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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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次[목차]
第一部[제일부] 事歷篇[사력편]
第一章[제일장] 하나에서 여럿으로
第二章[제이장] 人類[인류]와 文化[문화]의 歷史[역사]
第三章[제삼장] 朝鮮[조선] 사람의 搖籃地[요람지]
第四章[제사장] 朝鮮[조선] 사람의 줄거리
第五章[제오장] 「」사람의 半島[반도] 南下[남하]
第六章[제륙장] 朝鮮[조선]과 壇君[단군]의 出現[출현]
第七章[제칠장] 扶餘[부여]와 根本部[근본부] 南移[남이]
第八章[제팔장] 지朝鮮[조선]의 卓越[탁월]
第九章[제구장] 더부살이의 북새질
第一○章[제일영장] 衛滿[위만] 新王朝[신왕조] 의 影響[영향]
第十一章[제십일장] 漢[한]나라 四郡[사군]의 幻滅[환멸]
第十二章[제십이장] 大同江[대동강] 中心[중심]의 時代[시대]
第十三章[제십삼장] 樂浪[낙랑] 四圍[사위]의 諸民邦[제민방]
第十四章[제십사장] 鴨綠谷裡[압록곡리]의 新勢力[신세력]
第十五章[제십오장] 漢[한] 郡縣[군현]의 쫓겨나감
第十六章[제십륙장] 古朝鮮人[고조선인]의 分布圈[분포권]
第十七章[제십칠장] 해상[海上]으로 나간 支派[지파]
第十八章[제십팔장] 震域[진역] 內外[내외]의 異民族[이민족]
第二部[제이부] 文化篇[문화편]
第十九章[제십구장] 朝鮮[조선] 古文化[고문화]의 淵源[연원]
第二○章[제이영장] 石器[석기]로서 鐵器[철기]까지
第二一章[제이일장] 祭祀[제사] 中心[중심]의 生活相[생활상]
第二二章[제이이장] 古代[고대]의 神域[신역]과 靈儀[영의]
第二三章[제이삼장] 瑞石[서석]과 支石[지석]과 「업」
第二四章[제이사장] 祭祀[제사]와 女子[여자]의 地位[지위]
第二五章[제이오장] 古代[고대]의 君主[군주]와 天符[천부]
第二六章[제이육장] 久遠[구원]의 國土[국토]는 東方[동방]
第二七章[제이칠장] 古震人[고진인]의 敎學[교학] 藝術[예술]
第二八章[제이팔장] 上代人[상대인]의 衣食[의식] 居處[거처]
第二九章[제이구장] 上代人[상대인]의 婚喪[혼상] 諸俗[제속]
第三○章[제삼영장] 古震人[고진인]의 生活[생활] 原理[원리]
朝鮮民族本支圖[조선민족본지도] (卷頭[권두] 畵報[화보] 參照[참조])
兒時朝鮮[아시조선]의 卷頭[권두]에

〈稽古箚存[계고차존]〉을 쓴 지도 이미 一○[일영]數年[수년]입니다. 생 각하면 그동안 多少[다소]의 進境[진경]이 있을 듯하기에, 다시 古代史[고 대사]의 重霧[중무]를 약간 헤쳐보려 하였더니, 적어보매 依然[의연]히 曠 野迷徨[광야미황]의 感[감]을 禁[금]치 못하겠음이 스스로 딱합니다. 그러나 篇中[편중]에 述[술]한 바 모든 章節[장절]이 다 多年[다년]의 苦 心[고심]과 熟考[숙고]의 存[존]한 바요, 率爾[솔이]하게 放言[방언]한 것 은 하나도 없읍니다. 所言[소언]이 다 正鵠[정곡]을 얻었다 할 수 없음은 毋論[무론]이지마는, 대개 新試[신시]와 創見[창견]에 屬[속]함은 讀者[독 자]의 알아주실 일로 생각합니다.

들어갈수록 휑하여 헤매고 어리둥절함은 處女地[처녀지]대로 있는 朝鮮歷 史[조선역사]의 原始林[원시림]입니다. 여기 적은 것이 앞으로도 많은 檢覈 [검핵]과 折磨[절마]를 지내서야 비로소 좀더 톡톡해지고 탄탄해질 것은 當 然[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아무도 손 대는 이 없는 兒時朝鮮[아시조선]의 討究[토구]에 대하여, 나는 아직 이렇게 보고, 생각하고, 적어본다는 의미 로, 모든 視野[시야]의 줄거리만 뽑아서 이 編[편]을 만들었읍니다. 各個[각개]의 細論[세론]은 따로 記述[기술]할 機會[기회]가 있겠읍니다. 丙寅暮春[병인 모춘] 日[일] 一覽閣[일람각]에서 著者[저자] (丙寅四月中[병인 사월중], 〈古朝鮮[고조선], 그 文化[문화]〉란 題[제] 로 朝鮮日報[조선일보]에 連載[연재]하였던 것을 그대로 編印[편인]함)

목차

第一部[제일부] 事歷篇[사력편][편집]

第一章[제일장] 하나에서 여럿으로[편집]

시방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하나도 처음부터 시방 보는 저 모양대로 생 겼던 것 아니다. 시방 가진 그 모양들은 총히 오랜 歲月[세월]로 많은 變遷 [변천]을 지낸 끝에 그렇게 생기게 된 것이다. 사람도 당초부터 사람이던 것 아니요, 地球[지구]도 당초부터 地球[지구]이던 것 아니요, 萬物[만물] 과 日星[일성]이 도무지 당초부터 저 모양으로 생겨서, 언제까지든지 저 모 양대로 가는 것 아니다. 環境[환경]의 形便[형편]을 따라서 천천히, 또 가 만가만히 形體[형체]가 바뀌고 種類[종류]가 늘어서 마침내 어수선한 시방 의 世界[세계]가 생기기도 하였거니와, 시방도 또한 눈에 뜨이지 아니하는 中[중]에 연방 이러한 造化[조화]가 행하여 더욱 어수선스러운 將來[장래] 의 世界[세계]를 만들고 있다. 다만 사람의 壽命[수명]이 짧고 注意力[주의 력]이 허소하므로 그런 줄을 살피지 못할 따름이다. 이렇게 그前[전]의 모 양이 없어지고, 새 모양이 대신 나오는 조화를 이르되 進化[진화]라 한다. 進化[진화]란 것은 큰 데나 작은 데나, 有形[유형]한 것에나 無形[무형]한 것에나 무엇에든지 다 있다. 모든 것이 이 進化[진화]의 속에서 생기고 머 무르고 없어진다. 그前[전]의 생기던 동안을 過去[과거]라 이르고, 시방 머 무르는 동안을 現在[현재]라 이르고, 인제 없어질 동안을 未來[미래]라 하 고, 이 세 토막을 合[합]하여 時間[시간]이라 이르니, 過去[과거]는 그적의 現在[현재]요, 現在[현재]는 過去[과거]의 未來[미래]요, 未來[미래]는 이 다음의 現在[현재]인 것처럼, 뒤에도 또 뒤가 있고, 앞에도 또 앞이 있어, 時間[시간]은 시초도 없고 끝도 없는 것이다. 이 그지없는 時間[시간]과 거 기 매달려서 내려가는 進化[진화]의 일을 담아 가지고 있는 터전을 이르되 空間[공간]이라 하니, 空間[공간]은 어디로든지 막다른 데가 없이 한껏 크 고 넓은 것이다. 이 時間[시간]의 길이와 空間[공간]의 넓이를 合[합]해 가 진 덩어리가 世界[세계]란 것이니, 進化[진화]는 이 世界[세계]의 꼼지락거 리는 자국이다.

世界[세계]는 처음에 한 흐리멍덩한 두루뭉수리였다. 그러나 그 속에 「힘」이 있더니, 이 힘이 벌떡거리기 시작하여 이렁이렁 번득이는 통에 形 相[형상]이 생기니, 形相[형상]은 進化[진화]의 始初[시초]이다. 묽던 形相 [형상]이 톡톡해지고, 어설픈 形相[형상]이 어울리면서 한옆으로 많은 새끼 를 치매, 새로운 形相[형상]이 뒤를 대어 나오고 또 나오는 대로 아름다움 과 굳셈을 더하였다. 이중에서 언제는 生命[생명] 있는 것이 생겨나니, 生 命[생명]이란 것은 나서, 자라서, 새끼라는 새 허울을 만들어서 낡은 제 몸 을 담아 놓고 가는 힘이다. 이 生命[생명]도 당초에는 아주 변변치 아니한 한 꼼지락이였다. 이것이 時間[시간]에 닦달되고 空間[공간]에 출렁거리는 통에, 몸도 굳어지고 가지도 늘어 가서 점점 잘생긴 새것을 이루어 가니, 시방 있는 高等[고등]·下等[하등]의 허다한 動物[동물]·植物[식물]들은 도무지 다 연방 새로 바꾸이는 環境[환경]에 맞추어 살려 하는 結果[결과] 로 가지가지 생겨나서 그 子孫[자손]을 남겨 놓은 것이다. 變[변]해진 環境 [환경]에 맞추지 못하면 작게는 그런 놈이 먼저 죽고, 크게는 그런 종락이 아주 없어지나니, 그러므로 이 世界[세계]에는 環境[환경]에 맞지 아니하여 이미 없어진 物種[물종]도 많고, 방장 없어져 가는 것과, 장차 없어질 것도 또한 적지 않다. 여러 物種[물종] 틈에 어느 한 物種[물종]이나, 같은 物種 [물종] 중에 어느 한 個體[개체]나, 무슨 個體上[개체상]에 어느 한 行爲 [행위]나, 다 그 때와 저희 處地[처지]에 合當[합당]해야 부지하기도 하고 잘 되기도 하나니, 이것을 이르되 適者生存[적자생존]이라 한다. 世界[세 계]가 進化[진화]의 놀이터임은 변시 適者生存[적자생존]의 놀음판인 것이 니, 이렇게 環境[환경]에 맞추어서 살려 하는 통에, 서로 이아치는 모양을 生存競爭[생존경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第二章[제이장] 人類[인류]와 文化[문화]의 歷史[역사][편집]

生物[생물]의 씨는 처음 水中[수중]에서 생겼다. 이것이 오랜 뒤에 動物 [동물]을 이루고, 또 오랜 뒤에 陸上[육상]으로 나왔다. 다시 오랜 뒤에 動 物[동물]의 中[중]에 줄띠 있는 종락이 생기고, 또 그중에서 젖 먹이는 종 락이 생기고, 또 그중에서 서서 다니는 종락이 생기고, 또 그중에서 腦髓 [뇌수]가 특히 커다래진 종락이 생기니, 腦髓[뇌수]가 크기 때문에 智力[지 력]이 월등하여 다른 모든 動物[동물]의 中[중]에서 가장 높은 地位[지위] 를 얻게 된 것이 우리 人類[인류]이다.

地球[지구]가 생기고 그 위에 物類[물류]가 생기고, 그중에 生物[생물]이 생기고, 生物[생물]이 변하고 붇다가 進化[진화]의 한 고작으로 人類[인류] 를 만들어내기는 참 까마득한 오랜 동안의 일이다.

人類[인류]의 처음 생기기는 시방부터 대강 五○[오영]만 년쯤 전이요, 이 것이 처음에 「비슷한 사람」으로 비롯하여, 「어울려 가는 사람」「앞서 난 사람」을 거쳐 「참 사람」을 이루는 동안이 퍽 오래였으니, 능히 깊은 생각도 하고 어수선한 말도 하여, 시방 우리의 바른 祖上[조상]이라 할 「다된 사람」은 실상 二[이], 三[삼]만 년쯤 전에야 생겼다.

이런 原始人類[원시인류]의 가장 오랜 자취는, 시방 亞細亞[아세아]의 西 南方[서남방]에 머물러 있는데, 이 종락이 이리로부터 사방으로 번져나가 서, 風土[풍토]와 다른 事情[사정]을 따라서 오랜 동안에 形貌[형모]와 言 語[언어]와 習俗[습속]이 각각 달라지게 되니, 크게는 人種[인종]과 작게는 民族[민족]이란 것이 이래서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人類[인류]는 知識[지식]을 가지고, 言語[언어]를 가지고, 또 이것을 縱橫 [종횡]으로 써서 經驗[경험]이라는 큰 힘을 가지게 되니, 이 몇 가지는 人 類[인류]의 生活[생활]을 엄청나게 便利[편리]하고 아름답게 하였다. 經驗[경험]과 改良[개량]으로써 연방 좀더 나은 生活方法[생활방법]을 만 들어 낸 것을 이르되 文化[문화]라 하니, 人類[인류]의 잘살려는 慾望[욕 망]이 온갖 方面[방면]으로 크게 나타나서 갈수록 文化[문화]의 정도를 높 이고 또 그 內容[내용]을 가멸하게 하였다. 잘살자, 내 몸 하나뿐 아니라 나의 같은 種族[종족]과 또 우리 子孫[자손] 언제까지든지 늘고 붇고 돋우 어 가면서, 재미있고 뜻 있고, 힘과 생색 있는 살림살이를 하자는 노력이 쌓이고 덮치는 곳에, 文化[문화]의 탑은 그대로 높고 빛나졌다. 人類[인류] 의 生活[생활]과 및 그 때문에 생기는 文化[문화]가 어떻게 생겨서 자라고 퍼지고 변해 왔는지를 時間[시간] 차례로 살펴서 그 興廢存亡[흥폐존망]하 는 理法[이법]을 알려 하는 것이 歷史[역사]이니, 본디는 무엇에든지 다 歷 史[역사]가 있을 것이로되, 文化[문화]란 것은 人類[인류]의 特色[특색]이 기 때문에 다만 歷史[역사]라 하면 문득 人類[인류]의 歷史[역사]란 뜻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人類[인류]의 歷史[역사]를 온통 한 歷史[역사]로 보기도 하려니와, 독특한 來歷[내력]을 가진 어느 한 民族[민족]이나 社會 [사회]나 時代[시대]의 歷史[역사]를 따로 떼어 살피고 배우기도 하니, 이 를테면 朝鮮人[조선인]이란 人類中[인류중] 한 덩어리의 생활해 내려온 內 容[내용]을 硏究[연구]하는 것을 朝鮮[조선] 歷史[역사]라고 일컬음과 같 다.

人類[인류]의 文化[문화]는 손에서 시작되고, 손의 조화는 연장에서 나타 났다. 몸 밖에 있는 물건을 가져다가 便利[편리]한 器具[기구]를 만들어서 몸수고를 덞은, 거의 人類[인류]만 가진 재주이었으니, 器具[기구]의 감과, 솜씨와, 가지의 늘어감은 곧 그 文化[문화]의 소용이 커지는 尺度[척도]이 었다. 옛적에는 저절로 생긴 나뭇가지나 돌덩어리를 집어다 썼겠지마는, 차 차 쓰기에 좋음을 위하여 다듬고 깎기를 시작하고, 또 그 資料[자료]도 튼 튼한 것을 취하게 되니, 그 發達[발달]하던 來歷[내력]을 보건대, 처음 한 참 동안은 돌로만 만들어 쓰던 石器時代[석기시대]요, 그보다 이것저것을 만들어 쓰기에 편리한 靑銅器時代[청동기시대]가 그다음을 잇고, 또 그러고 도 더 단단한 鐵器時代[철기시대]가 그뒤를 받쳐서 오늘날까지 내려옴이 그 것이며, 이 세 時代[시대]를 通[통]하여 만들기 쉽고 쓰기 만만한 土器[토 기]·骨角器[골각기]가 있어서 인류의 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다. 鐵器時代 [철기시대]에 들어와서는 人類[인류]의 智慧[지혜]가 더욱 활발하게 發作 발작 [ ]하여, 단순한 器具[기구]가 점점 복잡한 機械[기계]로 변하니, 機械 [기계]가 精妙[정묘]해지는 대로 人類文化[인류문화]의 効用[효용]은 달음 질로 뛰어 올라온다. 한옆으로 피륙 짜기와 불 쓸 줄을 알아서 人類生活[인 류생활]의 特色[특색]이 더욱 顯著[현저]해지고, 먹을 것 장만하는 方法[방 법]도 주움질·사냥질로부터 짐승치기로 나아오고, 다시 곡식 심을 줄까지 를 알게 됨에 미쳐서 一定[일정]한 處所[처소]로 모여 사는 일이 생기고, 떼를 지어 오래 지내자 하매, 저절로 구순하게 사는 法禮[법례]를 마련하게 되니, 나라라 法[법]이라 하는 것은 이래서 생겨나고, 다시 宗敎[종교] 기 타의 힘으로써 그 團合力[단합력]이 굳게 되어 갔다.

第三章[제삼장] 朝鮮[조선] 사람의 搖籃地[요람지][편집]

世界[세계]의 人類[인류]에는 큰 무더기 셋이 있으니, 흔히 黃人[황인]으 로 부르는 蒙古系[몽고계], 白人[백인]으로 부르는 高加索系[고가색계], 黑 人[흑인]으로 부르는 亞弗利加系[아불리가계]란 것이다. 蒙古系[몽고계]의 人種[인종]은 시방부터 한 一[일]만 년 전까지 中央亞細亞[중앙아세아]를 중심으로 하여 그 四方[사방]의 谷間[곡간] 혹 川邊[천변]에 각각 한 덩어 리씩을 지어서 규모 있는 살림살이를 하였다. 그네들은 대개 일찍부터 하늘 을 무서워 섬기고, 날마다 한 바퀴씩 하늘을 막질러 건너다니는 해를 世界 [세계]의 임자로 믿고, 高山[고산]의 꼭대기는 하늘 通[통]해 다니는 발판 인 동시에 하느님의 人間[인간]에 와 계시는 대궐로 생각하여 하늘과 해와 高山[고산]을 한 끈에 꿰듯한 굳은 信仰[신앙]을 가졌었다. 넓은 하늘과 빛 난 해와 높은 멧부리를 우러러 보고는 지극히 크고 먼 氣像[기상]을 기르는 사람의 씨이었다. 우뚝하여지라 하는 理想[이상]의 불꽃이 가슴속에 활활거 림에 끌려서 무척 어려운 일이라도 아주 우습게 해내는 勇氣[용기]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 덩어리의 事情[사정]을 따라서 더 强[강]하고 弱[약]한 差異[차이]는 있으되, 이 理想[이상]의 김은 어느 部族[부족]의 사이에든지 서려 있었다. 이 理想[이상]에 눈뜬 것이 그네로 하여금 그때에 있어서 가 장 高貴[고귀]한 精神世界[정신세계]의 임자이게 하여, 큰 希望[희망]과 한 가지로 큰 자랑을 가졌었다. 이 理想[이상]의 싹을 북돋우어 기르면서 그네 들의 고요한 生活[생활]이 몇천 년을 계속하였다.

年代[연대]가 나아가고 地域[지역]이 갈림을 따라서 이 蒙古系[몽고계]의 人種[인종] 중에 許多[허다]한 分派[분파]가 찢겨나고, 一邊[일변]으로는 그 生活上[생활상] 事情[사정]을 因[인]하여서 文化[문화]의 程度[정도]와 內容[내용]에 許多[허다]한 差別[차별]이 생기게 되었다. 水利[수리] 좋은 「투란」平野[평야]에서는 진작부터 農業[농업]이 시작되어서 定着[정착]한 生活[생활]을 배포한 이도 있고, 이네들의 사이에는 建築[건축]과 製造工業 [제조공업]도 조금씩 생겨났지마는, 高原[고원]과 山間[산간]에 웅거한 이 는 牧畜[목축]과 狩獵[수렵]으로써 生活[생활]의 기본을 삼는 이가 오랜 뒤 까지도 많이 있어, 이네들은 앉은 文化[문화]를 지음에는 얼마쯤 遲鈍[지 둔]하였으나, 서서 理想[이상]을 나타냄에는 특히 勇敢[용감]하고 활발스러 웠다. 더욱 高山[고산]·深谷[심곡]·平原[평원]·曠野[광야] 등 自然[자 연]의 威力[위력]을 느낄 기회를 많이 가진 그는 人生[인생]과 自然[자연] 의 사이에 微妙[미묘]한 관계를 깊이 體認[체인]하여 敬虔[경건]한 宗敎的 [종교적] 情緖[정서]가 항상 이네들 생활의 中心支柱[중심지주]를 지었었 다.

그런데 이네들의 天性[천성]은 思究的[사구적]인 것보다 實行的[실행적]이 기 때문에, 그네의 宗敎[종교]도 가장 이 方面[방면]으로 發達[발달]을 이 루어, 그네 信仰[신앙]의 標的[표적]인 「한우님」은 아무것보다도 그네의 進取[진취] 實行[실행]의 策勵者[책려자]이었다. 이 信仰[신앙]의 衝動[충 동]에 끌려서, 곧 「한우님」이신 太陽[태양]에게로 가까이 가리라는 努力 [노력]이 그네로 하여금 「파미르」와 天山[천산]의 荒險[황험]을 무릅쓰고 그 무서운 藪澤[수택]을 뚫고서 東[동]으로 東[동]으로 나오면서 世界[세 계] 생긴 뒤의 처음인 인류의 발자국을 내었다. 信仰[신앙]의 偉大[위대]한 힘이 그네를 몰아서 이 勇敢[용감]한 開拓者[개척자]를 만들었다. 이렇게 길이 한번 난 뒤에는 東方[동방]에도 살기 좋은 땅이 있다 하는 지식이 널 리 퍼져, 氣候[기후]의 變遷[변천]과 食物[식물]의 缺乏[결핍]과 戰亂[전 란]의 繼續[계속] 등 살기 어려운 事情[사정]이 西方[서방]의 搖籃地[요람 지]에 發生[발생]하는 대로 東方[동방]으로나 移住[이주]하겠다는 무리가 자꾸 생겨서 東方[동방]의 새 世界[세계]가 漸次[점차]로 人類生活[인류생 활]의 稠雜[조잡]한 舞臺[무대]를 이루고, 그중에는 무론 農業的[농업적] 文化[문화]의 所有者[소유자]들도 많이 끼이게 되었다.

第四章[제사장] 朝鮮[조선] 사람의 줄거리[편집]

世界[세계]의 용마름이라 하는 「파미르」高地[고지]에 서서 보면, 손가 락을 편 것처럼 山脈[산맥]이 四方[사방]으로 찢겨나간 中[중]에 雄大[웅 대]하고 기찬 것은 그 東方[동방]의 分支[분지]니, 北[북]에 치우쳐 나간 것은 天山山系[천산산계]요, 南[남]에 치우친 것은 「히말라야」山系[산계] 요, 그 中間[중간]을 타고 나간 것은 崑崙山系[곤륜산계]요, 여기서 다시 허다한 山脈[산맥]이 곁가지로 찢겨 나간 것이 있다. 이 山系[산계]와 山系 [산계]와의 사이는 실로 蒙古系[몽고계] 人種[인종]의 大分派[대분파]를 지 은 界限[계한]이니, 「히말라야」쪽으로 붙어 나간 것은 「인도네시아」人 [인]·「말레이」人[인] 등 南部[남부] 種族[종족]을 이루고, 崑崙山[곤륜 산] 쪽으로 붙어 나간 것은 支那人[지나인]의 大榦[대간]을 이루고, 北方 [북방] 天山[천산] 쪽으로 붙어 나간 것은 東北亞細亞[동북아세아]의 蒙古 [몽고] 正統[정통] 모든 種族[종족]을 이루었으며, 또 山系[산계]에 딸린 山脈[산맥]과 大山脈[대산맥]에 딸린 小山脈[소산맥]은 각기 같은 種族[종 족]의 중에서 다시 여러 小部族[소부족]을 나누는 界限[계한]이 되었다. 또 同一[동일]한 本源[본원]에서 나와서 同一[동일]한 逕路[경로]를 말미암은 이라도, 移徙[이사] 時代[시대]의 先後[선후]와, 文化[문화] 發達[발달]의 高低[고저]를 따라서 연방 새로운 中心[중심]을 가지는 各異[각이]한 部族 [부족]들을 이루어서 여기저기 分布[분포]하게 되었다.

아마 一[일]만 년 전쯤서부터 시작된 일이다. 天山山系[천산산계]를 끼고 東[동]으로 策動[책동]하여 北[북]으로 기울어진 者[자]는 阿爾泰山脈[아이 태산맥]·杭愛山脈[항애산맥]·雅布魯諾奧山脈[아포로낙오산맥]·大興安嶺 [대흥안령]을 지나서 黑龍江[흑룡강] 流域[유역]으로 하여 大震地域[대진지 역]으로 들어오고, 그 南[남]으로 기울어진 者[자]는 祁連山脈[기련산맥]을 끼고 黃河[황하] 流域[유역]으로 나오다가 다시 두 갈래에 나뉘어서 北[북] 으로 陰山山脈[음산산맥] 밑으로 하여 西喇木倫[서라목륜]을 지나서 또한 大震地域[대진지역]으로 들어오고, 南[남]으로 大行山脈[대행산맥]을 지나 서 河流[하류]를 따라 山東地域[산동지역]으로 들어간 一大部族[일대부족] 이 있었으니, 그 本國[본국]은 「」이라 하고, 그 氏系[씨계]는 「」라 하고, 그 族號[족호]는 「」이라고 일컬었다. 「」과「」과 「」은 다 天[천]을 意味[의미]하는 말이니, 무엇으로나 自己[자기]네는 天國[천 국]으로서 나온 天帝[천제]의 族屬[족속]이로라 함이었다. 이른바 天國[천 국]이란 것은 觀念上[관념상]에 있어서는 무론 天帝[천제]의 대궐인 저 碧 虛太空[벽허태공]이지마는, 그 實際上[실제상] 意味[의미]는 天孫族[천손 족]의 居住[거주]라 하여 天國[천국]으로 自認[자인]하던 「파미르 저쪽」 의 種族的[종족적] 搖籃地[요람지]를 가리킴이었다. 「」은 후에 漢字[한 자]로 「桓[환]」혹 「韓[한]」이라 쓰고, 「」은 「大[대]」혹 「夷 [이]」(古音[고음] )라 쓰고, 「」은 「白[백]」혹 「貊[맥]」(原音 [원음] )이라고 쓰게 된 것이니, 이 種族[종족]은 시방 黃河[황하]와 黑 龍江[흑룡강]을 휩싼 사이에 퍽 長久[장구]한 동안 꽤 자유로운 部族的[부 족적] 分化[분화]를 이루었는데, 이렇게 自己[자기]네들의 퍼져 사는 地域 [지역]을 통틀어 「」라 일컫고, 그중에서 東[동]으로 치우치는 지방은 別[별]로 「」혹 「신」이라고 부르니, 「」는 후에 漢字[한자]로 渤海[발해]라 譯[역]한 것이요, 「신」은 「鮮[선]」「震[진]」「辰[신]」 등으로 譯[역]하게 된 것이다.

天[천]과 및 天支[천지]로 믿는 高山[고산]의 信仰[신앙]은 널리 蒙古系[몽고계] 人種[인종], 특히 그 北系[북계] 種族[종족]의 사이에 행한 信仰[신앙]이지마는, 그중에서도 이 一支派[일지파]는 특히 天帝[천제]의 子[자]로 뽑혀서 人間[인간]의 治者[치자]가 되어 내려왔다고 믿음으로써, 스스로 일컫기를 「」혹 「」혹 「」등 天人[천인]이로라 함이었다. 그러므로 그네의 나라는 대개 高山[고산] 巨嶽[거악]을 의지하여 排置[배치]되고, 그네의 생활은 이 山[산]을 天[천]으로 崇奉[숭봉]하는 祭祀[제사]로써 중심을 삼아서 자갸네의 있는 곳이면 변시 저절로 天國[천국]인 줄로 알았으며, 이 天國[천국]을 擴張[확장]하여 다른 未開[미개]한 地域[지역]과 民衆[민중]에게 미침이 자갸네들의 使命[사명]임을 믿었었다. 그러므로 자갸네들의 開拓[개척]하는 땅에는 흔히 「」이라는 이름을 붙이니, 「」은 「」의 略語[약어]요, 「」은 神明[신명]의 原義[원의]로부터轉滋[전자]하여 開發[개발]·滋蔓[자만]·光明[광명]의 義[의]를 가지게 된 말이며, 후에 漢字[한자]로 譯[역]하여 「貊[맥]」「發[발]」「夫里[부리]」등을 作[작]하고, 다시 訛[와]하고 略[략]되어 「番[번]」「方[방]」「夫餘[부여]」등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이네들이 넓은 땅에서 아무 거리 낄 것 없이 한 군데 두 군데씩 「」이나 불려 나가는 生活[생활]은 平穩[평온]한 가운데서 여러 千年[천년]을 계속하였다.

第五章[제오장] 「」사람의 半島[반도] 南下[남하][편집]

震域[진역]에 있어서 가장 高大[고대]한 山岳[산악]은 白頭山[백두산]이 니, 이 山脈[산맥]과 그 主峰[주봉]은 진작부터 高山[고산]을 天視[천시]하 는 이 民族[민족]의 崇仰[숭앙]하는 標的[표적]이 되어서 「」이란 이 름으로써 이를 부르게 되었다. 「」은 神[신]으로 섬기는 山[산]을 일 컫는 神聖[신성]한 이름이니, 天神[천신]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民族[민 족]의 사는 곳에는 반드시 자갸네를 衛護[위호]하고 保育[보육]해 주는 줄 을 생각하여 神[신]으로 尊崇[존숭]하는 山[산]이 있어, 이 법은 작은 곳에 나 큰 곳에나 한결같이 行[행]하였는데, 여러 작은 「」을 거느리는 으 뜸되는 것에는 「」의 이름을 붙이니, 白頭山[백두산]은 무론 그때 로부터 그 뒤 언제까지나 한결같이 이 민족의 「」이 되었다. 「」도 후에 略[략]하여 또한 「」이 되고, 「」이 다시 略[략]하 여 「」혹 「」이 되니, 시방 朝鮮[조선] 山名[산명]의 「白[백]」 「朴[박]」「비루」「불」等字[등자]로 쓰는 者[자]는 總[총]히 옛적의 神 山[신산]이던 者[자]요, 太白[태백]·長白[장백] 등으로 쓰는 者[자]는 다 「」의 略[략]하여 飜譯[번역]된 이름이다.

이 民族[민족]의 新開拓[신개척]하여 移住[이주]하는 곳인 「」이 생기 면, 그곳에는 으례 한 「」이 늘었다. 이렇게 「」과 「」으로써 旗幟[기치]를 삼는 文化[문화]의 임자인 「」人[인]의 걸음이 차차 白頭 山[백두산]으로부터 南[남]으로 向[향]할 때에 오래오래 컴컴에 잠겼던 밤 의 半島[반도]가 차차 文化[문화]의 빛에 비추이게 되었다.

半島[반도]를 바로 뚫고 내려간 脊椎山脈[척추산맥]을 隔壁[격벽]으로 하 여 이 移住[이주]의 團體[단체]는 저절로 두 줄기에 나뉘니, 그 東側[동측] 을 끼고 내려간 支派[지파]는 豆滿江邊[두만강변]에서 이미 小白山[소백 산](慶源[경원])·白岳山[백악산](慶興[경흥])을 만들고, 다시 長白山[장백 산](乃至[내지] 祖白山[조백산])을 만들어서 挹婁沃沮[읍루옥저]가 생기고, 다시 南下[남하]하여 太白山[태백산](洪原[홍원])·白亦山[백역산]·白階山 [백계산]·白雲山[백운산](並[병] 咸興[함흥])·鼻白山[비백산](定平[정 평])·太博山[태박산](永興[영흥]) 등을 만들면서 玄菟[현도]·東沃沮[동옥 저](即[즉] 南沃沮[남옥저])가 생기고, 다시 南進[남진]하여 鐵嶺[철령]· 金剛山[금강산](並[병] 淮陽[회양])·雪岳山[설악산](麟蹄[인제])·五臺山 [오대산](江陵[강릉], 이상은 다 白雲[백운] 또 그 비슷한 古名[고명]·別 名[별명]을 가진 山[산]) 등을 만들면서 臨屯[임둔]·濊[예]가 생기고, 太 白山[태백산](奉化[봉화])·八公山[팔공산](大邱[대구])·白月山[백월산] (慈仁[자인])·金剛山[금강산](慶州[경주], 別名[별명] 柏栗[백률]) 등을 만들면서 辰韓[진한] 여러 部族[부족]이 생기고, 盆山[분산](金海[김해])· 白月山[백월산](昌原[창원])·防禦山[방어산](咸安[함안])·碧山[벽산](固 城[고성])·伽倻山[가야산](陜川[합천], 舊名[구명] 牛首[우수]) 등을 만들 면서 弁韓[변한] 여러 部族[부족]이 생겼으며, 脊椎山脈[척추산맥]의 西側 [서측]을 끼고 내려간 支派[지파]는 白川[백천](凞川[희천])·白梁山[백량 산](鐵山[철산])·白馬山[백마산](義州[의주])·白雲山[백운산](鐵山[철 산])·白碧山[백벽산](雲山[운산])·大朴山[대박산](江東[강동])·大聖山 [대성산](平壤[평양]) 등을 만들면서 朝鮮[조선]·樂浪[낙랑]의 여러 部族 [부족]이 생기고, 다시 南下[남하]하여 白雲山[백운산](谷山[곡산])·正方 山[정방산](黃州[황주])·太白山[태백산](平山[평산])·北嵩山[북숭산](海 州[해주])·聖居山[성거산]·崧岳[숭악](開城[개성])·白岳山[백악산](漢陽 [한양]) 등을 만들면서 帶方[대방]이 생기고, 다시 南進[남진]하여 冠岳山 [관악산](果川[과천])·負兒山[부아산](龍仁[용인])·白雲山[백운산](安城 [안성])·聖居山[성거산](稷山[직산])·俗離山[속리산](報恩[보은], 別稱 [별칭] 天王[천왕])·白花山[백화산](泰安[태안])·白月山[백월산](靑陽[청 양])·浮來山[부래산](扶餘[부여])·鷄龍山[계룡산](公州[공주])·彌勒山 [미륵산](益山[익산])·邊山[변산](扶安[부안])·德裕山[덕유산](長水[장 수])·白雲山[백운산](光陽[광양]) 등을 만들면서 馬韓[마한] 여러 部族[부 족]이 생기고, 南方[남방]의 「」인 頭流山[두류산]에 이르러 東西 [동서] 兩派[양파]가 마침내 발끝을 서로 대게 되었다.

이렇게 全半島[전반도]가 이 民族[민족]의 生活地[생활지]를 이루어, 이르 는 곳마다 그네의 「」을 보게 되기는 대개 한 四[사]천 乃至[내지] 三 [삼]천년 쯤 前[전]의 일이니, 「」이 北方[북방]에 있어서는 흔히 夫餘 [부여]로 轉[전]하고, 東韓[동한]에서는 伐[벌](혹 弗[불])로, 西韓[서한] 에서는 「夫里[부리]」로 轉[전]하였는데, 무론 「」이 있는 곳에는 「 」이 반드시 있어, 뒤에 흔히 白山[백산]으로써 일컫게 되었다. 그중에서 太白山[태백산]은 朝鮮[조선]의, 長白山[장백산]은 沃沮[옥저]의, 金剛山 [금강산]은 濊[예]의, 太白山[태백산]은 辰韓[진한]의, 彌勒山[미륵산]은 馬韓[마한]의, 伽倻山[가야산]은 弁韓[변한]의 각각 一封疆內[일봉강내]의 一時[일시] 「」이던 것이요, 北[북]의 白頭[백두]와 南[남]의 頭 流[두류] 兩大山[양대산]은 「」중의 「」으로 古今[고 금] 없이 半島[반도] 住民[주민]에게 靈聖[영성]스러운 높임을 받았다.

第六章[제육장] 朝鮮[조선]과 壇君[단군]의 出現[출현][편집]

「白[백]」民族[민족]의 「」에는 반드시 「얼검」이란 이가 있어서 民 衆[민중]을 代表[대표]하여 天主[천주]께 祭祀[제사]드리고, 祈禱[기도]하 고, 또 天主[천주]의 뜻을 물어서 民衆[민중]에게 가르쳐 주는 소임을 맡았 다. 그때 世上[세상]에 있어서는 이 天帝[천제] 섬기는 일이 가장 高貴[고 귀]한 일이므로, 이 宗敎的[종교적] 任務[임무]의 主張者[주장자]는 동시에 그 사회 社會[ ]의 모든 일을 總察[총찰]하는 어른이었으니, 대개 그 時節[시 절]에는 祭祀[제사]가 萬事[만사]의 根本[근본]이요, 다른 것은 總[총]히 여기 附屬[부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저기 헤어져 있는 「얼검」들 이 다 한가지로 우러러 首長[수장]으로 아는 「얼검」중의 「얼검」이 따로 있었으니, 그는 온 震域[진역] 안에 있는 「」山[산]의 으뜸인 大[대] 「」山[산]을 모시고 있어서 天帝[천제]의 直孫[직손]이라고 하는 一氏 族[일씨족]의 「얼검」이었다. 이 어른을 「당굴 - 얼검」이라 하였다. 萬王[만왕]의 王[왕]이신 「당굴 - 얼검」은 太伯山[태백산]을 依支[의지] 하여 神宮[신궁]을 營造[영조]하고, 이 神宮[신궁]을 중심으로 하여 나라를 만들었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을 디디건대 「당굴 - 얼검」은 이렇 게 시작되었다 한다. 天上[천상]의 世界[세계]는 「桓[환]」이라 하는데, 그 나라님의 아드님 중에 桓雄[환웅]이라 하는 분이 天道[천도]를 人間[인 간]에 펴고자 하시매, 나라님께서 太伯山[태백산]을 택하여 國土[국토]로 정하시고, 天符[천부] 三印[삼인]을 주어서 인간을 다스리게 하였다. 桓雄 天王[환웅천왕]이 眷屬[권속] 三[삼]천을 데리고 太伯山[태백산]에 내려오 셔서 神壇[신단]을 모으고, 神政[신정]을 行[행]하면서 神市[신시]라고 일 컬었었다. 여러가지 문화를 펴면서 一邊[일변] 「熊[웅]」氏[씨]·「虎[ 호]」氏[씨] 등 허다한 異姓[이성]을 同化[동화]하여 가다가 位[위]를 그 아드님에게 전하사, 이 어른이 震域[진역]에서 비로소 「나라」의 體制[체 제]를 세우시니, 이때에 朝鮮[조선]이란 이름이 비로소 생겼으며, 또 당신 이 그 나라를 거느리는 이가 되니, 이 位號[위호]가 곧 「당굴 - 얼검」이 란 것이었다. 朝鮮[조선]은 「처(음)샌」── 곧 最初[최초]의 文明處[문 명처]란 뜻이니, 別[별]로 「수신」(肅愼[숙신])이라 일컬음도 同一[동일] 한 의미이며, 「당굴 - 얼검」은 후에 檀君王儉[단군왕검]이라고 쓰고, 略 [략]하여 壇君[단군](又[우] 檀君[단군]·天君[천군]·登高[등고])이라고 일컫게 된 것이니, 譯[역]하면 天帝[천제]를 의미하는 古語[고어]이었다. 「당굴 - 얼검」의 새 나라는 곧 朝鮮國[조선국]과 朝鮮[조선] 人文[인문] 의 始初[시초]이니, 시방의 白頭山下[백두산하] 松花江[송하강] 谷地[곡지] 는 그 最初[최초]의 國土[국토]로 傳[전]하는 곳이요, 그 政事[정사]는 天 上[천상]의 뜻을 받아서 風雨[풍우]를 고르게 하고 人事[인사]를 가지런하 게 함이니, 이른바 人事[인사]란 것은 첫째 農業[농업]을 발달시킴이요, 醫 療[의료]를 施設[시설]함이요, 運命[운명]을 指導[지도]함이요, 善惡[선악] 을 審判[심판]하는 따위이었다. 一邊[일변]으로는 여러 子孫[자손]을 다시 各處[각처]로 分派[분파]하여서 각각 그 地方[지방]에서 작은 한 나라를 배 판하고 그 곳의 「얼검」이 되게 하니, 이러하여 各處[각처]의 「」과 宗 主[종주]되는 당굴의 나라와의 사이에는 血族的[혈족적]으로는 大小家[대소 가]의 관계를 가지고, 信仰上[신앙상]으로는 本支流[본지류]의 聯結[연결] 이 되어서 渾然[혼연]한 一大[일대] 집안을 이루었었다 한다. 모든 일이 單 純[단순]하고 또 생활이 便易[편이]한 世上[세상]이매, 극히 簡素[간소]하 고 또 平穩[평온]한 가운데 一[일]천여 년의 「당굴」時代[시대]가 經過[경 과]하니, 時間[시간]은 長久[장구]하지마는 누구라는 個人[개인]의 이름의 전함이 없음은 記憶[기억]에 머무를 만한 큰 事變[사변]과 그 中心人物[중 심인물]이 없었기 때문이요, 다만 文籍[문적]이 없음만에 말미암은 것 아니 었다. 壇君時代[단군시대]는 퍽 더 오랜 것이지마는, 公用[공용] 紀元上[기 원상]으로는 隆熙[융희] 庚戌[경술]을 距[거]하기 四二四三[사이사삼]년 전 으로부터 무릇 一○四八[일영사팔]년의 間[간]이니(西曆[서력] 紀元前[기원 전]二三三三[이삼삼삼]∼一二八七[일이팔칠]), 西隣[서린] 支那[지나]에서 는 그동안 唐[당]·虞[우]·夏[하]·殷[은]의 四王朝[사왕조]를 지내었다.

第七章[제칠장] 扶餘[부여]와 根本部[근본부] 南移[남이][편집]

壇君[단군]의 뒤에는 夫婁[부루]라고 일컫는 이가 朝鮮[조선]을 거느려 다 시 한 時代[시대]를 이루니, 옛적에는 國土[국토]와 時間[시간]을 人倫[인 륜]에 比擬[비의]하여 앞선 것을 父[부]라 하고, 뒷선 것을 子[자]라 하는 버릇이 있으므로, 이 事實[사실]을 古傳[고전]에는 壇君[단군]의 父[부]인 後[후]를 夫婁[부루]인 子[자]가 繼承[계승]하였다고 말하였다. 夫婁[부루] 는 본디 「불」이니, 古語[고어]에 神聖[신성] 又[우] 高貴[고귀]를 의미하 는 것으로, 또한 君主[군주]의 一[일] 稱呼[칭호]이요, 뒤에는 君王[군왕] 뿐 아니라 貴族[귀족]이나 高官[고관]의 名號下[명호하]에도 붙여 神冑[신 주] 聖孫[성손]의 의미를 가지게 한 것이다. 夫婁時代[부루시대]에 들면서 社會[사회]의 발달이 점점 速度[속도]를 더하게 된 中[중]에, 특별히 顯著 [현저]한 現象[현상]은 經濟的[경제적] 事情[사정]에 끌려서 國土[국토]의 중심이 새로운 方向[방향]으로 옮기기 시작한 것이니, 夫婁時代[부루시대] 는 곧 文化[문화]의 중심이 山上[산상]으로부터 漸次[점차]로 江邊[강변]으 로 옮기는 期間[기간]이었다.

原初[원초]의 「」들은 一[일]은 宗敎的[종교적] 理由[이유]와, 또 하나 는 防護上[방호상] 必要[필요]로 말미암아서 미상불 高山[고산]과 深谷[심 곡]에 많았었다. 그러나 狩獵[수렵]이 생활의 主[주]되는 方法[방법]이던 때에는 산곡 山谷[ ]이 오히려 便利[편리]하였을지도 모르지마는, 사회가 자 라고, 民衆[민중]이 늘고, 농업이 커짐을 따라서 深高[심고]한 곳은 차차 不便[불편]이 많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라의 中心[중심]이 차차 水原[수원] 으로부터 流域[유역]을 좇아 내려가서 水邊[수변] 平衍[평연]한 곳이 都邑 [도읍]·聚落[취락]을 짓게 되니, 그전에 나라가 높은 데 있기 때문에 「재」라 하고, 깊은 데 있기 때문에 「골」이라 부르던 것이, 뒤에 차차 「벌」이라고 일컬리는 벌어진 平野[평야], 곧 벌판으로 나라가 옮겨진 까 닭이다. 이 「벌」이 北方[북방]에서는 뒤에 扶餘[부여]로 轉[전]하고, 다 시 略[략]하여 「배」로 일컫게 되었다.

무론 自然[자연]의 힘에 依賴[의뢰]함이 크던 時代[시대]이매 地利[지리] 를 두터이 탄 이가 가장 優强[우강]한 勢力[세력]을 가지게 되니, 허다한 扶餘[부여]의 中[중]에 이런 곳 다섯이 생겼다. 松花江[송화강]을 낀 北扶 餘[북부여]로부터 鴨綠江[압록강] 谷地[곡지]의 卒本[졸본](西[서])扶餘[부 여], 豆滿江[두만강] 谷地[곡지]의 東扶餘[동부여], 大同江[대동강] 流域 [유역]의 王險[왕험](中[중])扶餘[부여], 漢江[한강]·錦江[금강]의 사이의 南扶餘[남부여]가 그것이니, 이 五扶餘[오부여]가 중심이 되어 여러 작은 「」들이 차차 그리로 統攝[통섭]되어 가는 것이 夫婁時代[부루시대]의 大勢[대세]이었으며, 이밖에 北[북]의 遼河[요하]에는 貉人[맥인]의 一扶餘 [일부여]와, 南[남]의 洛東江[낙동강]에는 辰人[진인]의 一扶餘[일부여]가 있어, 五扶餘[오부여] 이외의 勢力[세력]이 그리로 吸取[흡취]되는데, 前者 [전자]는 異民族[이민족]에게 부대끼는 장판이 되어서 마침내 큰 團體[단 체]를 形成[형성]하지 못하고, 後者[후자]는 세월과 한가지로 그 發達[발 달]이 자못 顯著[현저]하여졌다.

五扶餘[오부여]의 中[중]에서도 가장 高貴[고귀]한 傳統[전통]과 優强[우 강]한 세력을 가지는 者[자]가 宗敎[종교]의 배경과 經濟[경제]의 保障[보 장]에 의하는 특수한 尊榮[존영]을 누리어 居然[거연]히 宗主國[종주국] 노 릇을 하는 법인데, 初國[초국]이란 뜻과 한가지로 首邦[수방]을 의미하는 「朝鮮[조선]」이란 國號[국호]는 이 地位[지위]를 가진 이의 물건이 되었 었다. 처음에는 이 榮譽[영예]가 國祖[국조]의 發祥地[발상지]인 太伯山[태 백산]을 등진 관계로 北扶餘[북부여]에게 붙이었더니, 「白[백]」民族[민 족]의 발전이 南[남]으로 향할수록 그 前進[전진]의 要衝[요충]이요 分布 [분포]의 中心點[중심점]인 大同江邊[대동강변]의 王險扶餘[왕험부여]가 부 쩍 고개를 쳐들고, 더욱 北方[북방]에서처럼 사나운 異民族[이민족]의 侵陵 [침릉]을 당하는 일이 거의 없고, 도리어 貿易[무역]의 利[리]와 文化[문 화]의 도움을 가지고 오는 西隣[서린] 支那人[지나인]의 平和的[평화적] 移 住[이주]에 여러 가지 큰 힘을 장만하기 때문에, 그네의 物的[물적]·心的 [심적]의 모든 발달이 동무중에 우뚝하여져서 「朝鮮[조선]」의 地位[지위] 가 어느덧 中[중](王險[왕험])扶餘[부여]에게로 돌아가게 되고, 이로부터 大同江[대동강] 유역의 扶餘[부여]가 朝鮮歷史[조선역사]의 發展[발전]해 나가는 主軸[주축]이 되었다.

第八章[제팔장] 지朝鮮[조선]의 卓越[탁월][편집]

太陽[태양]을 시방 말로는 「해」라 하지마는, 옛날에는 「」라 하니, 「」는 시방 크다는 「크」와 같은 말로, 무릇 高大尊貴[고대존귀]한 것 을 부르는 이름이요, 太陽[태양]도 이런 뜻으로 「」라 이름함이었다. 「白[백]」民族[민족]은 자갸 民族[민족]의 本源[본원]이 통히 天國[천국] 으로서 나오고, 그 主權者[주권자]는 특히 天主[천주]의 直系子孫[직계자 손]임을 믿었는데, 그때의 天主[천주]는 시방과 같이 抽象的[추상적]의 하 느님이 아니라, 光明[광명]과 熱力[열력]으로써 天地[천지]를 主宰[주재]하 는 줄로 안 太陽[태양] 저것이니, 그러므로 자갸네의 主權者[주권자]가 天 主[천주]의 子孫[자손]이라 함은 곧 日[일]의 아들이라 함이요, 「白[백]」 民族[민족] 古國[고국]의 創業主[창업주]들이 總[총]히 日精[일정]으로 感 生[감생]되어 天帝子[천제자](혹 天王[천왕]·天王郞[천왕랑])로 稱呼[칭 호]되었음은 대개 이런 出處[출처]가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日子[일자]를 古語[고어]로 읽으면 「지」가 되니, 지는 변시 天帝子[[천제자]의 原語[원어]이며, 「당굴」이나 「얼검」이나 「불」이나 한가지로 그때에 임금을 부르던 한 이름이며, 또 「지」는 子裔[자예]를 의미하는 동시에, 種族[종족]·姓氏[성씨] 등의 轉義[전의]를 가져서, 「지」가 뒤에는 王號[왕호]로부터 王[왕] 一族[일족]의 種姓[종성]을 稱謂[칭위]하는 말을 지었다.

語義上[어의상]으로 보면 古代[고대]의 王者[왕자]나 王族[왕족]은 總[총] 히 「지」를 稱謂[칭위]할 수 있을 것이나, 夫婁時代[부루시대]에 와서 는 차차 用途[용도]가 局限[국한]되어서 「」라는 姓[성]도 北扶餘[북부 여]와 王險扶餘[왕험부여] 두 군데서나 쓰게 되고, 그중에도 「지」란 王號[왕호]는 新朝鮮[신조선]인 王險扶餘[왕험부여]에서만 쓰는 것이 되었 다. 그런데 大同江[대동강] 流域[유역]은 支那[지나] 중에서도 古文明地[고 문명지]인 山東半島[산동반도]로부터 살기 좋음을 取[취]하여 건너오는 支 지나인 那人[ ]들의 모여드는 한복판이므로, 漢土文化[한토문화]의 影響[영 향]이 일찍부터 현저하여, 言文[언문]과 制度[제도]와 乃至[내지] 民俗[민 속]·傳說[전설]까지도 彼此[피차]의 混淆[혼효]가 많게 되니, 「처샌」이 란 國號[국호]에 朝鮮[조선]이란 漢字[한자]를 充對[충대]함도 이때의 일이 요, 「」이란 古語[고어]를 「分黎[분려]」로 譯[역]하고, 그것이 約[약] 하여 「平[평]」이 되고 略[략]하여 「列[열]」이 되고, 다시 轉[전]하여 樂[락]이 되고(齊魯間[제노간]의 水[수]에 濼[락]이 있음으로써 脫來[탈래] 한 것), 일변 扶餘[부여]의 語形[어형]에 대하여 「浿[패]」의 字[자]를 對 [대]하게 된 것이 다 이때 이네의 짓이다.

그런데 支那[지나]에는 옛날 殷[은]이란 나라의 末年[말년]에 箕子[기자] 라 하는 王族[왕족]이요 重臣[중신]이요 또 聖人[성인]인 이가 周[주]라는 新王朝[신왕조]에 節[절]을 굽히기가 싫어서 東[동]으로 外國[외국]에 逃入 [도입]하였다는 傳說[전설]이 있더니, 文學[문학]으로써 朝鮮[조선]에 來仕 [내사]하던 支那人[지나인]들이 「지」와 箕子[기자]의 音相似[음상사] 하고, 그 建國[건국] 年代[연대]의 비스름하고, 또 朝鮮側[조선측] 古傳[고 전]의 변변치 아니한 것을 좋은 일만 여겨서, 朝鮮[조선]·支那[지나]의 사 이에 예부터 特殊[특수]한 交涉[교섭]이 있음을 立證[입증]하여, 自己[자 기]네들의 地位[지위] 確保[확보]에 便宜[편의]하게 하자는 主見[주견]으로 서, 「지」를 箕子[기자]에 附會[부회]하게 되었는데, 朝鮮[조선]의 「지」들도 域內[역내]에 더부살이하는 支那人[지나인]을 統制[통제]하 는 上[상]으로나, 또 貿易[무역]과 文化[문화]를 받아 오는 支那[지나]本土 [본토]에 대한 便宜[편의] 獲得上[획득상]으로나, 그것이 또한 해롭지 아니 하므로, 有意無意[유의무의]하게 그런 체하여, 드디어 箕子[기자]의 假名 [가명]이 「지」의 實體[실체]를 가리게 되었다.

土味[토미]의 기름진 平野[평야]와, 流勢[유세]의 느린 大水[대수]와, 平 和[평화]의 이어나가는 許久[허구]한 歲月[세월]을 가지고서 「지」朝 鮮[조선]의 産業[산업]은 長足[장족]의 進步[진보]를 이루었다. 田蠶[전잠] 과 織作[직작]이 具備[구비]하게 되었다. 生活[생활]의 豐裕[풍유]를 따라 서 道義[도의]와 禮俗[예속]이 크게 발달되고, 또 배편마다 들어오는 支那 文化[지나문화]를 攝取[섭취]하여서 人文的[인문적] 發達[발달]은 불일 듯 하였다. 震域[진역]에 나라다운 나라의 始初[시초]는 실로 「지」朝鮮 [조선]에 있었다. 倨傲[거오]하고 스스로 尊大[존대]하는 支那人[지나인]도 大人[대인]·君子[군자]·善人[선인]·仁賢之邦[인현지방]이란 讃辭[찬사] 를 아끼지 않을 만한 것이 있었다. 특히 밤에 문을 닫을 필요가 없도록 盜 賊[도적]이란 事實[사실]이 없음과, 男女[남녀] 風紀[풍기]의 嚴正[엄정]이 確保[확보]되어, 그 家庭生活[가정생활]의 깨끗한 것과는 크게 外人[외인] 의 注意[주의]를 끌었다.

第九章[제구장] 더부살이의 북새질[편집]

夫婁時代[부루시대]의 震域[진역]에 있어서 가장 높은 文化[문화]와, 많은 富力[부력]과 편리한 生活條件[생활조건]을 가진 곳이 大同江[대동강] 유역 이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視線[시선]이 이리로 집중되고, 또 福土[복 토] 찾는 이의 발길도 대개 이리로 향하여 大同江[대동강] 차지가 當代[당 대]에 卓越[탁월]해지는 最大[최대] 條件[조건]이 되매, 한참 동안의 部族 的[부족적]과 民族的[민족적]의 競爭[경쟁]은 總[총]히 大同江[대동강]을 목표로 하여 演出[연출]하게 되었다. 이 시대의 西隣[서린] 支那[지나]는 이른바 戰國時代[전국시대]를 前後[전후]로 하여 전쟁이 끊이지 아니하고, 또 間間[간간]이 큰 饑饉[기근]이 덤비어서, 부대끼다 못한 人民[인민]이 사방으로 離散[이산]할 때에, 그 東北方[동북방] 流民[유민]은 農業[농업] 과 平和性[평화성]으로 소문난 震域[진역], 특히 大同江[대동강] 유역으로 꾀어듦이 自然[자연]한 趨勢[추세]이었다. 또 貿易[무역]의 利[리]와 조선 에 오면 優待[우대]받는 등 現實的[현실적] 理由[이유]와, 인간의 福地[복 지]는 東方[동방]에 있다는 傳統的[전통적] 信念[신념]은 그네의 東方[동 방] 進出[진출]을 크게 誘導[유도]하여, 山東半島[산동반도]로서 風帆[풍 범]의 힘으로 바다를 건너오는 그 東方[동방] 齊魯[제노]와, 陸路[육로]로 薊門[계문]을 나서서 遼野[요야]를 뚫고 나오는 그 北方[북방] 燕趙[연조] 의 流民[유민] 떼가 더럭더럭 大同江[대동강]을 바라고 들이밀렸다. 그리하 여 이네의 더부살이 聚落[취락]이 총총들이로 생기고, 民族的[민족적] 衝突 [충돌]의 端緖[단서]가 이 때문에 열리게 되었다.

支那[지나]의 歸化人[귀화인]들은 아무러했든지, 그때의 本土人[본토인]에 비하여 文化的[문화적]으로 優勝[우승]한 사람들이매, 이네의 侵入[침입]이 朝鮮文化[조선문화]의 變通[변통]에 대한 一大刺戟[일대자극]인 동시에, 文 學[문학]과 技術[기술]로써 「지」王朝[왕조]의 벼슬사는 이도 적지 아 니하여, 그 社會的[사회적] 地位[지위]와 政治的[정치적] 勢力[세력]이 차 차 만만치 아니하게 되어 갔다. 처음에야말로 平安[평안]히 살게 된 것만을 즐겨하였지마는, 人群[인군]이 慾心[욕심]과 한가지 늘매, 政治的[정치적] 무슨 계획이 그중으로서 일어나지 않을 수 없더니, 이 機運[기운]이 한창 爛熟[난숙]한 夫婁時代[부루시대]의 末期[말기]에 이르러 一大[일대] 陰謀 家[음모가]가 나와서, 마침내 重大[중대]한 政治的[정치적] 變革[변혁]을 만들어 내었다. 始祖[시조] 「지」로부터 四○[사영]餘世[여세]를 지낸 準王[준왕]의 時節[시절]에, 漢高祖[한고조]의 治下[치하]에 있는 燕[연]이 叛逆[반역]을 꾀하다가 滅亡[멸망]하매, 그 國人[국인] 衛滿[위만]이란 者 [자]가 亡命[망명]하여 千餘人[천여인]의 黨[당]을 거느리고 鴨綠江[압록 강]을 건너 들어와서, 容儀[용의]와 服色[복색]까지 白民[백민]의 俗[속]으 로 고쳐 信順[신순]의 誠[성]을 보이면서 準王[준왕]에게 降服[항복]하고, 西界[서계]에 있어서 朝鮮[조선]의 藩屛[번병] 노릇 하기를 願[원]하였다. 準王[준왕]이 그 亡命[망명]하여 갈 바 없는 사정을 斟酌[짐작]하고, 또 恩 義[은의]로써 기르면 설마 어떨 것 아니리라 하여, 北方[북방] 근심을 잊으 려던 김에 그 所請[소청]을 許施[허시]하여 博士[박사]를 시키고 淸川江[청 천강] 부근 百里[백리]의 地[지]를 封[봉]하여 西邊[서변]을 지키게 하였 다.

원래 淸川江[청천강]으로부터 鴨綠江[압록강]의 사이에는 그전부터 支那 [지나]로서 避亂[피난]해 들어온 사람 數萬口[수만구]를 두었으니, 滿[만] 의 眞意[진의]는 실로 이 勢力[세력]을 이용하자 함이었다. 滿[만]이 한참 은 信寵[신총]을 얻느라고 忠勤[충근]을 表[표]하기도 하였지마는, 漢[한] 의 亡黨[망당]을 誘引[유인]함이 많아지고, 또 眞番[진번]·臨屯[임둔] 기 타의 朝鮮[조선] 對立者[대립자]를 和同[화동]하여서 羽翼[우익]이 이미 이 루매, 거짓 사람을 朝廷[조정]에 보내어서 漢兵[한병]이 一○道[일영도]로 침입하니 들어가 宿衛[숙위]하겠다 하고, 軍士[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侵伐 [침벌]하매, 준비 없는 準王[준왕]이 싸우다가 對敵[대적]하지 못하고, 그 左右[좌우] 宮人[궁인]을 거느리고 海路[해로]로 韓地[한지]로 가서 韓王 [한왕]이라고 일컫고, 그 故地[고지]에는 衛滿朝鮮[위만조선]의 出現[출현] 을 보게 되었다. 이것은 盜賊[도적]으로 盜賊[도적]을 막고, 또 집안싸움에 外人[외인]의 힘을 빌다가, 덕을 보기는새로에 도리어 큰 逢變[봉변]을 한 朝鮮[조선] 사람의 첫 經驗[경험]이요, 이 뒤 四[사], 五百年[오백년]까지 나가는 大江[대강] 爭奪戰[쟁탈전]의 긴 「필름」중에 가장 애달픈 場面[장 면]이 되는 民族的[민족적] 汚辱[오욕]이다. 그러나 勢力[세력]의 강한 더 부살이를 너무 많이 붙인 당연한 歸結[귀결]이었다.

夫婁時代[부루시대]는 「지」朝鮮[조선]의 興亡[흥망]으로써 歷年[역 년]을 삼으니, 紀元[기원] 一二一二[일이일이]년으로부터 二一四○[이일사 영]년까지에 當[당]한다(西紀前[서기전] 一一二二[일일이이]∼同[동] 一九 四[일구사]).

第一○章[제일영장] 衛滿[위만] 新王朝[신왕조]의 影響[영향][편집]

衛滿朝鮮[위만조선]의 出現[출현]은 여러 가지로 朝鮮史上[조선사상] 初有 [초유]의 大事件[대사건]이었다. 國土[국토]의 處女性[처녀성]이 더러워진 것도 큰일이겠지마는, 그보다도 더 이때문에 생긴 歷史的[역사적] 波動[파 동]에 중대한 意義[의의]가 있었다. 첫째는 朝鮮人[조선인]에게 民族的[민 족적] 感情[감정]이 비로소 생겼음이니, 이때까지의 싸움과 겨눔으로 말하 면 部族[부족]들끼리에 그쳤고, 설사 異民族[이민족]하고 相持[상지]가 생 긴다 해도 局部的小派瀾[국부적소파란]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러니, 衛滿 [위만]의 일은 오랜 國本[국본]이 처음으로 흔들리고 生活[생활] 自由[자 유]의 主客關係[주객관계]가 뒤집힐 뿐 아니라, 백췌 딴판의 治制[치제]가 온갖 傳統[전통]을 無視[무시]하게 된 일이매, 그네들의 가슴에 지내보지 못하던 一種[일종]의 心理[심리]가 激發[격발]되지 아니치 못하니, 이것이 그로 하여금 氏族[씨족]·部族[부족] 이외에 民族[민족]이란 것이 있음을 가르쳐 준 始初[시초]이다. 둘째는 질펀한 땅에 성긋하게 헤어졌던 「白 [백]」民族[민족]의 세력을 톡톡하게 엉기어들게 하는 기회를 주었음이니, 이때까지로 말하면 北[북]으로 黑龍江[흑룡강]으로부터 南[남]으로 瀚海[한 해]에 이르는 萬里大域[만리대역]에 극히 稀薄[희박]한 統制力[통제력]으로 하늘이나 섬기고 배나 불리면서 살았었지마는, 異民族[이민족]의 주먹이 腹 心[복심]을 질러서 땅이 南北[남북] 두 동강이에 나면서 그 脅威[협위]가 부근의 모든 部族[부족]에게 미치매, 이때까지 모르던 社會的[사회적] 緊張 [긴장]의 필요를 느끼어 民族的[민족적] 感覺[감각]이 部族的[부족적] 結束 [결속]까지를 탄탄하게 하였다.

또 한 가지 중대한 일은, 「지」朝鮮[조선]의 南遷[남천]에 因[인]하 여 南方[남방] 韓地[한지]의 開發[개발]이 촉진된 것이니, 이때까지의 韓地 [한지]로 말하면, 北方[북방]으로 밀려 내려오는 部族[부족]의 쓰레기통 비 슷하여 모든 것이 零星[영성]하고 幼稚[유치]하더니, 全[전] 「白[백]」民 [민] 중의 最高[최고] 權威[권위]이던 「지」王朝[왕조]의 南方[남방] 移轉[이전]은 優秀[우수]한 人物[인물]과 文化[문화]의 一時[일시] 流入[유 입]을 보게 되고, 겸하여 이 波動[파동]이 南方[남방]의 구석구석까지 傳及 [전급]하여, 잠잠하던 嶺湖[영호] 地方[지방]이 頓然[돈연]히 活氣[활기]를 띠게 되었다. 韓地[한지]에 나라다운 나라의 생김과, 朝鮮文化[조선문화]의 정통 正統[ ]이라고 볼 것이 南方[남방]에 많이 떨어졌음은 대개 「지」 의 옮겨옴으로부터 비롯한 것이다. 또 한덩어리와 외줄기로 내려오던 「白 [백]」民族[민족]과 朝鮮國[조선국]과 壇君文化[단군문화]가, 거연히 南北 [남북] 兩部[양부]에 나뉘어 多少[다소]의 異色[이색]을 띠게 된 것도, 朝 鮮[조선]의 허리통인 大同江[대동강] 유역에 異民族[이민족]의 勢力[세력] 이 이로부터 한참 동안 가로막고 있어서 各別[각별]한 발달을 이루게 한 것 과, 朝鮮[조선]인 中扶餘[중부여]의 衰移[쇠이]로 因[인]하여 扶餘[부여]의 中心[중심]이 없어지자 한쪽에서 곱닿게 지내온 北扶餘[북부여]의 實力[실 력]이 부쩍 늘어서 「白[백]」民族[민족]의 根本勢力[근본세력]이 다시 한 번 北[북]으로 돌아간 듯한 것 등은 다 衛滿[위만]의 變[변] 뒤에 생긴 注 意[주의]할 現象[현상]이다.

衛滿[위만]의 朝鮮[조선]이란 것은 要[요]하건대 朝鮮[조선] 本土人[본토 인]과 支那人[지나인]과의 聯立國[연립국]이었다. 政治的[정치적] 能力[능 력]으로는 미상불 支那人[지나인]이 얼마 낫지마는, 民族的[민족적] 勢力 [세력]으로는 물론 朝鮮[조선] 本土人[본토인]의 對敵[대적]이 아니니, 다 만 權力[권력]만으로 이 많은 根基[근기] 있고 反感[반감]품은 異民族[이민 족]을 거느려 감은 미상불 그네의 큰 頭痛[두통]거리였다. 이 新局面[신국 면]에 대한 反抗運動[반항운동]은 다만 純然[순연]한 民團[민단] 편에만 있 은 것 아니라, 衛氏[위씨]와 좋아하는 듯하고 또 그의 벼슬까지 한 本土人 [본토인]의 協同的[협동적] 分子[분자]의 중에서 더 根柢[근저] 있는 生長 [생장]을 보였었다. 滿[만]이 처음 「지」王朝[왕조]를 쫓아내고, 朝鮮 [조선]의 이름을 무릅써 王險[왕험]에 都[도]를 定[정]하고 새 王朝[왕조] 를 세우매, 즉시 漢[한]에 欵[관]을 納[납]하여 그 外臣[외신]이 되어서 東 方[동방] 여러 部族[부족]의 漢土[한토] 侵擾[침요]를 막기로 自擔[자담]하 고, 그 兵威[병위]와 財物[재물]을 얻어서 眞番[진번]·臨屯[임둔] 등을 服 屬[복속]시켜서 얼른 方[방] 數千里[수천리]의 大國[대국]을 만드니, 한때 의 氣勢[기세]는 壯[장]하지 않은 것 아니었으나 엉터리뿐이요, 內實[내실] 은 그의 特長[특장]이 財利[재리]와 榮爵[영작] 같은 詭譎[궤휼]로써 本土 [본토]의 여러 部族[부족]을 얽어 붙인 것이매, 머지 아니하여 破綻[파탄] 이 內部[내부]로서 생길 것은 애적부터 決定[결정]된 일이라고도 할 만하였 다.

第十一章[제십일장] 漢[한]나라 四郡[사군]의 幻滅[환멸][편집]

衛滿[위만]의 新王朝[신왕조]는 이렇게 不實[부실]한 基盤[기반]의 위에서 아들을 거쳐 孫[손]인 右渠[우거]에게로 넘어갔다. 새 世界[세계]가 배포되 었다 하매, 漢[한]으로서 亡歸[망귀]하는 무리가 와짝 늘고, 이럭저럭 財物 [재물]도 퍽 가멸해지며, 驕虐[교학]이 생겨서 漢[한]에 대하여 約條[약조] 를 지키지 아니할 뿐 아니라, 더욱 南震[남진] 여러 나라와 漢[한]과의 貿 易[무역] 길을 막아 놓고 그 이익을 壟斷[농단]하매, 本土人[본토인]과 漢 [한]의 朝廷[조정]에서 다 怨憤[원분]으로써 대할밖에 없었다. 그렇지 아니 하여도 억지로 누른 本土人[본토인]의 불평은 爆發[폭발]할 기회만 기다리 는 참인데, 그 뒷배 보는 자리와 이렇게 어긋남을 보매, 本土人[본토인]들 은 좋다꾸나 하고 이 틈을 타서 자갸네의 宿志[숙지]를 이루려 하였다. 그 리하여 本土人[본토인]과 漢廷[한정]의 사이에 얼마쯤 默契[묵계]가 생긴 결과는, 兩國間[양국간]의 殺傷事件[살상사건] 남을 기회로 하여 漢[한]으 로부터 水陸[수륙] 兩路[양로]로 大軍[대군]을 發[발]하여 王險城[왕험성] 을 攻破[공파]하게 되었다. 王險城[왕험성]이 워낙 險固[험고]하고 또 그 水陸[수륙] 兩軍[양군]의 사이에 軋轢[알력]과 猜忌[시기]가 있어 싸움은 의외로 길게 끌었다. 필경은 本土人[본토인]으로서 右渠[우거]의 治下[치 하]에서 將相[장상] 노릇을 하던 路人[노인]·韓陰[한음](一作[일작] 陶 [도])·參[삼]·王唊[왕겹] 등이 漢[한]으로 더불어 通謀[통모]하여 內部 [내부]로써 攪亂[교란]을 힘써, 마침내 右渠[우거]와 및 그 黨與[당여]를 죽여서 衛氏[위씨]의 王朝[왕조]를 覆滅[복멸]하였다. 衛氏朝鮮[위씨조선] 은 紀元[기원] 二一四○[이일사영]년으로부터 二二二六[이이이육]년까지, 歷年[역년]이 무릇 八七[팔칠]년이었다(西紀前[서기전] 一九四[일구사]∼一 ○八[일영팔]).

그러나 衛氏[위씨] 王國[왕국]의 없어진 자리에는 곧 漢[한]으로부터 郡縣 [군현]을 두니, 모처럼 路人[노인] 등 여러 愛國者[애국자]의 光復運動[광 복운동]도 남의 힘을 빌어 한 탓으로, 마침내 범을 쫓고 승냥이를 맞아들인 격이 되고, 얻어 가진 것은 이 몇 사람이 漢[한]으로부터 侯[후]의 爵賞[작 상]을 탐에 그쳤다.

그러나 朝鮮人[조선인]의 노력은 다른 方面[방면]에서 적지 않게 갚아졌었 다. 이렇게라도 하여 정군산 같은 衛氏[위씨]를 들어낸 것은, 첫째 그네에 게 政治的[정치적]과 外交的[외교적]으로 귀중한 새 體驗[체험]이 되었으 며, 둘째 王險城[왕험성]의 沒落[몰락]으로 因[인]하여 大同江[대동강]유역 에 몰려 있었다 할 만한 支那[지나]의 人物[인물]·文化[문화]가 기왕보다 더 활발한 形勢[형세]로써 東南[동남] 兩方[양방]의 먼 데까지 散布[산포] 하는 기회를 지었었다. 더욱 歷谿卿[역계경]을 先頭[선두]로 한 一團[일단] 과 같이 數千人[수천인]씩의 큰 移民團[이민단]이 시방의 慶尙道[경상도] 南端[남단]까지도 이동해 나가서, 그 餘波[여파]가 日本[일본]에까지 미친 것은, 미상불 東方史上[동방사상]의 큰 變運[변운]이었다.

右渠[우거]를 집어치운 漢[한]의 임금은 功業欲[공업욕]이 대단한 武帝[무 제]라, 戰勝[전승]의 餘威[여위]로써 東方[동방]의 富力[부력]을 吸收[흡 수]할까 하여, 衛氏[위씨]의 舊地[구지]인 시방 平安道[평안도]의 大部[대 부], 黃海道[황해도]의 全幅[전폭]과 京畿道[경기도]의 一部[일부]에는 樂 浪[낙랑]이란 郡[군]을 두고, 다시 그 近旁[근방]의 地[지]를 계획 중에 넣 어서 沃沮[옥저]의 地[지]인 시방 咸鏡南道[함경남도]의 大部[대부]에는 眞 番郡[진번군]을 두고, 그 南[남]인 咸南[함남]의 南端[남단]에서 平北[평 북]의 北半[북반]을 넣고, 佟佳江[동가강] 유역까지 걸쳐서는 玄菟郡[현도 군]을 두고, 濊[예]의 地[지]인 시방 江原道[강원도]의 地[지]에는 臨屯郡 [임둔군]을 두니, 이것이 이른바 漢[한]의 四郡[사군]이다. 그러나 團結[단 결]과 反抗[반항]이 어떻게 큰 威力[위력]을 發揮[발휘]하는 줄을 實驗[실 험]한 本土人[본토인]들은 衛氏[위씨] 이래로 練磨[연마]하고 長育[장육]해 가진 民族的[민족적] 反撥力[반발력]으로써 기약지 아니하고 一致行動[일치 행동]을 취하여, 四方[사방]으로서 漢[한]의 세력을 排除[배제]하매, 南方 [남방]에 있는 眞番[진번]·臨屯[임둔] 兩郡[양군]은 빈 이름에 그치다가, 그나마 二六[이육]년 뒤에는 아주 撤廢[철폐]치 아니치 못하고, 玄菟郡[현 도군]도 또한 沃沮[옥저]의 地[지]에서 撤退[철퇴]하여 渾河[혼하]의 上流 [상류]로 郡治[군치]를 옮기고, 오직 漢人[한인]의 세력이 뿌리박힌 樂浪郡 [낙랑군]만 한참 옛 面目[면목]을 保維[보유]하여 南震[남진] 여러 民邦[민 방]의 交涉[교섭]을 맡았었다.

第十二章[제십이장] 大同江[대동강] 中心[중심]의 時代[시대][편집]

支那[지나]의 交通[교통]은 貿易[무역]과 文化[문화] 輸入[수입]으로 그때 震域[진역] 諸國[제국]의 生活發展上[생활발전상] 絶對[절대] 必要事[필요 사]니, 林産[임산]·水産[수산]과 武器[무기] 등을 가져다가, 그 대신 儀器 [의기]·服飾[복식] 등 奢侈品[사치품]을 얻어 옴이 常例[상례]이었다. 그 런데 직접으로 漢[한] 遼東郡縣[요동군현]과 交易[교역]도 하되 대개는 손 쉬운 樂浪郡[낙랑군]을 거쳐 하니, 이러므로 樂浪[낙랑]은 此方[차방]에 대 한 總交涉衙門[총교섭아문]·總稅務司[총세무사]를 兼[겸]하여, 그 威權[위 권 이 자못 ] 크고 또 財寶[재보]의 淵叢[연총]이 되어서 그 질번질번함이 비 길 데 없었다. 樂浪太守[낙랑태수]를 古史[고사]에 혹 樂浪王[낙랑왕]이라 함은 그 風力[풍력]이 王[왕]만하였기 때문이었다. 樂浪郡[낙랑군]에는 매 양 二○[이영] 內外[내외]의 屬縣[속현]이 있었으나, 그 中心[중심]은 시방 의 平壤[평양] 부근으로, 옛 國號[국호]를 취하여 朝鮮[조선]이라 하던 城 [성]이니, 때를 따라 江[강]의 南北[남북]으로 城[성]을 옮아다니기는 하였 으나 언제든지 붙들고 놓지 못한 것은 大同江[대동강]이었다. 원체 開明[개 명]도 오래된 곳이어니와, 겸하여 支那[지나] 本國[본국]에 대한 交通上[교 통상]의 利便[이편]과 地勢[지세]가 險固[험고]하여, 防禦上[방어상] 여러 長處[장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樂浪郡[낙랑군]이 있기까지 朝鮮 歷史[조선역사]의 中心[중심]은 依然[의연]히 大同江[대동강] 中心[중심]의 時代[시대]를 지었으니, 近來[근래] 續續[속속]히 發掘[발굴]되는 樂浪時代 [낙랑시대]의 遺蹟[유적]·遺物[유물]을 보면, 그때 그네의 生活狀態[생활 상태]가 어떻게 富裕[부유]하고 奢麗[사려]하였음을 짐작할 것이다.

시방 平壤市街[평양시가]의 西[서]인 箕子井田[기자정전]이라고 전하는 古 都市[고도시]의 遺蹟[유적]인 듯한 곳에서 南[남]으로 大同江[대동강]을 건 너가면, 地名[지명]도 土城里[토성리]라고 부르는 오랜 土城[토성] 자리가 있어 밭 된 도랑 가운데로서 분명한 樂浪郡[낙랑군]의 遺物[유물]이 나오 고, 그 부근에서도 그러하며, 또 그 東南[동남]의 平丘[평구]에 千數百[천 수백]의 古墳[고분]이 纍纍[누누]히 벌려 있어 塼槨[전곽] 又[우] 木槨[목 곽]의 중에서 金[금]·銅[동]·玉[옥]·陶[도] 여러 가지 漢代[한대]의 古 器物[고기물]이 퍽 많이 나옴으로써 이 一帶地[일대지]가 어느 時期[시기] 의 樂浪郡治[낙랑군치] 있던 자리임을 알았다. 여기서 발견한 古物[고물]에 는 玉[옥]·璧[벽]·鐘[종]·鼎[정]·瓦當[와당]·印章[인장] 등 諸種[제 종]이 있고, 더욱 多數[다수]한 당시의 漆器[칠기]가 나왔는데, 거기 精妙 [정묘]한 紋畫[문화]와 한가지 正確[정확]한 記銘[기명]이 있어 二[이]천 년 전의 進步[진보]한 工藝[공예]를 놀라게 하며, 또 어느 한 金製[금제] 帶飾[대식]에는 金線[금선]·金粒[금립]을 붙여서 六龍[육룡]이 꿈틀거리는 形相[형상]을 나타낸 것이 있어, 그 技工[기공]의 精巧[정교]함을 感嘆[감 탄]케 하였다.

더욱 最近[최근]에 發掘[발굴]된 王盱墓[왕우묘]란 것은 大約[대약] 一 [일]천 八[팔],九[구]백년 전의 營造[영조]로, 그 木槨[목곽]은 완전히 남 아 있는 東洋[동양] 最古[최고]의 木造[목조] 建築[건축]으로도 稀奇[희기] 하거니와, 모든 것이 埋藏[매장]하던 당시의 상태대로 곱다랗게 있고, 또 布帛[포백]·器具[기구]까지 實際生活[실제생활]에 쓰이던 완전한 實物[실 물]이 들어 있어, 二[이]천 년 전의 文化[문화]와 생활을 徵驗[징험]하는 귀중한 자료인데, 거기서 나온 漆器[칠기]는 樣式[양식]·手法[수법]이 더 욱 精巧[정교]하고, 그중에는 東洋[동양] 最古[최고]의 純繪畵[순회화]라 할 것도 들어 있어, 여러 가지로 크게 價値[가치] 있는 것이며, 더욱 그것 이 一微官[일미관]의 무덤이건마는, 漆盃[칠배]·漆器[칠기]·粧奩(장렴)· 樂器[악기] 등 모든 所入[소입]이 당시 生活[생활]의 대체 奢侈[사치]스러 움을 알게 함이 퍽 재미있는 것이다.

平壤[평양]에서 西[서]으로 百里許[백리허]를 나가면 龍岡郡[용강군]에 於 乙洞[어을동] 古城[고성]이란 土城[토성] 자리가 있고, 그 근처에 一古碑 [일고비]가 있는데, 그 碑文[비문]을 判讀[판독]한 결과로, 거기가 樂浪郡 [낙랑군]의 一屬縣[일속현]인 秥蟬[점선]의 故址[고지]임을 알았다. 이 碑 [비]는 대개 一[일]천八[팔]백 년 전에 세운 것으로 推定[추정]되어, 域內 [역내] 最古[최고]의 金石遺物[금석유물]이요, 그 글씨도 漢代[한대]의 古 隸[고예]를 짐작하기에 훌륭한 實跡[실적]이 되거니와, 더욱 그 辭意[사의] 는 神祠[신사]를 세우고 거기 위한 太平山君[태평산군]께 神光[신광]을 내 리사 五穀[오곡]이 풍성하고 境內[경내]가 安穩[안온]하게 해 주시기를 祈 祝[기축]한 것이어서, 당시 漢人[한인]의 사이에 本土人[본토인]의 信仰[신 앙]하는 山神[산신]이 國神[국신]으로 尊崇[존숭]된 것을 알고, 또 그 對象 [대상]은 朝鮮[조선] 最高[최고]의 神體[신체]요, 그러면 太白山神[태백산 신], 곧 壇君[단군]이실 것을 짐작할 수 있으므로, 古史[고사] 稽考上[계고 상]에 대단히 중요한 것이 된다. 山君[산군]의 名號[명호]에 頭字[두자]가 없어졌으므로 꼭 말할 수는 없으나, 필시 太白[태백]의 一類語[일유어]인 太平[태평]일 것은 平壤[평양]의 平[평]이 또한 古語[고어] 「」의 轉譯 [전역]임으로써 짐작할 듯하다. 大同江[대동강]은 본디 浿水[패수]라 하던 것이니, 浿[패]는 扶餘[부여]의 約[약]해진 것이요, 扶餘[부여]는 「」 「」의 略[략]임이 전에 말한 것과 같으며, 또 古語[고어]에 長流水[장류 수]를 「냥」이라 하니, 시방 平壤[평양]이란 이름은 실상 「냥」의 의 ㄹ의 ㄴ으로, ㅇ으로 轉[전]하여서 생긴 것이요, 또 平[평]과 白[백]은 다 른 데도 「」의 譯語[역어]로 共通[공통]한 證據[증거]가 있은즉 秥蟬碑 [점선비]에 보인 것은 본디 太平山君[태평산군] 即[즉] 太伯山君[태백산군] 으로, 壇君[단군]의 漢文的[한문적]으로 雅化[아화]된 이름임이 의심 없을 까 한다. 이런 碑[비]는 다른 데도 있었겠지마는 다 없어지고, 秥蟬[점선] 의 그것만 남은 것인 듯하다.

第十三章[제십삼장] 樂浪[낙랑] 四圍[사위]의 諸民邦[제민방][편집]

이때 樂浪[낙랑]을 에둘러서 平和[평화]로이는 經濟的[경제적] 連絡[연락] 을 取[취]하고, 수에 틀리면 武力[무력]으로써 근대던 「白[백]」族[족]의 民邦[민방]은 대개 어떠한 것이 있었던가. 시방으로부터 一[일]천 七[칠], 八[팔]백 년전의 形勢[형세]로써 그네의 情形[정형]을 鳥瞰[조감]하여 보 자. 樂浪郡[낙랑군]의 南[남]인 시방의 三南[삼남]은 먼저 辰[진]이라 하다 가 뒤에 韓[한]이라 한 것이니, 小白山系[소백산계]의 大榦[대간]을 境界 [경계]로 하여 그 西[서]인 시방의 兩湖[양호]는 馬韓[마한]이라 하고, 그 東[동]인 시방의 慶尙道[경상도]는 辰韓[진한]이라 하고, 辰韓[진한]의 중 에서 시방 慶尙南道[경상남도] 중의 東北[동북] 一隅[일우]만을 除[제]한 부분을 加洛[가락] 혹 弁辰[변진] 혹 弁韓[변한]이라 하여 合[합]하여 三韓 [삼한]이라 하니, 각각 수십 개의 地方自治體[지방자치체]로 成[성]한 一聯 邦[일년방]이었다. 크면 數萬戶[수만호], 작으면 數千戶[수천호]씩의 小邦 [소방]이 많은 때에는 七[칠], 八○個[팔영개]에 달하였는데, 國[국]마다 元首[원수]가 있어 臣智[신지]라 일컬으니, 그 先[선]은 다 馬韓[마한]에서 나왔고, 다시 都元首[도원수]가 있어 月支國[월지국]에 都[도]하고 辰王[진 왕]이라 일컬으니, 또한 반드시 馬韓人[마한인]에서 뽑아서 推戴[추대]하는 법이었다. 이렇게 治者[치자] 階級[계급]이 어디서든지 반드시 馬韓人[마한 인]임은 대개 馬韓[마한]의 建國[건국]이 가장 앞서고, 또 그 血統[혈통]이 朝鮮[조선]의 正脈[정맥]을 傳[전]하였다 함에서 나옴인 듯하였다. 뒤에 「지」王朝[왕조]가 끊어졌건마는, 韓人[한인]들이 여일히 그 祭祀[제 사]를 받들었음도 그를 神裔[신예]로 알기 때문일 것이다. 韓[한]은 다 農 業國民[농업국민]이요, 蠶桑[잠상]과 織作[직작]에 能[능]하였으며, 특히 辰韓[진한]에는 鐵產[철산]이 있어, 北[북]으로 支那[지나]와 南[남]으로 倭[왜]에 대한 큰 貿易品[무역품]을 지었으니, 鐵[철]의 一字形[일자형]에 銕[철]이 있음은 鐵[철]이 東夷[동이]의 金[금]인 意[의]를 먹음인 것이다. 樂浪[낙랑]의 東[동]이요, 辰韓[진한]의 北[북]인 시방 江原道[강원도]의 地[지]에는 濊[예]가 있었으니, 山川[산천 疆理[강리를 따라 許多[허다]한 部族[부족]에 나뉘었으며, 北方[북방]에는 不耐濊[불내예]란 別部[별부]가 있어 드러났었다(아마 시방 元山[원산] 近地[근지]). 農蠶[농잠] 織作[직 작]이 다 행하고, 星象[성상] 보기와 測候[측후]하기에 능함으로 이름 있었 으며, 海物[해물]과 林產[임산]의 밖에 檀弓[단궁]이라는 特產[특산]으로써 漢郡[한군]에 交易[교역]을 행하였으며, 또 商業的[상업적] 遠征[원정]을 어려워하지 아니하여, 진작부터 間關數千[간관수천] 里[리]의 遼東[요동]까 지 나다니기를 例事[예사]로 알았다. 濊[예]의 北[북]인 시방 咸鏡道[함경 도]의 地[지]에는 沃沮[옥저]가 있어 南北[남북] 兩部[양부]에 갈렸었으니, 본디 眞番[진번]의 地[지]로 나중 東扶餘[동부여]를 이룬 곳이요, 일찍 狼 林山脈[낭림산맥]을 중간에 두고 그 西方[서방]에도 居[거]하여, 東西[동 서] 兩部[양부]에 나뉘었으므로, 西沃沮[서옥저] 없어진 뒤에도 그 버릇이 떨어져서 東沃沮[동옥저]라고도 일컬었다. 그중에 여러 部落[부락]이 있고, 部落[부락]마다 加[가], 곧 大人[대인]이 있고, 그 위에 大加[대가]가 있어 統率[통솔]하였으나, 節制[절제]가 잘 行[행]하지 못하였었다. 貊布[맥포] 가 名產[명산]이요, 또 魚鹽[어염]의 利[리]가 있어서 平時[평시]에는 交易 品[교역품]이 되고, 受屈[수굴]할 때에는 貢物[공물]이 되었었다. 沃沮[옥 저]의 北[북]인, 시방 豆滿江[두만강] 저편에는 挹婁[읍루]라는 部族[부족] 이 있어서, 開化[개화]가 가장 뒤졌었으니, 오래도록 石器使用民[석기사용 민]으로 있어서, 楛矢[호시]와 靑石鏃[청석촉]으로써 射獵生活[사렵생활]을 하여 弓矢[궁시]의 毒[독]함으로써 남의 무서워하는 바 되고, 유명한 挹婁 貂[읍루초]란 것으로써 交易[교역]을 行[행]하였었다.

沃沮[옥저]의 西[서]와 樂浪[낙랑]의 北[북]인, 시방 鴨綠江[압록강] 中流 域[중류역]으로부터 渾河[혼하] 流域[유역]에까지 걸쳐서, 西[서]으로 漢 [한]의 遼東郡縣[요동군현]에 隣接[인접]한 것이 高句麗[고구려]니, 卒本扶 餘[졸본부여]를 中心[중심]으로 하여 盖馬[개마]·沸流[비류] 등 許多[허 다]한 部族[부족]에 갈렸다가, 뒤에 여러 번 社會的[사회적] 發達[발달]을 지내서 桂婁[계루](內[내], 黃[황])·絶那[절나](北[북], 後[후])·順那[순 나](東[동], 左[좌])·灌那[관나](南[남], 前[전])·涓那[연나](西[서], 右 [우]) 등 五部[오부]의 制[제]를 세워 가졌다. 部[부]마다 元首[원수]가 있 어 大加[대가]라 일컫고, 그 위에 總王[총왕]이 있어 統制[통제]하니, 王族 [왕족]은 古雛大加[고추대가]라 일컬었으며, 그 아래 對盧[대로] 以下[이 하] 許多[허다]한 官等[관등]이 있어, 비교적 일찌기 엄격한 國制[국제]를 만들어 가졌다. 이는 대개 高句麗[고구려]는 大山[대산] 深谷[심곡]이 많아 서 田作[전작]만 가지고 生活[생활]을 버틸 수 없으매, 저절로 富裕[부유] 한 他處[타처]에 侵掠[침략]을 행해야 하고, 또 四方[사방]에 强敵[강적]이 둘러 있으므로 가장 節制[절제] 있는 軍國制[군국제]를 세울 필요가 있었음 에 말미암은 것이니, 이러한 環境[환경]은 갈수록 勇武雄博[용무웅박]한 氣 象[기상]을 高句麗人[고구려인]에게 稟賦[품부]하게 되었다. 高句麗[고구 려]의 北[북]이요 挹婁[읍루]의 西[서]인, 시방 松花江[송화강]·遼河[요 하] 兩間[양간]의 長春平野[장춘평야]를 중심으로 하는 廣大[광대]한 幅圓 [폭원]에는 夫餘[부여]가 있었으니, 五夫餘[오부여]의 중에 北[북]에 當 [당]하는 것이요, 또 가장 오랜 王朝[왕조]로 諸[제] 夫餘[부여]의 根本部 [근본부]이므로 뒤에까지 홑으로 夫餘[부여]로 稱[칭]하였는데, 震域[진역] 의 중에서 가장 平敞[평창]한 토지와, 발달한 산업과, 優越[우월]한 문화를 가지고 珠玉[주옥]·貂皮[초피]·馬匹[마필] 등, 支那人[지나인]의 需要[수 요] 많은 것을 多數[다수]히 輸出[수출]하여서 國力[국력]이 항상 充實[충 실]하매, 西[서]으로 烏丸[오환]·鮮卑[선비] 등 强隣[강린]을 데리고도 破 壞[파괴]를 當[당]한 일이 없었다. 震域[진역]의 중에서 가장 일찍 國制[국 제]를 세우고 王號[왕호]를 일컬은 者[자]가 이 夫餘[부여]니, 王[왕]의 下 [하]에 諸加[제가]가 있고, 특히 馬加[마가]·牛加[우가]·豬加[저가]·狗 加[구가] 등 重臣[중신]이 있어 四出道[사출도]를 分守[분수]하였었다. 以 上[이상]에 列擧[열거]한 중 濊[예]로부터 以北[이북]의 諸民[제민]은 通 [통]하여 濊貊[예맥]이라 일컫고, 略[략]하여 貊[맥]이라 하고, 轉[전]하여 貊[맥]이라 하는 者[자]니, 다 古[고]의 「白[백]」에서 由來[유래]한 것이 며, 매우 後年[후년]에는 濊[예]를 홑으로 單單大嶺[단단대령] 곧 大關嶺東 [대관령동]의 그네들을 부르는, 貊[맥] 又[우] 貊[맥]은 遼東[요동] 一帶 [일대]의 그네들을 일컫는 이름이 되었다. 또 樂浪[낙랑]이 오랫동안 中間 [중간]에 끼여서 聲氣[성기]를 隔阻[격조]하게 된 뒤에는, 그 北[북]의 사 람을 貊[맥]이라하고, 南[남]의 사람을 韓[한]이라 하여, 이름도 달리 부르 게 되지마는, 民俗[민속] 기타에도 약간 差異[차이]가 생기게 되었다.

第十四章[제십사장] 鴨綠谷裡[압록곡리]의 新勢力[신세력][편집]

震域[진역], 특히 半島[반도]에 있는 諸[제] 民族[민족]의 民族的[민족적] 覺醒[각성]과 社會的[사회적] 凝集[응집]과 國家的[국가적] 發達[발달]과는 오로지 漢民族[한민족]의 刺戟[자극], 특히 樂浪郡[낙랑군]의 壓迫[압박]에 말미암은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鴨綠江[압록강] 谷地[곡지]에 들어서 다른 民族[민족]과 部族 [부족]의 壓迫[압박]이 桶[통]같이 에워들고, 게다가 土薄[토박] 物少[물 소]하여 여러 가지 生活上[생활상]의 艱苦[간고]를 많이 겪는 高句麗[고구 려]는 실로 萎縮[위축]하다가 自滅[자멸]하고 말든지, 躍進[약진]하여 活路 [활로]를 열든지, 두 가지 중의 한 運動[운동]을 取[취]해야 할 事勢[사세] 이었다 . 무서운 試練[시련]이 큰 奮發[분발]로 변하매 놀라운 勢力[세력]이 鴨綠谷[압록곡]으로부터 四方[사방]을 울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夫餘[부여] 의 一部族[일부족]으로 으늑한 골짜기에 겨우 喘息[천식]을 保維[보유]함에 지나지 못하던 高句麗[고구려]가, 얼마 忍從[인종]하는 동안에 精銳[정예] 를 길러 가지고 武力[무력] 中心[중심]의 統制[통제] 잘 된 一國家[일국가] 로 고개를 쳐들었다. 鄒牟[추모]라는 偉人[위인]의 出現[출현]을 기회로 하 여, 고구려가 國家的[국가적] 步武[보무]를 내놓기는 늦어도 秦代[진대]의 일이요, 漢[한]에 들어와서는 이미 상당한 세력을 發揮[발휘]하기 비롯하 여, 遼東[요동]에 있는 新勢力[신세력]으로 漢[한]나라 邊郡[변군]의 큰 脅 威[협위]이었다. 그러나 武帝[무제]의 威力[위력]이 東方[동방]에 떨칠 때 에는 高句麗[고구려]도 잠시 한구석에 屛息[병식]하지 아니치 못하였다. 이 렇게 休養[휴양]하는 가운데 恢復[회복]해 가진 새 元氣[원기]는 一層[일 층]의 날카로움으로써 東方[동방]의 局面[국면]에 큰 波動[파동]을 일으켰 다.

國祖[국조] 東明聖王[동명성왕] 鄒牟[추모]가 시방 佟佳江[동가강]의 一支 流[일지류]인 富爾江岸[부이강안]인 듯한 忽本[홀본]에 나라터를 잡은 뒤 에, 偉大[위대]한 自助精神[자조정신]이 發現[발현]하는 바에, 北[북]으로 는 夫餘[부여]의 큰집을 찔끔시킨다, 東[동]으로 東夫餘[동부여]를 집어삼 킨다, 旁近[방근]의 작은 部族[부족]들을 하나씩 둘씩 合倂[합병]한다 하여 勢力[세력]을 늘리다가, 시방부터 一[일]천八[팔]백 년쯤 전에 太祖大王[태 조대왕] 宮[궁]의 時[시]에 이르러, 와짝 威武[위무]를 빛내게 되었다. 高 句麗[고구려]의 隆運[융운]이 高句麗民[고구려민] 全體[전체]의 上下[상하] 一心[일심]으로 緊張[긴장] 努力[노력]한 結束[결속]임은 진실로 毋論[무 론]이지마는, 좋은 指導者[지도자]와 튼튼한 中心人物[중심인물]을 필요로 함이, 前[전]에는 시방보다도 더 간절하였다. 그런데 太祖大王[태조대왕]은 正[정]히 이 要求[요구]에 應[응]해 난 一大[일대] 人物[인물]로 四方[사 방]으로 國威[국위]를 宣揚[선양]하는데, 더욱 一[일]년이 멀다고 漢[한]의 玄菟[현도]·遼東[요동] 등 邊郡[변군]을 侵襲[침습]하여, 그네로 하여금 다시는 東方[동방]에 뜻을 두지 못하게 하였으며, 특별히 주의할 일은 濊貊 [예맥]은 毋論[무론]이요, 韓[한]까지를 연결해 가지고 全[전]「白[백]」人 [인] 對[대] 全[전] 支那人[지나인]의 民族的[민족적] 角逐[각축]의 新局面 [신국면]을 출현시킴이었다. 이렇게 前[전]과 같이 집안끼리의 싸움을 줄이 고 도리어 協同戰線[협동전선]을 벌여서 漢民族[한민족]의 세력을 敵抗[적 항]함은, 진실로 東方[동방]에 있는 漢[한]나라 郡縣[군현]의 뿌리에 도끼 를 박는 것이 되었다.

太祖大王[태조대왕]의 뒤에도 新大王[신대왕] 伯固[백고]·故國川王[고국 천왕] 武[무] 같은 英主[영주]와, 明臨答夫[명림답부]·乙巴素[을파소] 같 은 賢相[현상]이 繼起[계기]하여 國運[국운]이 順調[순조]로 隆盛[융성]해 가고, 또 발전하는 國策[국책]에 응하여 都邑[도읍]도 國內城[국내성] 또 丸都城[환도성]으로 차차 옮겼었다. 이동안에 支那[지나]에는 漢[한]이 亡 [망]하고, 이른바 魏[위]·吳[오]·蜀[촉]의 三國時代[삼국시대]가 되어, 後漢[후한] 末年[말년]으로부터 五○[오영]년 동안 公孫氏[공손씨]의 따로 떼어 가졌던 遼東一帶[요동일대]와 아울러 그 勢力圈內[세력권내]에 들었던 樂浪郡[낙랑군]과, 公孫氏[공손씨]가 樂浪郡[낙랑군] 南[남]의 空閒地[공한 지]를 떼어서 시방 京畿[경기] 西郊[서교]를 중심으로 하여 新設[신설]한 帶方郡[대방군]이 모두 魏[위]·幽州[유주]의 管轄[관할]이 되었으나, 鴨綠 江[압록강] 유역의 樂浪[낙랑] 屬土[속토]는 거의 高句麗[고구려]로 들어가 고, 아주 下流[하류]에서 一線[일선] 通路[통로]로 간신히 遼東[요동]하고 連絡[연락]함을 얻고, 얼마 뒤에는 그도 끊어져서 半島[반도] 腹臟[복장]에 외따로 떨어진 樂[락]·帶[대] 兩郡[양군]을 海路[해로]로 通來[통래]하게 되었다. 帶方[대방]이 設置[설치]된 뒤부터는 그 南[남]에 있는 諸韓[제한] 과 乃至[내지] 日本[일본]까지도 한참 帶方[대방]을 통하여 支那[지나]를 交涉[교섭]하였었다. 이 帶方郡[대방군]의 新設[신설]은 본디 高句麗[고구 려]의 壓迫[압박]에 내리밀리는 民衆[민중]을 南[남]에서 收容[수용]하려 함에서 나온 것이었다.

第十五章[제십오장] 漢[한] 郡縣[군현]의 쫓겨나감[편집]

東川王[동천왕] 憂位居[우위거](位宮[위궁])에 이르러 高句麗[고구려]의 勢力[세력]은 더욱 增上[증상]하였다. 英勇[영용]한 憂位居[우위거]는 어느 해 魏[위]의 邊境[변경]을 건드리지 아니하는 적이 없고, 鴨綠江[압록강] 下流[하류]에 실오리만큼 남아 있는 魏[위]나라의 官路[관로]를 마저 끊으 려 하여, 赴任[부임]하는 太守[태수]의 一行[일행]을 殺掠[살략]하기까지 하였다. 魏[위]에서도 견디다 못하여, 紀行[기행]을 殺掠[살략]하기까지 하 였다. 魏[위]에서도 견디다 못하여, 紀元[기원] 二五七七[이오칠칠]년(西紀 [서기] 二四四[이사사])에 幽州刺史[유주자사] 毌丘儉(관구검)이 大軍[대 군]을 거느리고 高句麗[고구려]를 침입하여 丸都城[환도성]을 결딴내고, 그 이듬해 다시 掩襲[엄습]하매, 王[왕]이 하는 수 없이 北沃沮[북옥저]로 도 망하였다가 密友[밀우]·紐由[유유] 兩義士[양의사]의 忠勇[충용]을 힘입어 곧 敵軍[적군]을 쫓고 故都[고도]를 恢復[회복]하였다. 이렇게 高句麗[고구 려]로 전에 없는 汚辱[오욕]을 당한 것은, 魏軍[위군]은 三國時代[삼국시 대]의 練磨[연마]로 매우 進步[진보]한 戰術[전술]을 썼는데, 高句麗[고구 려]는 이 點[점]을 능히 抵當[저당]치 못한 까닭이었다. 이번 일이 高句麗 [고구려]의 上下[상하]에 큰 反省[반성]을 일으켜서, 國策[국책]이 차차 변 하여 抵抗[저항] 많은 西北方[서북방]을 뒤로 돌리고, 외따로 있는 南方[남 방]의 僑郡[교군]을 집어치우기에 主力[주력]을 쓰게 되었다. 그 前提[전 제]로 沃沮[옥저]와 濊[예]를 次第[차제]로 呑倂[탄병]하고, 다시 韓[한]을 連結[연결]하여, 혹은 單獨[단독]으로, 혹은 聯合[연합]으로 樂浪[낙랑]의 영토를 요모조모 떼어 먹기 비롯하여 날로 그 언저리를 줄이니, 支那[지나] 의 史籍[사적]에 혹 「爲夷貊所侵[위이맥소침]」이라, 혹 「韓濊併盛[한예 병성], 郡縣不能制[군현불능제]」라 함 등은 다 이때의 일이다.

高句麗[고구려] 하나에게만도 이미 못견딜 형편인데, 시방부터 한 一[일] 천 七[칠]백 년쯤 전(西紀[서기] 三[삼]세기경)에는 馬韓[마한]의 一國[일 국]이던 百濟[백제]가 漸次[점차]로 小國[소국]의 兼併[겸병]을 行[행]하여 勢力[세력]이 부쩍 늘면서 帶方郡[대방군]을 北[북]으로 쫓고, 都[도]를 漢 山[한산](시방 廣州[광주])에 정한 뒤에 나날이 北進[북진]을 힘썼다. 半島 內[반도내]의 漢[한]나라 郡縣[군현]은 이렇게 腹背[복배]로 壓迫[압박]을 받아서, 그야말로 독 틈의 탕건처럼 날로 납작하여 가다가, 高句麗[고구려] 美川王[미천왕]의 十四[십사]년(西紀[서기] 三一三[삼일삼])에는 樂浪[낙 랑]은 高句麗[고구려]에게, 帶方[대방]은 百濟[백제]에게 쫓기어 官民[관 민]이 다 本國[본국]으로 돌아가니, 이제야 漢武帝[한무제] 初建[초건]으로 부터 무릇 四二一[사이일]년이나 뭉기적거리던 漢[한]나라의 政治的[정치 적] 施設[시설]이 半島[반도] 안에서 깨끗이 자국을 씻기게 되었다. 이는 실로 漢[한]나라 郡縣[군현] 때문에 激發[격발]되고 增長[증장]된 震域[진 역] 民邦[민방]의 社會的[사회적] 機能[기능]이 스승인 漢郡[한군] 그것을 잡아먹은 것이요, 衛滿[위만] 이래 前後[전후] 五[오]백 년간의 甘苦[감고] 여러 가지 경험에 民族[민족] 對[대] 民族[민족]의 協同[협동] 動作[동작] 의 필요를 깨닫게 하여, 같은 目標[목표]에 향하여 능히 一致[일치]한 步調 [보조]를 취하였음의 선물이었다.

이렇게 漢郡[한군]이 逐滅[축멸]됨음 高句麗[고구려]에 있어서는 그 北守 南進政策[북수남진정책]이 一段落[일단락]을 짓는 것이요, 百濟[백제]에 있 어서는 馬韓[마한]의 統一者[통일자]로 地位[지위]가 確定[확정]되는 시초 요, 또 이 形勢[형세]에 催進[최진]되어 辰韓[진한]의 統一者[통일자]가 되 어 가는 新羅[신라]와 어우러져서 半島[반도] 안에 三國[삼국] 鼎立[정립] 의 形勢[형세]가 생기는 開幕[개막]이니, 이는 실로 朝鮮[조선]의 民族[민 족] 及[급] 社會[사회] 發達史上[발달사상]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換局[환 국]이다. 그런데 그동안 支那[지나]에서는 벌써 魏[위]가 亡[망]하고 晋 [진]이 代興[대흥]하였는데, 漢[한]·魏[위] 이래로 支那[지나]의 塞內外 [새내외]에 移住[이주]한 塞外[새외] 種族[종족]이 많은 중, 遼河[요하] 東 西[동서]를 웅거한 鮮卑族[선비족]의 慕容氏[모용씨]는 특히 强盛[강성]하 여 高句麗[고구려]와의 사이에도 저절로 衝突[충돌]이 잦았었으며, 모처럼 玄菟[현도]를 아우르고 西[서]으로 뻗던 高句麗[고구려]의 세력도 新城[신 성](시방 奉天[봉천] 근처) 이외에 변변히 나가지를 못하게 되니, 高句麗 [고구려]의 南下[남하]와 그 때문에 심해진 半島[반도] 腹部[복부]에서의 激烈[격렬]한 三國[삼국]의 된판씨름은, 앞길이 慕容氏[모용씨]에게 막혀버 림에 말미암음이었다.

그런데 朝鮮[조선] 歷史[역사]의 舞臺[무대]가 이로부터 以後[이후]에 돋 우고 뛰어도 遼水[요수] 저쪽을 시원히 건너뛰지 못하고 맒은, 요 근처가 겨끔내기로 北方[북방] 新興民族[신흥민족]들의 支那[지나]로 향하여 銳氣 [예기]를 부리려 들어가는 길목이므로, 容易[용이]히 이것을 突破[돌파]할 기회가 돌아오지 아니하였기 때문이었다.

第十六章[제십륙장] 古朝鮮人[고조선인]의 分布圈[분포권][편집]

震檀人[진단인]의 옛적 中心[중심]은 시방의 滿洲[만주]요, 특히 그 松花 江[송화강] 流域[유역]이니, 여기서 北[북]은 黑龍江[흑룡강]의 저편까지 와, 東[동]은 沿海州[연해주]와, 西[서]는 興安嶺[흥안령]까지의 사이에 무 더기무더기 團部[단부]를 지었고, 南[남]으로 내려간 이는 세 갈래에 나뉘 어, 半島[반도]로 들어간 中支派[중지파]는 시방 朝鮮人[조선인]의 直系[직 계] 祖上[조상]이 되고, 東南[동남]으로 바다를 건너 群島[군도]로 들어간 一派[일파]는 日本[일본] 根榦民族[근간민족]의 祖上[조상]이 되고, 西南 [서남]으로 遼野[요야]를 건너고 陰山[음산]을 지나서 黃河[황하] 저편의 支那大陸[지나대륙]으로 들어간 一派[일파]는 支那人[지나인]의 이른바 東 夷[동이]란 것이 되었다.

朝鮮語[조선어]에 東[동]을 「시」라 함은 新[신]을 의미함이요, 西[서]를 「하」라 함은 遠[원]을 의미함이니, 이는 먼 西方[서방]에서 새로 東[동] 으로 왔음을 表[표]한 것이요, 南[남]을 「마」라 함은 對面[대면]을 의미 함이요, 北[북]을 「노」라 함은 高處[고처]를 의미함이니, 이는 北方[북 방] 高原地[고원지]로부터 南[남]을 향하여 進入[진입]하였음을 表[표]한 것이며, 또 別[별]로 南[남]을 「앏」이라 하고 北[북]을 「뒤」라 함은 더 明白[명백]히 民族移動[민족이동]의 方向[방향]을 보인 것이다.

朝鮮[조선]의 이름이 本土[본토]에서는 언제부터 비롯하였던지, 支那人[지 나인]들이 오랜 뒤에까지도 다만 그 塞外[새외] 東方[동방]에 있는 地方[지 방]이나 民衆[민중]의 稱呼[칭호]로 씀이 通例[통례]이었다.

支那[지나] 內地[내지]에 있는 古震人[고진인]의 一支[일지]는 대개 夷 [이]로써 稱呼[칭호]되고, 그 一部[일부]는 혹 戎[융] 혹 胡[호]로 불렸으 니, 퍽 오랜 옛적부터 黃河[황하]를 중심으로 하여 古支那人[고지나인]으로 더불어 오래 各地[각지]에 混居[혼거]를 하였으나, 種族意識[종족의식]의 발달과 文化基調[문화기조]의 차이로 말미암아, 夷人[이인]은 차차 東方[동 방]으로 몰려서 太行山脈[태행산맥]의 東[동]으로 하여 山東半島[산동반도] 一帶[일대]가 그 根據地[근거지] 비스름하게 되고, 이 땅이 古支那人[고지 나인]의 根據地[근거지]에서 보면 東[동]이 되므로 東夷[동이]라는 이름이 생기게 되었다. 시방 北京[북경]서 南方[남방]으로부터 山東半島[산동반도] 까지 이르는 동안의 지역을 옛날에 渤海[발해]라 하고, 그 앞의 大海[대해] 를 또한 渤海[발해]라고 일컬으니, 이는 東夷語[동이어]로 다 神州[신주]와 神海[신해]를 의미함이요, 그즈음에 있는 가장 高大[고대]한 山[산]을 「岱 [대]」(뒤에 泰[태]) 또 「府君[부군]」으로 불러 써 信仰[신앙]의 標幟[표 치]를 삼으니, 이는 곧 「」山[산]·「」山[산]이었다. 이렇게 燕 [연]·齊[제]·魯[노]의 地[지], 곧 시방 直隸[직예]·山東[산동]의 一帶 [일대]에는 東夷[동이]의 君邦[군방]이 所在[소재]에 서로 바라보니, 支那 [지나]의 建國說話[건국설화]라 할 黃帝[황제]가 蚩尤(치우)하고 激戰[격 전]하였다는 이야기도, 要[요]하건대 朝鮮人[조선인]과 支那人[지나인]이 渤海地方[발해지방]을 중심으로 中原[중원]의 땅을 다투었다는 의미를 전하 는 것이요, 韓[한]·寒[한]·韓雁[한안]과, 涿[탁]·靑邱[청구]·紫府[자 부]와, 白[백]·博[박]·蒲姑[포고]와, 薊[계]·介[개]·莒[거]·根牟[근 모]와, 嵎夷[우이]·島夷[도이]·萊夷[내이]·淮夷[회이]·徐戎[서융]과, 기타 九夷[구이]로 汎稱[범칭]하는 것 등은 支那[지나]의 國初[국초]로부터 戰國時代[전국시대]까지 내려오면서 著名[저명]한 東夷國[동이국]이었다. 이중에는 一隅[일우]의 部族[부족]으로 만 것만도 있지마는, 혹 强大[강 대]한 國家的[국가적] 勢力[세력]을 형성하여 支那民族[지나민족]에게 크게 畏怖[외포]된 者[자]도 있었으니, 徐[서]·淮[회]의 세력을 聯合[연합]하여 周[주]의 穆王[목왕]을 黃河水[황하수] 저편에 退縮[퇴축]시키고, 그 以東 [이동] 三六國[삼륙국]을 服屬[복속]하여 仁義[인의]의 政[정]을 施[시]하 던 徐[서]의 偃王[언왕] 같은 이는 史上[사상]에 특히 著名[저명]한 者[자] 이다. 이 徐帝國[서제국]의 疆域[강역]은 대개 後[후]의 徐[서]·泗[사]· 淮[회]의 地[지], 곧 昭陽湖[소양호]로부터 洪澤湖[홍택호]를 거쳐 大縱湖 [대종호]까지 이르는 山東[산동]의 南[남]에서 江蘇[강소]의 北[북]에 걸친 黃河[황하] 舊水道[구수도] 유역의 꽤 큰 지방이었다. 戰國時代[전국시대] 까지도 山東半島[산동반도]와 淮[회]·泗[사] 地方[지방]은 거의 東夷[동 이]의 巢窟[소굴]이 되어, 相當[상당]한 세력을 國際間[국제간]에 發揮[발 휘]하였고, 秦[진]이 일어나 中原[중원]을 統一[통일]한 뒤에야 차차 흩어 져 民戶[민호]가 되었다. 以上[이상]의 중에 燕地[연지]의 薊[계]와 齊地 [제지]의 介[개]·莒[거] 등은 震域[진역]의 解氏[해씨]와 因緣[인연]이 있 고, 특히 半島[반도]도 더불어 交通[교통]이 密邇[밀이]하던 者[자]니, 箕 子[기자]의 東來說[동래설]은 이러한 事實[사실]에도 관계가 있는 것이었 다.

第十七章[제십칠장] 해상[海上]으로 나간 지파[支派][편집]

西方[서방]의 大陸[대륙]에서 古[고]「白[백]」人[인]의 이러한 運動[운 동]이 있는 동안에 그보다도 더한 활발한 移住[이주]가 東[동] 又[우] 南方 [남방]의 海島[해도]로 行[행]하였다. 古[고]「白[백]」人[인]이 東[동]으 로 東[동]으로 大陸[대륙]의 끝까지 왔을 때에, 한 가지 「바다」라는 어마 어마한 새 光景[광경]을 대하였다. 처음에야 驚嘆[경탄]과 恐怖[공포]로써 이를 對[대]하지 아니치 못하였겠지마는, 우연한 기회에 그밖에도 可居地 [가거지]가 있고, 또 潮流[조류]를 이용하면 風濤[풍도]가 반드시 무섭기만 한 것 아님을 알매, 혹은 東方[동방] 찾는 정성으로, 혹은 덜미를 짚는 壓 迫[압박]에 쫓겨서 大陸[대륙]으로부터 바다를 건너 移住[이주]하는 떼가 차차 생겼다.

그 經路[경로]는 시방 沿海州[연해주]로서 실개천 같은 海峽[해협]을 건너 서 樺太[화태]를 거쳐 혹 陸上[육상] 혹 水上[수상]으로 차차 南下[남하]한 이도 있고, 혹 咸鏡道[함경도], 혹 江原道[강원도]로서 日本[일본]의 복장 을 지르고 들어간 이도 있고, 또 半島[반도]의 南部[남부]로서 玄海[현해] 를 타고 그 西南部[서남부]로 들어가서 東北[동북]으로 치받쳐 올라간 이도 있었는데 처음에는 , 扁舟[편주]로 潮流[조류]를 이용하여 다녔지마는, 차차 길이 익고 배부리는 재주가 늚을 따라, 반드시 順潮[순조]에만 말미암지 아 니하게 되고, 또 集團的[집단적] 移住[이주]도 여러 번 행하게 되었다. 이 중에도 西南[서남]으로 좇아 들어간 支派[지파]가 나중에 가장 優越[우월] 한 세력을 가져, 시방 日本人[일본인]의 中軸[중축]이 되고, 日本國[일본 국]의 核心[핵심]이 되었다. 이것은 무릇 四[사]천 년 전쯤부터 한 二[이] 천 년 동안 극히 활발스러이 행한 일이니, 그 動機[동기]가 많이 後進者[후 진자]에게 敗退[패퇴]를 당함에 있었음은, 日本語[일본어]의 後[후]를 アト 라 함에서 敵[적]을 의미하는 アタ란 語形[어형]이 생긴 것으로써 짐작할 것이요, 朝鮮語[조선어]에 異民族[이민족]을 「되」라 하는 것이 「뒤」(後 [후])와 한가지임을 合[합]하여, 古[고]「白[백]」人[인] 移動[이동]의 一 大原因[일대원인]이 異民族[이민족]의 逼迫[핍박]에 있었음을 볼 것이다. 그네는 이 海上[해상]의 別乾坤[별건곤]을 「예」라고 부르니, 「예」는 시 방 朝鮮語[조선어]에 徵[징]하건대 斷然[단연]한 決意[결의]를 표하는 感嘆 詞[감탄사]인 동시에, 淺易[천이]를 意味[의미]하는 一語[일어]니, 애처롭 게 故土[고토]를 떠난 意[의]를 寓[우]한 것이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아무 拘礙[구애] 없이 살기 좋은 고장이란 의미로 일컬었음일 것이다. 「예」의 땅은 於農於漁[어농어어]에 다 便宜[편의]하고, 海上[해상]에 隔絶[격절]하 여 있음은 外敵[외적] 不時[불시]의 危害[위해]를 받을 리 없고, 또 自己 [자기]보다 먼저 入居[입거]한 北種[북종] 「아이누」와 南方[남방] 馬來種 [마래종] 等[등]이 있으나, 文化[문화]로나 세력으로나 懸隔[현격]이 심하 여, 이르는 곳마다 容易[용이]히 驅逐[구축]하고 制伏[제복]할 수 있으매, 미상불 避亂民[피난민]의 移住地[이주지]로 퍽 살기 좋은 곳이었다.

이렇게 先主民[선주민]을 집어치우고 處女地[처녀지]를 開發[개발]하여서 「白[백]」人[인]의 ハラ(곧 「」)가 處處[처처]에 생기고 數[수]가 많으 매, 統一[통일] 節制[절제]의 運動[운동]이 저절로 그중에 생겨나서, 一種 [일종]의 宗主的[종주적] 地位[지위]를 얻은 데를 タカマノハラ(高天原[고 천원])라 하니, 곧 「」의 「」(最高神[최고신]의 國土[국토])이라 함이었다. 애초부터 ヒコ·ヒルコ(다「」의 變[변])와, タカミ·ツキヨミ (다「」의 變[변])의 先祖傳說[선조전설]과, ヒコ·ハコネ(다「」의 變[변])와, タカ·タケ(다 「」의 變[변])의 神山[신산] 信仰[신앙]과, 神道[신도] 中心[중심]의 社會[사회]와, 祭祀[제사] 中心[중심]의 생활을 가져서, 오래도록 不咸系統[불함계통]의 文化的[문화적] 特色[특색]을 지녔 으며, 그 先住地[선주지]인 半島[반도]를 ハハノクニ(母國[모국]), 혹 タカ ラノクニ(天國[천국]), 혹 カラクニ(民族原國[민족원국]), ネノクニ(根本國 [근본국]) 등으로 일컬음은, 또한 그 밑을 잊지 아니함이었다. 兩地[양지] 의 사이에는 이렇게 種族的[종족적], 또 文化的[문화적] 共通[공통]이 있기 때문에 彼此[피차]의 來往[내왕]이 頻數[빈삭]하여 種種[종종]의 古傳[고 전]이 있게 되니, 神武天皇[신무천황]의 兄弟[형제]인 稻飯命[도반명]이 新 羅[신라]에서 나왔다 함 같음이 그 하나이다.

タカマノハラ로 일컫는 비교적 優越[우월]한 「」이 생긴 뒤에도 「예」 의 國土[국토]는 依然[의연]히 無數[무수]한 小[소]「」의 粟散地[속산 지]이었으며, 「예」土[토]에 「예」人[인]이란 분명한 一種族[일종족]이 성립된 뒤에도 舊土[구토]인 半島[반도]의 諸部族[제부족]은 여러 가지 理 由[이유]로써 덩어리덩어리 移住[이주]가 끊이지 아니하고, 그중에도 諸韓 [제한]에서 온 사람의 聚落[취락]은 筑紫[축자](九州[구주])·中國[중국]· 畿內[기내]의 一帶[일대]에 꽤 촘촘히 散布[산포]하였다. 그중에 アメノヒ ボコ(天日矛[천일모])란 一王族[일왕족]에게 引率[인솔]된 一派[일파]는, 「얼」山[산]으로부터 上古[상고]에 시방 九州[구주]의 北端[북단]에 來到 [내도]하여, 실로 席卷[석권]의 形勢[형세]로써 諸民部[제민부]를 制伏[제 복]하고 四方[사방]으로 발전하니, 筑紫[축자]의 伊都國[이도국], 中國[중 국]의 但馬國[단마국]·播磨國[파마국] 등은 다 그 一族[일족] 혹 後孫[후 손]의 建設[건설]한 바요, 近畿[근기]의 淡路[담로]·近江[근강]·若狹[약 협] 등, 지나는 곳마다 그 세력을 머무르고, 但馬[단마]에서 神[신]이 되어 出石大社[출석대사]에 崇奉[숭봉]되었다. 天日矛[천일모] 一族[일족]의 야 단은 日本[일본] 古代[고대]의 大事變[대사변]이니, 日本[일본]의 國家的 [국가적] 萌芽[맹아]가 실로 여기 激發[격발]되었다 함은 史家[사가]의 考 信[고신]하는 바이다(吉田東伍[길전동오]] 倒叙日本史[도서일본사] 上古篇 [상고편] 八九[팔구] 以下[이하] 參照[참조]).

半島[반도]로부터 들어간 民部[민부]와 또 그네의 위하던 神[신]도 많지마 는, 그중에 天日矛[천일모]가 드러나고, 또 소중한 대접을 받음은, 진실로 當年[당년]의 威力[위력]이 가장 컸음에 말미암음이다. 이렇게 部族[부족] 散立[산립]의 상태로 수천 년을 지내다가, 朝鮮半島에 漢土[한토] 民物[민 물]의 侵入[침입]이 있자 그 壓力[압력]은 海島[해도]에까지 미쳐서, 「예」의 國家的[국가적] 覺醒[각성]이 더욱 촉진되고, 다시 수백 년의 뒤 에 半島[반도]에 三國[삼국] 鼎立[정립]의 形勢[형세]가 완성될 무렵쯤, 이 네의 國制[국제]가 겨우 確立[확립]함을 얻었다. 日向[일향]·出雲[출운]· 大和[대화]의 三大[삼대]「」로 작은 「」들이 攝收[섭수]되다가, 여러 曲折[곡절]을 지낸 뒤에 大和[대화]의 「」이 統一[통일]의 業[업]을 이 루니, 이중에도 出雲[출운]은 특히 半島[반도]로 더불어 直系[직계]의 관계 를 가진 곳이요, 天日矛[천일모]로 더불어도 깊은 因緣[인연]이 있는 者 [자]이었다.

이 사이에도 大陸[대륙]으로서 내리는 者[자]는 漢裔[한예]고 魏孫[위손] 이고 또 辰人[진인]이고 弁人[변인]이고 줄곧 이리로 安住[안주]를 구하고, 그런대로 진보한 文物[문물]이 따라서 流入[유입]되니, 日本人[일본인]과 日本文化[일본문화]는 이러한 中[중]에 성립된 것이요, 이 現象[현상]은 훨 씬 後代[후대]에까지 계속하였었다.

第十八章[제십팔장] 震域[진역] 內外[내외]의 異民族[이민족][편집]

支那[지나]와 그 以南[이남]의 諸民族[제민족]을 南系[남계]라 하고, 支那 [지나] 以北[이북]의 諸民族[제민족]을 北系[북계]라 하여, 東亞[동아]의 種族[종족]을 兩大部[양대부]로 나눌 수 있으니, 그중 北系[북계]의 諸民族 [제민족]은 옅게나 깊게나 震人[진인]으로 더불어 血的[혈적]·文化的[문화 적] 交涉[교섭]을 가지지 아니한 者[자]가 없다.

이 北系[북계] 民族[민족]이 다시 西北[서북]과 東南[동남]의 兩大群[양대 군]으로 나뉘니, 震人[진인]은 그 東南[동남]으로 치우치는 者[자] 中[중] 의 다시 南[남]으로 갈려진 者[자]로, 東[동]·北方[북방]의 다른 部族[부 족]을 「되」라고 불렀다. 「되」는 後方[후방]의 人[인]을 의미하였다. 當 初[당초]에는 「薰鬻(훈육)」으로 統稱[통칭]되다가, 이것이 「凶奴[흉 노]」로 변하여 西北部族[서북부족]의 이름이 되고, 거기서 찢겨난 東南部 族[동남부족]에는 東胡[동호]라는 이름이 새로 생기고, 東胡[동호]의 중에 「歲白[세백]」派[파]가 다시 찢겨서 南[남]으로 南[남]으로 進展[진전]한 것이 震人[진인] 곧 朝鮮人[조선인]의 經絡[경락]이다.

白頭山[백두산]을 界限[계한]으로 하여 北[북]으로 갈수록 「되」하고 因 緣[인연]이 濃厚[농후]하여 동일한 지역에 雜居[잡거]까지 하고, 南[남]으 로 갈수록 朝鮮的[조선적] 色彩[색채]가 鮮明[선명]하여 半島[반도]의 허리 통부터 비로소 純粹[순수]한 朝鮮相[조선상]을 呈[정]함은 自然[자연]한 數 [수]이었다. 血緣[혈연]으로나 文化[문화]로나, 夫餘圈內[부여권내]에 드는 것은 朝鮮人[조선인]의 直接[직접] 祖上[조상]으로 볼 것이요, 그렇지 못한 것은 비록 오래 域內[역내]에 混處[혼처]한 것이라도 異種族[이종족]으로 볼지니, 이는 수천 년 동안 사회적 발달의 逕路[경로]와 種族的[종족적] 雜 잡유 糅[ ]의 程度[정도]를 各別[각별]히 한 中[중]으로서 마침내 서로 섞이 기 어려운 差異[차이]를 가지게 됨이었다.

도대체 東方[동방]에 있어 古今[고금] 없이 가장 激甚[격심]한 種族的[종 족적] 葛藤[갈등]과 그 走逐興亡[주축흥망]의 變幻相[변환상]을 呈[정]한 곳이 滿洲[만주] 一局[일국]이어늘 震域[진역]은 正[정]히 그 복판에 當 [당]하고, 後年[후년] 版圖[판도]가 쪼부라진 뒤에도 언제든지 여기와 옷깃 을 연하게 되니, 그러므로 震域[진역] 역사의 어수선한 種族關係[종족관계] 는 그 北方[북방]에 있으며, 또 北方[북방]으로 活動舞臺[활동무대]의 중심 을 삼던 그 上世[상세]에 있었다. 夫餘[부여]가 松花江[송화강] 유역에 나 라를 누리고, 高句麗[고구려]가 鴨綠江[압록강] 谷地[곡지]를 중심으로 그 新興[신흥]의 氣運[기운]을 나타내려 할 때에, 右[우]로 遼水[요수] 저쪽에 西[서]「되」인 「鮮卑[선비]」의 大部族[대부족]이 있고, 그 南[남]에는 烏桓[오환]이 있고, 鮮卑[선비]의 西[서]에는 凶奴[흉노]가 있었으니, 高句 麗[고구려]의 西方[서방] 經略[경략]이 遼水[요수]를 건너지 못함은 鮮卑 [선비]가 앞을 막기 때문이요, 鮮卑[선비]의 東方[동방] 發展[발전]이 또한 遼水[요수]를 건너지 못함은 凶奴[흉노]가 덜미를 잡기 때문이었으며, 左 [좌]로 太白山[태백산] 東方[동방]의 沿海州[연해주]에는 東[동]「되」인 挹婁[읍루]라는 一族[일족]이 있어, 高句麗[고구려]의 세력이 强盛[강성]하 여지는 대로 그 服屬[복속]에 돌아가니, 이는 후에 勿吉[물길] 혹 靺鞨[말 갈]이라 하는 것으로, 沃沮[옥저]로 더불어 가까운 寸數[촌수]를 가진 者 [자]요, 그 一部[일부]는 蓋馬大山脈[개마대산맥]을 끼고 내려와 漢江[한 강] 上流[상류]의 地[지]에까지 入居[입거]하여 그 옆나라에 半奴隸的[반노 예적] 생활을 하니, 이것이 조선 古史[고사]에 「貊[맥]」()이라 하고 또 後世[후세]에 「무자」(水尺[수척])라 하는 種落[종락]의 근본이었다. 貊 [맥]은 「白[백]」民[민]의 別字[별자]로, 本音[본음]이 「」이요 震人 [진인]의 通稱[통칭]이어늘, 訛[와]하여 「」으로 읽고, 다시 轉[전]하여 「무자」에 充當[충당]하게 되었으나, 「무자」는 靺鞨[말갈]의 古讀[고독] 으로 貊[맥]과는 본래 不相干[불상간]의 것이었다.

南[남]으로 내려오면서 江原[강원]·慶尙[경상]의 東海岸[동해안]에는 「예」라는 一部族[일부족]이 일찍부터 寄留[기류]하여 東海[동해]의 日本 群島[일본군도]에 결쳐 살았으니, 後年[후년]에 島部[도부]로 몰려서 倭國 [왜국]을 이룬 者[자]요, 본디는 東胡[동호]의 一族[일족]으로 海上[해상] 에 移居[이거]하는 동안에 海南[해남] 諸種族[제종족](「네그리토」「인도 네시아」·印度支那[인도지나] 등)의 血統[혈통]을 섞어 가진 者[자]며, 또 南海岸[남해안]에는 潮流[조류]와 信風[신풍]을 따라 漂到[표도]한 純粹[순 수]한 海南種族[해남종족]들도 약간 있었으니, 馬[마]·弁[변] 兩韓[양한] 의 일부에는 그 文身[문신]의 風[풍]에 물든 者[자]도 있었다. 또 馬韓[마한]의 西海中[서해중] 大導上[대도상]에는 州胡[주호]라는 別部 [별부]가 있어, 韓人[한인]보다 몸이 좀 작고, 言語[언어]도 韓[한]과 같지 아니하고, 머리를 깎고, 韋衣[위의]로 위만 가려 下體[하체]는 벌거벗으나 다름없고, 牛[우]와 豬[저]를 많이 기르고, 배로 韓中[한중]에 往來[왕래] 하면서 交易[교역]을 行[행]하였음을 古史[고사]에 적었으니, 이는 시방 濟 州道[제주도]를 이름이요, 그 種族[종족]은 필시 海南界[해남계]를 主[주] 로 하여 四方[사방] 漂着民[표착민]의 混血[혼혈]로써 成立[성립]한 듯하 다.

朝鮮[조선]은 地勢上[지세상] 四方[사방]으로서 許多[허다]한 種族[종족] 이 쉴 틈 없이 流入[유입]하니, 今日[금일]의 朝鮮人[조선인]은 실로 東胡 [동호] 民族[민족] 중의 夫餘派[부여파]가 根榦[근간]이 되어, 이 여러 枝 條[지조]를 同化[동화]하여 成立[성립]한 複合民族[복합민족]이요, 똑같은 듯한 중에 往往[왕왕] 容貌[용모]·風采[풍채]의 特異[특이]한 이가 있음은 그 原初[원초]의 특징을 물려 가짐이다.

그러나 言語[언어]와 習俗[습속]과 感情上[감정상]으로 混然[혼연]히 統一 [통일]을 이루어, 조금도 분간이 있지 아니함에서 夫餘族[부여족]의 偉大 [위대]한 同化力[동화력]을 볼 것이다.

第二部[제이부] 文化篇[문 화 편][편집]

第十九章[제십구장] 朝鮮[조선] 古文化[고문화]의 淵源[연원][편집]

朝鮮人[조선인]의 先祖[선조]가 그 搖籃地[요람지]로부터 東方[동방]의 새 世界[세계]를 향하여 나아오기는 퍽 아득한 옛날이었다. 하늘을 자갸네의 根本[근본]으로 생각하여 純恪[순각]한 마음으로써 그를 섬기고, 이 하늘이 子孫[자손]을 거느리시느라고 땅을 시켜서 내어주는 여러 가지 糧食[양식] 을 받아 먹고, 이 하늘과 땅의 恩澤[은택] 속에서 늘어지라 ˙ ˙ ˙ ˙ , 불어지라 ˙ ˙ ˙ ˙ 고 노 력하는 것이 人生[인생]의 本務[본무]인 줄로 앎이, 그가 그 故鄕[고향]으 로부터 떠나올 때에 가진 바 밑천이었다. 이 父天的[부천적] 思想[사상]과 農業的[농업적] 生活[생활]만 해도 자갸네보다 먼저 東方[동방]으로 왔던 原始的[원시적] 移住民[이주민]의 生氣信仰[생기신앙]과 狩獵[수렵]·牧畜 목축 [ ]밖에 모르는 部族[부족]에 비하여는 퍽 優越[우월]한 文化[문화]이었 었다. 이네들은 그 主力[주력]이 天山[천산]으로부터 北偏[북편]의 路[로] 를 取[취]하여 亞細亞[아세아] 北方[북방]의 文化系[문화계]를 이룬 者[자] 니, 凶奴[흉노]·東胡[동호] 乃至[내지] 朝鮮[조선]은 다 이 系統[계통]의 대줄기가 되는 것이요, 凶奴[흉노]는 桓雄[환웅]과, 東胡[동호]는 壇君[단 군]과 실상 語源[어원]을 같이하는 者[자]이다.

이 北系[북계]보다 훨씬 뒤져서 좀더 進步[진보]한 社會形式[사회형식]과 記錄方法[기록방법]을 가지고 南偏[남편]의 路[로]를 取[취]하여 黃河[황 하]의 下方[하방]으로 들어온 것이 시방의 支那人[지나인]이니, 이네 중심 으로 成立[성립]된 것이 亞細亞[아세아] 南方[남방]의 文化系[문화계]를 이 루었다. 北方[북방]은 山嶽[산악]이 稠疊[조첩]하고, 風日[풍일]이 嚴勵[엄 려]하고, 種族[종족]이 雜錯[잡착]하여, 이 環境[환경]에 맞추는 結果[결 과]가 質直[질직]의 人[인]과 褊急[편급]의 性[성]과 武强[무강]의 習[습] 을 만들고, 또 宗敎的[종교적] 虔肅[건숙]의 風[풍]을 길렀음에 대하여, 南 方[남방]은 地理[지리]와 天象[천상]과 人事[인사]가 總[총]히 大陸的[대륙 적] 平蕪[평무]·散漫[산만]·寬緩[관완]을 가졌으므로, 그 文化[문화]가 北方[북방]에 비하여 크게 文華[문화] 纖麗[섬려]의 趣[취]를 띄우고, 또 政治的[정치적] 發達[발달]의 端[단]을 열었다. 北系[북계]의 文化[문화]가 갈수록 祭祀[제사] 중심의 味感的[미감적] 생활로 떨어짐에 대하여, 南系 [남계]의 그것이 功名[공명] 중심의 表現的[표현적] 生活[생활]로 나아갔음 은 실로 이 兩者[양자]의 근본적 相異點[상이점]이었다.

桓國[환국](天界[천계])에서 發源[발원]하여 桓雄[환웅](凶奴[흉노])과 壇 君[단군](東胡[동호])을 거쳐서 朝鮮[조선]으로 注下[주하]된 亞細亞[아세 아] 北系[북계]의 文化[문화]를 不咸文化[불함문화] 系統[계통]이라고 부른 다. 不咸[불함]은 「」의 漢譯[한역]이니, 天[천]과 神[신]과 天道[천 도]와 神政[신정]을 의미하는 이 一語[일어]의 中[중]에, 이 文化系統[문화 계통]의 觀念[관념] 及[급] 事實[사실] 全體[전체]가 흠뻑 포함되었으므로 이렇게 이름지은 것이다. 이 不咸文化[불함문화]는 世界[세계]에 있는 最古 文化[최고문화]라고는 못하겠지마는, 아득한 옛날부터 一貫[일관]해 傳承 [전승]하여 世界[세계] 最久[최구]의 文化系統[문화계통]임은 분명하며, 또 그 分布[분포]의 區域[구역]이 亞細亞[아세아]의 北方[북방] 전부를 被覆 [피복]하여 세계최대의 文化圈[문화권]을 이루었다. 그런데 이 문화의 嫡傳 [적전]이요, 中心[중심]이요, 또 典型[전형]인 者[자]는 실로 朝鮮[조선]의 文化[문화]이다.

不咸文化[불함문화]는 祭祀[제사] 中心[중심]이요, 그 祭祀[제사]는 天神 [천신]을 本位[본위]로 하는 것이요, 그 天神[천신]은 太陽[태양]을 實體 [실체]로 하는 것이요, 그 太陽[태양]은 光明[광명]을 主德[주덕]으로 하는 것이니, 이 系統[계통] 人民[인민]의 信仰上[신앙상] 最高[최고] 對象[대 상]은 「하누님」이요, 하누님을 宗敎的[종교적]으로 일컬을 때에는 「」 이라 하고, 그 世界[세계]를 「환나라」라 하니, 「」과 「환」은 다 光 明[광명]의 義[의]며, 그네가 宇宙[우주]의 最高原理[최고원리]요, 人類[인 류]의 最高理想[최고이상]이라 하는 바로, 世界[세계]의 歸趣[귀취]와 人生 [인생]의 목적이 다 이리로 導入[도입]함에 있다 하는 바이었다. 그네는 「」에 대하여 「굿」이란 것의 對立[대립]을 認定[인정]하여, 이 二元的 [이원적] 관계가 이 世上[세상] 온갖 어수선한 일의 장본이니, 穢惡[예악] 과 暗黑[암흑]과 禍厄[화액]의 本源[본원]인 이 굿을 「」으로써 완전히 掃盪[소탕]하고 「환」의 本然[본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天主[천주]께서 그 一子[일자]를 人間[인간]에 보내서 人文的[인문적]으로 활동케 하시는 本意 [본의]임을 그네의 原始聖典[원시성전]인 듯한 建國古傳[건국고전]에 일컨 하였다. 이 古意[고의]에 基[기]하여 天國[천국]을 人間[인간]에 加被[가 피]시키고, 人間[인간]을 天國[천국]에 同化[동화]하여 天上人間[천상인간] 이 一[일]「」에 攝化[섭화]됨은 그네의 進步[진보]한 信仰[신앙]이 가진 바 大理想[대이상]이었다. 이 一觀念[일관념]의 發展[발전]으로 祭祀[제사] 가 생기고, 宗敎[종교]가 이루어지고, 이 神權[신권]을 기대서 國制[국제] 와 治道[치도]가 마련되고, 이 信仰[신앙]을 중심으로 하여 사회의 結束[결 속]과 俗尙[속상]의 發達[발달]이 천천히 또 솔솔 行[행]해 내려왔다. 언제 어디서든지 國家[국가]의 元首[원수]는 神事[신사]의 主管者[주관자]인 「무당」의 類[류]이니, 原始朝鮮[원시조선]에서 壇君[단군]·王儉[왕검]이 라 하고, 濊[예]에서 儛天[무천]이라 하고, 沃沮[옥저]에서 三老[삼로]라 하고, 高句麗[고구려]에서 古鄒大加[고추대가]·東明聖帝[동명성제]라 하 고, 百濟[백제]에서 於羅瑕[어라하]라 하고, 新羅[신라]에서 赫居世[혁거 세]·次次雄[차차웅]·麻立干[마립간]·尼師今[이사금]이라 하는 것은, 다 王[왕]의 號[호]인 동시에 본디 巫長[무장]의 義[의]인 것이다.

第二○章[제이영장] 石器[석기]로서 鐵器[철기]까지[편집]

傳說[전설]뿐이요 분명한 記錄[기록]이 없을 제를 原史時代[원사시 대](Proto-historic)라 하고, 傳說[전설]조차 없고 다만 遺跡[유적]·遺物 [유물]만으로써 考察[고찰]할 제를 先史時代[선사시대](Pre-historic)라 하 니, 이 兩時代[양시대]는 實物[실물]이 文字[문자] 대신 歷史[역사] 노릇을 한다. 朝鮮[조선]도 이러한 有史[유사] 以前[이전]의 오랜 年代[연대]를 가 졌다. 朝鮮人[조선인]의 先祖[선조]는 當初[당초]에 石器時代[석기시대]의 人民[인민]으로, 半島[반도]에 移住[이주]하여 시방으로부터 約[약] 二[이] 천 수백 년 前[전]까지 이 時期[시기]가 계속하니, 곧 그 연장이란 것은 돌 이나 骨角[골각]으로 만든 것이요, 그릇이란 것은 나무나 흙으로 지은 것이 었다. 이 時期[시기]의 末頃[말경]쯤부터 차차 銅[동]·鐵[철] 等[등]器 [기]를 쓰게 되어, 한참 동안 鐵器[철기]도 쓰고, 石器[석기]도 없어지지 아니한 金石並用時期[금석병용시기]를 지내고, 한 二[이]천 년쯤 前[전]에 서부터 鐵器時代[철기시대]가 되었다.

石器時代[석기시대]의 遺跡[유적]은 첫째 海岸[해안] 근처에서 조개붙이를 잡아서 까 먹고 그 껍질을 내어버린 것이 수북이 또 질펀하게 쌓여 있는 조 개무지(貝塚[패총])란 것이니, 그 속에는 그 때에 쓰던 石器[석기]·土器 [토기] 기타 器皿[기명]이 많이 들어 있고, 또 그때 사람의 먹던 鳥獸[조 수]의 遺骨[유골]과 또 이것으로 만든 다른 遺物[유물]들도 섞여 있으므로, 그때의 生活狀態[생활상태]를 알기에 퍽 편리한 일이 많다. 朝鮮[조선]에도 古代人[고대인]의 조개무지가 處處[처처]에 남아 있으니, 半島[반도]의 東 西南北[동서남북]을 통하여 없는 데가 거의 없고, 더욱 西方[서방]에 많다. 이밖에 主要[주요]한 遺跡[유적]은 地中[지중]의 「包含層[포함층]」과, 地 上[지상]의 「散布地[산포지]」와, 움구덩이 자리(竪穴[수혈])와, 굴속(洞 穴[동혈])과, 잣터(古城砦[고성채])와, 古墳[고분]들이니, 아직 朝鮮[조선] 서 많이 發見[발견]되지는 아니하고 또 精密[정밀]한 硏究[연구]가 끝나지 아니하였으나, 시방까지 取集[취집]된 石器[석기]·骨角器[골각기]도 꽤 적 지 아니하고, 또 여러 가지 古朝鮮人[고조선인]의 生活狀態[생활상태]도 분 명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들은 모호한 文字[문자]와 달라서 實物 [실물] 實跡[실적]이므로 특히 미더운 것이다.

石器[석기]는 깨뜨려서 그 뾰드럭이와 날카로운 금을 쓰는 打製[타제]란 것과, 잘 다듬고 갈아서 만들고 싶은 物形[물형]을 만들어 쓴 磨製[마제]의 두 가지가 있어, 前者[전자]가 먼저 나고 後者[후자]가 나중 나온 것인데, 朝鮮[조선]의 石器[석기]는 대개 磨製[마제]에 속하는 것이다. 石器[석기] 는 재료는 地方[지방]과 또 使用上[사용상]의 便宜[편의]를 따라서 일매지 지 아니하며, 그 종류는 石斧[석부]·石刀[석도]·石槍[석창]·石鏃[석 촉]·石匙[석시]·石錐[석추]·石鑿[석착]·石鎚[석추]·石錘[석추] 등 生 생활상 活上[ ] 必要品[필요품]이 대개 갖추어 있다. 石器[석기]와 한가지 조 개무지에서 나오는 遺物[유물]에는 骨[골] 또 角[각]으로 만든 鏃[촉]·銛 [섬]·針[침]·錐[추]·鈞[균] 등과, 牙[아] 또 貝[패]로 만든 裝飾品[장식 품] 등이 있으나, 이보다도 매우 重要[중요]한 것은 土器[토기]들이다. 石器[석기]는 材料[재료]가 단단하여 다루기가 거북하므로, 共通[공통]한 束縛[속박]을 받아서 세계 各處[각처]의 것이 거의 비스름비스름 하지마는, 土器[토기]는 製作者[제작자]의 意思[의사]대로 形狀[형상]과 裝飾[장식]을 마음대로 하게 생겼으므로, 그 作者[작자]의 趣味[취미]와 한가지로 그 시 대의 嗜好[기호]와 민족의 性味[성미]가 잘 드러나며, 또 各色[각색] 遺物 [유물]이 量[양]으로도 퍽 豐富[풍부]하므로 古代[고대]의 民族關係[민족관 계]와 文化狀態[문화상태]를 상고하는 데 가장 중요한 意義[의의]를 가지는 것이다. 이 時代[시대]의 土器[토기]는 무론 다 「날그릇」이니, 대개 粘土 [점토]에 雲母[운모] 또 沙粒[사립]을 섞어 반죽하여, 種種[종종]의 방법으 로 種種[종종]의 形態[형태]를 만들고, 거기 簡單[간단]한 文樣[문양]을 새 기거나 박아서 구워 낸 것이다. 그 종류에는 壺[호]·甕[옹]·鉢[발]·皿 [명]·高坏[고배]·紡綞車[방타차]·網錘[망추] 등이 있다. 金石並用時期 [금석병용시기]로 鐵器時代[철기시대]에 걸쳐서 石器[석기]가 차차 없어지 고, 骨角器[골각기]의 精巧[정교]한 것이 많이 생기고, 靑銅器[청동기]로부 터 鐵器[철기]의 銳利[예리]한 것이 나오며, 石器時代[석기시대]의 粗軟[조 연]한 赤褐色[적갈색] 또 黑頳色[흑정색]의 土器[토기]보다 좀 堅緻[견치] 하여진 靑褐色[청갈색] 또 靑灰色[청회색] 陶質器[도질기]가 나와서, 이른 바 新羅陶器[신라도기]로 발달하여 갔다. 저 金海貝塚[김해패총]·夢金浦貝 塚[몽금포패총] 등에서 鐵刀[철도]·鐵斧[철부]·鐵鏃[철촉] 등이 二[이]천 년 전의 貨幣[화폐]와 한가지 나오고, 또 鐵滓[철재]까지 섞여 있었음은, 그네들이 鍛冶[단야]까지 하였던 줄을 알 것이다. 또 거기서 骨製[골제]의 農具[농구]와 炭化[탄화]한 米粒[미립] 등이 나왔다.

이러한 遺物[유물]의 形態[형태]와 分布[분포]가 證明[증명]하는 바를 보 건대, 첫째 朝鮮半島[조선반도]에 人民[인민]이 棲息[서식]한 것은 四[사] 천 년보다 더 오래며, 또 石器時代[석기시대]로부터 南北[남북]을 통하여 同一[동일]한 민족이 居住[거주]하였었으며, 또 民族的[민족적]으로와 文化 的[문화적]으로 朝鮮半島[조선반도]는 北[북]의 滿洲[만주]·西伯利亞[서백 리아]와 南[남]의 日本[일본] 一部[일부]에 連絡[연락]이 있었으며, 素樸 [소박]하나마 二[이]천 년 훨씬 전으로부터 집도 일으켜 세우고, 農作[농 작]과 牧畜[목축]과 紡織[방직]을 다하여 生活狀態[생활상태]가 꽤 整頓[정 돈 ]되었었으며, 퍽 오래 전부터 工藝[공예] 美術[미술]에도 매우 留意[유 의]하고 身體裝飾[신체장식]에도 等閑[등한]치 아니하고, 또 그네의 생활이 聚落的[취락적]·社會的[사회적]이었던 것이 다 분명하다.

第二一章[제이일장] 祭祀[제사] 中心[중심]의 生活相[생활상][편집]

古朝鮮人[고조선인]의 活動[활동]은 모든 것이 죄다 宗敎[종교] 中心[중 심]이었다. 그 人文[인문]의 最高現象[최고현상]인 建邦[건방] 設都[설도] 도 무론 그 信仰[신앙]의 背景[배경]에서 經營[경영]되었다. 部族[부족] 하 나가 성립 되면, 우선 域內[역내]의 가장 高大[고대]한 山岳[산악]이 「 」로 擇定[택정]되니, 「」은 神嶽[신악]의 義[의]요, 그중의 峻極 [준극]한 峰巒(봉만)이 「다밋」혹 「부루」로 崇奉[숭봉]되니, 「다밋」 은 聖所[성소], 「부루」는 神祖[신조]의 義[의]이었다. 高山[고산]은 地上 [지상]에 分派[분파]되어 있는 天[천]이요, 國土[국토]는 이 高山[고산]이 民物[민물]을 奠接[전접]하기 위하여 앙가슴을 벌려 준 것이니, 國土[국토] 의 아비가 高山[고산]이라 하면, 天[천]은 곧 祖行[조행]쯤 되는 것이며, 또 자기네들의 祖上[조상]이 처음 故鄕[고향]인 天[천]으로서 人間[인간]에 分戶[분호]해 나올 때에 그 高山[고산]의 頂上[정상]을 着足地[착족지]로 하여 人文的[인문적] 활동을 開始[개시]하고, 또 人間[인간]으로부터 天鄕 [천향]으로 돌아갈 때에 또한 그 山頂[산정]을 말미암았으니, 그러므로 高 山[고산]은 天[천]과 國土[국토]와 祖上[조상]과의 統括的[통괄적] 表象[표 상]이 되는 것으로, 그 神聖[신성] 尊重[존중]하기가 여간이 아닌 것이었 다. 그러므로 一國[일국]에는 一國[일국]의 「」이 있고, 一鄕[일향]에 는 一鄕[일향]의, 一村[일촌]에는 一村[일촌]의 그것이 있고, 一門[일문]에 는 一門[일문]의, 一戶[일호]에는 一戶[일호]의 그것이 있었다.

시방 一邑[일읍]의 鎭山[진산]은 國典[국전]의 神嶽[신악]을 줄인 것이요, 一村[일촌]의 「堂山[당산]」은 鎭山[진산]을 줄인 것이요, 「선돌」은 堂 山[당산]을 줄인 것이요, 「터주」는 「선돌」을 집안으로 끌어들인 것이 요, 「업」은 터주를 방안으로 들여 모신 것이니, 그네가 行住坐臥[행주좌 와]에 떠나지 못하는 것이 실로 이러한 大小[대소] 여러 層級[층급]의 天 [천]의 表象物[표상물]이었다. 一國[일국]에서나, 一門[일문]에서나, 一家 [일가]에서나, 중대한 일은 반드시 여기 告祝[고축]하고, 祈禱[기도]하고, 穀果布帛[곡과포백]의 햇것과 숫것은 으례 먼저 여기 薦新[천신]을 하였다. 國土[국토]의 中心[중심]이 山谷[산곡]으로부터 河邊[하변]으로 옮기게 된 뒤에는 江河[강하]의 流潤[유윤]하는 恩澤[은택]과 泛濫(범람)하는 威力[위 력]으로써 誘導[유도]된 江河[강하] 神崇[신숭]의 信仰[신앙]이 생겼다. 그 神岳[신악]으로부터 源[원]이 發[발]하여, 國都[국도]를 끼고 域內[역내]를 貫流[관류]하는 江河[강하]는 대개 「얼」, 혹 「울」, 혹 「알」로서 부르 니, 이는 다 聖水[성수]·大水[대수]의 義[의]요, 扶餘[부여]·高句麗[고구 려]의 奄利[엄리]·鴨綠[압록]·鹽難[염난], 百濟[백제]의 阿利[아리]·郁 利[욱리], 新羅[신라]의 阿利[아리]·閼[알] 등은 다 이 古語[고어]의 譯字 [역자]들이다. 이 聖水[성수]에는 水[수]의 神格化[신격화]인 「미루」가 있는 줄 생각하니, 이것이 뒤에 漢文套[한문투]를 襲[습]하여 河伯[하백]을 일컫게 되고, 印度俗信[인도속신]이 加味[가미]되어서 龍王[용왕]이라고 알 게 된 것이다. 이렇게 山[산]에는 「불」神[신]이 있고, 水[수]에는 「밀」 神[신]이 있어, 國土[국토]의 大神[대신]이 二元[이원]의 觀[관]을 呈[정] 한 듯하지마는, 그 밑을 캐어보면 실상은 그 最高信仰[최고신앙]의 대상이 山[산]에서는 「불」로 일컫고, 水[수]에서는 「밀」로 일컫게 된 一體[일 체] 兩面的[양면적] 命名[명명]이니, 이것은 「알」이라는 聖水[성수]에 흔 히 沸流[비류]·富爾[부이]·浿[패]·白馬[백마](白村[백촌]) 등 一名[일 명]이 있음으로써 넉넉히 짐작할 것이다. 아마 山[산]이나 水[수]나, 먼저 는 한가지 「불」로 부르다가, 水[수]의 그것을 물답게 부르기 위하여 「밀」이란 새 이름이 생김일 것이다. 이렇게 「白[백]」民族[민족]의 國家 [국가]에는 등뒤에는 白山[백산]이 있고, 발 앞에는 阿利水[아리수]가 있 어, 쳐다보나 내리 굽어보나, 神德[신덕] 靈光[영광]에 젖게 됨이 그 本色 [본색]이었다. 이 主神[주신]·大神[대신]의 외에 低級[저급]의 自然神[자 연신]도 處處[처처]에 崇奉[숭봉]되었었다.

이렇게 神嶽[신악]과 聖水[성수]에 둘려서 사는 그네의 社會[사회]에는 또 한 가지 그네의 生活[생활]이 어떻게 神事[신사] 中心[중심]인 것을 드러내 는 恰好[흡호]한 事實[사실]이 있었다. 무엇이냐 하면, 그네의 公私生活[공 사생활]의 中心事實[중심사실]이 되는 一年[일년] 一次[일차] 혹 二次[이 차]의 國民的[국민적] 名節[명절]이니, 이 名日[명일]에는 擧國[거국] 上下 [상하]가 男女[남녀] 老小[노소] 아무 間隔[간격] 없이 慶祝[경축]과 讙娛 [환오]를 한가지하며, 일변 男子[남자]면 騎射[기사]·漕運[조운]이요, 女 子[여자]면 紡績[방적] 등 國民的[국민적] 競技[경기]와, 중대한 國策[국 책]이나 刑獄[형옥] 같은 國家的[국가적] 大處斷[대처단]은 이때를 기회로 하여 決裁[결재]하는데, 이 名節[명절]이란 다른 것 아니라 換歲[환세]한 머리나, 農事[농사] 시작할 五[오]월쯤이나, 農事[농사] 다 지은 一○[일 영]월쯤에 酒果[주과]와 時食[시식]을 갖추고, 舞曲[무곡]과 雜戱[잡희]를 차리고, 밤에는 燈燭[등촉]·炬火[거화] 등 갖은 火具[화구]를 베풀고, 사 흘 혹 닷새씩 天主[천주]께 大祭[대제]를 올리면서 晝夜[주야] 없이 진탕 먹고 실컷 노는 것이었다. 이 天主[천주]의 大祭[대제]가 國家的[국가적] 大審判日[대심판일]이요 國民的[국민적] 大慶祝日[대경축일]임은, 소중한 일은 神[신]을 모시고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慶節[경절]을 扶餘[부여]에서는 十一[십일]월에 設行[설행]하고 이 름을 「迎鼓[영고]」라 하니 譯[역]하면 神事[신사]라 함이요, 高句麗[고구 려]에서는 一○[일영]월에 設行[설행]하고 이름을 「東盟[동맹]」이라 하니 譯[역]하면 天會[천회]라 함이요, 濊[예]에서도 一○[일영]월에 設行[설행] 하고 「舞天[무천]」이라 이름하니 大祭[대제]라 함이요, 韓[한]에서는 五 [오]월에 下種[하종]을 끝내고와 一○[일영]월에 秋收[추수]를 다 하고서 한 번씩 設行[설행]하고 「弗矩內[불구내]」라 이름하니 光明時節[광명시 절] 도 神世[신세]라는 뜻이었다. 이렇게 一年[일년] 一次[일차]씩 設行[설 행]하는 祭天大會[제천대회]는 하느님께 報謝[보사]의 誠[성]을 바칠 뿐 아 니라, 또 部族的[부족적] 友愛[우애]를 敦篤[돈독]히 하고 社會的[사회적] 結束[결속]을 堅固[견고]히 함에 다 극히 필요한 典禮[전례]이며, 이것이 儀物技藝[의물기예]의 新奇[신기]와 優越[우월]을 競爭[경쟁]하는 기회가 되어, 文化[문화] 進步[진보]의 衝激[충격]이 되고, 俗尙[속상] 推移[추이] 의 源泉[원천]이 되었었다.

一年內[일년내] 勤儉[근검] 力作[역작]이 도무지 이 名日[명일] 한 번을 잘 지내어 하느님 덕에 洗心[세심]과 享樂[향락]을 兼得[겸득]하자 함이니, 시방까지도 名日[명일]을 「쉬운다」함은 이것이 身心[신심]으로 다 安息 [안식]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요, 이때에 轉換[전환]한 새 心機[심기]와 養 蓄[양축]하는 새 元氣[원기]로써 용맹스럽게 또 一年[일년]의 勤勞[근로]로 길을 떠나는 것이 그네들의 年一年[연일년] 生活[생활]이었다. 이렇게 古朝 鮮[고조선]의 생활은 온통 祭天大會[제천대회]를 중심으로 展開[전개]되었 으며, 또 온갖 俗尙[속상]도 이것을 기대서 發生[발생]하고 長成[장성]하는 것이었다.

第二二章[제이이장] 古代[고대]의 神域[신역]과 靈儀[영의][편집]

上古[상고]에 있어서 祭祀[제사]가 그렇게 소중한 일인데, 祭祀[제사]에는 淸淨[청정]을 아무것보다 崇尙[숭상]하는 결과는, 저절로 神聖[신성]한 區 구역 域[ ]을 定[정]하여 부정이 侵犯[침범]하지 못하게 하고, 神聖[신성]한 職司[직사]를 定[정]하여 부정에 接近[접근]하지 아니하게 하고, 神聖[신 성]한 方法[방법]을 정하여 부정이 附接[부접]하지 못하게 할 필요를 느끼 게 되었다.

이리하여 高山[고산] 潔淨[결정]의 地[지]에 神邑[신읍]을 두고, 그 안에 神壇[신단]을 베풀고, 峻拔[준발]한 石峰[석봉]이나 直立[직립]한 巖石[암 석]을 神體[신체]로 하여 敬事[경사]의 道[도]를 펴니 이것을 神巿[신불]라 하고, 이 자리를 蘇塗[소도]라 하고, 이 일 맡은 階級[계급]을 「당굴」(壇 君[단군]·天君[천군]·登高[등고])이라 하였다. 神巿[신불]는 譯[역]하면 靈域[영역]의 義[의]니, 대개 高山[고산]의 峰頭[봉두]를 에워서 一種[일 종]의 石圍[석위]를 베푼 것이요, 뒤에 많이 山城[산성]하고 混淆[혼효]된 것이며, 蘇塗[소도]는 高築[고축]을 의미하여 譯[역]하면 神壇[신단]이니, 高山頂[고산정]의 自然[자연] 直立石[직립석]이나 平治[평치]한 地面[지면] 에 壇[단]을 모으고 그 위에 長尖[장첨] 石柱[석주]를 얹은 것이요, 뒤에 돌무더기 혹 造塔[조탑]으로 부르게 된 것이며, 이렇게 神壇[신단]이 있는 곳에는 그 壇[단]을 擁衛[옹위]하는 神木[신목]이 있으니, 이것이 古書[고 서]에 神壇樹[신단수]라 하고, 뒤에는 당산나무라고 하게 된 것이다. 이 神 市[신시] 있는 山[산]이 곧 「」山[산]이란 것(譯[역]하여 風盧[풍로]· 毘盧[비로]·浮來[부래]의 類[류]), 一名[일명]「맑」山[산]이란 것(譯[역] 하여 摩尼[마니]·彌勒[미륵]·麻姑[마고]의 類[류]), 別稱[별칭]으로 「」山[산]이란 (譯[역]하여 仙[선]·聖[성]·霜[상]·雪[설]의 類[류]), 義譯[의역]하여 天王[천왕]·天帝[천제]·聖居[성거]·鷲棲[취서] 等山[등 산](又[우] 峰[봉])이란 것이요, 그 神壇[신단](又[우] 神體[신체])은 뒤에 立石[입석]·瑞石[서석]·將軍岩[장군암]·彌勒岩[미륵암]·月城[월성](達 城[달성])·塹城[참성] 등으로 일컬어, 道敎[도교] 盛[성]할 때에 그 祭星 [제성]의 壇[단]으로 化[화]한 것들이니, 시방 江華[강화]의 摩尼山[마니 산]과 三郞城[삼랑성]과 塹城壇[참성단], 益山[익산]의 彌勒山[미륵산]과 箕準城[기준성]과 將軍岩[장군암], 光州[광주]의 無等山[무등산]과 立石臺 [입석대] 등은 그 遺跡[유적]의 數例[수례]를 짓는 것이다. 蘇塗[소도]의 앞에는 大木[대목]을 세우고 鈴鼓[영고] 等物[등물]을 달아 이것을 울리면 서 祈祝[기축]을 행하니, 이것이 「솟대」라 하는 것이요, 後世[후세]에는 洞里[동리]의 榮華[영화]를 表章[표장]하는 물건이 되었지마는, 본디는 神 域[신역]의 標幟[표치]로 쓰던 것이다. 古俗[고속]에 神域[신역]을 어떻게 소중히 알든지, 罪人[죄인]이라도 神域[신역]에만 들어가면 나라에서도 잡 아 가지를 못하였었다.

지형 地形[ ]을 따라서는 반드시 高山[고산]과 矗石[촉석]을 얻기 어렵고, 더욱 聚落[취락]마다 이것이 있을 수 없으매, 이러한 곳과 그 住民[주민]은 부근의 靈畤[영치]를 向[향]하여 時[시]로써 望祭[망제]를 한다, 巡禮[순 례]를 한다 하지마는, 그래도 느긋하지 못한 精誠[정성]을 펴기 위하여 表 象的[표상적] 小神域[소신역]·小神壇[소신단]의 制[제]가 있었다. 시방 堂 山[당산]이라하여 洞里[동리]마다 神木[신목]을 中心[중심]으로 땅을 닦고, 地臺[지대]를 모으고, 돌을 쌓고, 그 꼭대기에 우뚝한 단 돌을 얹고, 그 앞 에 「벅수」곧 장승을 세우고, 相當[상당]한 周圍[주위]에 검줄(외새끼)을 늘이는 것은 곧 山上的[산상적] 神巿[신불]를 村中的[촌중적]으로 縮設[축 설]한 것의 遺意[유의]이니, 一木[일목]일망정 이것이 神林[신림]을 代[대] 한 것이요, 새끼줄일망정 이것이 靈域[영역]을 표한 것이며, 地方[지방]과 洞里[동리]를 따라서 혹 祭壇[제단]만 닦아 놓기도 하고, 장승만 세우기도 하고, 立石[입석]만 베풀기도 하고, 혹 老木[노목]을 의지하여 黃土[황토] 를 수북이 모으고 그 위에 돌멩이 하나를 얹고 검줄을 나무 허리에 동이기 만 하기도 하는 등은, 古制[고제]가 부스러지고 조각 조각 나서 그 한두 가 지씩을 지키는 것이다.

또 본디는 이리로서 나와서 차차 獨立[독립]한 意義[의의]를 가진 것이 몇 가지 있게 되었다. 그중 重要[중요]한 것이 「선돌」이다. 선돌은 본디 神 壇[신단]에서 天然[천연]한 石柱[석주]를 神體[신체]로 위하던 것이지마는, 나중에는 獨立[독립]한 一聖物[일성물]이 되어서 洞里[동리]의 保佑[보우] 와 子孫[자손]의 점지에 특수한 權能[권능]이 있다 하게 되니, 시방 全域內 [전역내]에 무릇 「立石[입석]」이라고 하는 地名[지명]은 다 이 靈場[영 장]에 드는 것이어니와, 더욱 馬韓[마한]의 故土[고토]에는 시방도 동네동 네 立石[입석] 없는 데가 없고, 그중 大國[대국]이었던 곳에는 퍽 壯大[장 대]한 遺物[유물]이 전해 오니, 馬韓[마한]의 首都[수도]이던 益山[익산]의 彌勒山前[미륵산전]에 있는 兩[양]「石人[석인]」같은 것은 그 대표적 一物 [일물]로 볼 것이요, 高敞[고창]의 「華表[화표]」와, 潭陽[담양]의 石檣 [석장]이란 것도 무론 다 이중의 特著[특저]한 것이요, 저 恩津[은진]의 「彌勒[미륵]」(實[실]은 觀音像[관음상])이란 것도 본디는 古神道[고신도] 一立石[일입석]이던 것을 加工[가공]한 것일 따름이다(黃海道[황해도] 九月 山下[구월산하]에도 此種[차종]의 石人像[석인상]이 三[삼], 四[사] 處[처] 에나 서서 있다). 이것은 土俗學上[토속학상] 「멘히르」(Menhir=선돌)이란 것이니, 世界[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風習[풍습]으로, 太陽[태양] 崇拜[숭 배 와 관계 ]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東方[동방]에서는 朝鮮[조선]에 특히 顯 著[현저]한 證迹[증적]과 長久[장구]한 生命[생명]을 가진 것은, 이 種類 [종류] 文化[문화]의 移動線[이동선]과 朝鮮[조선] 古文化[고문화]의 本質 [본질]을 밝히는 데 퍽 관계가 큰 것이다. 妙香山[묘향산]의 卓旗峰[탁기 봉]과, 禪雲山[선운산]의 使者石[사자석]과, 天磨山[천마산]·三角山[삼각 산]의 負兒岩[부아암]과, 金剛山[금강산] 觀音峰[관음봉]의 老丈岩[노장암] 과, 蔚山[울산]과 高城[고성] 등 海邊[해변]의 立岩[입암] 등은 自然物[자 연물]인 「선돌」이던 것이다.

第二三章[제이삼장] 瑞石[서석]과 支石[지석]과 「업」[편집]

「선돌」은 흔히 單獨[단독]이로되, 혹 兩個[양개]가 對立[대립]하여 男女 [남녀]로 일컫는 일이 있으며, 그것이 叢立[총립]할 때에는 더욱 큰 聖物 [성물]이 되었다.

人造[인조]로 생긴 立石群[입석군]은 아직 實物[실물]을 만나 보지 못하였 지마는, 天然[천연]한 그것인 無等山[무등산]의 立石臺[입석대], 金剛山[금 강산]의 百塔[백탑]·須彌塔[수미탑]은 다 古來[고래]로 神聖視[신성시]되 어 祭天壇[제천단]으로 이용된 것이니, 이것을 「瑞石[서석]」이라고 불렀 었다. 이는 土俗學上[토속학상] 「트라일리톤」(Trilithon)이나 「알라인멘 트」(Alignment)나, 또 環狀石籬[환상석리](Cromlech, or Stone circle])에 比對[비대]될 것으로, 자못 주의할 信仰的[신앙적] 遺物[유물]이다. 이외에 石古物[석고물]로 주의할 것은 「고인돌」(撑石[탱석]·支石[지석]·廣石 [광석])이니 밑에 몇 낱 받침을 넣고, 그 위에 一大平石[일대평석]을 얹어 서 册床[책상] 비슷하게 하는 것이요, 朝鮮內[조선내] 各處[각처]에서 연방 發見[발견]되어, 南[남]에는 金海[김해]에서도 나오고, 北[북]에는 龍岡[용 강] 石泉山[석천산]에서 一回二○[일회이영]여의 一群[일군]을 發見[발견] 하였으며, 나는 일찍 朝鮮[조선]文化[문화]의 最古[최고] 遺蹟地[유적지]라 할 九月山[구월산]의 周圍[주위] ── 信川[신천](文化[문화])·安岳[안 악]·殷栗[은율](長連[장련]) 등 一帶地[일대지]가 통히 「고인돌」의 分布 地[분포지]로 全域中[전역중]의 代表的[대표적] 「고인돌」文化圈[문화권] 임을 살펴 알았으며, 또 益山[익산]의 臨益水利組合[임익수리조합]부근의 夢串里[몽곶리]·五相里[오상리] 중간에서 「支石[지석]」이라고 부르는 破 壞[파괴]된 一基[일기]를 踏驗[답험]하고, 또 無等山[무등산]의 廣石臺[광 석대]가 天然[천연]한(?) 一大[일대] 「고인돌」임을 보았다.

이것은 土俗學上[토속학상] 「돌멘」(Dolmen, 考古學上[고고학상]

Compound Megalithic formation)이라 하는 것으로, 시방까지 學者[학자]들 이 石器時代[석기시대]의 墳墓[분묘]리라고 하는 것이나, 우리 생각에는 墳 墓[분묘]로만 論[논]할 것이 아니라, 立石[입석]·石籬[석리]와 한가지 일 종의 祭壇[제단] 혹 聖所[성소]를 겸한 것으로 봄이 더 妥當[타당]할 듯하 며, 神山[신산]앞에 흔히 있는 天然[천연]한 「拜石[배석]」이란 것과 시방 墳墓[분묘] 앞에 있는 床石[상석]·魂遊石[혼유석] 등은 다 이 「돌멘」으 로서 脫化[탈화]된 古風[고풍]일까 한다(자세한 것은 別[별]로 論考[논고] 가 있음).

그리로서 달리 하나 脫化[탈화]한 것에 「터주」와 「업」이 있다. 後世 [후세]의 風[풍]으로 볼진대, 家垈中[가대중] 高淨[고정]한 곳을 가려서 깨 끗하게 壇[단]을 만들고, 항아리에 穀食[곡식](대개 벼)과 돈을 넣어 놓고, 짚으로 주저리를 우뚝하게 만들어 위로서 뒤집어씌우고, 왼새끼로 동여 놓 는 것이 「터주」요, 항아리에 穀食[곡식](대개 쌀)과 돈을 넣어, 터주보다 운두만 나지막하게 하여 터주와 나란히나, 혹 庫中[고중]의 架上[가상]이 나, 혹 室內[실내] 高淨[고정]한 곳에 모시는 것이 「업」이니, 後世[후세] 의 의미로는, 터주는 오로지 家宅[가택]의 保佑[보우]를 맡고, 「업」은 오 로지 福祿[복록]의 점지를 가음알게 되었지마는, 본디 神山[신산]·神石[신 석] 등을 一家的[일가적]으로 줄이고, 生殖力[생식력]을 象徵[상징]하여 섬 기던 「업」이 둘에 나뉘인 것이다. 「업」의 神體[신체]로 생각하는 것은 家門[가문]을 따라 같지 아니하여, 夢兆[몽조]나 기타 徵驗[징험]이 있는 대로 혹 「구렁이」, 혹「족제비」, 혹「도야지」, 혹「사람」등이 일매지 지 아니하니, 이것은 古代[고대]의 사람이 自己[자기]네와 血統上[혈통상] 에 特殊[특수]한 관계가 있는 줄로 미더워하던 土俗學上[토속학상]의 이른 바 「토템」이란 것의 餘風[여풍]을 띠었다. 「업」은 「터주」와 한가지 대개 土地神[토지신]·生殖神[생식신]·氏族神[씨족신]을 겸한 대표적 家庭 神[가정신]으로, 저 蒙古[몽고]의 「오보」와, 日本[일본]의 「우부」하고 같은 出處[출처]를 가지는 것이니, 蒙古[몽고]에서는 돌무더기를 만들어 놓 고 土地[토지]의 祭[제]를 지냄이 主義[주의]가 되고, 日本[일본]에서는 林 中[임중]에 社[사]를 짓고 氏族[씨족]의 靈[영]을 위함이 主義[주의]가 되 었으나, 朝鮮[조선]의 風[풍]에 蒙古[몽고]·日本[일본]의 俗[속]을 合[합] 한 것이 그 原義[원의]일 것이요, 또 그 根本[근본]은 神山[신산]의 縮約 [축약]일 것이다.

이 모든 祭壇[제단]의 共通[공통]한 점은 높고 깨끗함이었다. 어쨌든지 그 경역 안에서 말끔한 境域[ ] 곳을 가려서 우뚝한 것을 만들어 놓고 항상 그 聖潔[성결]을 지켰다. 노래와 춤을 이 앞에 올리고, 술과 떡을 이 앞에 베 풀면서, 아침 저녁으로 빌고 바라는 것은 「늘려 줍시사, 불려 줍시사」와, 「풀어 줍시사, 거두어 줍시사」와, 「궂은 것을 물려 주시고, 반가운 일을 점지하여 줍시사」이었다. 우뚝하게 만드는 것은 一[일]은 生榮[생영] 繁殖 [번식]을 表象[표상]하는 것이요, 一[일]은 그만큼 天[천]과 日[일]에 接近 [접근]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祈願[기원]하는 법은, 북을 울리고 방울 을 흔들면서 虔肅[건숙]한 마음으로써 祝願[축원]하는 뜻을 가락지어 늘어 놓음이니, 이것을「섬기」라 하여 同時[동시]에 神[신]께 봉사하는 意[의] 를 이룸은 事神[사신]에 반드시 告祝[고축]이 따라다니는 까닭이었다. 북과 방울은 밖으론 邪氣[사기]를 물리치고, 안으론 淨心[정심]을 깨우쳐 내는 神力[신력]이 있는 줄 생각하였다.

第二四章[제이사장] 祭祀[제사]와 女子[여자]의 地位[지위][편집]

原始時代[원시시대]의 사람은 交接[교접]과 生殖[생식]의 사이에 因果的 [인과적] 관계가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兒孫[아손]의 生續[생속]은 오로 지 母親[모친]만의 所爲[소위]로 생각하여, 저절로 女子[여자]가 主[주]가 되어 男子[남자]를 選擇[선택]도 하거나, 크게는 團部[단부]의 系統[계통] 과 작게는 家庭[가정]의 組織[조직]을 도무지 女子[여자]를 中心[중심]으로 하기도 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母系的[모계적] 社會[사회]란 것이다. 朝鮮[조선]에서도 「암수」라 하여 雌雄[자웅]에 雌[자]를 먼저 말하고, 「계집 사내」라 하여 男女[남녀]에 女[녀]를 먼저 말하고, 「어미 아비」 라 하여 父母[부모]에 母[모]를 먼저 말하고, 「지어미 지아비」라 하여 夫 婦[부부]에 婦[부]를 먼저 말함과 같음은 總[총]히 母系時代[모계시대]의 遺風[유풍]으로 볼 것이다. 그러나 社會[사회]가 父系的[부계적]으로 變 [변]해진 뒤에까지도 女子[여자]의 地位[지위]는 東洋[동양]의 다른 나라와 같지 아니하여, 쥐양 男子[남자]보다 내림이 없고, 도리어 어떠한 의미로는 특수한 尊敬[존경]을 받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女子[여자]가 神[신] 께 특수한 恩寵[은총]을 받고 神[신]을 섬김에 女子[여자]가 男子[남자]보 다 優越[우월]한 能力[능력]이 있다고 생각한 까닭이었다. 이른바 降神[강 신], 朝鮮語[조선어]의 「무당내림」, 혹 「뒤집어씌움」, 혹 「집힘」, 시 방 말로 人格[인격] 轉換[전환]의 現象[현상]은 원체 婦人[부인]에게 잘 나 타나는 일이니, 神[신]을 섬기는 職分[직분]이 女子[여자]를 主[주]로 하게 되고, 祭祀崇尙[제사숭상]과 한가지로 이것을 맡은 女子[여자]가 相當[상 당]히 社會的[사회적] 敬待[경대]를 받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朝鮮[조선]의 오랜 傳說[전설]을 볼진대, 國土[국토]의 生成[생성]과 人文[인문]의 始初 [시초]는 總[총]히 女性[여성]의 神秘力[신비력]에 말미암았다 하니, 柳花 夫人[유화부인]·夫餘神[부여신]·東神聖母[동신성모]·正見母主[정견모주] 등으로 일컫는 이가 다 그것이다. 後代[후대]의 기록에는 이러한 偉大[위 대]한 一女性[일여성]이 天[천]이나 혹 그 代表者[대표자]와 交合[교합]하 여 각기 一方[일방]의 建國者[건국자]를 誕育[탄육]한 것처럼 적었지마는, 그 原義[원의]는 실상 이러한 神聖[신성]한 一母性[일모성]이 있어, 國土 [국토]와 人文[인문]을 生產[생산]하였다 함일 것이니, 國祖[국조]로 崇奉 [숭봉]하는 神[신]이 다 天王[천왕]이 아니라「聖母[성모]」임을 보아서도 넉넉히 그런 줄을 짐작할 것이요, 이는 실상 한쪽으로 古代[고대]에 女性 [여성] 中心[중심]의 社會[사회]가 있던 것을 反映[반영]함으로도 볼 것이 다.

古代社會[고대사회]의 主長[주장]은 靈的[영적] 資格[자격]의 優勝[우승] 한 者[자]를 推戴[추대]하는 법이요, 그래서 「神人[신인]」── 巫[무]가 法俗[법속] 兩方[양방]의 主權[주권]을 兼執[겸집]하게 되는 것이요, 그런 데 무당은 女子[여자]가 주장이매 古代[고대]의 君長[군장]은 대개 女性[여 성]이었던 것이요, 後世[후세]까지도 女君[여군]이 國政[국정]을 맡음이 이 遺風[유풍]을 지킴인데, 敎政[교정]이 갈라진 뒤에도 敎的[교적] 方面[방 면]의 要任[요임]은 依然[의연]히 女子[여자]가 擔當[담당]하게 되어, 祭司 長[제사장]을 반드시 王者[왕자]의 近親[근친] 女子[여자]로 當[당]함은, 原義[원의]로 말하면 男女[남녀] 兩性[양성]에 나누인 채 依然[의연]한 一 身[일신]의 兩面[양면], 一人[일인]의 兼攝[겸섭]이었다. 이 祭司長[제사 장]되는 女性[여성]을 「알」, 혹 「알영」(阿老[아로] 혹 阿利英[아리영]) 이라 하니, 聖者[성자]를 意味[의미]함이었다.

部族[부족] 全體[전체]의 사이에 있어서와 같이, 一家族[일가족]의 안에 있어서도 女子[여자]의 地位[지위]는 祭祀[제사]에 관련하여 언제든지 만만 하지 아니하였다. 별달리 차려서 神[신]께 드림을 「굿」이라 하고, 「굿」 을 작게 차려서 日例[일례] 혹 月例的[월례적]으로 神[신]에 드리는 것을 「고사」라 하고, 굿과 고사를 合[합]하여 「마지」라 하는데, 굿과 고사가 다 女子[여자] ── 家庭[가정]에 있어서는 主母[주모]의 職分[직분]이었 다. 또 古代[고대]에는 火[화]를 太陽[태양]의 分身[분신]이라 하고, 날것 을 익힘과 지저분한 것을 살라버림을 다 神秘[신비]한 힘으로 알아서 불을 끔직하게 위하여, 일변으로는 一家[일가] 保佑[보우]의 神聖物[신성물]로 「씨불」이란 것을 代代[대대]로 傳承[전승]하면서 이것을 꺼뜨리지않고 곱 게 살려 가는 것이 一家[일가]의 幸福[행복]을 保存[보존]해 가는 上[상]의 最大[최대] 必要事[필요사]로 생각하며, 일변으로는 불의 宮殿[궁전]이라 할 부엌과 부뚜막을 대단히 소중하게 알아서 絶對[절대]로 그 깨끗을 保護 [보호]해야 하며, 또 일변으로는 光明[광명]이 곧 幸福[행복]이요, 家內[가 내]를 光明[광명]케 함이 곧 幸福[행복]을 導迎[도영]하는 方途[방도]라 생 각하여, 歲時[세시] 名節[명절] 같은 때에는 「이」라 하여 특히 많은 燈 燭[등촉]으로써 온 집안을 구석구석 明朗[명랑]하게 만드는데, 이 모든 불 로써 하는 神聖[신성]한 任務[임무]는 도무지 女子[여자]의 맡은 바이었다. 또 어떠한 機會[기회]에든지 神[신]에게 술을 드리고, 그 앞에서 춤을 추 고, 또 손을 비비면서 祈願[기원]하는 사설을 옮기는 것이 다 一家[일가] 主母[주모]의 맡아 보는 聖職[성직]이니, 女子[여자]는 이렇게 神[신]께로 부터 幸福[행복]을 낚아 내는 能力[능력]을 가진 이이매, 그만큼 一家內[일 가내]에서 敬重[경중]되지 아니치 못하였다.

男尊女卑[남존여비]의 風[풍]은 後世[후세]에 儒敎思想[유교사상]에 묻어 들어와서 약간 거기 물든 것도 있으나, 워낙 古風[고풍]의 뿌리가 깊은 바 에, 女子[여자]의 社會[사회]와 家庭[가정]에 있는 實際的[실제적] 地位[지 위]는 依然[의연]히 確保[확보]되어 갔다. 요새까지도 「아낙네」하면 侵犯 [침범]치 못할 一種[일종] 엄청난 權威[권위]로 男子[남자]가 찔끔하지 아 니치 못함은 그 由來[유래]가 먼 것이다.

第二五章[제이오장] 古代[고대]의 君主[군주]와 天符[천부][편집]

다른 데서와 같이 朝鮮[조선]의 古代[고대]에도 君主[군주]는 동시에 神父 [신부]요 醫師[의사]이었다. 社會的[사회적]으로나 個人的[개인적]으로나, 生理的[생리적]으로나 心理的[심리적]으로나, 무릇 틀린 것을 바로잡고, 탈 난 것을 고치는 것이 君主[군주]된 이의 任務[임무]니, 「바로잡다」함은 「스럽게 한다」곧 神的[신적]이게 한다 함이요, 「고치다」함은 고부라 진 것, 비뚜러진 것을 편다 함이다. 世上[세상]의 罪惡[죄악]이든지, 身體 [신체]의 疾病[질병]이든지, 乃至[내지] 天候[천후]의 乖變(괴변)이든지 통 히 正當[정당]하다는 狀態[상태]에서 어그러지는 것을 「탈」이라 하니, 탈 은 「덧내」와 같은 뜻으로, 神[신]의 怒[노]에 觸犯[촉범]함을 의미함인 데, 君主[군주]의 소임은 곧 神[신]의 怒[노]를 풀고 寵[총]을 회복하여 本 然[본연]한 狀態[상태]로 돌아가게 함 ── 곧 「고쳐놓음」이었다. 朝鮮語 [조선어]에 政治[정치]를 「다스리」라 하여 溫暖[온난]하게 함을 의미함은 日神[일신]이신 天主[천주]께 가까와서 따뜻하여짐과, 물리친 바 되어서 써 늘하게 됨이 사람 잘살고 못살게 되는 根本[근본] 動機[동기]인 줄 믿음에 서 나온 것이니, 嫌惡[혐오]를 「써늘」이라 하고, 疎遠[소원]히 함을 「쓸 쓸」이라 하고, 悲凉[비량]을 또한 쓸쓸이라 함에 比對[비대]하여 그 微意 [미의]의 存[존]한 바를 알 것이다. 主權者[주권자]란 것은 要[요]하건대 神[신]의 威力[위력]으로써 고부라지기 쉬운 世上[세상]을 「곧」게 하고, 쓸쓸해지기 쉬운 世上[세상]을 「다스」케 하는 이로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君主[군주] 되는 이는 全部族[전부족] 중에서 가장 靈的[영적] 能力[능력] 이 豐富[풍부]하여서 「일」── 곧 「풀이」와 「굿」을 잘하여, 남의 病 [병]도 잘 고치고, 이로써 部族內[부족내]의 가장 큰 尊信[존신]을 사는 사 람이었다.

그러므로 처음의 君主[군주]는 威力[위력]으로써 누구를 征服[정복]한 이 도 아니요, 契約[계약]으로써 누구를 拘束[구속]한 이도 아니라, 갸륵하다, 「용」하다고 一般[일반]이 생각하는 이를 여럿이 떠받든 것이다. 이런 이 를 「이」라 하니, 「日人[일인]」곧 「神人[신인]」의 뜻이요, 또 「 」이라 하니 또한 「日的[일적]」곧 「神的[신적]」이란 뜻이며, 이 「이」를 後人[후인]이 漢字[한자]로 譯[역]한 것이 「加[가]」이요, 「」을 譯[역]한 것이 「干[간]」이다. 當初[당초] 작은 部落[부락]들 로만 있을때에는 각기 한 加[가]나 干[간]의 다스림 아래 있다가, 部族[부 족]의 統合[통합]이 行[행]하여 諸部[제부]의 上[상]에 別[별]로 總攬的[총 람적] 君長[군장]이 생기매 古鄒加[고추가]니 居西干[거서간]이니 麻立干 [마립간]이니 하는 이름이 생겼다. 古鄒[고추]와 居西[거서]는 「곳」, 麻 立[마립]은 「마리」의 譯[역]으로, 다 頭領[두령]의 義[의]이다. 그런데 「古鄒[고추]」에는 「곳」짐과, 麻立[마립]에는 「말」림의 뜻이 있어, 고 르고 깨끗하게 함과 通[통]함을 注意[주의]할지니, 대개 君主[군주]는 온갖 不順[불순]과 不平[불평]을 調和[조화]하고, 不安[불안]과 不淨[부정]은 淸 穩[청온]하게 하는 責任[책임]을 졌었다.

北夫餘[북부여] 같은 데서는 時候[시후]가 不順[불순]하여 年穀[연곡]이 不登[부등]하는 것까지를 君主[군주]의 責任[책임]이라 하여 舊君[구군]을 내치고 新軍[신군]을 뽑아 세우기까지 하니, 이는 一面[일면]으로 重農[중 농]의 風[풍]을 살필 수 있는 동시에, 그때 사람의 君主[군주]에게 대한 觀 念[관념]을 짐작할 일이다. 農業經濟[농업경제]가 進步[진보]하고, 男子[남 자] 家長制[가장제]가 完成[완성]하고, 法制[법제]와 權力[권력] 등이 發生 [발생]한 뒤에는 一部族[일부족]의 加[가]나 全種族[전종족]의 大加[대가] 의 地位[지위]가 차차 固着[고착]하여, 마침내 世襲的[세습적]으로 물려 내 려가게 되면서 「임검」이란 이름이 생기니, 임은 主人[주인]의 義[의]로, 主[주]인 在上者[재상자]라 함이요, 部族[부족]과 政治[정치]가 自己[자기] 의 所有[소유]임을 높은 데로서 나타낸 말이다. 이밖에 君主[군주]를 부르 는 名稱[명칭]이 地方[지방]과 時代[시대]를 따라서 특수한 것은 전에 따로 적음과 같다.

무릇 古代[고대]에 君主[군주] 노릇하는 階級[계급]에는 일반의 民衆[민 중]에 비하여 몇 가지 特異[특이]한 표시가 있었다. 그 하나는 氏族[씨족] 의 榮稱[영칭]이니, 혹 「桓[환]」이라 함은 光明[광명]의 義[의]요, 혹 「大[대]」라 함은 高大[고대]의 義[의]요, 혹 「解[해]」라 함은 日族[일 족]의 表示[표시]요, 혹 「朴[박]」이라 함은 神裔[신예]의 表示[표시]이었 다.

또 하나는 그 部族內[부족내]에서 소중하게 傳承[전승]하는 神器[신기]를 맡아 가짐이니, 壇君[단군] 古傳[고전]에 나오는 天符印[천부인] 三箇[삼 개]라는 것 따위가 그것이다.

무엇무엇 셋인 것은 傳[전]함이 없으므로 분명히 알기 어려우나, 여러 古 義[고의]와 古儀[고의]를 綜合[종합]하여 생각하건대, 그것이 天主[천주] (日神[일신])의 性德[성덕]을 表象[표상]하는 物種[물종]임은 살피기 어렵 지 아니하니, 첫째 光明[광명]의 表象[표상]인 「거울」이 하나요, 또 그 威力[위력]의 表象[표상]인 「칼」이 하나요, 또 그 恩澤[은택]의 表象[표 상]인 穀種[곡종]이 하나인 듯하다.

이 세 가지가 시방까지도 祠廟[사묘]와 家庭[가정]에서 갸륵한 神體[신체] 로 위함이 되고, 무당의 神事[신사] 잡숫는 데 神物[신물]로 쓰이는 것임으 로써 그 옛 뜻을 짐작할 것이다.

第二六章[제이륙장] 久遠[구원]의 國土[국토]는 東方[동방][편집]

天[천]은 光明[광명]의ㅡ 世界[세계]요, 그 主宰者[주재자]는 日[일]이요, 自己[자기]는 그 天國[천국]의 民[민]이요, 그 天神[천신]의 子[자]로 人間 [인간]을 太陽的[태양적]이게 하기 위하여 이 世界[세계]로 내려왔다 함은 고대 震方人[진방인]의 깊이 믿는 바이었다. 太陽[태양]은 다만 神[신]으로 거룩할 뿐 아니라, 祖上神[조상신]으로 소중이 자별하매, 太陽[태양] 崇拜 [숭배]는 祖先[조선] 崇拜的[숭배적] 여러 의미를 合[합]하여, 그네의 最大 [최대] 虔誠[건성]을 드리는 바요, 따라서 太陽[태양]에 관한 一切[일체]가 골고루 神聖[신성]한 感念[감념]으로써 그네를 誘導[유도]하였다. 그중의 하나로 어느 때부터인지 日出處[일출처] 聖視[성시]·東方[동방] 慕仰[모 앙]의 風[풍]이 그네의 사이에 생겨나니, 대개 날마다 精誠[정성]스러이 朝 日[조일]을 禮拜[예배]하는 그가, 모르는 중에 朝日[조일]의 方位[방위]까 지를 거룩하다 하게 된 것이요, 또 東方[동방]은 日出處[일출처]요, 太陽 [태양]의 榮光[영광]과 威力[위력]이 發揚[발양]하기 비롯하는 方位[방위] 요, 天地[천지] 萬物[만물]의 生氣[생기]가 年[년]으로나 日[일]로나, 그 쪽을 因[인]하여 커지는 等[등], 여러 가지가 다 그네로 하여금 東方[동방] 의 神秘[신비]를 嘆仰[탄앙]하게 할 만한 條件[조건]이었으며, 더욱 日子 [일자]인 그네에게 있어서는, 日[일]의 本國[본국]인 東方[동방]은 그네의 故鄕[고향]이요 發祥地[발상지] 같으매, 根本[근본] 그리워하는 精誠[정성] 이 저절로 이리 傾倒[경도]치 아니치 못하였다.

古語[고어]에 東方[동방]을 「시」라 하니, 曙光[서광]과 한가지 神聖[신 성]의 義[의]를 가진 말이요, 高句麗[고구려]의 大神[대신]에 「隧[수]」란 것이 있어, 國東[국동]의 大穴[대혈]을 神殿[신전]으로 하고, 一○[일영]월 이면 國都[국도]로 奉請[봉청]하여서 大祭[대제]를 드리니, 隧[수]는 곧 東 方[동방]을 의미하는 語[어]로, 隧神[수신]은 東明神[동명신]의 原語[원어] 이며, 東明神[동명신]은 一[일]에 夫餘神[부여신]이라 하여, 婦人[부인]의 像[상]으로 崇奉[숭봉]하는 太陽[태양]인 女神[여신]으로 그네의 써 國祖 [국조]라 하던 바이며, 辰韓[진한]에서는 國祖[국조]를 「娑蘇[사소]」라 하고, 一[일]에 「西鳶(서연)」又[우] 「仙桃[선도]」라 일컫고, 譯[역]하 여 東神聖母[동신성모]라 하니 또한 太陽[태양]인 女神[여신]이다. 이렇게 國祖[국조]들이 日[일]로써 體[체]를 삼고 東[동]으로써 이름을 지음은, 東 方[동방]과 日[일]을 섞어 생각하도록 東方[동방]을 神聖[신성]하게 알았기 때문이다. 弁韓[변한]에서는 神廟[신묘]의 戶[호]를 반드시 東[동]으로 트 고, 祭壇[제단]은 戶東[호동]에 베풀었으니, 또한 東[동]으로써 神[신]의 方位[방위]라 하였음이요, 後代[후대]의 家屋[가옥]에도 東向[동향]이 많음 은 은연히 이 流風[유풍]이 내려옴이다. 古代[고대]에는 家長[가장]이나 族 長[족장]이나 祭司長[제사장] 되는 이가 날마다 아침이면 불끈 솟는 太陽 [태양]을 맞이하기 위하여, 東方[동방]을 向[향]하여 정성스럽게 禮拜[예 배]하였음은 毋論[무론]이어니와, 換歲[환세]한 元旦[원단]에나 다른 특수 한 名節[명절]마다 全部族[전부족]이 한데 모여서 公共[공공]하게 太陽[태 양]과 東方[동방]을 禮拜[예배]하는 高處[고처]가 部族[부족]마다 있었으 니, 古代[고대]의 神山[신산] 중에 「」혹 「술」, 轉[전]하여 「선」 혹 「성」과, 또 이 비슷한 이름을 가지는 者[자]는 다 이 遺蹟[유적]으로 볼 것이다. 平壤[평양]의 大聖山[대성산], 開城[개성]의 聖居山[성거산], 慶州[경주]의 西鳶山[서연산]과 기타 「仙[선]」「聖[성]」「鷲[취]」 「松[송]」「霜[상]」「雪[설]」등 名字[명자]를 冒[모]한 山[산]들은 대 개 이중의 一例[일례]를 짓는 것이다.

그네의 哲學[철학]을 디디건대, 東方[동방]은 生命[생명]의 本原[본원]인 동시에 특히 震人[진인]의 故鄕[고향]이다. 하늘과 人世[인세]와의 交通[교 통]은 東方[동방]에 있는 高山[고산]이 그 中繼點[중계점]인 줄로 생각하 니, 이곳을 「리」山[산], (轉[전]하여 「」山[산]·「」山 [산], 略[략]하여 「덕」山[산]·「대」山[산])이라 일컬어서 聖山[성산] 중의 聖山[성산]이요, 그 山神[산신]은 生命[생명]과 禍福[화복]의 司神[사 신]으로 각별한 尊崇[존숭]을 받았다. 大陸[대륙]에서는 白頭山[백두산], 半島[반도]에서는 金剛山[금강산], 특히 辰韓[진한]에서는 吐含山[토함산] 등이 다 生命[생명]의 나오는 곳, 죽으면 魂魄[혼백]의 돌아가는 곳으로 생 각되는 데요, 支那[지나]에서는 泰山[태산]이 이렇게 信仰[신앙]되니, 이 모든 山[산]은 다 그 域內[역내]에서 東方[동방]의 地盡頭[지진두]에 있는 것이며, 또 그 앞에 있는 東海[동해]를 「渤澥[발해]」혹 「碧海[벽해]」라 함은 또한 神海[신해]를 의미함이요, 또 一[일]에 滄海[창해]라 함은 天海 [천해]를 의미함이었다. 이렇게 東方[동방]을 生命[생명]의 根源[근원]으로 여기는 觀念[관념]이 永生慾[영생욕]과 結合[결합]하여 久遠[구원]한 福地 [복지]를 東方[동방]에 設想[설상]하고, 白淨[백정]한 黃金[황금] 世界[세 계]에서 神仙[신선]이라는 長生不死人[장생불사인]이 極樂的[극락적] 生活 [생활]을 한다 하게 되고, 또 거기는 不老草[불로초]라는 靈藥[영약]이 있 어, 얻어 먹으면 肉身[육신]으로 神仙[신선]이 되리라 하게 되니, 이른바 東海[동해]의 三神山[삼신산]이란 것이 본시 東方[동방] 聖視[성시]·太陽 [태양] 嘆仰[탄앙]의 具體化[구체화]에 不外[불외]하는 것이며, 그 대표적 名稱[명칭]인 「蓬萊[봉래]」(혹 防丘[방구])란 것도 震語[진어] 「」의 轉譯[전역]이었다. 震人[진인]의 東[동]으로 東[동]으로 欣求慕嚮[흔구모 향]하는 운동이 實際上[실제상]에서 盡頭[진두]가 될 때에, 理念上[이념상] 으로 脫化[탈화]하여 東方[동방]에 대한 뜨거운 그리움을 無限[무한]히 延 長[연장]한 것이 蓬萊[봉래]라는 理想世界[이상세계]의 觀念[관념]이었다. 第二七章[제이칠장] 古震人[고진인]의 敎學[교학] 藝術[예술] 古震人[고진인]의 特性[특성]은 冥想[명상]에 短[단]한 만큼 實行[실행]에 長[장]함이었다. 弓馬[궁마]를 잡으면 勇戰突擊[용전돌격]하고, 田疇[전주] 를 붙들면 健行力作[건행역작]하여, 筋骨[근골]과 및 그리로서 생기는 結果 [결과]를 享受[향수]하면서 萬有一切[만유일체]의 根元[근원]이신 天主[천 주]를 讃頌[찬송]함이 그 生活[생활]의 基調[기조]요 또 全部[전부]이었다. 가만한 考察[고찰]과 웅숭깊은 觀照[관조]는 그네의 갑갑해하는 바요, 눈감 고 생각할 겨를이 있으면 차라리 사족을 놀려 일을 나가는 사람이었다. 淺 薄[천박]한 樂天[낙천]이라면 안 그런 것도 아니지마는, 일에 부지런하고 하늘에 정성스러움만에서 능히 安住[안주]하고 滿足[만족]하여 다른 것을 찾고자 아니하던 民衆[민중]이었다. 精微[정미]한 哲學[철학]과 絢爛[현란] 한 學藝[학예]와 沈痛[침통]한 詩歌[시가]가 그네의 中[중]에서 생기기에는 그네의 生活[생활]이 너무도 安穩[안온]히 엷은 幸福[행복]에 휩싸여 있었 다. 그러나 그런 푼수로는 精神的[정신적] 建樹[건수]의 편으로도 과히 寂 寞[적막]하지 아니한 것이 이 民族[민족]의 聰明[총명]한 點[점]이었다. 特殊[특수]한 太陽[태양] 崇拜[숭배]의 副産物[부산물]이겠지마는 天體[천 체] 運動[운동]과 大氣[대기] 變化[변화]에 相當[상당]한 注意[주의]를 써 서 測候[측후]의 術[술]이 일찍부터 발달하고, 그 成果[성과]가 저절로 東 亞[동아]에서의 曆法[역법]의 主人[주인]이 되게 한 것은 古震人[고진인]이 가지는 學術的[학술적] 最大[최대] 榮譽[영예]니, 이 風度[풍도]가 은연히 流傳[유전]하여 後代[후대]까지도 天文[천문] 現象[현상]에는 각별한 注意 [주의]를 더하였다. 이렇게 天象[천상]에 대하여 꽤 깊은 觀察[관찰]을 더 하는 것이 차차 玄微[현미]한 쪽으로 轉化[전화]도 하고, 또 人事[인사]와 의 관계에도 想到[상도]할 때에 陰陽[음양] 變易[변역]과 天人相與[천인상 여]의 思想[사상]이 그리로서 생기니, 東洋哲學[동양철학]의 最高[최고] 殿 堂[전당]인 「易[역]」思想[사상]도 그 萌芽[맹아]가 실로 震人[진인]에게 나왔음은 여러 가지로 證迹[증적]을 찾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玄微[현미]를 찾고 妙奧[묘오]로 들어간다 하여도 民族的[민족적] 特質[특 질]은 버리기 어려운 양하여, 그 宗敎的[종교적] 顯發[현발]인 古[고] 「」道[도], 곧 支那[지나]에 가서 仙道[선도]라고 하게 된 것이 形氣[형 기]를 修煉[수련]하여 不死[불사]의 果[과]를 얻으려 함에 그치니, 이것은 이 民族[민족]의 主現身的[주현신적]·實物觀的[실물관적] 特質[특질]을 가 장 잘 나타냄이다. 그러나 現身[현신] 爲主[위주]의 樂天的[낙천적] 生活 [생활] 基調[기조]는 學術[학술] 발달의 動機[동기]가 됨에 너무 無力[무 력]하여, 모처럼 생긴 이 모든 것도 자갸네 國土[국토]의 안에서 大成[대 성]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繪畵[회화]와 彫刻[조각]도 일찍부터 行[행]하였으나, 前史[전사]·原史 [원사]의 兩時代[양시대]를 通[통]하여 대단한 것은 볼 수 없다. 土器[토 기]에 남아 있는 文樣[문양] 같은 것도 대개는 直線[직선]과 點文[점문]의 簡素[간소]한 交錯[교착]에 그치고, 그 姉妹民族[자매민족]이나 先住地[선 주지]의 遺物[유물]에 비하여 素樸[소박]이 도리어 더함은, 造形美術[조형 미술]에 대한 刺戟[자극]이 東[동]으로 南[남]으로 遷移[천이]할수록 減退 [감퇴]한 것을 보였다. 또 古代[고대]에 一種[일종]의 文字[문자]가 있어, 神聖[신성]한 기록에 씌었음은, 壇君時節[단군시절]에 神誌[신지]라는 書史 職[서사직]이 있었다는 古傳[고전]에서도 模索[모색]할 만하고, 또 南海[남 해]의 岩面刻字[암면각자] ── 俗[속]에 「徐巿題名(서불제명)」이라 하는 것이, 우리의 소견으로는 없어진 古代[고대] 文字[문자]의 倖存[행존]한 實 蹟[실적]이요, 그 이른바 「徐巿[서불]」云云[운운]이 (徐巿[서불]의 巿 [불]의 音[음]이 福[복]이니, 「」의 譯字[역자]요, 徐[서]는 또 古代[고 대] 聖職[성직] 階級[계급]의 族稱[족칭]으로 흔히 쓰이는 것이다) 古神道 [고신도] 관계의 文字[문자]임을 暗示[암시]함으로써 그 性質[성질]까지를 짐작할 만하니, 저 日本[일본]의 「手宮文字[수궁문자]」란 것과 한가지로 今後[금후] 一段[일단] 더 審明[심명]을 要[요]할 것이다. 아마 記錄[기록] 도 造形美術[조형미술]과 한가지 이 民族[민족]의 사이에 그다지 重要視[중 요시]되지 아니하고, 또 特殊[특수]한 地方[지방]과 階級[계급]의 專有物 [전유물]로 원래 좁은 범위에만 행하다가 여러 가지 事勢[사세]에 이럭저럭 消失[소실]됨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모든 藝術[예술]이 충분히 伸 張[신장]하지를 못하고 맒에는 가장 중요한 一因由[일인유]가 있었으니, 무 엇이냐 하면 온갖 藝術的[예술적] 衝動[충동]과 欲求[욕구]를 휘몰아다가 音樂[음악] 하나에 賞樂[상락]하려 한 傾向[경향]이다. 音樂[음악]은 祭祀 [제사]의 中心[중심] 事實[사실]이요, 祭祀[제사]는 古震人[고진인]의 中心 [중심] 生活[생활]이니, 그네가 祭祀[제사]를 소중히 아는 만큼 音樂[음악] 에는 상당한 注意[주의]를 더하고, 또 그것이 그네의 樂天的[낙천적]·宴饗 爲主的[연향위주적] 생활에 適應[적응]하는 일이었다. 管樂[관악]도 있었지 마는 絃樂[현악]이 主[주]요, 器樂[기악]도 있었지마는 聲樂[성악]이 主 [주]가 되니, 神寺[신사]에는 「북」과 宴饗[연향]에는 「고」를 代表的[대 표적] 樂器[악기]로 하여, 여기 和應[화응]하는 歌舞[가무]를 演奏[연주]하 였다 . 歌詞[가사]와 舞曲[무곡]이 다 祭祀[제사] 중심으로 진작부터 꽤 많 은 種目[종목]을 가졌었다. 또 당시에도 일을 하면서나 길을 가면서나, 그 저 노래 부르기를 쉬지 아니하여, 온갖 美慾[미욕]과 美感[미감]을 다만 소 리와 가락의 中[중]에 求[구]하기에 다른 藝術[예술] 發達[발달]의 機會[기 회]가 늦도록 자물쇠를 채였었다.

第二八章[제이팔장] 上代人[상대인]의 衣食[의식] 居處[거처][편집]

朝鮮[조선]의 上代[상대]는 대개 農作[농작]을 生業[생업]으로 하는 平和 [평화]로운 社會[사회]요, 또 달리 文化[문화] 躍進[약진]의 動機[동기] 될 만한 事情[사정]이 있었지 아니하므로, 그 文化[문화]의 行相[행상]은 썩 緩慢[완만]하였었다. 더욱 그 생활의 中心[중심] 事實[사실]이 된 宗敎[종 교]도 야단스러운 像設[상설]과 어수선한 節次[절차]를 要[요]하는 것이 아 니라, 다만 깨끗한 몸과 마음을 天主[천주]의 앞에 바치면 그만이던 것이므 로, 그네의 生活[생활]에는 눈 띄는 造形[조형]의 發達[발달]이 있잘 까닭 없었다. 마음에 무겁이 없고, 몸에 주림이 있지 아니함으로써 滿足[만족]하 는 그네의 생활은, 오래도록 簡素[간소]와 質樸[질박]을 지켜서 變[변]하기 를 생각하지 아니하였다.

北方[북방]의 夫餘[부여]·高句麗[고구려]같이 漢土[한토] 文化[문화]의 刺戟[자극]을 받은 곳에는 진작부터 城柵[성책]도 있고, 宮室[궁실]도 있 고, 倉庫[창고]도 있으되, 宮廟[궁묘] 官府[관부]의 外[외]에는 대개 草屋 [초옥]이 많았고, 더욱 南方[남방]은 住居[주거]에 힘을 쓰지 아니하여, 馬 韓[마한]에는 土窟[토굴]의 制[제]와, 辰韓[진한]에는 井木橫累[정목횡루] 의 式[식](「귀틀집」)도 後年[후년]까지 流行[유행]하였으며, 北方未開[북 방미개]한 部族[부족]에는 穴居[혈거]의 風[풍]도 있었다.

狩獵[수렵]과 漁撈[어로]는 무론이요, 農作[농작]과 藏釀[장양]과 煮鹽[자 염]의 方[방]이 일찍부터 발달되어, 山海[산해]의 諸味[제미]가 다 盤上[반 상]에 오르고, 五穀[오곡]과 果蔬[과소]가 具備[구비]하여 食用[식용]과 祭 需[제수]의 種目[종목]은 퍽 繁多[번다]하였다. 飮食[음식]의 方法[방법]도 또한 일찍부터 開化[개화]하여 爼豆(조두) 기타의 器用[기용]이 具足[구족] 하고, 大祭[대제] 中心[중심]으로 社交的[사교적] 禮節[예절]이 발달하여서 會同[회동] 宴饗[연향]에 拜爵[배작]·洗爵[세작]·揖讓[읍양]·升降[승강] 의 儀[의]가 整齊[정제]하니, 이는 통히 朝鮮[조선]·夫餘[부여] 등 北國 [북국]에 있어 그러하였다.

蠶桑[잠상]과 織作[직작]은 南北[남북] 없이 일찍부터 행하여, 衣服[의복] 의 原料[원료]에 紬布[주포] 諸種[제종]이 있었다. 衣冠[의관]과 帶劔[대 검]은 震人[진인] 古初[고초]부터의 通俗[통속]이니, 冠幘(관책)을 쓰지 아 니하면 밖에 나오지 못할 줄로 앎은, 北[북]의 夫餘[부여]로부터 南[남]의 諸韓[제한]에 이르기까지 同一[동일]하였으며, 南北[남북]과 貴賤[귀천]을 따라 冠制[관제]가 여러 가지이나, 일반의 常用[상용]하는 것은 弁[변]과 같은 것이요, 婦人[부인]도 巾幘[건책]으로써 머리를 싸고야 나들이를 하였 다. 半島[반도] 最南[최남]의 加洛[가락] 諸國[제국]은 특히 異樣[이양]의 弁[변]을 着用[착용]함으로써 國號[국호]조차 남에게 弁韓[변한]이라고 불 리게 되었다. 衣服[의복]의 치레는 南北[남북]이 없었으나 다만 北方[북방] 에서는 錦繡[금수]와 金銀[금은] 裝飾[장식]를 崇尙[숭상]함에 대하여, 南 方[남방]에서는 錦罽(금계)를 貴[귀]히 하지 아니하고 瓔珠[영주]를 重[중] 히 여겨서 옷에 선도 두르고 목에 테로도 걸고 귀에 고리로도 달았다. 士庶 [사서]의 常服[상복]은 所產[소산] 관계로 北方[북방]에서는 布帛[포백]과 皮革[피혁]을 雜用[잡용]하고, 南方[남방]에서는 布屬[포속]을 많이 쓰니, 肅愼[숙신]의 雄常布[웅상포]로부터 沃沮[옥저]의 貊布[맥포], 濊[예]의 麻 布[마포], 辰韓[진한]의 縑布[겸포], 弁韓[변한]의 細布[세포] 등은 다 예 로부터 著名[저명]한 것이며, 또 濊[예]·韓[한]의 地[지]에는 錦紬[금주] 의 所產[소산]도 있었다. 衣服[의복]의 制度[제도]는 風土[풍토] 關係[관 계]와 文化[문화] 程度[정도]로 南[남]과 北[북]에 약간 差別[차별]이 있었 으나, 衣色[의색]이 白[백]을 尙[상]함은 由來[유래]가 오래기도 하고 分布 [분포]가 普遍[보편]하기도 한 풍습이니, 지방을 따라서는 吉服[길복]·禮 服[예복]일수록 白色[백색]을 取[취]하였다. 白色[백색]은 대개 瑞色[서색] 이요, 神聖色[신성색]으로 생각되고, 그네의 最高[최고] 大神[대신]은 太陽 [태양]의 代表色[대표색]으로 생각되고, 자갸는 日子[일자]요, 神孫[신손] 이매, 이 神聖色[신성색]으로 써 衣服[의복]을 表章[표장]하리라 함에서 나 온 것이었다. 그러므로다른 아무것보다도 특히 衣服[의복]의 潔淸[결청]에 最上[최상]의 注意[주의]를 더하여 항상 潔齋[결재]하고 神[신]께 奉仕[봉 사]하는 마음을 잃지 아니하려 하였다.

住宅[주택]보다 飮食[음식], 飮食[음식]보다도 衣服[의복]이 가장 進步[진 보]를 이룬 것은 이렇게 宗敎的[종교적] 理由[이유]가 있는 것이요, 감보다 도 깨끗이 앞섬도 또한 그 까닭이었다. 머리는 男女[남녀] 없이 틀어 인 것 이 爲主[위주]인데, 男子[남자]는 頂上[정상]에 突起[돌기]를 짓고, 女子 [여자]는 頭圍[두위]에 環卷[환권]함으로써 分別[분별]을 삼았으며, 발에는 革履[혁리]를 신었다.

第二九章[제이구장] 上代人[상대인]의 婚喪[혼상] 諸俗[제속][편집]

朝鮮人[조선인]이 群生活[군생활]을 벗고 社會的[사회적] 統制[통제]를 가 지게 된 것은 퍽 오랜 옛날의 일이었다. 部族[부족]의 안에 氏族[씨족]이 있고, 氏族[씨족]의 안에 家族[가족]이 있어서, 이 「집」이 그 社會[사회] 成立[성립]의 單位[단위]이기는 有史[유사] 以前[이전]으로부터의 일이다. 婚姻[혼인] 制度[제도]와 같은 것도 꽤 일찍부터 자못 整齊[정제]한 禮節 [예절]을 가졌었다. 시방까지도 婚約[혼약]이 성립되고 婚日[혼일] 前夕[전 석]에 綵幣[채폐]를 보낼 때에, 兩家[양가]에서 이것을 기회로 하여 맞은 홰를 꾸며 가지고 나가서 中路[중로]에서 만나서 一場[일장] 火戰[화전]을 치른 뒤에 婦家[부가]가 敗退[패퇴]하는 形式[형식]으로 郎家[낭가]의 禮幣 [예폐]가 納入[납입]되는 節次[절차]가 있으니, 이는 필시 古俗[고속]의 流 傳[유전]으로 朝鮮[조선]에도 古代[고대]에 掠奪婚[약탈혼]이 있었던 증거 가 되는 것이며, 기타 買賣婚[매매혼]·宗敎婚[종교혼] 등 原始的[원시적] 成婚法[성혼법]의 痕跡[흔적]이 갖추어 있지마는, 대체는 일찍부터 部族內 [부족내]의 一大事[일대사]로 嚴正[엄정]한 社會的[사회적] 約束[약속]의 下[하]에서 행하였다. 文籍[문적]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건대, 高句麗[고구 려]에서는 婚談[혼담]이 작정되면 女家[여가]에서 몸채의 뒤에 別堂[별당] 을 조그맣게 짓고 이름을 壻屋[서옥]이라 하는데, 壻[서]될 者[자] 저녁에 女家[여가]로 가서 戶外[호외]에서 아무로라고 告[고]하고, 跪拜[궤배]하여 女[여]와 同宿[동숙]하게 해 주기를 懇乞[간걸]하되, 이러기를 여러 번 한 뒤에야 父母[부모] 聽許[청허]하여 小屋[소옥] 中[중]에 就宿[취숙]하게 하 고, 그 곁에 錢帛[전백]을 쌓아 두며, 子息[자식]을 낳아 長大[장대]한 뒤 에라야 婦[부]를 데리고 본집으로 돌아왔다. 시방 말의 「장가 든다」와 「서방 맞는다」의 「든다」「맞는다」함이 이래서 생긴 말임을 알 것이 요, 또 高句麗[고구려]의 國情[국정]이 어떻게 獨立[독립] 生活[생활]을 重 [중]히 여겼음을 볼 것이다. 東沃沮[동옥저]에서는 女[여]의 年[년]이 一○ 歲[일영세]만 되어도 이미 定婚[정혼]을 하고, 壻家[서가]에서 데려다가 길 러서 婦[부]를 삼는데, 成人[성인]을 하면 다시 女家[여가]로 돌려보내서 女家[여가]에 相當[상당]한 金幣[금폐]를 보내고 아주 데려오는 風[풍]이 있었으니, 이는 正[정]히 시방 「민며느리」의 古風[고풍]으로 볼 것이다. 夫餘[부여]에서는 兄[형]이 죽으면 弟[제]가 그 嫂[수]를 데리고 삶이 다른 東胡[동호] 諸民族[제민족]과 같았었고, 新羅[신라] 기타의 統治階級[통치 계급]에서는 血統[혈통] 保全[보전]의 必要上[필요상]으로 兄弟子[형제 자]·姑姨[고이]·從姊妹間[종자매간]의 近親婚[근친혼]이 행하였으며, 그 러나 濊[예] 같은 데서는 同姓[동성]의 婚[혼]도 지내는 일 없었고, 韓[한] 의 諸處[제처]에도 嫁娶[가취]에 支那[지나] 비스름한 禮俗[예속]이 있고, 男女[남녀] 別[별]이 있었다. 이렇게 男女[남녀]의 禮度[예도]가 北[북]에 寬[관]하고 南[남]에 嚴[엄]함은 각기 社會的[사회적] 事情[사정]에 말미암 은 差異[차이]이었다.

또 喪事[상사]에 관하여는 厚葬[후장]이 震人[진인]의 通俗[통속]이요, 고 구려가 尤甚[우심]하여 送死[송사]를 위하여 家產[가산]을 蕩盡[탕진]하였 다. 夫餘[부여]에서는 王[왕]의 葬[장]에 支那[지나]로서 가져오는 玉匣[옥 갑]을 用[용]하였으며, 一般[일반]의 死[사]에도 夏月[하월]에 氷[빙]을 用 [용]하고 停喪[정상]을 五[오]월씩 하여 오랠수록 갸륵하다 하고, 喪主[상 주]는 速[속]히 하고자 아니하는 것을 他人[타인]이 우겨서 서로 諍引[쟁 인]함으로써 孝誠[효성]이라 하고, 사람을 죽여서 殉葬[순장]하여 많으면 百數[백수]에 달하고, 居喪[거상]하는 동안에는 男女[남녀]의 婚娶[혼취]를 行[행]하지 아니하였으며, 高句麗[고구려]에서는 男女[남녀]가 嫁娶[가취] 한 즉재로부터 送終之具[송종지구]를 장만하여 葬需[장수]에 아낄 것이 없 고, 死者[사자]를 室內[실내]에 殯[빈]하여 三年[삼년] 뒤에야 吉日[길일] 을 택하여 葬[장]하고, 初終[초종]에는 哭泣[곡읍]하다가 葬禮[장례]에는 鼓舞[고무]와 風樂[풍악]으로 出送[출송]하고, 埋安[매안]한 뒤에는 死者 [사자] 生時[생시]의 服玩車馬[복완거마]를 가져다가 墓側[묘측]에 두면 會 葬者[회장자]들이 서로 나누어 갔으며, 東沃沮[동옥저]에서는 每一家[매일 가]마다 長一○[장일영]여 丈[장] 되는 一大[일대] 木椁(목곽)을 만들어 두 고 그 一頭[일두]를 터서 戶[호]를 내고, 新死者[신사자]가 있으면 먼저 假 埋[가매]하여 皮肉[피육]이 없어진 뒤에 骨[골]을 주워서 椁中[곽중]에 두 고, 瓦椁[와곽]에 米[미]를 담아서 椁戶[곽호]의 가에 매달아서 祭物[제물] 에 供[공]하고, 死者[사자] 있는 대로 椁邊[곽변]에 그 生形[생형]을 새겨 두었으며, 辰[진]·弁韓[변한]에서는 大鳥羽[대조우]를 送死[송사]에 쓰니, 死者[사자]의 神魂[신혼]이 飛揚[비양]하기를 바라는 것이었으며, 馬韓[마 한]에서는 牛馬[우마]를 기르되 乘用[승용]에는 供[공]하지 아니하고 送死 [송사]에 用盡[용진]하였다. 沃沮[옥저]를 除[제]하고는 대개 石築[석축]한 壙中[광중]에 棺[관]과 아울러 明器[명기] 등을 넣고 그 위에 무덤을 封 [봉]하고 松栢[송백]을 심었다. 喪服[상복]은 다 純白[순백]을 쓰고, 노리 개와 꾸미개는 몸에 붙이지 아니하였으며, 父母[부모]와 夫[부]에게는 일찍 부터 三年喪[삼년상]을 服[복]하였다. 父母[부모] 孝奉[효봉]은 祖先[조선] 崇拜[숭배]와 관련하여 이 民族[민족] 固有[고유]의 最高[최고] 倫理[윤리] 이었다.

第三○章[제삼영장] 古震人[고진인]의 生活[생활] 原理[원리][편집]

朝鮮人[조선인]은 上天[상천]으로부터 人間[인간]을 天國化[천국화]할 작 정으로 震土[진토]에 來降[내강]하였다는 民族的[민족적] 信念[신념]을 가 졌었다. 그리하여 「이」곧 天人[천인]과, 「이」곧 日子[일자] 로 自處[자처]하니, 시방까지 어린애도 스스로 尊大[존대]한 체할 때에 「이님」의 略語[약어]인 「」이로라고 뽐냄은 그 由來[유래]가 자 못 久遠[구원]한 것이다. 그네들은 人物[인물] 萬端[만단]이 總[총]히 「 님」께로서 由來[유래]하여 다시 「님」께로 還歸[환귀]함을 믿고, 이 天上[천상]과 人間[인간]과의 交通[교통]에는 深谷[심곡] 있는 高山[고 산]의 絶頂[절정]을 經由[경유]하는 줄로 알았으니, 前[전]에도 말한 白頭 山[백두산]·金剛山[금강산] 등이 다 그것이다. 朝鮮語[조선어]에 生[생]을 「나」라 하여 出[출]과 同義[동의]임은 곧 「님」께로서 나온다 함이 요, 死[사]를 「돌」이라 하여 還[환]과 同義[동의]임은 또한 나왔던 그리 로 還入[환입]한다는 意味[의미]였다. 또 生活[생활]을 「살」이라 하여 一 面[일면]으로 立[립]과 同義[동의]임은 그 능히 動作[동작]함을 의미하는 것이지마는, 一面[일면]으로 消滅[소멸] 乃至[내지] 燒棄[소기]와 同義[동 의]임은 곧 天神[천신]의 威力[위력]인 光明[광명]으로써 이 世上[세상]의 穢惡[예악]을 없애는 동안이라는 듯함은 注意[주의]할 것이다.

이러한 第一[제일] 原理[원리]는 다시 찢겨서 몇 가지 信條[신조]로 그네 生活[생활]의 根本動力[근본동력]을 지었다. 첫째는 生殖至上主義[생식지상 주의]라고 할 것이니, 人生[인생]과 家族[가족]으로서 最高[최고] 義務[의 무]라 하는 바는 실로 子孫[자손]의 繁殖[번식]이었다. 福樂[복락]의 中 [중]에 가장 큰 것은 子孫[자손]의 昌盛[창성]이라 하고, 「님」도 生 命[생명]과 生殖[생식]의 神[신]으로 더욱 尊崇[존숭]을 받았었다. 家庭神 [가정신]으로 一切[일절] 幸福[행복]의 根源[근원]이라 하여 집집이 崇奉 [숭봉]되는 「업」이란 神[신]은, 積累[적루]와 한가지 生殖[생식]을 의미 하는 語[어]요, 많은 경우에 그것이 子息[자식]을 의미하였다. 어떠한 神 [신]이든지 「자식 점지」하는 權能[권능]이 있는 줄로 생각되는 것이 가장 큰 致誠[치성]을 받고, 石柱[석주] 혹 木竿[목간]이 生殖力[생식력]의 表象 [표상]으로 一戶[일호]·一洞[일동]·一鄕[일향]마다 세워졌다. 그 遺風[유 풍]인「선돌」과 「장승」이 다른 의미는 없어지고도 오히려 生殖神[생식 신]으로의 生命[생명]을 부지함은, 民衆[민중]의 心裡[심리]에 이렇듯 깊은 뿌리가 박혀 있기 때문이다. 生殖[생식]을 의미하는 朝鮮語[조선어]의 「불」은 본디 神[신]을 의미하는 「불」에서 나온 말인데, 長成[장성]을 「부얼」이라 하고, 獲取[획취]를 「벌이」라 하고, 또 希願[희원]을 「벌」이라 하고, 羨望[선망]을 「불」又[우] 「발」이라 하고, 飽滿[포 만]을 「불」이라 하니, 이렇게 欲求[욕구]와 生殖[생식]의 一語[일어]로써 일컬어짐은 변시 그 代表的[대표적] 욕망이 生殖[생식]이기 때문이다. 人事 [인사]의 中[중]에 가장 소중하게 안 것이 生產[생산]이요, 온갖 忌諱[기 휘] 중 產母[산모] 及[급] 產室[산실]에 대한 그것이 가장 嚴截[엄절]함은 다 生殖[생식]과 生殖力[생식력]을 가장 끔찍하게 안 까닭이다. 아마 그네 들은 天國[천국]의 擴張[확장]이 天種[천종]의 繁殖[번식]으로 비롯하는 줄 안 양하였다(가장 露骨的[노골적]인 生殖器[생식기] 崇拜[숭배]의 俗[속]도 古代[고대]에 있었다).

그런데 天國[천국]의 建設[건설]은 어떻게 着手[착수]될 것인가. 일해야 되고, 부지런해야 되고, 힘써야 될 것이니, 그네의 말에 生活[생활]을 「삶」이라 하고, 呼吸[호흡](生命[생명])을 「숨」이라 함에 대하여, 모든 力[력]을 「심」(힘)이라 함은, 生命[생명]이 力[력]이요 生活[생활]이 努 力[노력]임을 端的[단적]하게 表白[표백]한 것으로 볼 것이다. 努力[노력] 그것이 그만 目的[목적] 비스름히 된 그네의 生活[생활]은 저절로 樂天的 [낙천적]일밖에 없으며, 흐리지 않고 환한 것일밖에 없었다. 힘껏 일하는 기쁨은 歡呼[환호]와 高歌[고가]가 되어 그네 生命[생명]의 흐름을 항상 潤 澤[윤택]하게 하니, 古史[고사]가 古朝鮮人[고조선인]의 性德[성덕]을 적되 「通日讙呼力作[통일환호역작]」이라 하고, 「好歌吟[호가음], 音聲不絶[음 성부절]」이라 함 등은 그네 생활의 當然[당연]한 무늬이었다.

그러면 이렇게 이네들이 生殖[생식]을 힘쓰고 活動[활동]하여 게을리 아니 함은 무엇 때문인가. 그네 스스로 意識[의식]을 한 與否[여부]는 어찌 갔든 지, 그네의 生活[생활]에는 분명히 든든한 一目標[일목표]가 있었으니, 그 것은 곧 光明[광명] 希願[희원]이었다. 그네의 이른바 天國[천국]이라 하고 神世[신세]라 함은 要[요]하건대 光明[광명]이 들어찬 世界[세계]를 意味 [의미]함이니, 그네 生活[생활]의 中心[중심] 事實[사실]인 信仰[신앙]이 「」界[계]로써 對象[대상]을 삼음은, 변시 밝은 빛(맑은 맛)으로써 世界 세계 [ ]를 同化[동화]함이 그네의 없는 듯 있는 生活[생활]의 目的[목적]임 을 의미함이었다. 主觀[주관]으로는 心內[심내]를, 客觀[객관]으로는 國土 [국토]를 白晝[백주]와 같이 만듦이, 그네의 馬車[마차]말처럼 行進[행진] 하는 久遠[구원]한 路程[노정]의 目標[목표]이었다. 生[생]을 「살」이라 하는데 開明[개명]을 「샐」이라 하고, 曙色[서색]과 神潔[신결]을 다 「새」라 하고, 鮮麗[선려]를 「사」이라 함은, 總[총]히 생활의 意義[의 의]가 光明[광명] 希願[희원]에 있음을 생각케 하는 것이다. 光明[광명]의 價値[가치]는 新鮮[신선]이니, 新鮮[신선]의 追求[추구]는 저절로 潔淨[결 정]의 愛好[애호]로 나타날밖에 없었다. 古史[고사]에 震人[진인]의 一特俗 [일특속]으로 「潔淸自喜[결청자희]」를 듦이 진실로 까닭이 있는 것이다. 몸을 항상 깨끗하게 하려 함이 白衣[백의] 崇尙[숭상]의 俗[속]을 낳게 하 고, 집을 항상 깨끗하게 하려 함이 여러 가지 기우를 만드니, 시방 와서는 不經濟[불경제]요 迷信[미신]이라고 하게 되었지마는 옛날에 있어서는 身與 家[신여가]를 潔淨[결정]하게 하여 神道[신도]에 어그러짐이 없자는 敬虔 [경건]한 努力[노력]이었다. 몸이나 마음이나, 또 집이나 洞里[동리]가 더 러워질까 하여 古人[고인]은 진실로 想像[상상] 以上[이상]의 苦心[고심]을 하고, 뻔듯하면 「풀이」(祓除[불제])를 하고, 몸에는 「물맞이」(禊浴[계 욕])를 하며, 濊[예]와 같은 데서는 사람이 죽으면 집을 그대로 내어버리 고, 새 집을 짓고 드는 법까지 있었다. 이렇게 그 光明[광명] 希願[희원]의 實際上[실제상] 表現[표현]이 많이 形式[형식]에 떨어지고 精神的[정신적] 觀照[관조] 部分[부분]이 퍽 不足[부족]함은, 그때 그네로는 容或無怪[용혹 무괴]의 일이었다. 다만 그 心內[심내]에 들어가 보면 一動一靜[일동일정] 이 총히 神國[신국] 實現[실현]의 一過程[일과정]인 意義[의의]를 가졌음에 그네의 生活[생활] 價値[가치]를 알아줄 것이었다.

혹은 事實[사실]을 살피고, 혹은 觀念[관념]을 헤치면, 古代[고대] 朝鮮人 [조선인]의 生活[생활] 原理[원리]는 要[요]하건대 生殖至上[생식지상]·活 動爲樂[활동위락]·光明追求[광명추구]로 세 발을 괸 人界天化[인계천화]의 大理想[대이상]이었다.

〈一九二六年[일구이륙년] 四月[사월] 朝鮮日報[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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