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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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밤에 길 위에 나서면 어디 먼 곳에 얇다란 검정 망사나 우중충한 수풀에 가리어서 달이 우련히 떠 있으려니 하는 착각을 가지게 된다. 최군이 먼저 마당에 내려 서면서,

“아유 이 눈 보게, 어느 새에 한 치나 쌓였네.”

하고 지껄이니까, 최군 옆에 같이 따라 나섰던 해중월이라는 기생이,

“눈 오시는 밤에 취해서 거리를 쏘다니는 것두 버릴 수 없는 흥취시죠.”

하고 요릿집 사환 아이가 빌려주는 우산을 마다고 그냥 두루마기 바람으로 눈 속에 들어섰다. 그도 미상불 술이 얼큰하니 취한 모양이다. 기생이 마다고 한 우산은 정군이 받아서 펼쳐 들었다.

“김군도 눈을 보면 흥분하는 축인가.”

그렇게 말하고는 뒤에 선 나를 뻐끔이 돌아보며 우산 밑으로 기어 들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창엽이라는 기생과 팔을 걸고 현관으로 나서던 참이라, 그를 떼어놓고 혼자서 눈을 피할 수도 없는 노릇, 그렇다고 셋이서 우산 밑으로 머리를 틀어박는 것도 야속한 일이어서 우리는 우리대로 눈을 맞으며 설레는 눈 속에 서보리라 생각하는 것이었다. 결국 우산을 받은 것은 정군 한 사람뿐이 되었고, 최군과 나는 각각 기생을 하나씩 한 팔에다 끼고 눈을 맞으며 무산관이라는 술집을 나섰다. 또 한 번 취흥을 새롭게 불러본다고 송양관으로 자리를 옮겨놓는 길이었다. 송양관의 새로 지은 신관은 아마 처음 일 것이라고, 3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나를 친구들은 그리로 안내한다고 한다. 술로 하여 상기된 얼굴에 무수히 눈송이가 부딪쳐서 물이 되곤 하였다. 내게 의지하듯 매어달린 기생도 이마와 콧등을 간지럼 피우는 눈송이를 씻기 위하여 여러 번 두루마기 속에 넣었던 왼팔을 뽑았다. 거리에 나서면 행인도 없었으나 모두 침묵하고 걷는다. 이윽고 일행이 송양관의 정문을 들어설 때에도 둥그런 문등의 주위를 꿀벌떼처럼 눈송이가 설레 도는 것이 보이었다.

눈은, 우리들이 해질 무렵에 술을 시작할 때에는 내리지 않았었다. 아침부터 날씨는 푸근하였고, 내가 건넌방에 혼자 앉아서 안방에서 들리는 어머니와 동생들의 목소리, 그리고 부엌에서 나는 부인네들의 그릇 만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에는, 오래된 황장미 가지를 에워싸고 참새의 떼가 재깔대는 마당에 흐릿한 회색 분위기가 가득 차 있었다. 그러한 무렵에 정군이 나를 찾아왔었고, 마주 앉아 담배도 한 대 피워버리기 전에 그는 나더러 저녁이나 먹으러 나가자고 권면하였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 없고 최군이 마침 전화를 걸었길래 그럼 셋이서 오래간만인데 이야기나 나누자고.”

그 동안 커다랗게 전방을 내어서 어느 새에 군내에서 굴지하는 상인이 된 정군은 그렇게 말하였다. 나도 사양하지 않고 정군을 따라 집을 나갔다. 정군의 가게에서 최군을 만나 아직도 저녁을 지을 시각에 우리들은 술좌석을 벌인 것이다. 그들은 우선 오래간만에 고향에 온 우인(友人)을 갈빗집으로 안내하였다. 갈비를 구워서 소주를 마신다. 전날이라고 하여도 5,6년 전 내가 고향에서 한 해 동안 몸을 정양할 때에 최군과 정군과 가끔 하던 놀음이었다. 우리들의 먹성은 같았다. 갈비는 이글이글 피어 오르는 숯불 위에 놓아서 뿌이뿌이 피나 가실 때에 뜯기 시작한다. 마늘과 고추장을 곁들여 먹는다. 그들은 5,6년의 서울 생활에 변하지 않은 나의 식성을 기뻐하는 듯하였다.

“서울 갈비라고 달기는 하지만 고깃내가 나야 먹지.”

하고 핏물을 입술에서 닦으면서 정군은 말한다.

갈비로 우선 뱃속의 토대를 닦아놓고 무산관으로 갈 때에도 아직 해는 완전히 저물어버릴 시각이 아니었는데, 대기는 찌풋한 채 낮게 머리 위에 드리웠으나 눈은 내리지 않았었다. 좌석에는 먼저 해중월이라는 연세가 지긋한 기생이 불리어왔다. 그는 나와도 익숙하게 잘 안다. 정군이나 최군 들과, 내가 아직 고향에 와서 지낼 때, 가끔 술자리에 섞여서 우리들의 기분을 알아주던 색시였다. 지난날의 추억을 회상시키기 위하여서 해중월이를 부른 모양 같았다. 그럭하고 한참만에 ── 술이 서너 순배나 돌았을 동안 이니까 한 4,50분 뒤였을까, 창엽이라는 애띠고 나와는 안면이 없는 기생이 하나 새로이 좌석에 끼었다. 그가 미닫이 안에서 절을 하고 들어와서 앉는데, 약간 머리를 지진 이마 뒤에 녹다가 남은 눈송이가 보여서, 나는

“눈이 오더냐.”

하고 물었고, 그러니까 창엽이는,

“언제 오셨어요.”

소리와,

“예, 눈이 지금 막 흩날리며 내리시기 시작해요.”

하는 대답을 연줄 이어 말하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눈이 온다, 허어 마침인걸.”

신문 지국을 하다가 그만둔 최군은, 눈 내리는 날 술맛이 한층 다르다고 무릎을 치며,

“한 잔 부어라.”

고 불쑥 창엽이에게 잔을 내미는 것이었다.

나는 창엽이를 모르는데 창엽이가 나를 안다는 것은 술이 거나하게 취한 나에게는 즐거운 일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너 나를 아느냐.”

“그럼은요, 제가 그럼 선생님을 몰라요.”

“하긴 한고을에 살면서, 모른다는 게 되려 수상할 일이지.”

나는 반가운 마음을 오히려 계면쩍어서 그렇게 덮어버리고, 최군의 말에 화답하듯이,

“술 좋고, 친구 좋은데, 색시들마저 미인이요, 이 위에 백설까지 흩날리니 참말 오늘이 우리들의 생일이다.”

고 지껄였다.

술잔이 오가고, 노래가 서로 건나들고, 끊임없는 추억담이 좌석을 포근한 취흥에 적시는 동안, 가끔 나는 창엽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화장은 짙으게 묻히지 않았으나 얼굴이 조금 길쯤한 게 눈이 어글어글해서 퍽 귀엽게 느껴졌다. 말씨도, 소리도, 손님 대하는 품도, 그리 익숙하지 않았으나, 어딘가 기명(妓名)답지 않은 그의 이름과 함께 그것이 소박해보일지언정 그다지 서투르고 치사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아이였다. 두서너 번 술을 따를 때마다 나는 뻔뻔스럽게 눈여겨 건너다보는 것이다. 나의 취안에는 도무지 기억에 떠오르지 않는 얼굴이었다. 하는 수 없어 나는 그에게 술을 한잔 권하면서,

“나는 너를 모르겠다.”

고 나직이 실토를 하였다. 그랬더니 그는 그저 웃으며 잔을 받았다. 입에 대는 듯하다 다른 그릇에 쏟아버리고 그는 다시 잔을 보내 술을 따른 뒤에

“바르타자아르.”

하고 말하였다. 반작(半酌)도 안 하는 것이었으나, 여러 사람이 연거푸 권하는 잔으로 하여 그의 볼편에도 술빛이 서리었다.

“바르타자아르?.”

하고 나는 반문하였으나, 그러한 대답조차 의연히 나에게는 의문이었다. 그것은 입에 익은 이름 같긴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다는 것일까, 그러하고도 얼마 동안 머리를 짜내어서야 나는 그것이 서양 소설가의 문학 작품의 제목인 것을 알아낼 수 있었으나, 그것이 대체 어이되었다는 것인지는 종시 생각해내지 못했었다. 그러한 채로 술에 함뿍이 취하였고, 또 취한 채로 그를 옆에 끼고 눈이 흩날리는 데를 송양관으로 덤덤히 걷는 것이었으나 방에 들어와서 자리에 앉도록 그 소설의 내용도 생각하지 않았다. 팔을 끼고 한참 동안 걸어온 것이 두 사람의 사이를 일층 친하게 하였는지, 정군이 술을 시키러 나가고 최군이 변소에 가고 없는 동안, 마침 해중월이마저 화장을 고치려는지 사무실에 나가고 없어서 나는 창엽이를 무릎 가까이 오래서 그의 손을 만져주었다.

“바르타자아르가 무슨 소리냐.”

나는 다시 묻는다. 부끄러움이 잠시 눈가장에 끼치는 듯하였으나 이윽고 창엽이는,

“10년 전 제가 아홉 살 날 때 옛말 시간에 들려주시지 않었어요.”

하고 말하였다.

“10년 전?”

이라면, 내가 지금 스물 여덟째 잡히니까 17,8세, 중학 3,4학년 때이라고 나는 곧 속으로 주먹구구를 하였고, 아아 참, 중학 3학년 겨울 방학 때, 예수교 예배당에서 두 주일 동안 아이들을 모아놓고 야학을 하였다고, 나는 드디어 무릎을 딱 쳤다.

생면부지의 색신 줄 알았더니 10년 전의 옛친구라고, 나는 기생이 여러 번 붙드는 것을 기어코 좌석에 쏟아놓아 공개를 하고 말았다. 밤마다 열 살 전후의 남녀 아동들을 모아놓고 학습도 시키고 창가도 가르치고 성경 말씀도 배워주고 하는데, 이를 건너서 한 번씩 동화 시간이 있었다. 내가 문학 소년이라고 야학의 선생 동료들 ── 모두 중학생 ── 이 동화 시간을 나에게 떠맡겼고 그러자니 건방진 문학 소년의 마음에 호랑이 이야기나 흔하디 흔한 이솝 이야기 같은 건 지껄이지 않는다고, 어떤 날 밤엔 서양 소설가의 작품을 읽은 대로 그것을 고스란히 옮겨서 이 어린 소년 소녀에게 들려주었던 모양이다. 그 때에 아홉 살의 소녀로서 많은 아이들 틈에 끼어 앉아서 나의 《바르타자아르》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이 창엽이었다는 것이다.

나만이 그러나 《바르타자아르》의 내용을 잊은 것이 아니라, 창엽이 자신도 바르키스라는 여왕의 이름과, 그 여왕의 환영을 잊어버리기 위하여 별을 연구하던 바라타자아르에게, 하루는 하늘로부터 말씀이 있었다는 것과, 그 말씀이 가르치는 대로 바르타자아르는 한 말의 몰약(沒藥)을 마련해가지고 별을 좇아 ‘사람에게 진리를 가르치고저 세상에 탄생하는 어린 아이’한테로, 유태국의 베들레헴으로 길을 떠났다는 줄거리만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다.

외우기 힘든 서양 이름을 두 개씩이나 잊지 않고 있었다는 것과, 나의 이름도, 내가 그 동안 고향 밖으로 떠다니면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도 알지 못하는 창엽이가 나를 보자 곧 10년 전의 옛 기억을 불러내어 ‘바르타자 아르’하고 외쳤다는 것이 모두 기특하고, 또 취한 마음에 한없이 반갑고 흐뭇해서, 나는 창엽이의 어린 시절을 빙자하여 나의 소년 시대를 한바탕 떠들어 지껄이었고, 그러니까 친구들은 친구들로서, 이것이 인연이라는 둥, 사제지간의 애정 관계는 진정 소설감이라는 둥, 10년 전의 옛일을 잊지 않았다는 건 바로 김군 그 사람을 10년이 하루처럼 고이고이 사모한 탓이라는 둥, 실없는 말로 한참 동안 왁자지껄 하였다. 실없은 조롱의 말이긴 하였으나 나는 나대로 반갑지 않은 건 아니었고, 창엽이는 그저 낯을 좀 붉히면서 무어라 변명도 늘어놓지 않고 발씬발씬 웃고만 있었다. 술이라, 노래라, 춤이라 하여 우리 다섯 사람은 얼마 동안 머리가 퀭하도록, 두 사람의 기이한 해후를 축하하였다. 그러나 떠들고나면 갑자기 마음은 공허해지고 술자리는 삭막해지는 법이다. 모두들 시무룩해서 앉아 있다. 순배가 다시 돌아갔으나 무슨 의무를 실행하듯이 아무말 없이 술을 마시고는 옆자리로 덤덤히 잔을 옮겨놓을 뿐, 생각해보면 기쁠 것도, 반가울 것도 없는 일인지 모른다. 나는 나대로 10년 전의 푸른 꿈을 아무 데서 이루어보지 못하고 죽지가 부러져서 뜻을 잃고 고향에 돌아온 사람, 창엽이로 말해도 나이가 아홉 살이었으니 무슨 커다란 공상이야 가졌으련만 별을 따라, 베들레헴을 쫓아가던 마음으로 지금 뭇사내 앞에서 술을 따르는 신세가 되었으니, 그 동안의 우리들의 10년과, 그리고 10년 뒤의 우리들의 처지는, 그대로 축배를 올릴 만큼 영광스런 것만은 아니었었다. 좌석의 싸늘쩍한 술맛은, 그러한 것을 생각해 보고 있는 때문이었을까. 나는 내 앞에 놓인 잔을 들이켜고는 변소를 찾아서 방밖으로 나왔다. 어느 새에 눈이 그치고 달이 떠 있었다.

변소를 나오는 길로 나는 강 있는 편을 조망할 수 있는 뒷마루로 돌아가 보았다. 눈 위에 달이 떠서 고향의 밤 경치는 취안에 아름답게 벌어져 보이었다. 무산 십이봉(巫山十二峰)의 잔등도 하이얗게 빛나 보인다. 천주봉(天柱峰) 벽옥봉(碧玉峰) 금로봉(金爐峰)이 있는 위켠은 고운 눈썹처럼 까마득하게 앉아 있어 보인다. 그 밑에 푸르게 흘러 내릴 비류강(沸流江)은 얼음에 잠겼고, 그 얼음 위에 눈이 내려서 그저 퍼언한 옥돌로 된 마당이 가로 누워 있는 것 같다. 그 건너 편 강선루(降仙樓)는 십이난간(十二欄杆)의 한쪽과 조운각(朝雲閣)의 추녀만이 여기서는 우중충하니 보인다. 승선교(昇仙橋)가 장차게 건너갔다던 다릿목, 출운대(出雲臺)의 바위 밑만 흰 눈에 젖지 않고 까만 여울이 소리 높이 흐르고 있다. 아름다운 경개였다. 이런 것을 바라보며 술을 들 수 있는 송양관이 마음에 들었다. 이름을 송양관이라 한 것도 이 고을이 천 년 전 옛날 송양왕의 도읍처였던 것에 기인함이리라.

그렇기로 말하면 저 십이봉은 그때엔 흘골산(屹骨山)이라 하여 성이 있었고, 비류강도 졸본천(卒本川)이라 불렀다던가.── 나는 잠시 옛일을 상고하여보며 새롭게 흥취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대체 이렇게 경개가 좋은 요리관은 그 전날엔 누구의 집터였던가, 누구네 밭이었던가,── 나는 그런 것을 생각하며 눈을 가까이로 옮겨놓았다. 강 기슭은 뽕밭이 확실하고, 상전(桑田)과 잇대인 밭은 채미를 심었던 것임이 분명하고, 낭떠러지 위에 앙상하게 서 있는 것은 늙은 버드나무 싹덩이고, 저 오른편으로 돌담의 옆구리가 희미하게 나타나 있는 곳이 거리에서 강가로 나가는 샛길일 것이고, ……그러나 이 요리관의 옛터가 무엇이었던지는 종시 생각나지 않았다.

‘두어라, 구태여 천착해보아 무엇하랴’고 발을 돌이키는데 변소 있는 옆으로 커다란 늙은 뽕나무, 틀림없는 뽕나무가 눈에 띄었다. 나는 발을 옮겨 놓지 못하였다. 한 편이 썩어서 구멍이 뚫어져 있는 늙은 뽕나무는 나를 20년 전의 옛날로 끌고 갔었다.

‘옳다! 이 집이 박진사 댁이었구나.’


박진사 댁은 그때에는 우리 고을에서 드물게 밖에 얻어볼 수 없는 솟을대문을 가지고 있었다. 낡았으나 커다란 대문이었다. 문 옆으로 길다란 담장이 강 있는 편으로 뻗어 나갔는데, 담 모새기에 담장보다 훨씬 높은 뽕나무가 서 있었다. 담 안에 심은 과실 나무, 복숭아 살구 대추 같은 것들이 한 뼘씩밖에 가장자리를 담 위에 드러내놓지 않았는데, 뽕나무는 그의 몸뚱아리를 절반 이상이나 내놓고 한 가지는 담장 밖에까지 뻗어 나와 있었다. 보통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니까 여덟 살 때이었던 것 같다. 첫 여름이었을까.

까만 오디(뽕나무 열매)가 가지마다 열려서 그다지 많지도 않은 뽕 잎 밑에 다닥 붙어 있었다. 나와 또 한 아이, 흥남이는 강에서 들어오다가 아무말 없이 이 담장 밑에 우뚝 섰다.

“난 자쟁이가 무서워 싫다.”

하고 흥남이는 나무에 오르기를 꺼린다. 나는 흥남이더러 담장 밑에 엎드리라 하였다. 그는 땅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그의 잔등을 발판으로 해서 나는 기왓장으로 위를 덮은 담장에 기어올랐고, 또 이내 뽕나무 가지로 손을 뻗어 몸을 옮겨 앉을 수가 있었다. 가장자리를 두세 번 바꾸어 짚으니까, 오디가 까맣게 익은 가지에 손이 미쳤다. 담 밖을 내어다보니까 흥남이는 다시 길 위에 일어나서 서성거리고 섰다가 나를 쳐다보고 씽끗하니 웃는다. 나는 담 안을 보았다. 저만큼 멀찍이 사랑이 보인다. 사랑 옆으로 넓은 대청 마루가 있는데 그 가운데 수염이 허어연 영감이 앉아서 책을 읽고 있다 돋보기를 꼈으나 노안이라 . 나무 위에 올라앉은 내가 보일 리 없다고 안 심한다. 나는 오디를 따서 일변 먹고 일변 주머니에 넣었다. 이내 손끝이 보랏빛으로 물든다. 나는 정신 없이 오디를 바작바작 씹고 있다.

드르륵 하는 미닫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사랑 옆 문이 열린 것이다. 소반에 대접을 받쳐 들고 분홍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은 머리를 드리운 처녀가 마루로 나온다. 박진사의 서안 앞에 와서 대접을 드릴 때에 굽힌 허리 위에서 빨간 댕기가 스르르 옆으로 미끄러지는 것이었다. 처녀는 이윽고 책상머리에서 비켜 선다. 박진사가 화채를 마신다. 대접을 놓고 수염을 쓰다듬는다. 그때에 박진사의 막내딸은 마루 끝에 서서 마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싱싱한 창포와 꿀벌 통과 작약 포기를 보고 있다. 복숭아 나무를 본다. 그러다가 눈이 잠시 미끄러져서 뽕나무를 보아버렸다.

“아이머니.”

하고 잠깐 놀라 멈칫 물러섰으나,

“누구냐.”

하고 그 다음엔 소리를 질렀다. 나는 옴짝달싹 못한다. 박진사에게 무어라고 고해바치고는 처녀는,

“이리 내려와! 누가 남의 담장을 넘어 들어왔어.”

하고 발을 콩 하고 굴러 보인다. 그는 이내 신을 끌고 마당에 내려서서 내가 나무에서 내려오는 것을 기다렸다. 뽕나무에서 밑을 굽어 발디딜 자리를 고를 때에 담장 밖을 보니까 벌써 흥남이는 달아나고 거기엔 없었다. 나는 맨발 채로 담 안에 내려섰다. 복숭아나무 옆으로 두어 발자국 나섰다.

“아아니 너 계손이 아니냐.”

하고 그는 내 애명을 부른다. 나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그는 가까이 와서 내 머리를 만지면서,

“손 좀 보아라, 저 옷 주제.”

그렇게 말하고는 피식 웃는다. 나무를 기어내릴 때 주머니에 넣었던 오디가 뭉그러져서 적삼에 붙인 어북에서는 자줏빛의 오딧물이 뚝뚝 흘렀다.

“이리 온.”

하고 그는 나를 사랑 앞으로 데리고 갔다.

“아버지, 김리방네 손자예요.”

하고 그는 말한다. 그러니까 박진사는 눈에서 돋보기를 벗기고

“호, 허어!”

하고 수염 속을 헤치면서 웃는다.

“오디가 먹구 싶어서 담장에 올랐느냐.”

관을 쓴 머리를 주억거리며 두 눈가장의 주름살은 한참 동안이나 펴지지 않았다. 나는 손가락을 만지며 댓돌 밑에 서 있었다.

“안으로 데리구 가라.”

퍼뜩 고개를 들고 보니 박진사는 다시 돋보기를 쓰고 기름에 절은 길다란 책장을 들치고 있었다. 박진사의 막내딸은 내 손을 이끌고 중대문 안으로 들어가서 나를 안방 마루 끝에 앉히었다. 나는 거기서 진사의 막내딸이 떠다주는 대얏물에 손을 씻고 주머니를 털고 그리고 아마 올북숭아를 몇 알 얻어 먹었던 것 같으다. 물론 기억은 똑똑치 않지만.

그러나 그때까지 나는 박진사네 집안 내막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고 있지 못하였다. 내가 학교에 다니게 되고 그 뒤 차차로 철이 들면서 한마디 두 마디 귀동냥으로 얻어 들은 것을 추려보면 박진사네 가운은 그때부터 벌써 속살로는 수습하기 힘들 만큼 기울어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박진사에게 두 아들이 있는 것도 나는 훨씬 뒤에사 알았다. 아들 중의 하나는 무엇을 하는지 모르나 가끔 옥색 두루마기를 입고 상고머리로 깎은 맨머리 바람으로 거리를 오르내리었다. 낯이 희고 갸름한 사람이었다. 작은아들은 아내를 친정으로 쫓아버리고 늦게 신식 공부를 시작하느라고 송도에 가서 학교에 다닌다 하였으나 방학에 와도 도무지 밖에 나오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윗동리에서 국수장수를 하는 장 아무개의 아내가 박진사의 맏딸이라는 것을 알고는 나는 진정 놀랐다. 어째서 부잣집 호사 딸이 국수장수를 할 것인가고 나는 적이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장아무개도 옛적에 좌수를 지낸 아버지를 가졌다는 것을 알고, 아들의 세대에 와서 갑자기 재물을 잃고 산을 흩어 놓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전후해서 박진사네 토지를 병원 집에서 산다는 소문과, 삼등에 있던 농막(농사 짓기 편하게 논밭 가까이에 간단하게 지은 집)이 동척으로 넘어간다는 풍문이 연거푸 떠돌아다녔다.

나는 이윽고 보통학교의 상급반이 되었다. 오래지 않아 유학을 가야 한다던 시절이었으니 열 서너 살 먹었을 때인 듯하다. 어느 여름날 나는 혼자서 박진사네 담장 밑을 지나고 있었다. 뽕 잎이 유난스레 퍼렇게 피었으나 가만히 눈여겨보면 이파리에 가리어서 오디 알이 또렷또렷하다. 오디는 알이 잘고 파랗고 빨간 채 먹음직스럽지도 탐스럽지도 않았다. 물론 나는 어린아이 적처럼 담장에 기어올라 오디를 탐하려 하지도 않는다. 담장은 마침 뽕나무가 있는 군데가 반 남아 허물어져 있어서 뽕나무 밑등께에 구멍이 있는 것이 밖에서도 보인다. 나는 문뜩 박진사의 막내딸을 생각하고 무너진 담터로 뜰 안을 살펴보았다. 몇 해 전에 이웃 고을로 시집을 간 그는, 서방이 술주정뱅이어서 가끔 모진 매를 얻어맞는다는 소문을 놓았었으니 지금 그가 그 전 날처럼 빨간 댕기를 드리고 분홍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고 마당귀에서 있을 리 만무였다 마당에는 . 싱싱하던 창포도 작약도 없다. 과실 나무도 절반은 죽은 채로 잎도 피지 못한 것이 많다. 여름 볕은 쨍쨍하였으나, 낡은 기와와 꺼먼 기둥과 문설주를 비치는 햇빛은 오히려 쓸쓸하기 짝이 없다. 대청 마루에는 박진사의 그림자도 없었고 창살이 굵은 문짝이 굳이 닫히어 있다. 사위는 조는 듯이 고요하다. 그러나 그때에 유령 같은 흰 그림자가 퍼뜩 나의 시야를 어른거렸다. 맏아들이었다. 낯이 양초 가락처럼 희다. 희다 못해 파랗다. 그는 중대문을 휘우청휘우청 나와서 기운 없는 걸음으로 마루 밑 댓돌을 돌았다. 해가 쬐는 기둥 끝에가 쭈그리고 앉는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기계를 꺼내서 젓가락 같은 팔을 걷고 혼자서 팔뚝을 뚫었다. 침 그릇도 간수하기 전에 그는 눈을 감았다. 나는 그것까지 보고는 뽕나무가 서 있는,── 그리고 그 뽕 이파리 밑에는 익지 않은 초라한 오디를 매어달고 있는 ── 그 담장 밑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 뒤에 박진사는 세상을 떠났고 맏아들도 타관에서 방랑하다가 객사하고, 둘째 아들은 학교를 그만둔 뒤 순사 시험을 보고서 간도 영사관 근무가 되었고, 그리고 시집에서 소박맞고 돌아온 막내딸은 국수장사 하는 장아무개, 저의 형네 집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는 것을 중학 때에 방학해 올 때마다 한마디씩 얻어 들었다. 박진사의 손자는 어느 광산에서 심부름을 하면서 저의 어미를 모시고 있다는 것도 귓결에 들은 법하다. 커다란 주택, 오디가 열리는 뽕나무가 서 있는 박진사네 낡은 주택은 한 때에 도깨비 불이 켜진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너덧 가족, 외지에서 전근 온 월급쟁이들이 집세로 들어 있었다. 도깨비 불이 켜진다는 소문은 얼마 뒤에 없어졌으나, 가옥 문서가 누구의 벽장에 들어갔는지는 묻지 않아서, 여태까지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있었다. 지금 담장도 솟을대문도, 사랑도, 중대문도, 안채도, 아무 것도 없어졌으나, 이 뽕나무만이 밑 배에 뚫어진 구멍을 안은 채 달빛 속에 움직이지 않고 서 있다. 어느 가지에 잎이 피고 어느 가장자리에 오디가 열리는 것일까.

갑자기 취기가 달아나니까 등골에 찬 물을 끼얹듯이 데석 밑이 오싹하였다. 내가 자리에 돌아왔을 때 친구와 색시들은, 기다리다 지쳐서 하마 달아난 줄 알았다고 말한다. 사무실에서 잠시 전화를 걸었다고 속이고 나는 비인 방석 위에 앉았다. 방석이 차가운 것이 뼈에 사무치었다. 가려고 하던 참인데 김군이 자리에 돌아왔으니 마지막으로 한 순배 들면서 노래나 부르자고 한다. 나도 취해서 돌아가고 싶었다. 창엽이가 술을 따른다. 술이 차갑다 혀가 시리다 그래도 . . 꿀꺽 삼키니까 가슴 밑이 따사로운 것 같다. 나는 거푸 석 잔을 마시었다. 그러고는 그때에 나이 지긋한 해중월이가 노랫가락에 맞추어 부르기 시작한 송도 기생의 옛 시조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 아니로다. 주야로 흐르나니 옛 물이 있을손가. 인걸도 물과 같아여 가고 아니 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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