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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무지개 뜨는 언덕/4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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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음악 콩쿠르

이튿날 아침, 마침내 음악 콩쿠르의 날이 왔다.

이 거리에는 이슬비가 뽀얗게 내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밀려드는 관중들로 인해 예술의 회관 앞마당은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이윽고 장내는 꽉 찼고, 관중은 어서 빨리 막이 오르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프로그램은 제1부 성악, 제2부 기악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참가한 학교는 남녀 중학교를 합해 모두 열두 학교였다. 제1부 성악에는 열한 명, 제2부 기악에는 아홉 명의 참가자가 있었다.

참가 학생은 대부분 고학년인 3학년들이었고, 2학년은 여섯 명, 1학년은 은주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유곡은 모두들 어려운 곡들을 선택했다.

그러나 어려운 곡을 택하든 쉬운 곡을 택하든, 문제는 자기 역량으로 충분히 소화할 만한 곡을 선택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어려운 곡을 선택해서 뽐내 보겠다는 생각은 콩쿠르에서는 금물이었다.

오 선생은 은주의 능력에 비추어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성불사의 밤〉을 자유곡으로 선택해 주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볼 때, 오 선생의 이러한 선택은 가장 현명한 판단이었다.

“아, 신 선생 오셨습니까?”

오 선생은 심사 위원의 한 사람인 음악 평론가 신채영 선생을 복도에서 만났다.

“오 선생의 학교에서도 이번 콩쿠르에 참가했더군요.”

“네, 그런데 이번에 저희 학교에서 나오는 서은주라는 학생을, 신 선생은 기억 못하시겠습니까?”

“서은주? 모르겠는데요. 몇 학년입니까?”

“1학년입니다.”

“1학년?”

신채영 선생의 얼굴이 약간 흐려지며 되물었다.

“1학년이 나와서야 될까요? 너무 어린데요. 기악입니까?”

“성악입니다.”

“몇 살입니까?”

“열네 살입니다.”

“야아, 그건 좀 무리인걸요.”

그 말에 오 선생은 약간 근심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언젠가 신 선생께서 대지초등학교 학예회에 가셨던 일이 있지 않습니까?”

“학예회? 아참, 그런 일이 한 번 있었지요.”

“그 때, 〈봉선화〉를 부른 서은주라는 학생을 잊으셨습니까? 신 선생이 극구 칭찬을 하신......”

그제야 신채영 선생은 손을 탁 치며 소리쳤다.

“아, 이제야 생각이 나는군요. 오늘 참가한 서은주라는 학생이 바로 그 학생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그 학생입니다.”

“아, 그래요?”

신채영 선생의 얼굴에 차츰차츰 흥분의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오 선생은 설레는 마음을 누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희망이 없습니까?”

“글쎄올시다. 그 학생이라면......”

신 선생은 뭔가 신중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잠시 후에 대답했다.

“하여튼 주의해서 들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반주는 그 애의 언니가 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1학년인데, 쌍둥이입니다.”

“쌍둥이?”

“네, 똑같이 생긴 쌍둥이입니다.”

“허어!”

신 선생은 어지간히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그럼, 잠시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렇게 오 선생과 신 선생은 헤어졌다.

장내는 아주 조용했다.

정각 10시에 드디어 막이 올랐다. 이창훈 씨 내외를 비롯해 은철이와 민구 그리고 영란이의 동생 영민이도 와 있었다.

“엄마, 누나 어디 있어?”

영민이가 물었다.

“저 뒤에 있단다.”

“누나도 나와?”

“쉬! 가만있어. 떠들면 안 돼.”

막이 오르고 제1부가 시작되었다. 맨 처음으로 남자 중학교 3학년 학생이 나와서 지정곡인 〈보리수〉를 부르고, 자유곡인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불렀다. 사람들은 박수를 쳤으나, 그저 일상적인 박수였을 뿐 열광해서 치는 것은 아니었다.

두 번째 참가자는 모 여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그러나 이 학생은 몸가짐이 단정하지 못하고, 마치 쇼 프로에 나오는 유행가 가수 같은 인상을 주었다. 성량은 풍부했지만 박자와 음정이 정확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기운 없는 박수 소리가 들렸다.

셋째, 넷째, 다섯째, 여섯째...... 마침내 아홉 번째로 은주와 영란이의 차례가 왔다.

“엄마, 누나 나왔다!”

영민이가 반가운 마음에 흥분해서 고함을 쳤다.

“그래, 누나란다!”

어머니는 귓속말로 가만히 속삭였다.

“앞에 서서 나오는 건 새로 생긴 너의 작은누나 은주고, 뒤에 따라 나오는 건 영란이 누나란다.”

“야아, 참 멋있다!”

영민이는 손뼉을 쳤다.

얼굴이 똑같이 생긴 어여쁜 자매를 바라보는 순간, 사람들은 호기심에 불타는 얼굴로 유심히 바라보았다.

“야아, 쌍둥이다! 쌍둥이 자매다!”

“어쩌면 둘 다 저렇게 예쁠까!”

여기저기에서 감탄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은철은 그 어떤 알지 못할 감격으로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생각하면 그 동안 무척 많은 고생을 해 온 은철이가 아니었던가. 갖은 고생과 모욕을 꾹 참아 가면서 끝끝내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사랑하는 은주를 오늘 이처럼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은철이야말로 눈물이 나도록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영란이가 반성과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은철이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된 후부터 은철의 행복은 그 누구보다 컸다.

은주는 조용히 걸어 나와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곧이어 피아노 앞에 앉은 영란이가 〈보리수〉를 반주하기 시작했다. 영란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은주의 노래 소리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성문 앞 우물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꿈을 보았네

새벽 하늘, 깊은 산기슭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샘물과도 같은 영롱한 노래! 눈물을 머금은 듯한 젖은 눈동자가 살며시 허공을 바라보며, 머나먼 나라의 아름다운 꿈을 꾸는 것 같은 은주의 귀여운 얼굴!

가지에 희망의 말

새기어 놓고서

기쁘나 슬플 때에나

찾아온 나무 밑

찾아온 나무 밑

은주가 마지막 절까지 노래를 부르자, 관중의 박수 소리가 우레처럼 터져 나왔다.

다음 자유곡 〈성불사의 밤〉이 시작되었을 때, 오랫동안 그치지 않고 계속되던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일제히 딱 멎고 장내는 기침 소리 하나 없이 다시 조용해졌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 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저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 울게 하여라

이어서 제2절이 끝나는 순간, 관중의 박수 소리는 한층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은주가 공손히 인사를 하고 영란이와 함께 퇴장했을 때도 박수 소리는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앙코르! 앙코르!”

여기저기서 앙코르를 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박수는 계속되었다. 폭풍과 같은 환호의 박수! 우레와 같은 열광의 박수!

은철은 울고 있었다. 흑흑 느껴 울고 있었다. 가슴이 벅차 왔다.

‘오오, 은주야! 내 귀여운 동생 은주야!’

은철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부르짖으며 울고 있었다.

‘오늘의 네 모습을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보셨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자나 깨나 네 생각만 하시던 불쌍하신 어머니!’

은철은 마음이 쓰라리고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다. 오늘의 이 커다란 기쁨, 오늘의 이 무한한 행복을 진실한 소년 서은철은 눈물로 축하하는 것이었다.

이창훈 씨도 눈을 자꾸만 껌벅거렸고, 옆에 있는 부인도 조용히 울었다. 영민이만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언제까지나 손뼉을 치고 있었다.

이윽고 은주와 영란이가 다시 한 번 나와서 그칠 줄 모르는 박수 소리를 향해 공손히 답례를 했을 때, 박수 소리는 더한층 높아졌다.

“야아, 신통하게도 똑같이 생긴 쌍둥이다!”

“쌍무지개 같은 어여쁜 쌍둥이다!”

그런 말이 은철의 귀에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