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권097
역이기
[편집]역이기(酈食其)는 진류(陳留) 고양(高陽) 사람이다. 글 읽기를 좋아했으나 집안이 가난하고 몰락하여 생계를 위한 일도 없었고, 마을의 문지기나 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縣)의 현인이나 호걸들도 그를 감히 부리지 못했고, 현 사람들은 모두 그를 '미친 선비(狂生)'라고 불렀다.
진승(陳勝)과 항량(項梁) 등이 일어나자, 여러 장수들이 고양을 지나갔는데 수십 명이나 되었다. 역이기는 그 장수들이 모두 좁은 소견을 가졌고, 깐깐한 예법을 좋아하며 고집불통이어서 도량이 큰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깊이 숨어 지냈다.
훗날 패공(沛公, 유방)이 군사를 이끌고 진류 교외를 공략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마침 패공의 휘하 기병 중에 역이기가 사는 마을 사람이 있었다. 패공은 종종 그에게 마을의 현인이나 호걸에 대해 물었다. 기병이 마을로 돌아오자 역이기가 그를 만나 말했다.
"내가 듣기로는 패공이 오만하고 남을 깔보지만 도량이 크고 깊은 계략을 지니고 있다고 하니, 이분이 진실로 내가 따르기를 바라는 분이다. 나를 대신하여 먼저 그분에게 말해주게. 패공을 만나거든 '저의 마을에 역이기라는 사람이 있는데, 나이는 예순이 넘었고 키는 여덟 척(尺)이며, 사람들이 모두 '미친 선비'라 부르지만, 그 사람은 스스로 미친 선비가 아니라고 말합니다'라고 전해주게."
기병이 말했다. "패공께서는 유학자를 싫어하십니다. 유학자 복장을 하고 찾아오는 손님이 있으면, 패공께서는 곧바로 그 관(冠)을 벗겨 오줌을 싸는 등 모욕을 주십니다. 남과 이야기할 때도 늘 큰 소리로 욕을 합니다. 유학자로서는 설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역이기가 말했다. "그냥 말하기만 하게."
기병은 마지못해 역이기가 시킨 대로 말했다.
패공이 고양의 역참(傳舍)에 도착하여 사람을 시켜 역이기를 불렀다. 역이기가 도착하여 들어가 뵙는데, 마침 패공은 평상에 비스듬히 앉아 두 여자에게 발을 씻기게 하며 역이기를 만났다.
역이기가 들어와서는 길게 읍(揖)만 하고 절을 하지 않으며 말했다. "족하(足下)께서는 진(秦)나라를 도와 제후들을 공격하려 하십니까? 아니면 제후들을 이끌고 진나라를 깨뜨리려 하십니까?"
패공이 욕설을 퍼부었다. "이 얼간이 유학자 같으니! 온 천하가 진나라의 폭정에 신음한 지 오래되었으니, 제후들이 서로 이끌고 진나라를 공격하는 것인데, 어찌하여 진나라를 도와 제후들을 공격한다고 하는가?"
역이기가 말했다. "의로운 군사를 모아 무도한 진나라를 베려 한다면, 마땅히 오만하게 어른을 만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1]"
이에 패공이 발 씻기를 멈추고 일어나 옷깃을 여미며 역이기를 높은 자리로 모신 뒤 사과했다. 역이기는 육국이 합종연횡(合從連橫)하던 시기의 일을 이야기했다. 패공은 기뻐하며 역이기에게 음식을 주며 물었다.
"계책을 어떻게 내면 좋겠소?"
역이기가 말했다. "족하께서 오합지졸을 일으키고 흩어진 병사들을 모았지만, 그 수가 만 명도 되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곧장 강대한 진나라로 들어가려 하시는 것은 이른바 호랑이 아가리에 뛰어드는 격입니다. 진류(陳留)는 천하의 요충지이자 사방으로 길이 트인 곳이며, 성 안에는 군량이 많이 쌓여 있습니다. 제가 그 현령과 친분이 있으니, 제가 그를 설득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만약 그가 듣지 않으면 족하께서 군사를 일으켜 공격하십시오. 제가 안에서 호응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패공은 역이기를 먼저 보내고, 자신은 군사를 이끌고 뒤를 따랐다. 마침내 진류를 손에 넣고 역이기에게 광야군(廣野君)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역이기는 자신의 동생인 역상(酈商)에 대해 추천했고, 역상에게 수천 명의 군사를 주어 패공을 따라 서남쪽 땅을 공략하게 했다. 역이기는 늘 유세가(세객, 說客)가 되어 여러 제후들을 찾아다녔다.
한나라 3년 가을, 항우가 한나라를 공격하여 형양(滎陽)을 빼앗자, 한나라 군사는 도망쳐 공(鞏)과 낙(洛)에서 방어했다. 초나라 사람들은 회음후(淮陰侯, 한신)가 조(趙)나라를 격파하고 팽월(彭越)이 양(梁) 땅에서 자주 배반한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를 나누어 그들을 구원하러 갔다. 회음후가 동쪽으로 제(齊)나라를 공격하고 있을 때, 한왕은 형양과 성고(成皋)에서 여러 번 곤경에 처하여, 성고 동쪽을 포기하고 공과 낙에 주둔하여 초나라를 막으려 했다.
역이기가 이 기회에 나서 말했다. "제가 듣기로 하늘의 뜻을 아는 자는 왕업을 이룰 수 있고, 하늘의 뜻을 모르는 자는 왕업을 이룰 수 없다고 합니다. 왕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습니다. 무릇 오창(敖倉)은 천하의 군량을 오랫동안 수송하던 곳이라, 그 아래에 군량이 아주 많이 쌓여 있다고 들었습니다. 초나라 사람들이 형양을 빼앗았지만 오창을 굳게 지키지 않고 물러나 동쪽으로 갔으며, 정예 병사들을 나누어 성고를 지키게 했습니다. 이는 하늘이 한나라에게 준 기회입니다. 지금 초나라를 쉽게 취할 수 있는데도 한나라가 오히려 물러나 스스로 유리한 기회를 빼앗는 것은, 소신이 생각하기에 큰 잘못입니다.
또한 두 영웅은 함께 설 수 없고, 초나라와 한나라가 오랫동안 결판을 내지 못하니 백성들은 소란스럽고 천하가 동요하고 있습니다. 농부는 쟁기를 놓았고, 여공은 베틀에서 내려왔으니, 천하의 마음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원하옵건대 족하께서 급히 다시 진격하여 형양을 되찾으시고, 오창의 군량을 차지하시며, 성고의 험지를 막고, 태행(太行)으로 가는 길을 막으시고, 비호(蜚狐)의 입구를 막고, 백마진(白馬津)을 지켜 제후들에게 실제 형세를 보여주시면, 천하가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연(燕)과 조(趙)가 이미 평정되었고 오직 제(齊)나라만이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전광(田廣)은 천리나 되는 제나라를 차지했고, 전간(田間)은 20만 명의 무리를 이끌고 역성(歷城)에 주둔해 있습니다. 전씨(田氏) 가문은 강하고, 바다와 강, 제수(濟水)에 의지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초나라에 가까워 사람들이 간사하고 속임수가 많습니다. 족하께서 수십만 명의 군사를 보내더라도 몇 년 안에 깨뜨릴 수 없을 것입니다. 소신이 청하오니, 명을 받들어 제왕(齊王)을 설득하여 한나라를 섬기고 동쪽 제후국이라 칭하게 하겠습니다."
한왕이 말했다. "좋소."
그의 계책을 따라 다시 오창을 지키게 하고, 역이기를 보내 제왕에게 설득하게 했다.
"왕께서는 천하가 어디로 돌아가는지 아십니까?" 제왕이 말했다. "모릅니다." 역이기가 말했다. "왕께서 천하의 향방을 아신다면 제나라를 보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모르신다면 제나라를 보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왕이 물었다. "천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역이기가 말했다. "한나라로 돌아갑니다." 제왕이 물었다. "선생께서는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역이기가 말했다. "한왕과 항왕은 서쪽으로 진나라를 공격하면서 먼저 함양(咸陽)에 들어가는 자가 왕이 되기로 약속했습니다. 한왕이 먼저 함양에 들어갔으나, 항왕은 약속을 어기고 그를 한중(漢中)의 왕으로 봉했습니다. 항왕은 의제(義帝)를 옮겼다가 죽였는데, 한왕은 그 소식을 듣고 촉과 한의 군사를 일으켜 삼진(三秦)을 공격하고, 관중을 벗어나 의제가 있는 곳을 물으며 천하의 군사를 모으고 제후들의 후예를 세웠습니다. 항복하는 성의 장수에게는 후작의 벼슬을 내리고, 노획한 재물은 그 병사들에게 나누어주며 천하와 그 이익을 함께하니, 호걸과 영웅, 어진 재능을 가진 이들이 모두 기꺼이 그를 위해 일했습니다.
제후들의 군사가 사방에서 모여들고, 촉과 한의 군량이 배를 타고 내려오고 있습니다. 반면 항왕은 약속을 어겼다는 오명을 쓰고, 의제를 죽인 죄를 짊어졌습니다. 남의 공적은 기록하지 않고, 남의 잘못은 잊지 않습니다. 싸워 이겨도 그 상을 얻지 못하고, 성을 함락시켜도 그 봉읍을 받지 못합니다. 항우의 일족이 아니면 중요한 일을 맡을 수 없습니다. 인장을 새겨도 끝을 뭉개버려 남에게 주지 못하고, 성을 공격하여 노획물을 얻어도 쌓아두기만 하고 상으로 주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천하가 그를 배반하고, 어진 인재들이 그를 원망하여 아무도 그를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천하의 선비들이 한왕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앉아서도 계산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한왕은 촉과 한에서 군사를 일으켜 삼진을 평정했습니다. 서하(西河)를 건너 상당(上黨)의 군사를 얻었고, 정형(井陘)을 내려와 성안군(成安君)을 베었습니다. 북위(北魏)를 격파하고 32개의 성을 점령했습니다. 이는 치우(蚩尤)의 군대와 같아서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며, 하늘의 복입니다. 지금 이미 오창의 군량을 차지하고, 성고의 험지를 막고, 백마진을 지키며, 태행산의 비탈길을 막고, 비호의 입구를 지키니, 천하에서 늦게 복종하는 자는 먼저 망할 것입니다. 왕께서 급히 한왕에게 먼저 항복하시면 제나라의 사직을 보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한왕에게 항복하지 않는다면 위험과 멸망을 서서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전광은 그 말이 옳다고 여기고 역이기를 믿어, 역하(歷下)에 주둔한 군사의 방어 태세를 풀고 역이기와 날마다 술을 마시며 즐겼다.
이때 회음후(한신)가 역이기가 수레를 타고 제나라 70여 성을 항복시켰다는 소식을 듣고, 밤중에 군사를 이끌고 평원(平原)을 건너 제나라를 기습했다. 제왕 전광은 한나라 군사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역이기가 자신을 팔아넘겼다고 여겨 말했다.
"네가 한나라 군대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내가 너를 살려줄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내가 너를 삶아 죽일 것이다!"
역이기가 말했다. "큰일을 도모하는 자는 사소한 일에 구애받지 않고, 덕이 성대한 자는 양보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어찌하여 그런 말을 다시 하십니까!"
결국 제왕은 역이기를 삶아 죽였고,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달아났다.
한나라 12년, 곡주후(曲周侯) 역상(酈商)이 승상으로서 군사를 이끌고 경포(黥布)를 쳐서 공을 세웠다. 고조(高祖, 유방)가 공신들에게 벼슬을 내리며 역이기를 생각했다. 역이기의 아들 개(疥)가 여러 번 군사를 이끌었지만 공적이 후작의 반열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황제는 그의 아버지의 공을 생각하여 개를 고량후(高梁侯)에 봉했다. 후에 식읍을 무수(武遂)로 바꾸었고, 3대까지 이어졌다. 원수(元狩) 원년(기원전 122년)에 무수후 평(平)이 형산왕(衡山王)을 속여 백 근의 황금을 빼앗은 죄로 시장바닥에서 처형될 상황에 처했으나 병으로 죽어 봉국이 폐지되었다.
육가
[편집]육가(陸賈)는 초(楚)나라 사람이다. 빈객으로서 유방을 따라 천하를 평정했으며, 말재주가 뛰어난 변사(辯士)로 이름이 났다. 유방의 측근에 머물며 늘 제후들에게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고조(高祖, 유방) 시대에 중국이 처음 평정되었을 때, 위타(尉他)가 남월(南越)을 평정하고는 스스로 왕이 되었다. 고조가 육가를 보내 위타에게 남월왕의 인장을 주게 했다. 육가가 도착하자 위타는 머리를 상투처럼 땋아 올리고 평상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육가를 만났다. 육가는 위타에게 다가가 설득했다.
"족하께서는 중국 사람이며, 친척과 형제들의 무덤이 진정(真定)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족하께서는 타고난 성품을 거스르고, 관과 띠(중국인의 복식)를 버리고, 이 보잘것없는 남월 땅으로 천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적국이 되려 하니, 화(禍)가 곧 몸에 미칠 것입니다. 또한 진나라가 그 정치를 잃자 제후와 호걸들이 함께 일어났으나, 오직 한왕(漢王)만이 먼저 관중으로 들어가 함양을 점거했습니다. 항우가 약속을 어기고 스스로 서초패왕(西楚霸王)이 되어 제후들이 모두 그에게 속했으니, 가히 지극히 강하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왕은 파촉(巴蜀)에서 일어나 천하를 채찍질하고 제후들을 겁박하여, 마침내 항우를 베고 멸망시켰습니다. 5년 사이에 천하가 평정되었으니, 이는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늘이 세운 일입니다. 천자께서는 군왕이 남월의 왕이 되어 천하에서 포악하고 거역하는 자를 멸하는 것을 돕지 않았다는 것을 들으셨습니다. 장수와 재상들은 병사를 보내 왕을 주벌하려 했으나, 천자께서는 백성들의 새로운 고통을 가이 여겨 잠시 멈추시고 신을 보내어 군왕에게 인장을 수여하고 신표를 나누어 사신으로 통하게 하셨습니다. 군왕께서는 마땅히 교외까지 나와 맞이하고 북면하여 신하라 칭했어야 하는데, 이제 막 세워져 안정되지도 않은 남월 땅으로 여기에서 억지로 힘을 부리려 하시는군요. 한나라가 만약 이 소식을 들으면, 왕의 선조들 무덤을 파헤치고 불태우며, 종족을 멸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 명의 장군에게 10만 군사를 주어 남월에 당도하게 한다면, 남월은 왕을 죽이고 한나라에 항복할 것입니다. 이는 손바닥을 뒤집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입니다."
이에 위타는 벌떡 일어나 앉아 육가에게 사과했다. "오랜 세월 오랑캐 땅에 살다 보니 예의를 크게 잃었습니다." 그리고는 육가에게 물었다. "는 소하, 조참, 한신과 비교하면 누가 더 현명합니까?"
육가가 말했다. "왕께서 그들보다 더 현명하십니다."
위타가 다시 물었다. "저는 황제(고조 유방)와 비교하면 누가 더 현명합니까?"
육가가 말했다. "황제께서는 풍패(豐沛)에서 일어나 포악한 진나라를 토벌하고, 강한 초나라를 베어 천하에 이로움을 일으키고 해악을 없애셨습니다. 오제(五帝)와 삼왕(三王)의 업적을 이으시고 중국을 통치하셨습니다. 중국 백성들은 수억 명에 달하고, 땅은 만 리이며, 천하의 기름진 땅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과 수레가 많고 만물이 풍부하여, 정치가 한 집안에서 나왔으니 천지가 나뉜 이래로 아직까지 없었던 일입니다. 지금 왕의 무리는 수십만 명에 불과하고 모두 오랑캐이며, 험준한 산과 바다 사이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한나라의 한 개 군(郡)과 같으니, 왕께서 어찌 감히 한나라 황제와 비교하십니까!"
위타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중국에서 일어나지 못했기에 여기서 왕 노릇을 하는 것이오. 만약 내가 중국에 있었더라면 어찌 한나라 황제만 못했겠소!"
그리고는 육가를 크게 기뻐하여 붙잡고 수 개월 동안 술을 마셨다. "남월 땅에서는 함께 말할 만한 사람이 없었는데, 선생이 오니 매일 듣지 못했던 것을 듣게 되오." 그리고 육가에게 주머니에 넣어온 황금 천 근을 주었고, 위타도 그에게 천 근을 더 보냈다. 육가는 결국 위타를 남월왕으로 임명하고, 신하를 칭하며 한나라와 약조를 맺게 했다. 돌아와서 보고하자 고조는 크게 기뻐하며 육가를 태중대부(太中大夫)에 임명했다.
육가가 가끔 고조 앞에서 《시경》과 《서경》을 인용하며 유세했다. 그러자 고조는 그를 꾸짖으며 말했다. "이놈아, 나는 말을 타고 천하를 얻었거늘, 어찌 시서(詩書) 따위가 필요하겠느냐!"
육가가 말했다. "말 위에서 천하를 얻었지만, 어찌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또한 탕왕과 무왕은 역(逆)으로 천하를 취했지만 순(順)으로써 지켰으니, 문치와 무치를 함께 쓰는 것이 오래가는 방법입니다. 옛날 오왕(吳王) 부차(夫差)와 지백(智伯)은 무력을 극도로 사용하여 망했습니다. 진나라가 형법(刑法)에만 의존하여 변하지 않자, 마침내 망했습니다. 만약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뒤 인의를 행하고 선왕들의 법을 따랐다면, 폐하께서 어찌 천하를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고조는 불쾌해하면서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육가에게 말했다. "나를 위해 진나라가 천하를 잃은 이유와 내가 천하를 얻은 이유, 그리고 옛 성공하고 망한 나라들의 이야기를 기록해보시오."
육가는 이에 흥망의 징조를 대략적으로 서술하여 모두 12편의 책을 지었다. 매번 한 편을 올릴 때마다 고조는 칭찬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좌우 신하들은 만세를 외쳤다. 그 책을 《신어(新語)》라고 불렀다.
효혜제(孝惠帝) 때, 여태후(呂太后)가 정권을 잡고 여씨(呂氏)들을 왕으로 봉하려 했다. 그러나 반대하는 대신들이 많아, 육가는 스스로 다툴 수 없다고 판단하고 병을 핑계로 물러나 집에서 살았다. 호치(好畤)의 땅이 좋아 그곳에 거처를 정했다. 그에게는 다섯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예전에 남월에 사신으로 가서 얻은 주머니 속 천 근의 황금을 꺼내 아들들에게 각자 이백 근씩 나누어주어 생업을 삼게 했다. 육가는 항상 좋은 수레에 네 마리 말을 메고, 노래와 춤을 추고 거문고와 비파를 연주하는 시종 열 명을 거느리고, 백 금짜리 보검을 차고 다녔다.
아들들에게 말했다. "너희와 약속한다. 내가 너희 집을 지나갈 때 너희는 나에게 사람과 말의 음식물을 제공하고, 원하는 대로 극진히 대접하되, 열흘이 지나면 다른 집으로 옮겨라. 내가 죽으면 내 보검과 수레, 시종들을 가진 집이 모든 것을 차지할 것이다. 일 년 중에 다른 아들들을 방문하는 것은 기껏해야 두세 번을 넘지 말거라. 자주 보면 신선함이 떨어지고, 너희 아버지를 번거롭게 하지 말거라."
여태후가 여씨들을 왕으로 봉하고 그들이 권력을 농단하여 어린 황제를 위태롭게 하고 유씨(劉氏)의 사직을 위태롭게 하려 했다. 우승상 진평(陳平)은 이를 걱정했으나 혼자 힘으로는 다툴 수 없어 화가 자신에게 미칠까 두려워 늘 조용히 깊이 생각했다. 육가가 찾아가 바로 들어와 앉았고, 진평은 깊은 생각에 잠겨 육가를 바로 보지 않았다. 육가가 말했다. "무슨 걱정이 그리 깊으십니까?" 진평이 말했다. "선생께서 제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헤아려 보십시오." 육가가 말했다. "족하의 지위는 재상이며, 삼만 호의 봉읍을 가진 후작이시니, 가히 지극히 부귀하여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근심과 걱정이 있으시다면, 이는 여씨와 어린 황제 때문일 뿐입니다." 진평이 말했다. "그렇소. 어떻게 해야 하겠소?"
육가가 말했다. "천하가 안정될 때는 재상에게 주의하고, 천하가 위태로울 때는 장수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장수와 재상이 화목하고 조화를 이루면 선비들이 기꺼이 따를 것입니다. 선비들이 따르게 되면 천하에 비록 변고가 있어도 권력이 나뉘지 않을 것입니다. 사직을 위한 계책은 두 분의 손아귀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소신은 항상 태위(太尉) 항후(絳侯) 주발(周勃)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항후는 저를 놀리며 제 말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군께서는 어찌 태위와 교분(交分)을 맺고 깊이 결속하지 않으십니까?"
그리고 진평에게 여씨를 다룰 몇 가지 계책을 제시했다. 진평은 그 계책을 써서 황금 500근을 주발에게 보내 술자리를 마련하고 후하게 대접했다. 태위 주발도 똑같이 답례했다. 이 두 사람이 깊이 결속하자 여씨의 음모가 점차 쇠퇴했다. 진평은 노비 백 명, 수레와 말 쉰 대, 오백만 전을 육가에게 주어 생활비로 쓰게 했다. 육가는 이를 가지고 한나라 조정의 공경(公卿)들 사이를 유람하며 명성이 매우 높아졌다.
훗날 여씨 일족이 주살되고 효문제(孝文帝)가 즉위하는 데에 육가가 큰 힘이 되었다. 효문제가 즉위한 후 남월에 사신을 보내려 하자, 진평 등이 육가를 태중대부로 임명하여 위타에게 보내 위타가 황제의 칭호를 버리고 제후와 같이 되도록 설득했다. 그 내용은 남월에 관한 이야기 속에 있다. 육가는 천수를 다하고 죽었다.
평원군(平原君) 주건(朱建)은 초나라 사람이다. 일찍이 회남왕(淮南王) 경포(黥布)의 재상이 되었다가 죄를 짓고 떠났으며, 후에 다시 경포를 섬겼다. 경포가 반란을 일으키려 할 때 평원군에게 물었으나, 평원군은 반대했고 경포는 듣지 않고 양부후(梁父侯)의 말을 들어 결국 반란을 일으켰다. 한나라가 이미 경포를 주살했을 때, 평원군이 반란을 간언하여 모의하지 않았다는 것을 듣고 죽음을 면했다. 그 내용은 경포에 관한 이야기 속에 있다.
평원군은 변론에 능하고 말재주가 뛰어나며,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장안에 거처했다. 행동이 구차하게 남과 어울리지 않았고, 의리를 위해 용납하지 않았다. 벽양후(辟陽侯)는 행실이 올바르지 않았으나 여태후의 총애를 받았다. 당시 벽양후는 평원군을 알려고 했으나, 평원군은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 후 평원군의 어머니가 죽었는데, 육가는 평소 평원군과 친분이 있어 그를 찾아갔다. 평원군은 집이 가난하여 아직 장례를 치를 준비도 하지 못하고 상복과 도구를 빌리고 있었다. 육가는 평원군에게 장례를 치르도록 조언했다.
육가는 벽양후를 찾아가 축하하며 말했다. "평원군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벽양후가 말했다. "평원군 어머니가 죽었는데 어찌 나에게 축하하는가?"
육가가 말했다. "지난날 군후께서 평원군을 알고자 하셨으나, 평원군은 의리 때문에 군후를 알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군후께서 진심으로 장례를 돕는다면, 그는 군후를 위해 목숨이라도 바칠 것입니다." 벽양후는 이에 백 근의 황금을 보내 조의를 표했다. 여러 열후(列侯)와 귀인들은 벽양후의 행동을 보고 모두 오백 근의 황금으로 조의를 표했다.
벽양후는 여태후의 총애를 받았으나, 어떤 사람이 벽양후를 효혜제에게 헐뜯었다. 효혜제가 크게 노하여 그를 관리에게 넘겨 죽이려 했다. 여태후는 부끄러워 말을 할 수 없었다. 많은 대신들도 벽양후의 행실을 미워하여 그를 죽이려 했다. 벽양후는 매우 다급해져 사람을 시켜 평원군을 만나려 했다. 평원군은 "옥살이가 급하니 감히 군후를 뵙지 못하겠습니다"라며 거절했다.
이에 벽양후는 효혜제의 총애를 받던 신하 홍적유(閎籍孺)를 찾아가 설득했다. "그대가 황제의 총애를 받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오. 지금 벽양후가 태후의 총애를 받으면서도 관리에게 넘겨졌으니, 길거리 사람들이 모두 그대가 참소하여 그를 죽이려 한다고 말하고 있소. 오늘 벽양후가 주살되면, 내일은 태후께서 노여움을 품고 그대를 또한 죽일 것입니다. 어찌하여 맨몸으로 벽양후를 위해 황제께 아뢰지 않습니까? 황제가 그대의 말을 듣고 벽양후를 내보내면, 태후께서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두 분의 총애를 함께 받게 되어 그대의 부귀는 배가 될 것입니다."
홍적유는 이에 크게 두려워하며 그 계책을 따랐다. 황제에게 아뢰니 과연 벽양후를 내보내 주었다. 벽양후가 갇혔을 때 평원군이 자신을 만나주지 않았다는 것을 원망하여 배신했다고 여겼으나, 풀려나자 크게 놀랐다.
여태후가 붕어하고 대신들이 여씨 일족을 주살할 때, 벽양후는 여씨와 매우 가까웠으나 끝내 주살되지 않았다. 그가 온전할 수 있었던 계책은 모두 육가와 평원군의 힘 덕분이었다.
효문제 때, 회남(淮南)의 여왕(厲王)이 여씨를 핑계로 벽양후를 죽였다. 효문제가 그의 빈객이었던 평원군이 계책을 세워주었다는 것을 듣고 관리를 보내 심문하려 했다. 관리가 문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자 평원군은 자살하려 했다. 그의 아들과 관리들이 모두 말했다.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어찌 일찍이 자살하려 하십니까?"
평원군이 말했다. "내가 죽으면 화가 끊어져 너희들에게는 미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효문제는 이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나는 그를 죽일 뜻이 없었거늘." 그리고는 그의 아들을 불러 중대부(中大夫)에 임명했다. 그 아들은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선우(單于)가 무례하게 굴자 그를 꾸짖다가 결국 흉노 땅에서 죽었다.
예전에 패공(유방)이 군사를 이끌고 진류를 지날 때, 역이기가 군문까지 따라와 뵈기를 청하며 말했다. "고양의 천한 백성 역이기(酈食其)입니다. 가만히 들으니 패공께서 야전에서 고생하며 군사를 이끌고 불의한 초나라를 치려 하신다 하니, 따르는 자들을 위해 경의를 표하며 뵙고 싶습니다. 입으로 천하에 유리한 일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자가 들어가 보고하자, 패공은 마침 발을 씻고 있었다. 사자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냐?" 사자가 대답했다. "모습은 큰 유학자 같고, 유학자 옷을 입고 비뚜름한 관을 썼습니다."
패공이 말했다. "나를 대신해 그에게 사과하라. 나는 지금 천하의 큰일을 돌보느라 유학자들을 만날 겨를이 없다고 하라." 사자가 나가 사과하며 말했다. "패공께서 공경히 선생께 사과하십니다. 지금 천하의 일을 돌보느라 유학자들을 만날 겨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역이기가 눈을 부릅뜨고 칼을 짚으며 사자를 꾸짖었다. "뛰어가라! 다시 들어가 패공에게 말하거라. 나는 고양의 술꾼이지 유학자가 아니라고!"
사자는 두려워 패를 떨어뜨리고 무릎을 꿇어 주워 들고는, 다시 들어가 보고했다. "그 손님은 천하의 용감한 선비입니다. 저를 꾸짖으니 제가 두려워 패를 떨어뜨렸습니다. '뛰어가서 다시 들어가, 너희 아버지는 고양의 술꾼이라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패공은 급히 발을 씻고 창을 짚고 서서 말했다. "손님을 모시고 들어오너라!"
역이기가 들어와 패공에게 읍(揖)을 했다. "족하께서는 심히 고생이 많으십니다. 겉옷은 더럽고 관은 낡았는데, 군사를 이끌고 불의한 초나라를 치고 계시니, 족하께서는 어찌 스스로를 기뻐하지 않으십니까? 소신이 일에 관해 뵙기를 원했건만, '나는 지금 천하의 일을 돌보느라 유학자를 만날 겨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무릇 족하께서 천하의 큰일을 일으키고 천하의 큰 공을 이루려 하신다면,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럴 경우 천하의 능력 있는 선비를 잃을까 두렵습니다. 게다가 소신이 헤아리건대 족하의 지혜는 저만 못하고, 용맹함 또한 저만 못합니다. 만약 천하를 취하고자 하면서도 저를 만나지 않으시려 한다면, 소신은 족하께서 큰 것을 잃는다고 생각합니다."
패공은 사과하며 말했다. "지난날 선생의 풍모만 들었으나, 이제 선생의 뜻을 알겠습니다."
그리고는 그를 높은 자리로 모시고 앉게 하여 천하를 취하는 방책을 물었다. 역이기가 말했다. "족하께서 큰 공을 이루시려 한다면 진류에 머무시는 것만 못합니다. 진류는 천하의 요충지이자 군사들이 모이는 곳이며, 군량이 수천만 석이나 쌓여 있고, 성의 방어도 매우 견고합니다. 소신이 평소 그 현령과 친분이 있으니, 족하를 위해 그를 설득하겠습니다. 만약 그가 소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소신이 족하를 위해 그를 죽여 진류를 함락시키겠습니다. 족하께서 진류의 무리를 이끌고 진류의 성을 점거하여 그곳의 군량을 먹고, 천하의 군사들을 모으십시오. 일단 군사들이 모이면 족하께서 천하를 종횡무진할 것이니, 족하를 해칠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
패공이 말했다. "공경히 명을 듣겠습니다."
이에 역이기는 밤에 진류 현령을 찾아가 설득했다. "무릇 진나라가 무도하여 천하가 그를 배반했습니다. 지금 족하께서 천하와 함께 따른다면 큰 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홀로 망해가는 진나라를 위해 성을 지키고 있으니, 소신은 족하의 위태로움을 염려합니다."
진류 현령이 말했다. "진나라 법은 지극히 엄중하여 함부로 말할 수 없습니다. 함부로 말하는 자는 일족을 멸하니, 제가 응할 수 없습니다. 선생께서 저에게 가르쳐주신 바는 저의 뜻이 아니니, 다시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역이기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한밤중에 진류 현령의 목을 베고 성벽을 넘어와 패공에게 보고했다. 패공은 군사를 이끌고 성을 공격하며 현령의 목을 긴 장대에 매달아 성 위의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빨리 항복하라. 너희 현령의 머리가 이미 잘렸다! 앞으로 늦게 항복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목을 칠 것이다!"
이에 진류 사람들은 현령이 이미 죽은 것을 보고, 서로 이끌고 패공에게 항복했다. 패공은 진류의 남문 성루에 거처하며 그곳의 병기와 군량을 사용했고, 석 달 동안 머물면서 만 명이 넘는 군사를 모은 후, 곧장 진나라로 들어가 그들을 멸망시켰다.
- ↑ 유방이 침상에 비스듬히 누워 발을 씻으며 역이기를 만난 행동이 오만함을 뜻하고, 역이기는 자신을 "어른"이라고 칭하며 유방의 행동이 예의에 어긋남을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