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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네/골육

위키문헌, 우리 모두의 도서관.
화랑도
골육
저자: 김동인

한성도서 출간본 '화랑도'는 편집 오류로 이 부분이 상당부분 누락돼 있다. 동아일보 연재분을 참고하여 추가하였다.


일환아―

아버지는 이전에 백제 건국을 말할 때에 고구려 세 왕자의 일을 기록하였다. 형에게 고구려의 왕위를 계승하게 하라고 자기는 몰래 그 나라를 도망해 나와서 다른 곳에 가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그것을 백제라 하였다고.

그 형제애(兄弟愛)를 너는 아름답게 보았느냐, 귀여운 행동으로 보았느냐?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다. 이 세상에서 『사랑』이란 것만 없이해 버리면 사람의 세상은 거츨기가 끝이 없이 될 것이다. 신약 성경에도

『내가 너이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너는 서로 사랑하여라』

하였다. 사랑하여라. 남이 너를 박해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너는 그 사람을 사랑해라.

『이 세상을 사랑하여라』

혹은 이것은 너무도 문제가 클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네 부모, 네 친척, 네 동생은 지극히 사랑하여라. 고구려의 세 왕자를 본받아서 동기 친척을 사랑하여라.

가까운 사람을 사랑할 줄을 모르는 사람은 먼 사람도 사랑할 줄을 모른다.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먼 사람을 사랑할 줄을 알겠느냐. 가까운 사람을 헤가릴 줄 모르는 사람이 어찌 먼 사람을 가릴 줄 알겠느냐

네 가까운 사람 가운데서 너를 미워하고 박대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너는 그 사람을 사랑해라. 서로 피가 통한 친척을 사랑할 줄 모르면 너는 남도 사랑할 줄을 모를 것이다.

아버지는 이제 우리의 옛날 역사를 뒤적이여 『가까운 사람을 사랑할 줄을 모른 사람이 어떤 최후를 맺었는가』를 보여 주련다.

지금부터 一천六백 四十년 전쯤의 일이다.

그때에 고구려에 봉상왕(烽上王)이라는 왕이 등극하셨다.

그런데 이 왕은 그다지 성미가 좋지 못하셨다. 그 우에 왕은 투기심이 많으셨다. 의심이 또한 많으셨다.

봉상왕에게는 三촌되는 이가 있었다. 안국군(安國君) 달고(達賈)라는 이였다. 그러고 왕에게 돌고(咄固)라는 동생이 있었다.

의심이 많고 투기심이 많으신 왕에게는 三촌과 동생이 근심의 재료였다. 혹은 三촌이 반역을 하여 왕위를 뺴앗지나 않을까. 혹은 왕제가 반역을 하여 스스로 왕위에 오르고저 군사나 안 일으킬까. 이른 근심이 늘 일어났다.

三촌이나 왕제가 대신들과 무슨 의론이라도 하면 이것은 필시 역모라고 생각하셨다. 삼촌이나 왕제가 어떻게 입시를 안 하면 이것은 필시 군사를 일으키렴으로 알으셨다. 이렇듯 의심이 가하게 되어서 마지막에는 삼촌과 동생을 잡아서 죽여 버렸다.

한 가지의 근심은 덜었다. 그러나 사람이 의심을 하려면 끝이 없는 것이다. 삼촌과 아우는 죽여 버렸지만 아우되는 이에게는 을불(乙弗)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을불은 인자하였다. 정직하였다. 슬기로웠다. 건강하였다.

이런 것들을 보매, 왕은 또한 을불이도 미웠다. 더구나 을불의 아버지를 손수 죽였는지라 원수를 갚을 것 같기도 하여 무섭기도 하였다.

피를 나눈 동생이며 같은 피를 물려받은 삼촌을 죽이고도 조금도 양심에 가책을 받지 않는 봉상왕은 또한 당신의 친조카되는 을불도 죽이려고 잡아오라 명하셨다.

그러나 왕에게 잡히기 전에 을불은 먼저 그 눈치를 채고 헤어진 옷을 바꾸어 입고 얼굴에 숯칠을 하고 머리를 풀은 뒤에 서울을 도망하여 종적을 감초았다.

몸은 왕의 조카였다. 전왕의 사랑하는 손주였다. 그러나 삼촌 왕의 무서운 해를 피하여 서울을 도망한 을불은 한 주인 없는 거지, 갈데 없는 표랑에 지나지 못하였다.

기구한 운명 때문에 화려한 궁전 안의 귀한 공자의 몸에서 하룻밤 새에 거렁뱅이도 떨어진정 불은 피곤한 다리를 끌며 정처없이 달아났다. 다만 서울서 한 걸음이라도 더 먼데로 아픈 다리를 끌면서 달아났다.

이리하여 을불은 어떤 날 저녁 압록강 건너 수실촌(水室村)이라는 조그만 동리까지 이르렀다.

얼마를 연하여 걷고 또 걸은 을불의 다리는 이 동리까지 이르러서는 도저히 더 걸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배는 등에 닿도록 주렸다.

다리 아픔을 모르고 주림을 모르고 곤함을 모르고 고생을 모르고 아직 자란 을불이었다. 처음 맛보는 이 고생― 이것은 단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였다.

죽게 곤하고 주린 을불은 몸을 어떤 곳에 내여 던졌다. 그러고 그 자리에 넘어져서 쓰린 다리와 팔을 쥐믈고 있었다.

이만치 피아혀 왔으면 삼촌의 무서운 손도 따르지 못할 것이다. 피하기는 넉넉히 피해 왔다. 그러나 인제부터 살아나갈 길은 일즉이 세상 살아가는 학문을 배우지 못한 을불은 인제 자기는 무엇을 하고 살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장사를 하자니 밑천이 없었다. 벼슬을 하자니 잘못 하다는 앙에게 들킬듯 싶었다. 공장 노릇을 하자니 배운 재간이 없었다.

그새 배운 재간이라고는 글과 무술과 도덕과 왕자의 길 뿐. 이것을 먹어 가지는 못할 것이다. 이것으로 먹으려면 왕에게 벼슬을 할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일즉이 주림을 모르던 왕손 을불은 굶어 죽어야 할 곤란한 자리에 빠져서 다만 자기의 너무도 기구한 운명을 저주할 뿐이었다.

문득 을불의 앞으로 사람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그 사람은 지나가다가 을불의 앞에 섰다. 그러고 이 초라한 행객을 굽어 보았다.

을불도 마주 처다 보았다.

굽어 보던 사람은 을불을 이상히 본 듯하였다. 초라한 행색이었다. 굶주린 모양이었다. 죽게 피곤한 꼴이었다. 그러나 거지 같지는 않았다. 수상한 행객에게 지나가든 사람은 물었다―

『웨 거기 앉어 게시오?』

『갈 데가 없습니다』

을불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갈 데가 없다니 집이 없소?』

『전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그럼 장차 어떻게 할 테요?』

『장차?』

을불은 탄식하였다.

『장차ㅅ 일은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은 이 기과한 인물의 기과한 대답에 눈을 둥글게 하였다.

『그러면 당신은 패가를 하였구료』

『네. 패가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당신 힘은 세오?』

을불은 좌우를 돌아보았다. 오른편에 몹시 큰 돌이 하나 백여 있었다. 을불은 그 돌을 양팔로 안았다. 을불이 한번 고함을 지르며 일어설 때에 그 돌은 땅에서 쭉 빠져 나왔다.

그 사람은 이 놀라운 힘에 경이의 눈을 던졌다.

『그만치 힘이 있으면 남의 집 머슴으로라도 가구려』

『갈 데가 없습니다』

『여보. 누가 오라겠소? 가서 졸라야지』

을불은 그 사람에게서 한 처세의 방식을 배웠다. 듣고 보니 그럴듯한 일이었다.

좀 뒤에 을불의 초라한 모양은 그 동리에 가장 부자 음모(陰牟)라는 사람의 집에 나타났다. 그러고 주인을 찾아서 머슴으로 써주기를 부탁하였다.

『자네 기운은 든든하나?』

하는 말에 대하여 을불은 굵은 몽치를 꺾어서 제 힘을 보였다.

『힘밖에는 다른 재간은 없으니 쓸 수 없네마는 너무 청하는 게 가련하니 두어 주마』

이리하여 을불은 그 집에 머슴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밤―.

감개무량한 밤이었다. 먹을 자리는 얻기는 얻었다. 그러나 그 자리가 머슴이라는 자리였다.

한 나라의 왕의 조카로서 호화 권련 어느 것이든 남에게 부럽지 않게 지내던 몸이 오늘 저녁 하인으로 남의 집에 들게가 된 것이다.

별이 반짝였다. 벌레가 울었다. 이런 것들을 우러러 보며 이런 것을 들으며 을불은 잠을 못 이루고 이리저리 몸을 뒤채고 있었다.

한 가지 명령이면 아무런 것이든 실행 안 되는 것이 없었고 한 마디의 호령에 복종치 않는 사람이 없도록 자유롭고 높은 지위에 있던 몸으로 인제부터는 시골 상사람의 아래서 시키는 일이면 아무리 천한 일이라도 해야만 할 지위에 떨어졌다. 지금 죽게 피곤한 몸일지라도 주인이 시키기만 하면 이 몸을 다시 일으켜서 힘든 일을 쓷 하지 않고 해얄 것이다. 내일 아침 아무리 졸음이 심히 올지라도 해뜨기 전에 일어나서 뜰을 쓸고 주인의 일어나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양생에 젖었던 몸에 이 일은 얼마나 곤할 것이다.

그러나 이 곤한 일은 오히려 참을 수가 있다. 그보다도 그에게 더욱 근심되는 일이 있었다.

아까도 보았거니와 주인 음모의 생김생김이 그다지 곱게 못 생겼다. 심술 궂고 욕심 많고 포학하게 생겼다. 그 생김이 자기의 삼촌 봉상왕과 비슷한 데가 많다. 그러면 그 주인의 꼴을 어떻게 보고 살까.

못할 어려운 일도 하라고 시킬 것이었다. 미리 시키지 않은 일도 즈러 채서 하지 않았다고 책망을 할 것이었다.

자기가 시켰던 일도 결과가 좋지를 못하면 그 죄를 을불에게 돌릴 것이었다. 한 사람에게는 과한 일을 시키고도 더 많이 하지 않는다고 꾸짖을 것이었다. 때떄로는 자기로도 하지 못할 만한 잔혹한 심부름을 을불에게 시킬는지도 알 수 없다.

가령이 을불의 본배가 틀림이 없다 하면 그 주인 아래서 지나야 할 제 신세가 더욱 딱하였다.

『아아. 어젯날 공자가 오늘날 이런 촌의 머슴이 될 줄 누가 알겠느냐. 하늘이 안 계시다. 하늘이 계시면 어찌 이 일을 모르겠느냐』

공연한 투기로 제 골육을 죽이려 한다. 이런 포악이 어찌 용서를 바독 그냥 실행되느냐.

밤을 새도록 을불은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때문에 한잠을 못 이루었다.

이제 얼마다 더 살아야 할지 모르지만 이런 환경에서 그래도 생목숨을 끊을 수가 없어서 그냥 살어 가려는 제 신세가 더욱 딱하였다.

벌레가 운다.

이전에는 유쾌하던 그 노래였다. 그러나 지금의 을불에게는 벌레 소리가 단지 그의 눈물을 자아내는데 지나지 못하였다.

『이 미물아. 울지나 말어라. 네 울음 때문에 더욱 애태우는 사람이 있는 줄을 알고 울음을 끊어라』

이리하여 하룻밤을 탄식으로 새운 뒤에 을불은 머슴살이의 첫 아침을 맞았다.

을불의 예상과 마찬가지로 주인 음모는 포학한 사람이었다.

본시 어질고 말없는 을불은 아무런 심부름이라도 역하게 여기지 않고 하였다. 궁정의 공자로서 어려운 일을 일찌기 해보지를 못한 을불이었지만 시키는 일은 힘을 다하여 하였다.

『이것도 내 운명이다』

모든 쓴 일을 할 수 있다고 단념한 을불은 쓰게 여기지 않고 하였다. 그러나 손 익지 못한 일이라 힘과 정성을 다해서 하지만 잘 되지는 않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하였다. 힘과 정성은 다 하였다. 그러나 익지 못한 일이라 많이 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면 주인은 게으르다고 꾸짖고 저녁을 안 먹이었다. 시내에 가서 물을 길었다. 길을 때는 동이를 채웠다. 그러나 익지 못한 솜씨라 집까지 오는 길에 절반을 쏟았다. 그러면 주인은 적게 길어 왔다고 조반을 굶겼다. 뜰을 쓸면 먼지가 난다 꾸짖었다. 안 쓸면 더럽다 꾸짖었다. 계교를 내여서 뜰에 물을 뿌리고 쓸면 소리가 난다 꾸짖었다. 가만가만 쓸면 땅이 패인다 꾸짖었다.

아랫 사람에게 혹독한 주인으로서 하면 더하라 하고 잘해도 잘한다는 말이 없었다.

『에익! 이것을!』

잘해도 못한다고 꾸짖는 주인에게 어떤 때는 어진 을불도 결이 나는 때도 없지 않었다.

그러나 그런 때마다,

『내 삼촌도 나를 죽이려 하지 않었느냐. 골육이 이럴진대 남에게서 어찌 친절을 바래겠느냐』

하고는 어굴하기 때문에 나오려는 눈물을 꾹 삼키고 하였다.

이러한 너그러운 을불을 주인은 더욱 더 혹독히 시켰다. 여름에는 개고리의 울음ㅅ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자겠다고 을불에게 밤새도록 개구리를 울지 못하게 지키라 하였다. 낮의 피곤 때문에 죽게 자고 싶은 을불이지만 이것도 참고 밤이 다 새서 주인이 깨기까지 쉬― 쉬― 개구리들을 울지 못하게 지켰다.

겨울에는 밤새도록 불이 죽지 않게 을불에게 지키게 하였다.

낮에는 죽게 일하고 밤에 또한 주인을 위하여 한잠을 자지를 못하는 을불은 아무리 천성이 인자하고 너그러울 지라도 그냥 참을 수가 없었다.

얼마를 두고 참고 도 참아서 견디어 보았지만 더 견딜 수가 없었다.

보통 사람에게 있어서는 견디지 못하게 될 때는 반항이라는 형식으로 그 일을 피한다. 그러나 을불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음모의 집의 일이 아무리 생각하여도 당해 나갈 수 없음을 깨달을 대에 이 음모의 집에서 나가기로 작정하엿다.

『나가자. 내가 나가면 그뿐이 아니냐. 사람 어디 가면 살지 못하겠느냐. 이전의 공자가 시골 머슴으로도 살았다. 지금 시골 머슴이 거렁뱅이가 되면 또한 어떠냐. 내 팔자가 그런 이상에 누구를 원망하겠느냐』

남을 미워할 줄을 모르는 을불은 이렇게 마음 먹었다. 그러고 어떤 말 아침 조반을 먹은 뒤에 주인에게 가서 자기는 나가겠노라는 말을 하였다.

주인은 웨 나가려느냐고 물었다. 주인에게 있어서는 을불 같은 하인은 처음이었다. 힘이 세었다. 아무런 일을 시킬시라도 말없이 하였다. 한번도 싫다는 말이나 어렵다는 말이나 괴롭다는 말이나 곤하다는 말이 을불의 입에서 나와본 적이 없었다. 그러고 아무런 일을 시킬지라도 소와 같이 씩씩거리며 하엿다. 그런 을불을 내보내기가 싫었다. 그래서 한사이 못 나가게 하였다.

그러나 이미 이 집에서 나가기로 굳게 결심한 을불에게는 주인의 그 말이 말귀의 동풍이었다.

을불은 음모의 집을 나왔다. 그러나 음모의 집을 나오기는 했으나 앞길이 막막하였다.

『인제는 어디로?』

이전 왕질이던 을불이 처음 궁을 뛰처 나올 때는 오히려 나었다. 아무 고생을 모르던 그때는 다만 나가면 어떻게든 살아지려니 한뿐이었다. 그러나 쓰고 쓴 세태를 맛본 뒤의 을불에게는 앞길이 더욱 막막하였다. 아무리 구박을 받었고 아무리 고단히 일을 했을지라도 그래도 그를 덮어주는 지붕이 있었고 그의 밥을 지어주는 다른 하인이 있었다.

그러나 음모의 집을 나온 을불에게는 덮을 지붕이 없고 먹을 음식이 없었다. 다만 앞에는 캄캄한 것이 막혀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설마한들 굶어야 죽으랴』

을불은 또다시 정처없는 표랑의 길을 떠났다.

을불은 소금 장사를 시작하였다. 소금을 지고 동리 동리로 돌아다니며 팔었다. 밤은 남의 집 추녀 아래서 지나고 끼니는 혹은 얻어도 먹고 얻지 못할 때는 사서도 먹으며 소금을 지고 동리마다 찾어 다녔다.

『소금 사려우. 소금 사려우』

당당한 이 나라의 임군의 아우로 형이 형 같으면 이러지도 않을 것을 을불은 한 되의 소금을 팔으려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고단한 다리를 끌고 돌아다녔다.

을불은 사수촌(思收村)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거기서 을불은 주인을 잡고 낮이면 소금을 팔러 다니고 밤이 되면 도로 주인으로 돌아가서 낮에 피곤한 몸을 쉬이고 하였다.

어떤 날 집주인은 을불에게 향하여 소금 한 말을 달라 하였다.

이 집에서 꼭꼭 돈을 주고 밥을 사먹는 을불은 물론 주인이 소금을 달라는 것은 사자는 뜻으로 알고 주었다. 그러나 주인은 시치미를 떼고 값을 주지 않었다.

혹은 밥값으로 적기려나 돌이켜 생각도 하여 보았지만 밥값도 한푼의 덜함이 없이 딱 받어냈다.

그러나 을불은 거기 대하여 말하지 않었다. 마음 착한 을불은 속으로 『속았구나』 할 뿐 그 말은 하지도 않았다.

며칠이 지났다. 돈 안 주고 소금을 얻은 일에 자미가 났던지 주인은 또 을불에게 소금 한 말을 달라 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을불은 거절하였다.

『나도 밑천이 적게 하는 노릇이니 본전만 주시오』

여기 대해서 주인은 무료낌에 오히려 을불에게 화내였다

『아 소금 한 말 달라는데 주객지정에 그것도 못한단 말이오?』

『주객지정이 있기에 본전만 달라는 것이 아니오?』

『돈 주는 이상에야 다른 사람의 소금을 사먹지. 참 에이구 별별 깍정이가 다 있네. 그럼 오늘부터 내 집에서 나가. 우 참 에익 고약해!』

거기 대하여 을불은 가만 있었다. 그러고 부슬부슬 짐만 싸기 시작하였다.

당장에 이 집에서 나가라고 야단을 치던 주인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밤도 늦었는데 내일 나가오. 밤에 나가라는 것도 좀 무리한 일이니―』

하면서 을불을 도로 붙잡었다.

을불은 역시 맘없이 지금껏 싸고 있던 짐을 도로 놓았다.

이리하여 하룻밤을 그 집에서 을불은 더 지냈다.

이튿날 아침 을불은 일즉이 깨여 주인에게 셈을 치르고 그 집을 나섰다. 그러고

『소금 사려우. 소금 사려우』

웨치며 돌아다녔다.

을불이 그 집을 나서서 소금을 사라고 웨치면서 갈 때에 문득 저편 뒤에서

『도적놈 잡어라. 저 소금장사 놈 잡어라』

하고 고함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을불은 이상히 생각하였다. 그 근처에는 자기 밖에는 소금 장사가 없은 것이다.

그래서 돌아오매 오늘 아침까지 자기가 있던 집 주인이 숨을 허덕이며 따라온다. 그러고 을불에게 와서 을불의 멱살을 잡고 따귀를 한 번 힘껏 따렸다.

『이 도적놈. 은혜를 잊고 그래 내 집 물건을 훔처 간단 말이냐?』

을불은 이 의외의 말에 눈이 둥그렇게 되었다.

『아 이게 웬일이오? 내가 무엇을 도적질했단 말이오?』

『이놈 뻔뻔스럽게 시침이를 떼느냐? 그래 나한테 소금 한 말 주고 그 값을 하노라고 내 집 물건을 훔처냈느냐』

한마디 할 적마다 따귀 한 대씩이 왔다.

그러나 잘못이 없는 을불은 영문을 몰라서 반항도 못하고 대적도 못하고 맞은 빰을 손으로 부비며 이리저리 얼굴을 피할 뿐이었다.

『여보셔요. 말씀으로 하세요. 내가 무얼 도적―』

『그냥 뻔뻔스럽게? 그럼 네 짐을 뒤어 보자』

『그러시오』

다음에 아무 거리낌이 없는 을불은 등에 졌든 소금을 나리워 놓았다.

주인은 을불의 소금짐을 뒤졌다. 뒤지던 주인의 손에는 산 할 켤레가 들리워 나왔다.

『이제도?』

주인은 다시 일어나면서 을불의 따귀를 또 때렸다.

을불의 얼굴은 검붉게 되엇다. 주인이 얻어내인 신은 분명한 주인의 신이었다. 얻어내인 곳은 분명한 자기의 짐에서 잇다. 그러나 을불은 그 신이 어떻게 거기 있었는지 알지를 못하였다. 자기는 넣은 기억이 절대로 없었다.

『이놈 이 도적놈. 관가로 가자!』

신을 얻어내인 주인은 의기가 양양하여 을불을 끌고 관가로 갔다.

을불은 관가에 끌리어 가서 관리에게 심문을 당하였다.

죄가 없는 을불은 여전히 모른다 하엿다.

『네 짐에서 신이 분명이 나왔는데 그래도 모른단 말이냐』

『소인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저런 어리석은 놈 어디 있나. 이놈 네가 안 했으면 그래 주인이 했겠느냐』

관리의 이 말에 을불의 마음은 눈이 번쩍 띠었다. 동시에 어제 저녁 주인이 떠나라는 자기를 도로 말리던 일도 생각이 났다.

그것은 분명한 주인의 장난일 것이다.

소금을 달라다가 얻지 못하고 그 무료낌에 이런 흉계를 꾸며냈을 것이다. 그 흉계를 실행키 위하여 어제밤 자기를 붙들었던 것일 테다.

주인의 행사는 괘씸은 하였으되 자기의 무죄를 발명할 길은 없었다. 사건의 내력을 짐작한 을불은 한참 머리를 수그리고 있다가

『소인의 죄는 없사외다. 그러나 소인의 집에서 신이 나왔으니 벌은 달갑게 받겠습니다』

하였다.

을불은 신을 도적하였다는 죄로 태를 맞었다. 태를 맞을 때에 을불의 눈에서는 주먹같은 눈물이 떨어졌다. 태는 아프지 않었다. 그러나 『도적』이라는 누명이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아프고 쓰린 것이엇다. 그의 눈물. 그 어굴함에서 나온 것이었다.

어떤 날 을불은 여전히 소금을 지고 비류강(沸流江) 강ㅅ가에 배회하고 있었다.

『소금 사려우 소금 사려우』

인제는 익은 청으로 웨치면서 가을 끼고 우로 아래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한참을 웨치며 돌아 다니던 을불은 문득 수상한 일을 보았다. 웬 점잖은 관리 두 사람이 자기의 뒤를 밟는 듯한 것이었다.

『?』

만약 이전의 신분대로 있는대면 관리가 뒤를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 조금 뒤일 것 같으면 이것 또한 왕명으로 자기를 잡으려는 것이 아닌가고 을불의 의심을 자아내일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인제는 왕궁을 떠난지도 수 년, 그때의 그 모습은 하나도 남음이 없이 아무데도 뚫어 볼지라도 소금장사 을불에 지나지 못하는 자기를 뒤를 밟는 관리가 있을 까닭이 없다.

처음은 을불은 그것을 다만 심상히 여겼다. 같은 방향으로 길가는 사람이거니 하였다. 그러고 그냥 소금 사라고 웨치면서 갔다.

『소금 장사!』

어떤 집에서 웬 아낙네가 나왔다. 을불은 그 아낙네에게 소금을 팔었다. 그때었다. 뒤를 밟는 듯하던 수상한 두 사람은 지독히도 유심히 을불의 얼굴을 보면서 지나갔다. 지나는 갔지만 멀리까지 가지 않고 조금 더 가서 을불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을불은 와락 의심을 내였다.

더구나 지나가는 길에 그 사람들의 웃옷 안에 감초인 속옷으로서 그 사람들이 보통 관리가 아니고 궁정에 출입하는 높은 관리― 대신인 듯한 것을 안 때에 을불의 놀람은 더욱 컸다.

을불은 소금도 되는 대로 내여주고 돈도 받는 둥 마는 둥 얼른 걷어 치웠다. 그러고 소금은 도로 지고 이번은 아까 온 길로 돌아섰다. 소금 사라고 웨치지도 않었다.

좀 오다가 돌아보니 아까의 두 사람은 또다시 뒤를 따라 오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을불을 향하여 따라오는 것이 분명하였다. 뿐만 아니라 아까 본 바의 속옷이라든지 그 거름걸이라든지 몸짓이라든지 조정에서 온 것이 분명하였다.

기구하고 박한 운명이었다. 그러나 을불에게는 그래도 아직 목숨은 아까웠다. 이제 그냥 산단들 끝끝내 시골 소금 장사로 마칠 것이로되 그래도 죽기는 싫었다. 뒤를 밟는 무리들이 조정에서 온 것이 확실하게 될 때 을불은 걸음을 빨리 하여 그 사람들의 눈에서 피하려 하였다. 그러나 을불이 걸음을 빨리 하면 빨리 할수록 그 사람들도 또한 걸음을 빨리 하였다.

소금사려우의 『소』ㅅ 자도 을불은 입밖에 내지 못하였다. 그러고 전력으로 걸음을 빨리 하여 이 골목 저 골목으로 피하였다. 그러나 따르는 사람도 을불을 놓지지 않으려 애를 써서 뒤를 밟었다.

을불과 따르는 사람의 一행은 드디어 교외에까지 이르렀다.

사람의 기척이 적은 교외에 이르러서는 따르던 사람은 달음박질하여 을불에게로 왔다.

이것을 안 을불은 자기도 달음박질하여 피하려 하였다. 그러나 따르는 사람들은 맨몸이다. 을불은 소금ㅅ 짐을 진 사람이었다. 을불이 제 아무리 힘을 다하여 뛴다 할지라도 따르는 사람을 떨굴 수는 없었다.

얼마를 뛰지 못하여 따르는 사람은 을불의 뒤에 미첬다. 이것을 알고 을불이 소금ㅅ 짐도 버리고 뛰려 할 때는 따르는 사람은 을불의 앞으로 나갔다. 그러고 몸을 훠 돌이켜 섰다.

을불과 따르는 사람은 여기서 딱 마주 섰다.

따르던 두 사람은 을불과 마조 서서 유심히 을불의 얼굴을 보았다.

한참을 을불의 얼굴을 보던 두 사람은 이번은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그런 뒤에 머리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을불의 앞에 넙적 엎드렸다―

『왕질 을불 공께 인사드립니다』

두 사람은 입을 같이 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을불은 깜짝 놀랐다. 인제는 피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 임하여도 목숨은 역시 귀하였다. 다 발각난 뒤로되 을불은 역시 자기의 신분을 어떻게 감초아 보려 하였다.

『네? 무슨 말씀인지오?』

감초지 마십시오. 창조리(倉助利)의 영을 듣고 공을 모시려 온 조불(祖佛)과 소우(蕭友)의 두 사람이올시다. 감초지 마십시오』

『무슨 말씀입니까』

『지당하옵니다. 감초시려는 것이 당연하옵니다. 그러나 소인들에게는 감초실 필요가 없습니다. 왕질 을불공을 모시려 온 소인들이올시다』

신분이 인제는 드러났다. 그러나 그래도, 무슨 까닭인지 모르는 을불은 시치미를 떼고, 그냥 모른 체하였다―

『나는 이곳 소금 장사 당신네들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아 듣지도 못하겠습니다』

『아아. 공께서 감초시려는 것을 보매, 공의 심중이 짐작되어 소인들의 가슴은 더욱 쓰리옵니다. 감초시지 마십시오. 비록 초췌는 하섰으나마 빛나는 눈이며 넓은 이마가 이전의 그 모습. 눈물 나옵니다. 눈물 나옵니다. 공께서 이 행색이 무엇이오니까? 어서 그 더러운 짐을 벗어 버리시고 환궁하셔서 대통을 이으시옵소서』

말의 뜻은 짐작되었다. 을불 자기를 데려다가 임군을 삼으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 동안에도 을불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졌다.

환궁을 해서 보위에 오르라니 그럼 현왕의 신상에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그렇지 않으면야 두 사람은 삼촌의 밀령으로 자기를 잡으려는 사람으로 신분을 감초는 자기를 발설하게 하기 위하여 이런 거짓말을 해서 자기 입을 열게 하려는 흉계에서 나온 것인가.

만약 왕의 신상에 무슨 불길한 일이라도 있었으면 왕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보위에 오를 것이어는 자기를 찾어다니는 것은 또 무슨 일인가.

아아, 모든 것은 꿈같다. 세상만사가 모두 구찮다. 一생을 소금이나 팔면서 다니다가 이름 없이 넘어지면 비록 생전에 몸ㅅ고생은 할지라도 마음의 고생은 없을 것이다.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진 어즈러운 생각에 잠겨 있든 을불은 겨우 머리를 들었다.

『여보. 당신네들이 누구를 찾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한 천한 소금장사에 지나지 못하는 사람이오. 을불은 벌써 죽었소. 죽은 을불을 찾으려 다니기보다 어서 서울로 돌아가서 정치나 도우시오. 나는 소금장사. 오늘은 남산으로 내일은 북강으로 소금이나 팔러 다니다가 죽을 사람. 당신네들이 찾는 왕질은 아니외다』

비록 아니라 하기는 하나 그 음성은 아직껏의 소금장사의 음성이 아니오 늠름한 왕질 을불의 음성이었다. 여기서 두 사람은 더욱 머리로 땅을 조았다.

『공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 지당하옵니다. 그러나 소인들의 말씀을 들어 보소서. 소인들이 공을 모시려 온 그 내력을 한번 들어 보시고 그 뒤에 어떤 처분이든 내리소서』

이리하여 두 사람은 여기서 을불에게 그새 조정에서 생긴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일환아―

아버지가 아까도 말하였거니와 자기의 혈족에게 친절하지 못한 사람은 남에게도 친절하지 못하다. 자기 혈족을 사랑할 줄을 모르는 사람은 남도 사랑할 줄을 모른다.

남은 미워하면서도 자기 혈족은 사랑하는 사람은 있다. 그러나 자기 혈족을 미워하면서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로 없는 법이다.

자기와 같은 피를 물려받은 사람을 사랑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 어찌 남을 사랑할 줄 알겠느냐.

봉상왕(烽上王)은 일즉이 왕신의 三촌과 아우를 죽였다. 이 가까운 혈족을 사랑할 줄을 모른 사람이 어찌 남을 사랑할 줄을 알겠느냐.

왕의 포학은 날로 더하여 갔다. 백성을 과한 역사로 괴롭게 하였다. 신하들을 죄없이 잡아다 죽이고 하였다. 남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는 것이 왕의 즐거움이었다.

과한 역사 때문에 백성들은 편안히 살 수가 없었다. 젊은이들은 모두 잡아서 역사를 지키는지라 일하고 농사 짓고 장사하고 해야 할 젊은이들이 나라에 없어서 나라도 피폐해졌거니와 젊은이를 잃기 때문에 살 길을 잃은 국민들은 이 나라를 피하여 연방 다른 나라로 도망하였다.

뜻있는 대신들은 이것을 근심하엿다. 나라이 이렇게 되다가는 마지막에는 망할 밖에는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왕께 왕의 잘못을 간하는 신하는 반드시 왕에게서 벌을 받었다. 그래서 좀체 간하는 대신도 인제는 없게 되었다.

재상 창조리(倉助利)는 이 일을 근심하다 근심하다 못해서 마지막에 다시 한번 왕에게 간을 하여 보기로 하였다. 그러고 어떤 날 왕전에 가서 읍하고 눈물을 머금고 간하였다―

『상감. 지금을 어떤 대로 아십니까? 천재가 심한 데다가 또한 백성까지 피폐한 이때를 상감은 모르십니까? 그다지 바쁘지 않은 역사는 좀 미루고 나라를 기름지게 하는데 힘을 좀 돌렸으면 좋을까 하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창조리를 한참 노려 보셨다―

『그럼 내가 하는 일이 잘못이오?』

여기서 창조리는 대담하여 대답하였다―

『잘못이올시다. 잘못이올시다. 다시 생각할 여지가 없이 잘못이올시다』

『무엇이 잘못이오?』

『상감이 계시고 백성인 것과 마찬가지로 또한 백성 없이야 어찌 상감이 계시겠습니까? 백성이 마음놓고 살게 된 뒤에야 나라이 있고 나라이 있은 뒤에야 임군이 있을 것이 아닙니까. 지금 보건대 이 나라는 백성이 살기가 어렵고 백성은 어려움을 피해서 다른 나라로 연하여 도망을 가오니 이러고 어찌 나라가 부지되겠으며 흥왕하겠습니까. 상감! 굽어 보소서. 상감을 밝으신 지혜가 웨 끄리셨습니까. 굽어 보소서.』

창조리는 눈물을 흘리면서 간하였다. 그러나 왕의 귀에는 이 간이 들어가지를 않었다.

『그러면 내가 잘못 한다는 말이구료. 내가 잘못 한다는 말이구료』

두어 번 같은 말을 반복하시던 왕은 벌떡 몸을 일으키셨다. 그러고 문을 손으로 가르키셨다―

『나가오. 썩 물러가오. 왕이 잘못해? 왕의 하는 일은 하늘의 하는 일― 국상은 혼빠진 말을 하오? 썩 물러가오. 다시는 내눈 앞에 보이지 말으우』

이 왕의 노염에 창조리는 더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잠시 더 읍하고 서 있다가 어전을 물러 나왔다. 나올 때는 창조리의 마음에는 인젠 할 수 없다는 념까지 생겼다.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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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전을 물러나온 창조리는 생각하였다. 이대로 지나다는 나라는 단정코 망할 것이다.

왕의 완미한 마음과 성품은 도저히 고칠 수가 없을 것이다. 왕의 성미가 고쳐지지 않는 한에는 지금의 이 정치가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이 정치가 그냥 계속되면 백성이 부지하지를 못할 것이다. 백성이 부지하지를 못하면 외환이 생기거나 내란이 생겨서 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이다.

이 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이다. 그러고 이 나라를 망하게 만드는 사람은 오직 왕이다. 왕 때문에 나라는 망한다.

나라이 있고 왕이다. 나라이 없는 뒤에야 무슨 왕이랴.

그러면 이 장차 나라를 망케 할 왕을 폐하여야겠다. 나라를 구원하고 지금 이 피폐한 나라로 하여금 다시 이전의 고구려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 왕을 폐하여야 할 것이다.

창조리는 드디어 결심하였다.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이 곤경에서 건져내기 위하여 포학한 임군을 폐하기로 작정하였다.

이리 하여 폐왕하기는 결심하였지만 폐왕한 뒤에는 이 사직을 뉘게 맡길가. 지금 왕자들은 아버지를 닮어서 역시 성미가 좋지 못하다. 나라에는 하로도 왕이 없어서는 안 될 터인데 뒤를 맡을 만한 사람이 언뜻 생각나지 않었다. 현왕을 폐하는 이상에는 뒤에 좋은 임군을 모셔와야 할 것이지 그렇지 못하면 폐왕한 보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누구? 지금 엊지럽고 피폐한 고구려에 군림하여 능히 쓰러져가는 사직을 다시 붙들고 쇠약한 나라를 다시 일으킬만한 능력과 지배력을 가진 이는 누구?

힘뿐으로도 못할 일이다. 어진 정치로서 백성을 어루만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어짐 뿐으로도 또한 못할 일이다. 이 쓰러져가는 사직을 붙들만한 힘이 또한 있어야 할 것이다.

힘과 어짐 뿐으로도 또한 못할 일이다. 세상물적에 통해서 백성이 지금 얼마나 곤핍한지를 잘 아는 이라야 할 것이다.

힘과 어짐과 밝은 눈― 이 세 가지를 아울러 가진 이라야 지금 이 난국을 구해낼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어디서 구하나?

그때 문득 창조리의 머리에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수년 전 왕의 해를 피하여 어디론가 종적을 감춘 을불 공자― 그이며는 이 난국에 처하여 곤핍한 백성을 어루만지며 한편으로는 또한 어지러운 정치를 바로잡을 듯 싶었다.

아직도 기억에 넉넉히 남어 있는 그이의 놀라운 참을성 어진 품성. 남의 아픔을 알아보는 착한 마음. 아모런 일을 당할지라도 낭패하지 않는 천성 너그러운 성질― 이런 것들은 넉넉히 지금의 꾸려의 사직을 다시 붙들만 하엿다.

그 위에 그이는 아직 생존하였다면 그새에 숱한 경력을 겪어서 많은 인정과 몰인정을 보았을 것이며 이 어지러운 나라의 어른이 되기에는 가장 정당한 부일 것이다.

이리하여 창조리는 을불을 모셔다가 위에 오르게 하려고 생각하였다.

창조리는 몰래 조불(組佛)과 소우(蕭友)의 두 사람을 불렀다. 그러고 국내 국외를 편답하여 을불 공자를 만나서 서울로 모셔 오기를 명하였다.

그새 많이 변하기는 하였겠지만 그래도 이전의 모습이 온전히 없어지지는 않었을 것이매 만나기만 하면 알듯 하엿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을불 공자를 찾으러 이리저리 돌아다니면 모습을 말하여 알아보고 만나는 사람마다 얼굴을 유심히 보고 하였다. 그러다가 비류강ㅅ가에서 소금장사를 하는 을불을 만난 것이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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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은 두 사람의 말을 들은 뒤에야 비로소 을불은 마음을 놓았다. 그러고 두 사람에게 자기가 을불이라는 것을 언명하였다.

두 사람은 다시 절하였다―

『공께서는 귀경하셔서 하로 바삐 보위에 오르셔서 기울어져 가는 사직을 받들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에도 을불은 승낙하였다.

세 사람은 서울로 향하여 길을 떠났다. 고목에도 꽃이 핀다는 말이 있다. 소금장사로 늙어 죽을 줄 알았던 을불에게도 꽃필 날이 이른 것이다.

창조리는 을불공을 반가히 맞았다. 그러고 오백(烏陌) 남씨의 집에 때가 이르기까지 을불공을 숨겨 두었다.

왕통을 이을 분도 모셔 왔다. 인제는 하로 바삐 폐왕을 하여야 할 것이다.

창조리가 폐왕할 날만 기다리고 있을 대에 어떤 날 왕은 후사(候山)에 사냥을 가시기로 하였다.

이것이 천재一우의 좋은 기회였다. 창조리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미리 뜻을 같이 한 대신들과 의논을 잘 하였다. 그러고 이날 거사를 하기로 약속하였다.

창조리는 왕을 배행하여 후산으로 사냥을 갔다.

왕은 바야흐로 이를 비극을 모르시고 유쾌히 산과 들로 사냥을 돌아 다니셨다. 그러고 몇 마리의 짐승을 잡으신 뒤에 피곤함을 삭이시려 행궁으로 돌아오셨다.

행궁에서 왕이 피곤한 몸을 침상에 눕히시고 쉬일 동안에 창조리는 몰래 빠져서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미리부터 조불과 소우와 그밖 몇몇 사람이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창조리는 눈짓으로 소우 조불 등 사람을 데리고 행궁 밖으로 나왔다. 거기는 왕께 배종하여 온 무리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고 그 가운데는 창조리와 뜻을 같이 한 사람들도 숨어 있는 것이었다.

거기 나온 창조리는 갈닢 하나를 뜯어서 자기의 머리에 꽂았다. 그러고 무리들을 향하여 고함쳤다―

『누구던 나와 일을 함께 하랴는 사람은 내가 한 모양대로 하오. 나와 뜻을 달리하는 사람은 자리를 피하오』

미리 창조리에게 말을 들었던 사람들은 얼른 갈닢을 뜯어서 각각 제 머리에 꽂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영문을 모르고 눈이 둥그렇게 되어 사면을 살피고 있었다. 무슨 심상치 않은 일에 그들은 우들우들 떨었다.

창조리가 다시 웨쳤다―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서 폐왕을 하고 왕의 조카님 되시는 을불공을 상감으로 모시려는 일이오. 여기 찬동하는 이는 나와 같이 하시오 반대하는 이는 이곳을 떠나 가시오』

무리들도 인제사 그 뜻을 알 모양이었다. 그들도 빨리 갈닢 하나씩을 뜯어서 머리에 꽂았다.

그들에게는 웨 반대가 있으랴. 반대가 없을 줄을 창조리도 잘 안 배였다. 이 어지럽고 괴로운 시대는 그들에게도 또한 아프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역시 현왕에게 불만을 품고 때만 기다리고 있던 무리인지라 창조리의 말에, 『나도』 『나도』 하고 모도 찬동을 하였다.

여기서 창조리는 또 입을 열었다―

『여러분의 뜻을 알겠소. 그러면 지금 왕께서는 곤한 몸을 쉬시는데 왕을 그 방에서 못 나오시도록 모시고 한편으로는 신왕 을불공의 등극을 하로 바삐 착수해야겠소』

무리들은 여기도 역시 찬동한다는 뜻으로 모도들 손을 들어서 저었다.

이리하여 창조리의 계획은 틀림없이 진행되었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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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리는 무리들을 데리고 행궁으로 들어가서 왕을 딴방에 가두었다.

『이게 웬짓이냐』고 놀라시는 왕에게 창조리는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백성의 뜻이올시다』 할 뿐이었다.

딴방에 갇히신 왕은 한참은 어쩔 줄을 모르시고 문을 열라고 호령을 하셨으나 드디어 당신의 잘못을 아시고 그것을 뉘우치신 모양이었다.

『아아. 왕의 실수로다』

방안에서 왕의 이런 탄식하는 소리가 나왔다.

후에 열고 보매 왕은 스스로 그 목숨을 끊으신 것이었다.

왕의 두 아들도 이 일을 알고 자기네가 그냥 부지할 수가 없음을 깨닫고 모도 자기 손으로 자기 목숨을 끊었다.

창조리의 一행은 왕을 가두고 一변 오으로 달려가서 을불공을 모셔내었다.

을불공이 새로이 왕이 되셨다는 말이 퍼지매 을불공이 궁전으로 들어가는 길 좌우편에는 새 왕을 환영하는 무리들로 송곳 세울 자리도 없었다.

뭇 백성과 신하의 환영 아래 소금장사 을불은 궁으로 들어가서 왕위에 오르니 그이가 곧 미천왕(美川王)이시다.

고구려의 역사를 펴볼 때에 가장 부강한 세력을 지은 것이 이 미천왕의 때의 일이니 일찌기 머슴이며 소금장사로 민간에 돌아 다니시며 인정 풍속을 골고루 다 보시고 쓰고 단 일을 다 맛보신 일이 있는 분이라 그 정치는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나라와 백성을 잘 되게 하기 위하여 많은 경험ㅅ 가운데서 골라내신 것이라 그렇듯 부강하게 된 것이다.

일환아―.

아버지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봉산왕과 봉산왕의 조카님 되시는 미천왕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봉산왕은 그 혈족을 사랑하실 줄을 몰랐다. 봉산왕은 당신의 삼촌을 죽이셨다. 아우를 죽이셨다. 또한 조카를 죽이려 하셨다.

혈족을 사랑할 줄을 모르는 사람은 남을 사랑할 줄을 모른다. 당신의 삼촌이며 동생이며 조카를 사랑할 줄을 모른 이가 어떻게 남― 신하와 백성을 사랑하였겠느냐

백성에게 잔혹한 왕이었다. 신하에게 인심 잃은 왕이었다.

알뜰한 왕위를 혹은 삼촌이나 동생이나 조카가 엿보지나 않을까. 아아. 재물이나 권세가 무엇이관대, 봉산왕은 그것 때문에 자기의 혈족까지 원수로 보았나 의심타 의심타 못해서 혈족을 죽이기까지 거기 애착심이 강하였나.

혈족을 몰라본 봉산왕은 또한 백성들을 몰라 보았다. 그 때문에 봉산왕은 백성의 존경을 잃고, 그 결과로 마지막에는 그렇듯 알뜰하든 위까지 잃으신 것이다.

일환야―.

너는 여기서 생각해 보아라. 그때 봉산왕이 창조리 때문에 위를 잃지 않으시고 끝끝내 위에 계셨다 할지라도 후세의 비평은 왕을 옳다 못할 것이다.

一세의 안락과 고생을 말함이 아니다. 봉산왕이 끝끝내 위에 계셨다 할지라도 그이는 좋은 임군은 못되신다. 혈족을 사랑할 줄을 모르는 이가 어찌 좋은 임군이 될 것이냐.

일환아―

너는 혈족을 사랑해라. 비록 네 혈족 가운데 너를 미워하고 박해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너는 그를 사랑해라. 사랑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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