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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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무에 관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을지 않은 일일는지 모른다마는 나는 이 이야기를 부득이 시작하지 아니치 못할 그런 동기를 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명렬군의 신변에 어떤 불행이 생겼다면 나는 큰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현재 그는 완전히 타락하였다. 그리고 나는 그의 타락을 거들어 준, 일테면 조력자쫌 되고 만 폭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단순히 나의 변명만도 아닐 것이다. 또한 나의 사랑하는 동무, 명렬군을 위하여 창다운 생의 기륵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그것은 바로 4월 스무 이렛날이었다. 내가 밤중에 명렬군을 찾아간 이유는(하지만 이유랄 건 없고 다만) 잠간 만나보고 싶었다. 그의 집도 역시 사직동이고 우리집과 불과 50여 간 상거밖에 안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를 찾아오는 일이 별로 없었다. 물론 나는 불묑을 토하고 투덜거린 적이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고는 덮어두기로 하였다. 그 까닭은 그는 사람 대하기를 극히 싫어굻는 이상스러운 청년이었다. 범상에서 벗으러진 상태를 병이라고 한다면 이것도 결국 큰 병의 일종이겠다. 그래서 내가 가끔 이렇게 찾아가곤 하는 것이다.

방문을 밀고 들어서니 그는 여전히 텁수룩한 머리를 하고, 방 한구석에 놓인 책상 앞에 웅크리고 않았다. 물론 난 줄은 알리라마는 고개 한 번 돌리어 보는 법 없었다.

나는 방바닥에 털뻑 주저않으면서,

「뭐 공부허니 ?」 하고 말을 붙이었다. 그는 아무 대답 없이 책상 위에서 영어사전만 그저 만직거릴 따름이었다. 그 태도가 글자률 읽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아주 안 읽는 것도 아닌, 그렇게 몽롱한 시선으로 이페이지 저 페이지 넘기고 있는 것이다. 이걸 본다면 무슨 생각에 곰곰 잠기어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남이 뭐래면 대답 좀 해라.」

나는 이렇게 퉁명스레 말을 했으나, 지금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나라고 모를 배도 아니었다.

궐련에 욜을 붙이고 나서 나는 흔차소리로 「오늘도 편지했나 !」 하고 연기를 내뿜었다.

그제서야 그는 정신이 나는지 내게로 고개를 들리더니,

「내 너 오길 지금 기다렸다」 하고 나를 이윽고 바라보고는,

「너에게 청이 하나 있는데」 하며 도로 영어사전께로 시선을 가져간다. 제깐에 내가 그 청을 들어 줄지 흑은 않을지, 그게 미심하여 속살을 이야기하기 전에 나의 의향부터 우선 들어 보자는 모양이었다.

나는 선선히 받으며,

「청이랄 게 뭐 있나? 될 수 있다면 해보겠다 . 」

「고맙다. 그럼‥‥‥」 하고 그는 불현듯 생기가 나서 책상 서람을 열더니 언제 써두었던 것인지, 피봉에 넣어 꼭 봉한 편지 한 장을 내 앞에 꺼내 놓는다.

그리고 흥분되어 더듬는 소리로,

「이 편지 좀, 지금 좀 곧 전해 다우」 하고 거지반 애원이었다. 마치 이 편지를 지금 곧 전하지 않는다면 무슨 큰 화라도 일듯이 그렇게 서두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 보면 동무에게 이런 편지를 부탁하는 것은 물론 미안한 줄은 안다, 하고 그러나 너에게 이런 걸 청하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일는지 모르니 그쯤 소중히 여기고 충심으로 진력하여 달라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와서는.

「너 그리고 답장을 록 받아가지고 오너라」

하고 아까부터의 당부를 또 다진다.

「그래. 」

나는 단마디로 이령게 쾌히 숭낙하고 거리로 나섰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나의 의사에서 나온 행동도 아니거니와 또한 이 편지률 어떻게 처치해야 을을지 그것조차 생각해 본일도 없었다. 동무의 간곡한 소청이요 그래 마지못하여 받아들고 나왔을 그뿐이었다.

야사꾸라 때 라 붐비는 밤거 리를 혜어 내려나오며 나는 이 편지를 저쪽에 전해야 을을지 어떨지, 그걸 분간 못하여 얼떨떨하었다. 우편으로 정성스러이 속달을 띄워도 (수취거절)이란 부전이 붙어서 돌아오고 하는 그곳이었다. 내가 손수 들고 갔다고 하여 끔뻑해서 받아 즐 리도 없을 것이다.

나는 편지를 호주머니에 넣을 생각도 않고 한 손에 그냥 떠발쳐 든 채 떠름한 시선으로 보고 또 보고 하였다.여기가 나의 른 과실일는지 모른다. 애당초에 왜 딱 잘라 거절을 못하였는가, 생각하면 두고두고 후회가 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컨대 내가 이 편지를 아무 군말없이 들고 나온 것도 달리 딴 이유가 있을 듯싶다. 다만 동무의 청이라는 그것만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확실히 나는 이걸 나에게 내놓을 때의 명렬군이 가졌던 야룻하게도 정색한 그 표정에 기가 눌렸는지도 모른다. 오랜 동안 볕을 못 본 탓으로 얼굴은 누렇게 들 떴고 손 안 댄 입가에는, 스물 셋으른 곧이듣지 않을 만치 제법 검은 수염이 난잡히 뻗치었다. 물론 번히는 싱싱해야 할 두 볼은 꺼지고 게다 연일 철야로 눈까지 뀀 들어간, 말하자면 우리에 갇힌 사람이라기보다 는 짐승에 가까왔다. 거기다 눈에 눈물까지 보이며 긴장이 도를 넘어 떨리는 어조로 이 편지를 부탁했던 것이다.

이걸 본다면 이것이 얼마나 중대한 편지임을 알 것이다.

만일 이 편지가 제대로 뭇 가고 본다면., 필연 명렬군은 온전히 그냥 있지는 않으리라. 하여튼 나는 그걸 가지고 갈 곳까지 다다랐다.

내가 발을 멈춘 데는 돈의동 됫골목이었다. 바로 내 앞에 쳐다보이는, 전등 단린 대문이 있고 그 옆으로 차돌에 나명주라고 새긴 문패가 달궈었다. 안에서는 웃음 소리와 아울러 가끔 노래가 흘러나오련만 대문 은 얌전히 듣닫기었다.

나의 임무는 즉 이 집에다 편지를 바치고 그 답장을 받아 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다가서서 대문을 두드려 볼 용기가 나질 않는다. 이 편지가 하살 뭐길래 그가 탄탁히 받아 주랴, 싶어서이다마는 어떻게 생각하면 사람의 일이라 예외를 알 수 없고 그리고 한편 전인으로 이렇게까지 왔음에도 호기심으로라도 받아 줄지 알 수 없다. 우선 공손히 바쳐나 보자, 생각하고 나는 문앞으로 바특이 다가서 본다.

그러나 설혹 받아 준다치고 요망스레 뜯어서 한 번 쭉 훌어보고 내동댕이친다면 그때 내 꼴이 무엇이 되 겠는가. 아니 나보다는 이걸 쓰기에 정성을 다한 명렬 군이 첫대 모욕을 당할 것이다. 여하찬 일이라도 동무 는 욕보이고 싶지 않다, 생각하고 나는 다시 대문올 떨어져 저만치 물러선다.

이러기를 서너 차례 한 다음에 나는 딱 결정하였다.

편지를 호주머니에 넣고 그대로 사직동을 향하여 올 라갔다.

내가 명렬군의 집으로 라 들어가려 할 제 등뒤에 서 갇자기,

「재」 하고 누가 부른다.

돌아다보니 저편 언덕에 그가 풀대님으로 서 있는 것이다. 내가 .그 길로 을 줄 알고 먼저부터 고대하고 서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나론 데리고 사찌 공원으로 올라가,

「전했니 ?」 하고 조용히 묻는 것이다.

「응」 하고 나는 코대답으펄 반암으나 그것만으로 는 쫌 될충분함을 깨닫고,

「잘 전했다」 하고 명백히 대답하였다.

「그래 잘 받디 ?」

「진 뭔데 사람이 퇴내는 걸 아니 받을까?」

나는 이렇게 큰소리는 하긴 했으나 뒤미처,

「그럼 답장은?」 하고 묻는 데는,

「답장은‥‥‥?」

그만 얼떨떨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이 돌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조곰 주저 하다가,

「답장은 못 받아 온견 !」 하고 얼버무렸으나 그것 만으펄 또 부족할 듯싶어서,

「가보니까 명주는 놀음을 나가고 없더구먼, 그러니 그걸 보고 오자면 새벽 두 점이될지 넉 점이 될지 알 수 있어야지 ? 그래 안잠자기를 보고 아씨 오거든 꼭 전하라고 신신 당부를 하고 왔다. 」

하고 답장을 못 받아 온 그 연유까지 또박또박히 고하였다.

그러나 그는 편지를 그 집에 두고 온 것만으로도 저으기 만족한 눈치였다. 나의 바른손을 두 손으로 꼭 죄어잡고는,

「고맙다」 하고 치사를 하는 것이다. 그때 나는 그 의 눈 위에서 달빛에 번쩍거리는 그걸 보았다. 이렇게 거짓말물 하고도 죄가 헐할까 싶어서 나는 그에게 태 하여 미안하다기보다도 오히려 죄송스러운 생각에 가 슴이 끌밋하였다. 나는 쾌활히 그 등을 치며.

「맘을 조급히 먹지 말아라. 무슨 일을 밥먹듯 해서 야 되겠니 ? 저도 사람이면 언젠가 답장을 할 때도 임겠지.」

「답장?」 하고 그는 숙인 고개를 들더니,

「그대로는 답장 안한다. 」

「그대로 안하는 건 뭐야? 염려마라, 언제든지 내 가서 직접 받아 오마.」

일강 덜렁거리다 괘글 당하는 나이지만 또 객적은 소리까지 지껄여 놓았다. 내 딴은 잠시나마 그에게 기 쁨을 주고자 했음이 틀림없을 것이나 물론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 것까지는 생각지 못하였다.

그러니까 그로 말하면 나의 장담에 다시 회망을 품 고,

「그럼, 너 미안하지만 다시 한 번 편지를 전해 줄 래 ? 그리고 이번에는 답장을 꼭 맡아 오너라」 하고 다시 청한 것도 조금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렇게 거짓말에서 시작되어 엉뚱한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물론 전부를 나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나 한편 따져 보면 명렬군도 그 일부를 지 지 않을 수 없다. 왜냐면 그는 먼저도 말한 바와 같이 보통 성질의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그가 편지를 쓰고 있는 이것이 언뜻생각하면 연앨는지도 모른다. 상대가 여성이요 그리고 연일 밤 을 새워 가며 편지를 쓴다면, 두말없이 다들 연애라고 이렇게 단정하리라마는 이것은 결코 흔히 말하는 그 연애는 아니었다. 그 연애란 것은 상대에게서 향기를 찾고, 아름다움을 찾고 다시 말하면 상대를 생긴 그대 로 요구하는 상태의 명칭이겠다.

그러나 그의 연애는 상대에게서 제 자신을 찾아 내 고자, 거반 발광을 하다시피 하는 것이다. 물론 상대 에게는 제 자신이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것은 차차 이야기하리라마는 때로는 폭력을 가지고 상대에게 대들어 나를 요구하는 그런 궤변까지 이르 게 되는 것이다.

하니까 이것은 결코 연애가 아니라 하는 것이 가당 하리라.

첫째로 그의 편지는 연서가 아니었다. 보건대 연서 는 대개 상대를 꽃다웁게 장식하었다. 그의 편지는 상 대의 추악한 부분이란 일일이 꼬집어뜯어서 발겨 놓 고 말하자면 태반이 욕설이었다. 그러므로 상대는 답 장을 안할 뿐만 아니라 메로는 받기를 거절하였다. 그 리고 둘째로는 그 상대가 화류계의 인물이요. 그러함 에도 불구하고 명렬군보다는 다섯 해가 위였다. 삼십 이 가깝다면 기생으로는 한 고비를 넘어 시들은 몸이 었다. 게다가 외양도 출중나게 남달리 두드러진 곳도 없었다. 이십 전후의 팔팔한 친구로는 도저히 매력이 느껴지지 않을 그런 인물이었다. 그럼 어째서 명렬군 이 하필 그런 여자에게 맘이 끌렸겠는가. 여기에 대하 여는 나는 설명을 삼가리 라.

우선 명렬군의 말을 들어 보자.

그가 명주를 처음 본 것은 작년 가올이었다. 수은동 근처에서 오후 1시경이라고 시간까지 외고 있는 것이 다. 그가 집의 일로 하여 봉익동엘 다녀을 때 조그만 손대야를 들고 목욕탕에서 나오는 한 여인이 있었다.

화장 안한 얼굴은 창백하게 바랬고 무슨 병이 있는지 몹시 수척한 몸이었다. 눈에는 수심이 가득히 차서 그 러나 무표정한 낮으로 먼 하늘을 바라본다. 횐 저고리 에 횐 치마를 혼어안고는 땅이라도 꺼질까봐 이렇게 찬찬히 걸어나오려는 것이었다.

그 모양이 세상 고락에 몇 벌 썬겨나온, 따라 이제 는 삶의 흥미를 잃은 사람이었다. 명릴군은 저도 모르 고 물론 따라갔다. 그 집까지 와서 안으로 능척 버리 고는 그는 제 넋을 잃은 듯이 한참 멍하고 서 있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그날 밤부터 편지를 쓰기 시작하 였다. 매일 한 장씩 보내었다. 그러나 답장은 한 번도 없었다. 열흘이 지나도 보름이 넘어도 역시 답장은 없 었다. 그럴수록 그는 초조를 품고 더욱 열심히 편지를 띄웠다. 밤은 전부 편지 쓰기에 허비하었다. 그리고 낮에는 우중충한 방에서 이욜을 들쓰고는 날이 저물 기를 고대하였다. 밤을 새온 몸이라 까무러져 자기도 하였으나 그러나 대개는 이불 속에서 눈들 감고는 그 담 밤이 되기를 기다리었다. 그전에도 가끔 가다 망령 이 나면 이런 버룻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렇게까지 장구히 계속되기는 이때가 시초이었다.

이제 생각하여 보건대 사람은 아마 극히 슬펐을 때 가장 참된 사랑을 느기는 것 같다. 요즘에 와서 명렬 군은 생의 절망, 따라서 우울의 절정을 걷고 있었다.

그의 환경을 뒤집어 본다면 심상치 않은 그 행동을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마는 거기 관하여는 추후로 밀 리라.

내가 어쩌다 찾아가 들여다보면 그는 헐없이 광인 이었다. 햇빛 보기를 싫어하는 그건 말고라도 거칠어 진 그 얼굴이며 안개긴 그 눈매‥‥‥ 누가 보든지 정신병 환자이었다.

거기다가 방까지 역시 우울하였다. 남쪽으로 뚫린 들창이 하나 있기는 하나 검은 휘장으로 가리워 팡선 을 콰 막아 버렸다. 그리고 담배연기로 방안은 왁 찼 다.

나는 그를 대할 적마다 불길한 예감이 느껴지지 않 을 수 없었다. 커다란 쇳덩어리가 그를 향하고 차츰차 츰 내려오는 듯싶었다. 언제이든가 그는 그대로 있지 않으리라고 이렇게 나는 생각하였다.

하루는 나는 마음을 딱하게 먹고 명주를 찾아갔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이 계집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 만큼 탐의 편지를 받았으면 설흑 쓰기가 싫다 하더라 도 답장 한 장좀은 함직한 일일 게다. 얼마나 도도하 기에 무턱대고 편지 만 집어 먹는가.

당장에 가서 그 이유를 캐보고 싶었다. 그리고 될 수 있다면 답장 하나 받아다가 주고싶었다.

날은 어두웠으나 아직 초저녁이었다. 그렇건만 대문 은 그때도 꼭 닫기어 있었다.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며 우렁찬 소리로,

「이리 오너라」 하였다.

기생집에 오기에 꼴은 초라할망정 음성까지 죽어질 건 없었다.

다시 커다랗게, 그러나 위엄이 상치 않도륵,

「문 열어라 ! 」 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그제서야 안에서 인기가 나더니 문이 열리었다. 그 리고 한 삼십여 세 되어 보이는 여편네가 고개를 내 어밀어 나의 아래위를 쑥 훌더니,

「누굴 찾으썬요」 하고 묻는 것이다. 걸걸한 목소 리가 이 집의 안잠자긴 듯싶었다. 이런 때,

「명주 있나?」 하고 어줍댔더면 통했을지도 모른 다. 원체 순배기라 기생집의 예의는 조금도 모르므로,

「저 나 명주 선생 좀 만나러 왔소」 하니까 그는 공연스레 눈살을 집더니,

「놀음 나가셨어요. 」

이렇게 토라지는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하긴 소용도 없는 말이다) 미처,

「어디로 나갔소? 」 하고 다 묻기도 전에 문을 탁 닫아버리고는,

「모르겠어요」 하고 만다.

이럴 때 본인은 웃고 말아야 할 것이나 나는 짜장 약이 올랐다. 문짝을 부숴 버릴까 하다가 결국에는 이 젠 죽어로 기생집엔 다시 안 오리라고 결심하고, 그대 로 돌아섰다. 그리고 그길로 휭하게 명 렬군을 찾아갔 다.

나는 분김에 사실을 저저히 설파하고,

「너 때문에 내가 욕봤다. 」

하고 골을 내었다. 하기는 그가 가라고 했던 것도 아니 건만‥‥‥ 그리고 말을 이어서 기생집에 있는 것들은 전부 사 람이 아니다. 만에 하나라도 사람다운 점이 있다면 보 름씩이나 편지를 받고도 답장 하나 안할 리 없다. 거 기서도 너를 전혀 사람으로 치질 않는다. 생각해 보아 라, 네가 뭐길래 기생이 너를 보고 끔찍이 여기겠니.

이 땅에는 너 어외에 돈 있고 명예 있는 그런 유복한 사람이 허다하다. 기생이란 그들의 소유물이지 결코 네가 사랑하기 위하여 생겨난 존재는 아니다 라고 이 렇게 세세히 설명하고,

「아까만 하더라도 그 계집이 나에게 대한 태도를 보아라. 내가 만일 주단을 흘리고 갔더라면 어서 들어 오라고 온 집안이 끓어나와서 야단일 게다. 이것들이 그래 사람이냐?」

하고 듣기 싫은 소리를 늘어놓으니까 그는 쓴 낮을 하고,

「없으니까 없다 했겠지, 설마 널 뗐겠니!」

「없긴 필 없어 ?」 하고 소리를 랙 질렀다. 그리 고 또 기생도 기생 나름이었다. 그것도 젊다면이어니 와 나이 이미 삼십을 바라보는 늙은이다. 이걸 뭘 보 고 정신이 쏠리는가. 이런 건 정신병자가 아니면 하기 어려운 장난임을 다시 명백히 하여 주고,

「오늘부터 편지를 끊어라. 허구많은 계집애에 어디 없어서 그까짓 걸‥‥‥」

「너는 모르는 소리야 !」

그는 이렇게 더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나의 말을 회피하다가,

「차라리 송장을 연모하는 게 을겠다」 하고 엇막 는데 그만 불끈하여,

「듣기 싫다」 하고 호령을 치는 것이다. 그리고 나 를 쏘아보는 그 눈이 담박 벌겋게 충혈되었다.

나는 그에게 더 충고해야 듣지 않을 것을 알았다.

말다툼에까지 이르지 않았음을 오히려 다행히 여기고 그대로 나와 버렸다. 이렇게 되었으니 그 다음 번 내 가 편지를 전하러 갔다가 대문도 못 두드려 보고 와 서 거짓말을 한 것이 전혀 나의 과실만도 아닐 것이 다. 그러나 나는 그를 탓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기의 머릿속에 따로이 저의 여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지극히 존경하는 한 여성이 있는 것이다. 그는 그 여 성을 저쪽에 끌어내놓고 연모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명주는 우연히 그 여성의 모형이 되고 말았을 그 뿐 이겠다.

내가 명렬군을 알게 된 것은 고보 때이었다.

그는 같은 나이에 비하면 숙성한 학생이었다. 키가 흘쩍 크고 넓적한 얼굴을 가진 학생이었다. 말을 할 때에는 좀 덜하나 선생 앞에서 책을 낭독할 적이면 몹시 더듬었다. 그때 우리는 그를 말더듬이라고 별명 을 지었다. 그 대신 그는 말이 드문 학생이었다. 우리 는 어떤 때에는 그를 비겁하게도 생각하였다. 왜냐면 그는 여럿이 모인 곳에는 안가려고 하고, 비슬비슬 피 하는 소년이었다. 사람이 없을 때에는 운동장에 내려 가 철봉을 하고 땅체조를 하고 하였다마는 점심 시간 같은 때 전교 학생이 몰려나와 놀게 되면 그 흘로 잔 디밭으로 돌고 하었다. 물론 원족이나 수학여행을 갈 적이면 그는 어떠한 이유를 가지고라도 빠지려 하였 다. 이렇게 사람을 두려워하는 별난 소년이었다.

그리고 매일 성적이 불략하였다. 특히 사오 학년에 이르러서는 과정낙제가 자리를 잡을 만치 불량하였다.

선생의 말을 빌면 재주가 있다고 그 재주를 믿고 공 부를 안한다. 그러나 제 재주를 믿는 것도 다소 학과 를 염두에 두는 사람의 말이겠다. 그는 학과에 흥미만 없을 뿐 아니라 우선 학교와 정이 들지 않았다. 그 증 거로 1년간의 출석 통계를 본다면 그는 학교에 나온 일수가 3분지 2가 못 되었다. 담임 선생은 화가 나서 이따위 학생은 첨 보았다고 하고,

「자 ! 눈으로 보아라. 이게 학교 다니는 놈의 출석 부냐 ? 」

하고 코밑에다 출석부를 들이대고 하였다. 그는 얼 굴이 벌개져서 덤덤히 섰을 뿐이었다.

그 언제인가 남산에서 나는 그에게 들은 말이 있었 다.

그날은 그가 쑹쑹거리는 바람에 나도 결석하였다.

우리는 남산으로 을라가 잔디밭에 누워서 책보를 베 었다. 그리고 이러쿵저러룽 지껄이다가 무슨 이야기 끝에,

「마적이 될려면 어떻게 하는 건가?」 하고 그가 묻는 것이다.

「왜 마적이 되고 싶으냐?」

「아니 괄쎄 맡이야._1 「될려면 되겠지 뭐, 그까짓 마적쯤 못되겠니?」

「왜 그까짓 마적이 뭐야 ! 」 하고 그는 눈을 등그 청게 뜨고 부인하더니,

「너 마적이 싱숭한 게다. 좀체 사람은 못하는 거야.

씩씩하게 먹고 씩씩하게 일하고 좀 좋냐 ? 」

「난 디려준대도 안 간다. 」

「누가 디려주긴 한다디 ?」

「사람을 안 디리면 전 죽지 않나?」

「그러게 새 단원이 필요할 때엔 모집 광골낸단 다」 하고 양복 웃호주머니를 뒤지더니 손바닥만하게 오린 신문지 쪽지를 나에게 내주며 ,

「자 봐라」 한다.

내가 받아들고 읽어 보니 그것은 마적단의 모집 광 고를 보고 물 건너 어떤 중학생 셋이 만주로 가다가 신의주 근방에서 붙들렸다는 기사였다. 나는 다 읽고 나서 도로 내어주며,

「흥 ! 그까짓 마적이 돼 ?」 하고 콧등으로 운었던 것이다.

그 후에도 찬 서너 차례 마적에 대한 이야기를 들 은 기억이 난다. 이걸 보면 그는 참으로 마적이 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를 괴망스럽다고 하였으나 이제 와보면 당연한 일일 것도 같다.

그는 어려서 양친을 다 여의었다. 그리고 제풀로 돌 아다니며 눈치밥에 자라난 소년이었다. 그러면 그의 염인증도 여기에 뿌리를 박았을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형님이 한 분 있었다. 주색에 잠기어 밤낮 을 모르는 난봉군이었다. 그리고 자기 일신을 위하여 는 열 사람의 가족이 회생을 하라는 무지한 폭군이었 다. 그는 아무 교양도 없었고 지시도 없었다. 다만 그 의 앞에는 수십만의 철량이 있어 그 폭행을 조장할 뿐이 었다.

부모가 물려주는 거만의 유산은 무룻 불행을 낳기 쉽다. 더우기 이십 오륙의 아무 의지도 신념도 없는 청년에 있어서는 더 이를 말없을 것이다. 그도 이 예 에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한 달씩 두 달씩 곡기도 끊 고 주야로 술을 마시었다. 그리고 집안으로 기생들을 훌몰아들이어 가족 앞에 드러개놓고 음탕한 장난을 하였다. 한집으로 첩을 두셋씩 끌어들이어 풍파도 일 으키었다. 물론 그럴 돈이 없는 것은 아니나 치가를 하고 어쩌고 하기가 성이 가신 까닭이었다. 그는 오로 지 술을 마시었고 계집과 같이 누웠다. 그것밖에는 아 무것도 귀치 않았다. 하물며 가정사에 이르러서랴. 가 족이 앓아 드러누워도 약 한 첩없고 아이들이 신이 없다 하여도 신 한 켤레 순순히 사주지 않는 그런 위 인이었다. 술도 처음에는 여러 친구와 떠들고 취하는 맛에 먹었다. 그러나 하도 여러 번 그러는 동안에 그 것만으로는 취미가 부족하였다. 그는 시나브로 주정을 하기 시작했다. 이 푸정을 멸 번 하다가 흥이 지면 저 주정을 하고 여기에 또 물리면 그담 것올‥‥‥ 이렇 게 점젊 강렬한 자극을 요구하는 그 주정은 끝이 없 었다.

그는 술을 마시면 집안 세간을 부수고 도끼를 들고 기등을 팼다. 그리고 가족들을 일일이 잡아 가지고 폭 행을 하였다. 비녀쪽을 두 발로 잡고 그 모가지를 밟 고 서서는 머리를 뽑았다. 또는 식칼을 들고는, 피해 달아나는 가족을 죽인다고 쫓아서 행길까지 맨발로 나오기도 하였다. 젖먹이를 마당으로 내팽개쳐서 소동 을 일으켰다. 흑은 아이를 우물 속으로 집어던져서 까 무러친 송장이 병원엘 갔다.

이렇게 가정에는 매일같이 아우성과 아을러 퍼가 흘렀다. 가족을 치다 치다 이내 물리면 때로는 제 팔 까지 이로 물어뜯어서 피를 흘렸다.

이러길 1년이 열 두 달이면 한 달은 계속되었다.

가장이 술에 취하여 들어오면 가족들은 얼굴이 잿 빛이 되어 떨고 있었다. 왜냐하면 언제 그 손에 죽을 지 그것도 모르거니와 우선 아픔을 이길 수 없는 까 닭이었다. 그들은 순전히 잔인 무도한 이 주정군의 주 정받이로 태어난 일종의 장난감들이었다. 그리고 그 가정에는 따뜻한 애정도 취미도 의리도 아무것도 없 었다. 다만 술과 음행 그리고 비명이 있을 따름이 었 다.

명렬군은 유년 시절을 이런 가정에서 자랐다.

그는 뻔질나게 마룻구멍 속으로 몸을 숨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를 덜덜덜덜 떨어 가며 가슴을 죄었다.

그리고 속으로는, (언제나 저자식이 죽어서 매를 안 맞나‥‥‥) 하고 한탄하였다.

먼촌 일가가 이것을 와보고 딱하게 여기었다. 이렇 게 해선 공부커녕 죽도 글렀다 생각하고,

「명렬이에게 분재를 해주게. 그래서 다른데 가서 따로 공부를 하든지 해야지 이거 온 되겠나 ? 」

하고 충고하였다. 형이 이 말을 듣더니,

「염려마슈. 내가 어련히 알아채려서 할라구」 하고 툭 차버렸다. 그리고 같이 술을 잔뜩 먹고는 나중에는 분재 운운하던 그 일가를 목침으로 후려갈겨서 이를 둘이나 분질렀다.

명렬군은 그 형님에게 마땅히 분재를 해받 올 권리 가 있었다. 그러므로 욕심이 과한 그 형은 분재 이야 기만 나오면 눈이 뒤집혀서 펄쩍 띨었다.

「일 분재하면 사람 버려, 나처럼 되면 어떡허니?

너는? 공부 다하고 느직해서 살림을 내주마. 」

이것이 분재 못하는 그의 이유였다. 그러나 그 많던 재산도 17년이 채 못 되어 기물게 되었다. 서울서 살 던 형이 명렬군을 그의 누님에게 떠맡기고 시골로 내 려갈 때에는 불과 몇백 석의 땅이 있었을 뿐이었다.

명렬군이 차차 장성할수록 그 형에게는 성가스러운 존재였다. 좋은 소리로 그를 서울에 테내던지고 저회 식구끼리만 대대의 고향인 그 시골호 내려가고 만 것 이었다. 이것이 명렬 군이 고보를 졸업하고 동경엘 가 려 했으나 집의 승낙이 없어서 그도 못하고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며 놀고 있었던 때의 일이었다.

이렇게 형의 손에서 기를 못 펴고 자란 그는 누넘 한테로 넘어오게 되었다. 따라서 비로소 살길을 찾은 듯이 그는 기쁘지 않을 수없었다.

그러나 과 누님도 그의 기대와는 다른 인물이었다.

피는 아찌 32세의 젊은 과부이었다. 열 네살에 시 집을 가서 10년이나 넘어 살다가 좇기어 왔던 것이다.

돈 있는 친정을 둔 새댁만치 불행한 건 다시 없을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그를 괴릅히기에 잣달은 구실 이 얼마든지 많았다. 색도록 돈을 묵히과도 시짇 하나 살릴 줄 모른다고 은근한 이유로 그도 역시 쫀기어오 고 만 것이다.

그러나 친정엘 와도 반기어 그를 맞아 줄 사람은 없었다. 가장인 오빠라는 작자는 매일같이 매만 때리 었다.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출가외인이 친정 밥 먹는 다고 머리를 터치어 거리로 내쫀았다.

이런 풍파를 려고 흔자 들아다니다가 근근히 얻은 것이 직업이었다. 그리고 방 한 칸을 세를 얻어 그 훨 급으로 단독 살림을 시작하였다. 물론 그에게는 아무 소생도 없었다. 그 좁은 방에서 남매가 글내다가 이 집으로 온 것은 그 후 1년이 쌕 지나서이다. 시골간 형이 아우의 입을 막기 위하여 사직동 꼭대기다 방 둘 있는 조그만 집을 전세로 얻어준 것이 즉 이 집이 었다.

그리고 둘의 생활비로는 누님의 월급이 있을 뿐이 었다.

누님은 경무과 분실 양복부에 다니는 직공이펐다.

아침 6시쯤 해서 가면 오후 5시에 나오고 하는 것이 다. 일착이 70전쫌 되므로 한달에 공일을 제하면 한 19원 남짓하였다. 그걸로 둘이 먹고 쓰고 하는 것이 다.

그러나 허약한 젊은 여자에게 공장살이란 견디기 어려운 고역이었다. 공장에 다닌 지단 5년이 못 되어 그는 완연히 사람이 변하였다. 눈매는 허황하게 되고 몸은 바짝 파랬다. 그리고 보통 사람이 본다면 대뜸,

「저 사람이 미켰나7」 할 만치 그렇게 그 언사와 행동이 해괴하였다.

번히도 그는 성질이 급하고 변덕이 죽끓듯 하던 사 람이었다. 거기다 공장에서 얻은 히스테리로 말미암아 그는 제 성미를 제가 걷잡지 못하도록 되었던 것이다.

거기 대하여는 또 따로이 말이 있으리라마는 여기 서는 다만 그가 성한 사람이 아니란 것만 알면 고만 이다.

낮 같은 때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깜빡 졸적이 있 다. 그러다 삐꿋하면 엄지손가락을 재봉틀에 박는다마 는 렬 수는 없고 그대로 서서 쩔쩔매는 것이다. 그러 면 감독은 와서 뒤통수를 딱 때리고.

「조니까 그렇지」 하고 눈을 부라린다. 혹은 뒤를 보러 갔다 늦을 적이 있다. 감독은 수상히 여기고 부 리나케 쫀아온다. 그리고 잡은 참 문을 열어젖힌 뒤 자로다 머리를 때리며,

「암캥이를 세고 있는 거야? 」 하고 또 호령이얼 다.

그러나 그는 치받치는 설움과 분노를 꾹꾹 참지 않 을 수 없다. 감독에게 말대꾸하는 것은 공장을 그만두 는 사람의 일이었다. 또는 남자들 틈에서 일을 하는지 라 남녀관계로 시달리는 일이 적지 않았다. 어뜩어뜩 건드리는 놈도 있고 마주대고 눈을 흘기는 놈도 있었 다. 흑은 빈정거리는 놈에 쌈을 거는 놈까지 있었다.

그렇다고 사내와 공장에서 싸을 수는 없는 일이니 그는 역시 참을 수밖에 다른 도리는 없었다.

업신받는 이 분통을 꾹꾹 참아 오다가 겨우 집에 와서야 폭발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만만하고 그리고 양순한 동생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집에 돌아와 자기가 애면글면 장만해 놓은 그 룻을 부시었다. 그리고 동생을 향하여,

「내가 널 왜 밥을 먹이니 ?」 하고 눈을 똥그랗게 떴다.

때로는,

「네가 뭐길래 내가 이 고생을 하니 ? 」 하기도 하고,

「이놈아 ! 내 살을 긁어먹어라」 하고 악장을 치며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대로 펄썩 주저 앉아서 소리를 내어 엉엉 우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동생에게 대한 설움은 아니었다.

그러나 동생은 이런 소리를 들으면 미안쩍은 생각 이 날 뿐 아니라 등줄기에 소름이 쪽끼치고 하는 것 이다.

누님은 날이면 날마다 동생을 들볶았다. 아무 트집 도 없이 으례 할 걸로 알고 그대로 들볶았다. 그리고 나서 한숨을 휴우, 하고 돌리고는 마음을 진정하고 하 는 것이다. 그러니까 동생은 말하자면 그 밥을 얻어먹 고 그의 분풀이로 사용되는 한 노동자에 지나지 않았 다.

그러나 누님이 기실 악독한 여자는 아니었다. 앞이 허전하다 하여 그는 시골에서 어린 계집애를 얻딸로 데려다가 기르고 있었다. 결코 동생이 있는 것이 원수 스러워 그럴 리는 없었다.

동생이 이리로 오는 당시로만 하여도 누님은 괵 반 색하였다. 밤이 깊은 겨울이건만 그는 손수 와서 책과 책상 금침 등을 머리에 이고 오며,

「너 이런 걸 잊지 말아라」 하고 아우를 명심시키 었다.

「형님에게 설움받던 생각을 하고 너는 공부를 잘 해서 훌릉히 되어라.」

혹은,

「그까짓 재산, 례준대도 받지 말아라, 더럽다!」

이렇게 동생이 굳은 결심을 갖도록 눈물 머금은 음 성으로 몇 번 당부를 하고 했던 것이다. 자기 딴은 부 모 없이 자란 아우라고 끔찍이 불쌍해 하였다.

동생도 빙판으로 그 뒤를 따라오며 감개무량하여 한숨을 후 쉬고 하였다. 그러던 것이 닷새가 못 되어 그 병의 증세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명렬군이 이때까지 살아온 그 주위의 윤곽 이 었다.

그러면 그는 살아 나가려는 의욕이 없었던가, 하고 이렇게 의심할지도 모른다마는 그도 한 개의 신념이 있져고 거기 따르는 노력올 가졌었다. 우선 그 증거로 그는 명주라는 기생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그의 누님 을 영 원히 재우고자, 무서운 동기를 가졌던 것도 역시 그 가 살아 나갈 길을 찾고 있던 한 노력이 있음을 우리 는 차차 알 것이다.

그의 우울증을 타진한다면 병의 원인은 여러 갈래 가 있었으리라마는 그 근본이 되어있는 원병은 그는 애정에 주리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사람에 주리었다.

그는 이따금씩 나에게,

「어머니가 난 보고 싶다 ! 」

이렇게 밑도끝도없이 부르짖었다. 나이찬 기생을 그 가 생각하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닐것 같다. 그는 그 속 에서 여러 가지를 보았으리라. 즉 어머니로서 동무로 서 그리고 연인으로서 명주가 그에게 필요하였다. 그 러나 그때 나로는 그것까지 이해할 만한 능력이 없었 다. 사람 같지 않은 기생이니 피를 위하여 하루라도 일찌기 단념하여 주기만바랐다. 거짓말을 하고 은 지 사홀째 되는 낱이었다.

내가 저녁을 먹고 있으려니까,

「여기 아저씨 계세요?」 하고 낯피은 소리가 나는 것이다.

얼른 미닫이글 열고 내다보니 그것은 틀림없이 명 렬군의 생조카였다.

「왜 ?」

「저 우리 아저씨가요, 이거 갗다드리래요. 」

그리고 조그맣게 접은 종이쪽을 내준다받아들고 펴 보니 그건 간단히,

(좀 왔다 가지 못하겠니 ?) 이런 사연이 었다.

마침 밥상을 물리려던 때이므로 나는 옷을 갈아입 었다. 그리고 계집애를 따라 슬슬 나섰다.

「아저겨 지금 뭐 허더 ?」

「늘 아파서 앓으석요」 하고 선이는 가없은 표정 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쩐지 불안스러웠다. 나를 오라는 그 속을 대충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들어 갔을 때 그의약 을 달이고 있었다.

벽과 됫간 사이가 불과 좁은 집 이었다. 수채 가게 고 하였다. 뜰이 라는 것은 이에 한 평 반 가량 되는,

한 깜젝한 마당이었다. 누님은 마루끝에서 칸 반밖에 안되는 욜고 장독이 게 욜마루와 장독 그 사말하자면 손바닥만 그 마당가에 하얀 입쌀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걸 보면 오늘도 그 병이 한 차례 지난 모양이었 다. 아마 저녁을 하려다가 그대로 퍼내 던진지도 모른 다. 그는 나를 보더니,

「개가 앎아요」 하고 언짢은 낮을 하는 것이다.

내가 불안한 마음으로,

「글쎄 무슨 병일까요, 흑 몸살이나 아니에요?」

하고 물으니까 그는,

「모르겠어요, 무슨 병인지」 하고는,

「통이 아무것도 안 먹고 저렇게 밤낮 앓기만 해요.

아마 내가‥‥‥」 하고 미처 말끝도 맺기 전에 행주 치맛자락을 눈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몇 번 훌쩍훌쩍 하더니,

「내가 야단을 좀 쳤더니 아마 저렇게 병이 나에게 이렇게 하소를 하는 것이다.

물론 그는 병이 한 차례 지난 뒤에는 팍히 온순한 여자이었다. 그의 생각에는 자기가 들볶아서 동생이 병이 난 줄로 아는 모양이었다.

나는 위안시키는 말로,

「염려마십시요, 봄이 되어서 몸살이 났겠지요」 하 고는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불 속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나를 오라고 고대 불렀으나 물론 인사도 하는 법없었다. 게슴츠레 히 뜬 눈으로 천장만 뚫어보고 입을 뿐이었다.

해쓱한 얼굴이며 켕한 눈이며 며칠 전만도 더 못한 것 같았다. 창백한 손등에는 파란 심줄이 그대로 비척 올랐다. 그리고 얼굴에는 무거운 우올에 싸여 괴로운 빛이 보이었다. 나는 첫눈에 그가 제 버룻 이외의 다 른 병이 있음을 알았다. 얼마 바라보다가,

「너 어디 아프냐?」 하고 물어보았다.

그는 무슨 대답을 하려고 입을 열 듯하더니 입맛으 로 다셕 버린다. 어딘가 몸이 몹시 괴로운 눈치였다.

낯을 잔뜩 찌푸리고는 역시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어디 아퍼 ?」 하니까,

「으음」 하고 입속으로 대답하다가,

「어 디 가 ? 」

「등이 좀 결린다」 하고 그제서야 그는 내게로 시 선을 가져온다마는 사실 등이 결린 것은 아니 었으리 라. 그때 나는 등이 왜 겯리는가 싶어서,

「그럼 병원엘 좀 가똬라. 병이란 애초에 고쳐야지 ‥‥‥?

하고 객적게 권하였다.

여기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도로 낮을 찌푸 려가며 끙끙 앓을 따름이었다. 이제 와 생각하면 그는 나의 둔갑을 딱하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누님이 짜서 플고 들어온 약을 그는 요강에 부었다.

그리고는 빈 대접을 웃목으로 쓱 밀미 버렸다.

마치 그 약을 받아먹는 것이 큰 모욕이나 될 듯싶 었다 누넘이 이걸 목격하여 봤다면 또 분란이 있었으리 라. 그가 나간 다음의 일이라 그대로 무사하긴 하였다.

이걸 본다면 그는 이때부터도 누님에게 역심을 잔 뜩 품고 있었음이 확실하였다. 이윽고 그는 나를 향하 여,

「미안하지만 너 한 번만 더 갔다올래 ?」 하고 나 직이 묻는 것이다.

어딜 갔다오는 건지 그것은 묻지 않아도 환한 일이 었다.

「그래라」 하고 선뜻 대답하였다.

하니까 그는 자리 밑에다 손을 디밀터니 편지 하나 를 끄집어내 앞으로 밀어놓는다.

「답장을 꼭 맡아 오너라.」

「그래 . 」

두말없이 나는 편지를 들고 나섰다.

답장을 맡아 오겠다 한 전일의 약속도 미안하였다.

오늘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답장을 맡아오리 라고 결심하였다. 내가 여기엘 가는 것은 지금이 세 번째다.

한 번은 안잠자기에게 욕을 당하고, 또 한 번은 편지 를 전하러 갔다가 대문도 못 열어 보고 그냥 왔다. 한 번도 원 당자를 만나본 일은 없었다.

(사람이 가서 애걸을 하는 데야 답장 하나 안해 줄 리 없으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종로를 향하여 내려오다가,

「여 ! 이 얼마만인가?」

「참 오래간만인걸 !」 하고 박인석 군을 만났다.

그는 우리와 함께 고보의 동창이었다. 지금은 보전 법과까지 마치고 전당포를 경영하고 있었다.

나는 그렁저렁 인사를 마치고 헤어지려니까,

「여보게 ! 내 자네에게 의논할 말이 좀 있는데‥‥ ‥」 하고 그 옆 찻집으로 가는 것 이다. 돈푼쫌 있다 고 자네, 여보게, 극쩌구, 하는 꼴이 좀 아니꼬왔다.

하나 의논이라니까나는 의논이 무슨 의논일까, 하고 되물었다. 그는 우자스레 흥차 둘을 시키더니,

「자네 요새는 뭐 하나?」 하고 나에게 묻는 것이 다.

「헐꺼 있나, 밤낮 놀지.」

「그렇게 놀기만 하면 어떡해 ?」

그는 큰일이나 난 듯이 눈을 등그렇게 뜬다. 이것 또 어디 쓰는 수작인가 싶어서,

「그럼 안 놀면 어떡허나?」 하니까,

「사람이 일을 해야지 놀면 쓰나 !」 하고 제법 점 잖게 훈계를 하는 것이다. 나는 모욕당한 자신을 느꼈 으나 꾹 참고 차를 마셨다. 그도 차를 몇 번 마시더니 주머니에서 시계를 끄집어낸다. 산 지 얼마 안되는 듯 싶은 누런 시계에 누런 줄이었다.

「허 시간이 늦었구면, 시간이 안 늦었으면 극장엘 같이 가려 했더니」 하고 뽐을 내는 것이다.

실상은 극장이 아니라 새로 산 그 시계를 보이고 싶었다.

「자네 취직 하나 안하려나?」

「뭔데 ? 」하고 쳐다보니까,

「그런 게 아니라 저 내 아들이 하나 있는데 말이 야. 그놈을 유치원을 넣었더니 숫제 가기 싫어한단 말 이지. 응석으로 자라서 에미의 품을 못 떨어져. 그래 자네더러 와서 같이 데리고 좀 놀아 달란 말일세, 일 테면 가정교사지. 」

하고 나의 눈치를 쓱 흩어보고는,

「자네 의향은 어떤가?」

친구보고 제 자식하고 놀아 달라는 건 말이 좀 덜 된다. 방정맞은 놈, 하고 속으로 노했으나,

「그러게, 고마우이」 하고 활활이 밭았다. 왜냐면 나에게 문득 한 생각이 있어서이다. 이 친구는 고보 때부터도 기생집에 출입이 잦았던 청년이었다. 기생집 에 대한 이력은 문맹동인 나보다 훨씬 환할 것이 논 림없었다.

(그럼 이 박군을 사이에 두고 답장을 맡아오는 것이 손쉽지 않을까? ) 이런 생각을 하고,

「박군 ! 요새두 기생집 잘 다니나?」

「건 왜 묻나?」

「아니 글쎄 말이야.」

「어쩌다 친구와 어울리면 갈 적도 있지.」

「그래 기생을 사랑하는 사람두 있나?」

「그게 또 무슨 소리야, 사랑을 먹구 살아가는 기생 이 사랑이 없으면 어떻게 사나?」

「그 더러 있지.」

「그러면 답장 쓰기에 바쁘겠구면 ?」

「답장이라니 ?」하고 당치 않은 소리란 듯이 나를 쏘아보더니,

「기생이 어디 놀음채른 걸고 요리집으로 찰러서 뚱땅거리면 흥이 나고, 다 이렇지만 그까짓 답장은 왜 쓰나 ? 」 하고 그래도 못 알아들을까 봐,

「기생이란 어디 그런 답장 쓰려고 나온 겐 ? 」

이렇게 또박이 깨치어 준다. 나는 가만히 생각해 보 니까 딴은 그럴 것도 같다. 전일의 내가 가졌던 생각 과 조금도 다름없었다.

「요담 또 만나세.」 나는 간단히 작별을 하고 거리 로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 편지는 영영 답장을 못 받고 마는 것이다. 안 쓰는 답장을 우격으로 쓰일 수 는 없는 노룻이었다. 그리고 반아 보기조차 꺼리는 이 편지의 답장을 바라는 것은 좀 과한 욕망이겠다. 기생 은 반드시 요리집으로 불러서 만나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음을 알았다. 나는 이럴까저럴까 하며 머뭇 거리다 한 계 책을 품고 우리집으로 뼁 을라갔다. 내 방으로 들어 와 나는 주머니에 든 편지를 꺼내 었다.

그리고 실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 편지를 뜯어 서 읽어 보았다.

나명주 선생 께 날사이 기체 안녕하시올나이까. 누차 해답 없는 편 지를 올리어 너무나 죄송하외다. 두루 용서하여 주시 옵기 엎드려 바라나이다.

선생이시여,

저는 하나를 여쭈어 보노니 당신에게 기쁨이 있나 이까. 그리고 기꺼웁게 명락하게 웃을 수 있나이까.

만일 그렇다 하시면 체경을 앞에 두고 한 번 커다랗 게 웃어 보소서. 그 속에 비치이는 얼굴은 명랑한 당 신의 웃음과 결코 걸맞지 않는 참담한 인물이오리다.

그 모양이 얼마나 추악한, 악착한 꼴이라 하겠나이까.

선생이시여,

그러나 당신은 천행히 웃으실 수 있을지 모르외다.

왜냐면 당신의 그 처참한 면상은 분이 덮였고 그리고 고운 비단은 궂은 그 고기를 가리웠기 때문이외다. 귀 중한 몸을 고기라 하여 실례됨디 많을을 노여워 마소 서. 당신의 몸은 먹지 못하는 주체궂은 고깃덩어리외 다. 그리고 저의 이 몸도 역시 먹지 못하는 궂은 고깃 덩어리외다.

선생이시여 ,

당신은 당신의 자신을 아시나이까. 그러면 당신은 글히 행복이외다. 저는 저를 모르는 등신이외다. 허전 한 광야에서 길잃은 여객이외다.

선생이시여,

저에게 지금 단 하나의 원이 있다면 그것은 제가 어려서 잃어버린 그 어머님이 보고 싶사외다. 그리고 그 품에 안기어 저의 기운이 다할 때까지 한껏 올어 보고 싶사외다. 그러나 그는 이 땅에 이미 없노니어 찌 하오리까.

선생이시여,

당신은 슬픔을 아시나이까. 그렇다면 그 한쪽을 저 에게 나누어 주소서. 그리고 거기 따르는 길을 지시하 여 주소서.

여기에다 일부에 서명을 한 것이 즉 그 편지였다.

글은 비륵 다르다 할지라도 요전번 내가 넣고 왔던 그 편지와 사연은 일반이었다. (이 글의 내용이 기생 에게 통할까? ) 나는 이렇게 의심하였다. 그리고 여고 에 다니는 나의 누이동생을 불러서 내가 부르는 대로 받아쓰라 하였다.

유명렬 선생 전 답상서 그동안 기체 안녕하옵신지 궁금하오며 10여 삭을 연하여 주신 글월은 무한 감사하오나 화류계에 떨어 진 천한 몸이라 그 뜻 알 길 막연하와 이루 답장치 못하오니 이 가슴 답답 측량 없사오며 하물며 전도 양양하옵신 선생의 몸으로 기생에게 이런 변지를 쓰 심은 애통할 바 크다 하겠사오니 하루바삐 끊어 주시 기 간절간절 바라윰고 겸하여 내내 건강하옴심 바라 오며 이만 그치나이다.

사뭘 그믐 나명주 상서 이런 답장에 필적이 여필이었다. 이만하면 그는 조 금도 의심치는 않으리라. 물론 이때 나는 이 편지의 결과까지 생각하기에는 우선 당장이 급하였다. 아무 거침 없이 들고 가서 그를 즐겁게 하여 주었다. 이 답 장이 그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었던가 우리는 그걸 상상치 못하리라.

그는 편지를 받아들고 곧 뜯어 보지 못할만큼 그렇 게 가슴이 설레었다. 방바닥에다 그걸 내려놓고는 한 참 동안 눈을 감은 채 그 흥분을 진정시키었다. 그리 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두 손으로 다시 집어들고 뜯 어 보았다.

그는 다 읽은 뒤 억압된 음성으로,

「고맙다」 하였다.

나는 양심에 젤리는 곳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허 지만 그의 기쁨을 보는 것은 또한 나의 기쁨이라 안 할 수 없었고,

「별 소릴 다한다. 고맙긴‥‥‥」 하고 천연스레 받았다.

이렇게 하여 나는 일을 저지르기 시작하였다.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씩은 나는 그의 편지를 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싫어도 그 답장을 부득이 쓰 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이 그에게 미치는 영향 은 자못 큰 것이다.

편지가 오고가고 하켠 할수록 그는 더욱더 명주를 숭상하였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연모의 정을 떠나 완전히 상대를 우상화하게까지 되었다. 말하자면 이것 은 한 개의 여성이 아니라 그의 나아갈 길을 위하여 빛어진 한개의 신앙이었다.

그리곤 거기 따르는 비애는 그의 주위에 엉클린 현 실이 었다.

그는 자기의 처지를 끝없이 저주하였다. 뿐만 아니 라 그의 누님을 또한 끝없이 저주하였다. 누님은 그때 돈놀이를 하고 있었다. 물론 한 19뭔밖에 안 되는 그 월급에 5원, 10뭔, 이렇게 떼어 빛을 놓는 것이다. 그 것은 대개 공장 사람에게 월수로 주었다. 하니까 피 나머지로는 한 달 생활비가 되질 못하였다. 그 결과는 좁쌀을 팔아들이고 물도 자기 손수 길어들이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고단한 몸을 무릅쓰고 바느질 품올 팔기에 밤도 새웠다. 따라서 가뜩이나 골병 든 몸이 날로 수척하였다. 이렇게 그는 억척스러운 여자 였다.

그러나 놓았던 빛은 마음대로 잘 들어오진않았다.

돈 낼 때가 되면 그들은 이 핑계 저굉계 늘어놓으며 그대로 얼렁얼렁하고 마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 은,

「내 다음부터 잘 낼 게 돈 좀 더 주우, 다게 있고 게 있는 거 어디 가겠수?」 하고 그를 달랬다.

혹은,

「돈 좀 더 안 꾸어 주면 으.전 것두 안 내겠수」

하고 제법 대드는 우락부락한 남자도 있었 다.

공장 안에서는 빛놀이를 못한다는 것이 공장의 규 칙이었다. 그걸 드러내놓고 싸을 형편도 못 되거니와 한편 변덕이 많은 그라 남의 꼬임에 잘 떨어지기도 하였다. 돈을 내라고 몇 번 욜쾌히 굴다가도 어느 겨 를에 그만흘딱 넘어서, 못 받는 빛에다 덧돈까지 언어 서 보내고 하는 것이다.

그의 급한 성질에는, 나중에 받고 못 받고가 그리 문제가 아니었다. 우선 이 돈이 가서늘고 불어서 큰 천냥이 되려니, 하는 생각만 필요하였다.

이렇게 그는 앞 뒤 염냥이 없이 그저 허벙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돈으로 말미암아 시집에서 학대 를 당하였다. 그리고 밥으로 말미암아 친정에서 내어 좇기었다. 또는 공장살이 몇 해에 얼마나 근고를 닦았 는가, 얼른 한 밑천 잡아서 편히 살고 싶은 생각이 간 절하였다.

그의 입으로 가끔,

「어떤 사람은 2백 원을 가지고 빛놀이를 한것이 이태도 못 되어 3천 원짜리 집을 샀다는 ! 」

이런 탄식이 나왔다.

그리고 밤에는 간흑 가다 치마 속에 찬 큰 귀주머 니를 꺼내었다. 거기에서 돈을 쏟아서 가장 애틋한 듯 이 차근차근 세어 보았다. 그동안 쓴 것을 따져 보아 한푼도 축이 안 나면 그제서야 한숨을 휘 돌리고 자 는 것이다. 그러자 하루는 그 돈이 없어졌다. 그가 공 장을 파하고 나와서 저녁밥을 하고 있던 때였다. 그는 손수 나아가 고기를 사고 파를 사고 해서 가지고 들 어 왔다. 그리고 기쁜 낮으로 화로에 장을 않히고 있 었다. 물론 그 병이 한 차례 지난 뒤도 뒤려니와 그날 은 오랜만에 빛 놓았던 돈 5원을 받은 까닭이었다.

그는 곧잘 밥을 푸다가 말고,

「여기 돈 누가 집어갔니 ? 」 하고 째지는 소리를 하였다. 갑자기 부얼 문틀 위에 놓여 있는 돈을 보고 서이다. 10전에서 고기 5전, 파1전, 성냥 1전, 이렇게 샀으니 반드시 3전이있어야 할 터인데 2전뿐이었다.

대뜸 선이를 불러서,

「너 여기 돈 1전 어쨌니 ?」 하고 묻다가,

「전 몰라요」 하고 얼떨떨한 눈을 뜨니까,

「이년 ! 몰라요 ? 」

그리고 때리기 시작하였다.

사실은 아까 비지장수에게 1전 준 것을 깜빡 잊었 다. 그는 이렇게 정신이 없는 자기임올, 그것조차 잊 기 잘하는 건망증이었다. 바른대로 불라고 계집을 한 참 치다가 그예 장작개비로 머리까지 터치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의 계산이 잘못됨을 알았다. 피는 터진 머 리에 약을 발라주며,

「너 이담부터 그런 손버르쟁이 허지 말아」

하고 멀쑤룩해진 자기의 낮을 그렁그렁 세웠다.

그러나 속으로는 부끄러운 양심이 없는 것도 아니 었다. 이런 때 동생이 나와서 자기의 열성을 들어 몇 마디 하여 주었으면 좀 덜 미안할 게다. 그런데 자기 의 밥을 먹으면서 언제든지 꿀먹은 벙어리로 있는 것 이 곧 미웠다.

그는 동생에게는 밥을 주지 않았다. 둘의 밥만 마루 로 퍼가지고 와서 선이와 같이 정다이 먹었다. 그리고 문 닫힌 건넌방을 향하여 ,

「어디 굶어 좀 보지. 사람이 배가 쪼로륵 소리를 해야 정신이 나는 거야 ! 」

이렇게 또 시작되었다. 건넌방에선 물론 아무 대꾸 도 없었다.

조금 사이를 두고 그는 다시,

「학교를 그렇게 잘 다녀서 고등 보통학교까지 맡 고 남의 밥만 얻어먹너 ! 」

혹은,

「형이 먹일 걸 왜 내가 먹인담. 팔자가 드세니까 별꼴을 다 보겠네 ! 」

하고 깐깐히 비웃적거린다. 그렇다고 큰 음성으로 내대는 것은 아니었다. 부드리운, 그러나 자칼진 가시 를 품은 어조로,

「그래도 덜 뜯어먹었니 ? 어서 내 뼈까지긁어 먹 어 라 ! 」

하고,

「아들낳는 자식은 개아들이야 ! 」 하고 은근히 뜯 는 것이다.

그는 등생을 결코 완력으로 들볶지 않았다. 그것보 다는 은근히 뎃대놓고 비양거리어 불안스럽게 구는 것이 동생을 괴롭히기에 좀 더 효과적인 까닭이었다.

완력을 쓰면 동생의 표정은 심심하였다. 그러나 이 렇게 밸을 긁어 놓으면 그는 얼굴이 해쓱해지며 팜새 대들듯이 두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면서도 누님 에게 감히 덤비지는 못하고 마는 것이다. 이 묘한 표 정을 누님은 흡족히 향자하였다. 그리고 나서야 그는 분노, 불만, 비애, 이런 거친 심정을 가라앉히곤 하는 것이다. 이만큼 그는 뒤등그러진 성질을 가진 여자였 다.

명렬군은 여기에서 누님을 윰시 중오하였다. 누님이 그의 앞으로 그룻을 팽개치고 대들어, 옷가슴을 잡아 뜯을 때에는 그 병으로돌리고 그대로 용서하였다. 그 리고 묵묵히 대문 밖으로 나가 버리고 마는 것이다마 는 이렇게 깐죽거리고 않아서 차근차근 비위를 긁는 데는 그는 그 속에서 간악한 그리고 추악한, 한 개의 악마를 보는 것이다. 담박 등줄기에 소름이 쭈욱 끼치 곤 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가 그의 누님을 해치우고자 험 한 결심을 먹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만일 그가 탄순 히 누님을 미워만 하였더란들 일은 간단히 끝났으리 라. 저주를 하면서도 이렇게까지 끌고 왔음에는 여기 에 따로이 한 이유가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동리에서는 누님 을 뒤로 세워 놓고,

「젊은 계집이 어째 행동이 저렇게 황황?」

「환장한 기집이 아니오? 그러니까 그렇 !」

「아이 미친 년두 참 다 보네 ! 」

이렇게들 손가락질을 하였다.

한번 두레박 때문에 동리에 분란이 인 뒤로는 그를 꼭 미친 사람으로 믿었다. 그것도 그가 금방 물 한 통 을 떠왔는데 그의 두레박이 간 곳이 없었다. 물통은 마당에 분명히 있는데 이게 휀일일까, 하고 의심하였 다. 대문밖에 있는 우물에 가 찾아보아도 역시 없는 것이다. 이건 정녕코 우물옆에다 놓고 온 것꼴 물 뜨 러 왔던 다른 여편네가 집익갔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면 우물에는 주야로 사람이 꿉이지 않았 고 그리고 두레박을 잃는 일이 빈번하었다.

그는 잡은 참 대문 밖으로 나와 우물께를 향하고 「어떤 년이 남의 두레박을 집어갔어 ?」 하고 악 을 쓰고는,

「이 동네는 도적년들만 사나? 남의 걸 집어 가 게. 」

이렇게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는 분하면 급한 바람에 되는대로 내쏟는 사람이었다.

우물길에 모여섰던 아낙네들은 물론 대노하였다.

「아니 여보 ! 그게 말 따위요?」 하고 꾸짖는 사람 도 있고,

「누가 집어갔단 말이오? 동네년틀이라니 !」 하고 대드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또는.

「이 동네는 도적년들만 있다? 너는 이년아 이 동 네년이 아니냐?」 하고 악장을 치고 달려드는 사람도 있었다. 치렇게 하여 한나절 동안이나 아귀다툼이 오 고가고 하였다. 그리고 동네는 떠나갈 듯이 소란하였 다. 만일에 이날 명렬군이 나와서 공손히 사죄만 안했 더라면 봉변은 착실히 당할 뻔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 니 그 두레박은 부엌에 놓인 물독 위에 깨끗이 언혀 있었다.

그 후도 그는 여러 번 동네에 나와 발악하기를 사 양치 않았다. 이럴 때마다 말 드문 동생은 방 속에서 「음 ! 음 !」 하고 아지 못할 신음 소리를 내었다.

그러나 이것만 보고 그 누님을 악한 여자길고 볼 수 는 없을 것이다. 명렬군이 한 번은 생각하기를 누님의,

간신간신 벌어들이는 밥만 먹고 있기가 미안하였다.

그리고 직업을 암만 열심히 덧보아도 마땅한 직업도 역시 없었다. 아무거나 한다고 찾아다니다 문득 한 생 각을 먹고서,

「누님, 내 낼부터 신문을 좀 배달해 보리다. 같이 벌어들이면 지괌보다는 좀 날 테니 아무 염려 마우」

하고 그 누님을 안심시켰다. 하니까 누님은 펄쩍 뛰며,

「얘 별소리 마라. 신문 배달이 다 뭐냐? 네가 몸 이나 튼튼하면 모르지만 그런 걸 허니 ?」 하고 말리 었다.

「왜 못하긴, 하루 한 번씩 뛰기만 하면 될걸!」

「그래두 넌 못해. 그것두 다 하는 사람이 있단다」

하고 좋지 않은 얼굴로,

「그저 암말 말고 내가 주는 밥이나 먹고 몸설히 있거라. 그럼 나에게는 벌어다 주는 것보다도 더 적선 일 테니. 나중에야 어떻게 다되는 수가 있겠지」 하고 도리어 동생을 위안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세 시간이 채 못 지나서 우연히 문틀에 머리를 딱 부딪고는,

「아이쿠 ! 」 하고,

「내 왜 이 고생을 하나 ! 늘큰히 자빠져 있는 저 병신을 먹이려고? 어서 뼈까지 긁어먹어라, 이놈 아 ! 」

그리고 그 병이 또 시작되었다.

그러면 명렬군이 그 누님에게 악의를 잔뜩품고 일 본 대판으로 노동을 하러 가려 할 때 굳이 붙들어 말 린 것도 결국 그 누님이었다. 그는 말릴 뿐만 아니라 슬피 울었다.

「내가 좀 심하게 했더니 그러니 ? 내 성미가 번히 망해서 그런 걸 옥생각하면 어떡허니 ?」 하고 자기 의 성미를 자기 맘대로 못한다는 애소를 하고,

「난 네가 없으면 허전해 못 산다. 좀 고생이 되더 라도 나와 같이 있자. 그럼 차차 내살 도리를 해줄 테 니 !」

이렇게 눈을 썬어 가며 떠나려는 사람을 막았던 것 이다.

이걸 본다면 명렬군에게 용단성이 없구나, 하고 생 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용단성 문제보다도 먼 저 커다란 고민이 있었다. 떠나려고 뻗대다가 결국엔 저도 눈물로 주저않고 만 것을 보더라도 알 것이다.

이러한 때면 그는 누님에게서 비로소 누님을 보는 듯 도 싶었다. 그리고 은혜를 입은 그 누님에게 악의를 품었던 자신이 끝없이 부러웠다. 마음이 성치 못한 누 님을 례내버리고 간다면 그의 뒤는 누가 돌보아 주겠 는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누님을 떨어져서는 안되 리라고 이렇게 다시 고치어 생각하였다. 말하자면 그 는 누님에게 원수와 은혜를 아을러 품은 야룻한 동생 이었다.

나는 참으로 이런 누님은 처음 보았다. 기껏 동생을 들볶다가는 어떻게 어떻게 맘이 내키면 금새 빙긋이 웃지 않는가. 그리고 부모 없이 자라 불쌍하다고 고기 를 사다 해먹이고 국수를 들여다 비벼도 먹이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아무래도 좋다. 나는 거기서 일어나는 결과만 말하여 가면 그만이다. 이슬비가 내리는 날,

그 누님이 나에게 물통 하나만 사다 주기를 청하였다.

집에도 물통이 있긴 하나 하 오래 쓴 것이라 밑바닥 이 다 삭았다. 우물의 물을 길어 먹으려면 반드시 새 물통이 하나 필요하였다. 물론 자기가 가도 되겠지만 여자보다는 사내가 가야 흥정에 덜 속는다는 생각이 었다.

나는 우산을 받고 행길로 나섰다. 하나 그 근방에는 암만 찾아도 철물전이 없었다. 종로에까지 내려와서야 비로소 물통 하나를 사들고 와서 그에게 거스름돈과 내어주며,

「물통이 별루 존 게 없더군요 ! 」하니까,

「잘 사셨윰니다. 튼튼하고 존데요」 하고 물통을 안팎으로 뒤져보며 퍽 만족한 낮이었다.

그리고 그는 우중에 다녀온 나를 가철다는 듯이 바 라보더니,

「신이 모두 젖었으니 절 어떡허세요?」 하고 매우 고맙다 하다가,

「이 얼마 주셨어요?」

「45전 주었읍니다. 」

「참 싸군요 ! 우리가 가면 60전은 주어야삽니 다. 」

그는 큰 횡재나 한 듯이 아주 기뻐하였다. 그러나 물통을 이윽히 노려보다가 그 낯이 점점 변함은 이상 하였다. 눈가에 주름이 모이고는 그 병이 시작될 때면 언제나 피런 지 와같이 입살에 게거품이 이는 것이다.

그는 물통을 땅에 그대로 탕 내려치더니,

「이년아 !」 하고 마루끝에 앉은 선이의 머리채를 잡는다. 선이는 점심을 먹고 앉았을 뿐으로 실상 아무 죄도 있을 턱 없었다. 멸번 그 랸을 치고 나서.

「이년아! 밥을 먹으면 쫌 얌전히 앉아서처먹어라.

기집애년이 그게 뭐냐?」 하고 얼토당토않은 홍계를 하는 것이다. 나는 그만 까닭없이 불안스러워서 얼굴 이 화끈 달았다.

딸고 보면 그 물통에 옆 한 군데 우그러들은 곳이 있었다. 그것이 그의 마음에 색 들지않았다. 물른 나 에게 그런 말이라도 했으면 나도 그를 모르는 배 아 니겠다초 얼른 바버다 주었으리라. 하나 그는 남에게 터놓고 자기의 불평을 분명히 말하려는 사람은 아니 었다. 공연히 아이를 두드려서 은연중 나를 불안스럽 게 만들어 늘는 것이 훨썬 더 상쾌하였다.

나는 이걸 말릴 작정도 아니요, 또는 그대로 서서 보기도 미안하였다. 쭈뼛쭈뼛하고 있다가 건넌방으로 피해 들어갈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명렬군은 아직도 성치 못한 몸으로 병석에 누워 있 었다. 밖에서 나는 시끄러운 울음소리에 가뜩이나 우 울한 그 얼굴이 잔뜩 찌푸렸다. 그리고,

「음 ! 음 ! 」하고 신음인지 항거인지 분간을 모를 우렁찬 소리를 내는 것이다.

실토인즉 그는 선이가 누님에게 매를 맞을 때만큼 피로운 건 없었다. 선이는 날이 개나, 비가 오나, 언 제나 매를 맞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붙어다녔다. 누 님의 소리만 나면 그는 고양이글 만난 쥐같이 경풍을 하였다. 이렇게 기를 못 펴서 열 두 살밖에 안 된 계 집애가 그야말로 얼굴에 노란 꽃이 피게 되었다.

명렬군은 일을 칠 듯이어나 앉았으나 그러나 두고 는 그대로 묵묵하었다.

생각하고 있는 듯싶었다. 밑에서 그걸 꺼내 놓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손으로 머리를 잡한참 동안 무엇을 아윽고 그는 자리 낙망하는 낯으로.

「이게 웬일일까 ? 」

「글세?」 하고 나는 깜짝 놀라며 얼떨떨하였다.

그것은 명주에게 갔다가 (수취거절)이란 쪽지가 붙 어 온 편지였다. 그 소인을 보먼 어제 아침에 띄웠다 가 오늘 되받은 것이 확실하였다. 그동안 내가 며칠 안 왔었던 탓으로 이런 변괴가 생겼음은 물론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다시 찬 번.

「이게 웬일일까?」 하고 나를 척다보고는.

「답장까지 하던 사람이 안 받을 리는 없는데 !」

「글세 ? 」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을을지 떨떠름하였다. 하릴없 이 그와 한가지로 고개를 숙이고는 그대로 덤덤하었 다. 그러자 언뜻 그 언제이던가 한 번 잡지에서 본 기 생집 이야기를 생각하고,

「오 ! 」 하고 비로소 깨달온 듯이 고개를 끄덕끄 덕하였다.

「아마 이런가부다. 」

이렇게 나는 그의 앞으로 다가않으며,

「기생의 어머너란 건 너 아주 숭악한 거다. 딸이 연애라두 해서 라람날까봐 늘 지키고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편지를 하겠니 ? 말하자면 그 어머니가 편지를 안 받끄는 도로 보내고 보내고 하는 거야.」

「웅 !」 하고 깨달은 듯싶기에,

「그러게 편지를 하려면 그 당사자에게 넌 즛넌즛 이 전하는 수밖에 없다」 하고 그럴 듯하게 꾸며 대 었다.

여기까지 말을 하니 그는 더 묻지 않았다. 그런대로 곧이듣고 우편으로 부친 편지를 후회하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되니까 나도 그대로 안심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나를 퉁하여 편지를 보내고, 답장안 보 면 그만이었다. 그 외에 아무것도 상대에게 더 바라지 않았다. 그가 명주를 찾아간다거나 할 염려는 추호도 없을 터이므로 나는 그런대로만 믿었다. 이날 밤이 이 슥하여 명렬군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생각지 않았던 손님이라 좀 떠름히 바라보았 다마는 하여튼 우선 방으로 맞아들여서,

「밤중에 웬일이냐?」 하고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 다.

그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침착한, 그리고 무거순 낮을 하고 앉아서 귈련만 피우고 있다.

그러나 겨우 입을 여는 것이,

「너 나 좀 오늘 재워 주련?」

「그러려무나」 하고 선뜻 받긴 하였으나 나는 그게 무슨 소린가 하였다. 입고 온 걸 보면 동저고리에 풀 대님이다마는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제대로 두었 다. 그는 자기의 가정사에 관한 일을 남이 물으면 낮 을 찌푸리는 사람이었다.

<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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