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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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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 큰아부지 만나거든 쌀 가져 온 인사를 하여라. 잠잠하고 있지 말고"

저녁술을 놓고 나가는 아들의 뒷멀미를 바라보며 어머니는 이런 말을 하였다. 바위는 들었는지 말았는지 잠잠히 나와 버리고 말았다.

사립문 밖을 나서는 길로 그는 홍철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늘이나 무슨 기별이 있는가 하는 궁금증이 났던 것이다. 홍철의 집까지 온 그는 한참이나 주점주점하고 망설이다가 문안으로 들어서며 기침을 하였다. 뒤이어 방문이 열리며 내다보는 홍철의 아내는,

"오십니까. 그런데 오늘도 무슨 기별이 없습니다그려."

바위가 묻기 전에 앞질러 이런 걱정을 하며 어린애를 안고 나온다.

"아무래도 무사치 않을 모양이에요. 그러기에 소식이 없지요. 그만 내가 가볼까 하여요."

바위는 언제나 홍철의 아내와 마주서면 얼굴을 조금 외면하고 딴 곳을 바라본다. 그리고 두 손을 부자연하게 합수하고 아무 말도 못하는 것이 그의 늘 하는 버릇이다.

"여기에 읍이 백 리라지요."

"네."

바위는 머리를 숙이며 겨우 대답하고 또 가만히 있다. 홍철의 아내는 바위의 이 모양이 호의로 해석이 되면서도 이런 때는 끝없이 안타까웠다.

"들어가십시다요."

하도 갑갑해서 방안으로나 들어가면 무슨 말을 할까 하여 홍철의 아내는 방으로 들어가며 바위를 돌아다본다.

"가겠습니다."

언제나처럼 그는 이런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왔다. 대문 밖을 나서니 이때껏 지리꼈던 가쁜 숨이 후유 하고 나왔다.

홍철이는 M포구에서는 없지 못할 존재였었다. 아는 것으로도 중학 정도 이상이었으며 더구나 청년들에게 더할 수 없는 신망을 가지고 꾸준히 야학을 계속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며칠 전 주재소로부터 돌연히 야학 폐쇄명령을 내리는 길로 홍철의 집을 샅샅이 뒤져보고 나서 무슨 비밀서류 등을 다수 압수해 가지고 홍철이를 앞세우고 들어간 후로 곧 읍으로 호송하여 놓고는 이때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었던 것이다.

바위는 어정어정 걸었다. 그의 신변에는 일대 위기가 박두한 듯하였다. 아니 박두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미리부터 각오한 일이나 그러나 목전에 당하고 나니 난처밖에는 하지 않았다보담도 당장이라도 먹을 것이 업는 터이라 내일로라도 무슨 벌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질서 없이 하며 어느덧 정신을 차려 가만히 살펴보니 멀리 보이는 농장을 휩싼 아카시아숲! 마음먹고 저 농장을 바라보지도 말자면서도 발길 가는 대로 맡겨두면 번번이 농장을 찾곤 하였다.

어슴푸레한 황혼은 농장을 싸고 어슬어슬 얽히었는데 그 뒤로 꿈인 듯이 솟아오르는 달은 잠깐 송림으로 몸을 숨기고 두어 낱의 긴 빛을 던지고 있었다. 농장 집을 중심으로 막연히 넓어 보이는 농장! 언제 보아도 대견한 농장! 이 농장만은 언제나 바위를 반겨 맞는 듯싶었다.

지금으로부터 육년 전 일이다. 지금의 농장감독으로 있는 전중이는 돌연히 M포구에 나타나 면사무소의 힘을 빌어가지고 농민을 다수 모아놓은 후에 이런 선언을 하였다.

M포구 뒷벌을 개간할 터인데 여기에 참가하는 농민들에게 뒷벌이 다 개간된 후에는 소작료 없이 삼년을 부쳐 먹을 것, 더구나 집까지 새로 지어선 준다는 것이다.

이 말이 M포구를 통하여 그 근방까지 소문이 나니 너도 나도 농민이 몰려들었다. 한동안은 이 M포구에 대혼잡을 이루어 그나마 서로 붙지 못하여 쌈질까지 하다가 쫓겨 간 농민이 그 수를 헤일 수 없었다.

며칠 후 여기에 추림을 받은 농민들을 아침 다섯시만 되면 일제히 괭이를 둘러메고 뒷벌로 모였다.

뒷벌이야말로 돌각대기 벌이다. 더구나 집채같은 바위가 드문드문 박혀 있으며 칡덩굴이며 가시덤불이 빽빽이 얽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장래에 태산 같은 희망을 바라보고 힘든단 말 한 마디도 내지 못하였다. 집채같은 바위를 끌어낼 때에는 그들에게서는 비지땀이 흘렀다. 그럴때마다 전중이는 싱글싱글 웃으며,

"어렵지요, 여러분, 그렇지만 이렇게 힘들여서 만들어놓으면 다 당신들의 것이요."

이 말에 그들은 다시 힘을 내고 더 할 수 없는 위안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다정히 약속하던 그 달콤한 말! 육년이 지난 오늘에는 어떠했던가. 바위는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등허리에서 식은땀이 버쩍 나는 것을 느끼곤 하였다.

오늘의 바위는 저 농장을 잃어버린 바위였다. 전중이 눈 밖에 났던 까닭이다. 전중이는 야학교를 미워하였다. 보다도 홍철이를 미워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농장농민들로 하여금 야학교에 가는 것을 엄금하였다. 그러나 바위는 못 들은 체하고 꾸준히 다닌 결과 전중에게 미움을 사게 되어 마침내는 변변치 않은 것을 구실로 농장을 그만두라고 하였다.

그가 홍철이를 알면서부터 이 농장에서 어느 때이든지 자기들에게 이런 일을 감행할 줄은 뻔히 알은 것이나 그러나 마침내 당하고 나니 예상하든 바와는 너무나 엄청난 것을 깨달았다.

그 후로 바위는 주소로 다니던 이 농장이건만 원망스럽고도 야속해 보이며 바라보기도 끔찍하였다. 그러나 웬일인지 발길은 그리로만 돌아섰던 것이다.

어느덧 달은 송림을 벗어났다. 여기에 따라 뚜렷이 나타나 보이는 농장! 그의 눈에 흙 들기 전에야 어찌 이 농장을 차마 잊으랴. 가시덤불을 해치면서 만든 이 밭! 숨이 막히도록 흙을 안고 또 안아서 얻은 이 밭! 그러고 육년 동안 하루같이 만져 손독에 부드러워진 이 밭이 흙은 꿈에도 만져보지 못한 지주의 것이다.

바위는 하늘을 우러러 호소하고 싶었다. 땅을 구르며 물어보고 싶었다. 이 땅! 이 흙이 누구의 것이냐?고.

이런 생각에 그의 전신의 피는 갑자기 머리 위로 치떠미는 것을 느꼈다. 따라서 피가 얽힌 눈매로 전중의 사택 편을 바라보자 달빛에 빛나는 함석창고는 소리를 치고 그의 가슴으로 뛰어드는 듯하였다.

한참 후에 삐걱삐걱 소리에 바위는 깜짝 놀라 자신을 살펴보았다. 그의 손은 창고쇠를 비틀고 있지 않느냐! 순간에 그는 누구에게 몹시 얻어 맞은 듯한 느낌으로 두 눈을 번쩍 떴을 때 홍철의 그 얼굴이 뚜렷이 나타난다.

그는 얼핏 손을 두고 누구에게나 들키지나 않았나 하는 불안으로 가만히 들어보았다. 마침 전중의 방에서는 취중에 하는 혀 곱은 일본소리가 어울려 들렸다. 따라서 손뼉치는 소리며 쿵덩쿵덩 소리가 섞여 나온다.

그는 가볍게 숨을 돌아 쉬며 얼핏 아카시아숲 편으로 건너왔다. 그래도 못 미더워 이번에는 농가 편으로 머리를 돌리고 한참이나 동정을 살폈다. 창고를 뚝 떨어져 원형으로 늘어앉은 농가들은 컴컴하였다. 그러나 어렴풋이 문소리가 들림에 얼른 그는 한 보 뒤로 물러서며 자세히 바라보았다.

창고 곁으로 오는 사람. 순간에 그는 몸이 쭈뼛해 지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반가워서 눈을 부비며 바라보니 그는 자신과 같이 이 농장을 개간하던 아버지 겸 동무이던 서영감이 아니였느냐! 그는 "서영감!" 하고 얼핏 나가는 것을 그만 손으로 꾹 틀어막았다.

뒤이어 숨이 칵 막히며 뜨거운 눈물이 소리없이 주루루 흘러내렸다.

그는 단숨에 아카시아숲을 벗어났다. 그리하여 한참이나 미친 듯이 밭고랑을 넘어 용도리 치다가 우뚝 일어서며 "옳다! 나는 ××회원의 한 사람이다!" 이렇게 힘있게 부르짖었다. 따라서 불만에 불만을 품고 있던 아버지의 과거가 눈물겹게 나타났다.

그의 아버지인 김장사는 이름 그대로 남달리 힘이 세었다. 그래서 동내에서 장사 장사하고 놀려대던 것이 마침내는 그의 이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장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고 고아가 되니 그만 선주집 고용살이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래 몇십 년을 바다에서 사는 동안 그는 훌륭한 어부가 되었다. 그래서 선주에게도 상당한 믿음을 얻고 더구나 힘이 센 까닭으로 만만히 보지를 못했다.

삼십여 세가 되도록 장가를 못 들게 되니 장사는 그만 낙망을 하였다. 그러다가 어느 동리에 참한 과부가 있다는 말을 듣고 그 길로 가서 지금의 바위 어머니를 매로 우겨서 억지로 데려다 살게 되었다.

바위 어머니는 자기의 수절을 깨친 장사를 몹시 미워하였다. 그래서 틈만 있으면 달아나려고 하였다. 그러나 장사는 기어코 붙잡아다 놓고는 반쯤 죽도록 때려서는 여전히 데리고 살았다.

이러는 사이에 바위를 배게 되었다. 그 후부터 바위 어머니도 모든 것을 단념하고 새 생명 나오기만 손꼽아 기다렸다 십삭을 채워 지금의 바위를 낳아놓게 되었다.

노총각으로 늙을 줄 알았던 그가 아내를 얻게 되고 따라서 독장군 같은 아들을 얻게 되니 장사의 기쁨이야말로 어디다가 비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후로 장사는 독으로 퍼붓던 술까지 끊어버리고 돈 모으기에 열중하였다.

바위가 세상에 나온 지 몇 달이 지나니 꽃송이 같은 입을 벌려 아빠 아빠! 엄마 엄마! 하였다. 장사는 이 소리가 어찌나 신통하고 기쁘게 들렸는지 몰랐다. 여기에 따라 장사의 하루 종일 피로는 기쁨으로 변해 가로 날로 희망은 커가고 있었다.

이래서 그 해도 그 해같이 빠르게 지나가는 사이에 바위의 나이는 벌써 다섯 살 잡히게 되었다. 이제는 제법 아버지 마중 나간다고 저 혼자 아장아장 집 모퉁이를 돌아다녔다. 그래서 어장으로부터 돌아오는 아버지에게 안겨 가지고 돌아오곤 하였다.

어떤 날, 바람이 몹시 일어나던 날, 장사는 밤이 깊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이 날도 바위는 아버지 마중 나간다고 휘죽휘죽 나가는 것을 어머니는 잡아 끌어앉히고,

"이제 아부지 온다. 바람 불어 못 나가."

"아니야 아빠 와."

이렇게 소리지르며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다가 못 견디어 주저앉고는 으악 하고 울음발을 내쳤다. 바위 어머니는 바위를 꼭 끌어안으면서 어쩐지 이때까지 돌아오지 않는 남편에게 불안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필 오늘에 한하여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바람이 불거나 비가 몹시 오거나 날이 침침하거나 하면 바느질하던 손을 멈추고 붕당대든 댓돌 위에 올라서서 멀리 바라보이는 푸른 바다를 근심스러운 듯이 바라다 보곤 하였던 것이다.

어느덧 바위의 색색하는 숨소리가 방안을 한층 더 고요하게 하였다. 그는 안았던 아들을 아랫목에 조심히 뉘어놓고 가만히 일어섰다.

밖에서는 여전히 바람소리가 휙 하고 몰려갔다 온다. 따라서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이 문풍지를 들이맞힌다. 그의 가슴은 웬일인지 점점 더 초조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왔다갔다 하며 귀를 기울이고 한참씩이나 숨을 죽이고 지나치는 바람결에 행여 신발소린가 하여 들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이때처럼 남편의 존재가 큰 것을 느낀 때는 없었다.

마침내 그는 선주의 집까지 가서 알아보기로 결심하고 자는 아들을 돌아 보았다.

평화스럽게 잠이 든 바위! 젖살이 오른 포동포동한 볼 위에 그의 긴 속눈썹이 푹 내려 덮였다. 순간에 저것이 나 없는 새 깨면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 그만 펄썩 주저앉았다.

한참 후에 그는 문을 꼭꼭 닫아걸고 치마를 폭 쓴 후에 방문을 나섰다. 사정없이 몰아치는 바람세는 그의 숨을 턱턱 막히게 하였다. 그럴 때마다 그는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서 숨을 태우면서도 아들의 울음소리가 나지 않는가 하여 귀를 기울이곤 하였다.

바람에 치마폭을 갈갈히 찢기고 머리를 갈래갈래 풀어헤친 채 겨우 선주의 집까지 오니 불빛이 가늘게 문 새로 흘러나온다. 순간에 그는 공포심이 적이 들어지며 문을 흔들었다.

몇 번이나 고함을 치고 나니 안에서 신발소리가 나며,

"거 누구이니. 어, 장사인가?"

이 소리에 그는 지하에 떨어지는 듯이 아뜩함을 느꼈다. 이 안에 자기의 남편이 없는 것을 알았던 까닭이다.

문이 덜거덕 열리며,

"누구요."

"저얘요. 저 바위 아부지 여기 계시나요?"

사나이는 뜻밖의 여인네 목소리에 반가워했다. 그리하여 그는 바짝 다가서며,

"네, 헤 아주머님니까? 그 사람 아직 안 들어왔습니다. 아마 역풍이 부니까 섬에서 자나 봅니다. 이 어두운데 어떻게 여기를……"

이 사나이는 천연스럽게 대답한다. 그의 늘어진 말에 바위 어머니도 다소 안심을 얻으며,

"섬에서 꼭 지무실까요."

"네, 그렇구 말구요. 헤헤 걱정이 되셔서. 더구나 그 사람은 배를 잘 부리지 않습니까. 걱정 말으슈."

이 말에 그의 불안과 공포는 봄날 눈녹듯이 스르르 풀려서 그만 돌아섰다.

"그럼 안녕히 주무십쇼. 이렇게 찾아와서 안되었습니다."

그의 눈에는 아들이 깨어 우는 것이 보이는 듯해서 총총히 발길을 옮겼다.

다음날 저녁때 장사는 어떤 낯선 사람에게 업혀 집으로 돌아왔다. 바위 어머니는 깜짝 맞받아 나가며,

"이게 웬일입니까?"

장사는 겨우 눈을 뜨면서,

"바위! 바위!"

몇 번 부르더니 그만 기색을 한다. 옆에 있던 바위는,

"아빠!"

칵 매어달려 그의 감은 눈을 조그만 손으로 뻐개며 들여다본다. 장사를 업고 온 어부는 숨이 차서 이런 말을 하였다.

"그래도 저 사람은 천행으로 바위를 붙잡았기에 살았지 다른 이들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으니…… 살았는지 죽었는지, 허 그러 참……"

바위 어머니를 흘끔 쳐다본다. 장사는 그제야 눈을 번쩍 뜨고,

"바위 어디 갔냐?"

"아빠! 아빠 고기 잡아 왔어?"

아무 철모르는 것은 저녁때면 고기 몇 마리씩 가져오던 생각이 났던 것이다.

"오! 이제 가져오지."

바위를 꼭 껴안는다. 바위 어머니는 부자의 이 모양을 눈물겹게 바라보고 섰다.

며칠 후에 바위 어머니는 어찌된 까닭을 물으니 장사는 한숨을 푹 쉬며,

"어쩌나. 살아났는데야 지난 말해서 무슨 소용인가…… 역풍 때문이지."

그는 배 파선 당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하였던 것이다. 바위 어머니는 남들에게서 들어 남편이 어찌 되었다는 것을 번연히 알기 때문에 더 묻지 않고 말았다.

한 십여 일 후에 장사는 몸도 튼튼히 못한 채 일어나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어서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신물이 나도록 바다에서 헤매었건만 그때 일은 언제 있었더냐 한 듯이 바다가 그립다. 그래서 아내의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부득부득 어장으로 나갔다.

우선 선주의 집을 들렀다. 선주는 아직도 자리에서 일지 않은 채,

"어, 장사인가. 들어오게. 그새 몸은 튼튼했는가."

풀기없이 들어와 앉는 장사를 보고 이런 말을 하였다.

"그런데 좀더 치료를 할 것이지."

그는 벌떡 일어나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물며 자리를 밀어낸다. 장사는 머리를 굽실해 보이며,

"덕분에 쾌차했슈다."

장사는 선주의 이 같은 후한 말이 얼마나 고맙게 들렸는지 몰랐다.

"음 그런데 자네 배는 아주 깨졌지…… 자네가 너무 무슨 일을 재지않고 하느니……"

담뱃대로 재떨이를 땅땅 구른다. 장사의 전신은 으쓱함을 느꼈다. 선주는 약간 골피를 찡그리며,

"우선 다른 배 사오기까지는 놀아야 하겠네. 어디 배가 있는가."

"아니 저."

"아, 글쎄글쎄 자네 말은 다 알았어. 그것은 새 직장네가 부리기로 되었네."

이렇게 그의 말문을 막아버린다. 전 같으면 잠깐이라도 못 놀게 할 그연만 하필 오늘에 한하여서만 이렇게 말하였다. 순간에 그는 아뜩함을 느꼈다. 무엇보다 어린 바위가 눈물겹게 불쌍하게 생각이 들었다.

선주는 장사의 눈치를 살피며,

"뭘 그럴 것 있는가. 우리가 새 배를 마련하게 되면 언제나 자네를 쓸터이니까, 우선 몸이나 튼튼해지기까지 놀라는 말이어."

선주는 이번 기회에 장사를 아주 내쫓으려고 마음을 먹었다. 무엇보다도 비록 목선이나마 두 개씩이나 못 쓰게 만든 까닭으로 당장에 손해난 것만 아깝게 생각되었던 까닭이다. 장사는 어떻게 들으면 선주의 말도 옳은 듯하여,

"네, 그러면 곧 마련합쇼."

장사는 이렇게 말하고 뛰어나왔다.

멀리 보이는 비단결 같은 서해바다에 벌써 동무들의 고깃배가 조는 듯이 둥실 떴다. "오늘 날씨 좋다!" 그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따라서 그는 못 견디게 바다가 그립고 더구나 잔잔한 물결이 얼마나 탐스럽고도 동무들의 그 웅자…… 야말로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랐다.

그는 맥없이 바다를 바라보다가 휘끈 돌아설 때 뜻하지 않은 한숨에 가슴이 메여지도록 아팠다. 그러고 늠실늠실 높았다 낮아지는 물 속으로 팔뚝 같은 칼치가 올신갈신 하는 것이 시재 보이는 듯해서 눈을 크게 떴을 때 자신은 안타까운 뭍에 두 발을 붙이고 있었다.

그 후 장사는 선주의 말을 믿고 몇 번이나 다녀보았으나 그는 하루이틀 미루다가 아주 잘라 말하고 말았다. 장사는 그만 미칠 지경이었다. 무엇보다도 어린 바위가 밥 달라고 조르는 데는 그만 그렇게 꿋꿋하고 뱃심 좋던 장사연만 머리가 숙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집안에 가만히 붙어 있지를 않고 낚싯대나 짊어지고 바다로 가서 해종일 있다가 밤중에나 되어서 겨우 들어오곤 하였다.

어떤 날 바다로부터 들어오니 바위는 어머니 치맛귀를 잡고 잠이 들었다.

"애기 자나?"

"네."

아내는 눈을 내려 감으며 고름끈으로 눈물을 씻는다. 이 꼴을 보는 장사는 차라리 저것이 달아날 때에 내버려나 두었더라면 좋았지 하는 후회가 뭉클 일어났다.

"고기 몇 마리 잡아 왔으니 이것이라도 지져 먹지."

그리하자 바위는 자다가 입맛을 다시며 무엇을 맛있게 먹는 잠꼬대를 한다. 목으로 넘어가는 침이 빤드러미 들여다보인다. 이것을 본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일시에 눈물이 거뜩해지며 방안이 캄캄함을 느꼈다. 별안간 바위는 벌떡 일어나 앉으며,

"엄마 나 밥!"

소리질렀다. 장사는 두말없이 바위를 업고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어디 가서든지 밥술이나 얻어먹으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의형인 김서방을 찾아갔다.

그때에 김서방은 남의 집을 살고 있었다. 그러므로 장사의 형편을 대강 짐작하나 어떻게 하는 수는 없었다.

"형님 계슈?"

"어, 아운가."

다정스레 맞아주는 김서방은 새끼 꼬던 짚단을 제쳐놓고 바위를 안는다. 그의 이마에는 번질번질한 기름기가 윤택하게 흘렀다. 따라서 트림까지 자주자주 하였다.

"아빠, 나 밥. 응야!"

김서방은 놀라 장사를 보며,

"아저머님 어디 편치 않으신가?"

"네."

그는 얼핏 이렇게 대답하며 차라리 아내가 앓아누워서 끼니를 굶는다면 얼마나 복일지 몰랐다.

"어 안되였구먼, 우리 바위가."

김서방은 장사의 요즘 형편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렇게 끼니까지 끊이지 못하는 줄은 몰랐다. 그는 얼핏 일어나 밖으로 나가더니 밥 한 그릇과 김치를 가지고 들어왔다.

바위는 밥을 보자 밥바리를 안고 돌아간다.

"자네도 좀 떠보지."

밥 냄새에 구미가 동하여 장사는 침만 꿀꺽꿀꺽 삼키고 있는 것이 난처하여 이런 말을 하였다.

"아니유 난……"

침을 삼키며 문편으로 머리를 돌린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한없이 흘렀다. 김서방이 아니면 바위라도 물리치고 먹고 싶은 욕심에 가슴이 덜덜 뛰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지나는 새, 장사는 끝없이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하였다. 따라서 반항심 복수심은 나날이 자라가고 있었다. 그러나 어린 바위를 생각하고 그는 모든 것을 참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벌이를 할 양으로 농사를 하려고 하였으나 배 부리던 사람은 농사할 줄도 모를 뿐만 아니라 밭까지 그르친다는 말이 예전부터 남아 있어 밭 한 뙈기를 얻는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그는 밤이면 차디찬 칼을 품고 남들이 다 자는 밤거리를 헤매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렇게 이 산골로 저 산골로 피신하여 다니면서도 아들의 건강! 아내의 건강을 마음껏 빌었다.

어떤 날 그는 어떤 마을을 지나칠 때 바위 같은 어린애를 보고는 그만 부쩍 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서 단숨에 M포구로 발길을 돌렸다. 여기서 M포구가 백리 길이나 되었다. 그러나 그는 밤낮을 헤아리지 않고 뛰어서 M포구 앞까지 왔을 때는 그의 발은 퉁퉁 부어 피가 줄줄 흘렀다.

이렇게 오고도 버젓이 들어올 수가 없어서 밤이 들기를 기다려 겨우 자기 집까지 왔다.

"엄마, 자자오. 흥."

바위의 음성이다. 장사는 더 참을 수가 없어 사면을 휘휘 돌아본 후 가만히 방문을 열었다. 아내는 비상히 놀라 얼핏 일어섰다. 그리하여 장사의 주는 짐을 받아 윗방으로 올라간다.

"아가, 바위야!"

아버지는 바위를 안으려 하였다. 바위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어머니 치마귀에 꼭 매어 달리며 머리를 파묻는다. 이 꼴을 본 바위 어머니는,

"아가, 아부지야. 너 아부지 보고 싶댔지."

바위는 울멍울멍하며 점점 돌아앉는다. 순간에 장사는 수없이 섭섭함을 느꼈다. 아버지하고 칵 매여 달릴 줄 알았던 바위가 그 새만 하여도 낯이 설어진 모양이니 가슴이 터지도록 바라보고 온 그 기대가 그만 슬픔과 아픔으로 변함을 코허리가 시큰하도록 느꼈다.

"진지 지을까요?"

"아니, 난 안 먹겠어. 불 끄지."

'훅'하고 불을 끈다. 그리고 아내의 손을 넌지시 잡아당긴다. 순간에 바위 어머니는 전신이 오싹하도록 무서움을 느꼈다. 반가워야 할 남편이지만! 왜 이렇게 무서운지 몰랐다.

"바위 앓지 않았나?"

"네."

"자네두 잘 있구?"

이렇게 귓속말을 하며 어느새 잠든 바위를 가로세로 어루만진다.

" 저 낮에 순사가 왔두구먼요."

바위 어머니는 나오는 줄 모르게 이런 말을 툭하고도 그만 무안하였다.

"음, 몇이?"

천연스레 묻는 장사는 속으로는 비상히 낭패하였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 안에 자신은 그나마 이렇게도 아내와 아들을 만나보지 못할 것을 절실히 느꼈다.

바위 어머니는 지금 남편의 속이 어떨 것을 생각함에 내가 왜 이런 말을 해서 잠시나마 그의 마음을 놓지 못하게 하나 하는 생각에 자기의 혀가 베어내고 싶게 미웠다.

한참이나 묵묵히 앉았던 장사는,

"형님 좀 모셔 오게."

바위 어머니는 얼른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장사는 잠든 바위 볼 위에다 볼을 맞대고 언제까지나 뗄 줄 몰랐다.

한참후에 아내와 김서방은 들어왔다.

"형님, 인사드립니다."

어둠 속으로 인사를 받던 김서방은,

"그새 몸이나 튼튼했는가?"

"오래간만이니 형님, 저 술막으로 나가십니다."

김서방이 술을 좋아하는 줄 아는 까닭이다. 김서방은 그만 싫어지며,

"아 뭘, 그냥 이렇게 보는 것이 반갑지."

"아니어요."

장사는 벌떡 일어나 김서방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는 하는 쑤 없이 장사를 따라섰다.

술막집까지 온 그는 우선 술과 맛있는 안주를 청해 놓고 김서방과 마주 앉았다. 몇 달지간에 처음이었다. 그래서 반갑기는 무던히 하면서도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랐다. 따라서 어떤 보이지 않는 큰 철판으로 그와 자기 사이를 가로막은 듯한 그렇게 가슴을 털어놓고 이야기 할 수 없었다.

김서방은 웬일인지 가슴이 초조해지며 어떤 불안이 자꾸만 박두해 오는 것을 느꼈다.

술상이 들어온다. 장사는 잔이 철철 넘게 술을 부어 김서방을 주며,

"형님! 받으슈."

"어."

대답만은 전과 같으나 전과 같이 마음놓고 술을 받지 않는 그 기색이 장사에게 있어서는 더 말할 수 없이 슬펐다. 더구나 아까 순사가 왔다갔다는 그 생각이 불시에 그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하였다.

장사는 자기 혼자 술병을 기울여 들이마시며,

"형님 우리 바위 불쌍하지요?"

자기가 이제 감옥으로 갈 생각을 하며 이런 말을 하였다.

"아 뭐."

김서방은 어리삥삥하게 이런 말을 하였다. 무엇보다도 장사의 행동이 아무래도 수상스레만 그의 눈에 비쳐진다. 그리고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할 터인데, 그리고 내가 취하지를 않아야겠는데, 이런 생각으로 주는 술잔을 무릎 위에다 절반 넘어 흘렸다.

"형님, 이 술 한 잔만 받아주슈!"

장사는 김서방의 이 모양이 너무나 가슴 아프게 억울하여 그만 소리쳐 울고 싶었다.

"어 저, 그런데 난 어서 가야겠는데 주인에게 매인 목숨이라 이렇게 오래 있으면 뭐라고 할는지 아나."

"네, 그렇습지요."

김서방은 말 내친 김에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장사는 뒤를 따랐다. 김서방은 자기 뒤를 따라서는 장사의 모양이 장사의 모양이 한층 더 무서웠다. 그리하여 이마에 땀이 버쩍버쩍 흘렀다.

비는 부슬부슬 내려온다. 김서방은 자기 집까지 왔을 때 비로소 어떤 마굴에서 벗어나온 듯한 느낌으로 벼락치듯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형님! 형님!"

장사는 김서방의 '어'하는 그 음성이나마 다시 한번 더 들어볼 양으로 문살 위에다 입을 대고 이렇게 간곡히 불러보았다. 인제 헤어지면 영원히 못 만나볼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한 채 그는 돌아섰다.

그는 터벅터벅 자기 집까지 와서 문을 잡아당겼다. 문은 걸렸다.

예민해진 그의 전 신경은 그만 칼끝 같았다. 그는 한참이나 우두커니 섰다가 댓돌 아래로 내려섰다.

빗방울은 아까보다 커진다. 그때에 자신에게는 아내도 없으며 자식도 없다, 따라서 벗도 없는 것을 머리털 끝까지 느꼈다. 다음 순간 그의 앞에 뚜렷이 나타난 것은 그 느긋느긋한 선주의 얼굴! 이것이 자기로 하여금 이렇게 고단하고도 외로운 몸을 만들어 주었거니 하는 생각을 하니 이때까지 누르고 눌렀던 분까지 왈칵 치밀었다. 그는 맹호같이 날뛰었다. 그리하여 그는 미친 듯이 선주의 집을 향하여 달음질쳤다.

여기까지 생각한 바위는 정신이 번쩍 들어 사면을 휘휘 돌아보았다. 이슬에 젖은 창고는 달빛에 한층 더 빛나고 전중의 흥겨워 웃는 웃음소리는 아직도 그치지 않았다.

마침 발 밑에서는 벌레소리가 씩씩하고 들린다. 어디선가 갈잎 구르는 소리가 바삭바삭하였다. 아버지의 이러한 반항은 무슨 결과를 지었나. 무가치하게 희생당한 것 뿐이다. 그 위에 자손인 자신에게까지 도적놈의 아들! 살인자의 아들! 이것만을 남겨 주었을 뿐이다.

그는 이러한 생각을 하며 벌떡 일어섰다. 그리하여 두 손으로 허리를 꽉 집고 머리를 숙였을 때 아까 창고쇠를 비틀던 그 찰나가 생각키우며 따라서 자신이 이만큼 구원받게 된 것이 전연히 ××회 때문임을 가슴이 뜨거워지도록 깨달았다.

그 때에 홍철이가 일상하던 말이 생각키운다. '우리는 무슨 일이나 신중히 합시다. 개인적 감정에 흐르지 말고……' 그러고는 몇 번이나 바위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그럴 때마다 손을 통하여 건너오는 따끈한 체온! 그는 이 순간에야 그 체온의 참맛을 맛보는 듯하였다.

바위는 천천히 발길을 옮기며 내 몸은 나 개인의 몸이 아니다. ××회에 바친 몸이다. 그러면 그 지령에 의하여 움직일 내가 아니냐!……

멀리 들려오는 바다물결 소리는 그의 걸음발을 따라 차츰 높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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