만(Brahman) 또는 '아트만(Ātman)'을 뜻하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불변의 실재를 의미한다. 따라서 'Peace of the Eternal'은 단순한 감정적 평화가 아니라, 진리에 접속했을 때 누리는 궁극의 평정을 뜻하는 경우로 이해해볼수있다. 따라서 문맥에 따라 다음과 같이 풀어쓸 수도 있다.'진리에 도달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영원의 평화'
  12. liberation 모크샤(목사)mokṣa(मोक्ष)자유 또는 구원 , 묵타mukta(मुक्त) 자유로운 또는 해방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