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정인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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作家[작가]의 말[편집]

생각하니 김군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그러니까 두자 길이가 넘는 김군의 유고 뭉치를 내가 맡아 간직한지도 이미 한 해가 넘는 셈이다.

살릴 길 있으면 살려주어도 좋고 불살라버리거나 휴지통에 넣어도 아깝게 생각 안할 터이니 내 생각대로 처치하라고─그것이 김군의 뜻이었노라고 유고 뭉치를 내게 갖다 맡기며 김군의 유족들은 이렇게 전했었다.

그 유고 속에는 김군이 30평생을 정진하여온 문학적 성과가 모조리 들어 있었다. 장편 단편 합하여 창작만이 20여 편, 시가 400자 원고지로 삼사백매, 그리고 일기, 수필, 감상 나부랭이는 부지기수였다.

나는 게으른 탓도 있으려니와 우선 그 굉장한 양에 압도되어서 감히 읽을 맘을 먹지 못하고 오늘 내일 미루어오는 사이에 김군에겐 대단히 죄송한 말이나 어느덧 그 존재조차 잊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다 지금부터 한 달포 전, 나는 우연한 기회에 벽장 속에서 다시 그 유고 뭉치를 찾아내고 스스로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여 얼굴을 붉혔다. 죽은 벗의 뜻을 저바림 이보다 심할 수 있으랴. 죽은 벗의 믿음을 배반함 이보다 더 할 수 있으랴. 나는 혼자서 백 번 얼굴을 붉혔다.

그날부터 열흘 동안 나는 그 수많은 유고를 샅샅이 뒤지고 샅샅이 읽었다. 그렇다고 지하의 김군의 조소를 면할 수는 없었지만.

그 유고 뭉치 속에서 나를 가장 감격 시킨 것이 이 한편의 소설의 골자가 된 일기이다.

아니 그것은 완전한 일기랄 수도 없는 순서 없이 쓰여진 한개의 ‘노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다른 원고에서는 그렇게도 찬찬함을 보이던 김군이 이 글에 이르러는 무슨 커다란 충격을 억제할 수 없었음인지 두서도 확연치 않으려니와 글씨조차 어지러워 심지어는 아무리 해도 뜯어볼 수 없는 대목까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이것이 첫째로 내 호기심을 끌었다. 나는 그 노트를 그야말로 단숨에 두 번 거듭 읽고 말았다.

나는 그때 얻은 감격을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한 여자를 지극히 사랑한 한 남자의 마음의 기록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깨끗한 사랑이 정말 이 오탁(汚濁) 속에도 존재했는가고 나는 한참 동안 놀람을 지나 오히려 아연할 지경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김군의 공상이 빚어낸 소설의 플롯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혹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한개의 진실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우리들에게는 즐거운 일이냐. ‘파비앙’이나 ‘베르테르’가 우리들 사이에도 끼어 있다고 생각만 하더라도 그것은 거짓에 젖은 우리들의 마음을 포근히 얼싸안아 줄 것이다.

더욱이 나의 가장 가까운 벗 김군이 그런 사람이었다고 생각할 제 나는 한층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금할 길 없다.

그 때문에 나는 그 글을 추리고 깎고 하여 한 편의 소설로 엮어 김군의 일기라는 명목 아래 세상에 발표하는 것이다.

이 글을 세상에 발표하는 것은 혹은 김군의 본의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내 어리석음을 알고 이 글을 맡기고 간 김군인지라 새삼스러이 노할 리 없고 웃고 말아줄 것이다. 더구나 성불한 지금에 있어서 이 탁세에 김군이 남겨놓을 무슨 은원(恩怨)이 있으랴.

한편의 소설을 만들기 위하여 군데군데 가필도 했고 내 투의 글로 뜯어 고친 데도 적지 않으나 되도록은 원문을 그대로 살리려고 애썼다.

그러니까 정말 이 소설의 작자는 내가 아니요 김군일 것이다.

‘작자의 말’이라 하여 군혹을 부친 것은 그렇다면 무척 외람된 일인지도 알 수 없다.

일기 제1[편집]

봄이면 내게로 다시 온다 하였다.

만 번 고쳐 생각해도 그 말을 믿은 내가 잘못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한 해, 두 해, 세 해……

까마아득한 3년이었다. 3년 동안이 이렇게 긴 세월이란 것을 나는 요새 비로소 깨달았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하면 어제같이도 여겨지는 것이 안타깝다. 더욱이 그 ‘야가스리(矢飛白[시비백] : 새의 날개처럼 짜인 옷감)’의 세루 옷만은 지금도 눈앞에 환하게 얼씬거린다. 그리고 귀를 덮은 숱 좋은 머리도, 쌍꺼풀 진 눈도, 적고 붉은 입술도‥‥아니, 호리호리한 몸맵시도……아니…… 아니, 그 사진 속의 여자가 그렇더란 말이다.

같은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였었다. 어쩌면 저렇게 같을 수 있느냐고 의아스러웠다.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 내 전신은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보잘것없는 사진관이었다. 하얗게 먼지 앉고 이그러진 진열장이었다.

대체 나는 무엇 때문에 그 군색스런 진열장을 들여다보았더란 말이냐.

멋없는 사진들이 난잡스럽게 진열된 한구석에 그 여자의 사진은 ─ 아니 유미에의 사진은 수줍은 듯이 조촐하게 꽂혀 있었다.

그럴 리 없다고 암만 뜯어보아도 그것을 틀림없는 유미에의 사진이었던 것이다.

나는 금방 쓰러질 듯하다가 화끈화끈 단 이마를 유리창에 갖다 대고 얼마동안 가만히 눈을 감아보았다. 눈을 감았으나 금시로 마음속에 아로새겨진 사진 속의 얼굴만은 지워지지 않는다. 봄이 되면 내게로 다시 오겠다고 맹세하던 목소리가 귓속에 쟁쟁하다. 그렇게 말하면서 창 너머로 반신을 불쑥 내밀어 차디찬 손으로 내 손 끝을 잠깐 만져보던 모양이 눈에 선하다. 그순간 부산행 급행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미에는 얼른 얼굴을 반쯤 돌리고 수건을 눈에 대었다가……그때, 지금부터 3년 전, 그 반쯤 돌린 얼굴이, 울 가망한 얼굴이 지금 이 진열장 속에 옮겨와 앉았는 것이다. 어느 모로 보아도 그때의 유미에의 얼굴이었다. 그때 입고 있던 그 ‘야가스리’의 세루옷이었다. 귀를 덮은 숱 좋은 머리, 쌍꺼풀 진 눈, 작고 붉은 입술, 그리고 옴푹 패인 인중……

나는 얼마 만에 고개를 들어 세상엔 같은 사람도 있다고 웃어보려 하였다. 그러나 얼굴 근육이 경련을 일으킨 듯 부들부들 떨릴 뿐이다. 저도 모르게 지팡이 짚은 손에 힘이 모였다. 으스러져라고 주먹을 쥐어본다. 그러다가 당황해서 달음질 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여관으로 돌아와서 옷을 훌훌 벗고 뜨거운 물 속에 뛰어들어 다시 한번 생 각해보았다.

생각해보아도 유미에의 사진이었다. 그러나 절대로 유미에의 사진일 수 없 어야만 했다.

조선에서는 불과 서울서 석 달밖에 살아보지 못한 유미에이다. 그 유미에의 사진이 황해도 촌구석 사진관 진열장에 진열되어 있다는 것을 어찌 믿으란 말이냐 말이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면 안 된다.

그러나 또한 내 어찌 유미에의 모습을 잘못 보랴. 그것은 유미에의 사진이 아니면 유미에와 똑같은 ― 털 끝 하나 다르지 않은 여자의 사진이어야 했다. 그것이 만약 현실이라면 그것도 역시 기적이 아니면 안 된다.

기적이면 기적이라도 좋다.

유미에이면 유미에라도 좋다.

그것에 대하여 내게 놀람 외에 무슨 부족이나 불만이 있겠느냐 말이다. 부족커녕은, 불만커녕은 비록 사진이나마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그 법열의 경지보다 내 어찌 더 바라는 것이 있으랴.

오늘은 편히 자야 하겠다. 내일 아침엔 일찍이 일어나 사랑하는 사람 만나러 가야 할 것이 아니냐.

뜻밖에 잔잔한 마음 가질 수 있는 것이 반갑다. 두어 번 탕에 드나들었더니 낮잠까지 한 시간 가량 잘 수 있었다. 마음뿐 아니라 몸까지 한결 가벼워진 것 같다.

평온한 심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 아니 유미에의 사진도 대할 수 있었다.

‘그것이 틀림없는 유미에인 이상 인제부터는 다시 전과 같이 사랑하는 안해 유미에라 부르리라’

진정 유미에의 사진이고 아니고간에 나 혼자만이라도 그것을 유미에의 사진이라 단정하려고 결심하였다.

일찍이 유미에의 ‘앨범’속에서도 그와 비슷한 사진을 본 기억이 없다.

그러니까 나는 3년 만에 새로운 유미에의 사진을 발견한 셈이다. 억제할 수 없는 기쁨의 하나이다.

그 기쁨을 안고 나는 빨리 건강을 회복해야 하겠다. 내 자신을 위하여서보다도 유미에를 위하여 나는 하루바삐 튼튼해져야 한다.

앞길이 화안히 트이는 듯한 느낌이다. 유미에는 언제든지 내게 복을 가져왔다. 이번이라고 어길 리는 없다. 벌써 이렇게 시시각각으로 팔 다리에 힘이 솟아오르고 창백한 얼굴에 핏기가 돌지 않느냐. 한달 예정이었으나 이대로만 간다면 보름에 나을 것 같다.

어서 빨리 낫아야 한다.

유미에가 내 앞에 돌아오는 날, 내 꼴이 초라하다면 그것이 얼마나 유미에 의 마음을 아프게 하랴.

모든 것이 길조이다.

탕 물이 과히 뜨겁지 않은 것도 내게는 좋다. 구석진 온천이라 찾는 사람 이 드물어 조용하여 그것도 내게는 좋다.


사진관에 가서 주인을 찾았더니 서울 가고 없단다. 어제 떠났으니까 10여 일이나 있어야 돌아오리라는 것이다.

유미에의 사진을 팔라고 말했으나 주인이 없어 못 하겠단다.

그 사진의 내력이나마 물으려다 꾹 참고 돌아왔다. 유미에가 아닐리 없으 나 유미에가 아니었단 다음에 스며들 허무감이 무섭다.

사진을 살 수 있을 때까지 하루에 세 번씩 나가보리라 결심했다.

사진을 사려드는 것은 그 사진이 가지고 싶어서만이 아니다. 먼지 앉은 이그러진 진열장 속에 안해의 사진을 외롭게 두어두기가 애처롭고 송구스럽기 때문이다.

유미에의 사진이 끼어 있는 사진틀 속엔 또 왜 그렇게 난잡스런 사진들만 동거(同居)해 있느냐 말이다. 어디로 보던지 이 동리 알부랑자로밖에 보이지 않는 젊은 친구 셋이서 어깨를 끼고 박은 사진, 그렇지 않으면 술집 색시들이 진하게 화장하고 시치미 딴 사진, 남복한 여자가 무슨 생각인지 ‘헌팅’을 제켜 쓰고 추잡스럽게 금니를 내 보이며 웃는 사진……유미에의 귀한 사진을 그런 무지 속에 혼자 남겨둘 수는 도저히 없는 것이다.

사진관 주인만 돌아오면 그날로 뺏어다가 내 책상머리에 꽂아놓으리라. 유미에가 있는 고장이라 그런지 불과 사흘에 이 빈한한 온천장이 몸에 마음에 깊게 새겨져 정이 든 듯싶다.


기다리던 짐이 도착하였다. 기다리던 초상과 사진이 도착하였다.

짐을 찾아다 끌러서 방안에 벌려놓고 보니 반나절이 넘었다. 그러나 근래에 없이 즐거운 반나절이었다.

내가 자리에 누우면 마주 바라 보이는 벽에 조선옷 입고 그린 유미에의 초상화를 걸고 책상머리 양 옆에는 왼쪽으로 유미에 혼자서 박은 전신상 바른 쪽으로 동경 떠나던 날 나와 같이 박은 사진을 장승 모양으로 세워놓았다.

이제 그 사진관 진열장에 있는 사진마저 사다가 초상화와 맞서게 이번엔 이편 벽 중턱에 걸리라.

방안에 아늑한 맛이 돈다. 나는 인제 외롭지 않다. 이 책상 앞에서 나는 오늘부터 얼마든지 책을 읽고 얼마든지 글을 쓰고 그리고 얼마든지 튼튼해질 수 있는 것이다.

하녀가 점심상을 들고 들어와서 깜짝 놀라 눈이 둥그래진다.


“아아니 방안이 별안간에 꽃밭이 됐어요.”

“당신 생각에도 그렇소?”

나는 너털웃음을 쳐보았다. 이 집에 와서 처음 웃는 웃음이다.

웃기커녕은 말대꾸조차 잘 않던 내가 딴때없이 쾌활한 얼굴로 대하는 것이 하녀에게는 무척 신기했던지 저도 따라 웃고,

“그럼요? 호호호. 그런데 대체 누구 사진예요.”

“우리 안해라오. 어떻소? 미인 아니오?”

“네에, 부인이세요. 그럼, 미인이시구말구. 눈이 커다랗구 콧날이 오뚝헌게 참 이쁘게 생기셨어. 어쩌면.”

“얼굴겉이 마음씨두 세계에서 제일 이쁜 사람이라오.”

“이런 부인을 혼자 남겨두시구 왜 같이 오시질 않으셨에요.”

“같이 못 올 형편이라오.”

“왜요?”

“………”

“왜요?”

“알구 싶소? ……죽었다오.”

하녀는 묵묵히 끄덕이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언짢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차고,

“네에, 돌아가셨에요.”

맥없이 한 번 되풀이하고나서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언제 죽었으며 무슨 병으로 그랬고, 나이는 몇이고 애기는 있느냐 없느냐는 둥 나중엔 내가 귀찮아 이맛살을 찌푸릴 때까지 골고루 파묻고 혼자서 감동하고 하며 내가 밥을 다 먹고난 후에도 한참 동안 내 방에서 나갈 줄을 몰랐다.

이윽고 하녀는 밥상을 집어들며 나를 위로하는 듯이 세상엔 여자가 하나뿐이 아니라고 그리고 죽은 사람은 생각해 뭘 하느냐고 그와 비슷한 말을 남긴 후 방을 나갔다.

하녀의 긴 복도를 질질 끄는 슬리퍼 소리가 사라지자 텅 빈 집 뒤뜰로 향한 구석진 내 방에는 별안간 오후의 정적이 산 위로부터 밀물 밀듯 스며들어 나는 무슨 큰 놀람이나 대한 듯이 어안이 벙하여 한참 동안 말없이 앉았다가 문득 속으로 세상엔 여자가 하나밖에 없지 않은 게 아니라 하나밖에 없노라고 그런 것을 생각하며 불쑥 나온 대답이기는 하나 그 하나밖에 없는 사람을 아무리 거짓말이기로서니 죽었다고 대답했다는 것은 안 될 말이라고 스스로 꾸짖으며 나는 맥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 정말 그 사람이 죽었다면?

그러나 생각이 그것에 미치기도 전에 나는 무슨 의지하고 있던 것이 털썩 무너지는 듯하여 당황해서 어쩔줄을 모르고 유미에가 나를 위하여도 따로 만들어 남겨주고 간 앨범을 꺼내어 떠들쳐보았다.

유미에는 서울을 떠나게 된 전날 하루 종일 걸려 이 앨범을 나를 위하여 만들어주고 간 것이다. 자기 백일날 때 박은 사진부터 둘이서 나란히 같이 박은 사진까지 50매 가까운 사진을 그는 나 보고 싶을 땐 언제든지 이것을 보아 달라고 차곡차곡 순서대로 붙이었고 그 밑에다는 흰 잉크로 자세한 설명까지 적어주었었다.

그것은 유미에의 분신과도 같이 내게는 다시없는 보물이었다. 유미에의 말대로 유미에가 불현듯 보고 싶을 때는 물론이요 심심하기만 하더라도 그 앨범을 꺼내어 한 장 한 장 마음에 아로새겨가며 보는 습관이 어느덧 내게는 생긴 것이다. 아니 보는 것이 아니라 나는 앨범을 읽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 앨범을 읽고 있노라면 지금의 내 처지는 두말할 것 없고 현재의 유미에와 나와의 관계마저 나는 깨끗이 잊을 수 있었으며 그뿐 아니라 과거의 우리 둘 사이의 아리따운 기억만이 예쁜 그림같이 눈앞에 떠올라 나는 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바라지 않고 술 취한 사람 모양으로 황홀해지는 것이다.


(作家註[작가주]) 김군은 여기까지 쓰고 며칠 붓을 쉬었던 모양이다. 그것은 난외(欄外)에다 장난같이 쓴 글이다.

─ 나는 무엇 때문에 이것을 쓰느냐?

─ 소설 쓰기보다도 더 어려운 일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 잊어선 안 될 일을 잊는다는 것도 딱한 일이려니와 마땅히 잊어야 할만한 일을 잊지 못한다는 것은 더욱 딱한 일이다.

─ 봄풀이 푸르거든 즉시 돌아오소서.

─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게 행복이라구요? 누가 그래요?

질서 없이 늘어놓은 이런 말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의미 모를 말이 가로 세로 수없이 적혀 있고 유미에인 듯한 여자의 얼굴이 채색한 것까지 합쳐 대여선 장 원고지 사이에 섞여 있었다.

그러다가 불쑥 다음의 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도 원문은 무척 혼란되어 있다. 동경 시대의 일기’니 ‘서소문정 시대의 일기’이니 하고 구분하여놓은 것은 오로지 독자의 편의를 위하여 작자가 한 짓이다.


일기 제2[편집]

동경 시대의 일기[편집]

×월×일

박군 집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또 유미에씨를 만났다.

우연히!

월, 수, 토, 1주일에 세 번씩 유미에씨가 박군 부인에게 영어 배우러 다니는 것을 빤히 알면서 우연히 다 무엇이냐.

머지 않아 이 고장 떠날 몸이 자꾸 한 여인에게 마음이 끌린다는 것은 아무래도 상스러운 일같이 생각되지 않는다.

체온 37도 5분.


×월×일

11시가 지나서야 하숙에 돌아왔다. 그 때문에 몸이 무척 피곤하고 열이 또 더한 성싶다.

그러나 유미에씨도 역시 내게 적지 않은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안 오늘, 약간 몸 괴로운 것쯤이 하상 무엇이랴.

박군 부부가 어서 가서 자라고 내쫓을 때까지 나는 유미에씨와 마음을 털어놓고 여러 가지를 이야기했다. 무엇을 이야기했는지 지금 생각하니 기억이 희미하다. 그만큼 나는 흥분했던가보다.

박군 집을 나와서 돌아오는 길이 같은 길이었으나 웬일인지 나란히 거리를 걷는 것이 속으로 두려워 나는 일부러 들러갈 데가 있다고 ‘요요기’쪽으로 돌아왔다.

몸은 괴로워도 마음은 가볍다.


×월×일

아직도 가슴이 울렁거린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오정 넘어서 박군이 별안간에 나를 찾아왔다. 돈이 생겼으니 놀러가자는 것이었다.

역까지 입교대학 앞 희고 넓은 거리를 걸으며 박군과 나와의 대화.

“자네, 유미에를 어떻게 생각허나?”

그는 함부로 유미에라고 불렀다.

“어떻게 생각허다니?”

“응 ─ 저어 ─ 자네 유미에를 좋아하지 않나?”

“………”

“그렇지? 김군.”

“글쎄.”

“자넨 아직 사귄 지가 얼마 안 되니까 유미에가 어떤 여잔질 잘 모를 걸세만…….”

“………”

“오해허지 말게, 이것은 참고로 말해두는 거니까……나 보기엔 유미에는 좀 행실이……”

박군은 잠깐 말끝을 흐렸다가, 얼른 농담인 듯한 어조로 고치어,

“나헌테꺼지두……언젠간…….”

이 이상은 불쾌한 감정이 앞서 이 자리에 기록할 생각이 나지 않는다.

누구에게 대한 불쾌감인지 모르겠다. 종내 가슴이 뛰어 마지 않는다.


×월×일

그예 의사에게 고향에 돌아가 정양하라는 선언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내 건강을 위하여 모든 것을 잊고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나는 아직 젊고 할 일이 태산 같다.


×월×일 ─ 기념할 만치 놀라운 날

무엇 때문인질 모르겠다. 일은 극히 사소한 일이었다. 그 때문에 그런 소동이 벌어질 줄은 참 뜻밖이었다.

“우리 집은 유곽이 아닐세.”

농담으로 흘려버릴 수 없는 몹시 불쾌한 말투였다.

열이 있고 몸이 고달파 그랬던지 나는 불쑥 그 말을 탄하고 말았던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린가.”

“뚜쟁이 집이 아니란 말야. 어서들 빨리 나가게.”

내 죄라고는 별안간 두통이 심하여 옆 방에가 잠깐 드러누운 그것 밖에는 없다. 그러자 공부를 마친 유미에씨가 내가 괴로워한다는 말을 듣고 따라들어와 내 머리맡에 앉았을 뿐이다. 그것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박군의 노염을 샀는지 모르겠다.

“나가라면 나가겠지만 ─ 하직두 했구 더 있을 일두 없네. 그렇지만 이사람 어디 그게 친구간에 헐 소린가?”

“뭐 어째? 어서들 가, 더러운 연놈들!”

“이놈아, 더러운 연놈들이라니.”

오고 가는 말이었다. 그래도 박군이 감히 그런 행동을 취할 줄은 몰랐다.

쏜살같이 부엌으로 뛰어들어갔다 나오는 박군의 손에는 시퍼런 식칼이 쥐어져 있었다.

“저 따위놈은 죽여야 헌다, 쥑여야 해!”

그렇게 악을 쓰며 박군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틀림없이 미친 사람의 행동이었다.

나는 기가 막히어 말도 안 나오고 첫째 부인 보기에 송구스러웠으나 그렇다고 그 자리를 떠날 수도 없어 나는 할 수 없이 박군의 꼴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박군은 혼자서 날뛰다가 기왕 들고 나온 식칼을 주체할 길이 없었음인지 쩔쩔 매던 나머지 내 얼굴을 향하여 내리치는 시늉을 하였다.

그것이 허세인 것을 아는 나는 꼼짝도 안 했으나 옆에서 악 소리를 치고 소스라친 것은 유미에씨였다. 다음 순간 유미에씨는 나와 박군 사이로 두 손을 벌리며 뛰어들었다. 동시에 박군 부인은 박군의 팔을 붙잡고 늘어졌다.

내 얼굴을 향하여 내려오던 칼날은 유미에 씨의 엄지손가락을 반쯤 자르고 그 자리에서 멈췄다(그러나 그것은 나중에 안 일이다. 그때엔 흥분 때문에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나가거라, 나가.”

아직도 미쳐서 고함치는 박군은 두렵지 않았으나 어서 이 자리를 떠나라고 등을 내미는 유미씨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몇 걸음 안 가서 유미에씨가 뒤따라 나왔다. 골목 어귀에 서서 고개 숙이고 내 앞으로 다가오는 유미에씨를 기다리는 잠깐 사이에 나는 비로소 유미에씨의 내게 대한 행동을 생각해내고 흥분 대신 커다란 감격이 굵다란 덩어리가 되어 뭉큰 가슴을 치미는 것을 억제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참 유미에씨에겐 뭐라고 말씀드릴 수 없이 죄송합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앞에 머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별소리를 다 허시네…….”

무슨 말인지 하려다가 입안에서 우물우물 삼켜버리며 얼른 어조를 고쳐 가 만히 웃고 신뢰하는 눈초리로 내 얼굴을 쳐다보며,

“손가락을 좀 다쳤나봐요.”

“네? 다치셨에요?”

나는 당황하였다. 그러고 보니 유미에씨는 한 손을 잔뜩 움켜 쥐고 있다.

“아니, 그래 많이 다치지나 않으셨습니까?”

나는 무심코 유미에씨의 손을 잡아 펴보았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차디찬 손에서 오는 촉감에 나는 깜짝 놀라 거의 다시 떨어뜨릴 지경이었으나 일부러 힘을 주어 쥐어서 피 나는 곳을 막는 것으로 그런 감정을 억지로 숨기며,

“많이 ─ 많이 비셨군요. 저 땜에 ─ 저 땜에…….”

“아녜요, 괜찮어요.”

대답하는 유미에씨의 얼굴도 그럴세라 해서 그런지 창백해진 듯했고 나에게 잡힌 손이 가만히 적게 떨리는 듯도 했다.

잠깐 동안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심장의 고동을 엿들었다. 온몸이 확확 다는 것 같았다. 입안이 바작바작 타는 것도 같았다. 나는 얼른 외면을 하고 주머니에서 수건을 꺼내어 북북 찢어서 불쑥 유미에씨 앞에 내밀었다.

‘시부야’역까지 10분 가까운 동안 우리들은 묵묵히 나란히 서서 걷기만 했다.

“야비헌 인간예요.”

밝은 곳으로 나오자 그 무거운 침묵을 지킬 수 없었는지 유미에씨는 고개를 숙인 채 불쑥 이런 말을 하였다. 나는 채 그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네?”

역시 고개를 숙인 채 반문하였다.

“의리두 정분두 모르구……그게 질투랍니다.”

의외로 침착한 유미에씨의 목소리였다. 나는 무슨 신탁(神託)이라도 듣는 듯이 경건한 마음으로 그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직 확연히는 알 수 없으나 오늘 일어나 사건 해결의 ‘키포인트’가 그 속에 숨어 있는 것만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암말 않고 더 무슨 말이 유미에씨의 입에서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유미에씨는 다시 육중하게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리하여 우리들이 역 대합실에 한 발 들여놓았을 때다.

별안간 악 쓰듯이 유미에씨는,

“김선생님.”

하고 나를 부르고나서.

“정말 모레 떠나세요?”

쌍꺼풀 진 눈을 크게 떠서 심중의 굳은 결의를 타나내며 똑바로 나를 건너다보는 것이었다.

“네 그럴 작정입니다.”

그렇게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고나서 나도 지지 않고 눈을 크게 떠 유미에씨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았다.

그대로 우리들은 화석된 사람같이 움직일 줄을 몰랐다.

그러나 이번엔 내가 악을 쓸 판이었다.

“유미에씨. 내일 만나주십시오.”

“네.”

“12시. 이 자리에서.”

“네.”

그리고 우리들은 성난 사람 모양으로 인사도 변변히 하지 않고 헤어졌다.


×월×일 ─ 기념할 만치 놀라운 날 다음 날.

“입때꺼진 그렇게 병이 두려우셨에요?”

“입때꺼진 그랬습니다. 그러나 인젠 일 년 안에 고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습니다.”

“언제부텀요?”

“지금부텀요.”

이런 대화도 있었다.

“꼭 오시겠에요?”

“꼭 오구말구요.”

“……기다리겠어요.”

“기대려주십쇼.”

이런 대화도 있었다.


(作家註[작가주]) 여기서부터 날짜를 따져보니 김군은 이 사건 직후에 동경서 돌아와서 약 반년 동안 시골에 틀어박혀 요병(療病)에 전심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위대한 정신력으로 그는 거의 병마를 물리치다시피 했었다. 그러나 그 동안은 일기가 중단되어 자세치 않다. 일기는 여기서 일단 끝을 맺고 다음에 계속되는 ‘서소문정 시대의 일기’와 사이에 5,6매의 무슨 감상문이 끼어 있으나 그것은 이 이야기 줄거리와 별로 관련이 깊지 않은지라 생략하기로 한다.

한 가지 부언할 것은 소설로서 본다면 ‘박군’이라는 사람에 대한 서술이 몹시 부족하나 그것도 역시 이야기 줄거리와는 큰 상관이 없겠기에 애써 추궁하지 않으련다.


서소문정 시대의 일기[편집]

×월×일

어젯밤 비가 개이더니 가을철같이 하늘이 높고 날씨가 따뜻하다. 인젠 아마 봄이 왔나보다.

낡고 헐은 중국 사람 살던 벽돌집 2층 구석방이나 요양소 모양으로 밝고 볕이 잘 들어서 다행이다. 들어오는 골목 어귀가 좀 난잡해 탈이나 조용하여서 좋다.

그러나 그런 것 없어도 무관하기는 하다. 사랑하는 안해 유미에가 내 옆에 있어주는 한 나는 아무것도 더 바라지 않으련다.

오히려 지나친 행복이 두려울 지경이다.


×월×일

오정 때 아버지가 별안간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들의 누추한 보금자리를 찾으셨다. 만세. 말씀은 없으나 아버지의 허락이 내린 것이다. 우리들의 결혼에 처음엔 그렇게 반대하시더니 결국 우리들의 사랑을 이기지 못하셨다.

아버지의 무언의 허락을 우리들은 더 굳은 사랑의 맹세하는 것으로 맞아들여야 했다.

따로 아버지가 작정하여두셨던 곳은 어제 파혼하셨단다.

부모의 커다란 애정에 응석부리는 내 자신이 죄인 같이도 생각되고 송구스럽기만 하나 갈 길이 다르니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저녁엔 어머니가 오셔서 밤 늦게까지 계시다 가셨다. 말 통하고 못하는 게 딱했으나 서로 그래도 알아듣는 체 고개들을 끄덕이고 웃고 하는 모양이 미소를 자아내인다.

“어머니, 지가 고른 색시 으때요?”

간다고 일어나실 때 히죽히죽 웃으며 물었더니 어머니도 따라 웃으시며,

“온 뻔뻔헌 녀석두 다 봤다. 에미 앞에서 누가 색시 자랑헌대드냐.”

그러시면서도,

“복스럽구 상냥허게 생겼다.”

귓속말같이 들려주시다가 너무 칭찬만 했다고 후회가 나시던지,

“하관이 좀 빠르다만…….”

그러나 그것은 괜한 말씀. 어머니 속을 내가 다 내다본다.

어머니 가신 후에 그 말을 유미에에게 들려주었더니 킬킬거리며 내가 어떠냐고 뽐낸다. 나는 그 웃는 입을 얼른 두 손으로 틀어막았다.


×월×일

애매한 편지만 자꾸 찢어 없앤다.

유미에는 동경 자기 집에다 만리장서를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우리 집에서 먼저 승낙이 내리고 보니 유미에는 더욱 초조한 모양이었다.

부모도 버리고 형제도 버리고 나 하나만을 믿고 의지하여 멀리 서울까지 달아나온 유미에는 집에서 어떤 회답이 올지 빠안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유미에의 집안은 넉넉질 못하였다. 부모는 늙었고 동생은 아직 대학에 재학중이었다. 쥐꼬리만한 유미에의 월급과 약간의 은급이 그들 일가의 수입의 전부였다. 그런 살림에서 별안간 유미에가 빠져버렸으니 남은 사람들의 심중은 아무나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유미에의 늙은 부모도 다른 늙은 부모와 마찬가지로 완고하기는 일반이었다. 제 마음대로 딸 자신이 택한 남자를 그렇게 쉽게 사위로 삼으려 하지는 안 했다. 그리하여 결국 앞날에 커다란 분란이 일어날 것을 각오한 유미에는 그 분란을 자기 고장에서 겪는 것보다 내 곁에서 맞이하고 싶다고……가을엔 내가 동경으로 가겠다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홀몸으로 내 품에 뛰어든 것이었다. 그런 비상수단을 써야만 일루의 광명을 찾을 수 있다고 ─ 이것은 그때 유미에가 편지 속에 써 보낸 말이다.

유미에는 지금 서울에 온 지 한 달 만에 처음으로 집에다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어떤 글발이 쓰이는지 나는 그것을 읽지 않고도 짐작할 수 있다.

고독한 안해 유미에! 유미에의 집에선 필경 두려운 회답이 올 것이다. 유미에! 더 내 곁으로 다가와요!


×월×일

놀고 있기도 심심하니 유미에는 취직을 하겠다는 것이다.

‘더두 안 다닐테야, 반년 동안만. 우리 식할 때까지만 나 다릴께. 응’

부모는 자기를 딸이라 생각하지 않을지 모르나 자기마저 부모를 저버릴 수는 없으리라. 나 돈 좀 쓸 데가 있다고, 그렇게 말하는 유미에의 두 눈에 잠깐 눈물이 어린 듯 만 듯 한 것을 나는 얼른 외면하여 모른 체하고 고개를 끄덕이었다.

한 달에 몇 십 원 집에 부쳐줄 그까진 돈쯤 내가 어떻게 하겠다고 말을 꺼냈자 들을 리 없는 유미에이다. 식을 거행할 때까지의 반년동안 차라리 유미에의 마음대로 하게 하는 것이 유미에의 생각해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월×

유미에의 집에선 두려운 회답조차 오질 않는다.


×월×일

드디어 유미에는 정말 외로운 사람이 되고 마나보다. 이미 달포가 지났으나 동경에선 엽서 한 장 없다.

그러나 유미에는 조금도 외로운 빛을 내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생각하니 더욱 가엾다.

“당신 이름으루 어머니헌테 돈 20원 부쳤수.”

“그러면 어떡해?”

“괜찮어요. 어머닌 다 아시는데 뭘. 어머닌 내 말이라면 뭐든지 듣지만…….”

말끝을 못 맺어도 내가 유미에 곁에 있어서 행복스러운 것처럼 유미에도 내 곁에 있는 한 행복스러울 것이다.


×월×일

×월×일

×월×일


(作家註[작가주]) 날짜만 기입되어 있지 또 여러 날 동안 일기는 중단된 채이다. 서로 사랑하는 두 젊은 사람의 생활에는 특별히 기입할 만한 사건도 없으리 만큼 행복스러웠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일기는 껑충 뛰어 가을철로 넘어갔다.


×월×일

어제 오늘 아침 저녁으로 제법 찬바람이 돈다. 여름도 다 갔나보다.

아버지가 새집 사주신다니 미리 그리로 옮겨두자고 해도 유미에는 종시 듣지를 않는다. 비록 누추하기는 하나 우리들의 사랑의 보금자리니 좀더 못 견디게 추워질 때까지 이 방에 있자는 것이다.

근심했던 내 건강이 날로 회복되는 것만은 실로 천행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것도 유미에가 곁에 있어주는 덕인가 한다.

언젠가 동경서 박군이 식칼을 휘두르며 날뛸 때 다친 엄지손가락 상처가 뚜렷하게 남아 있는 것을 나는 오늘 처음으로 발견하였다. 입때 그것을 한번도 생각 안 한 것이 부끄럽도록 신기하다.

머리맡에 와 앉은 유미에의 손의 상처를 나는 무한한 감개 섞어 어루만지며,

“그때 어떻게 나를 막어줄 맘이 생겼었소?”

하고 물었으나 유미에는 웃기만 하고 대답을 않는다.


×월×일

자정 때쯤인지 새벽녘이었는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각이었다. 흑흑 느끼는 유미에의 울음소리가 꿈결같이 들려오기에 나는 번쩍 잠이 깨었다.

꿈결이 아니었다. 정말 유미에가 베개에 엎드려서 목이 메어 우는 것이었다. 울음소리 죽이느라고 두 어깨가 커다랗게 들먹거렸다.

“유미에, 아니 이게 웬일요?”

자기 믿는 곳이라면 남자보다 꿋꿋한 기상을 가진 유미에는 여간해서 ─가 아니라 거의 절대라 해도 좋을 만큼 남의 앞에선 눈물을 보이지 않았었다. 그러던 유미에가 더구나 밤중에 이렇듯 주책없이 통곡을 하는 것은 필연코 범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유미에, 유미에.”

나는 비길 데 없는 불길한 예감은 느끼어 벌떡 일어나서 유미에의 어깨를 잡아 젖히려 했으나 유미에는 한사코 구부려 엎드린 채 동하지를 안했다.

그렇게 얼마 동안 유미에의 어깨를 흔들고 있는 사이에 알지 못하게 나도 그 유미에의 슬픔 속에 끌려들어 우리 둘은 그대로 얼싸안은 채 울며 밤을 새우고 말았다.


×월×일, ×일, ×일.

사흘 전의 격동이 아직도 조금 전같이 새롭다. 그래도 붓을 들 수 있는 것을 보니 약간은 흥분이 사라진 듯도 하다.

그렇게 얼싸안고 운 그 다음날, 유미에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두꺼운 편지를 내던지듯 내 앞에 내밀었다. 단념한 지 오래였으나 그래도 은근히 속으로 기다리던 그것은 유미에의 집에서 온 두려운 편지였던 것이다.

첫줄부터 편지에는 유미에가 없어진 후의 집안의 곤경을 늘어놓기 시작하여, 별안간에 물가가 비싸져서 집안 살림이 말 아니라는 것 유미에가 집을 나간 다음 날부터 집안 사람이 이상하게도 차례로 앓기 시작하여 자기는(유미에의 어머니) 중풍이 도져 아직껏 왼팔이 부자유하며, 야스지(유미에의 아우)는 운동이 과했던지 벌써 달포 가까이 학교에도 못 가고 시들시들 누워 있는데 앓는 것보다도 학비 댈 일이 더 걱정이라는 것, 그러니 집안에서 성한 사람이라곤 아버지밖에 없으나 성하대야 칠순이 넘은 노인이니 아침 저녁 어색한 솜씨로 밥 짓는 꼴이란 눈물이 앞서 볼 수 없다는 것, 이래저래 집안꼴이 초상 난 집 같아서 서로들 짜증이나 내지 않으면 캄캄한 마음을 안고 마주 보고 있을 뿐이라고, 그러고는 열 번 스무 번 거듭하여 유미에 네가 다만 잠깐만이라도 집에 돌아와야 하겠다고, 네 소원을 듣고 안 듣는 건 그 후의 일이라고 ─ 유미에의 어머니가 부자유한 손으로 부자유한 눈으로 겨우겨우 끄적어 보낸 눈물겨운 그 편지는 그런 줄 알면 알수록 더욱 사람의 애감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끝에 가서 마지 못해 적는다는 듯이 킨상(나다)이 여러 번 보내준 돈은 잘 받았으니 치하의 말 전하여 달라고 그런 말을 쓴 다음에 또 킨상에게 잘 말해서 잠깐만이라도 다녀가라 고 그것은 오히려 치사스럽고 비굴하기까지 한 애원이었다.

편지를 읽고나자말자 문득 이것이 우리들의 행복의 절정이었나보다고 그런 아무 근거 없는 불안한 그림자가 휙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으나 그러나 그 편지가 주는 강렬한 자극은 그런데 오랜 머물러 있을 수조차 없게 하였다.

나는 얼른 다시 직면한 현실로 돌아보는 것이나 그러면 그 직면한 현실을 해결하기에 내 힘이 너무나 무력한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란 유미에를 사랑할 줄 안다는 그것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편지를 보고나서야 유미에를 동경에 안 보낸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으나 그러나 또한 유미에를 동경에 보낸다는 것도 그보다 더한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 내 생존을 전제로 한다면 불가능하기까지한 일이었다.

그러나 하여간 무슨 결말이든지 결말을 짓기는 해야 한다. 그 편지를 묵살할 도리는 없었다. 나는 혼잣말같이 가만히 중얼거렸다.


“그래, 어떻게 헐 테요?”

“………”

“당신 생각대루 허구려.”

“………”

유미에는 사흘이 되는 오늘날까지 대답이 없다.


×월×일

보내야 옳았고 간다는 대답이 당연하였으니 정말 유미에의 입에서 그 대답이 떨어졌을 때 나는 얼굴이 핼쑥해지도록 속으로 놀랐다.

내가 한마디만 가지 말라고 입밖에 내었어도 유미에는 그 말에 순종했으리라.

보내고 싶지 않은 것이 정말 내 마음, 떠나고 싶지 않은 것이 정말 유미에의 마음. 그러나 나는 가라 그랬고, 유미에는 가겠다 그랬다. 사흘에 한 번씩 편지를 쓰자고 약속을 했을 뿐, 우리들은 마음에 없는 일을 행동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월×일

언짢게만 생각지 말라는 것이다. 자기가 집에 갔다오는 것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의 앞길이 뜻밖에 활짝 트일지도 모르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르면 금년 안에, 늦어야 내년 봄인데 그걸 못 참느냐고, 그동안에 몸이나 튼튼해지라고 그것은 눈물 섞인 농담이었다.

늦어도 내년 봄에 ─ 늦어도 내년 봄에 ─ 당신이 안 오면 이번엔 내가 쫓아들어간다고 나도 웃음의소리를 하며 돌아서서 눈물을 씻었다.


(作家註[작가주]) ‘서소문정 시대의 일기’는 아직도 4,5일 더 계속된다. 그러나 김군은 연필로 그 위에다 죽죽 금을 그어 뭉개놓아서 그것을 말살하려는 의사를 표시한 듯하다. 그 뜻을 존중하여 나는 여기서 그 대문을 삭제한다. 그 대문 속에는 유미에가 경성을 떠나던 전후의 그들의 생활과 유미에가 정말 떠난 후 2,3일 동안 그 서소문정 셋방을 외롭게 지키는 김군의 하소연이 면밀히 적혀 있다.

이것으로 ‘일기 제2’는 끝을 맺는다. 따져보니 나와 김군의 교분이 생긴 것은 바로 이 직후인 성싶다.

그때 김군은 집에서 매일 앓고만 있었다. 아마도 유미에를 잃은 김군은 그 늦어도 반년’을 기다리지 못하고 기진맥진했던 모양이다. 그러한 김군 혼자를 서울에 남겨두고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유미에는 드디어 서울에 돌아오지를 안 했다. 쫓아간다던 김군마저 병마에 붙잡힌 채 꼼짝을 못 했다.

그러한 상태로 김군의 말에 의하면 무척 ‘오랜 3년’동안이 지났던 것이다.

그동안 응당 김군과 유미에 사이에는 헤일 수 없을 만큼 편지 왕복이 있었을 것이나 아직까지는 엽서 한 장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왜 그들이 다시 결합되지 못했는가를 추궁할 자료가 전혀 없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단념하지 않고 여러 날 걸려 그의 유고 뭉치를 뒤진 결과 다음과 같은 두 통의 편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는 도저히 사건의 전모를 알 수 없으나 우리들의 추측을 돕는 한개의 힌트는 될 수 있을 것 같아 다음에 그 주요한 내용만을 발표한다.


박군의 부인에게서 온 편지의 1절

……김선생님의 거룩한 뜻은 오늘 마침 유미에상이 들렀기에 그대로 전했습니다. 유미에상은 돌아앉아 울고만 있더군요.

김선생님 말마따나 유미에상이 ‘제일 불쌍한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결코 아무의 죄도 아닙니다. 더구나 김선생님의 죄는 아닙니다.

죄라면 사람으로 태어난 죄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인제 와서 그것이야 후회할 수 있습니까. 당분간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시고 빨리 건강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유미에상이 결혼한다구요? 글쎄요. 믿을 수 없는 전설 같습니다.

‘유미에상’이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 김선생님이라는 것은 저보다 김선생님이 더 잘 아실 것 아닙니까.

사랑하는 사람끼로도 결합 못할 경우가 역시 있으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비극이야말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아니겠습니까……


節子[절자]라는 유미에의 동무에게서 온 편지의 1절

……선생님이 품고 계신 의문이 정말인지 거짓말인지 제 입으로도 여쭐 수 없는 형편인 것을 용서하여주십시오.

제 생각에도 동경까지 안 오시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것같이 바다와 같이 넓고 유순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선생님의 순정을 누가 감히 욕하겠습니까.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가 봅니다. 운명이라면 순종할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요새 저는 자꾸 운명의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유미에상은 이미 행복을 등진 사람입니다. 오히려 선생님은 인제부터 얼마든지 행복될 수 있어도 유미에상만은 한평생 행복이란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지낼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운명의 장난이랄까요? 차라리 저는 유미에상 더러 몸을 팔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떳떳하게 선생님에게 유미에상이 자유의 몸이 될 때까지 기다리시라고 말할 수나 있지 않습니까.

선생님의 심중을 생각하오면 눈물뿐이옵니다……

일기 제3[편집]

봄이면 내게로 다시 온다 하였다.

다시 온다던 봄이 어느덧 세 번 지나가고, 네 번째 봄도 이젠 머지 않았다.

망각조차 가져다 주지 못하는 세월이 암만을 흘러도 내게는 아무 느끼는바 없다. 그러나 애써 잊으려고도 않는다. 아니 잊어서 어찌 하랴. 사랑하는 안해의 환영은 날이 갈수록 해가 갈수록 연륜 모양으로 커가고 짙어가야 옳을 것이다.

기다리라고 했고 기다린다 했다. 네가 아는 건 그뿐이다. 나는 ‘메로스’ 모양으로 약속을 지키리라.

언제든 한번은 만난을 박차고 유미에가 내게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진실로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유미에의 앞길이 그리로 뚫린 것을 어쩌면 유미에 자신도 의식치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내가 유미에가 다시 내게로 돌아왔을 때의 쉬일 곳을 준비 안 해둘 수는 없는 것이다.

해는 서쪽으로 지고 유미에는 내 품에서 눈 감으리라.


내 앞에서 유미에가 영영 자취를 감출 때, 유미에는 절대로 자기를 찾지 말아 달라고 만약 찾아낸다면 찾아낸 그 날이 자기 죽는 날이라고 그런 말을 남겨놓고 간 것이 새삼스럽게 생각하는 날이다.

그 말을 좇아 몇 번 죽을 고비를 넘으면서도 나는 그를 찾지 않고 지냈다.

인제부터도 물론 찾지 않고 지내련다.

그러나 그 괴로움을 넘어오는 사이에 나는 한 가지 신앙을 가질 수 있었다. 사랑하는 안해 유미에는 찾지 않아도 언제나 내 곁에 있느니라는 신앙이었다.

사랑하는 안해 유미에는 어디 있느뇨? 모든 곳에 다 있나니라.


사진관 주인에게 떼를 써서 싸우다시피 하여 겨우 유미에의 사진을 사왔다.

곧 틀을 사다 끼워 예정했던 벽에다 걸었다.


“유미에.”

그러고나서 입밖에 내어 불러보고 물끄러미 그 사진을 들여다보는 동안에 여울물같이 날뛰던 마음이 금시에 잔잔히 가라앉고 만족감이 방안에 가득차 나는 숨을 막힐 지경이었으나 뒤이어 커다란 공허가 차차로 차차로 그 진폭을 늘이어…… 한 해, 두 해, 세 해.

까마아득한 3년이었다. 3년 동안이 이렇게 긴 세월이란 것을 요새 와서 비 로소 깨달았다.

그러면 그 긴 3년 동안이 앞으로 장차 몇 번이나 얼마 동안이나 거듭되고 계속될 것이냐. 그리고 내 파리한 몸이 그 까마아득한 세월과 얼마 동안이나 싸울 수 있겠느냐.

……복도를 걷는 하녀의 수다스런 웃음소리가 나의 폐부를 찌르는 듯했다.


새로운 유미에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커다란 허무가 형용 못할 두려움을 가지고 불쑥 눈앞에 나타나는 것을 느꼈다.

몸 둘 곳 없으리 만큼 적적하기도 하다.

창문을 활짝활짝 열어젖히고 시골답지 않게 번잡한 이 온천장 거리를 얼마 동안 내려다보았다.

짧고 좁은 길로 형형색색의 인물들이 모두 바쁜 듯이 우왕좌왕한다. 그러나 그들 속에 나를 아는 사람이 없고 내가 아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사람들뿐 아니라 이 거리에도 이미 내가 정 둘 곳이라곤 있을 리 없는 것도 같다.

유미에의 환영이나마 내 곁으로 오고 만 이상 이미 이 고장에는 나는 머물러 있을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필요를 느끼지 않을 뿐 아니다. 입때까지와는 반대로 불시에 지금까지 가졌던 호감보다도 더한 혐오를 느끼게 된 것은 내 스스로도 알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 나는 다시 유미에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리라.

나는 역시 나그네에 지나지 않았다.

이 저작물은 저자가 사망한 지 50년이 넘었으므로, 저자가 사망한 후 50년(또는 그 이하)이 지나면 저작권이 소멸하는 국가에서 퍼블릭 도메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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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