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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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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 제1호
저자: 삼천리사(三千里社)

발행 년 월 일 : 1929년 6월 12일 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28797삼천리사(三千里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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創刊號 三千里 目次
自敍傳     洪 命 喜 (一0)
돈 十萬圓이 잇다면
事業資金에 쓰겟다   權東鎭 (二)
俊才를 世界에 派遺   許 憲 (二)
讀本 四百萬冊을 印刷   李相協 (二)
不遇天才를 敎育   韓基岳 (三)
私立大學創設   崔奎東 (三)
托兒所를 各道設置   鄭鍾嗚 (四)
劇場 撮影所 設置   朴英熙 (四)
世界的으로 進出   安在鴻 (五)
■ 世界에 向하야   宋鎭禹 (削)
■ 獨裁將軍 蔣介石   朱耀翰 (削)
■ 當時의 追憶   韓龍雲 (削)
우리의 恩人   申興雨 (一三)
民族文學과 無産文學의 差異点과 合致点
時間的으로 合致   洪命喜 (削)
但只 表現上에 無大差   金基鎭 (削)
푸로는 世界的   尹基鼎 (三三)
取材表現이 仝一   李 亮 (削)
彼此 利益点에서 提携   金炯元 (削)
主義的 哲學的이 달러   李光洙 (三二)
兩文學은 全然對立   朴英熙 (削)
本質的으로 相反   金永八 (三三)
民族文學에 바랄것업다   李箕永 (削)
別無差異点   金東仁 (三三)
世界一週紀行     許 憲 (六)
義慈王의 最后     文一平 (一六)
新羅民衆의 榮華     黃義敦 (一八)
朴巨正傳에 對하야   碧 初 (四二)
端宗哀史에 對하야   春 園 (四二)
淨化에 對하야   獨 鵑 (四三)
裸體 모델과 畵家     安碩柱 (四四)
李承萬 (四四)
創 作
聞砧聲   韓龍雲 (四六)
새나라로   李光洙 (四六)
賣花童   李殷相 (四六)
故 鄕   朴八陽 (四七)
頌三千里   沈 熏 (四七)
썩은 胡桃   廉想涉 (四八)
新選半島八景     文士 三十七氏
내가다시태어난다면
農民의 아들로   崔鶴松 (二五)
亦是 運動家로   丁七星 (二五)
偉丈夫로   柳光烈 (二五)
絶世美人으로   차상찬 (二六)
西伯利亞 情調   金東進 (二0)
殺人事件 探偵秘話   N M (三0)
米豆로 百萬圓 모은 實話   鄭秀日 (二七)
濟州島 海女의 生活   金枓白 (二二)
女僧의 生活   鄭寅翼 (二三)
死刑囚의 最后   K判事 (一五)
眞書와 原書   薛義植 (四)
동무를 부름   丁七星 (一一)
著名地巡禮   草公 (四五)
矗石樓紀行   金東煥 (三七)
文壇行進曲    (二九)
우리의 標語    權東鎭外 六氏 (一)
表紙綠陰    夕影

◆ 우리의 標語 ◆

○ 우리들은 한데 뭉치자   權東鎭
○ 몸을 일에 바치자   洪命憙
○ 一致協力하자   申錫雨
○ 民族的으로 努力하자   宋鎭禹
○ 基礎工事에 질겨 무치자   李相協
○ 各길에서 한곳에   安在鴻
○ 論理보다 成績   申興雨
돈 十萬圓이 잇다면?
說問 - 누가 돈 십 만원을 무조건으로 제공한다면 어떠한 일에 쓰겟습니까?

本部會館建築과
事業資金에 쓰겟다

權東鎭

돈십만원 이잇스면 新幹會本部의 會館도 建築하여야할터이나 그보다도더急하고重要한 것은 우리會의 事業資金으로 쓸일이외다.

무론每事하고 돈이 압서지아니하고 ᄯᅳᆺ과 가치 되어주는일이적지만은 더군다나 우리네와가치몸을 움지기는 範圍가 ᄭᅡ다롭게 制限되어잇는곳에서는 더욱 돈이 貴한것이니 그를 압장세우지안코는 일이 무척 어러워지고 날자가걸니는 터이외다.(中簡略)

그러고 내가 意味하는 그 事業資金이란 오늘 十萬圓을 들이면 다음날에는 그몃십배 그몃백배의 收獲이 반드시 도라오고야말 그러케ᄯᅳᆺ잇는일에 쓰고저함이외다. 十萬圓돈이 만흔것은 아니겟지만은 그만치라도 잇스면 그만한程度의 일은 되어나갈 수 잇겟지요.


俊才數十名을
歐美各國에 派遣하겟다

許 憲

나는 그런돈十萬圓이 내손에 드러온다면 조선에서 手才라고 일컷는 人物三四十名을 ᄲᅩᆸ아서 英, 美 ,佛, 獨, 露, 伊, 愛蘭, 土耳其, 印度, 瑞西, 첵크, 濠洲等 各國에二三名式 派遣하여 그나라의 國家나社會의 制度라든지 人情風俗이라든지 産業常態 國民精神등을 精密히 調査硏究케 하겟슴니다. 假令 日本에서 土耳古가튼나라에도 每年留學生을 만히보냄니다. 日本이 土耳其로부터 무엇을 배울것이잇서그리겟슴니ᄭᅡ만은 그나라獨特의 무엇이잇슴으로 그것을알려고 그리는것이외다. 더구나 내가 各國을 도라다니며 본 바에 의하면 勞農露西亞에서는 每年優秀한 造船所, 器械工場의 技術者數十名을 英美諸國에 派遣하고 잇스며 그밧게英美獨日等 各國서도 서로 優秀한 人物을 ᄲᅩᆸ아서 저ᄶᅩᆨ 나라의 文明을 探索硏究케함니다.

더구나 우리가치 모든것이 뒤저잇는 處地에잇서서는 各國의文明程度를 正確히 알어둘必要가 時急이 잇는동시에 우리形便도 저ᄶᅩᆨ에 充分히 알려주어야할터인즉 그런人物을 各國에 波送하는것이 아조急務인줄로 알고 그런돈이 생긴다면 俊才派遣에 다써버릴가함니다.


讀本을印刷하여
四百萬名에주고십다

李相協

오늘날 우리 조선에는 約四百萬名이란 一字無識이 잇는줄로압니다. 卽 四百萬名이라면全民族의 二割인데 이사람들을 엇더케든지敎育하여놋는것이 經世家의가장 急히하여야할일인줄압니다.

나는 十萬圓의 돈이 내 손에 드러온다하면 온전히 이文盲 打破運動의 資金으로쓰고저 합니다. 그方法은 約白萬部의 「讀本」을印刷하여 녈니 配布하는同時에 農村의 智識階級的靑年들을 모다 動員식혀서 우리글을 가르치게하도록 하겟슴니다.

얼는 들으면 十萬圓이라면 큰돈가치 생각되나 실상 큰事業에 쓰자면 그것이여간不足하여야지요. 假令 新聞社나 큰 工場하나를 經營한다 하여도 멧十萬圓이 잇서야하지 안슴니ᄭᅡ. 더구나 日本의例를 볼지라도 新聞經營에ᄭᅡ지 이제는大規模의 資本家의 企業資金이 밀려들지안코는 經營이 困難한 形便에잇습니다. 그도 數十萬의 讀者가 잇다면 방大한資金을 必要하지안코라도 하여나갈수잇스나어듸 朝鮮形便이 그러함니ᄭᅡ. 그럼으로 가장 基本的事業인 文盲打破運動에 그돈을전혀 써버리고십슴니다.


不遇한天才들을
敎育식히겟다

韓基岳

누가 돈십만원을 내손에 쥐어준다면 나는 朝鮮의 不遇한 天才들을 敎育하는事業에 쓰겟슴니다. 이말은 지금새삼스럽게 하는것이아니고 나는 언제나 돈이 잇서지는 날에 期於히 經營하여보려고 腹案을 ᄭᅮ며가지고잇든것이외다. 오늘날 우리 形便을도라다보면 급하게하여야할일도 만치만은 이 天才敎育의 事業도 實로 重하고 緊急한일가운데 하나인줄아는데 그것은 學資가업서서 훌융한天禀을 타고난靑年들도 工夫를못하는사람이 朝鮮에엇더케나만슴니ᄭᅡ. 中學校를卒業하고 大學에못가는이, 小學校를 卒業하고 中學校에 못가는秀才, 이모든사람들을 敎育식혀주는 것이 民族的 큰일인줄압니다. 勿論 文盲打破나 社會敎育化 가튼 일도조흐나 數萬數十萬으로 헤아릴수잇는不遇秀才를 救濟하는것도 우리의압혜큰光明을던저주는 조코시언한事業인줄로압니다.


大學設立의
基金에쓰겟다

崔奎東

내손에 누가 돈십만원을 ᄌᆔ어준다면 나는 닷자곳자로 대학설입의 基本金으로 그 돈을쓰겟슴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우리가만든 대학하나가 업다는것이 엇더케나붓그럽고 유감스러운 일임니ᄭᅡ. 실로오늘 우리들이 할일이란 훌융한 인물양성가치 급하고 중요한일이 업는터인데 지금 형편갓하여는 정말 한심스럽슴니다.

그런데 대학한아를 設立하자면 少不下 三百萬圓돈은 잇서야할터인데, 三百萬圓이란 十萬圓내는 篤志家 三十名만잇스면 되는일이 아니겟서요? 나는 벌서 大學基地ᄭᅡ지 마음속으로 뎡하여노앗는데 그것은 저東大門밧 永導寺드러가든 龍頭里벌판이외다. 그너른 廣場에다가 大學을 짓고 附屬中學과 小學校를 다―짓고 大學市街를 만드는구려.

일본 神戶의 瀧川中學校는 엇든篤志家의 七百萬圓寄附로 經營되어 나간다함니다. 글세 中學校先生ᄭᅡ지 外國留學을 식힌다는구려. 그러니 充實한 敎育이 될밧게업지안겟서요.

그러나 前記大學計劃이 너무 遠한 計劃이라면 당장 나는 이런일이라도 그십만원을 가지고 實行하고십슴니다. 그것은 專門學校라도 하나 세우기로하고 현재 각中等學校에서 敎鞭을잡고잇는 頭惱明折한 敎員을 歐美에 十名可量 留學을식히는 것임니다. 將來의 專門學校 敎授養成으로요. 그것이 조치 안켓슴니ᄭᅡ.


純民衆會館建築과
各道에托兒所設置

鄭鍾嗚

나는 돈십만원이 잇스면 民衆이 모여議事하는 큰會館을 하나짓고 그러고는 ᄯᅩ서울을 爲始하야 各道重要都市에 托兒所數十個所를 設置하겟슴니다. 그理由는 가령 서울로말할지라도 사람들이만히모일만한 集會場所가업는것은 아니지만 大槪 所有者가 天道敎라든가 基督敎 佛敎團體가되어 자미가 적슴니다. 그러니 民衆이 恒常 쓸수잇고 그러고도 아모 이상한空氣도밧을수업는 그런 큰會館을 지어놋는것이 매우必要한일인줄로알며둘재托兒所는 근래에 우리조선女性들이 공장가튼데로 勞役을 나오는者가 매우만케되엇슴니다. 그래서 恒常어 린아해들ᄯᅢ문에 만히 괴롬을 밧고잇는형편인즉 工場地帶마다 勞動婦人의 子女들을 一時一時마터보아줄 托兒所를 設置하고 經營하여가는일이필요한일인줄암니다. (孤兒院과는 全혀 달느지요) 그런뒤 萬一 餘在가잇다면 조고마케라도 一千萬女性을 爲하야 婦人新聞가튼것을 經營하여 나가고십슴니다.


映畵製作과
劇場經營을하겟다

朴英熙

映畵와 演劇運動은 온갓 藝術運動의 部門中에서도 民衆에게가장큰效果를 ᄭᅵ처주는 点으로보아 우리들이 반드시 全力을다하여 하지안으면 안될길인줄안다.

그런데 겨우 十萬圓돈을 가지고 그러케큰事業을 完全이야 하여나갈수잇스랴만은 爲先 그돈이면 劇場은 남이지어노흔것을 貰를주고 빌어쓸 세음을 잡고 그중 몃만원쯤을ᄯᅦ어 優秀한 演出者, 舞臺俳優, 其他모든 技術者의 養成을하는同時에 劇作家를 物質的으로 優遇하야 時代民衆을 指導할만한 力作을 내이게할것이요 ᄯᅩ그중數萬圓을 드리어 實際演出의 費用에쓴다면 몃해동안은 훌융하게 劇運動을 하여나갈수잇슬것이다. 더구나 僅少한費用으로라도 할수잇는 移動劇班을 여러班을 組織하여서工場, 漁場等 勤勞大衆의集團處로 도라다니면서 演出하여도 조흘것이다.

그러고 남저지數三萬圓을 가지고는얌전한 「스타지오」나 設置하고 映畵俳優나 養成하여크게 映畵을製作하여 그製作된 映畵를 가장 效用이잇슬 方法으로 널니 大衆에게 傳하고 십다. 이運動은 돈만잇스면 되는일이다. 나는 確信을 가지고 그날이 오기를 바란다.

眞書와 原書

東京에서 薛義植

◈朝鮮서 漢文글자를 眞書라고 하오.
日本서 歐文冊子를 原書라고 하오.
玄海를 사이에두고 미상불 興味잇는 聯句의다.

◈眞書라는文句를 어느碩儒가 創作하얏는지는 모르거니와 적어도 李朝以來의 徹底한 事大思想과 ᄯᅢ를 갓치하엿슬것이오. 제글을 『諺書 개글』이라하고 『俗字 諺解』라하고 『宣當懇吐之用』이며 『閭巷兒女之文』이라고한 李朝累百年間의文化를 밧삭줄이면 『眞書는漢文』이란 다섯글字가되오. 聖君賢臣이 이리하엿고 公卿大夫가 이리하엿고 有司都監이 이리하엿고 士人庶民이 이리하여 남의 발바닥만 할다가할다가 氣盡力盡으로 넘어진 것이朝鮮 末路엿소.

◈原書라는術語를 어느學者가主唱하얏는지는 모르거니와 적어도 明治以來의 熱狂한歐化主義와 ᄯᅢ를 갓치하엿슬것이오. 政治經濟를 번역하고 富國强兵을 번역하고 禮, 樂, 風, 習을 번역하고 術, 數, 技, 藝를 번역한 維新六十年間의文化를 한데뭉치면 『原書는歐文』이란 다섯글字가 되오. 上下老少가 이리하엿고 遠近都鄙가 이리하여 西ᄶᅩᆨ만 처다보다가 〻 『行詰』하여 허둥거리는것이 이곳의現狀이오.

◈朝鮮도 ᄭᅢ엿소. 그래서 漢文만이 『眞書』가아닌것을알앗소.
日本도 ᄭᅦ엿소. 그래서 歐文만이 『原書』가아닌것을 알게되엿소.
그러나 眞書〻하고 推載하여온固習과 原書〻하고欽仰하여온精力은 맛츰내 그저『진서〻』라하고 『원서〻』하기에 自他가無不識無關心이오.

獨立自主와 自作 獨創의 意識이업고 覺悟가업고 理想이업고 實行이 업는者의 末路는 大槪 이러함을 史乘이 證明하오.


世界에 向하야

朝鮮에 큰 科學者가나서
世界的으로 進出하자

民世 安在鴻

어느點으로보든지 朝鮮은世界의先進諸國과는 文化的交涉이적은곳이니 世界에向하야要求하고 십흔일이만터라도 實現可能性이적은데잇서서 말할興味가적습니다. 혹은經濟的進出이汲汲한國民에게 朝鮮에와서企業에着手하여서 巨額의投資를함으로써朝鮮이經濟的으로 活氣잇게되기를希望한다할지라도門戶가거의닷친朝鮮에는 그도容易한일은아닐것입니다. 그러나그것은 얼마큼 可能한일이라하고歐洲先進國家의科學者 技術者들을 朝鮮에進出케하야 朝鮮의自然開拓이나 其他社會生活上의能率增進等에關한進言과 提案을 들어보는것가튼것도 생각할수잇는바이나 줄잡아서그들을招聘할만한準備가잇는機關부터업서가지고는 一片의希望으로는 어ᄶᅵ하엿든實現할計劃으로서는어려울것입니다. 山이나에게오지아니하니 내가山에가겟다는西洋俗談처럼 世界가우리를돌아보지아니하면 차라리우리가世界에進出할길을 생각하여야할것입니다일을테면朝鮮人으로서 自然科學에나社會科學方面에 有數한世界的學者가나서 世界的으로그權威와名價를들어내일수잇다하면 朝鮮人의世界的權威名價가 그만큼올러가는것이오 딸어서民族的自負心도그만큼昇進되어서朝鮮人의生存運動에도적지아흔힘이될것입니다. 勿論世界的科學者가生長되는데는 經濟의土臺우에잇는富裕한文化的機會를등지고서될수잇는것이니 朝鮮人에게그것이容易치안을일이지만 貧弱한朝鮮人의社會이나個人의自費로서도 그만큼進出될便宜를가진사람이 全혀업는것은아닌줄압니다. 一個의 『아인스타인』을가질수잇다면더할말업겟지만 『타고르』의文藝上의價値가 現代批評眼으로보아 얼마ᄶᅳᆷ의力量가진다는것은別問題이지만 何如間 『타고르』로因하야 印度人의民族的權威가올러가고 그만큼世界人의考慮를ᄭᅳ을게된것은無視할수업는바일것입니다. 그럼으로朝鮮人사이에도世界的學者되기爲하야 自己의가진社會的幸運을스스로自身을通하야 朝鮮人全體에提供하는奉仕的利己心이라도發揮하는이가잇스면조흘것입니다.

(削除 == 世界에 向하야 --- 宋鎭禹 )

世界一週紀行

第一信

太平洋의 怒濤차고
黃金의 나라 美國으로!
- 布哇에 잠감 들러 兄弟부터 보고 -

許 憲

◈ 조선아 잘잇거라 ◈

亞細亞大陸에 三伏이 갓가워오는ᄭᅡ닭인지 오늘밤은 몹시도덥다. 아직 五月 三十一日이니 春服을입어도 견딜ᄯᅳᆺ하건만은웬걸금년철은 이상하여 벌써 몃칠전부터 ᄶᅡᆼᄶᅡᆼ 내리ᄶᅩ이는 폭양볏에어름수채가그립고 맥고모자에산듯한베옷이 간절히 생각난다. 더구나 내가 바야으로 향하려하는곳이 太陽이直射하는 저 남ᄶᅩᆨ나라이거니함애 저절로 머리속조차 ᄯᅳ거워져서 서울을 ᄯᅥ나는오늘밤에는 흰夏服조차 ᄯᅥᆯ쳐입고나섯다.

南大門停車場에는 나와 나의딸 貞淑이를 보내주는 여러분이 나오서주섯다. 실로 내가 생각하여도 나의이번발길이 언제다시 이停車場흙을 밟어보게될는지 모르겟다. 밟는다하여도 몇십년뒤가될런지 ᄯᅩ는그몃십년뒤에도 살아서나 밟게될런지 아모근심이업고 아모ᄭᅥ리ᄭᅵᆷ이업는 사람으로도 十萬里의 먼길을ᄯᅥ난다하면 곱다라케 도라오기를장담을 못하려든 하물며우리가치 가도근심와도근심인 긔구한나그내의몸에야 어느날 엇더한운명이 앞헤가로막아섯다가 나의생명과 육신을 물고ᄯᅳᆺ을줄알랴. 이런생각을하면서南山우의 솔밧과 北白岳의 連峰을바라봄애 엇더타말할수업는感慨에 가슴이 설레기시작함으로 나는얼는 여러분과 갈라져서 京釜線車속으로 ᄯᅱ어들어엇다. 아모조록 一秒동안이라도 내가나서 자라든 이땅의 흙을 더 밟어보고 ᄯᅩ 이날이ᄯᅢᄭᅡ지 尊敬하며 信賴하여오든 여러벗의 ᄯᅡ듯한손목을 더붓잡어보고십흔생각이야 불붓듯나는터이나 그것이 도로혀 ᄯᅥ나는나에게견디기어려운 괴로움을 준다하면엇저랴. 汽車는 ᄭᅳᆺᄭᅳᆺ내ᄯᅥ난다. 輝煌한 傳燈속에 明滅하는 崇禮門의 웃득소는巨獄의그림자를 남겨노코 汽車는 南으로南으로작고ᄯᅥ난다.

나는 아예 보지 말자고 ᄭᅩᆨ감악든눈을 참지못하여 다시한번ᄯᅥ서 그南大門이 서고잇슬 하늘우를 쳐다보면서 속으로 긔어히 다시한번살아와서 저門을처다보자고 맹세하엿다. 아모저나 가는 몸이라 그리운조선이여 잘잇슬지어다. 그동안에 아모조록 크고 건강하고 배움이만허서조고마한 이몸이 가져다드리는뒷날의선물을웃고바더주소서.

◈ 太平洋上의 月光 ◈

東京, 大阪에서 며칠지내다가 六月十六日아츰에 橫濱를 ᄯᅥ나는 太洋丸에 몸을싯고 布哇로 向하는길에올랏다. 배는 ᄭᅫ 컷다.二萬二千톤ᄶᅡ리라한즉 실로 海上의 山獄가튼큰浮城이라할것이다드른즉 三等客은 아츰여덟 뎜전에 올너야하고 一等客은열한뎜 ᄯᅩ 우리가튼 二等客은 아홉시ᄭᅡ지에올러야한다기에 橫濱海岸通에서 航海에必要한 물건몃가지를 사들고 우리父女는뎡각ᄭᅡ지에 배칸에 분주히오르니 그큰배도벌서손님으로 가득 찻섯다.

열한시반이되자 太平洋저ᄶᅩᆨ으로 가는 郵便을가득실은 郵便船이 포々포하고 奔走히 本船에 달려와서 荷物을 실어버리더니 배는곳汽笛을 울니면서 ᄯᅥ나기시작하엿다. 東京에서와주신 몃몃분을 作別하려고 貞淑이와함ᄭᅦ 甲阪에나서니 그너른埠頭에는 우리배의 손님을 作別하려온사람들로가득찻다. 아마三千名은거이될것갓다. 그사람들이 모다 빨갓고 노랏코푸른 조히를 한ᄭᅳᆺ을갈나쥐고 배가ᄯᅥ남에ᄯᅡ라 그줄이 점々풀니어 바다우으로 五色무지개가치 둥실둥실 펴저질ᄯᅢ보내는사람은 가는사람의건강을빌어만세를부르고 ᄯᅩ배우의사람은 배아래사람을향하야 잘잇거라라고 웨치는소리에 橫濱의한울은 흔들닐지경이엇다. 앗가 甲板우에서 서로몸을부둥켜안고 그러케 갈나지기를 애처러워하든 西洋人老婆도 이제는 할수업다는드시 埠頭에 파리대가리가치 아물거리는 餞送客을 바라보다가 물결우로 지나가는 물새들에게 눈을주고만다. 생각하면 橫濱바다물은 날마다 數업시 보내고가는 東西洋사람의 離別눈물로 開港六十餘年에 數尺이나 水深이 깁허젓스리라아지못게라. 米洲나 歐羅巴로간 우리兄弟도만흐니 조선사람의눈물도몃촌이나 이水深을 깁게하엿는가.

이제부터는 純全히 海洋生活이다. 日本의 房總半島조차 水平線저ᄶᅩᆨ에 사라지자 어디를보아도 파-란바다물결ᄲᅮᆫ이다. 바다에오면 山이그립고 山에오면 바다가 그립다던가. 秀麗한 山岳을 날마다처다보며자라든나는 바다가 엇더케나 갑갑한지모르겟다. 해는벌서 져버렷다. 해조차 西山을넘지안고 西海를넘는것이 엇전지섭섭하다. 아무러튼 이제는 이바다물결과 싸우면서 三千三百十浬의水路를가야하겟다. 이배의 速力이 한時間에 十五海里씩이라한즉 하로에 잘가야 三百六十浬밧게못갈터이니 에그 그러면 布哇ᄭᅡ지 가자면 십삼사일동안이나 걸려야할모양이다. 엇더케十餘日을 陸地를 못보고사라가나?

◈ 船室의 英語工夫 ◈

남들은 海上生活을 모다 朝飯먹고 運動하고 音樂을듯고 ᄯᅡᆫ쓰를하고 活動寫眞을보고 ᄯᅩ밥먹고 자는것으로 지내는모양이나 나는 語學工夫에 밤낫 船室문을 다더걸고 ᄯᅡᆷ을 ᄲᅢ엇다. 英語야 靑年時節에 漢城外國語學校에서 나슌날 五券程度를 배웟고그뒤에도 英美法德에갈생각을품고 二個年동안이나 서울某英人몃헤서 個人敎授를밧엇스며 ᄯᅩ 東京가서도 明治大學에 다닐 ᄯᅢ에 法律外에 語學에은근히 힘을써서 그ᄯᅢ만해도 英字新聞ᄶᅳᆷ은 ᄭᅥ리ᄭᅵᆷ이업시보아왓섯지만은그동안에 노흔지하도오래되어서 이제는 밥먹으란말도외우지못할地境이다. 이러코애 엇더케 西洋가서코큰碧眼奴의行世를 하랴고 美國桑港에내릴때ᄭᅡ지 熱心으로 獨習하기로하엿다. 그야 出發前二個月間을 서울에서 英語專攻을 다시하엿스나 아직수집어서英美人을 붓잡고 말을거러볼 勇氣조차나서지를 안엇섯다.

語學에 疲困한머리를 쉬이려고 밤에甲板에 나가면 檣頭에 一輪明月이 걸닌것이정말조왓다. 江天一色無織廘 皎々明月孤月輪이라고 張若虛가 녯날에 읇헛다더니 實로 그런光景은 中國의洞庭湖가튼 月光에서 차즐것이아니라 九萬里長空아래 ᄭᅳᆺ업시 벌려진 이런太平洋大海上의 月景에서 읊허질것인가한다.

그러나 이러케 달 구경이 하도조타가도 갑작히 검문그름ᄶᅡᆼ이 海洋을덥흐면서 산가튼 波濤가 배를삼킬드시 猛烈히 船倉을 ᄯᅡ릴ᄯᅢ에는정말壯絶慘絶하다기보다 肝이 말나드는것갓기도하다. 아모리 鐵甲船이라도 自然의 暴威아래에 머리가들니랴性이急한분은 하로에도 몃번씩 破船을 생각하고 하느님ᄭᅦ 긔도드리는것ᄭᅡ지보앗다. 그러나 正直하게말하면 나는 破船을 當하여보앗스면 조켓다. 그러케 生命의 絶大한威脅을밧어본다면 膽力이 그야말로 鐵石가치 다저지리라. 내생각에는 破船이된다하여도 나만은 배창의 널문을 ᄯᅳ더 허리에ᄭᅡᆯ고 勇敢스럽게헤염을처서 뒤에無線電信을밧고달려오는救助船에 救命이될상십흐다. 그러타면 이紀行文도 多少滋味잇서지련만은 앗불사 이것도 늙은靑春의 한 ᄯᅢ에그리는 로맨틱한 畵幅인가.
歐美名士와會議中의許憲氏 (右로부터 둘재번)

◈ 富裕한 布哇兄弟生活 ◈

日本을 ᄯᅥ난 지 열나흘만인 一九二六年六月二十九日아츰에 그립든布哇의「호놀룰루」港口에到着하엿다. 無線電信을 밧어고 그곳 民團總會長崔昌惠, 基督敎中央敎會牧師閔贊鎬, 洪韓植, 年前故國訪問으로오섯든 金누듸아女史等諸氏를 爲始하야 同胞多數가 埠頭에ᄭᅡ지나와 우리父女를반갑게마저주엇다. 그모양이 엇더케도 진정이고 熱烈한지 그냥귀를맛잡고 삼삼도라가며 입을 마출디경이다나도故國에도라온드시 엇더케나깁분지 ᄯᅱ고십헛다.

여기에서 나는 開發會社以來 特別한關係를 가지고잇는 布哇諸島를 暫間紹介하여보아야하겟다.

布哇라함은 太平洋上의 한복판에 콩알만한 섬여덜개가 모여서 된곳이니 비록 面積은 六千平方哩라는 큰고양이이마ᄲᅡᆨ에不過하지만은 軍事上政治上은 무를것도업고 亞細亞와歐羅巴, 米州와東洋을 다니는 交易上重要한곳이되어 有名한곳이다. 島內人口二十四萬中 우리사람은 약七千名잇고 中國人도 數萬이잇고 日本人도 約十萬이나잇다. 그외에 英米人이나 葡萄牙, 比律賓, 印度,布哇人等各國種族이 모다모여와사는데 主權이美國에 잇기는하나 우리사람들은 土地所有權이나 市民權도 가지고잇어서 生活이 豊裕할ᄲᅮᆫ더러 社會的으로도 各國人에比하야 優勢한地位를 가지고잇엇다. 그러고 敎育과 社會施設의 完備에는 놀랏스니 美國立의 公私立學校數가 三百三十餘校, 敎員數千八百二十餘名, 學生四萬二千七十餘名이며 ᄯᅩ中學校가 七校, 大學이二校以外에 圖書館幼稚園等이 處處에잇엇다. 布哇의 首都인「호놀룰루」라는 港口는 市街의壯麗한것이 놀랄만한데 人口는 서울의 四分一李羅되는七萬餘名이 산다고한다여기 우리사람들도 白人과 마조안저 크나큰 商舖도 버리고여러층洋屋도 쓰고 살며 (略)

나는 여기에서 여러분이 請하는대로 僑民團과 靑年會와 敎會堂을 도라다니며고국사정도 이약이하며 우리일에대하야 數次演設도하엿다. 그곳에서약열흘동안을 묵는사이에 「호놀룰루」ᄲᅮᆫ아니라 各處로도라다니며 演說한度數가 아마 數十次는 되엇슬것이다. (中略)

나는 美國大學을 卒業하고온 우리나라女學生을만낫으나 그분이말을몰라 通譯을세우고 겨우 問答을하엿슬ᄯᅢ에는엇전지 제나라말을몰라주는것이야속하기도하고 서운한생각이나더라. 그敎會學校의 成長을비는마음은 내가布哇를ᄯᅥ난뒤오늘ᄭᅡ지 사라지지아니한다.

◈ 美國으로 美國으로 ◈

「아이스크림」에다가 ᄲᅡ나나를 복구어서먹는맛과 그곳 特産果實인 「ᄲᅡᄲᅡ이아」나 「망고-」나 입에드러가면 녹아버릴듯한「ᄲᅦ아-」가튼맛나는 과일로 여러날 食味를 자랑하다가 ᄯᅩ 布哇兄弟姉妹의살을버여줄듯한 親切한 待遇에 心身을녹이다가 ᄯᅩ生於長을 그곳에서한 學童들이 故國으로 대려다달라고 졸느는애처러운 情義속에서 지내다가 우리들은 七月八日에 닛처지지아니하는 布哇를뒤에두고할수업시美國을 向하야 ᄯᅩ배를탓다.

그ᄯᅢ 埠頭에서 餞別하여주든 光景이야 내가 棺속에든들 니처지랴. 그러나 나는 布哇에對하야 하고십흔말이 山과이가치만흐면서도아모말도 못하고마는것을이에슬퍼아이할수업다.

더구나 어린아이들이 발을동동구르며 날더러 金剛山이고 서울이약이를더하여달라고조늘ᄯᅢ에알수업게 목이메이는듯한 무슨壓迫을밧게되드란말도 모다 避하는것이여기에는조켓다.

우리가 탄 美國桑港가는배는 무슨大統領의 일흠을 ᄯᅡ온 三萬餘噸ᄶᅡ리배인데妙齡의 白人女子들이 엇더케나만히 탓는지食堂에나 甲板우의運動場이나 舞蹈室에드러가보면 男性禁制가 아닌가하리만치 ᄭᅩᆺ가치 어엽분녀자들이 가득차서 재ᄭᅡᆯ거리고잇는것이실로壯觀이다. 그藤椅子에 걸터안저대패로 민듯 간듯하게생긴두종강이를내어노코방글방글 우서가며 저이ᄭᅵ리 속살거리는그모양을바라보면 「브라우닝」이라는 英詩人이

아아 다시졂어지어
연애하고십다
다시한번만사랑하고십다

하고 부르짓든모양으로ᄯᅩ「ᄭᅦ-톄」의「파우스트」가「메피스트」의힘을빌어다 시靑春이되어즐기드시나도한번만졂지고십흔행각에 가슴이탄다. 어엽분녀자란 남의가슴을 집어ᄯᅳᆺ는것이 天職인모양으로 太平洋上의船中에서 나는 한참 ᄯᅡᆷ을ᄲᅢ엇다.

그러나 나비가튼그네들을 만남으로 나는 졂어지기는 고사하고 오히려늙어지지나안는가呵呵.

ᄭᅮᆷ과 현실의 허크러진 실마리속에서 이레동안을 지낸 七月十四日이되니 우리배는 太平洋岸의 代表都市 桑港에 到着하엿다. 일로부터 나의발길은 黃金의나라 物質文明至上의나라 資本主義最高峯의나라 女子의 나라 享樂의나라 自動車의나라인 北米合衆國 ᄯᅡᆼ을밟게되엇다. (繼續=文責在記者)


名文章 동무의 葬送辭

失名氏

三月十四日에 現存하는 最大의思想家는 생각하기를 ᄭᅳᆺ치엇다. 實로 約二分동안밧게 더 아니되게 그를 혼자내두엇건만은우리들이 다시방안으로 도라왓슬ᄯᅢ는 벌서 安樂椅子속에서 고요히 잠들고잇섯다. 단지 永遠히.

구라파급 아메리카의 만흔우리동무들이 ᄯᅩ는 歷史哲學이 이사람에게서 무엇을일엇는가. 그것은 실로 측량할수업다. 이巨人의「죽음」에의하야 ᄯᅮᆯ어진구멍은 죽시ᄭᅢ달어질터이지.

「ᄯᅡ-윈」이 有機的自然의 發展의法則을發見한것과가티 그는 人間의歷史의 發展法則을發見하엿다. 이法則이라 함은 從來過度의 觀念的繁茂의 아래에 隱弊되엇든 以下의 簡單한 事實이엇다. 卽人類는 政治, 科學, 藝術, 宗敎等의 生活을 하기전에 무엇보다도몬저 먹고 마이고 입지안으면안된다. ᄯᅡ라서 直接의 物質的生活紫蓼의 生産이, 그ᄯᅢ문에 엇든民族, 엇든時代의 그ᄯᅢ그ᄯᅢ의 經濟的發達段階가 當該人類의 國家制度, 法律思想, 藝術幷宗敎的觀念까지 發達식힌 基礎이며 ᄯᅡ라서 이모든것은 이基礎로부터 說明함을要한다는從來하여오든것과가치 그逆이되어서는 안된다라 하는 事實이그것이다. (中略) 그러니ᄭᅡ 그는 當時에잇서서 가장 미움을밧고 가장 誹謗을밧엇든 사람이다.X는 그들를追放하고X는 다투어中傷陷誣하엿다. 그는 이모든것을 거미둥주리가치 치어버리고 그를齒牙에도 아니걸치고 다만 할수헐수업는ᄯᅢ에만 그에 對答하엿다. 그리고 그는 서백리아鑛山에서 전구라파급 아메리ᄭᅡ를 넘어서「칼포니아」에 이르기ᄭᅡ지 수백만의 동무들에게 尊敬되엇고 사랑을밧엇고 술품을밧으면서 죽엇다. 그리고 나는 敢히 이러케斷言할수잇다. 만약그가만흔 敵을 가젓다할지라도 그러나 個人的적은 거이한사람도 가지지안엇섯다. 그리고 그의 일홈은 數世紀를通하야 不朽하여질것이겟지. 그리고 그의사업도 ᄯᅩ한.

自 敍 傳

洪 命 喜

緖 言

나는自敍傳을지을만한自負心이업는사람이다. 엇지하야自負心이업시自敍傳을짓게되엇는가? 대답으로한가지弱點을自白할것이잇다. 나는고집을세우지못하는弱點을가젓다. 어릴ᄯᅢ악지는말하지말고라도 二十時節ᄭᅡ지 좀처럼남에게지지아니하든내가 어느틈에이弱點을가지게되엇는가? 고집을惡德으로ᄭᅦ달어서修養한結果인가하면 그러치도아니하다. 내가世變을격게된뒤로不知不識間에性質이變化되어紛競心이줄어지고自信力이적어저서이弱點이생기기시작한것이다. 지금은이弱點을矯正하랴고多少意識的努力을더하건만 二十餘年의구든버릇이좀처럼고처지지아니하야나날이 크고적은損을보고지내는중이다. 巴人이自敍傳을쓰라고ᄭᅬ일ᄯᅢ에 나는謝絶하얏다巴人은根氣잇는사람이라 내노흔말을거더치우지아니하고 나를성가시게한다는이보담 자긔가성가시신것을참고 ᄭᅬ인뒤에졸르고 졸른뒤에욱이어서 나는마침내謝絶할勇氣를닐코自敍傳명색을짓겟다고承諾하얏다. 구경말하자면 나의가진弱點이나에게損을ᄭᅵ친것이다損은무슨損인가? 『툴게니에프』의發見한處世秘術이 나의弱點을숨기고그弱點으로남을攻擊하는것인데 이만弱點이라도自白하게되는것부터 나에게損이아니고무엇일가? 이것은실업슨말이다. 이왕承諾한바에 自敍傳을엇더케지을가? 苦心焦思하느라고 精力과時間을함ᄭᅦ浪費하얏다. 룻소의「懺悔錄」을본바더過去를赤裸々하게告白할가? 最後裁判에證據書類로提供할것은ᄭᅮᆷ에도생각지안는일이지만 룻소의赤裸々도徹底하지못하다거니 룻소만한決心도업는위인이 섯부리붓질하다가는남의우슴거리만될ᄲᅮᆫ이고 늬이체의「에츠 호모」를흉내내어 哲人的氣焰을吐할가? 알푸스高峯에서高峯으로ᄯᅱ업질할주제가아니니 황씨뱁씨의實例를하나더할ᄲᅮᆫ이다나는크로포트킨의「革命家의지난생각」을보왓고고트로츠키의「脫走記」를보왓고片山의「自敍傳」을보왓고 ᄯᅩ增大衫等人物의「自敍傳」이잇다는말을들엇다. 듣고본것을생각할수록 自敍傳과밋種類의文字는平凡한人物의지을것이아니거니하는생각이압플서서自敍傳을지을勇氣가업서젓다. 謝絶할勇氣가업서짓기로하고 지을勇氣가업서짓지못하고 헛도이時日만延拖하노라니 困境이다 할수업시Woud-be라고形容詞부터부처노코自敍傳을짓기시작한다. 오늘날나의몸이四十餘年間지나오는길에數多한解皮를머물럿스니 그解皮들中에크게보이는것만을주서보랴고한다. 解皮에김을너흐면 稚氣잇는자랑이나올것이고 解皮에채질을더하면掩蔽한羞恥가들어날것이다만초센男爵의바람을ᄶᅩᆺ고자하지아니하니헛김을너허서 남의우슴을살리업고 ᄯᅩ리안, 그레이의畵像을칼질하랴아니하니 채질을혹독히하야 나의苦痛을더할리업슬터이다. 그리한즉명색自敍傳은 解皮를주섯다노핫다하며 拙劣한그림가티그리는데지나지못할것이니 拙劣한中에더욱더拙劣하게될것은 巴人에게손목을잡히고그리는ᄭᅡ닭이다.

幼少年時代

내가세상에난뒤세살되는해에 어머니가돌아가고 증조부가돌아가고 여섯달되든해에할머니가돌아갓다. 네살에 새어머니가생기엇스나 나는중조모와대고모손에서자라낫다 조모를아래ㅅ방할머니라고불르고 중조모를안방할머니라고불럿는데 훨신자란뒤에 중조모가안방을내노코대방으로옴기게되어서 안방할머니란칭호를대방할머니라고고치엇다그러나그ᄯᅢ는조모가돌아간뒤라 거처하는방으로할머니를구별할필요가업섯ᄭᅡ닭에 그저 할머니라고불르기를만히하얏다. 대고모는ᄭᅩᄭᅡ어머니라고불럿스니이칭호는내가세살인가네살ᄯᅢ에 대고모가그며누리신부례ㅅ날새옷닙은것을보고 ᄭᅩᄭᅡ옷닙엇다고지어댄것이라고한다. 그뒤로ᄭᅩᄭᅡ어머니외에대고부를ᄭᅩᄭᅡ아버지라고불를ᄲᅮᆫ아니라 그아들내외ᄭᅡ지ᄭᅩᄭᅡ아저씨ᄭᅩᄭᅡ아주머니라고불럿섯다. ᄭᅩᄭᅡ어머니에게가서놀고혹자기도하기는 륙칠세된뒤에일이지만 그전에는안방할머니압흘ᄯᅥ나지아니하얏다. 나는몰랏지만나중에말을들으니 그해증조모가 어미업는증손자를길르느라고 애쓴것은이로다말할수가없섯다. 젓어더먹이는것만도여간일이아니엇는데 어린내가몸이약하고병이자저서 밤잠을편히잔날이드물엇다. 증조모가 만년ᄭᅡ지도잠이들ᄯᅢ는항상보기에도거북하게고개를뒤로저치는데이것이 어린나를압헤누이고잘ᄯᅢ입김이혹시얼골에ᄭᅵ칠가하야고개를뒤로저치기시작한것이인해 버릇이된것이엇다. 우의아버지로부터아래우리여러형제가모다 할머니손ᄯᅢ로 자라낫건마는 내가편벽되게망극한은혜를닙은것은 나의처지가그러케한것이다.
東京留學當時의 洪命喜氏 (右)
내가다섯살되든해에입학한다고 비로소천자를 배무기시작하얏다. 그전에도조부가조히ᄶᅩᆨ에써주는것으로天地日月父母兄弟가튼글자는벌서알엇섯다. 그러나원래병이자진데다가 응석으로자라서 공부는성실할ᄭᅡ닭이업섯다. 여덜살되는해에 비로소소학을배우기시작하고 글짓는다고다섯자모하말만드는것을배웟다. 나에게할머니와ᄭᅩᄭᅡ어머니가잇는ᄭᅡ닭으로 어머니업는것이슯흔줄몰으든것을 어머니가나는나흔뒤에 산후탈이병이되어삼년을ᄭᅳᆯ다 돌아갓다어머니가 돌아갈림시에어린나에게젓을물리고 이내는어미얼골도몰을것이다 하고말슴하얏다. 여러가지지로어머니의말을해들리어서 나의눈에서 어머니 생각하는눈물이 ᄯᅥᆯ어지기시작하야 「蒼蠅年年生吾母何不歸」다섯자를모흔것이 말하자면 나의漢詩짓기시작이다. 그러나韻를 달줄알고 高低를볼줄짐작하기는 열한두살된뒤의일이엇다. 열서너너덧살적인가한다. 아버지가 선생님외몃분어른과가티 咏雪詩를짓는데 엽헤잇든나를보고 너도한수지어보라고말슴하야 그ᄯᅢ지은五律두聯句가 「何如花落後疑是月生物初飄蕩爭侵夜虛明可映書」다. 書字가雪詩에强이라고말슴하든아버지가 虛明句가조타고稱讚하야 나는無上한榮光을닙은것가티생각하얏다. 어릴ᄯᅢ부터 집안에무서운어른이업시자라든나에게 아버지가오즉하나무서운사람이엇다. 나이륙칠년우되는고모와 이년저년하고싸우면 할머니나 ᄭᅩᄭᅡ어머니는 웃고내버려둘ᄲᅮᆫ이아니라 고모가나에게손직엄할때나를역성들어주지마는 아버지는 내가잘햇거나못햇거나 나를볼ᄯᅢ눈쌀이곱지못하얏다. 그리하야 나늘아버지를ᄭᅳ리엇다. 지금생각하면별로신신치도못한詩句을 내가아즉도기억하고잇는것은난생처음으로아버지에게칭찬을바든ᄭᅡ닭이다. 내가열한살적일에 두가지이치지안는것이잇다. 한가지는도적질에혼이난것이요 ᄯᅩ한가지는소설에맛을드린것이다. 도적질은 조부뫼시고잇는사람의집에서 훔친것이니 지금도그ᄯᅢ광경이력력이생각난다. 저녁ᄯᅢ사랑뒤로 자근집에를놀러갓다가 돌아오랴고문을나섯더니 그사람이담배ㅅ대를물고 자긔집삽작밧게서거닐다가 나를보고 「아가 우리집에 놀러오지아니하나」하고불러서 그사람의집에잠간들어가게되엇는데 그사람이 이것저것구경을시키는중에 샐쭉안경하나를구경시키엇다. 그 샐쭉안경이서울집에서막걸리안주로주는것이나 그때나는 처음보는것이라 탐이낫섯다. 그사람이「아가 써보아라」하고쓰이어주기까지하얏스나 아주는주지아니하얏다뒤에 생각하니아마앗가워주지 안흔것이아니라 소용업다고주지안흔모양이엇다. 그사람이조부에게불리어가고 그사람의아들과들어안젓다가 그사람의아들이소변인지대변인지보려나간사이에 나는안경을훔쳐가지고도망하야나왓다그사람의아들이 뒤를쪼차오며 「왜 우리아버지안경을훔쳐가지고가느냐!」하고소리를질를ᄯᅢ 나는혼이낫섯다. 안경을방안모통이에잇는 이웃집채마밧에내던지고서서 그사람의아들을보고 「저밧속에들어가서차저가거라」하고 한달음에집으로돌아왓다. 할머니에게는긔이는일이업섯건만 이일만은말하지안한줄로記憶한다. 그러나이일이내게는큰敎訓이되어서 그 뒤로는탐나는물건은보면몬저샐쭉안경이생각나서훔칠엄두를감히내지못하얏다. 소설은그해정월노는ᄯᅢ에 대고모부의집에서 삼국지한길을빌어다노코 첫권서부터두서너권은 집안로인한분과가티보왓다는이보담 배웟고 그다음십여권은나혼자서보왓다. 물론개가머루먹듯한것이라 몰으는것이아는것보담더만핫지만, (趙子龍綽鎗上馬)를신이나게보왓섯다. 이십권책을건성으로다본것은 닭의귀신날이지나서 다시글을배우기시작한뒤라 선생님에게 고만보란말을들은줄로記憶한다. 그뒤로는길래小說보기에반하야論語 孟子보담도 東周列國志 西漢演義等屬을耽讀하게되엇든것이다. 그러나우리집에는 小說書類가별로업슬ᄲᅮᆫ이아니라 어른몰래보는ᄭᅵ닭에 열네살에서울올라온뒤에 친구들에게서빌어다본것이만핫섯다. 그ᄯᅢ도文理不足한나로서 水滸傳 西遊記 더구나 金甁梅가튼것을엇더케보왓든지 疑者闕之도程度가잇 지全文闕之에 무슨맛이잇섯든지 그래도밥먹을줄몰으고본것이 장관의일이다. 열세살에장가들고 열네살에서울로올라와서 열다섯살에 中橋義塾이란學校에 단니게되엇다. 지금은學校에 아니단니는것이變이지만 그ᄯᅢ는學校에 단니는것이變이엿다. 그런데 頑固한우리家庭에서 엇지하야 學校에보내게되엇든가? 박그로는當時中橋義塾의塾監이 조부가상업지안케녀기는사람이라 그가조부를권하고 안으로는아버지가時勢에對한眼識이잇는터이라 조부에게말슴하얏든것이다. 내가每日學校에갈ᄯᅢ는조부가 二錢 五厘白銅한닙식을 주는데 무엇에쓰라는말이업섯다이것이나의卷烟가튼糧食資本이엇다. 그리하고學校에서돌아와서는 間々히 조부의명령으로 그압헤가서 アイウエオ를외어들리고 ᄯᅩ亞剌比亞數字를써보이엇다. 조부는다듯고다보고나서그게다무엇인고」하고우슬때가만핫고혹시 맘에불만한일이잇스면「메돗잡으랴다 집돗노치겟다 글이나닑을 걸그려는가부다」하고시언치안케말슴할ᄯᅢ도잇섯다. 하여튼지 나는만삼년동안학교를단니어서 日語科를卒業도하고그해시골로나렷갓다. 그때나의나이발서열여덜이엇다. (繼續)

동무를 부름   丁 七 星
나의 사랑하는 동무들은 모다 어듸가잇느냐살엇느냐죽엇느냐 죽엇드래도 지나가는 동남풍에조차소식이잇스련만은 지금은 五月이다. 산과들에는죽엇든풀들이 다시청청하여지고 파란하늘에도 날개를 우산발가치 버린 새들의 노래소리가 가득찻다. 동무야 그대도 저하늘을 이고섯다면 날과가치 물이오르는저草木과 귀에간지러운 저새소리를 듯고니젓든 녯날의터전과 동무생각에 가슴을 조이고잇스련만은 내목소리가 통하지안는것을보면 동무야 그대는 퍽으나 머나먼곳에가잇는듯하다. 水路千里에陸路千里라면 생렴도내기어려운일이지만은만약 한오백리길에 그대가잇다면 얼는 다라가 맛나고오지안으랴. 정말올봄에는 동무가 그립다. 멀니나간동무생각에 가슴이 쓰리다 (六頁削)
조선의 오월의 하늘은 정말맑기도하다. 저기힌구름한쪽이 西으로西으로 體操하면서 간다. 동무여 어대에서 하늘우에 體操하며 西으로西으로가는 구름덩어리가 보이거든 올타꾸나 조선의ᄯᅡᆼ우에어린동무가저구름밋헤서 멀니온 나를생각하고잇거니하고 긔억이나하여주게 그런데여보게들엇더케 조선으로도라들못오겟는가. 일을위하여 어서도라왓스면 얼마나반가울가? 일긔조흔 첫녀름을 당함애 밧게나간 동무생각이정말간절쿠나.

우리의 恩人


申 興 雨

近代의 四恩人

잠자는 우리들을 ᄭᅢ우처이르켜주면서 살길을 가르처준 사람들을 우리는 조선급조선인의 은인이라불러조흘것이다. 실로近代朝鮮史上에는 그분네들의 足跡조차 이ᄯᅡᆼ에 印치지안엇든들 이우에 더엇더케나되엇슬가하고 새삼스럽게 思慕되는 고마운이가 한두분이아니다. 이제나는 그중에도가장 우리의 感謝의標的이 되어조흘外國人士몃분을 紹介하건대 培材學堂의 창설자아편설라(現校長의父)와 延禧專門學校의創設者원두우(現副校長의父)와 美國의「헐벗트」博士와 세부란쓰醫學專門學校의 功勞者魚비信의四氏가 바로그이들이다. 不幸히 아편설라氏와 원두우博士는 이세상울ᄯᅥ난지이미오래엇스나 헐벗트氏와 어비싱氏만은 아직도美國或은 朝鮮에잇서서 우리를爲하야 ᄭᅮ준한努力을앗기지안코잇다. 아마 前記四氏의功勞에對하여는 이미世上에서 다잘알것임으로 여기에는극히간단하게소개하건대 아편설라氏는 朝鮮이 아직 鎖國의迷夢속에 깁히 잠드러잇든 一八八五年에 宗敎宣布를目的한 宣敎師의 몸으로入國하야 첫事業으로 京城에 培材學堂이라는 近世敎育의新學府를 創設하여노코 俊才를모아 地理歷史物理化學等온갓 自然科學을 敎授하는한편 世界의大勢와 朝鮮의將來에對하야 滔滔數萬言으로 日夜設破하기를 마지안어서 暗히 破舊革新的思想의 鼓吹에 盡力하엿스니 氏의 그熱熱하고도 健全한精神的 敎育의感化로 異日에 일홈을날닌이가하도만하엿다. 즉 李承晩 尹致昊 布哇의閔讚鎬吳兢善 陸定洙等諸氏가 다그ᄯᅢ氏의가르침울밧든靑年學徒들이엇다. 엇지 數育方面에만그려하랴. 朝鮮에서처음 新聞이란것이 나오기도培材學堂의 氏의손으로부터요 靑年會니 무슨會니하는 近代式會合도 氏의組織이 矯矢되엇섯고 심지어벽돌집建築ᄭᅡ지 처음이엇스니 실로 當時의朝鮮社會에잇서서는 培材學堂과 아편설라氏의두存在는 크나큰驚異요 따라서近代文明史上에ᄭᅵ친 가장큰 貢獻者中의 하나이라할것이다.

悲壯한 最后

그ᄲᅮᆫ더러 氏가이세상을 버리든 最后瞬間은 人道的殉情的의 悲壯하고도 崇高한光景에가득찻섯스니 氏는 一九○二年녀름에 볼일이잇서 一朝鮮少女를다리고 仁川에서배를타고 本浦로向하엿다. 그女子라함은 서울某女學校의 女學生이라 夏期休暇로 歸鄕 途中이엇는데 마츰 그女子의學父兄의 依囑도잇슴으로 아氏가 保護者모양으로 그女學生을다리고 同船航海하엿든것이다. 仁川解纜后數時間에 그만有名한黃海바다의 激浪과濃霧ᄯᅢ문에 저ᄶᅩᆨ으로부터올라오는배와아氏가탄汽船이衡突되어 삽시간에 이ᄶᅩᆨ汽船은 沈沒되게되엇다. 그ᄯᅢ多幸히 氏는 웃甲板에잇섯슴으로 다른救助船에얼는올라타서 數百의溺死者中에서 生命만은간신히無事함을엇게되엇다. 그러나 仝行이든그女學生은 밋헤甲板에잇섯든關係로 미처ᄯᅱ어나올사이도업시 漸漸沈沒하는 船體와함ᄭᅦ 물속에 全身을잠그고잇섯다. 그 녀자의피를吐하는듯한 絶望的부르지즘을드르며 처음은 다리가잠기고 그 다음은 허리가잠기고 이제는 억개우만 물우에 간듯간듯거리면서 ᄭᅥ저드러가는그모양을 바라볼ᄯᅢ에 아氏의 피는人道的氣稟에一時에ᄯᅱ엇다. 그는前后不覺으로 沈沒하는 船體를向하여 몸을날려 怒濤 中에잠기더니 한참만에 그女學生의 身邊에이르러이에 海藻가치 바다우에ᄯᅳᆫ 녀자의머리ᄭᅡᆯ을감어쥔모양이나 너무도 여러시간을물결과싸운몸이라 그만 소음가치 맥이 풀니면서그自身까지 女學生과가치 千尋海底에 水葬지내고 말엇다. 生하야 朝鮮의文物을爲하고 死하야千世에 壯烈한 記憶을 이ᄯᅡᆼ사람의가슴속에주는이를우리는 確實히 氏에서 본다.

바벨塔을 싸은이들

魚博士와 世醫專
그다음에 元杜宇氏로말하면 氏도 아편설라씨와가치 一八八五年에 入國하엿다가 一九一七年에 美本國에 도라가서 이世上을ᄯᅥ난분인데 氏도 朝鮮敎育界에 貢獻이 만흔이라 數千의英才를 培養하여낸現儆新學校의創立者일ᄲᅮᆫ더러 晩年에는 ᄯᅩ聯立大學의必要를늣기고 培材學堂大學部와 儆新學校의一部分을어울러서 延禧專門을만든것도氏엇스니 이른바 當時의最高學府의産母는 元杜宇氏라. 그ᄲᅮᆫ아이라 臨終에이르기ᄭᅡ지特別히 朝鮮을잘理解하고 恒常好意的著述을 만히ᄭᅵ처주엇슬ᄲᅮᆫ더러 飜譯의才分이卓越하야우리글을 外國語로 ᄯᅩ外國著作을우리말로 飜譯하여노아서 東西文明의 交流를策한바만하엿스니 실로近世의朝鮮文明이라는 바벨塔을 짓기에 氏도 重要한 礎石 여러개를 노앗다할것이다.

그리고 魚信博士는 尾局의 財産家「세브란쓰」氏를 움즉이어 돈一萬弗을가저다가隆熙時代의 王室病院의 后身이든 濟衆院을 마터가지고 醫學專門學校를創設하는 한편 貧窮한病者들을 無料治療하야民族保健上에 實로 헤기어러운 功績을ᄭᅵ치어 주엇다. 只今도 세부란쓰醫專은 每年經費三五萬圓中에 一五萬圓은 美本國으로부터 補租를어더다가쓰고잇다하며 ᄯᅩ 數萬名을헤이는 窮民患者를 治療하기에 每年七萬餘圓의 巨額을消費한다고한다.

그분이 朝鮮에왓기에 多數한醫學者를養하여내엇고 그분이 醫療方面에投身하엿기에數萬의病者가 救濟되엇거니하면 실로 感謝한 마음을 禁할길이업다. 何必朝鮮에 醫療機關이 업다는것은아니지만그래도 그분네들의 誠意가 엇더케나 크고 고마우냐.

著書의 頗多

最后로「헐버트」博士로말하건대 氏는 아메리카西部뉴-헤부네스地方의出生으로一八八四年에「닷트마우드」大學을 卒業하고녯날 이나라政府의 招聘을 바더서 一八八六年에 朝鮮으로건너온분이라. 아직 京釜鐵道조차 노이지아니한 滿目荒凉한이거친山川을바라볼ᄯᅢ에 氏의胸中에는 絶望과希望의 感情에ᄭᅳᆯ엇슬것이니 政府가守舊黨의專有物이엇든것은 勿論 生産方法이나 生活方式이 近代物質文明의洗禮를바든 諸外文明國家에比하야 너무도뒤저잇섯든때문이라그래서 氏는 이리하야서는 이民族의將來가 말이아니되겟다하야 처음에着目한곳이 專問使命인 外交及政治方面은더무를것이업스나 그外에敎育에置重하야爲先貴族及官吏子弟를모아 學校를創設하고 泰西文明의注入에 努力하엿다. 그러다가 여기서는 다말을못할 여러가지 風霜을격다가결국 이땅의大勢가 글너진것을살피고 漂然히 자긔나라에도라갓스니 그것이 卽一九○五年이엇다. 그래도 博士는 조선에對한 愛慕를일치안코서 本國에건너간뒤로도 敎育機關或科學機關을利用하야 그의稀世의雄辨으로 東洋特히朝鮮의 政治, 經濟, 宗敎, 歷史等各方面의 事情을 遊說하고도라단녓스니 그足跡이 미친곳이 加奈多全幅과 美國의 重要都市를 全部網羅하엿다한다. 이 밧게도 氏는 一代의心血을傾注하야「朝鮮譯使」「朝鮮의過去」「朝鮮語와드라비드語의比較文法」「위자드의엄지」「안개속의얼골」等 實로 貴重한 著作을만히하엿고 最近에도 六十老軀를드러 第六次의 朝鮮에對한 貴重한 述을 하고잇다고 傳한다.

元來 以上四氏中에「헐버트」氏를除하면모다 宗敎頒布의目的으로 入國한분들이라近世歷史에나타난 宣敎師의 任務로推斷하야 그분네의 行績에 不純한解釋을加하려하는분이 잇슬런지모르나 우리는 氏等만은 적어도 除外함이올흘줄아노니 대개氏等은 진신로 아리네의繁榮을爲하여애쓴것을잘아는ᄭᅡ닭이다.

그러기에 우리人士中에서도벌서부터 그努力에 謝意를 表하는意味로 或은 銅製記念像을 그開創地에 建立하엿고 或은 公式會合等을催하야 歡迎等을하여온것이다. 우리들은 諸氏의ᄯᅳᆺ을 記憶하여 ᄭᅮ준히이압흘 ᄭᅮ미기에全力을다할것임을 이機會에다시한번말하여두노라. (文責在記者)

死刑囚의 最后

K 判 事

■死刑執行狀에 ᄭᅳ을니어나온그死刑囚는屈强한 筋肉을가진靑年이엇스나 顔色은蒼白하여젓고눈도 視力이업시 그냥먼-히 ᄯᅳ고만잇섯슬ᄲᅮᆫ이다. 그러나 다른ᄯᅢ의 死刑囚와가치 울며불며 ᄯᅱ는일이업시 도로혀 이상하도록 沈着을 보이고잇섯다. 係官은

「담이 상당히큰데」

라고 속살거렷다.

「死刑囚가 울며불며反抗하면 도로혀執行하기쉬우나 저러틋 沈着하면 엇전지주저 됨니다.」

■死刑執行이 傳達되어 敎戒師가 來世를말하여 天國으로잘가라고 勸하는사이에 그는 눈을 ᄭᅩᆨ감고 고요히 마음속에 무엇울삭이고잇 드시 잠잠하고잇섯다. 係官은

「무엇이나 하고십흔말이업느냐? 무에나慾心나는것이업느냐?」

라고 最後의決心을催促하엿다. 靑年은한참만에 눈을번드시 ᄯᅳ더니

「아모말도할것이업스나 ᄲᅡᆼ「麵麭」를조곰먹고십허」

라고하엿다. 어느程度ᄭᅡ지의 所望에는죽어가는者에對한 조고마한 餞別로 허락하여주는법이엇슴으로 즉시ᄲᅡᆼ은주게 되엇다. 그는그것을바더暫時입에너코 오물오물 씹고잇스나 마치 모래알을 먹는드시 조곰도긔운이라고 업서보엿다.

■겨우그것을 다먹은 死刑囚는 이번에는ᄯᅩ

「담바를 먹고 십다」

라고하엿다. 그것도주엇다. 그는고개를숙이고 조곰식조곰식 담바를ᄲᅡᆯ고잇스나 제가담바를먹는줄도이젓는지 긔운업시 널ᄲᅡᆫ지ᄶᅩᆨ의틈만물ᄭᅳ럼히처다보고잇섯다. 한참만에그것을다먹고나더니 이번에는 ᄯᅩ한개의ᄲᅡᆼ만더달라고하엿다. ᄯᅩᄲᅡᆼ을주니 그는앗가보다도 더맛이업는드시 씹고 잇섯다.

■그ᄲᅡᆼ의 最後의 한ᄶᅩ각을입에녓허니死刑囚는 다시 한목음의 담배를 ᄲᅡᆯ고십다고要求하엿다. 그러나 係官은

「이제는 안된다」

라고拒絶하엿다. 그래도 졸낫스나 如前히 拒絶을當하얏다. 그ᄯᅢ 가린한드시 係官의 한사람이 사형수에게

「엇더냐 맛이 잇더냐」

라고물엇다. 그말에 死刑囚는 긔운업는소리로 自己自身을 嘲笑나하는모양으로말을던젓다.

「ᄲᅡᆼ이나 담배나 조곰도 맛은업섯소. 그러나 ᄲᅡᆼ을 다먹고나면 죽겟거니생각하면 무에나먹지안코는 견듸지못하겟소.」

■最後에 ᄯᅩ한개의 ᄲᅡᆼ을 주엇스나 한참 그것을 먼히 치어다보고잇더니 점점그의눈빗은빗을ᄯᅴ어 왓다. 불시에 敵에게나하는드시 와직ᄭᅳᆫ 씹어 그것을 얼는 삼켜 버리더니

그리고는눈을감더니 무엇을 배앗는드시 부르지젓다. 「ᄲᅡᆯ니하여주오 ᄲᅡᆯ니ᄲᅡᆯ니...」 (ᄭᅳᆺ)

千古悲劇의 主人公
百濟義慈王의 最後
- 落花岩上의 로-맨쓰 -

文 一 平

一, 大敵의 압박

唐寇가왓다! 唐寇가왓다! 十三萬의唐寇가 바다를건너서 발서西ᄶᅩᆨ德物島에 上陸하엿다.

新羅軍이 온단다! 新羅軍이 온단다! 五萬의新羅軍이 ᄯᅩ東ᄶᅩᆨ으로 온단다.

그리하야 東西兩ᄶᅩᆨ으로 羅唐軍에게 夾攻되여 닐은바背腹으로 敵을밧게되는 危境에 ᄲᅡ진百濟는 왼나라이驚動하야 물ᄭᅳᆯ틋 한다. 이ᄯᅢ義慈王은 急히群臣을불너 御前會議를열고 敵의對策을 물엇스나 蒼黃의際인이만치 議論이百出하야 거의歸一할바를아지못하엿다.

或은 唐寇를 먼저치자 或은 新羅軍을먼저ᄭᅬ하자 ᄯᅩ或은 水陸의要所를 굿게직히자 여기反對하는이는 차라리敵을 좁고險한곳에 몰아녓코 그물에싸인 생선잡듯이 一擧에擊破함이 容易할것이라하매 義慈王ᄭᅡ지도 이말을 도리어 그럴ᄯᅳᆺ하게녁혓다.

그러나 이것이나 저것이나 손쓸새도업시 壓境한大敵은 急潮의勢로써 最後防禦線에 드리밀리게되여 唐寇는 이미白江을지내엿고 新羅軍도ᄯᅩ한 炭峴을 넘어왓다.

膽勇이過人한 義慈王으로도 이ᄯᅢ만은 그膽勇을나타내일사이 업섯스리만큼 羅唐軍事的行動이 電光石火처럼 神速하엿슴으로 百濟는그與國인 高句麗에게 授助를請해보지도못하엿고 高句麗도 百濟의覆滅이 脣亡齒寒의 關係가 잇는줄을번연히 짐작하면서도 援助에밋치지못하엿다. 이가티百濟는 國防上ᄲᅮᆫ만아니라 外交上에도 周到한用意를 缺하게되엿스니 아무리英傑이라도 이二大遺策이잇는 以上에야 慘敗를免하기얼어울 것이 아니냐.

그러나當時東方大勢로보면 高句麗를ᄭᅬ하는 唐이 그側面에잇는百濟를 먼저ᄭᅬ하지안흘수 업슴으로 百濟는早晩俎上의肉이될運命을가젓다. 그럼으로 百濟覆亡의禍가반듯이 義慈王 遊讌에原因한것도 아니오 白江炭峴가튼要所의失守에原因한것도 아니오 그實은唐의高句麗經略에 原因한것임을 알어야하겟다.

二,黃山原의 혈전

義慈王은 將軍堦伯에게命하야 新羅軍을防禦케 하엿다. 堦伯으로말하면 戰國的武人의氣骨을 가진이로서 義慈王朝廷에잇서 達率이란高官이 되엇더니 이ᄯᅢ出征의命을밧자오매悲憤慷慨하야 스々로생각하되 百濟一國의軍을 가지고 羅唐의數十萬兵을 敵으로싸우게되는 今日에勝敗存亡을 반듯이 豫期하기얼어우니 妻子를그대로 두고가면 後顧의慮가잇슬ᄲᅮᆫ더러 敵에게捕虜가되는일이잇슬진대 살아서辱을當함보다 차라리ᄭᅢ긋히죽는便이快하리라하야 한칼로 그妻子를모다죽인뒤에 勇士五千을더리고 出征하게되엇다. 그리하야 百濟서울로부터 겨우四五十里되는 黃山(連山)들에서 三路로처들어오는 金廋信의新羅軍五萬을 七月九日에 迎擊할새 堦伯에게激勵된 百濟軍은 各自가죽기로決心한이만치 一人으로서 거의 新羅軍千人을 對敵하게奮擊한結果 一日四戰에 百濟가네번다 大勝을占하엿다. 最後一人이 남을ᄯᅢ까지血戰을 繼續하엿스되 畢竟衆寡不敵으로 堦伯의戰亡과함ᄭᅦ 結局百濟軍은 敗하고말앗다. 그러나 黃山戰은 百濟終幕을 裝飾한一大慘劇으로서 千載下에 歷史읽는이로하여금 오히려 눈물을 자어내이는바 잇게하거니와 堦伯이 이처럼國家危急의際에잇서 一家를犧牲하야서 公事에殉함과가튼 그轟々烈烈한 行動에닐으러는 當時百濟社會의風氣가 얼마나 節義와忠勇을 崇尙하엿는지 그을通하야 엿볼수잇다.

三, 落花岩의 悲劇

黃山을지내온 新羅軍은 白江을지내온唐寇와서로聯合하야 水陸兩路로 百濟軍을 擊破하고 乘勝長驅하야 首都泗비城(夫餘)을 에워싸게된것이 七月十二日이니 卽堦伯의戰亡한지겨우三日뒤의일이다.

重圍에ᄲᅡ진泗비城은 그翌日밤에 義慈王이 態津(公州)으로逃亡하고 宮廷에는 여러王子가留守하고잇슬새 그네들사이에도 意見의衝突이생기여 敵의軍門에 나아가降伏하려고하엿다. 이런危機一髮의際에잇서 사비城中의住民들은 惶忙하게도 이 瞬間에陷落이되냐? 저瞬間에 陷落이되냐? 하고 몹시興奮된神經으로 敵에게屠戮될것을 생각하고서는 스々로 戰慓하게ᄶᅳᆷ되엇든 形便이다. 그중에도 宮庭에 잇는 꼿가튼妃嬪姬妾은오늘날까지의 榮華가 맑은ᄭᅮᆷ으로 살아지고 컴컴하고도 차듸찬亡國의慘禍를 目前에두고서 살려하면 다만恥辱뿐이다.

이에불ᄭᅩᆺ가티타올으는 內在的要求는 瓦全보담 차라리玉碎를 取하리라하야 激憤한김에 大王浦岩石우에서 江물에던저죽으니 이것이닐은바落花岩悲劇으로서 滅亡하는百濟를 프른恨으로써 凄凉게물듸린것이다. 아々- 落花岩의悲劇은 黃山原의激戰으로더부러 사비王城의陷落史上에잇서 艶麗明媚한 南國山河를 舞臺의背景으로삼아 演出된 二大史劇이다.

四, ᄭᅩᆺ서울의 灰燼化

義慈王이 敵의軍門에 降伏함은 同王이熊津으로逃亡한지 實로五日뒤지만 사비王城의 陷落으로말하면 義慈王의降伏보다도퍽일너슴을보면 그동안形勢가 얼마나急轉直下한것을 짐작할수잇거니와 當時三國首都中에잇서 建築의美로 ᄭᅩᆺ서울의稱이잇든 사비王城은 聖王南遷以來 百十數年동안에 百濟文明의精粹를集注하야노흔關이잇섯다. 아무리交戰狀態에 잇다하야도 이가티典雅優美한서울을 破壞함과가튼蠻行은戰愼하야할바어늘 저頑惡無道한 唐寇는사비王城을占領하자마자 縱兵放火하야 王宮佛刹과官衙民家할것업시 全部가 烏有에 돌아가고말앗슴으로 當時東洋에잇서거의獨步하든 그建築術을 다시볼수업게되엇슴은 어ᄶᅵ흘로百濟文明을 爲하야서만 痛心할바이랴. 오늘날 저사비王城의舊墟에 노는이로하야금 往々그타다남은遺物을 發見하고 오히려 百濟滅亡當時의 慘狀을 推想하야 歔欷하는바잇게한다. 아々! - 사비王城의 陷落哀史는 참으로 千古에悲壯한것이다.

名文章 拔華

참새

투르케-넵흐

돌연히 산양개는 白樺나무아래로 줄다름질을 처갓다. 올치. ᄯᅩ무에생겻고나 하고 ᄯᅮᆼ그러케ᄯᅥ서보는 투르게-넵의 눈동자속에 비최인것은 불이에 으르렁거리고 달려드는 산양개때문에 몸을 ᄯᅥᆯ고 잇는 가련한 한 마리의 참새색기엇다. 그가 분주히 개를

말니려할그刹那 이번에는 ᄯᅩ머리우에 엉성하게 버더나간 나무가지로부터마치 급한탕환모양으로 개압헤 돌연히 ᄯᅥ러지는것이잇섯다. 「어미참새엇구나」생각할새이도업시 그거문그림자는 절망에온몸을ᄯᅥᆫ면서 두러운强敵을향하야 죽을긔운을다하야 몸부림을할 마련을하고잇섯다.

그것은 실로 무엇이라말할수업는 嚴肅悲壯한 일순간에생긴일이엇다. 「놀라운 일이라 어미참새는 제삭기를사랑하는마음에서저럿틋 죽엄의무서움도 가리지안는것구나」하고생각하면서 그개를도로 불러드리는 그의눈에는 그순간에 ᄯᅳ거 눈물이 돌고잇섯다. (獵人日記에서)
過去事硏究
新羅의 燦然한 文明과
新羅民衆의 榮華
그 서울 慶州는 엇더하엿나(一)

黃 義 敦

慶州文明의黃金時代

慶州文明의黃金時代다시말하면 新羅文明의가장圓熟時期가어느ᄯᅢ인가? ᄯᅩ는엇더하얏섯는가? 지금그를通俗的으로簡單이써보랴하는바이다.

언의時代언의나라의文明도 그를建設함에는반듯이 그國民의偉大한努力다시말하면 必死의勞動力과最高의精神力을犧牲치안코는 일으지못하는것이다. 支那의文明이그러하고印度의文明이그러하고 「ᄭᅵ리시아」의文明 또는「로-마」의文明도그러햇섯다.

新羅의文明도ᄯᅩ한이러한原則下에서 偉大한國民的努力으로붓허이룬것이다. 三國竝立時代에잇서서가장國土가적고 國力이微弱한新羅의國民으로서는必死의努力을다하지아니하야서는 生存을엇지못하게되엿섯다. 그러함으로新羅의國民은君臣上下를勿論하고 政治的軍事的方面으로必死의努力을다하야 高句麗, 百濟의二大國을抵抗하는同時에 外交的文化的方面으로도 當時에東洋唯一의强大國이오 文明國인唐人을 相對하야努力하기를쉬지아니하야왓섯다.

그의結果로唐人의軍力을利用하야 百濟를統一하고高句麗을征服하는同時에그의領土를 專占하랴는唐人과다시싸우기 七八年에맛침내그를ᄶᅩᆺ차내고 平壤以南의半島를完全이占領하게되얏섯다.

ᄯᅢ는新羅第三十世文武王十六年(西紀六七六年丙子)으로서慶州一圓의少版圖로붓허일어난新羅國民으로서는그에서希望의滿足과 感情의 飽和를늣긴同時에칼자루를노코 文化的施設의方面으로國民의精神을도리켯섯다.

그레서三國竝立時代에 軍事的方面에對하야써오던全國民의必死的努力을總動員하야먼저 經濟的方面에集中하얏섯다. 麗濟兩國의征服으로붓허掠奪한黃金의富力이膨脹된 그덜은다시一步를前進하야黃海의貿易權을 專占하기에活躍한同時에 東洋三國의經濟的勢力을確實이支配케되얏섯다.

文化的建設의原動力인經濟的優越權을 占領한 新羅國民은一瀉千里의氣勢로 文化的方面에長足의進步를엇어서 이로붓허約百年間은文化의 全盛時期를이룬同時에 第三十五世景德王時에 일으러서는가장絶頂에到達하야 萬丈의光輝赫赫한 黃金時代를일우엇섯다.

遺物上으로본慶州文明

나는偶然한機會로부터慶州의 古蹟을가보기十餘回엇섯다. 만은가볼ㅅ제마다이러한感想이가슴에ᄯᅥ올으기를마지안햇다.
「歷史의千「페지」를읽는것보다한번實物을보는것이필요하다.」

하얏섯다.

果然慶州一圓에헛허잇는쇠뭉치 돌덩이는우리도過去엔現在와갓흔 暗黑의生活을누려온民族이안이오 世界엇던民族에비겨도북그럽지 안할만한文明의生活을하야왓다는 唯一의證據品이오誇張品이다. 딸어서그를보는우리의心理에는自尊心이나고自奮心이솟치게되는바이다. 나는즉금에 그를年代順으로들어簡單이說明하야보랴한다.

第一着으로文武王以前 곳三國統一以前의遺物로서現在에남어잇는것으로는 善德女王十六年에有名한建築家昔五源氏의손으로싸엇다 하는 瞻星臺곳東洋唯一의最古天文臺며 그와同時에되얏하는芬皇寺三層臺은 統一以後全盛時代의遺物에比하얀 多少의單純한原始的氣風이업지아니하나 그의 莊嚴崇高한氣勢는完全이新羅國民의衝天的意氣를代表한 遺物로볼수잇는同時에近年에古墳中에서發掘한金冠과 그의附屬品은統一以前에잇서서도 新羅의美術이얼마나進步되얏슴에놀내지안이할수업는 唯一의資料이라할만하다.

만은新羅의藝術은 統一以後에와서야 正말最高의完成을일우엇섯다. 첫재로는慶州西岳에잇는太宗武烈王陵前에노인石龜라고 그는一千二百餘年의風雨霜雪을격거온오날ᄭᅡ지도 그의生命이躍動하야當年의氣勢를자랑하고잇스며 文武王四十年二月에鑿成얏다하는 鴈鴨池는三國統一의偉業을새로일으고 眞禽奇獸奇花異草를모아風流豪華의生活을누리던곳으로서 그의池形이面積擴大의光學的原理를應用함과 그의石材가近來에西歐에서 新發見한水光石을利用함과洞庭湖와巫山十二峰을 模形하야되얏슴엔世界的專門庭園學者로하야금 驚嘆키를마지안케하는바로서아무리荒廢한 一片의遺址이남아우리의先代的生活이얼마나 文明的科學的이엇슴을자랑할만한 唯一의證據品이라할만한것이다. 그러고그의뒤를이어서 文武王時에된金庾臣墓의十二方位石과 神文王時에造成한文武王陵의石物은그時代에가장代表的傑作品으로서 文武王陵前의文武石人은 至금ᄭᅥᆺ生命이뛰노는生動的藝術品인同時에 그時代사람의氣像이얼마나快活하고 突几한奮鬪的國民이엇던것을象徵할수잇는唯一의標本品이라할만한것이다.

그러나新羅文化의正말圓熟時代는 그로붓허約五六十年後-第三十五世景德王時代엇섯던것이다. 現今에殘在한遺物로보더래도掘佛寺遺墟에잇는四面石佛, 栢栗寺에잇는藥師如來像이며 佛國寺의多寶塔, 釋迦塔, 白雲橋, 靑雲橋, 阿彌陀佛此廬舍羅佛이며 石窟庵, 壁佛, 奉德寺佛鐘이거의다 그時代에創作된絶代의藝術品이라하는바이다. 더욱이나그中에서도石窟庵은佛國寺와갓치 有名한藝術家金大城氏의發願으로붓허景德王十年에始役하야 二十三年의長歲月間-絶大한精力을犧牲하면서, 成功한世界唯一의美術的彫刻品으로서 當代文化의精神을가장遺感업시發揮하는 同時에 二十世紀文明人의耳目을놀내게하는바이다. 그의圍壁正中에肉刻되야잇는觀世音菩薩像은楊貴妃「크레오ᄲᅡ도라」의美人으로빗을일을만한그의美貌, 觀覽人의耳目을놀내게하는그의金銀珠玉的粧飾品, 風々雨々 千餘年동안변함이업시피어올으는 그左臂上花甁은 平和와「사랑」과美를조와하는우리民族性의代表的現品으로서 半島의山河를永遠이빗잇게하시랴든아름다운寶物이라할것이다.

아! 이에일으러서는新羅文明도참으로光輝가燦爛한絶頂에到達하얏다할만하다.

(次號는慶州의文明)


社告

一. 훨신 갑이싼 雜誌를만들자

二. 누구든지 볼수잇고 ᄯᅩ버릴記事라고업는 雜誌를만들자

三. 民衆에게 利益되는 조흔 雜誌를 만들자

이세가지는『三千里』雜誌의 編輯上根本方針이외다. 다만 創刊號는 宋鎭禹 韓龍雲 朱耀翰씨를 爲始하야 가장 무게잇고 ᄯᅩ長篇이든 論文多數가 그만 그러케되어 不得已 雜文을 그代身 補充하기로 되엇슴으로 이와가티 多少 貧弱하게되엇사오나 二號부터는 充實하게될터이오니 여러분ᄭᅦ서는 길이 두텁게 愛讀하여쥬심을 바라나이다. 그러고 主要各處에 販賣所를 設置하오니 有意하신분은 販賣所內規을 請하여쥬압소서.

雜誌出判 良書刊行 三千里社

갓츄사流配가든
西伯利亞情調

金 東 進

녯날부터西伯利亞라하면 사람살지못할ᄯᅡᆼ으로豫想하고잇는사람이만치요. 더욱「가츄사」의 流刑으로 가장 普通的으로 紹介된關係도잇슴으로 自然히그러한생각을가지게되는듯하외다.

西伯利라하면 우리江山과비교하야보면 사람못살곳이라고 진저리를치는것도無理하다고는못하겟지요. 원체 茫々한草原이나林叢이아니면 白雪이皚々한銀世界이니ᄭᅡ요.

그래도南方에는좀 사람사는곳인듯한맛이아주업지는안치오. 저黑龍鐵道나 西伯利本線以南은人村도處々에集屯하고 鷄犬聲도들을수잇지오마는 조곰만北으로가면 萬古氷雪이 山野에遍滿하야 寒氣가筋骨을透徹할ᄯᅳᆺ이치운데虎熊이逡巡摺伏하는 森林地帶나凍土帶이니ᄭᅡ요잘못하면 고드름송장이되고말것임니다.

西伯利의氣象은 男性的이지오. 天地를뒤집는듯한 사나운바람에咫尺을분간치못할눈바래는 참凄壯한氣分이소사남니다. 西伯利의『심폴』은 酷寒과 氷雪과 北極光일가함니다.

西伯利에海三威라는곳이잇슴니다. 海三威라하면 極東露領全體로아는사도잇슴니다그러나 海三威는 우리朝鮮서汽船을타고드러가면 처음倒着하는港口의地名이외다. 人口는 十餘萬名이사는데 우리사람은七千名이나잇지오. 그런데이곳은 古來로우리사람의 露領發展의策源地가되야온關係로海三威라는 地名이極東露領全體를代表할만큼우리입에膾炙되여 오지오.

이海三威에도 겨울에눈이만히옴니다. 눈바래도몹시침니다. 朝鮮과의距離는 豆滿江에서二百餘里에지나지못하겟지만氣候는아주ᄯᅡᆫ판이라 느즌가을에벌서防寒服을입어야되고 十一月下旬부터는海三威附近의넓은바다가凍結하야 碎氷船이晝夜로活躍하느니만큼 大端히칩지오 마는三月下旬부터는ᄯᅡᄯᅳᆺ한봄이옵니다.

海三威의봄消息은몬저 바다로음니다. 바다와陸地를분간치못하게 一望無際한銀世界도어느듯春風에征服을바더푸른빗이드러나게됨니다. 우리나라에서는『저山푸르기는봄비에잇거니와』라는詩調를읇거니와거게서는『저바다푸르기는 春風에잇거니와』라고나할만치 春光이번득하면바다에푸릇푸릇한 靑波가이러남니다. 이러케하로 이틀하는사이에 바다는 完全이解氷하야버리고 여긔저긔 氷塊가둥실거림니다. 白波靑波어우러지는곳에봄이完全히차저온것임니다.

春風부는곳에靑山도드러납니다. 靑山드러나는곳에 溪泉이 漲溢합니다기나긴三冬에 積堆되얏든 氷雪이一時에溶解되야 갑작히샘이되고 沼澤이되고 시내가됨니다. 개울에도물이오길우에도물이오 ᄯᅳᆯ안에도물입니다. 『春水滿四澤』이라는唐詩를외이는實感이이러나지오. 봄에洪水가나는일은西伯利가아니면 目睹치못할奇現狀일가합니다.

積雪이녹는한便으로 陽地에는 어느듯 푸른풀움이솟읍니다. 焦燥히春光을기다리는듯이 눈이사라지자말자풀이핍니다횟득횟득한 눈밋헤푸른빗이나는것도 雪國의春景이러니와 들에도벌서봄이로고나! 하는사이에 野花는色々으로그艶態를자랑함니다. 이와가티 草花가競艶하는사이에아지랑이ᄭᅵᆫ숩속에는 白樺木이푸른禮裝을차리고 손님의봄을迎接하고川邊의楊柳는 妖姸한媚態로浪波에 춤을춤니다.

凜冽한寒氣와氷雪에閉鎖되얏든 海三威도이로써비로소 春光의惠澤을입게되야 萬象이和暢한雰圍氣에新生의깃붐을누리게됨니다海三威의봄은우리나라의新年과가치도 淸新한氣分이나나니 山野에눈이녹아淸楚한情趣는實로한겨울「ᄲᅦ치카」에 겨른 사람의무거운가슴을산듯이씨서주어 發剌한새生命을耀動케합니다. 봄이구나! 하고두손을드러 봄을마지하고讚美하는사람들의가슴속에는 오! 새生命을엇는고나! 하는感想을 禁하지못합니다.

西伯利原住民은그風土에慣習되야季節의 剌戟이그리甚하지안치마는異域萬里에孤客이되야 故山風月을戀想하는 우리사람에게는 季節의影響이異常히도가슴을울립니다. 霜月이樹梢에질렷술ᄯᅢ 數聲의過雁울드름도 望鄕의情炎이 금지못하고 陰雪霜雨天地가濛々할ᄯᅢ면 世事를悲觀치안흘수도업슬것이며 새움트는봄을볼ᄯᅢ에는 『春草年々綠 王孫歸不歸』의悲感도업술리업술것입니다. 露領進出의先驅者가되야 後人에生活의터전을닥거주고 (略)異域의봄은果然애닯습니다.
松花江에ᄯᅳᆫ배

그러나 西伯利의 우리同胞는 봄과더부러 新生의氣象을蕩蓄하게됨니다. 가슴에 恨懷가가득하지만 元氣는더욱 潑剌하여집니다. 豆滿江을건느는날에벌서 一命을犧牲할決心을가지고 勇士다운出發을하얏스니 四顧無親의異域에한발을 드려노흔 以上에엇지退嬰과萎績이잇겟습니까. 航路가열리면서부터 冬眼가티 한겨울精氣를培養하고난 날센氣運으로 海三威金角灣 埠頭에나서서 同胞들은우렁찬「싸이렌」한마듸에 東海의怒濤를갈르며 北으로 東으로 北海의勘察加까지 白熊과 벗을하야 한여름을비와ᄯᅡᆷ으로싸우게 됨니다. 或은漁場에서고기를낙고或은 人跡이未到한奧地의金鑛으로 或은千古에斧鉞이入치못한森林地帶로 白衣人의 足跡을그려놋슴니다.

漁場으로金鑛으로 採伐場으로 노동을ᄯᅥ나는사람은 水草를ᄯᅡ라移動하는 遊牧民의生活과가티도애닯슴니다. 外敵의侵襲을防禦하려고 十數人이結義兄弟까지하여야 겨우 한여름의生活을無事히 해나갈수잇술만치危險이만흔곳임으로 父母妻子를離別하는그刹那의悲哀라니 內地에사는同胞들은 到底히想像치도못할만치애닯습니다맛치 戰場에 出征하는軍人의作別과도갓치슯흐겟지오. 아모리決心이 壯할망정아니우는鐵石肝腸이잇겟슴니까. 哀傷의봄悲哀의봄海三威의봄은슯흔봄이외다.

그러나海三威에는이러한봄만잇는것은아니외다. 보섬을몰고가는 農夫의봄도잇스며언덕우에지흔조고마한 草家집압헤서 南으로부터드러오는汽車를바라보며 등에업은어린애를달내는 졂은婦女의봄도잇슴니다 마는이러한봄은 亦是悲哀의봄이외다沼澤을開墾하야 水田을풀고벼를심으며 草原을起耕하야밧을가러노흔 그苦痛이며 故鄕消息이그리워 南天을바러보고눈물짓는그봄의엇지 즐거운봄이겟슴니까. 海三威의봄은 果然슯흔봄이외다將次닥처올希望의가을을바라보면서도설허하지안을수업는봄이海三威의봄이외다. 亨樂의봄이 면서도 亨樂을누리지못하는 애닯은情懷가엇지 가련하지안켓습니ᄭᅡ. (ᄭᅳᆺ)

雜談室

客死한 學者

國際聯盟이라하면 美國大統領윌손의 産物인줄알지만은 실상은 一六二五年에벌서和蘭의有名한學者「후-고구로치스」가지은「戰爭及平和論」속에 理論으로잇는것을 實際化하엿슴에不過하다고. 그런데 그구로치스도政敵ᄯᅡ문에 一時投獄되어 多年呻吟하다가 가방속에冊子 모양으로 드리안저 脫獄하여 그著述을繼續하엿다는데 終生祖國에서는 ᄶᅩᆺ기어 佛國엇든村에서 貧苦中에 客死하엿다한다. 큰일하는분은 臥席終身못하는법이야!

女人國巡禮
濟州島海女
ᄭᅩᆺ가튼二萬裸婦가
굴캐며勞動하는勇姿
안해가남편을먹여살니나?
그네의뎡조관렴은엇든가?

金 枓 白

半裸體의處女가
男子사이를濶步

천길만길되는 바다물을 ᄯᅮᆯ코 드러가 그밋테ᄭᅡᆯ린 바위에서밥ᄭᅥ리를 차자내는이가海女이다. 濟州島方面은 勿論이려니와『생복』이나『고동』이잡히는 海岸方面을다녀본사람이면 누구나다- 이러한 潛水의職業을가진 勞動婦人을보앗슬것이다. 海女는耳目口鼻나四枝肉身이 陸地에사는普通女子와곰도 다를것이업건마는對하는사람에게는흔히엇던特殊한 印象을남긴다. 茶褐色인그들의머리빗이라든지 검붉은살빗이라든지 壯大屈强한體格이 爲先 보는사람으로하야곰『女子』라고는 생각지못하게한다. 楊柳가튼 허리 粉결가튼살빗 감태가튼머리의所有主로앗갑도록 弱하고 貪날만콤아름다운것이女子의本質이라 생각하는習慣이잇기ᄭᅡ닭이다. 茫茫한大海에ᄯᅱ어 들어밋도몰를 물속에서 것침업시 일하는海女의技術은 數千噸汽船을타고도 수잘이나서죽는다고머리를 싸매는女子의多數과對照하야別世界의人類가아닌가疑心케하니듯고보는사람에게 神奇한 늣김을이르키게할것이오히려怪常치도안은일이다. 더구나그들의出生地가全部濟州島인ᄭᅡ닭에 言語風俗이陸地와懸殊한点이 업지안으니 高低淸濁이外國語와가티들리는그들의말씨라든지 健壯한半裸體로붓거럼도업시 男子사이로濶步하는그들의習俗이對하는사람의耳目을놀라게하지안울수업다.

남편을먹여살니려
바다속으로드러가

耽羅古國인濟州島에는 세가지만흔것이 잇다. 風多. 石多. 女多. 바람이만흔것은넓은太平洋에直面한ᄭᅡ닭이요 돌이만흔것은 漢拏山이石山인ᄭᅡ닭이겟지마는 女子가만흔ᄭᅡ닭은얼른說明할수가업술것이다. 그는如何間二十萬人口가사는濟州島에는 女子가男子보달훨신만흔모양이다. 그럼으로 그곳사람의家庭生活은 陸地사람의그것과根本的差異点이잇다. 첫재 濟州島에서는 一家의經濟的責任을女子가가지게되엇다柴糧은勿論이려니와甚至於子女의敎育費ᄭᅡ지도 여자가 책임을 저야 하는 모양이다=最近에와서多少間例外도잇는듯하다한다=이에ᄯᅡ라서 生産에關한모든活動이 女子를中心으로進行될밧게업다. 網巾을ᄯᅳ고『양태』를만들고 그물(漁網)을ᄯᅳ며織造를하는것은그리어려울것이업겟지마는耕作播種에 牧畜業ᄭᅡ지도女子가하게되니富者집고양이(猫)모양으로아양이나피우며놀고먹으려는女子가잇슬리萬無하다. 手足도남을보이기실허하는朝鮮女子의몸으로 全身을벗고남고 潛水勞動을하는것도濟州島女子의이傳統的義務에서起因한것이니 濟州島에서는이職業을가진海女의階級이ᄯᅡ로잇지도아니하고 그들만사는部落이ᄯᅡ로잇지도아니하다-돈업는사람이면구나다-男便을먹여살리기爲하야 子女를 기루기爲하야空氣도업는물속으로 生途를차자뛰어드는것이다.

海女들은日本과
他處로行商도해

仔細한通計는알수업스나 現在海女가大畧二萬名可量된다한다. 濟州島에서는八九歲되는어린少女로부터三四十되는中年婦人ᄭᅡ지 節候에ᄯᅡ라形便에ᄯᅡ라無時로『생복』을ᄯᅡ내움으로그들도海女라한다면 그數가훨신늘어날것이나세상에서불르는海女는 大槪二十以上四十ᄭᅡ지의女子로潛水를專業으로하는이를가르커는모양인데그들의大多數는東海岸等地와 日本方面으로혹은팔려도가고혹은自由營業으로 ᄯᅥ나기도하야理解업는세상사람賤待를밧고잇다男便업는 女子의몸으로四顧無親남의ᄯᅡᆼ에서劇烈한勞動을하는것도어려운일이려든漁村의浮浪靑年은임자업는그들을마음대로戱弄할것으로알고 ᄭᅡ다러운陸地의風俗이 서투른그들에게 空然한虛禮를强要하는일이만흐니勤實한그들의心情에얼마나한슬픔이잇슬것을想像하기에어렵지안타.
白沙場에서
잔다고亂淫?
일흔봄으로부터 느진가을ᄭᅡ지에風浪이나고요한날이면언제든지 바다한가운데서異常한노래를부르며 잠박곡질하는海女를볼수잇스니散髮한얼골만이 白鳩와벗이되어蒼浪에뜨다가는 휘-하는소리와 한가지로물속에사라지고죽지나안앗는가의심하는동안에어느 듯 생복을손에쥐고 젓가슴ᄭᅡ지물박그로내어놋는그들의作業光景은보는사람으로人魚나아닌가疑心케 한다. 이러한勞動을 四五十分繼續한後에는附近섬이나바위에나와 불을피우고 물속에얼엇든몸을말리면서 그들의獨特한音調로노래를부른다.
총각 싸라 섬에나 들게
량식 싸라 섬에나 가게
정심 싸라 고지나? 가게
날죽건 ᄭᅩᆺ바테 무더
궁녀 신녀 물주람 말가
境遇가境遇인ᄭᅡ닭인지崇嚴한大自然中에原始에갓가운生活을하는ᄭᅡ닭인지는몰르나그의性的生活에도亦是陸地사람의눈으로보면怪常한点이업지안는모양이다誘惑만흔봄바람이 벌거버슨그들의裸體에휘감길때나哀想가진가을물이 그들의고단한心琴에부드칠때에 설음에자자치는그들의情緖가 풀리어나오는모양이니박게나온海女로는大槪本男便以外에秘密히맛나는男子도가지고잇다하나내눈으로본이못되니讀者의想像에맛기는것이올은일이다. 그러나그들에게貞操觀念이업지는아니하니이것은濟州島를가본사람이면누구나否認치못할것이다. 다만陸地에나온그들은모든点으로弱한地位에안게된ᄭᅡ닭으로 本土에살ᄯᅢ보담多少間脫線의行動도업지아니하야 險口로하야곰亂淫生活을한다고ᄭᅡ지말하게하는일이잇다. 여름밤海岸沙場으로나가면 텁々한자긔방에달겨드는모기를避하야 ᄭᅢ끗한모래를ᄭᅡᆯ고누어자는海女의一群을차자낼수가잇고 바로 그附近에는『후리배』ᄯᅢᆼ기기에지친漁父들이코을골고잔다하니 이러한것으로 보아서空然한風說을지어내는作亂軍도 업지안을것이다. (中略)

野生的그들의
民謠몃가지

男性에게가진虐待을밧는 海女들이자긔가버러먹여살리는男性을ᄭᅳᆷ직이도위하는風習이잇스니 그들사이에는『네남편불러다가 마당을쓸려라』하는것이가장큰辱이라하니 男子는아모리나부려먹는風習이漸次流行해가는現下에서는여러가지意味로그들 硏究할必要가잇슬가한다最後로濟州島民謠中에한가지만紹介하야두자.
朝天대에큰아기들 망건ᄯᅳ기로다나가고
新村대에큰아기들 양대ᄯᅳ기로다나가고
別島대에큰아기들 탕건ᄯᅳ기로다나가고
城안대에큰아기들 모자ᄯᅳ기로다나가고
김령대에큰아기들 푸나무지기로다나가고
뒷개(後浦)대에큰아기들 潛水질하기로다나가고
咸德대에큰아기들 멸치장사로다나간다

(ᄭᅳᆺ)


寺刹의 僧女
佛道닥그러온
尼女들은童貞女인가
곳갈쓰고장삼입고목탁
두드리며사는그네내면

鄭 寅 翼

別有天地非人間?
別無天地是人間?

여기는 서울 동대문밧 청청한 소나무밧속에 ᄭᅡ치둥주리모양으로 옴폭하게들러안즌 만흔法堂이잇는 XX절ᄭᅡᆫ이다. □날에는 아츰저녁으로 靑山을스치고지나가는 바람소리와 잔디를뚜지고흐르는 물방울소리박게는종일가도 귀를울니는音響이라고업다는 別有天地非人間가튼곳이라더니 오늘은 절ᄭᅡᆫ이란이롬만만은 터전인가. 그는아무러튼지나는 病后의몸을 靜養하려고 山寺에나왓더니 새벽에울니는 梵鐘소리에 그만뛰어이러나法堂에서머리ᄭᅡᆨ고 송낙쓴佛門修禪의多數한尼女를보고놀라면서도그네의生活을한ᄭᅳᆺ알고십헛다. 果然그네들은 靑春이면서世上을온전히 버리고나온녀자들일가?人世에對한 모든物慾과 異性에對한참아노키어러운 愛慾의 불길조차 헤를 ᄭᅦ물고 斷念하면서俗世를ᄯᅥ나서 이러한 절ᄭᅡᆫ으로 온것일가?알수업는것은 女尼의 마음과 그內面의 生活들이라 나는 간단하나마그네들의 속을조곰들처보려한다.

誰敢落汝娘生髮
閒送琳宮二八年

누가 널더러 어머니가 나어준 머리를ᄭᅡᆨ그라하드뇨. 이팔의 젊은나히를 엇지하여림궁(승방암자)속에서 한가히보내는가? 졂은몸으로 새벽에 木鐸과 저녁에 讀經으로 세월을 보내고잇는 그들을보면 多情多限치아니한 사람에게조차아지못할感傷을 자아낸다. 그네들도 人生이거든 靑春의香그러운술잔을 마시기를피하고웨쇠북과 몬지무든 佛經에親하려왓섯슬가. 向我多情是佛心이라더니=내게 향한너의 다정이 이곳부쳐마음이로구나=그네들은그多情은 어느 異性에게도 바치지못하고 童貞女로 늙어가는가. 그러나 헛되인 나의 想像을버리고 그네의現實을보면 人間과는銷門斷俗하□다고 五慾과百八煩惱를버리는것이 아닌모양으로 그네가 가사자락에 무더나리는 人間의눈물을차저낼ᄯᅢ에 새삼스럽게 가슴이 ᄯᅳ금하여짐을 ᄭᅢ닷는다.

그네들은肉에
사나靈에사나

그것은 聖潔하다는 佛寺가 近代의頹廢的 空氣에 漸漸싸여가는 傾向이라 가만히 살펴보면 나무눈이트는 봄철을당하자 僧房를 노름터로알고 女子와술을 가지고나오는 男性들이 오직이나 만흔가. 만흘ᄲᅮᆫ더러 그네들이 지어내는肉의世界와 술의世界가 寺院의 全體空氣를 여간만히 支配하고잇는가.

나는 아츰日光浴을마치고 無聊한김에法堂을ᄭᅵ고 뒤石塔잇는곳으로 가려니ᄭᅡ 그곳에서 바위를 비스듬히 기대어 愁心歌와란봉歌의 淫란한 노래가락을 부르고안젓는 젊은比丘두사람을 發見하엿다.

그네는 童貞女의몸으로 頌佛하는 입을들고 이제는 蕩者의 淫佚한 노래를 부르고잇다. 아마생각건대 그네가 頌佛하는時間보다現世의 愛慾에 이가튼노래를 부르고잇는 時間이 다만치나아니할가. 이제 이僧房의女僧으로 애ᄭᅳᆺ난「로-만쓰」를가진「濤蓮」이를 紹介함으로써 다른만흔尼女의 生活과心理도 그러노흔것으로하겟다.

승방에펴잇는
一朶의壽蓮

壽蓮은 이僧房에 가장ᄯᅱ어난 美貌의所有者이엇다. 豊滿한肉의劃線은가장近代的인理智이律動을보히고「클라씩」한容貌의典型에도 內包는어듸ᄭᅡ지 近代的新鮮輕快한光彩를쏘아全體가理智의渾然한美를ᄲᅩᆸ내여서 實로僧房그늘에피엿다가그그늘에서시듬이앗가움을모다 속삭엿다한다. 그럼으로壽蓮의뒤를ᄶᅩᆺ는豺狼의ᄯᅦ는나날이느러갓다. 그리하야佛道三昧에저진壽蓮은 마침내戀愛三昧의邪道에들게되엿다. 그後부터僧房의졂은比丘사이에는 ᄭᅩᆺ을對하야한숨짓고달을우러러 눈물먹는애닯은情景이느러갓다한다. 늙은比丘의監視와戒愼이嚴酷하야갈수록 그들은本能的으로졂은사나이들과 계집이어우러저노는노롬房을엿보려하고 그들의雰圍氣에잠기려한다고 이는이僧房의이웃에서數三年그들의生活과 日常을보아온中老의寒心한듯한이야기이다. 얄구진時間은그들을何必이時代의比丘로만드럿스며 얄구진空間은何必이都會의이웃에자리를잡게하엇든가. 時代의足蹟은斷俗의佛院까지蹂躝하고 마럿나니이제이比丘는果然 前古의比丘에견주어不幸한淚水가滂沱함이 無理가아니요深山入禪의달은比丘에 견주어애닯은心境에彷徨함도엇절수업는事實이다. 그들의生理的本能은先天이되고 그들의心理的本能은後天에屬한것이다. 時間은이제現代라는分水嶺을가저오고 그嶺上에이둘을세운것이다. 기여오른뒷길로다시밋그러저내릴것인가? 時代가誘導하는압비탈길을내려궁글을것인가. 이두問題는낫이나밤이나念佛讀經의ᄯᅢ이나두본능의內爭울이르키는것이다. 그러나人間은時代의空氣를呼吸하고 그時代의潮流에자멱질하나니 轉換된時代에轉換된心理를不斷히誘惑에잠긴이를比丘의大群이어느ᄯᅢ 禪佛從徒의歷史우에큰噴火를가저올것인가를누가 否認하겟는가모든것은時間의시킴에잇다. 그들도時代의支配에움지기는 人間이어니時代의懊惱와世紀의煩憫이엇지업술것이냐? (了)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아조가난한
農民勞動者의子女로

崔 鶴 松

이러케 올치 못한 세상이 來世ᄭᅡ지 갈리가만무하고 ᄯᅩ佛徒가 아니어든 엇지 來生을 ᄭᅮᆷᄭᅮ랴만은 만일 내가죽어서 다시 嬰兒로 태어날수잇고ᄯᅩ그ᄯᅢ세상도 오늘세상과 갓허지리라고 가뎡한다면 나는 주저업시 아조 가난방이의 農村아히로태어나겟다.

내가 이세상에 태어난곳을말하면 보잘것업는 조선ᄯᅡᆼ이고문별이나 돈도업는 가난한 집안의자녀이엇든 관계로 삼십도채 못되는 오늘날ᄭᅡ지에 벌서가진 고상을 격거왓건만은 그래도나는 내고상이 아직 부족한것가치 생각된다. 아조아조 그야말로 초근목피로 겨우 살어가는 그런농가에태어나서 이세상의최하층계급인으로 격겨야할 온갓 고통을 다시한번 맛보아보고십흔생각이불붓듯이러난다. 그런다면 나의정신에는 크나큰 불ᄭᅩ치가 ᄯᅱ고 의식상에도 놀라운 비약이잇서질터이련만.

그런뒤에 ᄲᅧ에사모치는 이실제의톄험을 토대로하고불상한이들의 해방운동에 뛰어나가고십다. 내가 지금 처하여잇는 이「인델겐자」라는지위가 여간 미직ᄭᅳᆫ한 것인가. 그러면서도나는이자리를 용이히 ᄯᅥ나지못하고만다. 이무슨 사내답지못한일인고.

아모켜나 나는 다시이세상에 태어날 긔회가잇다면 아조가난방이의 농민혹은 로동자의 아들로 태어나고십다.


富者도다실타
亦是지금가튼일ᄭᅮᆫ으로

丁 七 星

나이게 긋굿한 의식(意識)이 서기전인 녯날갓하여도 여러가지로 성가신일을당할ᄯᅢ마다 에그차라리 사내로태어낫더면 하거나 혹은 가튼 녀자타도 백만장자의 외ᄯᅡᆯ로 태어나서 쓰고십흔일에 돈을 마음대로 써보앗으면!하고 철업는 공상도 갓금 하여보앗지만은 일단 이사회를 알고 ᄯᅩ 이사회에대한나의디위와의무를ᄭᅢ다른뒤부터는 生理的條件가튼것은 아모문뎨가아니되엇습니다. 그 ᄭᅡ짓 사내로태어나면엇더코 녀자로 태어나면 엿더함니ᄭᅡ? 녀자라고 사내들이 할일을 못하란법이 어대잇습니ᄭᅡ. 우리의당면한일은 사내가더잘하고 녀자가 더못하란법이업는그런엄숙한일이외다.

그리고 돈은잇서무얼하며 ᄯᅩ 업다고엇더합니ᄭᅡ. 모든것은 우리압헤 문뎨ᄭᅥ리가 아니됨니다. 잇서도살고업서도살겟지요. 다만 피잇는인간이면누구라도ᄯᅱ어들고야할 그일에 우리몸을 바칠생각ᄲᅮᆫ이잇슬ᄲᅮᆫ이겟지요.

그러기에 나는 래세도 부럽지안코 더구나 달니 태어나고 십흔생각도 엄슴니다. 만일 긔어히 다시한번 태어날수잇다고 생각이라도하여보자면 역시지금모양으로 태어나서(中略)사람이 되고십슴니다. 그야서양녀자로 태어나거나 아라비아의 야만인종의녀자로 태어나거나 상관이 잇겟슴니ᄭᅡ?다가튼일을할바에야.


精力絶倫한
偉丈夫되고십다

柳 光 烈

만일 來世가잇서서우리가다시한번태어난다면 나는즘생도실코 더구나 목숨이업는 山川草木이되기는아예실코 역시 人生으로 ᄯᅩ사나히로 태어나고십다.

사람중에도 공자나 석가모양의 聖人으로 태어나고 십지는안타. 원래 聖人이라함은 智識이一般이게잘 普及되지안은 蒙昧한時代에 몬저ᄭᅢᆫ한두사람들을가르처서부르는일홈이라뒷날에는 聖人이란 잇슬수도업는일이겟고 ᄯᅩ 되고도 십지안타. 그러나 나는 이생에서 弱한休質을타고낫다이것이 엇더케나怨恨이되는지모르겟다. 그럼으로 來生에는 제발 先天的으로精力이 絶倫한 사람으로 태어나서 마음ᄭᅥᆺ人類를조흔길로 잇그는큰사업에이몸을바치고십다. 精力絶倫이란ᄯᅳᆺ은 生理學的으로말하면 腦의重量이무겁고 惱醬이만코 細胞의作用이活潑하야무슨일이든지 오래할수잇고 大膽하게 勇敢하게 나아갈수잇는그런것을 가르친다.

ᄭᅳᆺ흐로 나는 이생에서 부자집에나 貴族의 집안에 도련님으로 태어못난것을 恨으로 아니역인다. 萬一 來世에ᄭᅡ지 階級社會가잇다면 그ᄯᅢ에도 나는 역시 가난한농군의 아들로 태어낫스면 조켓다.


絶世美人으로
태어나고십다

車 相 瓚

나는 다시 세상에 태어난다면 녀자가되어서 렬렬하게 녀성해방운동에 종사하고십다. 녀성들중에서도 조선녀자들을 바라볼ᄯᅢ에 밤낫 ᄭᅬ죄죄하게 사라가는그ᄭᅩᆯ이 남의일이라도 실로 화증이나고 안타ᄭᅡ워 못견듸겟다. 그것이 비록사회가주는 무지(無智)ᄯᅢ문에 그러케되엇다할지라도 그녀자돌을 ᄭᅢ우처주는참다운 녀성해방운동자가 조선에 좀더만헛다라면 그러케ᄭᅡ지야참혹하게 아니되엇슬것이다. 실로 남성의 해방도 크지안은일은아니나녀자의 경제뎍 사회뎍해방도 오늘날의급무요. ᄯᅩ 가장 큰일인줄안다. 그러기에나는 가튼女性으로태어나서仝性의 해방운동에 이ᄲᅧ와이피를바치고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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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러커니와ᄯᅩ나는 각금 이러한생각도하여본다. 그것은절세의 미인으로태어나서 모든사내의 가슴울화-폴어주엇스면— 실로 내가행인지 불행인지 사내로태어나서 각금 마음에드는 미인들을 맛날ᄯᅢ가만흐나 그럴ᄯᅢ마다 ᄯᅳᆺ과가치일이되어주지안은ᄭᅡ닭에 얼마나 가슴이타고ᄶᅩ엇는니모르겟다. 그럴 때마다 「에라 요년 人生이얼마라고그러케도심하게 남에게 못할짓을한담」하고융얼거린다. 그럼으로 나는 절세미인으로 환생하여모든사내들의 마음을 깃부게하여드릴 그런생각을하여보는ᄯᅢ가만다.

(第四十五頁으로부터)

다른곳 뎡거장은 대개 좁고 텬정이나저탐탐하것만은 이곳뎡거장은 훨신 길고넓고놉흐게되어 倚子를 주루루 이어노흐면 금시에백명ᄶᅳᆷ은 收容할수잇는 音樂演奏會장이 될수잇게되엇다.

이 속에서 아릿ᄯᅡ운 묵소리로 긔생이든 박영채가

어린 아기 보챕니다.
젓업서서 보챕니다.
따뜻한 국한그릇
마라서 드립시다.

엇저고하면서 노래를부르고 이小說中에서 가장進取的人物이고 ᄯᅩ性格이 잘나타난東京音樂學校의 말괄냥 병욱이가 ᄲᅡ요링을 탓다면 水災로심심하든 손님이아니라 도恍惚하엿슬것이다. 萬一그자리에「ᄭᅵ리샤」의「삽포-」가치 情熱的女性이든 平壞綾羅島에서 自殺한 桂月香이ᄭᅡ지ᄭᅵ엇든들 여북場面이 緊張되엇슬가.

나는倚子에 기대안저 여러愛慾에울든 그女性들 을생각하며 귀를기우리니 금시에 영채나 선형이나 병욱이 보이는것갓고 그네의 목소리조차 들니는것갓다. 마즈막에는 觀客의 박수소리와 慈善音樂會의收入을 바더들고세처녀에게敬禮하든 경찰서장과 대파밥 모자를헤헤둘느며 아스며드러오는脫俗한 新聞記者申友善ᄭᅡ지 보이는듯하다.

X

十餘年前에 한번본 無情의記憶이라 심히어름풋한터이나 요행 三浪津에서 慶南線을 가라타느라고 二三十分遲滯하는 機會를어더 車에서 내리니 無情생각이 저절로나서 이러케頭緖업시 雜感을적어본것이다. 無情은 描寫가잘된点에서 ᄯᅩ朝鮮黎明期의 靑年男女의一群을보여준데서 이즐수업는 作品이요 그作品의 클라이막쓰를 차지한데서이三浪津은더욱이즐수업는곳이어니와 그보다 三浪津이란일홈이사람의 愛着을이르칸다. 三浪津이라거니 沙里院이라거나하는일홈은 배를먹는드시 입속에서그냥녹아들뭇십게香氣가잇고發音이조흔 것이 아니냐.
米豆로 百萬長者된 話實
愛人일코墳ᄭᅵᆷ에
米豆하여 二十萬圓을ᄯᅡ
수원에서서긔다니든청년
일약하야백만장자가되어

鄭 秀 日

미두(米豆)라면 일확천금(一攫千金)이라는 ᄭᅮᆷ을ᄭᅮ는사람들이 모혀들어공공연하게 도박을하는것이라고비소하는것이 항용세상일부인사의평이라고보겟다. 그러나여기는미두그것에대한시시비비라든지 ᄯᅩ는 그평판의적부적(適不適)을말하고저하는것이아니오 다만이미두라는것을하는사람들의희비극(喜悲劇)을쓰랴는것임으로 서두(書頭)에말할것은집어치우고저한다. 위선이미두판에발을듸려놋는동긔를말하자면 찹으로형형색색이다. 그들중에는거지반다 최후의결심을하고들어선사람이만흐니 즉무엇에든지사업을경영하다실패를하얏다든지 ᄯᅩ는 하다하다못하야최후로되면조코안되면고만이라는 일본말로하자면소위『스데밧지』뎍긔분을가지고 덤벼든사람도잇고 혹은시골서ᄯᅡᆼ마지기나가진얼ᄲᅡ진친구가채소위일확천금을할수잇다는말에 헛비위가동하야아모것도분수를모르고덤벼든사람, 그럿치안흐면 할일은업고거저놀기는실코하야심심푸리로첫번에는, 발을듸려노앗다가 마티놀음군이작구일허버리지만한사하고ᄯᅡᆼ을팔고집을팔어가며 덤벼드는것과가티, 일흐면그것을회복하야보겟다고ᄯᅩ하고 요행으로좀어더먹으면 이것이입맛에부터작고하게되기도하며, ᄯᅩ한가지는 사회에서물질뎍으로만흔확대를밧엇다든지 심지어물질로인하야 어ᄯᅥᆫ녀성에게 버림을바덧다든지하는심긔(心氣)미뎡한청년이 이가튼데에발을듸려놋는것도대부분이라고보겟다. 그리고보니이미두라든지ᄯᅩ는주식(株式)계에는「로맨틱」한사실이만코 숨은애화의주인공도만흔것이다. 그럿치만이가튼것을일일이들추어내기에는겨을이업슴으로다만 내가보고들은중에서가장큰사실의두어가지만쓰고저한다.

X X X

지금으로부터구년전이다. 수원(水原)군어느시골에잇든사람으로 당시XXX원 수원X텽(水原X廳)에서 서긔(書記)로잇든청년이앗스니일홈을김정식(金貞植)(假名)이라고한다. 이청년의성질은매오단아하고다정하야남보다사물에감촉을만히밧는 다혈질의청년이엇다. 신년을마지하는어느해년말에 청원일동의망년연회가잇섯는데 마참그좌석에불려온긔생이잇섯스니 아릿다운자태와 세속에물들지안니한고흔마음의소유자인리월향(李月香)(假名)이라는긔생이엇다. 타고난천품이아릿다운것은둘재오 요요한태도와 선연한동작이며불언볼소(不言不笑)의천연스런행동이 마티한ᄯᅥᆯ기아릿다운곳이진혹물에잠겨잇는것가타엿다. 그때가티와서질탕히노는긔생중에서 추려보면실로군계일학(群鷄一鶴)의늣김이잇섯다. 이것을발견한김정식이라는청년은 어린듯취한듯 술이나소리에도마음이업고웬일인지 자긔로서도깨다를수업는야릇한정서에 마음이ᄯᅥᆯ이고가삼이ᄲᅥ근하야짐을ᄭᅢ다럿다. 그래서엽헤서지ᄭᅥ리고뒤ᄯᅥ드는지긔의동료들이권한술도 마시지안코얼빠진사람처럼 다만멍하니월향이만바라고잇섯든것이다.

이ᄯᅢ술순배가자긔압헤돌아오자 월향이가술병을들고 자긔엽흐로와서행순(行巡)을하게되엇다. 이ᄯᅢ이다엽헤잇든친구가 술이취하야그릇월향의술붓는 팔을처서 고만술이흘러서정식의양복바지를적시게 되엇다. 월향은비록자긔의과실은아니엇지만 무안한생각에자긔도모르게「에그머니」소리를치고 손수건으로그무믑에업즈러진술을 훔치랴고하얏다.

이것을본정식은 아지못하는결을에그손을덤벅쥐엿는것이다. 이것은무슨의미를가지고쥔것이아니라 다만그가티놀나서닥는그것을말이는ᄯᅳᆺ이엇든것이다. 엇재든이것이이두사람의애틋한사랑을자아내든동긔가된것만은사실이다. 이가튼일이잇슨후두사람사히에ᄭᅮᆯ가티달고단사랑의속색임이오고가고하야일년이지난뒤에는굿게미래를약속ᄭᅡ지하게되엇든것이다. 그러나호사의다마라는것은녯부터잇는것이다. 이가튼ᄭᅩᆺ다운한떨기ᄭᅩᆺ이모진바람과허수한ᄯᅡᆼ에외로히피여잇스니 탐화광접의뭇사람들이누구나ᄭᅥᆨ그랴고하지안켓는가? 그이듬해봄에 월향이는모든앙탈과가진발악을하얏지만돈에눈이먼긔부나긔모에게언처잇는몸이라 구구한두사람의사정가튼것이문뎨나될것인가? 어느부호에게삼천원이라는돈에양첩으로들어가게되엇는데 이가튼애ᄭᅳᆺ는사정을정식에게하얏스나 정식이로는그만한물질의힘이업섯든것이다. 그리하야 두남녀는부둥켜안고이별의단장곡을불으고갈리게되엇든것이다. 그후정식은만사에ᄯᅳᆺ이업시자긔근무하든관텽도튀여나오게되엇는데 그ᄯᅢ퇴직금으로바든몃백원돈을가지고 돈을모흘방도로만일심정력을썻스나 그적은자본으로엇더케돈을모흘수가잇슬것인가? 생각다못하야되면되고 아니되면내운명이그ᄲᅮᆫ이라는최후결심을가지고 인천으로와서「미두」를시직하얏섯든것이다ᄯᅢ에한참「구주전란」으로폭동폭락(暴騰暴落)이잇슬때이엇는데최후의운명을거기다가걸고 일심정력을다듸려하는것이라 무슨경험이나경력이잇서그런것이아니지만 그의정경을살피고돌아보는무슨운명의신(神)이잇섯든지 사오개월간에 놀나지말지어다 이십여만원(二十餘萬圓)의큰리득을보게되엇다한다그래서그는개선한장군모양으로다시수원자긔향뎨로돌아가다시는미두계에발을듸려노치안키로맹세하고일약큰재산가(財産家)가되어지금은그ᄯᅢ눈물로써리별하고 단장의서름으로써남에게ᄲᅢ앗긴월향을다시차저가지고 자긔장중의보옥가티알ᄯᅳᆯ한사랑을주고바더가며안락하게지내는중이라고한다.


百萬長者가 沒落한 實話
時勢를잘못보아
一朝에百萬圓을일어

결혼비용으로일만원쓰
든그가지금은적젹무문
이제ᄯᅩ한가지의애화 가잇스니이것은지금도아즉여러분의긔억에새러울ᄲᅮᆫ아니라 아직도인천(仁川)을가서보면자연히생각올자어낼것이다. 그것은다른것이아니다. 일시에는미두계의패왕(覇王)이라고하야조선ᄲᅮᆫ아니라멀리일본에ᄭᅡ지그일홈이헛날이엇든것이오 이사람이한번미두시장(米豆市場)에발을듸려노흐면 그몸이나타나는것만보고도수백정(數百丁)식시세가올으기도하고ᄯᅥ러지기도하얏든터이다. 일즉히대판긔미시장(大阪期未市場)에서도이사람이한번팔고사는데그시세를좌우할수가잇섯든것이니 긔미세계에잇서서는당시에뎨일인자오 자못명성이놉든사람이다.

이사람의일홈은김복텬(金福天)(假名)이라는사람이니 그의어렷슬ᄯᅢ의신세는자못긔구하얏든것이다. 한개중매뎜(仲買店)신부름하는아희로부터 몸을일으켜일약미두계의패왕이되기ᄭᅡ지에는만흔풍상과애화가숨어잇섯든것이다. 남의신부름군으로푼푼전전히모흔돈을가지고 미두를시작하얏는데 그는평소에어린생각에도「내가이러케미미한한낫남의집심부름군으로일생을마치는것보다한번나도활약을하여야되겟다고하는생각」으로그시세에대하야연구를하얏든것이다. 급기야에자신이생긴뒤에푼푼전전히모흔돈을미천을삼어가지고긔미를시작하얏는데그의천품은실로다른사람이미치지못할 명석한누뢰를가젓든것이다. 백전백승하는그비범한관측은드듸어 그의마음먹는대로시세가움즉이엇든것이니이리하야 불과수년간에백만원이넘는대자본가되엇든것이다.

그래서전에자긔 가머리를숙이든사람ᄭᅡ지 자긔압헤머리를숙이고 자긔를천대하든사람은그의허물을뉘웃치게되엇는데 그는ᄯᅩ한성질이가장아름다워전에허물을가지고 그를배척하든것은아니다힘미치는대로도아주고 마음에잇는대로그에게은혜를베푸럿든것이다.

이러케일약백만장자가된그분은 일방으로인천의중앙(中央)이오가장요디인룡동(龍洞)한복판에다가이십만원의거재를듸려가옥을지을준비를하야긔초공사(基礎工事)를구만원이나듸려닥는일방 그는그ᄯᅢ까지독신이엇든관계상 경성에서자못미인으로일홈이놉든모학생(특히일홈은감춘다)과결혼하게되엿는데 결혼비용만하야도만여원이넘엇다한다. 조선「호텔」에서거행케되엿는데 당시의자동차(自働車)는자못그수효가몃대가못되엇는데 이것을전부모하서전용케하고ᄯᅩ한 각디에서걸혼식에참여하는사람에게는모다 이등차표(車票)를보내는등 어떤왕자(王子)의결혼식이나가타엿다고하며 당시인천XX(仁川XX)이그의결혼축사를하기위하야 공무를집어치우고참석하얏다고하는등일개사환으로몸은일켜당시에호화를보게된씨의비범한재결에 는놀나 지안는사람이업섯다고한다. 그러나

이가튼호화로운것도일장춘몽으로돌아갈날이닥처왓스니 경제계의대공황으로모든사업계에큰충동을일으키튼ᄯᅢ에 그분도ᄲᅢ노치안코그그물에얼거너헛든것이다. 씨의비범한재결로도대세를추측할수업서 고만실패를거듭하야일년이못가서수백만원을탕진하얏고 집을짓든것도중지하는일방점점기우터저가는것을것잡지못하고만다수중에아모것도남지안케되자 사탕하든애인도 그발을도리켜버리게되엇다고하는데 일시의긔미계의풍운아로명성이놉든그분은지금은과연무엇을하는지그소식조차묘연한금일에그가명에관한것을더쓰는것이죄시러워이제고만두고붓을던지랴 한다.

X X X

하여간이가티미두계에는남이알지못하는슘은애화가만흐나 여기에는다만성공담(成功談)과실패담(失敗談)을써달나함으로 다만책임을맛고저이것만으로ᄭᅳ치고후일틈이잇스면 다시좀더쓰랴고한다. (ᄭᅳᆺ)



文壇行進曲

文人들의 모임으로는朝鮮文藝家協會와 푸로藝術同盟과 歌謠協會의세개가 잇다. 文藝家協會는 소설한張에 十五錢, 詩한篇 三圓式 原稿料를 밧자는것이動機되어 文士四十餘氏가 團合結成한團體엇스나 朝鮮文壇 東光 現代評論等이 ᄭᅥ구러지는통에 지금은 多少寂寞하게되엇고 푸로藝術同盟은 안에서는무슨일을하는지 바갓헤나타나는일로는별로 눈에 ᄯᅳ이는일이업고 歌謠協會도 선소리만 굉장하여 三新聞社의社說ᄭᅡ지밧더니 아직寂寂無聞하다漁夫는 고기를낙고 文人은글을쓰고 團體는不絶히 일을하여야 그일홈이 서거든 웨이리閑散할고?

얼마전에 朝鮮日報社主催로 東小門밧어느庵子에서 文人座談會를 열엇는데 그席上에는 星海 曙海 懷月 一葉 八峯 獨鵑 承一 殷相 赤駒 多影等 巨星이 그야말로구름가치모앗섯스나모다입이점잔치못하여서紀 念撮影을할ᄯᅢ에「어서 박어요!」「어서 시언히박아버리서요!」하고 寫眞장이더러 못견디게 졸라ᄯᅦ고는 서로얼골을처다보며 하하하웃엇다. 너무여러번을 웃고졸느는통에 그ᄯᅳᆺ을알엇슴인가 萬錄叢中紅一点으로 가운데섯든 一葉女史의 얼골은불시에 九十月丹楓입가치 ᄲᅡᆯ개젓다. 罪만흔 男性들이어.

文人가운데 누가 제일 원고료를 만히 밧엇술가하면 아모래도 年祖와讀者가 만흔 春園이 첫손ᄭᅡ락에 ᄭᅩᆸ히겟고 그다음이 想涉 獨鵑 星海 曙海... 그러케돠리라고. 그러나 만타는 春園이 萬圓을 넘엇슬가?

文壇雄辯家를 ᄭᅩᆸ자면 요한을 처음에들겟고 煽動的能辯家로 李亮氏를 그다음에 칠것이다. 八峯의演說은무게잇스나 流鴨치못하고 懷月은 몸집하나 ᄭᅡᆺ닥아니하는 學者式으로하며 春園은 雄辯은못되나 能辯으로許하고 想涉은 男性的聲量에 巨軀에 아울러 演壇에서 팔도능청능청 다리도능청능청하여 豪活한覇氣로 聽衆을 ᄭᅳ느는것이有名하고 星海는 屈曲이업스나 말이막히지안는것에能하고 麗水는 고요하나 條理井然으로 일홈잇고 岸曙도 平壤愁心歌調讀詩가有名하고…… 그밧게분은 아직들어보지를못하여서 더쓸수업다.

「洛東江」一篇으로 푸로文壇을 威壓하든 抱石은 北으로北으로 가드니 이내消息이업고 열여덜의 색시ᄯᅢ에「疑問의少女」一篇을 靑春에 發表하야그일홈이놉흐든 金明渟女史 亦 消息이업다. 어데에잇든지 붓대를通하야 ᄭᅮ준한「前進」을하고잇다면 조흐련만은.

十年前엔 우리의 자랑거리더니 十年后의 오늘엔이미우리의치욕거리가되어버린 某氏가 지은 某學校의 校歌는요지음에와서 그學校學生들이 一齊히 아니부르기로決定하엿다나. 그러타고 부르랄수도업고 아니부르랄수도업서서안지고못하고 서지도못하 잇는 분은 그를舍伯으로가진그學校의某氏라니 놀나운 舍伯이로군.
名探偵秘話
殺人事件指紋
N警部口述


순사가 칼에마저 죽엇다!하는 D警察署의 놀라온 警備電話를 밧고 나는불이야불이야 집에서 ᄯᅱ어나와 東大門안의現場으로 달려갓슴니다가면서도 내머리속에서는엇재서 순사를죽엿슬가 돈이업는 순사를죽일ᄯᅢ에는 단순한 强盜갓지도안코 그러면무엇일가?………… 여러가지로의문이작고ᄭᅩ리를물고이러나서 가슴이답답하엿슴니다.

이제 이이약이를 하여나가자면 몬저살인사건의그정톄부터말하여두어야하겟슴니다. 재작년구월구일 음력으로는 秋夕名節을 하로압헤둔 바로 팔월열나흔날밤아홉시경에생긴일이외다. 그날은 식전부터 저녁후까지 장안거리에 사람이엇더케나만히나오고 더구나布木廛가른데는 옷감ᄭᅳᆺ는 손님들로 북적하엿슬것은 더말하지아니하여도잘알것임니다.

東大門안 仁義洞큰길거리에布木廛을내고잇는 文壽慶(五七)의 상뎜에도 손님이련해들낙날낙하다가 아홉시ᄶᅳᆷ하여야비로소손님들의발이즈묵하여짐으로 주인은 잠간 재든자를 멈추고 하늘에 ᄯᅳᆫ 쌔듯한 中秋明月을 바라보고잇슬ᄯᅢ에 엇든 삼십전후되어보이는 조선옷입은 청년두명이 드러오더니 태연하게 광묵열자만 팔나고하기에 주인은 아모 의심업시 자를ᄭᅳ내어서다섯자ᄭᅡ지 재고잇슬ᄯᅢ에 불시에 압헤섯든그청년이 두루막이속을 뒤지더니 속으로 길이 한자셋치 가량되는 칼긋이 서릿발가치빗나는 단도한자루를 ᄲᅢ어들고

「이놈아 ᄭᅮᆷ적마라!몸을움지기면 죽일테야하고 협박하는사이에 다른청년하나가 나는새가치 방우에 ᄯᅱ어올라 돈궤ᄶᅡᆨ을 들고 逃亡하려하엿슴니다.

强盜와格鬪

主人은 너무도 놀라서 겁결에 그만집안으로 ᄯᅱ어들어갓슴니다. 마츰 秋夕준비에 분주하든 그의안해가 男便의 죽은사람가튼그얼골빗을보고 즉시 무엇을아려채이엇는지 문을와락여러제치며

「도적이야!도적이야!」

하고 웨첫슴니다. 이소리를마츰 그附近을巡邏하고잇든 鍾路四丁目派出所巡査 金龍星(二三)이가듯고 분주히 廛房으로 ᄯᅱ어들어간즉 犯人두명은 巡査를보고 무섭든지 몸을날려 그엽골목인 순라꼴(巡羅谷)로 종적을감추고말엇슴니다.

巡査도 그뒤를따라 가튼골목에 드러간것은 勿論임니다. 그런데 공교롭게 그골목으로말하면 막다른골목이되어 얼마아니가서범인들은 進退維谷이되게되엇는데 더구나 밝은달빗아래彼此의행동이 分明하게 보여짐애 强盜들은 무슨覺悟를하엿는지 그곳嚴榮華집의 대문ᄭᅡᆫ압헤서 몸을 홱날니며 巡査에게도로 대어들엇슴니다. 그래서 마츰내그자리에서 强盜두명과 巡査한명은 그야말로 死生決斷하는 一大決鬪를 시작되엇답니다.

그리다가 한참만에 强盜의短刀에 그는 외인편가슴과 외인편륵골(肋骨)을찔니어 선지피가 폭포가치悽慘하게흘너날리는 속에서 巡査는 그만 正服佩劒한채로 그자리에 쓰러지고말고 强盜들은 바람인듯비인듯어대인지 ᄭᅡᆷᄶᅩᆨ가치 종적을 감추고말엇슴니다그려. 巡査는 卽時 總督府醫院에 入院되어 應急治療를 밧엇스나 한시간도 채되기전에 絶命하고말엇슴니다. 그러니 秋夕名節을하로압헤두고 서울판안에 殺人한 凶器가진 强盜가 潛伏하고잇는일이되니 장안안이벌컥 뒤집힐것은 뎡한일이 아니겟슴니까.
證據는맥고모자ᄲᅮᆫ
내가 달려갓슬ᄯᅢ는 檢事局으로부터도 W檢事가 自動車를타고 달려왓습데다. 그런데 證據될만한것으로는 犯人이 現場에 내어버리고간 낡듸낡은 麥藁帽子한개와 이리저리 ᄶᅵᆺ기고피무든광목두루막이 하나박게는업섯슴니다. 이것을 지고 眞犯人을 三十萬이나사는 서울거리속에서 붓잡어내어야할터이니 여간한일입니까.

그ᄯᅢ 被害當한 布木廛主人에게 물어보아도너무 겁을집어먹엇든關係로 부들부들 ᄯᅥᆯ면서犯人의 印象조차 分明히 대이지 못합데다그려. 元來대인다하여도 그런境遇의 印象은키작은사람도 키크게보이고 어린사람도 나히먹은사람으로보이며얼골이긴사람도 ᄶᅡ르게보이는것이 항용잇는일임으로 별로 밋을것도 못되지만은.

左右間 全市街에는 非常線을 느리고 一齊히 물한방울이 샐틈업는 大搜索을 하엿슴니다그러나 이러케 嚴重한 搜査를하여도아모效驗이업시 이튼날아참까지 新通한成績하나보지못하고 너머갓슴니다. 이러케되면 그야말로 事件은 迷宮에 들어가고마는것인가함애 가슴이焦燥하여지엿슴니다.

그리할ᄯᅢ 아참열한시ᄶᅳᆷ은 되엇슬가 搜査本部에는 高等工業學校에서 東崇洞가는 惠化다리 아래에서 선지피에 저진 범인의 바지하나를 發見하엿다하여 가저왓습데다. 그러고는 依然히 ᄯᅩ踪跡이업섯스니 大體犯人이시골사람인지서울사람인지도 알지 못하고 하로하로 덧업시지내여 갓슬ᄲᅮᆫ이엇슴니다. 疑問의事件이야내가 이職業에 從事한뒤 數업시 격거보앗스나 이번일가치 막연한ᄯᅢ가 드물엇슴니다.

칼에무든指紋

그런데 나는 한편으로ᄯᅡᆫ搜査方針을가지고잇섯스니 格鬪當時에 金巡査가차고잇든 칼자루에 무든 指紋을 根據삼고서 犯人을찻기에 애썻슴니다. 물론 서로 ᄯᅡ리고차고 ᄯᅡᆼ에딩글고한것일ᄲᅮᆫ더러칼자루를만진사람이千인지百인지도모르게만홈으로거기무든指紋이라는것도 하나 完全한것이업섯스나 거기에는 專門으로 여러해하여온經驗이잇서서 故心慘憺의ᄭᅳᆺ헤 數萬枚의 前科者의指紋名簿와 對照하여가는사이에 마참내 그것은 틀림업시 前科六犯으로 얼마전에 刑務所를나온 金元植인줄로 判明되엇슴니다. 犯人의素性만알면檢擧하기야쉽지안슴니가. 이에 그의故鄕과親戚과知己들의 집집에 手配를노아서은근히수색을 게속하여오든ᄭᅳᆺ헤 果然 犯行后 한달이나지낫슬가할ᄯᅢ에 L郡엇든촌의 자긔먼친척의집에 숨기고잇는것을 알고 捕繩를 둘러왓지요. 그와 前后하여 共犯 도붓잡엇슴니다.

실로 指紋이아니엇더면 그事件은 더깁흔迷宮으로 흘러가버리고말엇슬런지 누가아나뇨.

그런데 近來에 犯罪搜査하는 根據는指紋에依하는点이 만슴니다. 아모證據가업시 잡어온대야 容易히 自白도아니함으로 이러케科學的 搜査를하여나갈수박게더조흔도리가 어듸잇슴니까.



(第四十四頁으로부터)

業的으로 옷갓表情과 姿勢를 짓겟거니하면 이ᄶᅩᆨ도 그만職業心理밧게 더나오지아니함으로 그런다고할까요.

그러고 恒常생각할때에는 體格조코 明齒皓眸의 絶世美人을 맛나면 그그림은 아조잘 될상십게 생각되지만은 웬걸 정작 그런美人을 대하여보면 그만 눈이 이상하게 어두어지고 ᄯᅩ너무 잘그리고십흔생각에 그림이 自然스럽게 못되고맘니다. ᄯᅩ한가지는 지긔의 사랑하는 愛人을 모델로 써본다면 훌용한理想的그림이 되어질것갓흐나 愛人이면 아모조록 거룩하고아름답게만 들고십흔 熱望ᄯᅢ문에 도로혀 彩筆이 엉성하게되어저서 名畵幅이 나오기는 벌서 틀너짐니다. 모델로는 아모래도 아직 사내를 모르는 處女가조켓지요. 아해를 나흔 女子는 배가죽이 축 느러저서도모지 肉體美라고 求之不得이엇슴니다. 肉體만조흔다음에야 우리나라녀자나 일본녀자나 상관이잇슴니ᄭᅡ.
民族文學과無産文學
合致点差異点


오늘날 시나 소설이나 극가튼모든부문의 조선문학이 사회민중에게 ᄭᅵ처놋는바영항과 작용이여간크지안타. 그런데 이러케 중대한일을맛하하고잇는 우리의 문예운동선상을 살펴보건대거기에는 민족주의뎍운동에 ᄲᅮ리를박은 민족문학운동과 무산계급운동에ᄲᅮ리를박은 푸로문학의두운동이잇다. 글쓰는 문사의진형이저절로 이와가치 갈라저잇슴애독자의분야도 그에따라 갈라지고잇다. 이형세가 깁분일인가 슬푼일인가하는것은 ᄯᅡᆫ분의비판에 맛기려니와 위선 우리는 두운동이 엇더한뎜에 차이가잇고ᄯᅩ엇더한뎜에 합치가 잇는가함을잘알어두어야하겟다. 물론 이것이 아메리카나 불란서사회라면 문학상의 새삼스러운 문뎨가 되잘것도업겟지만 ᄯᅩ가튼조선이라도 만일삼사년전만하여도 문뎨될바업겟지만은 오늘의 모든 정세는 ᄯᅩ다시 한번 이것을 명확하게밝혀둘 필요에 절박하엿다고 우리는보고 이에 문단제가의 고견을 싯기로한바이다. (파인)


歷史的地理的이갓고
哲學的主義的이다르다

李 光 洙

一. 合致点

民族文學과 無産文學은그 歷史的, 地理的, 種族的, 藝術論的(即 文學上의 美學을 가르침)의 諸條件이 가튼것이니 좀더 仔細히말하건대
첫재 語學이갓다. 가튼ᄯᅡᆼ에서자라난作家들이니만치가튼朝鮮사람에게 思想感情을 傳함에잇서서가튼 「가갸거겨」로써 한다.
둘재 形式이갓다. 新興하는無産文學도 詩歌, 小說, 劇等그文學上의形式에잇서서는在來의型을 襲用하고 잇다.
셋재 氣質이갓다. 氣質이라함은 思想感情의 움즈기는方向을 가르치는것이니 假令 그民族의民族性이 大體로樂天的이라하면 作品도 大槪그를基調로삼아서되어질것이요, 그反對로 厭世的이라하면 亦是 厭世思潮가自然히基調를이루어질것이니 이氣質을無視하고는그作品은朝鮮人에게서 愛讀을 밧지못하고 말것이다.
넷재 風習이갓다. 無産文學이라도 家庭을그리자면 朝鮮家庭의 傳來하는風俗習慣을 無視하고서日本家庭부터 그릴수는업스리라.

二. 差異点

두文學은 哲學的主意的諸條件에잇서서알에와가치다르다.
첫재 無産文學은「반드시」唯物論的이어야하고 民族文學은 唯物論的인것도잇겟지만은 반드시그러치안어도조타.
둘재 無産文學은「반드시」階級鬪爭的이어야 할것이로되 民族文學은 그런것도 必要하나 반드시 그런것에만限하는것이아니다.
셋재 無産文學은 宣傳的이어야하나 民族文學은「不必宣傳的」이다.
넷재 無産文學은 반드시 反抗的(現在에잇서서)이어야한다. 卽時間的으로는 傳統에反抗하고 空間的으로는現制度에反抗하여야하나 民族文學은 反抗도조흐나ᄯᅩ반드시 그러치아너도 조타.
다섯재 無産文學은 반드시世界的이어야하나 民族文學은 흔히 愛國的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울닐수도잇는 것이니 露西亞의 偉大한國民文學이라일켯는「톨스토이」作品도 반드시 그一國에ᄭᅳ치지아니하고 널니世界的文學으로 일홈이 흐르는것을보아도 알것이다. 大槪 以上과갓다고생각하다.(文責在記者)


薄弱한差異點과
兩文學合致性

金 東 仁

民族文學과 無産文學은 모도 다변변치안은 問題로 이러타저러타 다투는点에서 合致點을發見할 ᄲᅮᆫ. 그 差異点은 마치 가마귀의雌雄과가타서 알수가업슴니다.


本質的으로
兩文學水炭關係

金 永 八

一. 民族文學과 푸로文學의差異點과合致點

나는 이우의題目에 너무나어렵고 말하기가 거북함을느긴다. 그것은 民族文學과푸로文學이全然그方向이다르고 ᄯᅩ한思想이다른ᄭᅡ닭이다. 우리가 얼는말하는文學이란좀더 널니말하야文藝만을單純히말한다면 모르지만 民族文學 ᄯᅩ는푸로文學 무슨 文學〻할것가트면 그곳에는 반다시 엇더한文學運動이라고하는것이前提가되지안이하면안이될것이다. 그러면그곳에는 差異라는消極的用語로는 너무나 距離가머러질것이다. ᄯᅡ러서 그곳에合致點이란到底히發見되지안을것이요, 차지랴고하는사람이 어리석다고말할수잇는것이라고 나는생각한다.


民族은保守的
푸로는世界主義的

尹 基 鼎

貴社에서 무르신바 『無産文學과民族文學과의 合致點及差異点』에對하야 筆者는 아래와가튼見解를 가지고잇슴니다.

一. 合致點

本質的으로相反되어 水火不相容의格이다. 그럼으로 合致點은 絶對로發見할수업다.

一. 差異點

푸로文學은 世界主義에立脚한 全人類의過渡期的文學이요 民族文學은 鄕土的保守的이니만치 푸로文學運動上으로보아 一個의 反動文學으로 認證할수밧게업다.


◁押收記錄▷
○ 兩文學運動은時間的으로合致한다 洪命喜
○ 別個의目的을가젓스나表現과手法이갓다 金基鎭
○ 對立된文學이나彼此利益点에서提携 金炯元
○ 取才와表現에合致性이엇다 李 亮
○ 푸로文學은民族文學에바랄것업다 李箕永
○ 文藝는政治가아니다兩文學은依然對立 朴英熙
全朝鮮文士公薦
新選「半島八景」發表
그趣旨와本社의計劃
弟 一 景 金 剛 山     (江原道)
弟 二 景 大 同 江     (平 壤)
弟 三 景 扶 餘     (忠 南)
弟 四 景 慶 州     (慶 北)
弟 五 景 明沙十里     (元 山)
弟 六 景 海 雲 臺     (東 萊)
弟 七 景 白 頭 山     (咸 北)
弟 八 景 矗 石 樓     (晉 州)

X

우리는 우리들이 사는 이朝鮮山川에서새로「半島八景」을 選定할 必要와義務를늣기고 그重任을 全朝鮮文人諸氏에게 仰議한바잇섯더니 文壇의 三十七氏로부터 즐겨 以上과가치 投票로公 選하여주섯슴으로 이에 公表하는 光榮을 자랑하는바이노라.

X

或 엇던분은 새삼스럼게「半島八景」이무엇이냐고 말슴하실넌지 모르나 우리생각에는 近來에 그릇된엇던作爲의 所致로 젊은이들사이에 山川ᄭᅡ지 남의것을더낫게 讚嘆하는 可痛할 傾向이보임으로 그를크게匡正하여노으려함과 ᄯᅩ한가지는 우리의 名勝이란 大槪 歷史的 背景이잇는곳이되어千代後人의가슴에조차 逼하는바만흔터인즉모름직이 새로운 史眼을 여기에던저 更張의 意氣에ᄭᅳᆯ는 오늘民衆으로하여곰무엇-

推薦한八景

碧初 洪 命 喜 : 白頭山, 金剛山, 智異山, 大同江, 白馬江, 多島海, 閑山島, 鴨綠江

春園 李 光 洙 : 金剛山, 海雲臺, 大同江, 多島海(全南), 夫餘, 白頭山, 釋王寺, 朱乙溫泉(咸北)

을늣기고 무엇을 ᄭᅢ닷게하도록하여야 할것인줄아노라. 엇지그ᄲᅮᆫ이랴 自來로 조흔山水가잇는곳엔 조흔人物이나고 조흔山水를보는눈에는 조흔글과 조흔생각이 우러러나온다하는터인즉 山紫明眉하기로 亞細亞에웃들인 이山川을紹介함으로써 諸氏에게山河踏破의壯擧를促하며 ᄯᅩ우리 朝鮮人의 自負心을 굿게하는機錄을짓고저하는바이다.

X

이러케 貴重한意圖와 多大한努力으로엇은「八景」을 엇지할터이냐하면 本社에서는 今後로 붓으로 말로 그림으로 이ᄯᅳᆺ깁흔 山水의紹介에 全力을다할터인바 爲先 그첫計劃으로 現文壇의 八氏에게 仰託하야 一景一人主義로 그景致를 손소밟고 손소보게한뒤 入神의名文章으로 그紀行文을 送號誌上에 公表할터이라 뭇치엇든 勝景이文人의 붓ᄭᅳᆺ을通하여 世上에 나타날ᄯᅢ 우리는이ᄯᅩ한 歷史的壯擧임에틀님업는 意義잇는줄밋고 自矜을늣기는바이노라.

「附記一, 八景選定에잇어 甲은牡丹峯하고乙은乙密臺라는式으로 一地域內의各景을 제각금 記載한것이잇는데 이는一括하야大同江이라하엿스며 其外夫餘慶州도 이에準하엿스니 諒解하실지며

附記二, 公薦하여주실 文士로 住所를물으이는가만허서 퍽애를썻으나 ᄭᅳᆺ내몰라서 省略한분이잇스며 더욱 回答이 編輯日字에느지신분이잇서그도 ᄲᅢ엇스니 諒解하시압


金剛山
得點數三十四
碧初 春園 八峯 宋影 劉道順 想涉 韓雪野 崔承一 懷月 曙海 赤駒 趙春光 朱耀翰 金東仁 金永八 朴八陽 高漢承 岸曙 石松 夕影 憑虛 星海 沈熏 文一平 李瑞求 白華 柳光㤠 金一葉 李殷相 獨鵑 李箕永 春海 卞榮魯 파인


大同江
得點數二十八
朱耀翰 想涉 赤駒 趙春光 朴八陽 韓雪野 碧初 春園 白華 星海 李瑞求 宋影 劉道順 文一平 柳光㤠 高漢承 夕影 憑虛 岸曙 沈熏 李箕永 春海 崔承一 李殷相 卞榮魯 崔獨鵑 金一葉 파인


夫 餘
得點數二十一
春園 碧初 獨鵑 李殷相 劉道順 卞榮魯 文一平 高漢承 赤駒 李瑞求 宋影 崔承一 白華 朴八陽 柳光㤠 想涉 金一葉 夕影 韓雪野 岸曙 파인


文 一 平 : 八景이란 아주不自然한것입니다. 여들의數字에拘束되어 景致가그實은 여들이되지도못하는것을 억지로 여들을 채우기爲히야 이것저것 가저다가 八景이라고稱하는것은 自然美를 選定하는本意에어그러짐이니 景致대로 二景도 可하고三景도 可합니다. 何必八景이겟습니가. 그러나在來支那滿洲八景을 模倣하야 무슨八景이니하든우리네慣習이 아즉도 남아잇서흔이 八景이라고 하게됨으로 비록내의理想에 合치못하나 물으신대로 對答할ᄲᅮᆫ입니다.

1 金剛山, 2 鴨綠江, 3 龍王潭, 4 大同江. 5 落花岩, 6 檀君窟, 7 矗石樓, 8 鏡浦臺

八峯 金 基 鎭: 나는 세상에서 이르는 勝景은 고사하고 도대톄 조선각디를 도라다닌곳이라고 별로 없서서 八景을 記錄치못합니다만은 억디로들라면 金剛山하나는 말할수잇겟지요.

廉 想 涉 : 金剛山. 慶 州, 夫 餘

慶 州
得點數十三
想涉 金東仁 金一葉 朴八陽 高漢承 白華 獨鵑 李箕永 李瑞求 劉道順 崔承一 岸曙 樹州


明沙十里
得點數十一
岸曙 獨鵑 夕影 道順 赤駒 孤帆 李箕永 麗水 韓雪野 李殷相 柳光㤠


海雲臺
得點數十
春園 曙海 岸曙 柳光㤠 韓雪野 李瑞求 方仁根 崔承一 卞榮魯 李殷相


矗石樓
得點數八
文一平 夕影 趙春光 柳光㤠 劉道順 獨鵑 沈熏 파인


白頭山
得點數八
春園 碧初 麗水 崔承一 宋影 柳光㤠 赤駒 파인


◇ 次点表

滿月臺 釋王寺 朱乙溫泉 藥山東臺
朴淵瀑布 鴨綠江 統軍亭 鏡浦臺
漢江 月尾島 長壽山 善竹橋
智異山 濟州島 叢石亭 白雲臺
漢拏山 九月山 七寶山 玉流泉
馬山海岸 妙香山 釜山棧橋 襄陽洛山寺
多島海 龍王潭 檀君屈 三防
豆滿江 雪岳山 鷄龍山 昌慶苑秘苑
洪原前津附近 洛東江 京城驛頭 新義州稅關
鍾路네거리 望月寺 消遙山 蓮實峰
南漢山城 黃州月波樓 鐘峴天主敎堂 陜川海印寺
鷺梁津 裕昌商會二層 仁王山麓 錦江一帶
溫陽溫泉 鬱陵島


朴淵瀑布, 統軍亭, 大同江, 滿月臺, 玉流泉

金 東 仁 : 景致라하는데대하여본시無취미한나는絶景金剛山이조흔줄아나 愚景城北洞과구별치를못합니다. 日本富士山의雄大와慶州鳳凰台의雄大를구별치를못합니다. 天下絶景이라는金剛山과흡사한경치를 나는 온갓산과온갓시내에서發見합니다. 釋王寺에갓을\ᄯᅢ 平凡한平野라생각하엿는데 그러나 그印像은 아직것머리에 기피 백여잇습니다. 원래旅行을조아하는나는 汽車가잇는곳은(이전有産時代에)대개한번식 발을드려노아보앗습니다. 그러나 아직것絶景을보지를못하고愚景을보지를못하엿습니다. 旅行者의그ᄯᅢ그ᄯᅢ의경우가 愚景으로서絶景도만들고絶景으로서愚景化도하나니 愚景慶州가이러틋나의머리에美景으로남어잇는것은 그ᄯᅢ나의게아름다운同伴者가잇섯는연고오 善景釋王寺가 나의게아모인상도안남어잇는것은 그ᄯᅢ釋王寺에는 모도ᄶᅡᆨ이맛는男女가喜喜히짓거릴ᄯᅢ에 혼자소나무아레를배회하든가련한 나이든연고이겟지오.

韓雪野: 明川七寶山

紀 行 論介야論介야부르며
初夏矗石樓차저
歷史와歌絃의都市

◇晋州城에서 金 東 煥

三浪津에서 푸른물결이 출넝출넝 구비치는 洛東江을ᄭᅵ고 西으로西으로 四五時間을 가다가車에서나리니 이곳이 새로 選定된半島八景잇는 晋州城이라 人家만ᄲᅢ어노흐면 全市가 古跡속에 파무첫고 ᄯᅩ喧援한 妓女의 歌絃만덥흐면 거리거리가 무덤속가치 고요하여지는 古典的非流動的都會이나 그래도 이속에 조선의목슴을 한백년이나 늘이어노앗다하는 情熱的XX的女性인 論介누나의 靈魂이 길이 잠드러잇거니하면 永遠히 生命이 躍動하고잇는 산都城으로보이어 無限히 親愛를늣겨진다.

실로 晋州는 論介를中心으로한 近世三百年間의우리歷史의 큰무덤이니 오늘날 南江長流碑에 亞鉛과 鐵과 돌로다지어 웃득소슨 모든 洋館이나 아물거리는 저자의 數萬市民이 어느하나가 그무덤우에핀 ᄭᅩᆺ송이들이아니랴

다만 가튼 墓塚우에핀 ᄭᅩᆺ들이라할지라도 하나는 論介의 눈물우에핀 ᄭᅩᆺ이요 다른하나는 우습우에핀 ᄭᅩᆺ이니 ᄯᅢ의 破毁力에 頑强히 抵抗하면서도 殘矗나마 가지고잇는 宣化堂의 저쓰러저가는 建物은 이를터이면 前者에屬할것이요 鐵骨로 威㬨하는드시 林立한穀倉其他의 洋屋은 后者에 부를것이라 아무튼 론개를 아는것은 晋州를아는것이요 晋州를아는것는 近世朝鮮史를 아는것이니 이ᄯᅡᆼ을생각하는 사람에게는 晋州가 만흔 追力을가지고 차저들것이다. 이에 사람들은 가튼古都면서 서울에서살다가 平壤에와서 ᄭᅮᆷᄭᅮ다가 晋州에이르러비로소 크게 생각하게된다할가 이토록 이ᄯᅡᆼ은 詩와史紀의 素材로 가득찬곳임을 一見에 알수잇겟다.

나는 이러한 여러가지 생각을하여가면서 산모퉁이 停車場에서나려 市內로 터벅터벅거러드러와 旅館에서 청포드부와 감주로 ᄯᅡᆷ을드리고 다시 처음밟는 ᄯᅡᆼ의興味에 얼마금 亢奮이되면서 晉陽池겻흘스처 矗石樓로 向하엿다. 山川이 거러와주지안는 限에는 맛날긔약이 아득하건만은 南邦이 이로맨틱한-
安邊三防, 元山明沙十里, 金剛山, 襄陽洛山寺, 平壤大同江, 藥山東臺, 夫餘, 海雲臺

高漢承: 金剛山, 大同江, 朴淵瀑布, 統軍亭, 朱乙溫泉(咸北), 釋王寺, 泗비水(夫餘), 佛國寺(慶州)

麗水 朴八陽: 金剛山, 白頭山, 明沙十里, 濟州島, 智異山, 慶州, 夫餘

柳光㤠: 金剛山, 平壤浮碧樓, 東萊海雲臺, 元山明沙十里, 夫餘白馬江, 白頭山天池, 晋州矗石樓, 江陵鏡浦臺

樓臺를 서울에안저 얼마나 보려고애썻든가?靑靑한대수풀 埃及의나잃江畔가치 살이진洛東江七百里의平原 雄大秀麗한山川 南歐人가치 快活하고도 情熱的인住民의性格等 이모든 嶺南의風物은 나의憧憬을ᄭᅳ은지 실로오래인것이다. 그중에도 矗石樓에 마음이달닐ᄯᅢ ᄶᅡᆫ닭크나 카레-市民에서보는것가치 견딀수업는 感壓과香氣에 덜마나 이몬이안티가워젓든가 더구나 勝地란 元來寫眞은 그림만못한법이고 實物은 그寫眞만도 ᄯᅩ한 못한法인줄 번연히알면서도 남이뎐하는말과 寫眞을通하야 이곳을 그림以上 사진이상의곳으로만들어엇더케나큰期待와ᄭᅮᆷ을 가지고왓든가 그러케그립든山川을 이제 눈압헤對하게됨에 실로 어룬압헤가는듯 法官압헤나서는듯 가슴이달아오르고 공연히속이두군거린다.
樓는 南江의강가 數十丈絶壁우에 丹靑칠한마흔여덜개의 鶴의다리가튼 긴듯한 기둥을벗듸디고 외ᄯᅡ로히올라선 壯麗優美한 建物이니 돌기둥이 아니랄ᄯᅡ름으로 景福宮안 慶會樓와비슷한 建築이다. 도리기둥이 모다 두아름씩이나되고 주칫돌도 너래방석만하고 집웅우긔와쌍은韓山모싯발가치 고르고 □干과柱築에 古典的彩畵를 그린것이 寫眞에서본 浮碧樓나 統軍亭보다도 활신數倍上乘임이分明하다.

나는 두다리를 널마루바닥에 버더버리고 탈석주저안저 山이보내는 산바람과 강이보내는 물결소리를 번가라드러가면서휘파람을 휘휘불어보앗다. 각금하늘에ᄯᅳ기도실코 ᄯᅡᆼ에안기도실은 나무닙이 바람에 둥기둥기ᄯᅥ서 이마ᄲᅡᆨ을ᄯᅡ린다.

흔히 山水가 얌전하게어울닌勝地를차저갈지라도 山이너무놉흐면 키큰사람밋해간것가치 巨嶽의威壓을밧고 바다가너무너르면 문업는집간가치 海洋의空虛와寂寞을 늣기는법인데 이矗石樓를싸고도는 遠山近水는 그대지 크지도 너르지도안어서 제집아랫목에와안즌듯한안윽한늦김을준다. 더구나 부러운것은 南海岸에만ᄯᅳ는 五月初夏의 맑고굿썬太陽이 山과들을 分明하게비추어 ᄭᅩᆺ이면아조眞紅ᄭᅩᆺ이되고 풀이면아조 샛파란풀을 만들어준다. 이러케 色彩와光線이 强하고 鮮明한속에서사는 백성들이길래 嶺南사람들은 敏感하고 快活하며 그性格에 陰影이라고업는것이다. 이미 敏感하고 陰影이업는지라 노래와춤을 조와하고 ᄯᅩ多血質이되어 淫娼속에서ᄭᅡ지라도 論介가튼이가 ᄯᅱ어나온것이리라. 나는우리咸鏡道사람과 氣質이만히 相通한다는 嶺南사람을 이러케 □釋하고안젓는데 불시에 무엇인가 쿵하고 마루바닥에 물안는소리가난다도라보니 조막이(漁網)속에「필이」 「은어」 「잉어」등의 고기를 가득너허멘 沙工하나가 긔운이업는지 주저안저 ᄯᅡᆷ을씻는다. 고기들은 하늘놉흔맛헤 해얀뱃대기를 드러내노코 련해ᄯᅱᆫ다.
「이게 이강에서 잡은게요?」
「잡은게아니라 낙구엇다오」
「하로에 얼마나 낙구어지나뇨」
「고기더러 무러보구려」
岸曙 金 億: 大同江, 明沙十里, 鴨綠江, 金剛山, 藥山東帶, 夫餘, 海雲臺, 慶州

孤帆 李瑞求: 金剛山, 牡丹峯, 海雲臺, 昌德宮秘苑, 明沙十里, 釋王寺, 慶州, 夫餘

李殷相: 海雲臺, 藥山東帶, 金剛山, 明沙十里, 月尾島, 牡丹峯, 泗비水, 朱乙溫泉

春海 方仁根: 錦江一帶, 妙香山

하며 씩웃는다. 이곳사람들은 말에유-모어가돌ᄲᅮᆫ더러 諧謔을 할줄아는것이 마음을ᄭᅳ은다.
「대답할줄 아는 고기면人魚게요」
「인어가 아니라 잉어라는데 그냥반 성가시게 구는군」
「그러거든 소원대로 잉어라하여두지. 그래고기맛은조흔가요」
그는 나를 물ᄭᅳ럼히 처다보드니
「님자 어듸서왓는게요」
「서울서요」
「그럼 한강고기보다는 맛잇슬걸요」
「웨요」
「고기란가튼강이라도 모래ᄭᅡᆯ닌 민물에서나는 고기는맛잇고 진흙ᄭᅡᆯ닌 강물서 나는고기는 고약한법임넨다. 한강이야 남강가치 모래ᄭᅡᆯ렷슬나고」
嶺 南 의 勝 地 矗 石 樓
나는처음배우는 智識이다「그러거든 한마리주오」하고 十錢한푼을 ᄭᅳ내어 손에쥐어주니 그는나를 처다도보지안코「엣소다」하며 ᄲᅢᆺ대기빨간은어한개를 탁집어던지며 돈도 도로내던지더니 ᄯᅡᆷ을 다드렷는지다시 조락이를 메고나간다. 나는 淺薄한그態度에 얼골이 블거지면서도 그快活한 動作에반하야 赤銅色필ᄯᅮᆨ과 성큼성큼거러가는 뒷모양를한참 바라보앗다. 마루바닥에 ᄯᅥ러진 고기는 몬지를 뒤집어쓰고 盛히 曲藝를한다.

有名한 義岩은 矗石樓의 발충에잇스니 마치아렉산, ᄯᅲ마의小說岩窟王쏙에나오는 寶島의出入口가치 이름모를 측넝쿨이 天日을가린듯한石階數十段을 요리조리ᄯᅮ지고 江물잇곳을 向하여나려가면 洞窟을 버서나기밧부-
海雲臺, 溫陽溫泉, 金剛山, 牡丹峯, 智異山, 鬱陵島

赤駒 柳完熙: 白頭山天池, 九月山, 妙香山, 明沙十里, 綾羅島一帶, 金剛山, 黃州月波樓, 扶餘

獨鵑 崔象德: 矗石樓, 慶州, 扶餘白馬江, 牧丹峰, 長壽山, 藥山東臺, 明沙十里, 金剛山

宋影: 白雲臺, 金剛山, 漢拏山, 白頭山天池, 九月山石潭九曲, 洪原前津附近, 扶餘, 大同江

게 탁터진水面과 눔고서고안즌 만흔바위가잇고 그리로ᄭᅡᆨ근듯한 絶壁이마를스쳐 서너거름 나아가면 큰너래방석우에 論介者晉州官妓也云云의 刻文磨滅하여가는銘碑한개가잇다. 陰曆六月三十日의 晉州陷城날에 이바위우에서 論介의肉身은 ᄯᅥ러저죽은뒤 그의 紹介만은 文字로化하여 이러케 萬年을 살고잇는것이다.

나는 三百年前中世紀의 悲痛한呼吸을이銘碑우에서 늣기며 강물을바라 걸터안젓다. 물결조차 무엇에 ᄶᅩ기는드시 不安하게달려와서는 水石속으로 얼는 자최를 감춘다. 그러나물결이 사라지기밧부게 어듸서 쿵쿵쿵하고 말달려오는 말밟굽소리가나며 강변에는 총마진負傷兵이 총자루를ᄭᅥᆨ구로메고 城壁우로기어내려와 이마에흐르는빨간피를 물에씻고잇는 모양이보이는듯하다. 그ᄲᅮᆫ인가古戰場마다잇는 陰散한내음새와 將士의妻女들이 鳴咽涕泣하는소리가 어느모통이에선가들니는듯하다. 실로 그ᄯᅢ에는 저기보이는 西將臺에 烽火가켜지고 城壁우에 ᄭᅳ린물동이를 이고잇는婦女들이 급한숨을쉬며 갈팡질팡하고잇섯스리라. 城門을 히든 군사의 苦戰하는모양과(十四行畧) 이러한생각을함애 저강변의 모래알을파면 아직도 그ᄯᅢ쓰든총알과 말방자와 쇠창살늘이 나올것갓다.

그ᄲᅮᆫ일가. 손구락을 물속에너허 헤우적거러면 論介가입고죽든 그치마자락ᄭᅳᆺ이 걸치어나올것갓고 바위와바위틈을 삿삿히들추어보면 그ᄯᅢ論介가ᄭᅵ엇는 가락지와 비녀들이 차저지어나올것갓기도하다. 만일 이물결소리와 바람소리만 아니들니엇든들 三百年前에 이바위우에 ᄯᅡᆯ낭하고ᄯᅥ러지든 論介의 그비녀소리를 차저듯지안엇슬가. 모든것이 안타ᄭᅡ운 空想이엿더라도 最後에나에게 목숨이두개만잇섯든들 물속에ᄯᅱ어들어 그가 이미 모래로化한 肉身의 한ᄶᅩ각이라도 ᄯᅳ더내오지안으랴. 北邦의 靑年하나는 생각을千古에날니며 水邊을한갓徘徊할ᄲᅮᆫ이니 論介이를알아줄손가.

드른즉 저기보이는 水中岩하나는 밤을자고이러나면 한치두치 陸地와漸漸각가워온다고한다. 그ᄲᅮᆫ인가. 해마다 그가죽든六七月이되면 사람이하나둘씩은 반드시 ᄲᅡ져주는다고 靑年畵家姜信鎬君의죽음도 陷城날을 二三日두고 그리하엿다한다. 아마말못하는論介는 水石을움지기고 산사람을 溺死식히면서 무슨말을 우리에게 不絶히하고 잇는모양이나 누가 그ᄯᅳᆺ을알어주랴

아무튼 조선에도 씰렐가튼큰 詩人이나섯더면 論介를 ᄶᅡᆫ닭크모양으로 永遠히 산人格으로 文學上에 再現식혀노앗슬것을 그러타면 論介도 한갓哀音悽々히 우는 봄날의 不如歸에靈魂을담어마듸마듸 애ᄭᅳᆺ는 呼訴만를아니하련만은.

아직 가보지는못하엿지만은 平壤淸流壁에 못지지안케 南江의황혼의 情趣도 사람을 ᄭᅳ은다고ᄭᅩ이는바람에 나는 저녁을먹고 다시 矗石樓로올너왓다. 어듸서 보리이삭이 익는-


林和: 釜山棧橋, 京城驛頭, 新義州稅關, 鍾路네거리

石松 金炯元

생활이너무固陋하여 求景한곳이別로엄슴니다. 金剛山을본일은잇스나 金剛山을八景에느흐실지 標準이許하신다면 이한곳만이라도 너허주십시오.

古跡으로는慶州의石窟庵가튼곳을들수도잇스나 景致를주로뽑는데는不可할가하오며

半島의八景이 自然美를主로嚴正하게ᄲᅩᆸ혀지기를希望할ᄲᅮᆫ입니다.

星海 李益相: 大同江, 漢江, 釋王寺, 金剛山

趙春光: 金剛山, 矗石樓, 長壽山, 牧丹臺, 叢石亭(通川), 鷄龍山(公州), 朴淵瀑布, 雪岳山(麟蹄)

尹基鼎

八景은 가본곳이 별로업서서 적지못함니다. 가보지도 못한곳을 엇더케 責任을지고 推薦하겟슴니ᄭᅡ.

夕影 安碩柱: 平壤大同江, 金剛山, 晉州矗石樓, 洛東江

소리와 새가알을ᄭᅡ는소리ᄭᅡ지 들닐듯십게江亭은고요하다. 아마이景致를보고 故人들은天地寂滅에 醉하다가 무릅을툭치며 晉陽城外水東流요 菁竹芳蘭綠映洲라고 멋진글귀들을 읇헛슬것이다.

실로 菁川叢竹이오 望景白雲이오 赤壁歸帆云云等의 晉州八景이 어느한가지가 글귀아니될것이업다. 그ᄲᅮᆫ인가. 길고긴강 옷자락 날니는바람 물을차며날느는갈메기 참대밧헤들니는머슴애통소소리, 거리의다듬이소리, 明滅하는 街路燈, 舊市街와 新市街에서 新舊文明이交代하는소리, 임진난에죽은 壯士의鬼哭, 이모든音響과 色彩는 悲壯한詩歌를자어내기에 充分하다. 그ᄯᅢ不時에 義娘祠뒷수풀속에서「호호호」하는 艶妖한소리와가치 아래위를새하야케차린 中年女子하나가 톡튀어나오드니 내잇는곳으로 달려온다. 나는 가슴이ᄯᅳ금하여지며 얼는기둥그림자에 몸을감초고그動靜를살폇다.

그는 분주히달려와서는 빈터전인줄만알엇든지 얼는 기둥뒤에 몸을숨기고 얼골만 조곰 내밀어 지금나오든곳을 물그럼히도라다본다. 달비체 반ᄶᅳᆷ보이는그얼골은 둥글고하얏섯다. 눈이큰것이겁도만켓거니와 남의말도잘듯게생겻다. 그러나 그의차림차림이 려렴집 부인갓지도안코 그러타고 妓生갓지도안코……… 나는알수업는 好奇心에 그를보고는생각하고 생각하고는 엇어보기를 작고하엿다. 담바한대피어물사이ᄶᅳᆷ이나 기대렷슬가 그ᄯᅢ 앗가 女子가나오든곳으로부터 十四五도안이 되엇슬듯한머리ᄭᅡᆨ근 少年하나가왼손에버들닙홀후루루흘트며 폴을헤치고나오더니 矗石樓에이르러 누구를찻는빗도업시 강물을향하여 회파람을 두어번 불다가 슴거운지도로 宣化堂잇는 고개길를 向하여나려간다. 그제야 앗가녀자는 그뒤를ᄯᅡ라가더니 몰내 少年의억개를톡친다. 얼굴을 마조치는 둘온 웃섯다. 그리고는 압서거니 뒤서거니 다시어둠속에 몸을감추어버린다.
「대체 저게 무엇일가 애인ᄭᅵ리일가. 너무 나이틀니고 母子ᄭᅵ리 일가. 너무 表情이 달느구만」
하고 나도 다락을내려서며 중얼거리엇다. 그리면서도 나는 여기에서 中世紀式 로맨틱한 라-부씬을본듯 마음이 활신 가비워짐을 ᄭᅢ달엇다.

X

나는 그날밤차로 嶺南의勝地를두고 서울로ᄯᅥ나왓다. ᄯᅥ나는나는 百年살기를 긔약하기어렵겟스나 기터잇는 矗石樓는 千年은살니라. 矗石樓가千年을산다면 論介는 萬年이나 億萬年을더살터이다. 생각건데 晉州가漁場과農場으로차고 南江과洛東江가에 汽船과 起重機와 浚渫船과 製鐵所와 化學工場이 林立하는날이잇슬지라도 하다못해 傳說의ᄭᅩᆺ이되어서라도 論介만은 永遠히永遠히이ᄯᅡᆼ에곱게피어잇슬것이니 아하 萬古에 비최는 義의힘의큼이여!
(附記創刊號에 실닐 半島八景紹介는 文士某씨에벌서부터 依託하엿든바 不得已한事情으로 編輯前期하야 仝氏가旅行이不可能하게되엇슴으로 本社에서는狠狽하고마츰晋州에旅行中인社員에게 말하야 이一篇을엇기로하엿슴니다. 八景紹介에 先后顚倒되 엇고紀行文쓴이그適任과順序가아아닌줄아나 以上의事情을 諒察하여주소서.)

元山明沙十里, 漢江, 馬山海岸, 扶餘

憑虛 玄鎭健: 大同江, 漢江, 金剛山

樹州 卞榮魯: 望月寺, 蘇逍山, 大同江, 月尾島, 扶餘, 慶州, 海雲臺, 金剛山

一葉 金元周: 金剛山, 大同江, 扶餘, 慶州, 釋王寺, 滿月臺, 鏡浦臺, 月尾島

崔承一: 金剛山, 海雲臺, 滿月臺, 大同江, 扶餘, 慶州, 白頭山, 鴨綠江

曙海 崔鶴松 金剛山 七寶山(咸北) 朱乙溫泉(咸北) 白雲臺 海雲臺 鷺飛山(馬山) 佛甲山蓮實峰 南漢山城

白華 梁健植:玉流泉, 滿月臺, 大同江, 金剛山, 慶州, 扶餘, 朴淵瀑布, 統軍亭

金永八: 金剛山, 叢石亭, 釋王寺, 鏡峴天主敎堂

李箕永: 金剛山, 大同江

◈ 三大新聞의小說 ◈

朝鮮日報의
「林巨正傳」에對하야

碧初 洪 命 憙

新聞社에서 宣傳하여주는 모양으로 「아렉산, ᄯᅲ마」의 岩窟王가치 나의 小說이波瀾曲圻이만코 ᄯᅩ奇拔하여 萬人의興味를ᄭᅳ을수잇는것인지? 내가 생각할ᄯᅢ에 조선일보의이러한선뎐이 도로혀 몸괴롭기도함니다만은좌우간 내가 林巨正이라는 人物에대하야 興味를 늣겨온지는이미오래엇슴니다.

림ᄭᅥᆨ정이란 녯날 封建社會에서 가장 학대밧든 白丁階級의한人物이 아니엇습니ᄭᅡ그가가슴에차넘치는 階級的○○의불ᄭᅵᆯ을 품고 그ᄯᅢ社會에對하야 ○○를든것만하여도 얼마나壯한快擧엇습니ᄭᅡ.

더구나 그는 싸우는방법을잘알엇슴니다. 그것은 자긔혼자가 陳頭에 나선것이아니고저와가튼 치디에잇는 白丁의團合을몬저ᄭᅬ하엿든것입니다.

元來 特殊民衆이란저이들ᄭᅵ리 團結할 可能性이만흔것이외다. 白丁도 그러하거니와체장사라거나 독립협회ᄯᅢ 활약하든 褓負商이라거나 모다보면 저이들ᄭᅵ리손을 맛잡고 意識的으로 外界에 對하여對抗하여오는것임니다. 이必然的心理를 잘利用하여 白丁들의團合을ᄭᅬ한뒤 자기가 압장서서 痛快하게 義賊모양으로 活躍한것이 림ᄭᅥᆨ정이엇슴니다. 그러이러한 人物은 현대에 재현식혀도 능히용납할사람이아니엇스릿가.

다만 그분의 史蹟이 그러케 昭詳하게남어잇지아니하여 想像으로 스토리를이어나아가야될 境遇가 만슴니다만은 歷史的事實인바에는 그年代에 置重하여거이 年代順에갓갑게 事件展開에 지금ᄭᅡ지 努力하여왓슴니다.

그래서 爲先一百二十回ᄭᅡ지는 林巨正을 싸고도는 그ᄯᅢ社會의 雰圍氣를傳하기에 消費하엿는데이제부터는 정말 림ᄭᅥᆨ정이가나타나게됨니다. 그래서 七兄弟가 도적질하려가는 場面이가장 緊張하게되어질줄압니다.

勿論 이小說을 構想하고 表現할ᄯᅢ에는廣汎한 各層의人物을 讀者로하는 新聞小說이니만치 用語等에도 格別히 注意하여 大衆이 닑도록 쓰느라고하엿스나 얼마나 成功하엇슬넌지 스사로 의심하고잇슴니다. 아마 이小說은 四百回갓가히가야 하고십흔말을다하고 ᄭᅳᆺ을 매칠 것갓슴니다.

東亞日報의
「端宗哀史」에對하야

春園 李 光 洙

나의 端宗哀史는 每日쓰고잇슴니다. 그러나 요지간은 감긔ᄭᅡ지 더처서아조 病床의 人의 되엇슴으로 각금 몃칠씩 闕하게되어 닑어주시는여러분에게 대단히미안스럽슴니다. 小說은아마三百回假令은갈것갓슴니다. 아모쪼록 만히써야 나自身의 팡문뎨도 해결이될 터이니ᄭᅡ요. 무엇이요? 端宗哀史는「함렛트」에 갓갑지안느냐고요아녀요. 쉑스피어가튼 분에 比하여 엇덜는지모르지만 오히려「막ᄲᅦ스」에 비슷할뎜이 만흘걸요. 자긔의 ᄭᅳᆺ업는野慾을채우기위하여 올흔사람 조흔사람 貴한사람 富한사람을 모조리 殺戮하고 ᄯᅩ모든것을 破壞하여버리고는 ᄭᅳᆺ업는 權勢와 財物과 物質의榮華속에 살려고 박박애를쓰는 그런뎜을 그린것이 나는「막ᄲᅦ스」와그題材가 갓흔것인줄암니다.

생각건대 帝室이 沒落하는 그悲慘한歷史야 東西의어듸에 업스랴만은 실로 端宗ᄭᅦ서와가치 슬푸게 긔막히게 ᄭᅳᆺ을맛친이가 드물줄압니다.

閔妃-明成皇后도 슬푼歷史를가진분으로는 가트나 그러나 그분은말하자면우리들에게서 同情을 살만한 材料를적게가젓슴에反하야 端宗께서는 그러치안엇슴니다. 어린그분의 史紀는朝廷에서 編寡한國史속에 그러케 소상하지못하나 野史로내러오는것에는 正確한것이만슴니다. 지금내가 쓰는根據는 그正史와 野史의두가지인데 그러기에 아모ᄶᅩ록 作者의 想像을ᄲᅢ고 歷史上에나오는 事件그대로 ᄯᅩ實在人物그대로 文學上에 再現식히기에 애쓰는터이외다.

悲慘한場面이야 金宗瑞等 顧命밧은忠臣들이 慘殺를 당하는곳이나 六臣이죽는데도그러하겟지만은 이제압흐로 그보다 몃갑절이나더하다할 실로긔막힌 場面이 나타남니다. 結局端宗께서는 江原道寧越이란 산골에 ᄶᅩᆺ기어가서 목을매이어 도라가시지요. 그때 어느忠臣이 幼帝를 업어다가모서두고 드라안저서 시냇물을바라보며 지은時調가 잇는데 그한首만은 실로 卽感을 잘노래한것으로 일만 사람의 애틋한 눈물을 자아내고야 말것인줄압니다. 나는 이端宗哀史를 다른ᄯᅢ 小說에서보다도 더만흔 精誠과敬虔한마음을가지고 써가는터이외다. (ᄭᅳᆺ)


中外日報의
「淨化」에對하야

獨鵑 崔 象 德

나에게 만일 會心의作이 엇섯다면 그것은 僧房悲曲도아니요 香園艶史도아니고 오직 現在執筆中에잇는 이淨化일것임니다. 남들은 엇더케 말하는지몰라도 나는 이小說을 내가 從來에個人과家庭에 基礎를두어戀愛中心의것만 쓰던데서 한번ᄯᅱ어서 온전히 社會的 題材를 中心삼고構想한 社會小說이라는点에서 一層만흔 自信을 가지러함니다.

그래서 朝鮮의 ᄲᅮᆯ조아지인 貴族이나 豪富들의 家庭에서 이러나는 조고마한事實이 現實社會에 엇더한波動을이르켜놋는가?ᄯᅩ는無産階級에서「스트라익」이 이러나는것과 부유한사람들의 存在와는 엇더한關係에잇는가하는 等의点을 캐고寫實하는데서 나는 무엇을찻고저 하여이붓을든것이외다. 따라서

主人公인「정숙」이란 실로 그네의손톱ᄭᅳᆺ에 지치인 一個의典型的人物로 그리노라고하엿슴니다. 그가 웨 妓生이되엇느냐?妓生이 되어서 엇더케사느냐ᄯᅩ그아버지의 行爲가 子女에게와 社會에 엇더한 影響을 주엇느냐 하는 点도 보이려하엿슴니다.

내가 觀点을이러케두고쓰느니만치 讀者에게서도 만흔便紙와 激勵의말을밧슴니다. 모델은업고 挿畵도 그만하면 滿足할밧게엄겟슴니다. 慾心을말하자면挿畵란 但只作品의 說明에 ᄭᅳ치지아니하고 좀더 作者가 붓ᄭᅳᆺ만으로 그려지지못하는 엇든点을 보여주는데 그機能이잇슬줄아는데 夕影君의挿畵가가장나를滿足식혀줌니다.

그런데淨化는압흐로百二三十回는 繼續될것갓습니다. 只今百三十回나왓스니 모다二百六七十回는 가야 내가쓰고십흔말을 다할수잇슬걸요 (ᄭᅳᆺ)


押收記錄

○ 當時의追憶 韓龍雲

○ 世界의巨人蔣介石 朱耀翰

○ 印度詩聖타고아會見記 薛義植


雜談室 ◇天力의努才

天才는 努力의別名이란말도 잇거니와 저瑞西의有名한 피아노大家일ᄲᅮᆫ아니라 歐羅巴樂壇에 그名聲이 ᄯᅥᆯ치고잇는 「발, 베륵」씨는 새로創作한 樂曲을 적어도一千五百番은 彈奏하여보지안으면公演에 나가지안엇다고. 千五百番이면하로 오십번씩 練習한다손 치드라도 실로한달동안이나걸린다. 天才의努力! 얼마나아름다우냐.
亂 舞 하 는 肉 體 美
裸軆모델과 畵家의感觸
靜物을對한것가치
性的亢奮이업섯다

夕影 安 碩 柱

나는東京에서洋畵硏究所를다닐ᄯᅢ나 서울에서 書畵家協會를다닐ᄯᅢ에裸體女子를 모델로삼고 그림을만히制作하여본적이 잇는데 정작 당하여보기전에는 실한요래기아니걸친 全裸體의 妙齡女性을 엇데케보나? 더구나肉體가 조흔것을골느자면 處女時代의 女性이조흘터인데 그것을 異常한 感觸이업시 엇데케보나하고 얄구진생각도하여보앗지만은 實際로「칸바스」을隔하여 모델을對하고안즈니 林檎이나 술병을 보는靜物과가치 아모怪常한늣김을 밧지못하엿다. 그야 처음에옷을버슬ᄯᅢ라든지 乳房과 下半身이 보일ᄯᅢ에는 말할수업게 가슴이 ᄯᅳ금하엿지만으彩筆을들고 線과点과 色彩를그리기시작하니ᄭᅡ아무러치도안엇다. 나는 언제인가 스무살된벙어리處女를 모델로삼고 그림을그려본적이잇는데 그녀자가 옷을벗으라고하니ᄭᅡ불시에눈물이핑돌며작고울더라. 나는그녀자가그ᄯᅢ에商品으로온것을 슬퍼서그리하는구나하고생각힘애 엇더케 안되엇는지몰랏다 이러케 눈물ᄭᅡ지밧어가면서그린 나의그림도 필경은돈이고 時間이남어서걱정되는이느계급사람들의 享樂的裝飾物이 되겟거니하면 그냥彩筆을ᄭᅥᆨ거버리고다라나고십헛다. 모델갑은 반나절에九十五錢을주엇다. 여렷이 모다 내엇스니ᄭᅡ九十五錢씩이라도 얼마야되엇겟지. 그런데 모델女子로는 日本女子는 ᄭᅮᆯ어안저버릇하고ᄯᅩ발를벗고다니는관계로 上半身은 정말조흐나 下半身은 허리가굵고 다리가모질어서 자미가업고 그러타고 조선녀자는ᄯᅩ젓이너무처지고영양이브족하며 살결조차푸르고검어서 덜조터라. 西洋女子를못보앗스니 모르나 아마 그네들이 조흘것갓기도생각된다.


愛人을모델로하면
名畵가아니생긴다

李 承 萬

나는 鍾路나 진고개를 지날ᄯᅢ에 「저女子를 ᄭᅩᆨ한번 모델로쓰고십구나」하고 얼골잘생기고 肉體美가잇는 女性을갓금맛나봄니다만은 아직 實際로 그러케 마음에洽足한모델을 써보지는못하엿슴니다. 日本에 잇슬ᄯᅢ에 洋畵硏究所에서 日本女子들을 각금 써보앗스나 그네들은 의레히 옷을 활활벗고 젓가슴이나 가장비밀한부분ᄭᅡ지 악김업시 도러내노코서 모델臺에 올라서는 것이 엇전지 가을바람을 만난 것가치 情熱이 식어지고 아모란 性的亢奮도 늣길수업습데다. 그것은 무슨 崇高한 藝術的感觸으로 그러하다기보다 그가누구의압헤서나 職 (以下第三十一頁續)
春園의
無情篇
文學上著名地巡禮 (1)
朴映彩, 金善馨이가
音樂演奏하든三浪津

草 公


나는 김장로의 따님 善馨□와 約婚하여 가지고 아메리카로 유학을가는 李享植이도 아니것만은 京釜線을 서울서집어 타고 釜山을 向하엿고 ᄯᅩ嶺南에 큰물이저서 긔차가 멈춘것도 아니것만은 三浪津停車場에서슴겁게도혼자 내렷다.

더구나 어엽분 영채, 선형, 병욱의세처녀를 다린 李享植이가 「이랏샤이-」하는 하녀의소리를 드러가며 일본려관으로 드러가드라는데 나는 指鹿謂馬格으로 派出所뒤 草幕에 드러안저 소내포로ᄭᅳ린 장국물을혼자 마시고잇섯다.

마이면서도 형식이가 드러잇섯스리란그려관을 두루살펴보니 바로 뎡거장엽헤滿開한 櫻花나무가 두서너그루서고 그와맛다이어有名한三浪津배를 대광주리에 너허파는 商店한편에 손님을 치는 森田이란 看板부친 二層木製旅館한개가 잇섯다.

널판지가 썩은것으로 보아 이미 家齡이 二三十年에 미치어 十餘年前의 그小說속洪水를 첫슬것갓기도하고 ᄯᅩ享植이가 우비도업시 려관을 차젓든뎜으로 보아뎡거장과 갓가운 이려관이 그旅館갓기도하엿다. 이러케 생각하고 나는 불연듯 이러나 그집압흐로가니 마츰 다리가 투실투실 익은 일본하녀하나가 배광주리를 들고나오다가 빙그레우스며 과일을 션물로사가라고 권한다. 이제 산다면 배사고 情사고 그러고 無情의넷記億을 살판이라 나는즉시二十錢을내주고 주먹만한 큰배여섯개를 바더들엇다.

X X

그ᄯᅢ 여러날 비ᄭᅳᆺ헤 열에열골물이 한데合水하여 집ᄭᅡᆫ과 곡식을 마구밀어나가더란 큰물줄기는 三浪津의 地勢로 살퍼본다면結局 털도길ᄯᅮᆨ을 ᄯᅮᆯ고 洛東江으로 흘너갓슬 밧게는 별도리가업겟다. 아직 물에패인 홈이 잇는 저 산밋을보니 거기에는 어느새에 함석집웅의 보통학교가섯고 너른 校庭에는개아미대가리가튼 학생들이옥실 옥실 허트러저잇섯다. 人家도 不過四五十戶 될가. 그래도 부채모양의 連山이 新婦방 屛風가치 빈틈 업시 들너친데다가 멀니 東萊, 釜山가는너른平野가 툭터진곳이 사럼죽한곳이다. 享植一行이 배를기대고 물구경을하엿다든 논두덕의鐵條網이나 老娑가 臨産의 며누리를 ᄭᅵ어안고우드라는 特히描寫가잘된그길가나 「제가 ᄯᅢ일게요!」하고不共戴天의 두처녀가 서로다투어 부엌으로 내려가드란 그초가집ᄭᅡᆫ이 어대인지 老娑가感激하여 壽富多男子하고 잘사시오하며 念佛가치 외우드란 말소리는 들니는듯하것만은 집ᄭᅡᆫ은 알수업다. 알수업는것이 오히려 無情을 살니는것이 아니될가? (第二十二頁에)

X X

詩 歌

聞砧聲

韓龍雲

何處砧聲至 滿室自生寒

莫道天衣煖 敦如微骨寒


◈ 咏燈影

夜冷窓如水 臥看第二燈

雙光不到處 依舊愧禪僧

詩人韓龍雲氏

◈ 贈古友禪話

看盡百花正可愛 從橫芳草踏烟霞

一樹寒梅將不得 其如滿地雪風何


◈ 見櫻花有感

昨冬雪如花 今春花如雪

雪花共非眞 如何心欲裂


◈ 秋雨

秋雨何蕭瑟 微寒空自驚

有思如飛鶴 隨雲入帝京


◈ 咏雁三首

一雁秋聲遠 數星夜色多

燈深獨未宿 ○吏問歸家

天涯一雁呌 滿室秋聲長

道破芦月外 有何圓舌相


◈ 室中贈別

天下逢未易 室中別亦奇

舊盟猶未冷 莫負黃花期


◈ 病室后園

談禪人亦俗 結網我何僧

最憐黃葉落 摯秋原無絶


◈ 雪夜

四山圍家雪如海 衾寒如鐵夢如灰

X窓猶有X不得 夜聞鐘聲何處來

(十秋前某處에서)


새나라로

春 園

어야드야 어어혀리
어긔어차 닷감아라
녯나라야 잘잇거라
어긔어차 새나라로

어야드야 어어혀리
어긔어차 닷감아라
만경창파 만리길에
나는가네 새나라로

어야드야 어어혀리
어긔어차 닷감아라
이제가면 언제오나
긔약업는 새나라로

어야드야 어어혀리
어긔어차 돗달아라
잘잇스오 잘잇스오
나는가네 새나라로


돌 옷

작년에 크든돌옷 금년에는 무릅치네
「적어서 어이하리? 동생이나물려주지」
어른들 웃는것보고 저도따라 웃더라


賣花童

李 殷 相

ᄭᅩᆺ파는 동자가
ᄭᅩᆺ파는 동자가
ᄭᅩᆺ사라 웨는소리 거리에 ᄯᅳ네

봄사오 봄을사오
놉흔산 두견회라 산봄을사오
강ᄭᅡ에 靑버들이라 강봄을사오

산봄이 강봄이
산봄이 강봄이
동자의 ᄭᅩᆺ수레에 실려서오네
      X
ᄭᅩᆺ파는 동자야
ᄭᅩᆺ파는 동자야
이마음 고흔ᄭᅩᆺ도 실어가주렴

그ᄭᅩᆺ을 가저다가
오는이 가는이게 보여주리다
보는이 그마음도 타게하리다

타는맘 붉은ᄭᅩᆺ
타는맘 붉은ᄭᅩᆺ
이江山 三千里로 실려서가네


조선의ᄭᅩᆺ

거친산 골작이 등속으로
봄비츤 용리를 차저오네
아가는 엄트는 조선의ᄭᅩᆺ

오늘은 이동산 ᄭᅮ며노코
래일은 이ᄯᅡᆼ에 향내펴칠
아가는 봉오리 조선의ᄭᅩᆺ

들녁에 비바람 불어처서
산우에 나무들 넘어저도
아가는 피어가는 조선의ᄭᅩᆺ


故鄕생각

麗 水

고요한봄한낫에 풀밧에누어
내자라든녯고향 생각을하니
구름이아득하여 천리로구나
생각이아득하여 천리로구나
      X
남ᄶᅩᆨ으로날르는 제비를ᄯᅡᆯ딸어
이저버린고향길 차저가보자
늙으신나의부모 젊은내형제
두고온나의고향 닛기어려워


頌三千里

沈 熏

놉흔곳에 올라 이ᄯᅡᆼ을 굽어보니 큰 봉오리와 적은 뫼ᄲᅮ리의 어엿붐이여아즈랑이속으로視線이 녹아드는곳ᄭᅡ지 옷ᄯᅮᆨ옷ᄯᅮᆨ 소삿다가는 구비저 달니는그勾配-네 품에 안켜 딍굴고십도록 아름답고나
     ◇
소나무 감송감송 木覓의 둥어리는 젓물고 어루만지든 어머니의 허리와갓고三角山은 남의 압헤 ᄲᅩᆸ아든 武士의칼ᄭᅳᆺ한번찌르면 먹장그름 쏘다질뜻이 아즉도 네氣象이 凜凜도하다
     ◇
에워싼것이 바다로되 물결이성내지안코 샘과 시내로 가늘게 수(繡)노앗건만그물이 맑고 그바다 푸르러서 한목음 마시면 限百年이나 壽를할ᄯᅳᆺ퐁퐁퐁 소사서는 넘처넘처흘르는고나
     ◇
한아버지 주무시는 저산기슭에 ᄲᅥᄭᅮᆨ새 울어예며 긴밤을 직히네 사랑하는 그대여 당신도도라가면은 저언덕우에 고히고히 무더드리고 그발치에 나도 누어 깁흔 설옴이즈오리다
     ◇
박아지ᄶᅩᆨ 걸머지고 ᄯᅥ나는兄弟 거츠른벌판에 강낭이(高梁)이식올줍는 姊妹여白骨이나마 이흙속에 돌아와 무치소서 오오바라볼사록 아름다운 나의江山이여

(第四十一頁에서)

滿月壽, 慶州, 陜川海印寺, 濟州島, 明沙十里

沈 熏

一. 鷺梁江邊(나의 故鄕 ᄭᅮᆷ속에도 그립다)
一. 金 剛 山 (願生「뿌르조아」子하야 실컨 遊於崑盧之下를)
一. 淸 流 壁 (그와나를 태워주든 사공은 그저 살어잇는가?)
一. 矗 石 樓 (哀吾生之晩兮여 論介와情死치 못함이 恨이로다.)
一. 漢 挐 山 (野馬를 채질하야 南海에 풍덩실ᄲᅡ저나 지고)
一. 裕昌商店三層「鍾路」(밤마다 버리지는返虞의行列)
一. 仁王山麓

劉道順: 藥山東臺, 長壽山, 明沙十里, 牧丹峯, 慶 州, 扶 餘, 矗石樓(晋州), 金剛山

朴英熙: 별로가본곳이업스나 金剛山은 景致에 들겟지요.

朱耀翰: 金剛山, 大同江

李亮

一. 山川이면 朝鮮이 錦繡江山이니 八道가八景일 것이다.

파인 金東煥: 白頭山, 豆滿江, 金剛山, 矗石樓, 大同江, 善橋, 失乙溫泉, 扶 餘

小說 썩은胡桃

廉 想 涉

진하가 량선생집에를 차저간것은 이번이 두번재이엇다.

작년여름에 뎐차속에서 량선생을 삼사년만에 만나서 뎜심을 가티먹으랴가자고하야 서대문ᄭᅦ서 나려서 어느청료리ㅅ집에를 ᄭᅳᆯ려간일이잇섯다. 량선생의 샌님틔는 언제보나 한결가타얏지만 그 바자윈규모로서는 큰턱이라할만치 한턱을 내인것도 어렷슬ᄯᅢ부터의 의형뎨라는교분을 생각한것이요 ᄯᅩ한아는 얼마ㅅ동안 진하의학비를 조금씩보조하야주든 정리로이엇든것은 진하도 짐작하얏섯다. 사실 진하로서는 녯날의은인이요 의형님이든 량선생을 오래ㅅ동안 찻지안코 량선생이 서울로 올러온뒤에도 이ᄯᅢ것 무신하게 지낸것을 속으로는 미안히 생각하얏스나 엇전지 녜전가티 형님이라는말이거침업시나오지는안핫다. 그것은 고사하고 진하를 놀라게한것은 량선생의입에서 련해 공처주의(共妻主義)를 찬미하는말이나오든것이엇다. 소학교선생님ᄯᅢ부터 골생원님으로 유명하얏고 그후에도 자긔싀골서 교원생활을하면서 한학(漢學)연구에 골들하든 량선생 지금도 서울와서 XX고등보통학교의 한문선생으로잇는 량선생이 공처주의를 찬미한다는것은엄청나게놀라울일이엇다. 삼사년동안에 조선사회도 변하얏다면 변하얏겟지만 량선생가티 변한사람은 차즈랴야차즐것갓지안타고생각하얏다.

「지금도 서장(西藏)에는 실제로 공처제도가 실행하야잇고 서양의어느교파에도 그런풍속이 남앗다데만은 아마인류의원시뎍상태가 그러하고 인류본연성(人類本然生)이 역시그러하다고 나는 생각하네. 하여간 쉬운례로보아도 공산제도를 창하는세상이면야 공처주의라고 배척할리유야업지안흔가? 물론 녀자를 몰질시(物質視)하고 허는말은아닐세만은 위선 성뎍행위(性的行爲)의 비밀을 개방하는뎜으로만도 도리어 도덕상 조흘줄아네. 즉 말하면 비밀로말미암아 생기는 여러가지 성뎍부자연한병페와죄악에서 인류를 구원할수잇스리라고 생각하네.…… 다처주의(多妻主義)가 실제에 시인되면야 다부주의(多夫主義)가 부도덕할ᄭᅦ 무언가? 생각해보게그려- 만일 우리의사회를원시사회와가티 녀자가 지배권(支配權)을 가지고잇다면 엇더하겟나?……

량선생은 이러한소리를하면서 진하의 동의를 어드랴하얏다. 진하는 처음에는 「이량반이 미첫나? 혹은 넘어공부를하야 정신에 이상이 생겻나?」하는생각으로 별로 진담으로 대ㅅ구를 하기가 실혀서 허허허 웃기만하면서 듯고 나서

「형님 망녕의말씀이시구려. 요새ㅅ사회의풍긔물란한것을 보시고 반동뎍으로 그러한 극단의생각을하시나보구려?」하며 깁히 리론을캐어서 반박을하랴고도아니하얏더니 량선생은 도리어 역정을 내는듯하면서 여전히 착은착은한어됴로

「이사람 내가 실업슨소리를하는줄아나? 자네가튼신지식에 밝은사람이면 얼마ᄶᅳᆷ은 내말에 찬성할줄아랏더니 역시 이사회환경에서 자라난 그대로의 소위 현대뎍「인텔리겐챠」에 불과하이그려.……」

하며 되집어지이는수작이엇다. 그러나 진하는 그래도 량선생이 자긔를 시험해보랴고 이러한소리를하거나 그러치안흐면 량선생 자신에게 무슨번민이잇서서 저러는것이아닌가? 하는생각을하며 말ᄭᅳᆺ을돌려버리랴고하니ᄭᅡ 잠간잠잣고안젓든 량선생은 얼른 말을막으며

「참 그런데 나는 그동안 귀분이하고결혼을 하얏네.-」하고 다소간 열적은낫빗이엇다.

「네- 그건 벌서 들어 알지요.……」하며 진하는 말을ᄭᅳᆫ흐랴다가 량선생이 겸연적어하는것이 미안하야

「……아무러면 엇덧슴니ᄭᅡ. 난 잘되엇다고 생각하얏섯세요」하고 의미업시 웃어보엿다. 량선생은 잠잣고 고개만 ᄭᅳ덕ᄭᅳ덕하야보이다가

「하여간 한번 놀라오게. 넘어 그러케적조하야서되겟나!」하며 량선생도 ᄭᅥᆸ질만남은듯한 ᄭᅡᆷ안두불에 주름을잡혀보이며 마조 웃엇다.

그후 일주일이나 지나서 어느날밤에 진하는 긔실 호기심을 가지고 가르처준대로 량선생집에를 차저갓섯다. 이것이 량선생이 서울온뒤 - 그보다도 량선생이 귀분이와 결혼한뒤에 처음차저간것이엇다. 그날 량선생은 별로 공처주의도 이약이아니하고 그전 론산에서 지내든이약이저야기로 시간을보내다가 헤어저왓으나 공처주의를 제창하든량선생은 진하와 약혼할번하다가 지금 자긔의부인이된 귀분이를 불러내어 보이지도안핫섯다. 실상은 귀분이를 보랴간것도아니요 ᄯᅩ 귀분이를 불러내어진하 압헤안친다든지하면 도로혀 괴로윗술것이나 엇재든 공처주의자의량선생이 자긔부인을 감추어두는것은웃으웟다.

……그 후 일년만에 진하는 오늘 두번ᄶᅢ 녯날의 귀분이가사는 이집을 지금 차저온것이다.

량선생은엄섯다. 진하는 오늘낫에 학교에뎐화를 걸어보고 량선생이 그동안 병으로 결근을한다는말에 의례잇스려니하고간것이나 안에서 부인의목소리인지

「누구세요? 안게십니다」할ᄲᅮᆫ이다.

진하는 좀 망서리엇다. 주인부인 혼자잇다면 이밤중에 만나볼필요가 업다고도 생각하얏스나

「편치안흐시다드니 어대를출입하섯나요?」하고 무르댜니까 기에는 대답이업시 량선생부인은 고무신짝을 ᄭᅳᆯ고 ᄶᅩ르를 나오면서 다소간 반기는목소리로

「누구세요? 장선생님 아니세요?」하고 컴컴한문간에 안에서 흘러나오는 불벗를등지고 마조선다. 희미한가운데서도 륜년전의 귀분이인것을 진하는 알아보앗다.

「녜- 그런데 엇더케 아섯소?」

진하는 그래도 자긔가 가르치든 이녀자가 반갑지안흘수업섯다. 지금은 말하자면 사모(師母)요 의형수라하겟스나 녯날에는 사뎨(師弟)간이요 될번댁부인이다. 진하는 태연히하자면서도 마음이 서성거려지지안흘수업섯다.

「어서 드러오서요. 선생님 목소리를 제가니저버렷겟습니까? 작년에도오섯든것을 못 뵈엇지요.……」하며 귀분이는 진심으로 반가운듯이 웃으며 압장을 선다.

「난 곳가겟소이다」하면서도 진하는 따라드러오는수밧게업섯다.

「가신긴 웨 그러케 가서요. 요센 혼자집직히기에 죽을지경압니다.」

사람가난이 들어서 이러케 반기는것인지 녜전선생이요 ᄯᅩ한ᄯᅢ는내남편이되려니-ᄭᅮᆷᄭᅮ든 남자라하야 반기는것인지는 모르겟스나 혼자집직힌다는말에 진하는 한칭더 마음이 구더지면서 올러갈생각이아니낫다.

「선생님은 어대 가섯나요? 혼자 엇더케 게서요? 아이년도 업나요?」

진하는 한칭더 말을 존대하야 자긔와의거리를 멀즉히ᄯᅦ이는 긔색을 보이랴하면서도 무관심한태도를 보이랴고 어러케말하얏다. 아니게아니라 작년에 왓슬ᄯᅢ보든 간난이도 눈에아니띄인다.

「간난이는 싀골집으로 ᄶᅩ차버리시고 선생님도 어대를 가섯는지 벌서 일주일이나되는데 가신데를 알수가업슴니다그려. 처음에는 간난어멈이 제ᄯᅡᆯ을 밋며누리로보낸다고하니 싀골댁으로가시는길에 데려다주신다고 가티ᄯᅥ나섯는데 도모지소식이업서요.」

귀분이는 이런걱정을하기는하얏스나 그리애가씨우는 긔색도아니엇다.

「기다려보시면 곳올려오시겟지요. 그동안 댁에 나려가신것은몰랏스나 어제 오라버니를 우연히 로상에서 만나뵙고 좀이상한 소리를 들엇기에 선생님을 만나뵙고 자세한말씀이나 들을ᄭᅡ해서온것암니다만은 대관절 웨들 그러세요?」

「오라버니를 만나섯세요? 그저 서울게서요?」

귀분이는 인제야 진하가 불숙차저온 ᄭᅡ닭을 아라차렷다는듯이 고개를 잠간ᄭᅳ덕여보엿스나 아모포정도업섯다. 놀라는긔색도 아니요 오라비를 미워하는말씨도아니엇다.

그러나 귀분이는 고개를ᄯᅥ러트리고 무슨생각을 잠간하더니겁을 펄ᄶᅥᆨ내면서

「오라버니가 뭐라고하세요?」하고 뭇는다.

「별말씀은 업지만……」하며 진하는 말ᄭᅳᆺ흘 흐려버렷다.

진하는 사실 어제 귀분이의작은오라비 석태를 사동모통이에서 만나서 량선생부부와는 의절을하얏다는말을듯고 오늘 틈을 타서 차저 온것이엇다. 로상이요 ᄯᅩ 석태가 곳ᄯᅥ난다는통에 자서한이약이를 들을겨를도업섯지만 매우흥분된눈치로 량선생을얌체ᄲᅡ진자식이니 의리부동한놈이니 남의누이를 유인하야 타락을 식혀노핫느니하며 욕설을 퍼붓다가 사긔횡령과 중혼죄(重婚罪)로 고소를한다고 니를 가라부첫다. 향선생이 자긔누이와 그러케된것은 벌서 사년전일이요 그ᄭᅡ닭으로 량선생은 고향에서ᄶᅩᆺ겨나서 서울올러와잇는것일ᄲᅮᆫ아니라. 그후에도 석태는 이때ᄭᅡ지 량선생을 매부요 의형님으로 섬겨왓는터인데 지금 새삼스러히 입에담지못할욕설을하면서 고소를하느니 엇저느니하는것은 웃으운일갓기도하나 그간에무슨ᄯᅡᆫ사단이 생긴것ᄶᅳᆷ은 진하도 짐작할수잇섯다. 그러나 진하가 채처무르랴는데는 한마대도 대답하지안코

「말하면 무얼하나. 내입이 더러울거니까안하네. ᄯᅩ 자네가안다면 자네도 상심만될걸세. 엇잿는 지금와서는 자네얼굴을 보기가 한칭더부ᄭᅳ러우이. 그러나 찬구고 무어고인젠 다-모르네. 언제든지 긔회잇스면 ᄯᅩ만나세.……」하며 흘ᄶᅥᆨ뎐차를 잡아타고 다라나버렷든것이다.

「엇잿든 좀 올러오서요. 엿주어볼것도 잇고 의론를활것도잇스니요.」

귀분이는 이ᄯᅢᄭᅡ지 정신업시 축대우에섯든것을 인제야 생각하고 이러케권하며 압흘서 마루로 올러간다. 진하는 젹적한뵈인집에 절은녀자와 한방에 마조안젓술것이 조심스럽고 난처하얏스나 구지안드러간다는것이 도리어 순탄치못할것갓고 자긔역시 무러볼말도 만흔데 선선한 박게 언제까지 서서이약이할수가업서 ᄯᅡ라드러가기로하얏다.

권하는대로 알에ㅅ목에안즈며 방안을 돌려다보니 작년에왓슬ᄯᅢ보다도 세간이 퍽주른모양이다. 화류삼칭장이 잇섯든법한데그것도업고 긋득싸엿든 책도 반넘어나업서진모양이다. 고리ᄶᅡᆨ이며 괴ᄶᅡᆨ나부렁이가되는대로 노혀잇고 폇다가 거더치운 금침과 의복들이 어수선산란하게 느러노힌것도 눈에 거슬렷다. 젊은계집의 혼자ㅅ살림이라는것도 말이아니되는일이지만 개전치안흔것은 고사하고 엇전지 이사가는집갓기도하고 처먹고는 밤이나낫이나 뒤어쓰고업대서 서밥이나 ᄭᅳ러드리고하는 그ᄯᅡ위종류의계집의살림을 보지는못하얏스나 엇잿든 그러한긔분이 도라서 진하는 무심코 눈살을 ᄶᅵᆸ흐렷다.

귀분이는 진하와 기윽자로 방문미테 ᄶᅩ그리고 안는다. 환불빗헤자세히보니 오륙년전 열예닐곱ᄯᅢ보다 그리늙지도안코 한구석이 뷔인 듯이 어리석은듯하면서도 남자를ᄭᅳ는 그얼굴판이 그대로잇서보엿다. 오히려 낫갑슬하느리고 얼굴이 좀모혀서 인제는 제념량이 드러도보엿스나 그대신에 개기름이 번즐번즐한것이랴든지 육감뎍인 그입모슴이 한칭더 음부(淫婦)타입으로 변한것가타얏다.…… (未完)


編輯後記

◈原稿難, 經管難, 檢閱難의三難ᄯᅢ문에新聞으로는 時代日報雜誌로는 現代評論, 東光, 朝鮮文壇, 靑春等 數十誌가너머젓섯다. 이러한 歷史的慘景을 바라보면서 우리(三千里)는 이에 세상에나왓다. 無謀하다할넌지 그러나 될일을 하는것이야무엇이 壯하고 快하랴 안될일을 하는것에서 發展이잇고비로소깁흔ᄯᅳᆺ이잇는것이아닐가.

◈그러기에 우리는 반드시 長壽하기를期約하지안으나 그代身 發行하는둥안ᄭᅡ지는 빗나게 갑잇게하려 애쓰며 ᄯᅩ讀者의數萬을 求하지안으나 한두분이라도조흐니 眞情으로愛讀하여주는참벗이 잇기를期待한다. (十六行畧)

◈文藝欄의 民族文學과 無産文學의差異点과 合致点에對한 文檀諸氏의明答은 우리文藝運動史上의 劃時期的貴重한意見이리라. 이에서부터 우리文藝運動은 더욱飛躍하여지고 더욱빗잇서질것을밋는바이다. 그러고 新選한 半島八景도 우리記憶우에 자최를 남길 壯擧인줄아노라.

◈時日이 促迫하고ᄯᅩ付扥한분으로부터 原稿가잘모이지안엇든關係로 豫想보다는創刊號가 貧弱하여진듯하나 이만하여도남에게붓그럽지안을줄안다. 이다음號에는實로充分한準備를다하여조흔編輯을하여보려한다. (파인)


昭和四年六月十日 印刷 (定價十五錢)
昭和四年六月十二日 發行
京城府 敦義洞 七十四番地
編輯兼 金 東 煥
發行人
京城府 公平洞 五十五番地
印刷人 沈禹澤
京城府 公平洞 五十五番地
印刷所 大東印刷株式會社
京城府 敦義洞 七十四番地
發行所 三千里社
振替京城四二八四
京城總販賣所 京城鍾路二ヽ八二
博文書館
振替京城二○二三番
社告 = 其一 =

本社新選의「半島八景」에對하야 現文壇의巨星八氏와畵伯諸氏가 親히그絶景을踏破하시거 壯麗한山水紹介의 붓대를잡기로되엇습니다. 이ᄯᅢ문에 來月의本誌부터는 一大壯觀을이룰것이외다.

社告 = 其二 =

新選「半島八景」을通하야 山河踏破의壯擧를 促進하는 機綠을짓고저 本社에서는 各景마다探勝團或은山岳征服會를主催하야 實施할가합니다.

社告 = 其三 =

三伏에納凉의意味로 世界名山踏破의 經驗잇는 名士를招聘하야 山岳講演會와 ᄯᅩ文藝講演會를 널니開催코저합니다(여름에할일은爲先이만함니다)


祝 創 刊

中外日報社

朝鮮日報社

東亞日報社

아는것은힘이다

★★ 三千里社創業紀念特價提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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要先金注文 ● 振替京城四二八四番

著 者 書 名 定價
李光洙 無情 一八○
開拓者 一二○
再 生 二○○
許生傳 一三○
麻衣太子 一八○
一說春香傳 一○○
春園短篇集 一○○
新生活論 八○
朝鮮의現在와將來 一○○
金剛山紀行 一○○
仝人譯 어둠의힘 九○
趙明熙 洛東江 五○
봄잔듸밧우에 七○
崔曙海 血 痕 七○
玄憑虛 朝鮮의얼골 七○
墜落者 六○
廉想涉 금반지 七○
萬歲前 八○
卞樹州 朝鮮의마음 五○
秦瞬星 暗 影 一○○
金 億 民謠集금모래 三五
仝人譯 新 月 五○
仝 人 岸曙詩集 七○
崔南善 時調集百八煩惱 八○
時調類聚 一五○
金剛禮讚 一六○
白頭山觀參記 一六○
時文讀本 一○○
仝人譯 불샹한동무 三○
李箕永 民 村 五○
朱耀翰 詩集아름다운새벽 六○
金素月 詩集진달ᄭᅩᆺ 一二○
金基鎭 愛戀慕思 七○
李何夢 幻 戱 一五○
閔牛步 무쇠탈 一三○
韓龍雲 詩集님의沈默 一五○
金東煥 詩集國境의밤 四十
其他各種書籍全部酬應, 外郵稅잇소

三千里創刊號

昭和四年六月十 日第三種郵便物認可

昭和四年六月十二日發行(每月一回一日發行)

七 月 號 (定價十五錢)

저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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