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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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기 – 김동인(1921. 1.) 그는 중학 졸업을 하고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가 고향에 돌아가지 않은 데는 몇 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째는, 그는 고향 시골구석에 가서 농사를 하고는 견디지 못할 성질이다. 둘째는, 오륙 년 동안을 있던 이 도회를 이제 떠나면 언제 다시 올지 막연한데, 그렇게 쉽게 떠날 수가 없었다. 셋째는 ─ 셋째라는 것보다 위의 두 가지 이유가 있으므로 말미암아, 그는 이 도회에 얼마 동안 더 머물러서, 그가 가장 즐겨하는 음악을 배우고 싶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이제 공부 더할 것이 있으니 사오 년 동안을 더 여기 있어야겠다는 편지를 하였다. 그 편지의 회답은 아버지에게서 곧 왔다. ─ 나는 늙었다. 이젠 네가 와서 모든 집안일을 보아야겠다. 돈이나 많이 벌어질 공부가 아니면 그만두어라. 대체 네가 공부하겠다는 것은 무슨 공부냐?…… 이런 뜻의 편지가 한지에 게발글씨로, 큰 자와 작은 자가 범벅으로 놓여 있었다. ‘물론 이런 것이다.’ 생각하고 그는 머리로 아버지를 그려보았다. 그의 아버지는, 그 스무남은 집 되는 마을에서는 쉽지 않은 호농(豪農)이다. 그리고 수만 원의 재산을 자기 손으로 만든 그의 아버지는, 또 그 동리의 제일가는 인색한 사람으로, 그 인색에 대한 일화(逸話)가 많이 있다. 그리고, 또 그 동리의 제일가는 튼튼한 사람이다. 그는 자기 아버지가 머리와 수염에 게를 하얗게 올리고, 담뱃대를 입으로만 문 뒤에, 넓은 자기의 논 앞에 서서,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는 모양을 머릿속에 그려 본 뒤에, 성가신 듯이 머리를 저었다. 영리한 그는, 이러한 자기 아버지한테 음악을 배우겠단 말은 편지로도 안 하였다. 그는 다시 졸업 당시의 기쁨을 생각하여 보았다. 졸업증서를 받은 때의 기쁨, 졸업생 축하회, 졸업생 송별회들로 모였을 때의 기쁨, 졸업생끼리만 오여서 덤빌 때의 기쁨, 모든 세포(細胞)는 뛰놀았다. 핏방울마다 춤을 추었다. ─ 졸업생끼리 포부를 말할 때에, “음악가가 되겠노라.” 고, 그는 장담하였다. 그러나 회를 끝내고 어두운 길에 나설 때에, 끝없는 외로움이 그의 머리를 ─ 아니, 그의 있는 사면 십 간 사방을 둘러쌌다. 졸업을 하였으니 어떻단 말이냐? 아버지는 촌에 돌아오라 한다. 우울한 촌살림에 나는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아들이 졸업하고, 아우가 졸업하고, 애인이 졸업하고, 형이 졸업하였다고 모두들 기뻐 날뛰되, 나의 졸업을 축하하여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때에 생각 외로움은 그를 떠나지를 않았다. 그는 용기를 내어, 아버지에게 좀 더 공부하겠다고 편지를 하였으나, 아버지에게는 이제 온 편지로, 무슨 공부를 하겠느냐고 물을 뿐, 그의 바람은 채지 못하였다. 한참 생각하다가 그는 붓대를 잡고 한 번 더 아버지에게 편지를 하려고 하였다. ─ 음악은 좋은 것이다. 슬픈 때도 음악을 들으면 그 슬픔이 없어지고, 답답한 때도 시원해지고, 그보다 더 좋은 공부는 없으리라. 이런 뜻의 글을 순 국문뿐으로 길게 아버지가 으쓱하리만큼 써놓은 뒤에, ‘소자도 음악을 배우겠습니다.’ 는 뜻으로 끝내었다. 그리하여, 밤에 그 편지를 편지통에 넣은 뒤에, ‘오늘 밤차로 이 편지가 가면, 모레 점심 때쯤 집에 닿고, 게서 곧 회답을 하면 나흘 뒤에는 오렷다.’ 하고 꼽아 보았다. 일각이 여삼추로 기다리던 아버지의 회답은, 닷새 뒤에 그의 손바닥 위에 놓이게 되었다. 등기 편지였다. 무슨 일일까? 아버지는 돈 보낼 때밖에는 등기로 안 할 터인데…… 돈이 왔나? 무슨 돈일까? 고향에 돌아오라는 돈인가? 음악을 배우라는 돈인가? 한참 주저하다가 그는 봉을 뜯었다. ‘음악은 좋은 것이다. 이즈음 약장사들이 유성기라는 것으로 음악을 하는데, 참 좋더라. 네가 음악을 배우겠다는 것은 용하다. 그러나 너 혼자 배우면 무얼 하니? 너의 애비, 어미, 아우, 누이, 모두 배우면 더욱 좋을 것이다. 뒷동리 홍주사(洪主事) 말이 어느 신문에 유성기 한 개에 팔 원 한다는 광고가 났다기에 차비까지 십오 원 보내니, 꼭 잊지 말고 사 가지고 돌아와서 하루바삐 음악을 배우자. 꼭 잊지 마라.’ 이런 뜻이, 순 국문으로만 막 씌어 있다. 그는 한숨 쉴 힘도 없어졌다. 그날 밤 열 시쯤, 먹을 줄도 모르는 술에 잔뜩 취하여 가지고, 고향 가는 차 삼등실 구석에 구겨 박혀 앉아 있는 자기를, 그는 발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