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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네/형과 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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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도
형과 아우
저자: 김동인

고구려를 건설하신 동명성왕이 그곳 추장의 둘째 딸을 왕비로 맞아서 두 왕자를 보셨다. 형은 비류(沸流)요 아우는 온조(溫祚)였다.

여기서 만약 다른 고장만 안 생기면 비류는 당당한 고구려의 태자요 장래 고구려의 임군의 위에 올라갈 몸이었다.

그런데 부여에서 웬 소년이 하나 왕을 찾아왔다. 그 소년은 왕이 아직 주몽이라 일컬을 때에 장가 들어서 난 애였다.

그 애가 오면서 애는 곧 이 나라의 태자가 되었다.

그러나 소년들의 마음은 물과 같이 맑았다. 소년의 마음에는 의심이라 하는 것이 없었다. 새로 뛰처 나온 태자 유리는 이 뜻밖엣 두 동생을 매우 사랑하였다. 두 동생은 또한 새 형을 극진히 공경하였다.

새로 맺어진 세 형제는 늘 서로 손목을 이끌고 산으로 벌로 놀려 다녔다.

『형님 저 나는 새를 넉넉히 쏘겠어요?』

『암. 쏘구 마구』

그러고 유리는 활을 메어서 새를 쏘는 것이었다. 그런 뒤에는 두 동생에게 새를 맞히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어미가 다른 삼형제였다. 더구나 하나는 태자의 위를 빼앗은 소년이요 하나는 앗기운 소년이었다. 그러나 아직 야심을 모르는 순진한 소년들은 서로 의좋게 산과 벌을 놀려 다녔다. 그리고 서로 함께 밀려다니는 동안 서로 혈족으로서의 애정이 움돋았다.

유리는 외롭게 기러난 소년이었다. 비류와 온조는 귀하게 기러난 소년들이었다. 이렇게 환경이 서로 다르게 기러난 세 형제는 서로 가까히 만나게 된 뒤부터는 나날이 애정이 깊어갔다. 조그만 일이 생겨도 동생은 반드시 형에게 의논하였다. 부왕에게서 태자로서 받는 상을 형은 동생들과 나누어 가졌다. 이리하여 세 소년은 아침 깨일 때부터 밤 잘 때까지 서로 잠시를 떨어지지 않고 지냈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갔다. 그러나 형제의 의는 나날이 두터워 갈 뿐이었다.

이것을 보고 왕도 매우 기뻐하셨다. 어미가 다른 애들― 더구나 하나는 태자의 위를 빼앗은 편이요 하나는 빼앗긴 편인지라 잘못하다가는 서로 의가 상하기가 쉽겠고 의가 상하면 상서롭지 못한 일이 생길까 근심하시든 왕은 이 형제의 의좋은 모양을 보시고 흡족히 여기섰다. 처음에는 『지금은 아직 철을 몰라서 잘 지나지만 좀더 크면 상하지나 않을까』고 근심도 하여 보셨지만 장성하면서 더욱 좋게 되어가는 것을 보시고 이것은 이 나라의 흥할 징조라고 여간 기뻐하지 않으셨다.

왕은 후원에서 서로 손을 잡고 새좋게 놀며 혹은 활쏘기를 연습하는 세 형제를 바라보시고 빙긋이 미소하시고 하였다.

『형님. 형님이 보위에 올라가시면 우리를 재상으로 써 주세요』

동생이 그 영특한 눈을 치뜨며 형 유리에게 이렇게 부탁하면 형은 빙긋이 웃으며 머리를 젓는 것이었다.

『아니다. 내가 웨 보위에 올라가겠느냐. 여기 찾아올 때는 그렇게도 생각했다마는 와서 너이들이 있는 것을 보니 나는 보위에 올라갈 생각이 없다. 나는 아버님께서 아직 미천하실 때에 난 사람이요 너이는 당당한 왕자가 아니냐. 왕자를 두고 내가 어떻게 보위에 올라가겠느냐. 네가 이후에 보위에 올라가면 이 어리석은 형이나마 구박지 말고 써 다고, 이것이 부탁이다』

그러면 두 동생은 그 말을 한사히 막으려고 달려드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좋은 가운데서 삼형제는 무럭 무럭 자랐다.

이 의좋은 세 형제의 아버님,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이 문득 탈이 나섰다. 그 탈은 나날이 더하여 갔다. 인제는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도록 왕의 탈은 중하여졌다.

그 어떤 날 막내 왕자 온조는 아버지의 환후에 차도라도 있나 보고저 가만가만 아버지의 병실로 갔다.

문 밖에서 가만히 문을 열으려던 온조는 안에서 말소리가 중얼중얼 나므로 열으려던 것을 중지하고 귀를 기우렸다.

안에서는 두 사람의 음성이 들렸다. 하나는 아버지 동명왕의 음성이었다. 또 하나는 태자 유리의 음성이었다.

『아버님의 말씀이라도 그것은 못 듣겠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유리는 단호한 음성으로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은 이 거역을 듣고도 아버지가 성을 내시지 않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온화한 음성이 들렸다.

『그렇게 말할 것이 아니다』

『아니올시다』

태자는 역시 거역하였다.

『아. 유리야. 네 말도 그럴듯 해. 그렇지만 네 동생들은 아직 나이 어리고 따라서 철이며 역량이 아직 너만 못하구나. 이 나라도 이만하면 자리잡히기는 했다지만 아직도 두선두선 하지 않으냐. 이 나라의 임군이 되기는 너의 아우들은 아직 어리다』

『어려서 힘 못및는 데가 있으면 부족하나마 제가 돕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맏이가 섭정을 하고 동생이 임군이 된다는 것은 순서로 보아도 어그러지지 않느냐』

『저는 비록 나이는 위에라 하지만 저는 왕자가 아니올시다. 만약 제게 동생이 있는 줄 알았더면 저는 오지도 안했겠습니다. 뒤에 와서 동생의 자리를 빼앗는 것은― 저는 못하겠습니다. 그 애들로 말해도 영특하고 총명해서 임군의 자리에 넉넉히 올라갈만 합니다. 제가 승위를 하면 그애들이 불상하지 않습니까? 아버님. 환후가 중하신 아버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저도 가슴 아프옵니다만 이 일은 저는 도저히 못 받겠습니다』

『야, 네가 동생을 그렇듯 헤가리는 것을 보매 내 마음은 기쁘기 한량없다. 네가 내 말을 거역하지만 이런 거역은 조금도 마음 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네가 위를 동생에게 물려주면 그 애가 또한 너한테 무안할께 아니냐. 형을 두고 제가 왕이 되는 것은 그 애들에게도 무안할 노릇이로구나. 그 애들도 필시 받지 않으리라. 그러니깐 이리로 보고 저리로 보아도 네가 이 왕위를 이어야 하겠다』

『그러면 아버님. 저는 어디 멀리로 가겠습니다. 제가 어디 멀리 가기만 하면 그 애들도 무안하지 않고 위에 오를 것이 아닙니까?』

『야 유리야. 너무 고집을 부리지 말고 잘 생각해 봐라』

잠시 엿듣고 섰던 온조는 발소리를 감추어서 물러 나왔다. 그때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솟았다.

아버지와 형의 의논을 온조는 알았다. 아버지는 태자에게 왕위를 이으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태자는 (아직껏 한 번도 아버지의 말씀에 거역해본 일이 없는) 그 말씀에 복종ㅎ지 않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동생을 위하여 자는 왕위를 안 받으려는 것이다. 동생들은 왕위를 바라지도 않으되 태자는 그 영광의 자리를 동생들에게 물려주려는 것이었다. 태자에게 있어서는 지존의 자리조차 형제애 못한 것이었다.

이 극진한 사랑에 온조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거기서 소리 안나게 물러 나와서, 자기의 가운뎃형 비류를 찾으려 갔다. 가운뎃형을 찾아서 맏형님의 지극한 사랑을 말하고 그 선후책을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온조는 비류의 방에서 비류를 만났다. 온조는 고즈넉이 들어가서 형의 마즌편에 앉았다. 그러고 형을 찾았다.

『형님』

『웨 그러느냐?』

『내 말씀 한마디 할께 형님 꼭 형님의 마음에 있는 대로 말씀해 주시오』

형은 눈을 들었다. 의아하다는 듯이 아우를 훑어 보았다.

『무슨 말이든지 하려무나.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한 적이 있더냐』

『그럼 형님 대답해 주서요. 만약 맏형님이 이곳에 안 오셨더면 아버님 붕어(崩御)하시면 형님이 보위에 오를 것이지오?』

『그 말은 웨 새삼스러히 묻느냐?』

『아니, 대답부터 해 주세요』

『그게야 그럴께 아니냐?』

『그런데 말씀이외다. 맏형님이 여기 오시기 때문에 말하자면 형님은 그 자리를 앗겨우신 셈이 아닙니까?』

형은 다시 아우를 보았다.

『너 그게 무슨 말이라고 하느냐?』

『예?』

『입으로 나오면 다 말인 줄 아느냐? 듣기 싫다. 썩 물러 가거라?』

『아니, 형님!』

『듣기 싫어! 다시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했다가는 용서를 못 하겠다. 아무리 철이 없기로서니 그게 무슨 말이냐. 썩 물러가라』

노염으로 몸까지 떠는 형을 온조는 오히려 기쁜 마음으로 보았다. 그리고 다시 형을 달랬다.

『아니 말씀을 들으세요.

『…… …… ……』

『가령 말씀이외다. 이제 불행히 아버님께서 만세하시면 맏형님이 무론 보위에 올라 가실 것이 아닙니까?』

『무론이지』

형은 그냥 마당ㅎ지 않은 얼굴로 아우를 보면서 대답하였다.

『그런데 만약 맏형님께서 위에 안 오르시겠다면?』

『그럴 리가 있느냐?』

『가령 말씀이에요』

『안 오르시겠다면 억지로라도 붙들어 올라 가시도록 해야지』

『그래도 안 오르시겠다면』

『야, 온조야. 네가 대체 무슨 말을 할려고 그러느냐』

『제 말씀부터 대답해 주세요』

『네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묻는지 알고야 대답을 하겠다』

『형님 대답을 듣고야 저는 뜻을 말하겠습니다』

형은 한참을 아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런 뒤에

『그럼 난 대답을 안 하겠다』

하고 휙 몸을 돌이키고 말았다.

『형님 한 말씀만 대답하서요』

그러나 형은 대답지 않았다.

『꼭 한마디만 대답하서요』

온조는 형에게 대답을 다섯 번 여섯 번을 채근하였다. 그러나 형은 입을 굳게 닫고 대답지 않었다. 마지막에는 몹시 성난 어조로,

『시끄럽다. 내 칼이 대답을 대신하기 전에 썩 입을 닫히고 나가거라!』

고 고함쳤다.

이 호령에 온조는 와락 형에게 달려들었다. 그러고 형의 옷소매에 제 얼굴을 묻었다. 참으려야 참을 수 없는 울음이 또 나왔다. 그 울음 가운데서 온조는 안타까운 듯이 형의 소매를 잡아 흔들었다.

『형님. 어떻거면 좋겠소? 형님. 딱한 일이 생겼소,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딱한 일이 생겨서 그 의논을 하려 왔습니다』

고 말하였다.

동생의 이 의외의 행동에 형은 말을 낮후어 무슨 일이 생겼길래 이러느냐고 물었다.

거기서 온조는 형에게 대하여 아까 보고 들은 바를 말하였다.

『맏형님께서는 아버님께 형님에게 선위하시라고 권하십니다. 당신은 어떤 일이 있던지간에 임군의 자리에는 안 오르시겠다고 합니다. 이 일을 대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비류는 한참을 생각을 하였다.

『우리가 받지 않으면 형님도 할 수 없을께 아니냐?』

『아버님께서도 맏형님에게 그 말씀은 하십디다. 그러나 맏형님 대답은 만약 동생들이 받을 생각을 안 하면 당신은 멀리로 몸을 감추시겠다고까지 하십디다. 맏형님의 마음은 여간 굳지 않습니다』

비류도 머리를 기울였다. 태자가 몸을 숨기겠다 하는 것은 무론 자기네들을 위해서이다. 동생을 보위에 오르게 하고 당신은 몸까지 감추려 하는 것이다. 이 형의 지극한 사랑― 이런데 만약 자기네가 위에 오른다 하면 그것은 너무도 맏형의 은혜를 몰라봄이다. 한참을 생각하고 있든 비류는 동생 온조를 마주 꽉 붙들었다.

『야, 온조야』

『네!』

『과연 난처한 일이로구나』

『네, 그래서 형님과 의논하려 왔습니다.

『의논하자니 내게도 신통한 지혜가 안 나는구나』

온조는 눈을 들어서 제 형을 쳐다보았다. 그러고 한마디씩 한마디씩 똑똑 끊어서 말하였다.

『형님. 아까 아버님과 맏형님의 의논을 듣고 내가 생각한 바가 있는데 그것을 형님은 승락하시겠습니까?』

『어디 말해보아라』

『아니, 말은 형님의 대답을 듣고야 하겠습니다. 이 난처한 처지에서 피할 다만 한가지의 길인데 어떠한 계획인지 듣기 전에 승락을 하서야 말하겠습니다』

형은 승락하는 뜻으로 머리를 숙였다. 아까는 그렇듯 동생의 말을 안 들으려던 그가 이번에는 듣기 전에 승락부터 한 것이었다.

형의 승락을 듣고야 온조는 빙긋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가 피합시다!』

『응?』

『우리가 먼저 몸을 감춥시다』

그것은 비상한 방책에 다름 없었다. 그러나 또한 이 막다른 골에서 피할 수 있는 다만 한가지의 길이었다. 이 말을 하고 온조는 형의 얼굴을 유심이 바라보았다.

형은 잠시 뒤에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다. 네 말이 옳다. 우리가 먼저 몸을 감추지 않으면 맏형님이 감추실 것이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무슨 면목으로 사람을 대하겠느냐』

『환후가 가볍지 못하신 아버님을 두고 떠나는 것은 불효막심하지만 아버님께서도 우리의 마음을 알으시면 용서하실 줄 압니다』

『오냐. 떠나자. 형님이 먼저 일을 결행하시기 전에 바삐 우리가 떠나자. 그 밖에는 도리가 없을 것이로다』

『그렇습니다. 어디를 가면 몸 하나를 붙일 곳이 없겠습니까? 첫째로는 형님의 지극하신 헤가림에 보답하고 둘째로는 이 나라 백성에게 어진 임군을 주기 위해서 떠납시다』

이리하여 형제는 의논이 합하였다. 위에 오를 정당한 주인인 유리에게 뒤를 맡기고 몰래 이 나라를 빠저 나가기로 합의가 되었다.

사내 어디 가면 몸붙일 곳이 없겠느냐. 이 아버님의 나라는 맏형에게 맡기고 자기네는 나아가서 기름진 땅을 얻어 가지고 거기서 새로운 나라를 개척하기로 결심이 되었다.

의논을 끝낸 뒤에 형제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서로 마주 보는 눈에는 만족의 눈물이 고였다.

저녁에 형제는 아버지에게 병문안으로 들어갔다. 비록 표면으로는 병문안이나마 속으로는 이것이 영결의 인사였다.

손을 마주 잡고 가즈련히 들어온 형제는 위독한 아버지의 앞에 꿇어 앉았다.

『아버님 좀 어떠십니까?』

마지막 문안, 눈물을 안 흘러려고 입을 악물었지만 눈물은 저절로 뺨으로 흘렸다.

『오냐. 왔느냐. 아버지는 다시 회생할 수가 없겠다』

『아버님. 그런 말씀은 마세요』

『아니로다. 내가 다시 일지 못할 것은 내가 잘 아는 바, 자 가까히들 오너라』

아버지는 이불 밖으로 손을 내어 밀었다. 놀랍게도 여윈 손이었다. 갈구리와 같이 크고 굳세든 그 형태는 없어지고 놀랍게 여윈 손은 움직일 때마다 후들후들 떨렸다. 형제는 좀더 아버지의 앞으로 닥아 앉았다.

『야들아. 너이들, 네 맏형 태자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에 드문 훌륭한 분으로 생각하옵니다』

『너이와 어떠냐?』

『그것은 마치 해와 자라를 비교함과 같이 비교도 안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느니 만치 너이도 또한 훌륭한 애들이다. 죽을지라도 나는 한이 없다. 그런데 비류야』

『네?』

『태자가 오기 때문에 너는 왕위에 올라갈 수가 없게 되었구나』

『아버님. 그게 무슨 말씀이오니까? 형이 있으면 아우는 본시부터 바라지도 않는 것이 아닙니까? 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어서 치료나 잘 하셔서―』

아들의 말을 아버지는 가로 막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니 내 마음이 놓인다. 이후에도 형을 도와라. 형도 사람, 간혹 실수하는 일이 있으면 숨김없이 말해라, 잘 보좌해라. 아비의 부탁이다』

『예. 알겠습니다』

대답은 하였지만 너무도 쓰린 대답이었다. 바야흐로 길을 떠나려는 자기네들에게 내내 형을 보좌하라는 말씀은 너무도 쓰렸다.

『끝끝내 의좋게 지내라』

『네』

『형은 훌륭한 인물이다. 그러나 너이들도 형에게 지지 않는 훌륭한 인물이다. 내 영광이로다. 자 곤할 테니 물러가서 자거라』

『예』

대답은 하였지만 형제는 차마 일어나지 못하였다. 위독한 아버지를 두고 떠나려 함에 형제는 너무도 슬프고 가기 싫어서 몸을 일으키지를 못하였다.

『자. 물러가 자거라』

『예……』

그래도 못 일어 나는 것을 보고 아버지는 눈을 형제에게 향하였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느냐?』

『예……』

『무슨 말이냐?』

『예……』

아아, 아무런 질문에 대하여서도 형제는 『에』의 한마디 대답 밖에는 하지를 못하였다. 아버지의 눈은 드디어 형제의 눈물을 발견하였다. 아버지는 눈을 크게 떴다.

『웨들 우느냐』

『예……』

『내가 위독한 줄 알고 우는구나. 사람이란 한번 났다가 한번 죽는 것. 비록 죽기 싫고 보내기 싫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내일 아침까지는 그대로 죽지 않을 터이니 마음놓고 물러가서 쉬고 아침에 다시 오너라』

『네……』

형제는 할 일 없이 일어섰다. 그러고 아버지에게 하직을 하고 나왔다.

아버지에게 하직을 하고 나온 형제는 그 길로 몸을 숨겨서 궁 밖으로 나갔다.

궁 밖에는 오간(烏干) 마려(馬黎)등 열 신히가 미리 형제의 명을 듣고 거기서 말을 준비해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님. 이 불효를 용서해 주십시오. 위독하신 아버님의 일종도 못 보고 떠나는 불효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것도 아버님을 위하고 맏형님을 위하고 나라를 위한 일이올시다. 한 번 더 뵙고 싶지만 사정이 그렇지 못하여 그냥 떠납니다』

눈물로서 대궐을 향하여 절하고 형제는 말께 몸을 싣고 이 정든 땅 정든 대궐을 영결하고 표랑의 길을 떠났다.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수없이 돌아보면서 형제는 말이 향하는 대로 길을 갔다.

밤을 새워서 길을 간 형제는 이튿날 아침 어떤 강가에 이르렀다. 거기서 그들은 조반을 나누였다.

조반을 끝내인 뒤에 다시 길을 가려고 준비를 하다가 형은 깜짝 놀라며 아우를 보았다. 아우도 무슨 일인지 깜짝 놀란다.

『온조야!』

『형님!』

형제는 한참을 얼굴을 마주 보았다.

『너 보았느냐?』

『형님도 보셨소?』

『임종이시다』

『그런가 봅니다』

『눈앞에 문뜩 나타나시는구나. 손을 들으시고 빙긋이 웃으시며……』

『나는 꼭 그렇게 보았소』

『임종이시다』

『임종이시외다』

여기서 다시 한참을 서로 얼굴을 마주 바라보고 있던 형제는 그 자리에 몸을 내어 던졌다. 통곡성이 형제의 입에서 나왔다.

뒤에서 기다리던 오간 마려등의 열 신하도 왕의 임종이심을 짐작하였다. 모두들 몸을 대궐 쪽으로 향하여 절하며 통곡하였다.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 고주몽의 임종을 통곡하였다.

『아버님. 무슨 말씀을 드리오리까. 할 말씀이 없습니다. 한 번 더 뵙구 싶었습니다. 임종에 부르시는 음성이 들리는 듯하옵니다. 이 불효, 임종조차 뵙지 못한 불효를 너그러히 용서해 주시옵소서

형제는 목을 놓아서 처 울었다. 울고 울고 또 울었다.

한나절을 거기서 통곡을 한 주종 열두 사람은, 낮이 기울어서 다시 길 갈 준비를 시작하였다. 이런 일이 있을 줄을 미리 짐작하고 준비했던 소복을 주종 열두 사람은 바꾸어 입었다. 그런 뒤에 다시 길을 떠났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마치 그들의 아버지가 부여 왕자들의 해를 피해서 졸본 땅으로 올 때와 마찬가지로, 그러고 또한 그들의 맏형이 아버지를 만나려 올 때와 마찬가지로, 형제 주종의 열두 사람은 남으로 남으로 길을 갔다.

가는 곳마다 형제와 주종의 一행은 그곳의 지리와 인정과 풍속과 토질을 잘 알아보았다. 장차 큰 기업을 세우려는 형제는 그럴만한 땅을 구하고저 살피면서, 여기 한 달, 저기 두 달씩 묵어가면서 남으로 남으로 내려갔다.

그때는 그들의 고국인 고구려에서는, 시조 동명성왕이 붕어하시고 그의 맏아드님이요 지금 길가는 형제의 형님 되시는 유리왕이 등극을 하셨다. 형제가 사랑하는 고국과 일=임종의 아버님까지 그냥 두고 떠난 그 본의가 실현이 된 것이었다.

이 소문을 풍편에 듣고 형제는 만족히 여겼다. 그러고, 자기네의 맏형님의 나라인 고구려의 흥성하기를 축복하면서 형제는 그 고구려에 지지 않는 커다란 새 나라를 세우고저 길을 채이고 또 채였다.

형제가 맏형 유리에게 위를 전하기 위하여 길을 떠났다는 소문이 퍼지자 고구려의 백성들은 그 어진 마음을 사모하여 뒤를 따라 오는 사람이 많았다. 이리하여 처음 떠날 때는 주종 열두 사람이었지만 나중에는 꽤 큰 무리가 된 이 一행은 남으로 남으로 길을 채어서 마침내 한산(漢山)에까지 이르렀다.

거기서 一행은 부아악(負兒岳)에 올라가서 사면을 살피어 보았다.

뒤로는 한수(漢水)를 꼈다. 동쪽으로는 높은 뫼가 있었다. 남으로는 천리의 옥야가 전개되어 있었다. 서로는 멀리 바다가 막혀 있었다. 그러고 이 땅이야말로 큰 기업을 세우기에 가장 적당한 땅이었다.

『형님, 이 곳이 됐습니다』

사면을 둘러 보다가 눈에 광채를 내면서 온조는 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형은 그다지 시언해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바다가 멀다』

형은 간단히 이렇게 말하였다.

다른 신하며 따르는 무리들도 온조의 말을 도와서 여기다가 도읍을 정하기를 권하였다. 그러나 형 비류는 용이히 머리를 끄떡이지 않았다.

『여기도 그만하면 쓰기는 쓰겠다. 그렇지만 바다가 너무도 멀다』

『형님. 바다는 해서 무얼합니까?』

『바다? 바다는 먹을것도 많이 나고 교통도 편하고 좋으니라. 도읍을 정할려면 반드시 바다 낀 곳을 골러야 하느니라』

여기서 형제의 의견은 서로 달라졌다. 이 옥야천의 땅을 온조는 꼭 영원히 살 곳으로 정하고 싶었다. 따라온 오간 마려 등의 열 신하도 그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형 비류는 끝끝내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드디어 비류는 이런 의견을 꺼내었다.

『우리가 서로 그런 일로 다툴 것이 없이 각각 갈려서 제 마음 제 뜻대로 도읍을 정해보면 어떠냐. 너는 여기가 좋다니 너는 여기 머물어라. 너와 의견을 같이 한 열 사람도 여기 머물어라. 그러고 나는 다른 무리들을 데리고 또 다른 곳으로 찾아가서 거기다가 도읍을 정하겠다. 이렇게 서로 갈렸으면 어떠냐?』

온조는 여기서 서로 해지자는 형의 뜻밖엣 말에 형의 얼굴을 보고 그 뜻을 알아보려 하였다. 형은 아우가 자기를 보는 의미를 안 모양이었다.

『아니 너는 내 말을 오해를 하나 부다. 내 말은 서로 아주 헤지자는 것이 아니요 제각기 제 뜻대로 땅을 잡아서 얼마를 지나보고 그 뒤에 그 결과를 보아서 좋은 곳에 함께 모이자는 말이다』

아우는 다시 형을 보았다. 임시로나마 형과 작별하기는 슬펐다. 그러나 형의 의견은 또한 그럴듯한 것으로 서로 헤어져서 좋은 곳을 알아 보는 것도 장래를 위하여 좋을 듯하였다. 그래서 그러기로 승락을 하였다.

그 날 온조는 임시로나마 형과 작별하는지라 작별의 잔체를 열었다.

이튿날 형은 따르는 무리 가운데서 여기 머물고 싶은 무리는 머물게 하고 따르고 싶은 무리는 데리고 또 다른 땅을 구하려 떠났다.

형과 작별을 한 뒤에 온조는 열 신하와 남은 무리를 데리고 위례(慰禮)로 내려갔다. 거기다가 도읍을 정하였다. 고구려에서부터 따라온 열 신하는 여기서 새로 임군이 되신 온조왕을 도와서 정사를 보살폈다.

때는 전한(前漢) 성제(成帝) 홍가(鴻佳) 三년이었다.

온조왕은 열 신하의 도움으로 나라를 이룩하였다 하여 나라 이름을 십제(十濟)라 불렀다. 본배가 틀림이 없이 땅은 기름지고 물 맑고 만년 기업의 땅으로 가장 적당한 곳이었다.

아우 온조와 작별한 비류는 따르는 무리들을 데리고 미추홀(彌鄒忽) (지금의 仁川지방)로 갔다. 바다가에 달린 그 땅이 마음에 들어서 비류는 거기다가 도읍을 정하였다.

그러나 한동안 지나보니 미추홀은 도읍할 만한 곳이 못 되었다. 공기가 습하고 물이 짜고 땅이 질기 때문에 사람이 능히 마음놓고 살만한 곳이 못 되었다. 이 공기 나쁜 곳에서 얼마를 지나는 동안 비류왕은 몸에 탈까지 났다.

탈난 몸을 병상에 이리저리 구을리면서 비류왕은 늘 동생 온조왕을 생각하고 하였다. 비록 자기는 지금 병난 몸이로되 온조뿐은 건강히 지내과저. 기름진 땅에서 착한 백성을 거느린 어진 임군이 되과저. 그때 자기가 바다가를 주장할 때에 그냥 남땅을 고집한 동생인지라 지금도 거기 있을 것은 의심이 없으되 탈없이 잘 지내과저.

자기는 이미 페인이 된 것을 비류왕은 잘 알으셨다. 자기는 페인이 되었으나 동생뿐은 잘 지나기를 비류왕은 날마다 밤마다 빌으셨다. 자기의 몫까지 맡아서 큰 업을 성공하기를 빌으셨다.

이렇게 병상에서 얼마를 동생의 신상만 근심하고 계시던 비류왕은 마침내 참다 참다 못하여 동생의 나라를 찾아 가보기로 하였다.

병에 시달린 몸으로 길을 가시는 것을 신하들은 막았다. 그러나 이미 자기는 죽을 줄을 깨달은 왕은 죽기 전에 한번 동생이나 만나고저 신하들의 간을 물리치고 위례성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형제는 오래간만에 만났다. 그러나 그때는 벌써 형왕은 좋지 못한 공기 때문에 거의거의 떠나게 된 한 『사람의 껍질』에 지나지 못하였다.

『형님』

『온조』

『형님 신상이 웨 이러시오?

『나는 이미 죽은 몸이다. 미추홀은 나쁜 땅이다. 여기서 너는 영원의 기업을 세워라』

『형님. 마음을 굳게 잡수세요』

『내 마음은 약해진 것이 아니다. 온조야. 내가 지금에 이르러 다행히 생각하는 것은, 그때 내가 억지로라도 너를 미추홀로 끌어가지 않은 것이다. 만수무강하거나. 대대로 복 누리거라』

오래간만에 만난 형제였다. 그러나 상봉을 오래 즐기기도 전에, 비류왕은 너머가는 고목과 같이 저세상으로 가버리섰다.

비류왕이 세상을 떠나신 뒤에 아직까지 비류왕에게 속하여 있던 무리들은 모두 위례성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온조왕을 섬겼다.

十제 나라는 차차 은성하여졌다. 사람의 성씨가 백(百)가지가 넘었다.

나라이 차차 은성해지고 사람의 성씨도 백가지를 넘게 되었으므로 온조왕은 이에 아직 이 나라의 이름이던 十제를 백제(百濟)라 고치셨다.

이리하여 백제라는 나라가 서게가 되었다.

그후 十四년에 온조왕은 다시 도읍을 위례에서 한산(漢山― 지금 광주)에 옮기섰다.

그뒤 백제는 더욱 더욱 은성하여저서 마지막에는 五부(部) 三十七군(郡) 二백성(城) 七十六만의 호구로까지 세이게가 되었다.

후년 제 三十二대의 의자왕(義慈王)의 때에 이르러서 신라 명장 김유신은 당나라 장수 소정방에게 망하기까지 六백七十八년간의 기다란 역사와 강국이라는 일컬음을 끝끝내 듣든 백제는 이러한 일 이러한 내력을 거치어서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 고주몽의 셋째아들 온조왕이 건설하신 나라다.

역사에 남아있는 커다란 발자최― 그것도 그 시초를 보자면 아름답고 기특한 형제애(兄弟愛)에서 시작된 것이다. 무엇에 비기지 못할 진실로 아름다운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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