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네/빛나는 우물
1
[편집]일환아
아버지는 이 위에 고구려와 백제의 기업을 말하였다. 그러면 이번은 또한 신라(新羅)의 기업을 말하여야겠다. 당시 고구려와 백제와 정립하여 서로 세력을 다루었을 뿐 아니라 그 세 나라가 거의 전후하여 일어나서 가장 나종까지 서 있었으며 지금도 경상도 경주(慶州)에는 가장 많은 유물(遺物)을 보여서 당시의 찬란하던 문명을 우리에게 자랑하는 신라의 기업을 말하겠다.
옛날 진한(辰韓)에는 여섯 촌이 있었다.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에는 알평(謁平)이라는 이가 어른이었다. 표암봉(瓢巖峰)에서 탄생하셨다. 그 성씨는 양부(梁部)로서 이씨(李氏)의 조상이었다.
돌산 고허촌(突山高墟村)은 소벌도리(蘇伐都利)라는 이가 어른이었다. 형산(兄山)에서 탄생하였다. 사량부(沙梁部)로서 정씨(鄭氏)의 조상이었다.
무산 대수촌(茂山大樹村)은 구려마(但禮馬)라는 이가 어른이었다. 이산(伊山)에서 탄생하였다. 점량부(漸梁部)로서 손씨(孫氏)의 조상이었다.
지산 진지촌(觜山珍支村)은 지백호(智伯虎)라는 이가 어른이었다. 화산(花山)에서 탄생하였다. 본피부(本彼部)로서 최씨(崔氏)의 조상이었다.
금산 가리촌(金山加利村)은 지타(祇沱)라는 이가 어른이었다. 명활산(明活山)에서 탄생하였다. 한기부(韓岐部)로서 배씨(裵氏)의 조상이었다.
명활산 고야촌(明活山高耶村)은 호진(虎珍)이라는 이가 어른이었다. 금강산(金剛山)에서 탄생하였다. 습비부(習比部)로서 설씨(薛氏)의 조상이었다.
전한(前漢) 지절(地節) 원년 三월 초하롯날 이 여섯 촌의 어른들은 모두 자제들을 데리고 알천(閼川) 강가에서 봄놀이를 하였다.
알평(謁平)은 그 놀이터인 알천의 통치자로서 따라서 그 놀이의 좌장격으로 있었다. 그이가 문득 이런 말을 끄내었다.
『우리들이 제각기 한 촌씩은 다스리고 있지만 우리를 한꺼번에 모아서 다스릴 분이 또한 우리 위에 있어야 할 것이 아니오. 우리들은 제각기 잘 자기촌을 다스리노라고 하기는 하지만 사람은 十인 十색이라 이촌과 저촌에 통一이 없구료. 그러니깐 우리는 우리보다도 윗어른을 한 분 모셔다가 우리 여섯 촌의 통一을 도모해야겠소』
모두가 가까운 새였다. 모두들 슬기로운 분이었다. 이 의논에 반대할 사람이 없었다. 비록 제 촌은 제가 잘 다스린다 할지라도 요땅과 조땅이 서로 다스리는 사람이 다른지라 이 땅에서 좋다 하는 일이 저 땅에서는 숭보이고 저 땅에서 좋다 하는 일이 이 땅에서 숭보이고 도무지 통一이 되지 않었다. 그래서 다들 그런 점을 근심하고 있던 중이었다.
알평의 말에 그들은 모두 찬성을 하였다. 그리고 거기서, 즉시로 의논이 맞아서, 그 자리에서 윗어른을 모셔 오기 위하여 그이를 구하려 봄놀이를 내어 던지고 길을 떠났다.
여섯 어른은 높은 산에 올라갔다. 그러고 거기서 사면을 두리두리 살펴보았다.
『저게 뭐요?』
문득 한 어른이 부르짖었다.
그 부르짖음에 다른 모든 어른도 뜻하지 않고 그리로 머리를 돌렸다.
거기는 저편 남쪽 양산(楊山) 밑 우물가에서 무슨 이상스러운 광채가 하늘로 뻗히고 있었다. 그 빛나기 번개불 같고 밝기는 해와 같고 아름답기는 무지개와 같은 괴상한 빛이 땅에서 하늘로 연닿았다
그러고 그 앞에는 눈같이 흰 한 마리의 말이 꿇어 앉아서 무엇을 향하여 절하고 있었다.
2
[편집]여섯 어른은 이상히 여겼다. 그러고 그리로 가 보았다.
그들이 가까히 가매 아직껏 거기서 무엇을 보고 절하고 있던 흰말은 하늘로 향하여 날아가고 거기는 자짓빛 커다란 알이 하나 놓여 있었다.
이것은 너무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서로 의논한 결과 그 알을 깨틀어 보매 알 속에서는 한 아름다운 사내아이가 나왔다.
알에서 나온 어린애를 동천(東泉) 물에 정히 씻으매 그 몸에서는 광채가 나고 뭇 새와 짐승들이 와서 춤추고 노래하고 하늘이 진동하며 햇빛이 더 명랑하여졌다.
이런 여러 가지의 일로 여섯 어른은 이 애가 예사 애가 아님을 알고 서로 잘 의논한 결과 혁거세(赫居世)라 하는 이름을 바치고 성씨를 박(朴)이라 하였다. 대개 혁거세라 함은 빛으로 세상을 다스린다 하는 뜻이요 그 애의 나온 알이 바가지와 같았으므로 박씨라 한 것이다.
그 애는 나오면서 첫날로 『거슬감』이라는 말을 하였으므로 거슬감(居瑟邯)이라는 위호를 바치어서 그로부터 그 땅에서는 임군을 거슬감이라 하였다.
여섯 동리의 어른들은 그들을 다스릴 사람으로 거슬감 박혁거세를 하늘에게 얻었다. 그러나 또한 거슬감의 뒤를 이을 사람이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사람을 얻기 위하여서는 혁거세에게 좋은 배필이 없으면 안될 것이다.
『하늘이 우리에게 통치자를 주신 이상에는 또한 어진 배필을 반드시 주실 것이외다. 우리들은 그이를 찾아 봅시다』
그들은 장래의 왕을 얻은 뒤에 또 장래의 왕비를 얻으려 떠났다.
소벌도리의 관하 사량리(沙梁里)에 있는 알영정(閼英井)이라는 우물가에 한 계룡(鷄龍)이 나타나서 왼편 옆구리로 처녀 하나를 낳았다. 보매 용자가 맑고 아름다우나 단지 그 입술이 닭의 주둥이와 같은 것이 흠이었다.
여섯 어른은 그 처녀를 월성(月城) 북천(北川)에 멱감겼다. 그랬더니 그 처녀의 유一의 흠이던 입술의 부리가 떨어져 없어지고 세상에도 아름다운 처녀로 변하였다.
북천은 발천(撥川)이라 이름을 고쳤다.
하루 동안에 훌륭한 임군과 왕비를 얻은 여섯 어른은 여간 기뻐하지 않았다. 이어 그들은 남산 서쪽 기슭에 한 커다란 궁전을 지었다. 그리고 두 거륵한 애를 거기 모시고 양육에 힘을 썼다.
전한(前漢) 원봉(元鳳) 五년에 이 거륵한 두 애는 열세 살이 되었다. 여기서 여섯 어른은 그 애를 즉위하게 하고 처녀로서 왕비를 삼었다.
나라의 이름은 서벌(徐伐) 혹은 서라벌(徐羅伐) 혹은 사로(斯盧) 혹은 사라(斯羅)라 불렸으니 지금 『서울』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서벌 나라는 후에 차차 변하여 신라(新羅)라 부르게 되었다. 또한 계림(鷄林)이라고도 불렀다.
이리하여 등극하신 왕은 하늘이 이 땅을 위하여 주신 사람인지라 잘 나라를 다스리셨다. 땅이 기름지고 바다에는 해산물이 많으며 백성 또한 인후한 이곳에서 거슬감(왕) 박혁거세는 六十一년 동안을 나라를 다스리셨다. 그러고 마지막에 승천을 하셨다.
승천하셨던 몸은 일헤만에 다섯 조각에 나서 땅에 내려왔다. 나라 사람들은 그 몸을 다섯 군데에 나누어서 묻고 다섯 무덤을 만들었다.
왕비도 또한 왕과 날을 같이 하여 승하하였다.
- × ×
이상이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타나 있는 신라의 건국의 전말이다. 이리하여 신라라는 나라가 생겨났다.
3
[편집]혁거세 거슬감이 승천하신 뒤를 이어서 신라에 군림하신 이는 남해(南解) 거슬감이시다. 이이는 또한 차차웅(次次雄)이라고도 하였으니 차차웅은 자충(慈充)이라고도 하여 다 귀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남해 차차웅께서는 혁거세 거슬감과 알영부인의 새에서 탄생하신 분으로 운제(雲帝) 부인을 왕비로 맞아들이고 전한(前漢) 평제(平帝) 원시(元始) 四년 갑자년에 등극을 하셔서 二十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시다가 지황(地皇) 四년 갑신에 승하하였다. 그러고 남해 차차웅의 뒤를 이어서 보위에 오르신 이는 남해 차차웅의 아드님이 되시는 노례(弩禮) 이사금(尼師今)이시다.
이 이사금이라는 말도 또한 거슬감이나 차차웅과 마찬가지로 윗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니 마립간(麻立干)이라는 말과 다 함께 그때의 임군을 존칭하는 말이다.
신라 역대 왕 가운데 거슬감이라 부른 이는 박혁거세 거슬감 한 분 뿐이다. 차차웅이라 부른 이는 남해 차차웅 한 분 뿐이다. 그 뒤 이사금이라 부른 이가 열여섯 왕이섰다. 마립간이라 부른 이가 네 왕이었다. 그 뒤부터는 한나라 당나라 등의 문명을 수입하면서 『왕』이라 부르게 되었다.
남해 차차웅이 승하하시고 그 아드님 되시는 노례라는 이가 위에 오를 차례가 이르렀다.
그러나 그이에게는 탈해(脫解)라 하는 매부가 있었다. 노래는 매부에게 위를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뜻을 매부에게 말하였다.
매부는 또한 위(位)를 받지 않으려 하였다. 당연히 받을 사람을 두고 자기가 받는 것은 도리에 어그러짐이라 하였다. 이리하여 서로 왕위를 밀다가 마침내 매부는 이런 의견을 끄냈다
『속담 말에 덕이 높은 사람은 잇발(齒牙)이 많다 하는데 그러면 우리 가운데 누구가 잇발이 많은가 비교해 보고 잇발 많은 이가 차차웅이 되기로 합시다』
『그러면 그럽시다』
이리하여 처남과 매부는 각각 한 덩이의 떡을 준비하여 씹어서 그 자리를 세어본 결과 노례가 잇발이 많은 것이 증명되었으므로 먼저 위에 올라가고 그 다음에 탈해가 오르기로 하였다.
임군을 「이사금」이라 부르게 된 것은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 잇금 많은 분이라는 뜻이다. 노례 이사금이 등극을 하신 것은 유성공(劉聖公) 갱시(更始) 원년 계미였다. 노례 이사금이 등극을 하신 뒤에 나라의 형태는 점점 자리가 잡혔다. 이전의 여섯 부(部)의 호를 고치시고 각각 그 성씨도 주었다. 노례 이사금은 지혜 많으신 분으로 일일히 백성 새를 순시하시면서 그 지나는 형편을 살펴보시고 모든 것을 편리하게 하도록 주의하셨다. 농사짓는 온갖 농구 보섭 이런 것들도 이 왕의 대에 처음으로 생겨난 것이다.
왕은 여름에 지독히 더움을 보셨다. 여름을 좀 갈라 두었다가 겨울에 섞고 겨울을 좀 갈라 두었다가 여름에 섞으면 두 철이 다 좋을 것이어늘 여름은 너무 덥고 겨울은 너무 추웠다.
그런데 여름은 왔다가 자최 없이 돌아간다. 거기 반하여 겨울은 얼음이라 하는 것을 남겨두고 간다. 그 겨울의 자최인 얼음을 좀 보관하여 여름에 섞어보아서 여름을 서늘ㅎ게 할 방책으로 왕은 빙고(氷庫)를 지으라 명하였다.
사람이 타고 다닐 수레를 만든 것도 이 왕의 떼였다.
잇발이 많으신 이 왕은 분명히 지혜도 많으셨다. 노례 이사금은 많은 업을 후년에 남기시고 중원(中元) 이년 정사에 승하하셨다. 그 뒤를 탈해 이사금― 광호제(光虎帝)가 등극하셨다.
4
[편집]신라 제二세 남해 차차웅의 때의 일이다.
가락(駕洛)이라는 나라 바다가에 한 커다란 배가 와서 닿았다.
그 나라 수로왕(首露王)은 이 소문을 듣고 신하들을 거느리고 음악을 잡히면서 배를 맞으려 나갔다. 그랬더니 이 배는 왕의 환영을 모르는 듯이 방향을 돌려서 다른 데로 가버렸다.
가락국을 떠난 배는 흐르고 흘러서 게림 동하 서지촌(西知村) 아진포(阿珍浦)에 와서 멎었다.
아진포 바닷가에 아진의선(阿珍義先)이라 하는 노파가 살고 있었다.
어떤 날 노파가 보매 바다 가운데 많은 까치들이 노날고 있었다. 노파는 이상히 생각하였다. 본시 근처 바다에는 들어난 바위가 없어서 까치의 쉬일 자리가 없는지라 바다에 까치가 노나는 일이 없었다. 그러커늘 오늘따라 웬 까치가 이렇게 많이 노나는 것이었다.
이상히 생각한 노파는 바닷가까지 나가 보았다. 그러매 거기는 웬 낯설은 커다란 배가 하나 머물러 있었다. 까치들은 그 배 위에서 노나는 것이었다.
노파는 더욱 이상히 생각하고 작은 배를 타고 그 배까지 저어 가보았다. 그 배 위에는 길이가 스무자나 되고 넓이 역시 열석 자나 되는 커다란 궤가 하나 놓여 있는 뿐, 다른 짐도 없고 사람도 없었다.
보는 것 보는 것이 차차 더 이상스런 일뿐이었다. 잠시를 이 이상한 궤 앞에 서 있던 노파는 그 궤짝을 열어 보려고 배를 해안으로 끄을어다가 큰 나무에 매고 하늘께 향하여 기도를 드린 뒤에 궤문을 열었다.
궤 안에서 나온 것은 금은도 안이요 보화도 아니요 한 단정한 사내애였다. 그 애의 시중을 드는 두세 사람의 하인도 함께 나왔다.
다른 궤를 열고 보니 거기는 세상에 진귀한 보배가 그득이 들었다.
노는 이 일이 꿈과 같았다. 너무도 이상하였다. 한참은 영문을 몰라서 눈만 꺼벅거리며 서 있었다.
한참 뒤에 새 정신을 회복한 노파는 궤안에 있는 주종을 제집으로 데리고 가서 잘 대접하였다.
주종은 일헷 동안을 노파의 집에 묵었다. 그러고 일헤가 지난 뒤에 비로소 자기의 근본을 말하였다.
궤에서 나온 소년은 본시 용성국(龍城國) 애었다. 용성국에는 스물여듧 용왕이 있었다. 그 용왕들은 모두 사람으로 환생하여 세상에 나왔다. 사람의 세상에 태어난 용왕들은 모두 한 나라의 임군이 되었다. 본시 종자가 용인지라 영리하고 어질므로 착한 임군으로 백성의 흠앙을 받고 하였다.
이 소년의 아버지도 어떤 나라 임군이었다. 적녀국(積女國) 공주를 모셔다가 왕비로 삼으섰다.
어지신 왕이었다. 현철한 왕비였다. 다른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오래 지나도록 왕자를 보지를 못하였다. 여기서 왕과 왕비는 하늘께 왕자 주시기를 빌었다. 七년 동안을 빌었다. 그리하여 왕비는 드디어 태기를 보게 되었다.
그러나 만삭이 되어서 왕비의 몸에서 나온 것은 옥동자가 아니요 한 커다란 일이었다.
사람이 알을 낳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다. 왕은 뭇 신하와 의논하신 뒤에 이 바래고 또 바랜 뒤에 생겨난 알을 상자에 넣어서 종과 많은 재보도 함께 붙여서 배에 싣고 「연분있는 곳으로 가거라」고 떠나 보내신 것이다.
그 배는 창망한 바다에 사공도 없이 떠나갔다. 그러매 웬 붉은 용이 물 가운데서 나타나서 배 좌우를 보호하면서 물결에 밀리고 밀리어서 여기까지 밀려온 것이다.
5
[편집]소년은 일헷 동안을 노파의 집에 묵어 있었다. 일헤가 지난 뒤에 소년은 종들을 데리고 토금산(吐金山)에 올라가서 거기다가 단을 하나 무었다. 그리고 일헷 동안 이 산마루에서 사면을 살펴서 능히 거할만 한 곳을 찾었다.
소년의 눈은 마침내 한곳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초승달 모양으로 생긴 한 아름다운 봉오리었다.
소년은 거기를 있을 곳으로 삼으려 그곳으로 찾아갔다. 그랬더니 거기는 고공(瓠公)이라는 사람이 벌써 저택을 짓고 살고 있었다.
소년은 할일 없이 돌아서려 하였다. 그러나 일헤를 둘러 보아서 얻어내인 다만 한 군대의 마음에 맞는 땅인지라 발이 돌리켜지지를 않았다.
아무리 마음에 드는 땅일지라도 이미 남의 것이 된 이상은 할 일이 없었다. 그래도 소년은 이 땅 뿐은 꼭 제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 땅과 이 저택밖에 다른 곳에는 절대로 가기가 싫었다.
남의 땅 남의 집이나, 또한 놓기 싫은 이 땅 이 집을 제집으로 만들 요량으로 어떤 날 소년은 계교를 내어 몰래 그 집 근처에 많은 술을 묻였다. 그런 뒤에 이튿날 모른 체 하고 그 주인 고공을 찾았다.
소년을 맞은 고공은 어떻게 찾느냐 물었다. 거기 대하여 소년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집은 본시 우리 조상이 계시던 집인데 얼마를 뷔여 두었다가 지금 와 보매 당신이 이 집에 살으니 대체 웬일이오?』
하고 정색하여 물었다.
『아무리 나이 어리기로서니 그게 무슨 말이오? 이 집은 내 아버님이 지으신 집인데 당신 조상의 집이라니 웬 말이오?』
『거짓말 마시고 당장에 가족을 데리고 이 집서 나가거나 하시오. 증거까지 있소』
『증거가 무슨 증거요』
『증거까지 있으니 나가기나 해요. 이 집은 오늘부터 내가 살레요』
소년과 고공은 한참을 다투었다. 소년은 미리 계획한 일이매 끝까지 제집이라 우겼다. 고공도 당당한 제집인지라 역시 지지 않았다. 이리하여 다투고 또 다투던 그들은 그 흑백을 가르기 위하여 맞잡고 관청으로 갔다.
관청에서 두 사람의 말을 다 들은 장관은
『아무리 다투어도 알 수가 없으니 제각기 증거를 말해라』
하였다. 여기서 소년은 의기양양히
『예. 우리 조상은 대장장이로 그 집에서 오래 대장장이 노릇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집을 그냥두고 다른 고을에 좀 가서 살다 오니까 저 사람이 그 집을 가로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집 근처를 파보면 아마도 대장 때의 숱이 묻히어 있을 것이올시다』
고 하였다.
고공은 그럴 리가 없다고 항변하였다. 관청에서는 소년의 말을 그럴 듯이 여기어 사람을 시켜서 그 집 근처를 파보게 하였다. 그러매 아니나 다를까 근처에서는 많은 술이 나왔다.
소년의 계획은 들어맞았다. 고공은 애매하게 제집을 남에게 빼앗기고 쫓겨났다.
소년은 남의 집을 뺏아 가지고 그 집에 거처하였다. 영리하고 지혜 많고 장대한 소년은 차차 남의 눈에 띄었다. 기록에 의지하건대 그의 죽은 뒤에 그 뼈를 재어보매 주위가 석 자 두 치요 길이가 아홉 자 일곱 치라 하였다.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때의 신라 차차웅되시는 남해가 소년의 영특함을 들으시고 불러 보셨다.
불러 보시매 듣는 바와 틀림이 없었다. 그래서 당신의 맏따님 아니공주(阿尼公主)로 짝무어서 이 소년을 사위로 삼으셨다.
탈해(脫解)가 즉 당시의 그 소년이었다.
6
[편집]노례 이사금이 승하하신 뒤를 이어서 중원(中元) 二년 정사 六월에 노례 이사금의 매부되는 탈해가 이사금의 위에 오르섰다.
탈해 이사금은 二十三년 동안 위에 계시다가 건초(建初) 四년 기묘에 승하하섰다. 그의 죽음은 처음은 소천(疏川) 언덕에 묻었다가 그 뒤에 다시 그의 뼈를 새기어서 궁중에 안치하였다가 또다시 동악(東岳)에 안치하였다.
이러한 많은 신화(神話)의 시대를 지나며 뒤를 이어 생기는 어진 임군들을 얻어서 신라는 점점 강하여졌다. 처음 한동안은 고구려와 백제와 정립하여 세 나라이 세력을 다루고 있었지만 마지막에는 백제와 고구려까지 들여 삼켜서 대신라를 이루고 그 놀라운 문명은 멀리 바다를 건너서 일본에까지 수출한 것이다.
지금도 경상도 경주를 여행을 하는 자, 누구나 아직도 남아있는 당시의 놀라운 문명을 보고 탄복하지 않는 자가 있을까. 불국사(佛國寺)의 정교로운 돌탑(石塔)과 층게들이며 석굴암(石窟庵)의 웅대한 축조(築造)며 그 안의 귀신을 울릴만한 새김 새김이며 봉황대(鳳凰臺) 종(鍾) 왕관(王冠), 칼, 거울, 부체, 그릇, 등등 아직도 남아있는 그때의 자취를 보고 경탄하지 않을 자가 있으랴.
나라를 세운 이래 九백 九十二년 동안, 왕으로 쉬인 여섯 분, 마지막의 왕이신 금부대왕(金傅大王)께서 세궁 역진하여 그때 새로 일어난 고려(高麗) 태조 왕건(王建)에게 나라를 바치시기까지 빛나고 영광스럽든 역사는 박혁거세에서 시작된 것이다.
금부왕이 고려 태조에게 항복을 하시고 고려 서울로 가실 때 왕의 짐은 三十리를 연하였다. 얼마나 가멸었던 나라이냐.
신라가 세궁역진하여 그 나라를 들어서 신흥한 고려에게 바칠 때에 신라 백성들의 통곡성 때문에 동해에는 수 없는 고기들이 놀라서 죽어 떴다 한다. 얼마나 크던 나라이냐.
신라라는 나라이 없어지고 그 대신 고려의 한 고을 경주로 변할 때에 많은 백성들은 이것을 아프게 여기고 굶어서 스스로 그 목숨을 끊었다. 얼마나 자리 잡혔던 나라이냐.
신라는 과연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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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환아. 아버지는 위에서 세 나라의 건국의 역사를 말하였다.
북부여에서 북부여 왕자들의 해를 피코저 졸본부여로 도망하여 와서 거기 나라를 세운 고주몽의 이야기― 그것이 고구려의 시초다.
주몽의 세 아들 가운데 맏아들 유리로 하여금 아무 거리낌 없이 왕위를 잇게 하려고 스스로 몸을 감추어 다른 나라로 도망해 가서 거기 새로운 나라를 세운 온조의 이야기― 그것이 백제의 시초로다.
진한 땅의 여섯 촌의 어른이 의논한 결과 여섯 촌을 통괄하여 다스릴 분을 구하고저 찾아서 어떤 우물가에서 모셔다가 왕위에 올린 혁거세의 이야기― 이것이 신라의 시초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