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권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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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黃帝)[편집]

황제(黃帝)[1]는 소전(少典)의 자손으로 성을 공손(公孫), 이름은 헌원(軒轅)이라 불렀다. 태어나면서부터 신령스러웠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말을 했다. 어려서는 영리하였고, 성장하면서는 성실하고 민첩했으며, 장성해서는 총명했다.

헌원 때는 신농씨(神農氏)[2]가 쇠약해져 제후들이 서로 침벌하고 백성들에게 포학하게 굴었으나 신농씨는 정벌할 수 없었다. 이에 헌원은 창과 방패의 사용법을 익혀서 조공하지 않는 제후들을 정벌하니 모두 신하로 복종했다. 그러나 포악한 치우(蚩尤)[3]는 토벌할 수가 없었다. 염제(炎帝)가 제후들을 치려고 하자 제후들이 모두 헌원에게 귀의했다. 헌원은 덕을 닦고 군대를 정비하였다. 오행(五行)의 기운을 다스리고 다섯 가지 (곡식)을 심어 만민(萬民)을 어루만지고, 사방(四方)을 헤아렸다. 곰·큰 곰·비휴(貔貅)·이리·범을 길들여 판천(阪泉) 들에서 염제와 세 번 싸운 끝에 뜻을 이루었다.

치우가 황제의 명을 따르지 않고 난을 일으키자 황제는 제후들의 군사를 징발해 탁록(涿鹿)의 들에서 치우와 싸워 마침내 치우를 잡아 죽였다. 제후들이 모두 헌원을 천자로 받들어 신농씨를 대신하게 하니 이가 황제이다. 천하에 불순(不順)하는 자가 있으면 황제가 좇아가 이를 정벌하고, 평정하고는 떠났다. 산을 열어 길을 내느라 편하게 지내지 못했다.

동쪽으로 가서 바닷()에 이르러 환산(丸山)[4]과 대종(岱宗)[5]에 올랐다. 서쪽으로 가서 공동(空桐)[6]에 이르러 계두산(鷄頭山)에 올랐다. 남쪽으로 가서 ()강(()江)에 이르러 웅산(熊山)과 상산(湘山)에 올랐다. 북쪽으로 가서 훈육(葷粥)[7]을 내쫓았다. 부산(釜山)에서는 (제후들을 소집시켜) 부절(符節)을 확인했다. 그리고 탁록의 언덕에 도읍을 정했지만 옮기고 오가는 데 정해진 곳이 없었고, 병영을 짓기 위해 군대를 부리고 지켰다. 관직 이름에는 모두 구름 ‘운(雲)’자를 넣어 지었고 (군대도) ‘운사(雲師)’라 했다. 좌우 대감(大監)을 두어 만국을 감독했다. 만국이 화평해졌으나 귀신과 산천, 하늘과 땅에 제사드리는 일이 많아졌다. 보정(寶鼎)과 시간을 계산하는 신책(神策)을 얻었다. 풍후(風后), 역목(力牧), 상선(常先), 대홍(大鴻)을 추천하여 인민을 다스렸다. 하늘과 땅의 법칙을 따르고 음양을 예측했다. 삶과 죽음, 존망의 이치를 살폈다. 때에 맞게 갖은 곡식과 풀과 나무를 심고, 금수와 곤충을 길들였다. 해와 달, 별과 물, 흙과 돌, 금속과 옥을 두루 살폈다. 몸과 마음을 다 하고, 잘 듣고 보았으며, 물과 불 그리고 재물을 아꼈다. 토덕(土德)의 상서로운 징조가 있었기 때문에 황제라 불렀다.

황제에게는 25명의 자식이 있었고, 그 중 성을 얻은 자는 14명이었다.

황제는 헌원 언덕에 살면서 서릉족(西陵族)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니 이가 누조(嫘祖)이다. 누조는 황제의 정비로서 아들 둘을 낳았는데, 그 후손 모두가 천하를 얻었다. 하나가 현효(玄囂), 즉 청양(靑陽)이다. 청양은 강수(江水)에 내려가 살았다. 둘째는 창의(昌意)로서 약수(若水)에 내려가 살았다. 창의는 창복(昌僕)이라는 촉산씨(蜀山氏)의 딸을 아내로 얻어 고양(高陽)을 낳았다. 고양에게는 성스러운 덕이 있었다. 황제가 세상을 뜨자 교산(橋山)에 장사를 지냈다. 그 손자, 즉 창의의 아들 고양을 세우니 이가 제전욱(帝顓頊)이다.

제전욱(帝顓頊)[편집]

제전욱은 황제의 손자이자 창의의 아들로 차분하고 지략이 있어 사리에 밝았다. 땅을 잘 골라 작물을 기르고, 하늘의 운행에 맞추어 계절을 정했다. 조종과 신령의 뜻에 따라 규범을 정했고, 음양오행의 원칙을 정하여 교화했다. 정결하게 정성을 다해 제사를 드렸다. 북쪽으로는 유릉(幽陵), 남쪽으로는 교지(交趾), 서쪽으로는 유사(流沙), 동쪽으로는 반목(蟠木)에 이르렀다. 동물과 식물, 크고 작은 산천의 신들 그리고 해와 달이 비치는 모든 곳이면 모두 복속시키지 않은 곳이 없었다. 제전욱은 궁선(窮蟬)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전욱이 세상을 뜨자 현효의 손자인 고신(高辛)이 들어섰다. 이가 제곡(帝嚳)이다.

제곡(帝嚳)[편집]

제곡 고신은 황제의 증손이다. 고신의 부친은 교극(蟜極)이며, 교극의 부친은 현효이고, 현효의 부친이 황제이다. 현효로부터 교극까지 모두 자리에 오르지 못하다가 고신에 이르러서야 제위에 올랐다. 고신은 전욱에게 집안의 자손이다.

고신은 나면서부터 신령스러워서 스스로 그 이름을 말했다. 널리 베풀어 사물을 이롭게 했지만 자신의 몸은 챙기지 않았다. 총명해 먼 일을 알고, 현명해 미세한 것도 살폈다. 하늘의 뜻에 따르고 인민에게 급한 것이 무엇인 줄 알았다. 어질되 위엄이 있고, 은혜롭고 믿음이 있었다. 몸을 수양하니 천하가 복종했다. 땅에서 재물을 취하되 아껴서 썼으며, 만민을 어루만지고 교화하되 이익으로 이끌었다. 해와 달의 운행을 헤아려서 맞이하고 보냈으며, 귀신을 잘 알아 공경하는 마음으로 섬겼다. 안색은 따뜻하고 덕은 높았으며, 움직임은 적절하고 옷은 평범했다. 제곡은 물을 대듯 치우침 없이 천하에 두루 미치니 해와 달이 비추는 곳, 바람과 비가 이르는 곳이면 복종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제곡은 진봉씨(陳鋒氏)의 딸을 아내로 맞아 방훈(放勛)을 낳고, 추자씨(娵訾氏)의 딸을 취해 지(摯)를 낳았다. 제곡이 세상을 떠나자 지가 뒤를 이었다. 제지가 뒤를 이었으나 잘 다스리지 못하자 동생 방훈을 세우니 이가 제요이다.

제요(帝堯)[편집]

제요[8]는 방훈[9]이다. 어질기가 하늘과 같고, 지혜롭기가 신 같았다. 해를 향해 가듯 구름을 올려다보듯 다가갔다. 넉넉했으나 교만하지 않고, 귀했으나 우쭐대지 않았다. 누런 모자를 쓰고 검은 옷을 입었다. 하얀 말이 끄는 붉은 마차를 탔다. 덕을 밝히니 구족이 친했다. 구족이 화목하니 백관의 자리를 안배했고, 백관이 정치를 잘 하니 만국이 화합했다.

희씨(羲氏)와 화씨(和氏)에게 하늘을 공경스럽게 따르고 일월성신의 운행법칙을 헤아려서 인민에게 삼가 때를 맞추도록 명령했다. 희중(羲仲)에게는 양곡(暘谷)이라고 불리는 욱이(郁夷)에 머물러 있으면서 떠오르는 해를 공손히 맞이하고 때맞추어 농사를 짓게 하라고 명령했다. 낮밤의 길이가 같은 날 조성(鳥星)이란 별이 하늘에 나타나는 시각을 잡아서 춘분을 정하게 했다. 이때가 되면 인민은 들로 나가 농사를 지었고, 새나 짐승은 교미해 새끼를 낳았다. 희숙(羲叔)에게는 남교(南交)에 살면서 때맞추어 여름 농사를 받들게 하라고 명령했다. 낮이 가장 긴 날 화성(火星)이 정남쪽 하늘에 나타나는 시각을 잡아서 하지를 정하게 했다. 이때가 되면 인민들은 여전히 농사에 바빴고, 새나 짐승들은 털갈이를 하느라 털이 성글었다.

화중(和仲)에게는 매곡(昧谷)이라는 서토(西土)에 살면서 지는 해를 공손히 보내고 가을 농사를 때맞추어 잘 하게 하라고 명령했다.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날, 허성(虛星)이 정남쪽 하늘에 나타나는 시각을 잡아서 추분을 정하게 했다. 이때가 되면 인민들은 편하고 느긋했고, 새나 짐승들은 새 털이 났다. 화숙(和叔)에게는 유도(幽都)라는 북방(北方)에 살면서 겨울 곡식을 잘 저장하게 하라고 명령했다.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날 묘성(昴星)이 정남쪽 하늘에 나타나는 시각을 잡아서 동지를 정하게 했다. 이때가 되면 인민은 따뜻하게 지냈고 짐승들에게도 따스한 털이 났다. 1년을 366일로 정하고, 3년에 한 번씩 윤달을 두어 사계절을 바로 잡았다. 백관들의 성과를 심사하니 모두의 업적이 올라갔다.

요가 “누가 이 일을 이어 받을 수 있을까”라고 묻자, 방제(放齊)가 “후계자이신 아드님 단주(丹朱)께서 사리에 밝고 명석하십니다”라고 대답했다. 요는 “아, 덕이 없고 다투길 잘해 쓸 수가 없네”라고 했다. 요가 “누가 괜찮겠는가”라고 또 물었다. 환두(讙兜)가 “공공(共工)이 사람들을 널리 모아서 많은 업적을 세우고 있으니 그가 쓸 만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요는 “공공은 말은 잘하지만 사람을 치우쳐 등용하고, 겉으로는 공손한 것 같지만 하늘마저 업신여기니 안 되오”라 했다. 요가 또 “아, 사악(四嶽)이여! 홍수가 하늘까지 넘쳐서 물줄기가 산을 감싸고 언덕까지 덮치니 인민들의 걱정이 태산인데, 이 홍수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없겠소”라고 물었다. 모두들 곤(鯀)이 할 수 있다고 했다. 요는 “곤은 명을 어기고 동족을 훼손시켰으니 안 되오”라 했다. 사악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험해보시고 안 되면 그만두셔도 됩니다”라고 했다. 요는 그리하여 사악의 말을 듣고 곤을 기용했다. 9년이 지나도록 공을 이루지 못다.

요가 “오, 사악이여. 짐이 자리를 지킨 지 70년, 그대들도 일을 할 수 있으니 짐의 자리를 맡으시오”라 했다. 사악은 “비천한 덕으로 제왕의 자리를 욕되게 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요가 사악에게 “귀한 친척이 되었건 관계가 멀지만 숨어 있는 사람이 되었건 모두 천거해 보시오”라고 했다. 모두 한 입으로 요에게 “민간에 우순(虞舜)이라는 홀아비가 있답니다”라고 말했다. 요는 “그렇소. 짐도 들었는데 어떻소”라고 물었다. 사악은 “장님의 아들인데 아비는 나쁘고, 어미는 남을 잘 헐뜯고, 동생은 교만합니다. 하지만 효성을 다해 화목하게 지내고, 점점 나아지게 하여 간악하지 않게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요는 “내가 그를 시험해보리다”라고 말했다.

이리하여 요는 두 딸을 아내로 삼게 하여 두 딸에 대한 그의 덕을 관찰했다. 순은 요의 두 딸의 신분을 낮춘 다음 규예(嬀汭) 근처로 맞이하여 부부의 예절대로 했다. 요가 이를 좋게 보아 곧 순에게 오전(五典)[10])을 신중하게 이끌게 하니 오전이 널리 퍼졌다. 다시 순에게 백관의 일을 총괄하게 하자 백관의 일들이 질서 있게 행해졌다. 사방의 문에서 외부 손님을 접대하게 했더니 사방의 문 주변이 화목해져 제후와 먼 곳의 손님들이 모두 공경했다. 요는 순에게 산림과 하천 그리고 연못의 일을 맡겼다. (순은) 폭풍과 천둥․번개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았다. 요는 그를 성인으로 여겨 순을 불러다 “네가 일을 꾀하면 일이 이루어지고, 말을 하면 공적이 쌓인 지 3년이 되었다. 네가 제위에 오르도록 하라”라고 했다. 순은 덕이 따르지 못한다며 사양했다. 정월 초하루 순이 문조(文祖)에서 마침내 자리를 이어받았다. 문조는 요의 시조이다.

이 무렵 요가 나이가 많아 순에게 천자의 정치를 대신 맡게 하고는 천명을 살폈다. 이에 순은 선기(璇璣)와 옥형(玉衡)[11]으로 칠정(七政, 해와 달과 5성)을 측정하여 자리를 확정했다. 이어 상제께 유(類) 제사를, 육종(六宗)에는 인(禋) 제사를, 산천에는 망(望) 제사를 드렸으며, 여러 신들에게도 두루 제사를 올렸다. 오서(五瑞) [12]를 거두었다가 좋은 달, 좋은 날을 택해서 사악과 제후들을 접견한 다음 등급에 맞추어 나누어 주었다. 그해 2월에는 동쪽을 시찰했다.

태산에서는 장작을 태워서 하늘에 제사 지내고, 다른 산천에도 순서대로 망 제사를 두루 올렸다. 이때 동방의 군장들을 접견했다. 계절과 한 달의 날짜를 바로잡았고 하루의 시각을 바르게 정했고, 음률과 도량형을 통일했으며 오례(五禮)를 제정했다. (황제를 알현할 때 올리는 진상품으로) 제후(諸侯)는 다섯 가지 옥과 세 가지 빛깔이 나는 수직품인 삼백(三帛)으로, 경대부(卿大夫)는 살아 있는 양 또는 기러기로, 그리고 사(士)는 죽은 꿩 한 마리로 정했는데, 다섯 가지 옥은 의례를 마치면 돌려주었다. 5월에는 남쪽을 시찰했고, 8월에는 서쪽을, 11월에는 북쪽을 순수(巡狩)했는데, 모두 처음과 같았다. 돌아와 요의 조부와 부친의 사당에 황소를 제물로 삼아 예를 올렸다.

5년에 한 번씩 순수했고, 4년 동안은 제후들에게 조회를 오게 했다. 두루 천하를 다스리는 이치를 고하고, 실적을 통해 공을 분명히 하여 수레와 의복을 내렸다. 12주를 처음 나누었고, 물길을 잘 통하게 했다. 형법을 기물 위에 새겼고, 오형(五刑)에 해당하는 죄를 지은 사람은 유배형으로 죄를 낮추어 처리했다. 관에서는 채찍질로 형을 집행했고, 학교에서는 회초리로 벌을 주었다. 돈으로 속죄할 수 있게 했고 재난이나 과실에 의한 죄는 용서했다. 고의적이고 간악한 죄만 형벌을 가하게 했다. “신중하라, 신중하라! 형벌은 오직 신중해야 한다.”

환두가 공공을 말했지만 요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를 공사(工師)로 기용했다. 공공은 과연 교만하고 사악했다. 사악이 곤을 추천해 홍수를 다스리자고 했을 때 요는 안 된다고 했다. 사악이 한사코 시험해 보길 청하여 시험해 보았으나 공이 없었고 백관이 불편했다. 삼묘(三苗)가 강회(江淮)와 형주(荊州)에서 여러 차례 난을 일으켰다. 이에 순은 순수를 마치고 돌아와 요에게 공공을 유릉(幽陵)으로 유배보냄으로써 북적(北狄)을 교화시키고, 환두를 숭산(崇山)으로 내침으로써 남만(南蠻)을 교화시키고, 삼묘를 삼위산(三危山)으로 쫓아냄으로써 서융(西戎)을 교화시키고, 곤을 멀리 우산(羽山)에서 죽임으로써 추방해 동이(東夷)를 교화시키자고 했다. 이 넷에게 죄를 물으니 천하가 모두 복종했다.

요가 자리에 오른 지 70년 만에 순을 얻었고, 20년이 지나 나이가 들어 순에게 천자의 정치를 대행하라고 명하고 하늘에 그를 추천했다. 요가 자리를 물려준 지 28년 만에 세상을 떴다. 백성들은 부모를 잃은 것처럼 슬퍼했다. 3년 동안 사방 누구도 음악을 연주하지 않음으로써 요를 생각했다. 요는 아들 단주가 불초해서 천하를 물려받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에 권력을 순에게 주기로 했다. 순에게 주면 천하가 그 득을 보고 단주는 손해를 보겠지만, 단주에게 주면 천하가 손해를 보고 단주만 이익을 본다. 요는 “한 사람의 이익을 위해 천하가 손해 볼 수는 없다, 결코”라 하고는 마침내 천하를 순에게 주었다. 요가 세상을 뜨고 3년 상을 마치자, 순은 단주에게 천하를 양보하고 자신은 남하(南河)의 남쪽으로 피했다. 제후들은 단주가 아닌 순에게 조회를 드리러 왔으며, 소송이 있는 사람도 단주가 아닌 순에게로 왔다. 칭송의 노래를 하는 자도 단주가 아니라 순을 노래했다. 순은 “하늘의 뜻이다”며 주국으로 돌아가 천자 자리에 올랐다. 이가 제순이다.

제순(帝舜)[편집]

우순(虞舜)은 이름을 중화(重華)라 했다. 중화의 아버지는 고수(瞽叟)라 했고, 고수의 아버지는 교우(橋牛)라 했다. 교우의 아버지는 구망(句望)이라 했고, 구망의 이버지는 경강(敬康)이라 했다. 경강의 아버지는 궁선(窮蟬)이라 했고, 궁선의 아버지는 전욱(顓頊)이라 했다. 전욱의 아버지를 창의(昌意)라 했는데, 순에 이르기까지 7세가 흘렀다. 궁선으로부터 순에 이르기까지 모두 미미한 서민이었다.

순의 아버지 고수는 맹인이었다. 순의 어머니가 죽자 고수는 다시 아내를 취해 상(象)을 낳았다. 상은 오만했다. 고수는 후처가 낳은 아들을 사랑하여 늘 순을 죽이려고 해서 순은 피해서 도망 다녔다. 사소한 잘못이라도 있으면 바로 벌을 받았다. 아버지와 계모를 잘 모셨고, 동생과도 잘 지내길 매일 독실하고 삼가면서 흐트러지지 않았다.

순은 기주(冀州) 사람이다. 순은 역산(歷山)에서 농사를 짓고, 뇌택(雷澤)에서 물고기를 잡고, 황하 가에서 그릇을 만들었다. 수구(壽丘)에서 집기를 만들었고, 때 맞추어 부하(負夏)에 가서 장사를 했다. 순의 아비는 나쁘고, 어미는 남을 잘 헐뜯고, 동생은 교만했다. 모두가 순을 죽이려 했다. 순은 자식의 도리를 잃지 않고 늘 공손했다. 형제간에도 자애로워서 죽이고 싶어도 죽일 수 없었다. 찾으면 언제나 옆에 있었다.

순은 스무 살에 효성으로 소문이 났고, 서른에 요가 기용할 만하냐고 물었다. 사악이 모두 우순을 천거하며 된다고 했다. 이에 요는 바로 두 딸을 순의 아내로 삼게 하여 집안에서의 언행을 관찰했고, 아들 아홉을 함께 거처하게 하여 집밖에서의 언행을 관찰했다. 순은 규예에 살면서 안으로는 행동을 삼갔다. 요의 두 딸은 귀하신 몸이라 해서 감히 교만하지 않으면서 순의 친척들을 섬겼는데 부인의 도리를 다했다. 요의 아홉 아들도 모두 더 독실해졌다. 순이 역산에서 농사를 지을 때 역산의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밭고랑을 양보했다. 뇌택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는 뇌택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양보했다. 황하 가에서 그릇을 구울 때는 그곳 그릇들은 모두 흠이 없었다. 1년을 살자 취락이 형성되었고, 2년을 살자 읍이 형성되었고, 3년을 살자 도읍이 형성되었다. 요가 곧 순으로 옷과 거문고를 내리고 창고를 지었으며 소와 양을 주었다. 고수는 여전히 다시 순을 죽이려고 순을 시켜 창고에 올라가 벽을 칠하게 하고는 아래서 불을 질러 창고를 태웠다. 순은 삿갓 두 개를 양산처럼 세워 아래로 뛰어내려 도망쳐 죽음을 면했다.

그 뒤 고수는 또 순에게 우물을 파게 했다. 순은 우물을 파면서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구멍을 함께 팠다. 순이 깊이 들어 가자 고수와 상이 함께 아래로 흙을 부어 우물을 메웠다. 순은 몰래 파놓은 구멍을 통해 나와서 도망갔다. 고수와 상은 순이 죽었을 것이라며 기뻐했다. 상이 “이 꾀를 낸 사람은 상입니다”라 하고는 그 부모와 (순의 재산을) 나누려면서 “순의 아내인 요의 두 딸과 거문고는 내가 갖고 소와 양, 창고는 아버지 어머니에게 드립니다”라고 했다. 상이 순의 궁에 가서 거처하면서 거문고를 뜯었다. 순이 가서 그를 보자 상은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내가 순을 생각하며 울적해하고 있었소”라고 했다. 순은 “그랬구나, 네가 그렇게까지 하다니”라고 했다. 순은 다시 고수를 섬기고 동생을 더욱 더 아꼈다. 이에 요는 순에게 오전과 백관을 맡겨 시험하니 다 잘 다스렸다.

옛날 고양씨(高陽氏)에게 재능있는 여덟 명이 있었다. 세상이 그들로부터 이익을 보았는데, 그들을 팔개(八愷)라 불렀다. 고신씨(高辛氏)에게도 여덟 명의 뛰어난 인물이 있었는데 세상에서는 그들을 팔원(八元)이라 불렀다. 이들 16명의 친족들은 대대로 미덕을 이루며 그 명성을 손상시키지 않았다. 요에 이르러 요는 그들을 기용하지 않았다. 숨은 팔개를 기용해 후토(后土)를 주관하게 하고 모든 일을 살피게 하니 시기와 순서에 어긋남이 없었다. 팔원을 기용하여 사방에 오교를 베풀게 하니 아비는 의롭고, 어미는 자애롭고, 형은 우애롭고, 동생은 공손하고, 아들은 효성스러워져 내외 모두 태평스러웠다.

과거 제홍씨(帝鴻氏)에게 재능이 안 되는 자가 있었다. 의리를 버리고 도적을 숨기며 일쑤 흉악한 일을 저질렀다. 천하는 이를 혼돈(渾沌)이라 불렀다. 소호씨(少皥氏)에게도 재능이 안 되는 자가 있었다. 믿음을 훼손하고 충직함을 미워하며, 나쁜 말을 잘 꾸며댔다. 천하는 이를 궁기(窮奇)라 불렀다. 전욱씨에게도 이런 자가 있었다. 가르침으로 안 되었고 말도 듣지 않았다. 천하는 이 자를 도올(檮杌)이라 불렀다. 이 세 부족을 세상이 걱정했고 요에 와서도 제거하지 못했다. 진운씨(縉雲氏)에게도 이런 자가 있었다. 음식과 재물을 탐하는 자였다. 천하는 이를 도철(饕餮)이라 불렀다. 천하가 그를 미워해 세 흉악한 자들에 비교했다. 순이 사방의 문에서 손님을 맞이하면서 네 흉악한 사흉(四凶)을 저 멀리 사예(四裔)의 땅으로 내쫓음으로써 이 괴물 같은 자들을 막았다. 이에 사방의 문이 열리고 사흉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순이 대록(大麓)에 들어갔을 때 사나운 바람과 비 그리고 천둥 번개가 쳤지만 길을 잃지 않았다. 이에 요는 순이 천하를 받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알았다. 요가 늙자 순에게 천하의 정치를 대신하게 하니 천하를 순수하고 다녔다. 순이 기용되어 일을 맡길 20년, 요가 섭정을 시켰고, 섭정 8년 만에 요가 세상을 떠났다. 3년 상을 마치자 단주에게 양보했으나 천하는 순에게 돌아왔다. 우(禹), 고요(皐陶), 설(契), 후직(后稷), 백이(伯夷), 기(夔), 용(龍), 수(垂), 익(益), 팽조(彭祖)는 요 때부터 모두 기용되긴 했으나 자리와 일을 분담받지 못했다. 이에 순은 문조 사당에서 사악과 논의하고 사방의 문을 열어 사방으로 눈과 귀가 밝게 열리게 했다. 12주 장관들에게는 제왕의 덕을 논하게 하고, 후하게 덕을 베풀고 아첨하는 자를 멀리 하니 오랑캐들까지 모두 복종했다. 순은 사악에게 “힘써 공을 쌓아 요의 사업을 빛내게 자리를 맡길 만한 사람이 있소”라고 묻자 모두들 “백우(伯禹)를 사공(司空)으로 삼으면 요제의 공을 빛낼 수 있을 것입니다”라 했다.

순은 “오, 그렇군요! 우, 그대가 오로지 열심히 물과 땅을 다스리도록 하시오”라고 말했다. 우는 머리를 조아리며 후직과 설, 그리고 고요에게 양보했다. 순은 “되었소! 가시오”라 했다. 후직에게는 “기, 인민이 지금 굶주리고 있으니, 그대는 후직 자리를 맡아서 때 맞추어 온갖 곡식을 심도록 하시오”라 했다. 순은 “설, 백관과 오품(五品, 부․모․형․제․자)이 화목하지 못하니, 그대가 사도(司徒)를 맡아 오교(五敎)를 공경스럽게 베풀되 너그럽게 하시오”라 했다. 순은 “고요, 오랑캐들이 우리를 침략하고 도적들이 나쁜 짓을 저지르니 그대는 사(士)를 맡아 다섯 가지 형벌로 굴복시키시오. 오형을 유배형으로 바꿀 때는 거리를 규정하고 벌에 따라 세 군데로 보내시오. 법의 집행은 밝아야 다들 믿고 따르는 것이오”라고 말했다. 순이 “누가 백공(百工)을 이끌 수 있겠소”라고 묻자 모두들 “수가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수를 공공에 임명했다. 순이 “산과 강의 초목과 금수들은 누가 다스릴 수 있겠소”라고 묻자 모두들 익이 할 수 있다고 대답했기에 이에 익을 우(虞)로 삼았다. 익이 머리를 조아리며 주호(朱虎), 웅비에게 양보했다. 순은 “그럴 수도 있지만 그대가 적합하오”라 하고는 주호와 웅비로 하여금 익을 돕게 했다. 순이 “오, 사악이여! 누가 나의 삼례(三禮)를 관장할 수 있겠소”라고 물으니 모두들 백이면 가능하다고 했다. 순은 “오, 백이여! 그대를 질종(秩宗)으로 삼으니 낮밤없이 공손하고 정직하고 정숙하고 청결하게 처리하오”라고 했다. 백이 또한 기와 용에게 양보하려고 했다. 순은 “좋소! 기를 전악(典樂)으로 삼아 귀족의 자제들을 가르치게 하시오. 강직하되 부드럽고, 너그럽되 엄격하고, 강건하되 포악해서는 안 될 것이며, 간소하되 오만해서는 안 될 것이오. 시는 마음에 있는 생각을 말한 것이요, 노래는 그 말을 길게 읊조리는 것이며, 음악의 소리는 가사를 길게 늘여 생기는 것이요, 음률은 그 소리를 조화롭게 하는 것이오. 팔음(八音)이 잘 어울려서 서로 어지러이 흐트러지지 않아야만, 신이나 사람이 기쁘게 어울릴 수 있을 것이오”라고 말했다.

기는 “오! 제가 돌로 만든 각종 악기를 쳐서 모든 짐승들이 따라서 춤을 추도록 하겠습니다”라 했다. 순이 “용! 나는 선량한 사람을 해치는 말과 하늘의 이치를 파괴하는 언행으로 짐의 백성을 놀라게 하는 것은 싫소. 내 그대를 납언(納言)에 임명하니, 밤낮으로 나의 명령을 전하고 백성의 의견을 수집하며, 오로지 신의를 얻도록 해주시오”라 했다. 순은 “아, 그대들 22인은 경건하시오. 오로지 때를 잘 맞추어 하늘의 일을 돕도록 하오.”라고 했다. 3년에 한 번 공적을 심사했고, 세 번 심사한 다음 올리거나 내리거나를 결정했다. 멀고 가까움을 막론하고 모두의 공적이 다 올랐다. 북쪽의 삼묘는 나누었다.

이 22인은 모두가 공을 이루었다. 고요는 대리(大理)가 되어 공평하니 인민이 모두 복종하고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백이가 예를 주관하자 위아래 모두가 양보했다. 수가 공사를 주관하자 백공이 공을 세웠다. 익이 산림과 연못을 주관하자 산과 못이 개발되었다. 기가 농사를 주관하자 백곡이 때 맞추어 잘 자랐다. 설이 사도를 맡자 백성이 화친했다. 용이 외부 손님의 일을 맡자 멀리 있는 사람들이 왔다. 12주 장관들도 함께 행하니 9주가 감히 도망가거나 어기지 못했다. 특히 우의 공이 컸다. 아홉 개의 산을 개간하고, 아홉 개의 호수를 통하게 했다. 아홉 개 강의 물길을 통하게 했고, 9주를 확정했다. 각기 직분에 따라 정도를 잃지 않고 조공했다. 땅은 사방 5,000리로 황복(荒服)까지 이르렀다. 남쪽으로는 교지(交阯), 북발(北發)을, 서쪽으로는 융(戎), 석지(析枝), 거수(渠庾), 저(氐), 강(羌)을, 북쪽으로는 산융(山戎), 발(發), 식신(息愼)을, 동쪽으로는 장(長), 조이(鳥夷)를 다독거리니 사해 안이 모두 순의 공업을 받들었다. 이에 우는 ‘구초(九招)’라는 음악을 짓고 진기한 물건을 바치니 봉황이 날아와 빙빙 돌았다. 천하의 밝은 덕이 모두 우제(虞帝)로부터 시작되었다.

순이 스무 살에 효로 이름을 떨치고, 서른에 요에게 기용되었으며 쉰에 천자의 일을 대신했다. 쉰여덟에 요가 세상을 떠났고, 예순 하나에 요을 이어 제위에 올랐다. 제위를 밟은 지 39년, 남으로 순수를 나섰다가 창오의 들판에서 세상을 떠났다. 강남 구의산(九疑山)에 장사 지내니 바로 영릉(零陵)이다. 순이 제위에 올라 천자의 깃발을 꽂고 아버지 고수에게 인사를 드리니 공손함이 자식의 도리와 같았다. 동생 상을 제후로 삼았다. 순의 아들 상균(商均) 역시 불초하여 순은 앞서 하늘에 우를 천거한 뒤 17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3년 상을 마치자 우 또한 순이 요의 아들에게 양보했던 것처럼 순의 아들에게 양보했다. 제후들이 돌아선 뒤에야 우는 천자 자리에 올랐다. 요의 아들 단주와 순의 아들 상균은 모두 땅을 얻어서 조상의 제사를 받들었다. (이들은 천자의 아들이 입는) 그 옷을 입었고, 예악 또한 그와 같았다. 객으로 천자를 만났고, 천자는 (그들을) 신하로 대하지 않았으니, 감히 권력을 오로지 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

황제로부터 순, 우에 이르기까지 모두 같은 성에서 나왔지만 나라 이름을 달리 해 각자의 덕을 널리 밝혔다. 그러므로 황제는 유웅(有熊), 전욱은 고양(高陽), 제곡은 고신(高辛), 요는 도당(陶唐), 순은 유우(有虞), 우(禹)는 하후(夏后)라고 불렀는데 씨는 달랐지만 성은 모두 다 사씨(姒氏)였다. 설은 상(商)이라고 했는데 성은 자씨(子氏)라 했다. 기는 주(周)라 했는데 성은 희씨(姬氏)라 했다.

사마천의 논평[편집]

태사공(太史公)은 말한다. “배운 자들이 오제(五帝)에 대해 많은 말을 했으나 오래되었다. 그러나 《상서》(尙書)에는 요 이후의 일만 기재되어 있고, 다른 여러 사람들의 황제에 대한 말은 그 문장이 우아하지도 적절치도 않아 학식있는 선생들은 말을 꺼린다. 공자(孔子)가 전한 <재여문오제덕(宰予問五帝德)>이나 <제계성(帝繫姓)>을 유생들이 전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내가 일찍이 서쪽으로 공동(空桐)에까지 이르고, 북쪽으로 탁록(涿鹿)을 지나왔으며, 동쪽으로 바다까지 가고, 남쪽으로는 장강(長江)과 회수(淮水)를 건넜다. 장로들이 일쑤 황제, 요, 순 임금을 칭송하는 곳을 가보면 그 풍속과 교화가 다른 곳에 비해 사뭇 달랐다. 전체적으로 고문의 내용과 멀지 않고 가까웠다. 내가 <춘추(春秋)>와 <국어(國語)>를 보았는데 여기에 <오제덕>과 <제계성>을 잘 밝혀 놓았다. 사람들이 그것을 깊이 살피지 않았을 뿐, 그 책들에 기술된 내용은 결코 허황되지 않았다. 《상서》에는 결손된 부분이 많은데, 그 흩어진 부분들이 왕왕 다른 설에 보인다. 배우기를 좋아하고 깊이 생각하여 마음으로 그 뜻을 알게 되는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견문이 얕고 좁은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내가 여러 학설을 차례로 논하여 그 중 상대적으로 나은 것을 골라 본기의 첫머리에 드러냈다.”

역주[편집]

  1. 황제 헌원씨(黃帝軒轅氏)는 중국의 신화에 등장하는 제왕(帝王)으로, 삼황(三皇)에 이어 중국을 다스린 오제(五帝)의 첫번째 왕이다.
  2. 신농(神農)은 중국 삼황의 하나로 흔히 '염제(炎帝) 신농'으로 불린다. 황제 헌원씨 이전에 한족에게 농사짓는 방법을 알려주었으며, 한의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3. 치우는 중국의 여러 기록과 전설에서 헌원과 함께 탁록의 전투에서 싸웠다고 전해지는 전쟁의 신 또는 옛 부족(구려)의 지도자로, 현재의 묘족의 조상신이다.
  4. 환산(丸山)은 범산(凡山), 단산(丹山)이라고도 한다. 청주(青州) 임구현(臨朐縣)과 옛 주허현(朱虛縣)과의 경계에서 서북쪽으로 20리에 있다. 단산(丹山)이라는 것은 단수(丹水)가 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사기정의(史記正義)》 참조.
  5. 대종(岱宗)은 태산(泰山) 또는 동악(東岳)이다. 연주(兗州) 박성현(博城縣) (현재의 타이안 시) 서북쪽으로 30리에 있다. 《사기정의(史記正義)》 참조.
  6. 산 이름이다. 농우(隴右)에 있다. 《사기집해(史記集解)》 참조.
  7. 중국 고대의 유목민족으로, 상대(商代)에 활동하였다. 흉노의 전신으로 본다.
  8. 제요(帝堯)는 중국의 신화 속 군주이다.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 신화 가운데 오제의 하나이다.
  9. 放勳의 글자 그대로의 뜻은 “큰 업적”을 말하나, 요임금의 이름이기도 하다. 사기에서는 맹자를 좇아, 이를 이름으로 보고 있다. ( 《서경》(書經), 전인초(全寅初) 번역(1976), 평범사(平凡社). 48쪽 “《맹자》에서는 방훈은 요임금의 이름이라고 하였다. 《사기(史記)》에서도 여기에 좇아 「제요(帝堯)는 방훈(放勳)이라 불렀다」고 해독하고 있다.” 《맹자주소》(孟子註疏) 〈권5〉 卷五下•滕文公章句上 條 “放勳,堯號也。” (방훈은 요 임금의 이름이다.))
  10. 오전(五典, 다섯 가지 가르침 오교五敎)
  11. 둘 다 천문 관측기구를 말한다.
  12. 공작․후작․백작․자작․남작이 쥐는 다섯 가지 신표로 흔히 홀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