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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경/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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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序[1] : 昔在[2]帝堯,聰明文思,光宅天下,將遜於位,讓於虞舜,作《堯典》。

|} 옛날 제요를 살펴보면, 들어서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셨고, 보아서 보지 못하는 것이 없으셨으니, 그 덕이 안팎으로 온축되고 드러나서 천하사방에 미쳤다. 지위에서 물러나 우순(虞舜)에게 양위하셨다. (이러한 내용으로) 〈요전〉(堯典)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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曰若稽古帝堯,曰放勳,欽、明、文、思、安安,允恭克讓,光被四表,格于上下。

|} 옛날 요(堯)임금에 대하여 살펴보면, 큰 업적을 세우셨으니[3], 공경하시고〔欽〕 총명(聰明)하시며 (그러한 덕이) 안〔思〕팎〔文〕으로 드러나 힘쓰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셨고,〔安安〕[4] 태도는 진실로 공순(恭順)하셨으니, (스스로를 내세우지 않고) 사양할 수 있어서 온 사방에 드러난 것이 천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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克明俊德,以親九族。九族既睦,平章百姓。百姓昭明,協和萬邦。黎民於變時雍。

|} 능히 큰 덕을 밝히시어 구족[5]을 친하게 하셨고, 구족이 이미 친목하게 되고 난 뒤에는 백성을 공명정대하게 다스리셨으며〔平章〕 백성이 밝고 똑똑해진 뒤에는 만방을 화평하게 하시니 아아, 백성들이 곧〔時〕 화평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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乃命羲和,欽若昊天,歷象日月星辰,敬授人時。

|} 희(羲)씨와 화(和)씨[6]에 명하여, 삼가 큰 하늘〔昊天〕[7]을 따라서 해와 달과 별의 운행〔象〕을 헤아려 기록〔歷〕하고, 백성들에게 (농사짓는) 때를 잘 알리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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分命羲仲,宅嵎夷,曰暘谷。寅賓出日,平秩東作。日中、星鳥,以殷仲春。厥民析;鳥獸孳尾。

|} 희중(羲仲)[8]에게 따로 명하여, 해가 뜨는 곳〔우이(嵎夷)〕에 가서 머무르게 하였는데, (머물게 한 곳을) 양곡(暘谷)이라고 한다. 뜨는 해를 잘 맞이하여 봄철의 농사를 고르게 정돈하도록 할 것이며, 낯밤의 길이가 같은 것과 조수(鳥宿) 별자리가 남중할 때[9]를 가지고 춘분(春分)의 절기를 정하게 하였다. 이때 백성들은 들로 나아갔고, 짐승들은 서로 새끼를 낳으려 교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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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命羲叔,宅南交。平秩南訛。敬致。日永、星火,以正仲夏。厥民因;鳥獸希革。

|} 거듭 희숙(羲叔)에게 명하여 남교(南交)에 머무르게 하였다.[10][11] 여름철 농사일을 고르게 정돈하도록 하였고, (해를 맞이하는 일을) 공경하고 면밀하게 하도록 하였다. 낯이 긴것과 대화성(大火星) 별자리가 남중할 때를 가지고 하지(夏至)의 절기를 정하게 하였다. 이때 백성들은 계속 들에 나가 농사짓고, 짐승들은 털가죽이 가늘고 성글게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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分命和仲,宅西,曰昧谷。寅餞納日,平秩西成。宵中、星虛,以殷仲秋。厥民夷,鳥獸毛毨。

|} 화중(和仲)에게 명하여 서쪽에 머무르게 하였으니, (머무르는 곳을) 매곡(昧谷)이라고 한다. 지는 해를 잘 전송하게 하여 가을철 농사일을 고루 정돈하게 하였다. 저녁과 낮의 길이가 같은 것과 허수(虛宿)[12] 별자리가 남중하는 것을 가지고 추분(秋分)의 절기를 정하게 하였다. 이때 백성들은 평화로이 살고, 짐승들은 털갈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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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命和叔,宅朔方,曰幽都。平在朔易。日短、星昴,以正仲冬。厥民隩;鳥獸氄毛。

|} 거듭 화숙(和叔)에게 명하여 삭방(朔方)에서 머무르게 하였으니, 유도(幽都)라고 한다. 겨울철 농사일을 고루 정돈하도록 하였고, 낮이 짧은 것과 묘수(昴宿) 별자리가 남중하는 때를 가지고서 동지(冬至)의 절기를 정하도록 하였다. 이때 백성은 모여들어와 살게 되었고, 짐승들은 솜털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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帝曰:「咨!汝羲暨和。朞三百有六旬有六日,以閏月定四時,成歲。允釐百工,庶績咸熙。」

|} 요임금이 말했다. "아, 너희 희씨와 화씨여, 1년의 주기를 366일로 하고, 윤달을 가지고 4계절의 때를 정하여 1년을(1년 달력을) 완성하도록 하라.[13] 백관을 잘 다스리면 여러 공적이 모두 드러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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帝曰:「疇咨[14]若時,登庸?」放齊曰:「胤子朱啟明。」帝曰:「吁!嚚訟,可乎?」

|} 요임금이 말했다. "누가 이것과〔時〕 같이 할 자를 두루 물어서〔咨〕 등용할 수 있겠는가?" 방제(放齊)가 말했다. "맞아드님이신 주(朱)께서 명철하십니다." 요임금이 말했다. "어허, 수다스럽고, 쟁송(爭訟)하는 것이나 좋아하는데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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帝曰:「疇咨若予采?」驩兜曰:「都!共工方鳩僝功。」帝曰:「吁!靜言庸違,象恭滔天[15]。」

|} 요임금이 말했다. "누가 나와 같이 할 수 있는 자를 두루 물어서 데려오겠느냐?" 환도(驩兜)[16]가 말했다. "아, 공공(共工)이 가는 곳마다 공적을 쌓았다고 전합니다." 요임금이 말했다. "어허, 말은 공손하니 잘 하지만 직접 시켜보면 (그 말에) 어긋나고, 모습은 공경스럽지만 (마음은) 하늘을 찌를듯 거만한 자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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帝曰:「咨!四岳,湯湯洪水方割,蕩蕩懷山襄陵,浩浩滔天;下民其咨。有能俾乂?」僉曰:「於!鯀哉!」帝曰:「吁!咈哉!方命圮族。」岳曰:「异哉。試可,乃已。」帝曰:「往,欽哉!」九載,績用弗成。

|} 요임금이 말했다. "아, 사악(四岳)[17]이여, 물이 넘쳐 넘실거리는 것이 사방에 해를 끼치고, 거세게 쏟아지는 물이 산을 삼키고 언덕을 넘어서 하늘까지 닿을듯 하니, 백성들이 탄식하는구나! 능력있는 자가 있다면 그것을 다스리게 할 것이다." 여러 사람이 "아아! 곤(鯀)입니다."라고 말하자, 요임금이 말했다. "어허, 안된다. 명을 거슬러서 한 무리를 무너뜨릴 자이다." 악이 말했다. "퇴짜를 놓더라도〔异〕[18] 할 수 있는지 시험하시고 퇴짜를 놓아야 합니다." 요임금이 말했다. "가서 일을 잘 하도록 하라." (곤은) 9년이 지나도 공적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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帝曰:「咨!四岳。朕在位七十載;汝能庸命,巽朕位。」岳曰:「否德忝帝位。」曰:「明明揚側陋。」師錫帝曰:「有鰥在下,曰虞舜。」帝曰:「俞!予聞。如何?」岳曰:「瞽子;父頑,母嚚,象傲。克諧以孝,烝烝乂,不格姦。」帝曰:「我其試哉!」女于時,觀厥刑于二女。釐降二女于媯汭,嬪于虞。帝曰:「欽哉!」

|} 요임금이 말했다. "아, 사악이여, 짐이 임금 자리에 있은지 70년이다. 그대가 명을 잘 받들었으니, 짐의 자리를 선양하겠노라." 악이 말했다. "덕이 부족하니 임금의 자리를 욕되게 할 것입니다." 요임금이 말했다. "이미 알려진 자라도 (다시) 드러내고〔明明〕, 미천한 지위에 있는 자라도 추천하라."[19] 악이 말했다. "장가들지 않은 홀아비가 재야에 있는데 우순(虞舜)이라고 합니다." 요임금이 말했다. "옳거니, 나도 들었는데, 어떠한가?" 악이 말했다. "장님의 아들인데[20] 아버지는 완악(頑惡)하고 어머니는 어리석으며, (동생인) 상(象)은 오만하였는데, (순이) 효를 가지고 바로잡았으니, 점점 다스려지게 되어 간악한 지경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요임금이 말했다. "내가 그를 시험하겠다." (요임금이) 딸을 그〔時〕에게 (시집) 보내어〔于〕[21] 그가 법도로 두 사람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살피도록 하셨다.[22] 두 딸을 치장〔釐〕[23]하여 규수(媯水)의 북쪽 물굽이로 내려보내어 우순에게 시집가도록 하면서 요임금이 말했다. "잘 하라."〔欽〕


각주(역주)

[편집]
  1. 《서경》 각 편의 서문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소서(小序), 고서(古序)라고도 한다. 복승(伏勝)이 구술했다고 전하는 《금문상서》에도 일부가 수록되어 있었다고 하며, 한나라 때 공자 구택의 벽 안에서 발견된 《고문상서》에 100편의 서서가 모두 실려있었다고 한다. 발견 당시에는 각 편의 서들이 모두 합쳐져 있었던 것인데, 공안국(孔安國)이 전(傳)을 달면서 각 편의 앞에 배치하였고, 내용이 사라진 경우에는, 앞편의 끝에 붙여 순서에 따라 나누어 배치하게 되었다. 서서는 공안국은 물론 유흠(劉歆), 반고(班固) 등의 고문학자들에 의해 신봉되었고, 공자의 저작으로 이해되었다. 동진 시대 매색(梅賾)이 위조한 《위고문상서》역시 이러한 영향을 받아 서서를 포함시켰고, 이것이 당나라 때 《오경정의》의 텍스트로 채택되면서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남송(南宋) 이후의 학자들은 서서가 공자의 저작이 아니라고 의심하게 되었고, 주희(朱熹)는 서서의 내용이 《서경》본문의 내용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근거로 서서 자체를 부정하였으며, 이러한 경향은 청대까지도 이어졌다.
  2. 살필 찰(察)과 같은 의미이다. 《서경》〈순전〉에 같은 용례가 보인다.
  3. 남송의 채침(蔡沈)은 방훈(放勳)을 글자 그대로 “큰 업적”으로 풀이하였으나, 《맹자》, 《사기》에 의하면 요의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다. ( 《서경》(書經), 전인초(全寅初) 번역(1976), 평범사(平凡社). 48쪽 “《맹자》에서는 방훈은 요임금의 이름이라고 하였다. 《사기(史記)》에서도 여기에 좇아 「제요(帝堯)는 방훈(放勳)이라 불렀다」고 해독하고 있다.” 《맹자주소》(孟子註疏) 〈권5〉 卷五下•滕文公章句上 條 “放勳,堯號也。” (방훈은 요 임금의 이름이다.))
  4. 書集傳》 〈卷1〉 “安安無所勉强也” (안안은 힘쓰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을 말한다.)
  5. 고조(高祖), 증조, 조부, 부친(父親), 자기(自己), 아들, 손자(孫子), 증손(曾孫), 현손(玄孫)까지의 직계(直系) 친족(親族).
  6. 천문을 관장하는 집단으로써, 뒤에 나오는 희중, 희숙, 화중, 화숙 등을 포괄하여 일컬은 말로 보인다. 일설에 의하면 여기서 언급하는 희씨와 화시는 희백(羲伯)과 화백(和伯)으로 뒤에 언급되고 있는 다른 희, 화의 일족 가운데 우두머리를 뜻한다고 하기도 하였다.
  7. 호천은 구천(九天)의 하나로 표현되기도 한다.
  8. 희중은 희화(羲和)의 일족으로, 요(堯)나라의 대신(大臣)이다.
  9. 남방 주작 7수의 별자리를 말한다. 집전에는 순화(鶉火)라고도 하였다.
  10. 공안국은 '여름과 봄이 교접하는 때.'(南交, 言夏與春交)라고 하였으나, 북송의 유창(劉敞)은 다른 방위에서 모두 거주하는 땅에 대해서 말한 것이므로 공안국의 설명에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하였고, 채침은 '남방 교지'라는 지명으로 풀었다. 여기서는 다른 사방 지역의 예에 따라서 번역한다.
  11. 채침에 의하면 남교(南交) 아래에 '왈명도(曰明都)' 3글자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채침 전을 따르면 '남교에 머무르게 하였으니 (머무른 곳을) 명도라 한다.'라고 번역할 수 있으나, 우선 남아 있는 원문에 따라 제외하였다.
  12. 북방 현무 7수 가운데 4번째 별자리인 허수를 말한다.
  13. 이 부분의 주석을 흔히 기삼백주(朞三百註)라고 한다. 동아시아 전근대의 관점에서 보면, 하늘의 주기와 해의 주기, 달의 주기가 각각 달라서 차이가 생기고, 여기에 따라 생기는 오차를 정기적으로 적용해서 1년의 주기와 4계절의 시점을 정한다는 내용이다.
  14. 후대에는 '인재를 얻는 방법'을 물을 때 쓰이는 상투적인 말로 자주 사용되었다.
  15. 채침은 滔天을 착간되어 잘못들어간 문구로 보았다.
  16. 여러 사전류에서는 '兜'의 음을 '두'로 발음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전통사회 이후 지금까지 경문 독음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선조본 《서경언해》에 따른다.
  17. 공안국은 사악을 앞에 언급한 희중, 희숙, 화중, 화숙으로 보았다. 그러나 뒤에 사악과 악(岳)이 번갈아서 나오고, 요임금이 선위할 대상으로 사악을 생각하고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으므로,여기서는 '사악'이라고만 해석하였다.
  18. '그만두게 하다.'는 의미로 이(已)와 같이 풀었다. 공안국은 '(곤 이외의) 남은 사람들은 퇴짜를 놓아야 할 사람들'(言餘人盡已)이라고 보았고, 채침은 누구를 퇴짜놓아야 한다는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19. 공안국은 '미천한 지위에 있는 자라도 밝게 드러내라.'(明明揚側陋)라고 하였다.
  20. 원래부터 장님이라는 것이 아니다. 공안국은 '순의 아버지는 볼 수 있었으나, (성질이 억세고 고집스러워) 사리분별을 못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장님이라고 불렀다.'(舜父有目, 不能分別好惡, 故時人謂之瞽)고 하였다.
  21. 《시경》이나 《서경》과 같은 문헌에서 '어조사 우'는 '~로 (무엇하러) 가다.'와 같이 번역되는 예가 있다.
  22. 채침의 설이다. 공안국은 '觀'의 주체를 요임금으로 파악하였다.
  23. 공안국은 '순이 규수가에서 두 여인의 마음을 의리로 꺽어서 부인으로 맞이했다.'(能以義理, 下帝女之心於所居嬀水之汭, 使行婦道於虞氏)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