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국민에의 헌사
먼저, 이번 대구지하철 참사에서 귀중한 목숨을 잃은 시민 여러분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부상자들이 하루속히 쾌유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제가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을 대하는 것이 오늘로서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삼가 작별의 인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지난 5년 동안 격려하고 편달해 주신 국민 여러분의 태산같은 은혜에 머리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제 인생 최대의 보람을 국민 여러분에게 봉사하고 여러분과 함께 민족과 국가의 운명을 열어가는 데 동참하는 것이라고 믿고, 저의 모든 것을 바쳐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부족하고 아쉬운 점도 많았습니다. 후회스러운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하지만 국민 여러분과 저의 정부는 지난 5년 동안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국운융성의 큰 기틀을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국민의 힘이 컸습니다. 이제 우리 국민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가지고 떠날 수 있게 되어서 저는 더할 나위없이 기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국가가 융성하려면 훌륭한 국민과 책임을 다하는 정부가 필요합니다.
우리 국민은 역사상 처음으로 여야정권교체를 이룩했습니다. 외환위기에는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하였고, 개혁의 과정에는 가혹한 시련과 희생을 감내해 주었습니다.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성공시켜 세계를 감탄케 했습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세계적인 IT강국을 만들어 냈습니다. 반세기 민족의 비극에 전환점을 이루는 화해협력의 햇볕정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지지해 주었습니다. 어느 때보다 높은 국민의 참여 속에 가장 공명한 대통령 선거를 치렀습니다.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냐"하는 국민적인 각성과 자신감이 전국 방방곡곡에 넘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민의 힘과 성원이 있었기에 국민의 정부는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21세기 일류국가의 기틀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민주 인권국가로서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넘치는 언론자유, 시민운동의 활성화, 여성지위의 획기적 향상, 노동운동의 자유 보장, 그리고 과거 군사독재하에서 희생됐던 사람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 등 많은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외환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했을 뿐만 아니라 금융, 기업, 공공, 노사 등의 4대 개혁을 실행하여 우리 경제의 체질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한국은 이제 IT강국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으로부터 배워라", "한국인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 자랑할 권리가 있다", 이런 많은 찬사도 받고 있습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사회 안전망을 선진국 수준으로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문화의 창달과 체육·관광의 진흥을 통해 보다 나은 국민의 삶과 국가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공무원은 처우와 인사환경의 개선 속에 성실하고 능력있는 봉사를 통해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는 21세기 일류국가의 대열에 들어갈 수 있다는 벅찬 희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순간 이러한 성취를 위해 지원하고 편달해 주신 사회 각계의 지도자 여러분에게도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을 항상 어둡게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반세기가 넘는 분단과 대립의 민족현실입니다. 최근에는 북한 핵문제까지 우리의 가슴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민족의 비극은 우리의 운명이며 해결할 수 없는 것이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일생을 두고 민족의 평화공존과 평화교류, 그리고 평화적 통일을 이루기 위해 헌신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많은 박해와 오해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요지부동으로 보이던 평화통일에의 수레바퀴도 이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햇볕정책은 한반도 긴장을 크게 완화시켰습니다. 과거 50년간 해외투자 유치는 246억 달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 5년 동안 600억 달러의 해외투자가 들어왔습니다. 한반도의 긴장완화가 곧 경제이고, 안보의 조건이기도 합니다. 반세기만에 휴전선에서 육로가 열렸습니다. 지금 진행중인 철도와 공단의 건설 등은 남북을 하나의 민족경제로 연결하는 힘찬 출발이 될 것입니다. 5천년 단일민족을 지켜온 우리의 하나됨을 그 무엇도 영원히 갈라놓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북한의 민심도 우리에 대한 불신과 적대에서 이해와 동경으로 차츰 변화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과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평화적으로 교류.협력하다가, 서로 안심할 수 있을 때에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길로 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만이 민족의 비극을 종식시키고 통일조국을 실현하는 최선의 길이 될 것입니다.
한편, 우리는 북한과 이념을 달리하고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냉혹한 현실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됩니다. 국가 안보는 지금도 우리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그러나 인내와 노력으로 한반도의 긴장을 점진적으로 풀어갈 수 있다는 확신을 포기해서도 안되겠습니다. 지난 5년이 그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부산 아시안게임이 국민적으로 이를 실감케 했습니다. 북한 핵은 단호히 반대해야 합니다. 핵은 반드시 포기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이는 한.미.일 정상간의 합의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북.미간의 대화가 해결의 중요 관건입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가 평화공존과 평화교류의 노력을 계속할 때 북한은 더욱 개방될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안정과 평화 속에 대한민국을 세계 일류국가로 발전시키는 데 전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남북을 관통하는 철도와 육로를 통해서 유라시아대륙의 물류중심국가가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동북아시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로 성장한 우리의 힘은 통일의 비용도 자신있게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 통일을 할 수 있겠느냐 하고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착실히 전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민족의 분단은 타의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나 민족의 화해와 통일은 우리 힘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누구도 우리를 대신해서 해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현실적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확고히 지키기 위해서는 남북간의 화해협력과 더불어 한.미간의 굳건한 안보동맹이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지정학적 입장으로 봐서 조선왕조 말엽과 같은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동북아의 안정자로서 주한미군의 존재는 지금은 물론 통일 이후에도 필요합니다. 한.미 군사동맹은 한.미 양국에게 모두 이익이 됩니다. 반미도, 반한도, 다 같이 배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 주변의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과 EU와 같은 영향력 있는 국제사회와도 더한층 긴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 발전시켜 나가야겠습니다. 우리에게 외교는 중요합니다. 외교는 평화와 번영에의 중요한 길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민주주의와 나라의 발전, 그리고 조국통일을 위해서 일생을 바쳤습니다. 다섯 번 죽을 고비를 넘겼고, 6년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수십년을 망명과 연금, 감시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 사이에 수많은 치욕과 고통도 있었고, 수많은 유혹도 있었습니다. 신군부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저 역시 죽는 것이 몹시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저는 불의와 타협하는 것은 영원히 죽는 것이고, 죽더라도 타협을 거부하는 것이 영원히 사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역사를 믿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역사는 결코 불의에게 편들지 않습니다. 역사를 믿는 사람에겐 패배가 없습니다.
일생동안, 특히 지난 5년 동안 저는 잠시도 쉴새없이 달려왔습니다. 이제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저의 생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민족과 국민에 대한 충성심을 간직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노무현 대통령을 적극 지지해 주십시오. 새 정부가 추구하는 민족간의 화해협력과 국민참여 속의 국정개혁은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이 그 소명을 다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저는 우리 민족의 장래에 큰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반드시 세계로부터 존경받는 위대한 국가로 성장할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그러한 자질이 있습니다. 경제 대국의 꿈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남북간의 평화적 통일도 언젠가는 실현시키고야 말 것입니다.
이제 저는 국정의 현장에서 물러갑니다. 험난한 정치 생활 속에서 저로 인하여 상처입고 마음 아파했던 분들에 대해서는 충심으로 화해와 사과의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같이 단결합시다. 내일의 희망을 간직하고 열심히 나아갑시다. 큰 대의를 위해 협력합시다.
2003년 2월 24일 대통령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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