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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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수 부聖樹賦 — 생활의 겨울

생활의 귀족 되기는 어려우나 마음의 귀족 되기는 쉬운 듯하다. 외로움이 마음의 귀족을 만들었으나 이제는 귀족다운 마음이 도리어 고독을 즐기게 되었다. 고독에 관한 옛사람들의 명언을 적어도 십여 구를 마음 속에 준비하는 동안에 고독은 짜장 품에 사무쳐서 둘없는 동무가 되었다. 동무들에게서 오는 달명장의 편지, 가끔 문학을 이야기하러 오는 같은 뜻의 벗—이런 교섭 이외에는 거의 외로운 마음의 생활이 있을 뿐 이다.

쓰지 않은 소설의 장면을 생각하여도 좋고 쓸 곳 없는 외국어의 단어를 기억하는 법도 있으며 할일없는 지도와 친히 구는 수도 있다. 보지 못한 풍경에 임의의 채색을 칠하여 봄은 마음의 자유니 그 어느 거리에다 붉은 집들과 하아얀 집들을 배치도 하여 보고 언덕 위 절당에는 금빛 뾰족탑을 세워 보았다. 파랑빛 둥근 탑으로 고쳐보았다. 다시 거리에는 자작나무와 사시나무의 가로수를 심고 그 속에 찬 공기와 부신 광선을 느껴도 볼 수 있는 이 아름다운 특권을 둘없이 고맙게 여긴다. 곱게 채색한 그곳은 ‘포그라니이치나야’라도 좋고 ‘상모리트’라도 무관하며 무우등의 교외라도 좋은 것이다. —마음의 꽃 휘날리는 곳에 혼자의 조그만 왕국이 있고 생활이 있으며 천국이 있다. 나는 그 속의 왕이다.

생활이란 무엇인가 스스로 묻고 움직임이다. 스스로 대답하고 움직임에는 방향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에 이를 때 귀찮은 생각을 집어치우면 그만이다. 나에게는 산을 뽑을 힘도 없고 바다를 잦힐 열정도 없고 별다른 지혜도 없으며 사치를 살 금덩이도 없다. 다만 가난한 꿈꾸는 재주를 가졌을 뿐이니 꿈속에서만은 장검도 휘둘러보고 땅도 깨트릴 수 있고 하늘의 별도 딸 수 있다. 사람이 있어 식물적 생활이라고 비웃는다 할지라도 나는 아아메녀의 거리 낡은 성문 어귀에 웅크리고 누워 사막의 달밤을 꿈꾸는 털 빠진 낙타의 모양을 업신여길 수 없으며 로맨티시스트의 이름으로 조롱할 수는 없다. 리얼리스트이면서도 로맨티시스트—사람은 그런 것이다.

꿈을 빚어주는 것에 아름다운 계절계절이 있다. 여름에는 바다가 푸르고 가을에는 화단이 말고 봄에는 온실이 화려하며 겨울에는—겨울에는 색체가 가난하다. 눈조차 풍성하지 못하면 능금나무 가지는 앙클하며 꿈은 여위어 간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도 눈이 푼푼이 오지 않았다.

나뭇가지는 엉성궂 하고 벌판은 휑휑하고 차다.

일요일 아침 목욕물에 잠기면서 맞은편 예배당에서 흘러오는 찬송가를 듣기란 그것이 겨울이므로 더한층 정려 있는 것이었다.

평화로운 풍금소리와 아름다운 합창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천국의 ‘세은문’이 탄탄대로같이 눈앞에 드리워 물 위에 너볏이 떠 있는 피곤한 육체에 날개가 돋쳐 그대로 쉽게 천당에 오를 듯한 느낌이다.

가난한 육체를 훑어보면서 성스러운 노래 속에 천국을 느낌은 유쾌한 일이다. 정신으로 보다도 먼저 육체로 하늘을 찾고 싶은 것이다. 즐거운 노래의 여음으로 문득 크리스마스가 가까웠음을 깨닫고 아름다운 정서를 살리기 위하여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려 생각하였다.

“푸른빛 귀한 방안에 싱싱한 나무를 세우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즐겁게 뛰었다.

사람을 시키니 반날 동안이나 깊은 산을 헤매인 후 두 대의 굵은 전나무를 베어 왔다.

초목이란 초목은 모두 아름다운 것이지만 전나무의 아름다움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곧은 줄기, 검푸른 잎새, 탐탁한 자태, 욱신한 향기—바꿀 것 없는 산의 선물을 넓은 방 복판에 세워 놓고 나는 무지개를 쳐다볼때와도 같은 감격을 느꼈다. 산의 정기와 별의 정기를 담뿍 머금은 두 포기의 생명은 잎새의 끝끝 줄기의 마디마디에 가지가지의 전설과 가지가지의 이야기를—별 이야기, 밤 이야기, 바람 이야기, 눈 이야기, 새 이야기, 짐승 이야기—를 자리고 있을 것이나 둔한 신경으로는 그것을 드러낼 수 없는 것만 한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약간 눈이 내렸으나 땅을 덮을 정도가 못되고 내리자 녹군 하였다.

낮부터 꾸미기 시작한 것이 저녁때를 훨씬 넘었다. 아내는 제 일이 바쁘고 아이는 거들 나이 못되므로 나는 나 혼자의 독창으로 손을 대었다. 멋대로의 소설을 생각하듯이 비위에 맞도록 창작하면 좋아하였으니까.

잎새 위에 편 솜은 물론 눈을 의미하는 것이요, 조롱조롱 단 금방울은 태양의 빛을 나타내자는 것이요, 반짝이는 별들은 산속의 밤을 방불시키자는 뜻이었다. 방울은 바람소리를—휘연휘연 드리운 금빛 은빛 레이스는 자연의 소리를—듣자는 것이다. 수많은 인형은 산의 정혼들이요, 나무의 모습대로 방울방울 치장한 오색의 색전지는 정혼들의 찬란한 춤이다.

가난한 책시렁과 철늦은 의자와 벽에는 옛 소설가들의 초상과 타지 않은 파이프만이 있던 방안이 산의 정기를 맞이하자 신선한 생기를 띠고 빛나기 시작하였다. 책상 위에 오색이 어른거리고 이야기 없는 원고지가 병든 것같이 하아얗다. 나는 찬란한 무지개를 느끼면서 이야기 속 사람처럼 감격 속에 앉았었다.

크리스마스 트리만이 색채만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요, 그 너머 꿈의 생활이 눈앞에 어리우는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나무는 다만 나무로서는 뜻이 없는 것이요, 인물을 배치할 풍경을 그 너머에 생각함으로 뜻이 있다. 현실은 배후에 꿈을 생각함으로 생색이 있다.

나무를 앞에 놓고도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이 즐겁다. 식물이 아니요, 역시 동물이 인연이 가까운 것이다.

밤늦게 라디오를 틀고 마닐라에서 오는 노래를 듣노라면 남쪽 계집의 열정적인 콧노래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휩싸면서 흥에 겨운 야릇한 광경이 안계에 방불하다. 큐라소의 병을 기울이며 투명한 액체를 들여다보면 춤추는 꼴이 잔 속에 꺼꾸로 비취인다. 라디오의 음파를 갈아 놓으면 크리스마스 캐롤 한 장면이 들리며 스크루지가 가난한 집안의 크리스마스를 구경하고 섰는 그림이 크리스마스 트리와 더블로 떠오른다.

생활이란 더 많이 황당한 마음의 그림의 연속이다.


새벽 찬양대의 크리스마스 노래는 지극히 아름다운 것이다. 아련히 흘러오는 고운 멜로디에 잠이 깨었다. 어둠 속에 새벽 노래 줄기줄기 아름답다.

자취 없는 산타클로스는 아이에게는 양푼덩이 만한 케이크를 가져왔으나 나에게는 아무 선물도 가져오지 못하였다.

크리스마스는 적막하고 고요하고 쓸쓸하다.

전나무가 아직 싱싱한 동안 선물—이라고 할까, M에게서 편지가 왔다.

M—꿈의 한 대상이다. 나는 그의 육체의 구석구석을 모르나 알며, 그의 마음의 갈피갈피를 보지 못하나 본다. 꽃봉오리 같은 젖꼭지를 알 수 있으며 눈망울같이 영리한 마음속을 볼 수 있다.

그의 육체가 나의 생 속으로 뛰어들려고 하는 것보다는 그의 마음이 나의 꿈속에 헤매이는 편이 피차에 행복스러운 것을 나는 잘 안다. ‘좁은문’으로 들어가야 할 형편이며 그것이 실상인즉 피차에 이로운 것이다.

어스름한 저녁이 되면 시골 거리의 앞 긴 강 다리 위를 일없이 건넜다 돌아왔다 건넜다 돌아왔다 하면서 고요한 강물을 하염없이 내려다보다 지치면 강가의 돌을 집어 물 위에 던져도 보고 쓸데없이 풀 포기도 뽑아보며……

지난 가을의 소식을 쓸쓸히 지낸 소녀는 이렇게 전하였다. 새까만 눈망울과 까스러 올라간 속눈썹과 꼭 끼이는 앙상블을 입은 자태가 눈앞에 삼삼하도록 글자 사이에 정서가 넘쳤다.

소녀는 또 그가 꾼 이상한 꿈 이야기조차 거리낌없이 고백한다.

—어디인지 문득 주위와 똑 멀어져 긴 돌층대가 뻗쳐 있다. 층대를 다 올라간 맨 위편에 내가 앉아서 층대 아래에 서 있는 그에게 손짓한다. 그는 응연히 고개를 숙이고 한 단 한 단 조용히 층대를 올라와 나에게까지 이른다.

읽고 보면 나 역 언제인가 그런 꿈을 보지 않았던가 생각되어 그의 꿈과 나의 것이 서로 얼크러져서 어느것이 뉘의 것인지 판단할 수 없는 착각을 느끼게 된다. 그만큼 서로의 생각이 갈피갈피인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꿈의 하소연은 나에게는 지나쳐 강렬한 암시요 자극이다. 큐라소를 마실 때와 같이 단 줄만 안 것이 잔을 거듭하는 동안에 함빡 취하여지고 만다. 이 단 마술을 경계하여야 할 것을 알면서도 나는 어연미연간에 답장의 붓을 들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나의 마음이 대체 몇 갈피나 되는지 내 자신으로도 종잡을 수 없다. 한 줄기가 아니요, 낙지다리같이 열 오리 스무 오리—그것이 다 거짓이 아니요 참스러운 마음이다. —사람은 그런 것일까.

답장에 답장이 오고 답장에 답장을 쓰고—나무 밑에서 편지를 읽는 때가 많았다.

그러나 편지가 없더라도 꿈이 없는 것은 아니니 그렇기 때문에 편지가 문득 끊어져도 슬픈 것은 아니었다.

그의 객관을 보며 현실에 접하면 나는 도리어 환멸을 느낄 것을 생각한다. 고독하므로 나무 잎새는 푸르고 색전기는 밝다.

소리의 마음은 하늘의 구름과 같다. 생겼다 꺼졌다 개었다 흐렸다 하며 한결같이 떳떳하지 못함이 그것과 흡사하다. 나는 그의 편지에 가끔 여름의 구름을 보나 슬픈 법도 없으며 마음은 돌부처같이 침착하다.

잎새가 시들어 떨어질 때까지 향기가 날아서 없어질 때까지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워 두려고 생각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봄이 오면 온실이 있을 것이요 여름이 오면 바다가 아름다워질 터이니까. 그 계절계절을 따라 꿈도 새로워질 것이니까.


아름다운 계절들이 차례차례로 지나갔을 때 나는 다시 새로운 크리스마스 트리를 외로운 지붕 밑에 세우리라. 새로운 편지를 장식하리라. 새로운 꿈을 꾸미고 새로운 편지를 읽으리라.

생활의 겨울이 빛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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