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28장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丹心童心[단심동심][편집]

신진 작가 임 지운의 축사가 있다는 사회자의 말에 영심은 가벼운 호기심을 느끼며 소그듬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언젠가 자기가 들어 앉아 본 임 지운의 방안 풍경을 영심은 불현듯 연상했다.

입만 벌리면 이상이니 진리니 하고 인생의 가장 고귀한 것을 찻아 헤매인다는 임 교수 부인의 한 마디를 후딱 생각하며 뜸뜸히 흘러 나오는 임 지운의 이야기에 골돌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심히 들어 넘긴 지운의 음성이었다. 그러나 한 마디 한 마디 이야기가 거듭됨을 따라, 그것이 결코 처음 듣는 음성이 아님을 영심은 발견하였다.

『어디서 들었을까?』

어디선가 꼭 들은 적이 있는 음성임에는 틀림 없었으나 기억은 좀처럼 간단히 튀어나와 주지를 않았다.

지극히 인상이 깊은 음성이었다. 더구나 그 뜸뜸히 흘러나오는 한 구절 한 구절이 부드럽게 젖어있는 것 같은 한 마디 한 마디가……?

영심은 조금 고개를 들어 화환과 탁자 사이로 빗비슴히 올려다보이는 임 지운의 하반신을 힐끔 바라다보았다. 꺼먼 구두에 곤색 양복 바지였다. 자색 구두가 흔한 이즈음이라 꺼먼 구두를 신고 있던 인물 하나가 후딱 영심의 기억을 자극하였다. 이십 일 전 창경원에서 만났던 그이도 꺼먼 구두를 신고 있었다.

순간, 영심의 기억이 별안간 새롭혀지며 그 젖은 듯이 흘러나오는 음성의 주인공을 힐끔 쳐다보았다. 영심은 흙 하고 숨을 들이키었다. 들이킨 호흡이 조절을 잃고 심장의 고동이 뚝 멎어 버렸다. 핏기가 가시고 종이장처럼 얼굴이 새하얘지며 생화를 올려 놓은 탁자와 화려한 화환이 푸로펠라처럼 영심의 눈앞에서 무서운 속력을 가지고 빙글빙글 돌다가 마침내 암흑으로 획 변색을 했다.

옆에 섰던 후행의 손길을 꽉 부여잡고 영심은 기를 썼다.

『아, 신부가 …… 신부가 현기증을……』

쓰러지려는 영심의 몸을 두 손으로 부축을 하며 후행이 신랑을 쳐다보았다.

지운은 단을 내려 자기 좌석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신랑이 신부를 부축했다. 신부의 바로 뒤에 앉았던 오 진국씨가 일어섰다. 그러나 다리의 자유를 잃은 몸이라, 뛰어나가지는 못하고 그대로 벙벙히 서만 있었다.

장내가 일시 소란해졌다. 그러나 신부는 다시금 자세를 바로 잡았다.『인제, 인제 괜찮아요.』

후행에게 팔 한 쪽을 붙잡힌 채 신부는 주례 앞에 다시 꼳닥 서는데 성공하였다.

임 교수가 사회자에게 뭐라고 귀속 말을 했다. 사회자는 수긍을 하며

『축사하실 분이 많으실 줄 믿습니다. 그러나 신부의 건강이 다소 우려됨으로 이상으로서 축사는 끝막기로 하겠읍니다.』

뒤이어 임 교수의 간단한 인사의 말이 있고 피로연에는 한 분도 빠짐 없이 참석해 달라는 사회자의 말이 있은 후 웨딩마아치와 함께 신랑 신부는 퇴장을 시작했다.

포오즈만이 아니라, 신랑은 신부의 팔을 꽉 부축하고 칠색의 테이프 밑을 천천히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제이의 비극이 이번에는 임 지운 편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자기의 눈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나오고 있는 신부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순간, 신부에게서 일어 난 것과 꼭 같은 현상이 지운의 심신을 습격하고 있었다.

『얘야! 얘야!』

아들의 팔목을 부여잡으며 아들의 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임 교수 부인은 지운과 함께 걸상에 다시금 펄썩 주저앉았다.

신랑 신부의 퇴장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지운 모자는 손님들이 거지반 흩어진 식장 맨뒤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이렇듯 혹심한 타격을 준 원인이 무엇인가를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얘, 저 이가……저 이가……그 이냐?』

아들의 해말쑥한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어머니는 놀라 물었다.

그러나 지운은 대답을 않고 신부가 사라진 문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완전히 얼이 빠져 있었다. 사람이 미쳐 나가는 것이 바로 이런 순간인 양 싶어서 어머니는 무섭다. 그래서 창황이 아들의 팔을 흔들며,

『얘야, 말을 해라! 어머니에게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저 색시가 그 색시냐?……』

지운은 여전히 문 쪽만 골돌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어쩌면?』

아들보다 못지 않게 어머니의 타격도 컸다.

『이런 기구하고도 악착스런 일이……』

어머니는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다. 허탈의 지경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아들의 등만 자꾸 어루만지고 있었다.그러는데 일단 퇴장했던 신랑 신부가 사진사를 앞세우고 다시 들어왔다.

신부는 이미 완전히 정신을 가다듬고 있는 것 같았다.

창경원에서 만나던 때보다 갑절이나 더 예뻐진 신부의 모습이었다. 주례를 중심으로 한 가족 사진을 우선 그들은 찍었다.

손님들은 피로연으로 모두 다 밀려가고 식장에는 지운 모자를 합하여 십여 명의 인척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신랑 신부 둘이만이 이윽고 사진사 앞에 섰다. 사진사가 포오즈를 고치고 있는 동안, 정면을 향하고 있던 신부의 시선이 멀리 뒷줄 임 교수 부인 옆에 묵묵히 앉아 있는 지운의 모습을 마침내 붙들었다.

사진사의 어깨 위에서 두 줄기의 시선과 시선이 무섭게 부딪쳐 버렸다. 순간 오들오들 떨고 있던 신부의 눈동자가 얼른 방향을 고치며 우수의 빛이 후딱 얼굴을 덮었다.

『어머니!』

어머니에게 잡힌 채 떨고 있는 손길에 지운은 힘을 주며,

『천사 같지요?』

했다.

어머니는 대답을 못하고 자꾸만 뜨거워 오는 눈시울을 꼭꼭 누르고 있었다.

『천사 같으믄 뭘 하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울먹울먹 눈물을 먹음고 있었다.

『인제 이름을 알았으니까, 저는 행복해요.』

『모르고 있는 편이 차라리 났었지……』

『오 영심! 이름두 이쁘지요?』

『이쁘믄 뭘하니? 남의 사람이 됐는데……』

어머니는 마침내 손수건으로 두 눈을 덮었다.

『얘, 인제 나가자.』

자꾸만 솟구어 나오는 눈물을 처치할 바가 없어 어머니는 아들을 재촉했다.

『조금만 더 앉아 있어요.』

일어서려는 어머니의 치마 귀를 지운은 어린애처럼 잡아당꼈다.

『어머니, 사진 한 장 꼭 얻어 주세요.』

『아버지께 한 장 보내 주겠지.』

사람이 없으면 흐느껴 울고 싶은 어머니의 딱하디 딱한 심정이었다.

『얘 누가 볼라 눈물을 씻어라.』

지운의 눈꼬리에 매어 달린 맑은 물방울을 보고 어머니는 얼른 자기 손수건을 아들의 손에 쥐어 주었다.

이윽고 사진이 끝나고 지운이가 눈물을 걷우었을 때, 허 정욱은 성큼성큼 지운 모자의 앞으로 걸어 왔다.

『임형, 좋은 축사를 해 주어서 감사하오.』

『그러면서 커다란 손길을 지운의 앞에 내밀었다.

『축하합니다.』

어머니와 함께 의자에서 일어서며 지운은 허 영욱의 내밀은 손을 잡았다.

『사모님, 어려운 길을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허 정욱 또 임교수 부인에게 인사를 하고 자기 등뒤에 소그듬이 서 있는 영심을 돌아다보며 말했다.

『사모님이 오셨소. 인사를 하시요.』

고개를 조금 들다가 말며 영심은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어쩌면 천사같이 이쁘담!』

긴 말을 이어나갈 기력이 부인에게는 없다. 다소 빨개진 눈을 감추기 위해서 부인은 연방 외면을 했다.

『그리고 이 분이 늘 말하던 임 지운씨, 신 앞에 민주고발을 하시겠다는 분이요. 인사를 하시요.』

순간, 영심의 전신이 보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태연하려고 노력을 하면 할수록 몸의 중심이 자꾸만 이그러진다. 소그듬이 숙였던 고개를 그대로 조금 더 숙여 영심은 가까스로 인사를 했다.

『축하합니다.』

지운의 음성은 떨고 있었다. 쓸어질까 싶어서 어머니가 아들의 팔고비를 몰래 부축했다. 고개를 숙인 신부의 모습을 지운의 두 눈동자가 무섭게 핥고 있었다.

임교수와 오 진국씨가 걸어왔다. 임교수의 소개로 지운은 오 진국씨에게도 인사를 했다.

『임선생의 가족이 총 출동을 하셨다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요.』

오 진국씨는 진심으로 만족해 하며 식장을 나서서 임교수와 함께 차를 타고 피로연으로 달려갔다.

『얘, 우리는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

사람이 흩어진 식장밖에 눈은 그냥 내리고 있었다. 끊어진 칠색 테이프가 함박눈 속에서 서글프게 흩어져 있었다.

지운 모자는 눈을 맞으면서 자동차가 사라진 방향을 향하여 쓸쓸히 거닐고 있었다. 그 방향에 자기 집이 있는 안국동 앞 거리가 멀리 바라다 보였다.『어머니, 눈이 오는군요.』

어머니와 나란히 걸어가며 지운은 그런 말을 불쑥 했다.

『얘두! 벌써부터 오는 눈인데……』

지운 모자가 집을 나설 무렵부터 내리던 눈이었다.

『어머니, 집으로 돌아 가세요?』

『그럼 피로연엔 가서 뭘하니.』

지운은 대답을 하지 않고 묵묵히 걸었다. 그러한 아들의 심정을 어머니는 알고도 남아서

『사람이란 다 팔자가 있는 건데……아무리 좋아도 연분이 없으면……』

어머니는 콧물을 또 마셨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지운은 갑자기 명랑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어머니의 팔 하나를 연인들처럼 꼈다.

『울지 마세요. 사람들이 봐요.』

『흥, 네가 도리어 나를 위로하는구나!』

『어머니, 며느리 맞고 싶으시지요?』

『석란이 같은 애는 싫어.』

『오 영심 같은 며느림 되죠?』

『흥, 네가 나를 웃기려는구나!』

『어머니!』

『응?……』

『이왕 나왔던 길이니, 피로연에 잠깐만……잠깐만 가 볼까요?』

대답 대신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을 후딱 쳐다보았다. 아들의 얼굴이 싱긋이 웃으면서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내 소견으론 그만 두는 편이 좋을 성싶은데……』

『그러니까 잠깐만 말이예요.』

『흐응 ——─』

애처로운 듯이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그럼 그러지. 그렇지만……』

『괜찮아요. 멀리서 한 번 바라만 보고 돌아와요.』

『바라 봐서는 뭘하니?』

『뭘 할 거는 없지만……바라만 보는 거야 뭐 어때요?』

『그럼 잠깐 다녀 가자.』

모자는 외인 쪽 길로 꺾어져 파고다공원 옆에 있는 피로연석을 향하여 걸어 들어갔다.

피로연은 공원 옆 모 그릴 이층에서 열렸다. 지운 모자가 도착했을 때는 피로연은 이미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군인 하나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맨뒤 식탁에 앉으려는 지운 모자를 신랑인 허 정욱이가 바라보고 앞으로 나오라고 손짓을 했다. 사회자가 성큼성큼 걸어와서 지운의 모자를 끌다시피 하여 앞으로 인도했다.

신랑과 신부를 중심으로 하여 남녀 후행들과 주례인 임 교수 오 진국씨 그리고 영심의 할머니가 마주 앉아 있었다. 그 마주 앉게 된 중앙에 자리가 둘 비어 있었다. 지운 모자를 위하여 신랑이 특별히 남겨 놓은 좌석이었다.

지운은 신랑과 마주 앉았고 어머니는 신부와 마주 앉는 몸이 되었다.

『사모님, 어딜 가셨댔서요?』

허 정욱은 손수 요리 접시를 지운 모자 앞으로 옮겨 놓았다.

『그저 잠깐……눈이 하두 소담스럽게 와서……』

『아 그럼 걸어오셨군요.』

어머니는 쓸쓸히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임 교수는 오 진국씨와 화락한 담소를 바꾸면서 잔을 나누고 있었다.

『자아, 임형 한 잔……어째 원기가 없어 보이는데……』

허 정욱은 잔을 들어 지운에게 권하며 근심스런 표정을 지었다.

『아, 신열이 좀 나서……』

『감기가 아닌가? 그렇지만 한 잔 들면 괜찮을 거요.』

지운은 잔을 받아만 놓고 자기 잔을 허 정욱에게 권했다.

『그럴 수야 있겠소? 임형이 축하주를 안드는데 내가 어떻게……』

그래서 지운은 허 정욱과 함께 잔을 들었다.

손벽 소리가 요란히 나며 또 다른 군인이 노래를 불렀다. 장내가 다소 소란해졌다.

『신부도 좀 들어야지.』

임교수 부인이 영심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포오크를 쥐어 주었다. 영심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가만히 들었다. 고개를 든 영심의 시야의 지운 모자의 모습이 휘익하고 뛰어 들어왔다.

우수에 찬 지운의 모습이었다. 절망과 희망이 한데 엄버무려진 오뇌의 눈동자를 영심은 보았다. 영심의 심신이 후다닥 놀라며 폭풍과 같은 경련이 왔다. 너무나 가까운 곳에 초록별의 모습은 있었다. 동시에 그것은 또한 너무도 먼 거리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불행을 모면하기 위한 창경원에서의 작별이었는데……어이하여 운명은이 자리에 초록별의 모습을 배치하지 않아서는 아니 되었던고?……

인간의 노력에는 한도가 있다. 그 한도 안에서 인간의 역사는 만들어졌다.

그 한도를 넘어선 곳에 신의 역사가 존재하는 것이다.

영심은 노력을 했다. 그리고 그 노력이 영심으로 하여금 보람을 잃게 한다면 그것은 이미 인간의 죄는 아닐 것이다. 폭풍과 같은 몸서림 속에서 영심은 자기 운명의 극치를 후딱 생각했다.

운명의 극치를 생각하는 마음은 지운에게도 있었다. 어떠한 삶의 길도 생각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지운의 감정은 지금 서 있는것이다. 진실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추구하여 마지않는 단심(丹心)의 불길 속에서 작가 임 지운의 감정을 동심(童心)처럼 순수해 지고 있었다.

사회자의 입으로부터 임 지운의 축하의 노래가 요청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저는 노래는 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취기가 한창인 군인들의 손벽 소리는 멈춰주지 않았다.

『애는 정말 노래는 못한답니다.』

어머니가 보다 못해 아들을 위하여 변명을 했다. 이 아들의 입에서 어떻게 축하의 노래가 나올 것이냐고, 어머니는 자꾸만 떠들어대는 군인들이 그지없이 미워졌다. 목을 놓아 울고 싶었다.

그때 지운이가 조용히 일어섰다. 노래는 무슨 노래냐고 어머니가 겁을 집어 먹고 아들의 손길을 와락 부여잡으며 후딱 쳐다보는데 지운의 목소리가 무심히 흘러나왔다.

『달아 달아 밝은 달아……이태백이 놀던 달아……저기 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옥 도끼로 찍어 내고……금 도끼로 다듬어서 …… 초가 삼간 집을 짓고……우리 벗님 모셔다가 천년 만년 살고지고……천년 만년 살고지고……』

우뢰 같은 박수 소리와 함께 어머니가 탁 치마귀로 얼굴을 가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