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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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起林) 형

인천(仁川)가 있다가 어제 왔소.

해변에도 우울밖에는 없소. 어디를 가나 이 영혼은 즐거워할 줄을 모르니 딱하구려! 전원(田園)도 우리들의 병원(病院)이 아니라고 형은 그랬지만 바다가 또한 우리들의 약국(藥局)이 아닙디다.

독서 하오? 나는 독서도 안 되오.

여지껏 가족들에게 대한 은애(恩愛)의 정을 차마 떼기 어려워 집을 나가지 못하였던 것을 이번에 내 아우가 직업을 얻은 기회에 동경 가서 고생살이 좀 하여 볼 작정이오.

아직 큰소리 못하겠으나 9월 중에는 어쩌면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소. 형(兄) 도동(渡東) 하는 길에 서울 들러 부디 좀 만납시다. 할 이야기도 많고 이 일 저 일 의논하고 싶소.

고황(膏肓)에 든, 이 문학병(文學病)을ㅡ 이 익애(溺愛)의 이 도취(陶醉)의······ 이 굴레를 제발 좀 벗고 표연할 수 있는 제법 근량(斤量) 나가는 인간이 되고 싶소.

여기서 같은 환경에서는 자기(自己) 부패(腐敗) 작용을 일으켜서 그대로 연화(煙火)할 것 같소. 동경이라는 곳에 오직 나를 매질할 빈고가 있을 뿐인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컨디션이 필요하단 말이요. 컨디션, 사표(師表), 시야(視野), 아니 안계(眼界), 구속(拘束), 어째 적당한 어휘가 발견되지 않소만그려!

태원(泰遠)은 어쩌다가 만나오. 그 군도 어째 세대고(世帶苦) 때문에 활갯짓이 잘 안 나오나 봅디다.

지용(芝溶)은 한 번도 못 만났소.

세상 사람들이 다ㅡ 제각기의 흥분, 도취에서 사는 판이니까 타인의 용훼(容喙)는 불허하나 봅디다. 즉 연애, 여행, 시, 횡재, 명성ㅡ 이렇게 제 것만이 세상에 제일인 줄들 아나 봅디다. 자ㅡ 기림 형은 나하고나 악수합시다. 하, 하.

편지 부디 주기 바라오. 그리고 도동 길에 꼭 좀 만나기로 합시다. 꾿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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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 형

어떻소? 거기도 더웁소? 공부가 잘되오?

『기상도』 되었으니 보오. 교정은 내가 그럭저럭 잘 보았답시고 본 모양인데 틀린 데는 고쳐 보내오.

구(具) 군은 한 천 부 박아서 팔자고 그럽디다. 당신은 50원만 내고 잠자코 있구려. 어떻소? 그 대답도 적어 보내기 바라오.

참 체재(體裁)도 고치고 싶은 대로 고치오. 그러고 검열본(檢閱本)은 안 보내니 그리 아오. 꼭 소용이 된다면 편지하오. 보내 드리리다.

이것은 교정쇄(校正刷)이니까 삐뚤삐뚤한 것은 '간조'에 넣지 마오. 그것은 인쇄할 적에 바로잡아 할 것이니까 염려 없소. 그러니까 두 장이 한 장 세음이오. 알았소?

그리고 ノンブル는 아주 빼어 버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의견이 어떻소? 좀 メザワリ 같지 않소?

구인회는 인간 최대의 태만(怠慢)에서 부침(浮沈) 중이오. 팔양(八陽)이 탈회(脫會)했소ㅡ. 잡지 2호는 흐지부지오. 게을러서 다 틀려먹을 것 같소. 내일 밤에는 명월관(明月館)에서 영랑(永郞) 시집(詩集)의 밤이 있소. 서울은 그저 답보(踏步) 중이오.

자조 편지나 하오. 나는 아마 좀 더 여기 있어야 되나 보오.

참 내가 요즘 소설을 썼소. 우습소? 자ㅡ 그만둡시다.

이상(李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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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 형

형의 글 받었소. 퍽 반가웠소.

북일본(北日本) 가을에 형은 참 엄연(儼然)한 존재로구려!

워밍업이 다 되었건만 와인드업을 하지 못하는 이 몸이 형을 몹시 부러워하오.

지금쯤은 이 이상이 동경 사람이 되었을 것인데 본정서(本町署) 고등계(高等係)에서 「도항(渡航) マカリナラヌ」의 분부가 지난달 하순에 나렸구려! 우습지 않소?

그러나 지금 다른 방법으로 도항 증명을 얻을 도리를 차리는 중이니 금월 중순 하순경에는 아마 이상도 동경을 헤매는 백면(白面)의 표객(漂客)이 되리라.

졸작 「날개」에 대한 형의 다정한 말씀 골수(骨髓)에 스미오. 방금은 문학 천년(千年)이 회신(灰燼)에 돌아갈 지상(地上) 최종의 걸작 「종생기(終生記)」를 쓰는 중이오. 형이나 부디 억울한 이 내출혈을 알아주기 바라오!

『삼사문학(三四文學)』 한 부 저 호소로(狐小路) 집으로 보냈는데 원 받았는지 모르겠구려!

요새 「조선일보」 학예란(學藝欄)에 근작시 「위독(危篤)」 연재 중이오. 기능어(機能語). 조직어(組織語). 구성어(構成語). 사색어(思索語)로 된 한글 문자(文字) 추구(追求) 시험(試驗)이오. 다행히 고평(高評)을 비오. 요다음쯤 일맥(一脈)의 혈로(血路)가 보일 듯하오.

지용(芝溶) 구보(仇甫) 다 가끔 만나오. 튼튼히들 있으니 또한 천하는 태평성대가 아직도 계속된 것 같소.

환태(煥泰)가 종교(宗橋) 예배당에서 결혼하였소.

『幽靈 西へ行く』는 명작 『홍길동전』과 함께 영화사상 굴지의 ガラクタ입디다. ルネ. クレ-ル. クソクラエ.

『영화시대(映畫時代)』라는 잡지가 실로 무보수라는 구실하에 이상(李箱) 씨에게 영화소설 『백병(白兵)』을 집필시키기에 성공하였소. ニウスオワリ.

추야장(秋夜長)! 너무 소조(蕭條)하구려! 아당(我黨) 만세! 꾿 나잍.

오전(午前) 4시(四時) 반 이상(李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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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 형

형의 그 折れ釘みたいな字로 된 글을 땀을 흘리며 읽었소이다. 무사히 착석(着席)하였다니 내 기억 속에 김기림(金起林)이라는 공석(空席)이 하나 결정적으로 생겼나 보이다.

구인회는 그 후로 모이지 않았소이다. 그러나 형의 안착(安着)은 아마 그럭저럭들 다 아나 봅디다.

사실 나는 형의 웅비(雄飛)를 목도(目睹)하고 先手を打たれたような氣がして 우울했소이다. 그것은 무슨 한 계집에 대한 질투와는 비교할 것이 못 될 것이오. 나는 그렇게까지 내 자신이 미웠고 부끄러웠소이다.

불행히ㅡ 혹은 다행이 이상(李箱)도 이달 하순경에는 동경 사람이 될 것 같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든지의 형의 웅비와는 구별되는 것이오.

아마 이상은(도?) 白白しい 그 문학은 그만두겠지요.

『시와 소설』은 회원들이 모두 게을러서 글렀소이다. 그래 폐간하고 그만둘 심산이오. 2호는 회사 쪽에 내 면목이 없으니까 내 독력으로 내 취미 잡지를 하나 만들 작정입니다.

그러든지 今からでも遲くはない すみやかに 원고(原稿)들을 써 오면 어떤 잡지에도 지지 않는 버젓한 책을 하나 만들 작정입니다.

「기상도」는 조판이 완료되었습니다. 지금 교정 중이오니 내 눈에 교료(校了)가 되면 가본(假本)을 만들어서 보내 드리겠사오니 최후 교정을 하여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동시에 『시와 소설』도 몇 권 보내 드리겠소이다.

그리고 '거벼운 글' 원고 좀 보내 주시오. 좀 써먹어야겠소. 기행문? 좋지! 좀 써 보내구려!

빌어먹을 거ㅡ 세상이 귀찮구려!

불행이 아니면 하로도 살 수 없는 그런 인간에게 행복이 오면 큰일나오. 아마 즉사할 것이오. 협심증(狹心症)으로ㅡ.

一切誓ふな, 一切を信じないと誓へ의 두 마디 말히 발휘하는 다채(多彩)한 패러독스를 농락하면서 혼자 미고소(微苦笑)를 하여 보오.

형은 어디 한번 크게 되어 보시오. 인생이 또한 즐거우리라.

사날 전에 FUA 『장미신방(薔薇新房)』이란 영화를 보았소. 충분히 좋습디다. ささやかなる幸福이 진정의 황금이란 タイトル는 ア-ノルド フアソグ의 영화에서 보았고 ささやかなる幸福이 인생을 썩혀 버린다는 タイトル는 장미(薔薇)의 침상(寢牀)에서 보았소. 아ㅡ 哲學の限りなき無駄よ 그랬소.

一切の法則を嗤ヘ? それも誓ふな. 나 있는 데 늘 肉ドソブリ을 사다 먹는 승려가 한 분 있소. 그이가 이런 ソクラテス를 성가시게 구는 논리학을 내게 뙹겨 주는 것이오.

소설을 쓰겠소. おれ達の幸福を神樣にみせびらかしてやる 그런 해괴망측한 소설을 쓰겠다는 이야기오. 흉계지요? 가만있자! 철학 공부도 좋구려! 退屈で退屈ならない 그따위 일생도 또한 사(死)보다는 그대로 좀 자미가 있지 않겠소?

연애라도 할까? 싱거워서? 심심해서? 스스로워서?

이 편지를 보았을 때 형은 아마 뒤이어 「기상도」의 교정을 보아야 될 것 같소.

형이 여기 있고 마음 맞는 친구끼리 모여서 조용한 「기상도」의 밤을 가지고 싶던 것이 퍽 유감(遺憾) 되게 되었구려. 우리 여름에 할까? 누가 아-나?

여보 편지나 하구려! 내 고독과 울적(鬱寂)을 동정하고 싶지는 않소? 자ㅡ 운명에 순종하는 수밖에! 굳빠-이

6일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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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 형

기여코 동경 왔소. 와 보니 실망이오. 실로 동경이라는 데는 치사스러운 데로구려!

동경 오지 않겠소? 다만 이상을 만나겠다는 이유만으로라도ㅡ.

『삼사문학』 동인들이 이곳에 여럿이 있소. 그러나 그들은 어디까지든지 학생들이오. 그들과 어우러지지 못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이제 그만하고 늙었나 보이다.

『삼사문학』에 원고 좀 쥐여주오. 그리고 씩씩하게 성장하는 새 세기(世紀)의 영웅들을 위하여 귀하가 귀하의 존중한 명성을 잠간(暫間) 낮추어 삼사문학의 동인이 되어 줄 의사는 없는지 이곳 청년들의 갈망입니다. 어떻소?

형에게는 건강도 부귀도 넘쳐 있으니 편지 끝에 상투로 빌(祈)을 만한 말을 얼른 생각해 내기가 어렵소그려.

1936년 1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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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 대인

여보! 참 반갑습디다. 하야옥전정(鍜冶屋前丁) 주소를 조선(朝鮮)으로 물어서 겨우 알아 가지고 편지했는데 답장이 얼른 오지 않아서 나는 아마 주소가 또 옮겨진 게로군 하고 탄식하던 차에 참 반가웠소.

여보! 당신이 바-레 선수라니 그 바-레 팀인즉 내 어리석은 생각에 세계 최강팀인가 싶소그려! 그래 이겼소? 이길 뻔하다가 만 소위 석패(惜敗)를 했소?

그러나 저라나 동경 오기는 왔는데 나는 지금 누워 있소그려. 매일 오후면 똑 기동(起動) 못할 정도로 열이 나서 성가셔서 죽겠소그려.

동경이란 참 치사스러운 도십디다. 예다 대면 경성이란 얼마나 인심 좋고 살기 좋은 한적한 농촌인지 모르겠읍니다.

어디를 가도 구미(口味)가 땡기는 것이 없소그려! キザナ 표피적인 서구적 악취의 말하자면 그나마도 그저 분자식(分子式)이 겨우 여기 수입이 되어서 ホンモノ 행세를 하는 꼴이란 참 구역질이 날 일이오.

나는 참 동경이 이따위 비속(卑俗) 그것과 같은 シナモノ인 줄은 그래도 몰랐소. 그래도 뭐이 있겠거니 했더니 과연 속 빈 강정 그것이오.

한화(閑話) 휴제(休題)ㅡ 나도 보아서 내달 중에 서울로 도루 갈까하오. 여기 있댔자 몸이나 자꾸 축이 가고 겸(兼)하여 머리가 혼란하여 불시에 발광할 것 같소. 첫째 이 가솔린 냄새 미만(彌蔓) セット 같은 거리가 참 싫소.

하여간 당신 겨울방학 때까지는 내 약간의 건강을 획득할 터이니 그때는 부디부디 동경 들러 가기를 천 번 만 번 당부하는 바이오. 웬만하거든 거기 여학도들도 잠깐 도중 하차를 시킵시다그려.

그리고 시종(始終)이 여일(如一)하게 이상(李箱) 선생께서는 プロレタリア-ト니까 군용금을 톡톡히 나래(拏來)하기 바라오. 동경 첨단 여성들의 물거품 같은 '사상(思想)' 위에다 대륙의 유서 깊은 철근 철퇴를 나려뜨려 줍시다.

「조선일보」 모씨 논문 나도 그 후에 얻어 읽었소. 형안(炯眼)이 족히 남의 흉리(胸裏)를 투시하는가 싶습디다. 그러나 씨의 모랄에 대한 탁견(卓見)에는 물론 구체적 제시도 없었지만 약간 수미(愁眉)를 금할 수 없는가도 싶습니다. 예술적 기품 운운은 씨의 실언이오. 톨스토이나 국지관(菊池寛) 씨는 말하자면 영원한 대중 문예(문학이 아니라)에 지나지 않는 것을 깜빡 잊어버리신 듯합디다.

그리고 위독(危篤)에 대하여도ㅡ.

사실 나는 요새 그따위 시밖에 써지지 않는구려. 차라리 그래서 철저히 소설을 쓸 결심이오. 암만해도 나는 19세기와 20세기 틈사구니에 끼어 졸도하려 드는 무뢰한인 모양이오. 완전히 20세기 사람이 되기에는 내 혈관에 너무도 많은 19세기의 엄숙한 도덕성이 피가 위협하듯이 흐르고 있소그려.

이곳 34년대의 영웅들은 과연 추호의 오점도 없는 20세기 정신의 영웅들입디다. ドストエフスキ-는 그들에게는 오직 선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은 생리를 가지고 생리하면서 완벽하게 살으오.

그들은 이상(李箱)도 역시 20세기의 スポ-ツマン이거니 하고 오해하는 모양인데 나는 그들에게 낙망을(아니 환멸)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들과 만날 때 오직 20세기를 근근히 ポ-ズ를 써 유지해 보일 수 있을 따름이구려! 아! 이 마음의 아픈 갈등이어.

생(生)ㅡ 그 가운데만 오직 무한한 기쁨이 있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이미 ヌキサシナラヌ程 전락하고 만 자신을 굽어살피면서 생에 대한 용기, 호기심 이런 것이 날로 희박하여 가는 것을 자각하오.

이것은 참 제도(濟度)할 수 없는 비극이오! 개천(芥川)이나 목야(牧野) 같은 사람들이 맛보았을 성싶은 최후 한 찰나의 심경은 나 역(亦) 어느 순간 전광같이 짧게 그러나 참 똑똑하게 맛보는 것이 이즈음 한두 번이 아니오. 제전(帝展)도 보았소. 환멸이라기에는 너무나 참담한 일장(一場)의 ナンセンス입니다. 나는 악취에 질식할 것 같아 그만 코를 쥐고 뛰어나왔소. (중략)

오직 가령 자전(字典)을 만들어 냈다거나 일생을 철(鐵) 연구에 바쳤다거나 하는 사람들만이 エライヒト인가 싶소.

가끔 진짜 예술가들이 더러 있는 모양인데 이 생활 거세(去勢) 씨들은 당장에 ドロネズミ가 되어서 한 2, 3년 만에 노사(老死)하는 모양입디다.

기림 형

이 무슨 객쩍은 망설(妄說)을 늘어놓음이리오? 소생 동경 와서 신경 쇠약이 극도로 이르렀소! 게다가 몸이 이렇게 불편해서 그런 모양이오.

방학이 언제 될는지 그전에 편지 한 번 더 주기 바라오. 그리고 올 때는 도착 시각을 조사해서 전보 쳐 주우. 동경 역까지 도보로도 한 15분 20분이면 갈 수가 있소. 그리고 틈 있는 대로 편지 좀 자주 주기 바라오.

나는 이곳에서 외롭고 심히 가난하오. 오직 몇몇 장 편지가 겨우 이 가련한 인간의 명맥을 이어 주는 것이오. 당신에게는 건강을 비는 것이 역시 우습고 그럼 당신의 러브 어페어에 행운이 있기를 비오.

29일 배(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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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 형

궁금하구려! 내각(內殼)이 여러 번 변했는데 왜 편지하지 않소? 아하 요새 참 시험(試驗) 때로군그래! 머리를 긁적긁적하면서 답안 용지를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는 당신의 ガラニモナイ 풍채가 짐짓 보고 싶소그려!

허리라는 지방(地方)은 어떻게 평정 되었소? 병원 통근은 면했소? 당신은 スポ-ツ라는 초근대적인 정책에 マンマト 속아 넘어갔소. 이것이 이상(李箱) 씨의 기림 씨의 バレ-に進出す에 대한 비판이오.

오늘은 음력 섣달그믐이오. 향수(鄕愁)가 대두하오. ○라는 내지인(內地人) 대학생과 コ-ヒ를 먹고 온 길이오. コ-ヒ집에서 ラロ를 한 곡조 듣고 왔소. フ-ベルマン이라는 제금가(提琴家)는 참 너무나 탐미주의(耽美主義)입디다. 그저 한없이 キレイ하다 뿐이지 정서가 없소. 거기 비하면 エルマン은 참 놀라운 인물입디다. 같은 ラロ 더욱이 최종 악장 ロンド의 부(部)를 그저 막 헐어 내서는 완전히 딴것을 맨들어 버립디다.

エルマン은 내가 싫어나는 제금가였었는데 그의 꾸준히 지속되는 성가(聲價)의 원인을 이번 실연(實演)을 듣고 비로소 알았소. 소위 エルマントーン이란 무엇인지 사도(斯道)의 문외한 이상(李箱)으로서 알 길이 없으나 그의 セラブ적인 굵은 선은 그리고 분방한 デフオ-ルマション은 경탄할 만한 것입디다. 영국 사람인 줄 알았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까 역시 イミグラント입디다.

한화 휴제ㅡ 차차 마음이 즉 생각하는 것이 변해 가오. 역시 내가 고민하고 있던 것은 회피(回避)였나 보오. 흉리(胸裏)에 거래(去來)하는 잡다한 문제 때문에 극도의 불면증으로 고생 중이오. 2, 3일씩 이불을 쓰고 문외(門外) 불출(不出)하는 수도 있소. 자꾸 자신을 잃으면서도 양심 양심 이렇게 부르짖어도 보오. 비참한 일이오.

한화 휴제ㅡ 삼월에는 부디 만납시다. 나는 지금 참 쩔쩔매는 중이오. 생활보다도 대체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를 모르겠소. 논의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오. 만나서 결국 아무 이야기도 못하고 헤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저 만나기라도 합시다. 내가 서울을 떠날 때 생각한 것은 참 어림도 없는 도원몽(桃源夢)이었소. 이러다가는 정말 자살할 것 같소.

고향에는 모두들 베개를 나란히 하여 타안(惰眼)들을 계속하고 있는 꼴이오. 여기 와 보니 조선 청년들이란 참 한심합디다. 이거 참 썩은 새끼조차도 주위에는 없구려!

진보적인 청년도 몇 있기는 있소. 그러나 그들 역 늘 그저 무엇인지 부절히 겁을 내고 지내는 모양이 불민(不憫)하기 짝이 없습디다.

삼월쯤은 동경도 따뜻해지리라. 동경 들르오. 산보라도 합시다.

『조광(朝光)』 2월호의 「동해(童孩)」라는 열작(劣作) 보았소? 보았다면 게서 더 큰 불행은 없겠소. 등에서 땀이 펑펑 쏟아질 졸작(拙作)이오.

다시 ヤリナオシ를 할 작정이오. 그러기 위해서는 당분간 작품을 쓸 수 없을 것이오. 그야 「동해」도 작년 6월, 7월 경에 쓴 것이오. 그것을 가지고 지금의 나를 촌탁(忖度)하지 말기 바라오.

조곰 어른이 되었다고 자신하오. (중략)

망언(妄言) 망언. 엽서라도 주기 바라오.

음력 제야(除夜)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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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형

형의 글 반가이 읽었습니다. 저의 못난 여편네를 위하여 귀중한 하룻밤을 부인으로 하여금 허비하시게 하였다니 어떻게 감사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부인께도 이 말씀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형의 「명상(瞑想)」을 잘 읽었습니다 타기(唾棄)할 생활을 하고 있는 현재의 저로서 계발받은 바 많았습니다. 이것은 찬사가 아니라 감사입니다.

저에게 주신 형의 충고의 가지가지가 저의 골수에 맺혀 고마웠습니다. 돌아와서 인간으로서, 아니, 사람으로서의 옳은 도리를 가지고 선처하라 하신 말씀은 참 등에서 땀이 날 만치 제 가슴을 찔렀습니다.

저는 지금 사람 노릇을 못하고 있습니다. 계집은 가두(街頭)에다 방매(放賣)하고 부모로 하여금 기갈(飢渴)케 하고 있으니 어찌 족히 사람이라 일컬으리까. 그러나 저는 지식의 걸인은 아닙니다. 7개 국어 운운도 원래가 허풍이었습니다. 살아야겠어서, 다시 살아야겠어서 저는 여기를 왔습니다. 당분간은 모든 죄악을 의식적으로 묵살하는 도리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친구, 가정, 소주 , 그리고 치사스러운 의리 때문에 서울로 돌아가지 못하겠습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했으면 좋을 지를 전연 모르겠습니다. 저는 당분간 어떤 고난과라도 싸우면서 생각하는 생활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한 편의 작품을 못 쓰는 한이 있더라도, 아니, 말라비틀어져서 아사(餓死)하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지금의 자세를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도저히 '커피' 한 잔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조광』 2월호의 「동해」는 작년 6, 7월경에 쓴 냉한(冷汗) 삼곡(三斛)의 열작입니다. 그 작품을 가지고 지금의 이상(李箱)을 '촌탁'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과거를 돌아보니 회환뿐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속여 왔나 봅니다. 정직하게 살아왔거니 하던 제 생활이 지금 와 보니 비겁한 회피의 생활이었나 봅니다.

정직하게 살겠습니다. 고독과 싸우면서 오직 그것만을 생각하며 있습니다. 오늘은 음력으로 제야입니다. 빈자떡, 수정과, 약주, 너비아니, 이 모든 기갈(飢渴)의 향수(鄕愁)가 저를 못살게 굽니다. 생리적입니다. 이길 수가 없습니다.

가끔 글을 주시기 바랍니다. 고독합니다. 이곳에는 친구 삼을 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서울의 흙을 밟아 볼는지 아직은 망연합니다. 저는 건강치 못합니다. 건강하신 형이 부럽습니다. 그러면 과세(過歲) 안녕히 하십시오. 부인께도 인사 여쭈어 주시기 바랍니다.

우제(愚弟) 이상(李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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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동림이 편지로 비로소 네가 취직되었다는 소식 듣고 어찌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이곳에 와서 나는 하루도 마음이 편한 날이 없이 집안 걱정을 하여 왔다. 울화가 치미는 때는 너에게 불쾌한 편지도 썼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놓겠다. 불민한 형이다. 인자(人者)의 도리를 못 밟는 이 형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가정보다도 하여야 할 일이 있다. 아무쪼록 늙으신 어머님 아버님을 너의 정성으로 위로하여 드려라. 내 자세한 글, 너에게만은 부디 들려주고 싶은 자세한 말은 2, 3일 내로 다시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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