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덕천황실록/권01
日本文德天皇實錄券第一〈起嘉祥三年三月、盡六月。〉 |
일본문덕천황실록권제일. 〈가상 3년 3월부터 6월까지〉 |
右大臣正二位臣藤原朝臣基經等奉 勅撰 |
우대신 정2위 후지와라노 모토쓰네 등 명을 받들어 칙찬함 |
文徳天皇。諱道康。仁明天皇長子也。母藤原氏。贈太政大臣正一位冬嗣之女也。年十六。承和九年八月乙丑。立爲皇太子。 嘉祥三年三月己亥。仁明皇帝崩於清涼殿。于時皇太子下殿。御宜陽殿東庭休廬。左右大臣率諸卿及少納言左右近衞少將等。獻天子神璽寳劔符節鈴印等。須臾駕輦車。移御東宮雅院。陣列之儀。一同行幸。但無警蹕。 |
문덕천황(몬토쿠 천황)의 휘는 미치야스이며, 인명천황의 장자이다. 어머니는 후지와라씨이며, 태정대신과 정1위에 추증된 후유쓰구의 딸이다. 16세가 된 승화 9년 8월 을축에 황태자가 되었다. 가상 3년 3월 기해에, 인명천황이 청량전에서 붕어하였을 때 황태자는 궁궐에서 내려와 의양전 동쪽 뜰에서 쉬며 초가집에 어거하고 계셨다. 좌우대신이 여러 경들과 소납언, 좌우 근위소장 등을 이끌고 천자의 신새, 보검, 부절, 방울과 도장 등을 바쳤다. 곧 가마를 매어 동궁 아원으로 옮겼다. 여러 사람이 죽 늘어선 모양으로 함께 행행하였다. 다만 경호를 위해 민간의 통행을 금하지는 않았다. |
庚子。定縁葬諸司。中納言從三位源朝臣弘。權中納言橘朝臣峯繼。參議從四位下伴宿禰善男。散位從四位上源朝臣生。彈正大弼從四位下清原眞人長田。左中辨清原眞人岑成。左近衞少將從五位上良岑朝臣宗貞。大藏大輔藤原朝臣貞本。大外記外從五位下朝原宿禰良道等。六位以下四人。爲裝束司。中納言從三位源朝臣定。大藏卿平朝臣高棟。參議從四位上藤原朝臣助。散位從四位下正躬王。右京大夫從四位上源朝臣寛。從四位下木工頭興世朝臣書主。散位從五位下文室朝臣笠科。勘解由次官山代宿禰氏益等。六位已下四人。爲山作司。』後追以中納言從三位安倍朝臣安仁。散位從五位下藤原朝臣正岑。山口朝臣春方等。重補山作司。前丹波守從四位下滋野朝臣貞雄。宮内少輔從五位下橘朝臣伴雄等。六位已下三人。爲養役夫司。山城守從四位下茂世王。右京亮從五位上橘朝臣枝主等。六位一人。爲作路司。中納言從三位源朝臣弘爲前次第司長官。治部少輔從五位下藤原朝臣松影爲次官。以六位已下各二人。爲判官主典。』參議宮内卿從四位上滋野朝臣貞主爲後次第司長官。從五位下橘朝臣永範爲次官。判官主典同前。是日。遣散位從五位上高階眞人清上。從五位下藤原朝臣緒數等。率諸衞監護左右兵庫。令京畿七道擧哀成禮。限以三日。喪服之期。以日易月。式部省率百寮。於紫宸殿前擧哀。公卿及侍臣以下於東宮擧哀。 |
경자에 장례일을 맡아보는 관리를 정하였다, 중납언 종3위 미나모토노 히로무, 권중납언 다치바나노 미네쓰구, 참의 종4위하 도모노 요시오, 산위 종4위상 미나모토노 이케루, 탄정대필 종4위하 기요하라노 나가타, 좌중변 기요하라노 미네나리, 좌근위소장 종5위상 요시미네노 무네사다, 대장대보 후지와라노 사다모토, 대외기외 종5위하 등과 5위 이하 네 사람에게 장속의 일을 맡게 하였다. 중납언 종3위 미나모토노 사다무, 대장경 다이라노 다카무네, 참의 종4위하 후지와라노 다스쿠, 산위 종4위하 마사미오 왕, 우경대부 종4위상 미나모토노 히로시, 종4위하 목공부의 우두머리 오키요노 후미누시, 산위종5위하 훈야노 가사시나, 감해유차관 야마시로노 우지마스 등과 6위 이하 네 사람에게 산작의 일을 맡겼다. 후일에 더하여 중납언 종3위 아베노 야스히토, 산위 종5위하 후지와라노 마사미네, 야마구치노 하루에 등으로 하여금 산작의 일을 돕도록 하였다. 전 단바태수 종4위하 시게노노 사다오, 궁내 소보 종5위하 다치바나노 도모오 등, 6위 이하 세 사람에게 양역부의 일을 맡겼다. 야마시로 태수 종4위하 시게요 왕, 우경량 종5위상 다치바나노 하루나리와 6위의 한 사람에게 작로(치로)의 일을 맡게 했다. 중납언 종3위 미나모토노 히로무에게 차제의 전장관을 시켰으며 치부 소보 종5위하 후지와라노 마쓰카게에게 차관을 시켰다. 6위 이하 각 두 사람에게 판관과 주전을 맡겼다. 참의 궁내경 종4위상 시게노노 사다누시에게 차제의 후장관을 맡겼으며 종5위하 다치바나노 나가노리에게 차관을 맡겼다. 판관과 주전은 앞과 같다. 그 날, 산위 종5위상 다카시나노 기요카미, 종5위하 후지와라노 모로카즈 등이 병사를 이끌고 좌우 병거를 감호하였다. 수도 근처 7개 지역에 상례를 받들 것을 명하여 기한을 3일로 두어 상복을 입는 기간을 지정하였다. 그 기한이 지나 상복을 갈아입었다. 무부성이 백 명의 사람을 이끌고 자신전 앞에서 상을 지냈다. 공경과 시신 이하는 동궁에서 상을 지냈다. |
辛丑。東宮成服。公卿百寮從之。 |
신축일, 동궁에서 상복을 지었다. 공경 백료가 이를 따랐다. |
癸卯。葬仁明皇帝于深草山陵。送終之禮。皆從儉約。是奉遺詔也。 |
계묘일. 인명천황을 신소 산릉에 장사지냈다. 장례 예법을 진행하는 것에 있어 모두 검소한 방법을 따랐다. 이는 유조를 받든 것이다. |
甲辰。遣從四位下行民部大輔基兄王。外從五位下豐階公安人等。存問供御葬之諸大夫。先是。諸衞著甲。以備非常。今日脱却。各從常儀。 |
갑진일. 종4위하 민부대보 모토에 왕, 외 종5위하 도요시나노 야스히토 공 등을 보내어 장례일을 모시고 있는 제대부를 살폈다. 이에 앞서, 호위병사들이 모두 갑옷을 갖추어 입고 만일에 대비하였다. 오늘에 이를 벗고 각자 평소처럼 하였다. |
乙巳。晏駕之後。初盈七日。仍遣使於近隣七箇寺。以修功徳。右近衞少將兼土左守從五位下小野朝臣千株。及〔内舍人一人。〕内竪十人。爲紀伊寺使。正四位下行大舍人頭兼越前權守高枝王。侍從從五位上嶋江王。刑部大輔正五位下藤原朝臣行道。内舍人一人。内竪十人。爲寳皇寺使。從四位上行加賀守正行王。中務大輔從五位上並山王。散位從五位下藤原朝臣正岑。駿河守丹墀眞人貞岑。爲來定寺使。從四位下行大學頭時宗王。從五位下正親正善永王。刑部少輔藤原朝臣關雄。爲拜志寺使。從三位行大藏卿平朝臣高棟。散位從四位下世宗王。從五位下永直王。内舍人一人。内竪十人。爲深草寺使。散位從四位下基棟王。從五位下安原王。大原眞人宗吉。橘朝臣三夏等。内舍人一人。内竪十人。爲眞木尾寺使。散位從四位下道野王。從五位下高原王。大判事藤原朝臣本雄。加賀介良岑朝臣清風。内舍人一人。内竪十人。爲檜尾寺使。』是日。嵯峨山陵。暴風雷雨。樹木倒仆。遣中納言從三位安倍朝臣安仁。就加察視。公卿奏言。施事天下。猶稱令旨。在於視聽有所疑。請禀天旨。改令代勅。未之許焉。 |
을사일. 인명천황이 붕어한 날로부터 7일이 되었다. 이에 가까운 일곱 절에 사람을 보내어 공덕을 닦게 하였다. 우근위소장 겸 토사 태수 종5위하 오노노 지카부와 납수의 열 사람이 기이사에 보내졌다. 정4위하 대사인의 우두머리 겸 에치젠의 권수 다카에 왕과 시종 종5위상 시마에 왕, 형부대보 정5위하 후지와라노 유키미치와 내사인의 한 사람, 납수의 열 사람이 보황사에 보내졌다. 종4위상 가가 태수 마사유키 왕, 중무대보 종5위상 나미야마 왕, 산위 종5위하 후지와라노 마사미네, 스루가의 태수 다지이노 사다미네를 내정사에 보내었다. 종4위하 대학의 우두머리인 시종왕, 종5위하 정친 정 선영왕, 형부소보 후지와라노 세키오를 배지사에 보내었다. 종3위 대장경 다이라노 다카무네, 산위 종4위하 세종왕, 종5위하 나가나오 왕, 내사인 한 사람, 납수 열 사람이 심초사에 보내졌다. 산위 종4위하 모토무네 왕, 종5위하 야스하라 왕, 오오하라노 소키치, 다치바나노 미나쓰 등, 내사인 한 사람, 납수 열 사람이 진목미사에 보내졌다. 산위종4위하 미치노 왕, 종5위하 다카하라 왕, 대판사 후지와라노 모토오, 가가의 介 요시미네노 기요카제, 내사인 한 사람 납수 열 사람이 회미사에 보내졌다. 그 날 산릉이 험하고 폭풍우에 천둥이 쳐 나무들이 쓰러졌다. 중납언 종3위 아베노 야스히토를 보내어 시찰하게 하였다. 공경이 아뢰기를, “천하에 일을 시행할 때 황태자의 명으로 칭하니, (사람들이) 보고 들은 것이 있기에 의심하는 바가 있습니다. 청컨대 천자의 명을 받아 ‘령’을 ‘칙’으로 고치고자 합니다.”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
丙午。左近衞少將從五位上良岑朝臣宗貞。出家爲僧。宗貞。先皇之寵臣也。先皇崩後。哀慕無已。自歸佛理。以求報恩。時人愍焉。 |
병오일. 좌근위소장 종5위상 요시미네노 무네사다가 출가하여 중이 되었다. 무네사다는 선황의 총신이다. 선황께서 붕어하신 후, 슬퍼하고 사모함이 끝이 없었다. 불도에 귀의함으로 보은을 구하니, 당시 사람들이 그를 불쌍히 여겼다. |
夏四月己酉。公卿上啓曰。竊以。萬物不能自化。資大匠以陶鈞。億兆不能自治。頼元首之司牧。一時曠位。則九服所以徊徨。一日無政。則萬機由其擁塞。是以姫王纉統。戴冕宅憂之初。漢帝乘乾。正位殂落之夕。通行不滯。爲萬代之舟車。觀望相依。百王之戸牖者也。大行聖帝。明齊日月。道括乾坤。崇徳叶於笙鏞。體政存於爼豆。三五六經。本慙聲教。遂攬乃昔以來禮典舊章。察其利病之端。參於方今之代。遺制云。皇太子可於柩前即皇帝位。一依周漢故事。伏惟殿下。深仁植性。純孝因心。寢門問竪。竭愛敬之誠。馳道申虔。盡温恭之禮。臣子之道克宣。天人之望允集。宜肅奉聖旨。屬茲時來。居南面之尊高。應北辰之大寳。而偏纒罔極之至哀。不忍割情以就禮。渉旬踰月。以至今日。臣等顒々。深所未達。况乎先帝已有遺勅。孝善述父志。何得拘匹夫之情孝。缺萬乘之典章。謹案。春秋例。人君即位有四。初喪即位一也。既葬即位二也。踰年即位三也。三年諒闇終即位四也。殿下已在初喪而忘制。宜追既葬而示儀。上承七廟之靈。下定萬民之望。臣等自負舊恩於丘山。思致新主於尭舜。不任悾款之至。謹奉啓以勸進。令曰。雖有遺詔。既踰旬月。况亦陵土未乾。不忍即正。不聽。 |
4월 여름 기유, 공경이 아뢰었다. “삼가 생각하건대 만물이 스스로 생겨나지 않아 장인으로 하여금 기와를 만들게 하여 이를 얻고 억조의 백성이 스스로를 다스릴 수 없어 임금이 되어 사목할 것을 의뢰합니다. 잠시 제위가 공석이 되면 각 지방이 어지러워 혼란해지며 하루 다스려지지 않으면 즉 정무가 이에 막혀버립니다. 이에 주나라의 성왕이 왕통을 이어받은 것은 상중 첫날에 즉위한 것이며 한나라의 무제는 즉위하여 그 선제가 붕어한 날의 저녁에 위계를 바로잡았습니다. 통행이 막히지 않아 만대의 방편이 되었으니, 바라보고 서로 의존하며 백왕의 문과 창문입니다. 선제께서 세월을 밝게 다스리셨으며 그 이치는 하늘과 땅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덕이 높아 생황, 쇠북과 서로 조화하였으며 정치의 규범은 제기에 남아 있습니다. 72명의 성군이 또 누구겠습니까. 삼황오제의 여섯 책이 처음에는 그 가르침이 부끄러울 정도였으나 마침내 옛날로부터 내려온 예전과 구장을 갖추어 이로움과 해로움의 정도를 살피게 되어 지금에도 간여하고 있습니다. 내려온 제도에 따르면. 황태자는 널관 앞에서 제위에 오르니, 주나라와 한나라의 고사에 의한 것입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전하께서는 깊이 인자하시고 성품이 곧으시며 순수한 효심으로 마음을 쓰시어 선황의 안부를 문 아래에서 시종에게 여쭈어 보셨으며 사랑과 공경의 정성을 다하시고 거듭 어버이를 공경하셨으며, 온화하고 공손한 예를 다하셨습니다. 신하되고 아들되는 도리를 능히 시행하시니, 도가 있는 사람이 바라 이룬 바입니다. 마땅히 엄숙히 성지를 받들어 이 때를 거느리시고 남면하는 존귀함에 거처하시며, 북진의 대보(=제위)에 응하시고, 크나크고 지극한 슬픔을 휘어잡으시되 정성을 해치는 것에 대해서는 참지 마시고 예로 나아가십시오. 열흘이 지났고, 달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신하들 안절부절못하여 깊은 바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선제께서 이미 남기신 명령이 있습니다. 효라는 것은 아버지의 뜻을 잘 술작하는 것이니, 어찌 필부의 정과 효에 얽매이고 황제의 전범을 이지러지게 하는 것을 바라겠습니까. 삼가 생각하건대 춘추 전고에 임금이 즉위하는 것에 네 가지가 있다고 하니, 붕어 후 바로 즉위하는 것이 하나이며, 장례를 이미 치르고 나서 즉위하는 것이 둘째이며, 해를 넘겨 즉위하는 것이 셋째이며, 삼년상을 살펴 끝낸 후에 즉위하는 것이 넷째입니다. 전하께서 선황의 붕어 후 바로 즉위하는 제도를 잊으셨으니 마땅히 장례를 지내고 나서 즉위하는 전범을 따르는 모습을 보이셔야 합니다. 위로는 일곱 종묘를 이어받고, 아래로는 만백성의 바람을 다스리십시오. 신하들, 구산에서의 옛 은혜를 자부하며 생각이 요순으로부터 새로운 임금께 이르렀습니다. 해가 되는 지경의 정성에 임하지 마시옵소서. 권진하여 삼가 올립니다.” (천황이 말씀하시기를) “비록 유훈이 있으나, 이미 열흘이 지났고 달이 바뀌었다. 하물며 또한 아직 능의 흙도 마르지 않았다. 즉위할 수 없다.”라 하고 듣지 않으셨다. |
從五位下源朝臣愜。從五位下橘朝臣信蔭等爲侍從。從五位下御春朝臣眞濱爲近江權介。從五位下清原眞人秋雄爲但馬介。左兵衞佐如故。從五位下紀朝臣最弟爲因幡權介。右兵衞佐如故。從五位下橘朝臣常蔭爲讃岐權介。正五位下橘朝臣眞直爲阿波守。從五位下坂上大宿禰貞守爲左近衞少將。從五位下小野朝臣千株爲右近衞少將。從五位下源朝臣興爲左兵衞權佐。從五位上藤原朝臣良仁爲右兵衞權佐。 |
종5위하 源愜, 종5위하 다치바나노 노부카게 등이 시종이 되었고, 종5위하 미하루노 마시하마가 고노에 권개가 되었다, 정5위하 기요하라노 아키오가 다지마의 介가 되었다. 좌병위좌는 옛날과 같이 하였다. 종5위하 기노 이야오토가 이나바의 권개가 되었다. 우병위좌는 옛날과 같이 하였다. 종5위하 다치바나노 쓰네카게가 사누키의 권개가 되었다. 정5위하 다치바나노 마사오가 아와의 태수가 되었다. 종5위하 사카노우에노 사다모리가 좌근위소장이 되었다. 종5위하 오노노 지카부가 우근위소장이 되었다. 종5위하 미나모토노 오키모토가 좌병위권좌가 되었다. 종5위상 후지와라노 요시히토가 우병위권좌가 되었다. |
大宰帥三品葛井親王薨。親王。桓武天皇第十二子也。母大納言贈正二位坂上大宿禰田村麻呂之女。從四位下春子也。親王幼而機警。年六歳。勅賜帶劔。弘仁十年賜爵四品。拜兵部卿。天長三年爲上野太守。承和七年爲常陸太守。八年進爵三品。親王頗善射藝。有外家大納言之遺風。嘗嵯峨天皇御豐樂院。以觀射禮。畢後勅諸親王及群臣。各以次射。親王時年十二。天皇戯語親王曰。弟雖少弱。當執弓矢。親王應詔而起。再發再中。時外祖父田村麻呂亦侍坐。驚動喜躍。不能自已。即便起座抱親王而舞。進曰。臣甞將數十萬之衆。征討東夷。實頼天威。所向無敵。自料。勇略兵術多所不究。今親王年在齠齔。武伎如此。愚臣非所能及。天皇大咲曰。將軍褒揚外孫。何甚過多。親王耽愛聲樂。殊翫絲管。晩年好酒。志在讌樂。累日連夜。嘉祥三年爲大宰帥。薨時年五十一。朝廷因循舊典。遣監喪使等。親王有子廿餘人。 |
대재수 삼품 후지이 친왕이 훙거했다. 친왕은 환무천황의 열두번째 아이이다. 어머니는 대납언 추증 정2위인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의 딸인 종4위하 하루코이다. 친왕은 어려서 재치가 날래고 빼어났다. 여섯 살 때, 검을 차고 다닐 것을 허락받았다. 홍인 10년, 4품에 올랐다. 병부경의 벼슬을 받았다. 천장 3년 우에노의 태수가 되었다. 승화 7년 히타치의 태수가 되었다. 승화 8년에는 3품에 올랐다. 친왕은 활쏘기를 상당히 잘하였는데, 외가의 유풍이다. 일찍이 차아천황이 풍락원에서 활솜씨를 친람하셨다. 끝난 후에 친왕과 여러 신하들에게 칙서를 내리시어 각자 차례로 활을 쏘게 하였다. 친왕의 나이가 12세였을 때였다. 천황께서 웃으며 말씀하셨다. “내 동생이 비록 약소하나 활과 화살을 집어들어 조칙에 응해 일어나 활을 다시 쏘면 다시 맞는구나.” 그 때 외할아버지인 다무라마로 또한 임금을 옆에서 모셨는데, 기뻐하여 춤추는 것을 참지 못했다. 그리고 곧 자리에서 일어나 친왕을 안고는 춤추었다. 다무라마로가 천황 앞에 나아가 아뢰기를 “신 일찍이 수십만의 무리를 이끌고 동쪽 오랑캐(=에조)를 정벌하였습니다. 실로 하늘의 위엄에 힘입어 가는 곳마다 대적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스스로 헤아려 보면 (저의) 용맹과 병사를 다루는 술법, 책략이 연구를 하지 않은 바가 많습니다. 지금 친왕의 나이가 어리나. 무예와 재간이 이와 같습니다. 신은 이에 미치지 못합니다.” 라 하였다. 천황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장군이 외손자를 칭찬하는 것이 심히 과다하구나.” 친왕은 성악을 깊이 좋아했으며, 거문고와 피리를 빼어나게 연주하였다. 만년에는 술을 좋아하여, 뜻을 잔치를 벌이는 것에 두어 날마다 밤마다 연이어 취하여 피로를 잊었다. 가상 3년 대재수가 되었다. 51세에 훙거하였다. 조정 구전을 따라 감상사 등을 보내었다. 친왕은 자식 이십 여 명을 두었다. |
是日。公卿僉議定先皇七七日御齋會司。中納言從三位源朝臣弘。參議宮内卿從四位上滋野朝臣貞主。參議右大辨從四位上藤原朝臣良相。參議從四位下式部大輔伴宿禰善男。散位從四位上源朝臣生。從四位下木工頭興世朝臣書主。右少辨從五位上橘朝臣海雄。散位從五位下藤原朝臣菅雄等。六位已下三人。爲御齋會行事。圖書頭從五位下橘朝臣高成。左衞門佐從五位下紀朝臣道茂等。六位一人。爲造佛司。左京大夫從四位上正行王。雅樂頭從五位下藤原朝臣貞敏。侍從從五位下橘朝臣信蔭等。六位已下四人。爲莊嚴堂司。彈正大弼從四位下清原眞人長田。治部大輔從五位上坂上大宿禰正野。散位從五位上丹墀眞人門成等。六位已下三人。爲供僧司。 |
그 날, 공경들이 의논하여 선황의 49재를 맡을 사람을 정하였다. 중납언 종3위 미나모토노 히로무, 참의 궁내경 종4위상 시게노노 사다누시, 참의 우대변 종4위상 후지와라노 요시미, 참의 종4위하 무부대보 도모노 요시오, 산위 종4위상 미나모토노 이케루, 종4위하 목공부의 수장 오키요노 후미누시, 우소변 종5위상 다치바나노 아마오, 산위 종5위하 후지와라노 스가오 등과 6위 이하 세 사람이 49재를 주관하였다. 도서부의 수장 종5위하 다치바나노 다카나리, 죄위문좌 종5위하 기노 미치시게 등과 6위 한 사람이 부처의 소상을 만드는 일을 맡았다. 좌경대부 종4위상 마사유키 왕, 아악부의 수장 종5위하 후지와라노 사다토시, 시종 종5위하 다치바나노 노부카게 등과 6위 이하의 네 사람이 사당을 정비하는 일을 맡았다. 탄정대필 종4위하 기요하라노 나가타, 치부대보 종5위상 사카노우에노 마사노, 산위 종5위상 다지이노 가도나리 등 6위 이하 세 사람이 중을 모시는 일을 맡았다. |
庚戌。公卿重上啓曰。臣等先已上啓。具陳勸進之誠。而殿下至孝爲性。不忍割情。久曠萬機。經引數月。雖云禮制。亦有權時。請擇吉辰。早正其位。以順兆人之望。以固萬國之基。令曰。卿等上啓。驟輸中誠。事縁遺詔。義歸權奪。今不獲已。俯依來啓。 |
경술일에 신하들이 다시 아뢰어 말하였다. “신하들 이전에 이미 즉위할 것을 권하는 정성을 진술하여, 전하께서 지극한 효행과 성품을 행하시되, 정성을 해치는 것에 대해 참지 말 것을 아뢰었습니다. 천하의 정치가 오랫동안 비어 있어 몇 달이나 목을 빼고 전하께서 즉위할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비록 예법에 의한다 해도, 또한 변화에 응하여 예법을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청컨대 길한 날을 택하여 빨리 그 자리에 오르시어 백성들의 바람에 따르시고 만국의 기초를 튼튼히 하십시오.” 명령하여 말씀하셨다. “경들이 말한 것이 거듭하여 여러 차례다. 일을 유조에 말미암으려 하여 뜻을 상복을 벗게 함으로 돌리려 하니, 지금 내 뜻을 얻을 수 없을 뿐이다. 말한 것에 따르겠다. |
辛亥。爲除凶服。先遣大中臣氏人於五畿内七道諸國。以修大祓。 |
신해일에 상복을 치우게 하였다. 먼저 오오나카토미씨를 오기칠도에 보내어 부정을 없애는 의식을 하게 하였다. |
壬子。遣使於七箇寺。修二七日御齋會。毎寺公卿大夫并内舍人内竪等一兩人。 |
임자일에 사람을 일곱 개 절에 보내어 이칠일의 제사를 준비하게 하였다. 매 절마다 공경 대부들이 내사인과 납수 등을 거느렸다. |
癸丑。地震。』帝公除。百官吉服。大祓於朱雀門前。』有魚虎鳥。飛鳴於東宮樹間。何以書之。記異也。 |
계축일에 땅이 흔들렸다. 천황이 상복을 벗었다. 백관도 상복을 벗었다. 주작문 앞에서 크게 푸닥거리를 하였다. 물총새가 나타나 동궁의 숲 속에서 날며 울었다. 어찌하여 이를 기록하였냐 하면 기이한 일을 기록한 것이다. |
乙卯。大雷雨。諸衞警陣。賜陣頭侍從及衞士以上祿。各有差。 |
을묘일에 크게 뇌우가 왔다. 호위병사들이 경계하고 진을 쳤다. 진두의 시종들과 무사들에게 상록을 내렸는데, 각자 차등을 두었다. |
戊午。帝自雅院。移御中殿。』勅賜中納言從三位源朝臣定帶劔。先皇賜之。今依舊賜之。 |
무오일에 천황께서 아원에서 중전으로 옮기셨다. 중납언 종3위 미나모토노 사다무에게 검을 찰 수 있는 권리를 내리셨다. 선황이 내리신 것을 지금에 따라 내린 것이다. |
己未。遣使於七箇佛寺。修三七日御齋會。如前日儀。 |
기미일에 일곱 개의 절에 사람을 보내어 삼칠일의 의식을 준비하게 하였다. 이전과 그 내용은 같다. |
辛酉。遣左近衞將曹粟田眞持於深草陵。列栽樹木。間以一丈。相襲成行。 |
신유일에 좌근위소조 粟田眞持를 신소릉에 보내어 나무를 심었는데 그 간격을 한 장으로 하여 나란히 심었다. |
壬戌。地震。』飛騨國講師傳燈滿位僧徳嚴上奏。諸國國分二寺。安居修行。爲國誓念。而此國舊來不修此法。論之佛理。可謂闕如。請准諸國。毎年薫修。許之。 |
임술일에 땅이 흔들렸다. 히다의 전등만위(승려의 위계 중 하나) 엄계가 아뢰었다. “여러 국에 국분사들을 설치하시어 편안함에 거처하며 수행할 수 있게 하십시오. 나라를 위하여 맹세하건대, 이 나라에 불법이 이전에 전해졌으나 닦이지 않았으니, 불법을 논함이 결여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청컨대 여러 국에 절의 건립을 허락하시어 매년 수행할 수 있게 하십시오.” 이를 허락하였다. |
癸亥。遣權中納言橘朝臣岑繼。告深草山陵。以即位之由。其策文曰。掛畏〈支〉天皇朝廷〈爾〉。恐〈見〉恐〈見毛〉申賜〈久〉。遣〈多萬倍留〉詔〈乃〉隨〈爾〉。天日嗣〈爾〉仕奉〈倍支〉状〈乎〉。公卿等屡勸請〈天〉。而日月〈毛〉近〈久〉。心神〈毛〉哀迷〈爾〉依〈弖〉。不堪〈流〉状再〈比〉三〈比〉懼〈利〉辭〈止毛〉。御命旨〈止〉言〈弖〉固勸強〈禮波〉。己志〈爾波〉從〈己止〉不得。故是以。大御坐處〈乎〉掃潔侍〈弖〉。天之日嗣〈乎〉戴荷〈知〉、守供奉〈倍支〉事〈乎〉。恐〈見〉恐〈見毛〉申賜〈久止〉奏。又申〈久〉。掛畏〈支〉天皇朝廷〈乃〉矜賜〈牟〉厚慈〈乎〉蒙戴〈弖之〉。天之日嗣〈乃〉政〈者〉平〈久〉。天地日月〈止〉共〈爾〉、守仕奉〈倍之止〉思食事〈乎〉。恐〈見〉恐〈見毛〉申賜〈久止〉奏。 |
계해일에 권중납언 다치바나노 미네쓰구를 신소산릉에서 즉위의 이유를 고하게 하였다. 그 책명에는 《“입 밖에 내어 말하기도 황송한 천황폐하께 황공하게도 아뢸 것은, 남기신 조칙대로 태자를 섬겨 받들겠다는 모습을 공경들이 여러 차례 거듭하여 말하였으며, 해와 달, 가까운 신령들도 슬픔과 고민에 의해 그치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를 두 차례 세 차례 두려워하며 거절하였으나, 그 칙령으로 말하고 권하니 마음에는 좇는 바를 얻지 못하고 이에 제위를 불제하고 그 정통을 이어받아 지켜 받들 것을 말씀하심을 삼가 아뢰며, 또 아뢸 것은 입 밖에 내어 말하기도 황송한 폐하의 긍지인 두터운 은택을 받들어, 그 후계의 정사는 평정된 것이니, 해와 달과 함께 지키고 받들어 모시겠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삼가 말씀하신 것을 아뢰옵니다. 》 라 하였다. |
甲子。帝即位於大極殿。其日晨旦快雨。百官以雨日儀從事。至日中時天晴。策命曰。明神〈止〉大八洲國所知天皇詔旨〈良萬止〉宣勅。親王諸王諸臣百官人等、天下公民衆聞食〈止〉宣。掛畏〈支〉平安宮〈爾〉御宇〈之〉倭根子天皇。我皇此天日嗣高座之業〈乎〉。掛畏近江大津〈乃〉宮〈爾〉御宇〈之〉天皇〈乃〉初賜〈比〉定賜〈倍留〉法隨〈爾〉。仕奉〈止〉仰賜授賜〈比之〉大命〈乎〉。受賜〈利〉恐〈美〉受賜〈利〉懼〈利〉。進〈母〉不知〈爾〉退〈母〉不知〈爾〉。恐〈美〉坐〈久止〉宣天皇勅、衆聞食〈止〉宣。然皇〈止〉坐〈天〉、天下治賜君〈波〉。賢人〈乃〉良佐〈乎〉得〈天之〉。天下〈乎波〉平〈久〉安〈久〉治物〈爾〉在〈止奈毛〉聞行〈須〉。故是以大命坐宣〈久〉。朕雖拙劣。親王等始〈天〉。王等臣等〈乃〉相穴〈奈比〉奉〈利〉。相扶奉〈牟〉事依〈天之〉。此〈乃〉仰賜〈比〉授賜〈倍留〉食國〈乃〉天下之政〈波〉平〈久〉安〈久〉仕奉〈倍之止奈毛〉所念行。是以以正直之心〈天〉。天皇朝庭〈乎〉衆助仕奉〈止〉宣天皇勅、衆聞食〈止〉宣。辭別宣〈久〉。凡人子〈乃〉蒙福〈萬久〉欲爲〈留〉事〈波〉。於夜〈乃〉多米〈爾止〉奈母聞行〈須〉。故是以。朕親母藤原氏〈乎〉、皇太夫人〈爾〉上奉〈利〉治奉〈流〉。又仕奉人等中〈爾〉其仕奉状隨〈爾〉冠位上賜〈比〉治賜〈布〉。又太神宮〈乎〉始〈天〉。諸社〈乃〉禰宜祝等〈爾〉給位一階。又僧綱〈乎〉始〈天〉。諸寺智行有聞〈流〉、并天下僧尼〈乃〉年八十已上〈爾〉、施物〈太萬不〉。又左右京五畿内〈乃〉鰥寡孤獨不能自存者。及天下給侍〈留〉人等〈爾〉、給御物〈布〉。力田之輩〈乃〉、超衆者〈爾〉、賜爵一階。又諸國言上承和九年以往租税未納者。先帝御坐〈之〉時〈爾〉、免給〈倍止〉勅〈支〉。今天皇〈我〉御意〈止〉爲〈天〉。去年以往未納〈毛〉、復盡免給〈波久止〉勅天皇御命〈乎〉衆聞食〈止〉宣。 |
갑자일에 대극전에서 즉위하였다. 그 날 아침에 상쾌하게 비가 내려, 백관이 해가 개고 나서 행사를 하였다. 책명에 이르기를 - 《신명과 오오야시마를 다스리시는 폐하의 명령과 말씀을, (이 태자,) 친왕들과 여러 왕들, 여러 신하들과 관리들, 천하의 공민들에게서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입에 담기에도 황공한 평안궁에서 천하를 다스리신 폐하, 우리 천황이시여. 이 태자, 황업을 황공하게도 대진궁에서 천하를 다스리신 천황께서 처음 정하신 법도대로 받드는 것을 황공하게도 물려받았으나, 나아갈 줄도 물러남도 몰랐습니다. 천황의 칙어를 여러 차례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천황의 자리에 올라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서는 현명한 사람의 도움을 얻어서, 천하를 평안하게 하고 편안하게 하는 것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에 명령을 내렸습니다. 비록 짐이 모자라나, 친왕 등을 처음으로 하고, 왕들과 신하들과 서로 받들고 도우리라는 것에 의하여 내려주신 천하의 정치는 평안히 받들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에 곧은 마음으로 천황의 조정을 거듭 받들겠습니다. 별도로, 무릇 사람이 복을 받기를 원하니, (태자가) 원하는 것은 부모를 위하는 것이니, 고로 짐의 친모인 후지와라씨를, 황태부인으로 받들고, 또 받들어 모시는 사람들 중에 그 받들어 모시는 모습에 따라 관위를 올려 주며 또 대신궁을 열어 네기와 하후리에 위계를 주며 또 중들을 처음으로 여러 절들에서 수행하는, 유명한 중들 또 천하의 중들 중 나이가 80 이상인 자들에게 물건을 내리며 또 좌우경 오기 내의의 홀아비, 과부, 고아,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과 천하의 시종들에게 물건을 내리며 생업에 힘쓰는 것이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자에게 위계를 주며 또 여러 국에서 아뢰어 승화 9년 이래 조세를 내지 않은 자를 선제께서 다스리실 때에 사면한다고 말씀하셨으니, 지금 천황의 뜻으로 하여 지난날에 세금을 내지 않은 자들을 모두 사면합니다.》 라 하였다. |
授從二位源朝臣常正二位。正三位源朝臣信從二位。從三位源朝臣定。安倍朝臣安仁等正三位。從四位上滋野朝臣貞主。藤原朝臣助。藤原朝臣長良。小野朝臣篁。藤原朝臣良相等正四位下。從四位下伴宿禰善男從四位上。无位雄風王。利基王等從四位下。從四位上坂上大宿禰淨野正四位下。從四位下清原眞人瀧雄從四位上。正五位上伴宿禰成益。正五位下春澄宿禰善繩等從四位下。從五位上藤原朝臣良仁正五位上。從五位上藤原朝臣高房。從五位下菅原朝臣是善等正 五位下。從五位下鎌倉王。藤原朝臣春岡。文室眞人助雄。良岑朝臣長松。藤原朝臣關主。橘朝臣清蔭。佐伯宿禰屋代。外從五位下豐階公安人等從五位上。外從五位下都宿禰貞繼。三統宿禰眞淨。正六位上在原朝臣善淵。大原眞人眞室。小野朝臣貞樹。橘朝臣休蔭。齋部宿禰伴主。安倍朝臣有道。從六位上藤原朝臣諸藤等從五位下。正六位上廣宗宿禰平麻呂。榎井朝臣嶋長。家原宿禰氏主等外從五位下。 |
종2위 미나모토노 도키와에게 정2위를, 정3위 미나모토노 마코토에게 종2위를, 종3위 미나모토노 사다무, 아베노 야스히토에게 정3위를, 종4위상 시게노노 사다누시, 후지와라노 다스쿠, 후지와라노 나가요시, 오노노 다카무라, 후지와라노 요시미에게 정4위하를, 종4위하인 도모노 요시오에게 정4위상을, 위계가 없는 오카제 왕과 도시모토 왕에게 종4위하를, 종4위상인 사카우에노 기요노에게 정4위하를, 종4위하인 기요하라노 다키오에게 종4위상을, 정5위상인 도모노 나리마스, 정5위하인 하루스미노 요시타다에게 종4위하를, 종5위상인 후지와라노 요시히토에게 종5위상을, 종5위상인 후지와라노 다카후사, 종5위하인 스가와라노 고레요시 등에게 정5위하를, 종5위하인 가마쿠라 왕, 후지와라노 하루오카, 훈야노 스케오, 요시미네노 나가마쓰, 후지와라노 세키누시, 다치바나노 기요카게, 사에키 야시로, 외종5위하 도요시나노 야스히토를 정5위상에, 외종5위하 미야코노 사다쓰구, 미뭬노 마키요, 정6위상 아리와라노 요시후치, 오오하라노 마무로, 오노노 사다키, 다치바나노 요시카게, 인베노 도모누시, 아베노 아리미치, 종6위상 후지와라노 모로후지에게 종5위하를, 정6위상인 히로무네노 다이라마로, 에나이노 시마나가, 이에하라노 우지누시 등에게 외종5위하를 주었다. |
乙丑。遣使解諸關警。是日。宣詔内外云。易月之制。雖據舊章。臣子之道。須存心喪。宜仰有司。朞年之内。禁宴飮作樂。及著美服。』先是。深草陵卒堵婆所藏陀羅尼。自發落地。遣參議伴宿禰善男。就加安置。 |
을축일에, 사람을 보내어 여러 관청의 경계를 풀게 하였다. 그 날에, 내외에 조칙을 내리시기를 “역월지제가 비록 옛 문장에서 근거한 것이나 신하되고 자식된 도리는 모름지기 삼년상이 끝난다 해도 마음 속에는 상복을 입으니, 응당 유지를 받들어 기년 내에는 음주가무와 아름다운 옷을 입는 것을 금한다.”라 하였다. 이에 앞서, 신소 산릉의 탑에 소장된 다라니경이 저절로 땅에 떨어져, 참의 도모노 요시오를 보내어 안치하게 하였다. |
丙寅。遣使於七箇佛寺。修四七日御齋會。如前日儀。』固近江國關使從四位下右中辨藤原朝臣氏宗歸奏奉契。 |
병인일에 일곱 개 절에 사람을 보내어 사칠일의 재회를 준비하게 하였다. 이전과 그 내용은 같다. 고노에 고관사 중4위하 우중변 후지와라노 우지무네가 돌아와 아뢰고 규약을 받들었다. |
戊辰。固伊勢國關使右衞門權佐從五位上藤原朝臣春岡。固美濃國關使散位從五位下藤原朝臣菅雄等歸奏奉契。 |
무진일에 이세 고관사 우위문권좌 종5위상 후지와라노 하루오카, 미노노 고관사 산위 종5위하 후지와라노 스가오 등이 돌아와 아뢰고 규약을 받들었다. |
己巳。六衞解嚴。』皇太夫人移御東五條院。警蹕威儀。一擬乘輿。詔遣左右近衞少將將監番長各一人。近衞各九人。左右兵衞尉志番長各一人。兵衞各十九人。分陣院下。以備宿衞。』詔佐渡國。放還配流罪人金剌福貴滿。 |
기사일에 육위가 그 경계를 풀었다. 황태부인의 거처를 동오조원으로 옮겼다. 경필의 계율을 승여에 준하여 조서를 내리시어 좌우 근위소장, 장감, 번장 각 한 사람, 근위 각 아홉 사람, 좌우 병위, 위지, 번장 각 한사람, 근위 각 열아홉 사람이 동오조원 아래에 진을 나누어 이에 숙위를 보강하였다. 사도 국에 조서를 내리시어 귀양간 죄인 후키마로를 돌려보내라 하였다. |
庚午。前春宮職印一枚、獻于内裏。 |
경오일에 전 춘궁의 직인 한 장이 내리에 바쳐졌다. |
辛未。太政官重宣今月十七日詔旨。頒下京畿諸國云。今案詔旨。去年已往言上租税未納、悉可免除。宜命官長、分明捜検。見在民身。即從免除。又雖非別録申官。所司文簿載未納之由者。亦同言上之例。若後日遣使巡検。國郡司并預事人等徴取訖。隱爲未進。及稱不言上之色。欺責頑民者。必處重科。並膀示路頭。普令知見。但地子未納。不在免限。自餘事條、准天長十年例。 |
신미일에 태정관에서 이번 달 17일(갑자)의 조지를 재차 선포하여 경기와 여러 국들에 반하되기를, “지금 조서를 생각해 보기에 지난 해에 이미 아뢴 조세의 미납이 실로 가히 면제할 만 하다. 장관에게 명하여 분명히 수검하게 하여 백성을 살펴 즉 면제해 주게 하고 또 비록 별도의 문서를 관에 제출하지 않았다 해도 소사가 장부를 미납의 이유를 검토하게 하여라. 또한 상주의 법식과 같이 하고 만일 후일에 사람을 보내 순감하게 하여 국과 군의 사들에게 일을 맡겨서 사람들에게 물건을 징수하고는 몰래 진헌하지 않았다면 고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여 그 완민을 속인 자를 반드시 중벌에 처하게 하라. 도로에 게시하여, 명령을 환발해 사람들에게 알려라. 다만 땅이 있는 사람이 세금을 내지 않으면 그 면제가 없다. 기타 조항은 천장 10년의 예에 준하여 한다.” 라 하였다. |
壬申。正五位上藤原朝臣良仁爲中宮亮。右兵衞權佐如故。 |
임신일에 정5위상 후지와라노 요시히토가 중궁의 차관이 되었다. 우병위권좌는 예전과 같다. |
癸酉。遣使於七箇佛寺。修五七日御齋會。亦如前日儀。』宣詔。山野之禁。本爲鶉雉。至於草木。非有所制。如聞。所由不熟事意。矯峻法禁。奪人斧斤。捕人牛馬。絶其往還之跡。妨其樵蘇之業。爲人之患。莫此之甚。宜早下知。莫令更然。又聞。豪貴之家。非有官符。妄占山野。多妨民利。如斯之類。並早禁斷。其江河池沼之類。同亦准此。莫致人愁。膀示路頭。普令知見。 |
계유일에 사람을 일곱 개 절에 보내어 오칠일 재회를 준비하게 하였다. 이전과 그 내용은 같다. 조칙을 내려 말씀하시기를 “산야의 금령은 본래 조수를 보존하기 위함이지, 땔감을 얻기 위해 나무를 베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다. 듣건대 그 뜻을 숙지하지 못하여 그 금칙을 혹독하게 하여 사람들의 도끼와 자귀를 빼앗고 사람들의 소와 말을 빼앗으며 그 돌아다니는 길을 끊어버려 나무 베는 일을 방해하여 사람들의 근심이 되게 하니 이보다 심함이 없다. 응당 빨리 지시하여 이런 일이 다시는 없게 하라. 또 듣기에 호족과 귀족의 가문이 태정관의 허락도 없이 산야를 함부로 차지하여 여러 백성들이 이익을 취함을 방해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무리들을 또한 빨리 금단하라. 강, 개울, 늪, 연못도 또한 이에 준하게 하여 사람들이 근심하게 하지 마라. 도로에 게시하여, 명령을 환발해 사람들에게 알려라.”라 하였다. |
甲戌。從五位下三統宿禰眞淨爲中宮大進。 |
갑술일에 종5위하 미무네노 미키요가 중궁의 대진이 되었다. |
丙子。授正六位下橘朝臣茂房從五位下。正六位上佐々貴山公仲繼外從五位下。』詔以上野國聖隆寺。爲延暦寺別院。 |
병자일에 정6위하 다치바나노 시게후사에게 종5위하를, 정6위상 사사키 나가쓰기에게 외종5위하를 주었다. 조서를 내려 우에노 국의 성륭사를 연력사의 별원이 되게 하였다. |
{{X-larger|是月。天寒。 |
이 달에 날씨가 추웠다. |
五月己卯。大風。折木殺草。記災也。』遣侍從從五位上嶋江王。左少辨從五位下文室朝臣助雄。中務少丞正六位上百濟王忠岑。内舍人正六位上八多朝臣湊。從八位上清瀧朝臣岑成等。向伊勢太神宮。迎齋内親王。大祓於建禮門前。 |
5월 기묘일. 바람이 세게 불어 나무를 꺾고 풀을 뿌리뽑았다. 재앙을 기록한 것이다. 종5위상 시마에 왕, 좌소변 종5위하 훈야노 스케오, 중무소승 정6위상 구다라노고니키시 다다미네, 내사인 정6위상 하타노 미나토, 종6위상 기요다키노 미네나리 등에게 이세신궁에 나아가 규우시 내친왕에게 영재하게 하였다. 건례문 앞에서 크게 푸닥거리를 하였다. |
庚辰。修六七日御斎會。從五位上坂上大宿禰正野。左京亮從五位下飯高朝臣永雄等爲東大寺使。散位從五位下百濟王教福。源朝臣穎等爲元興寺使。刑部少輔從五位下藤原朝臣關雄。散位源朝臣同等爲興福寺使。散位從五位下丹墀眞人繩主。文室朝臣墾田麻呂等爲大安寺使。前越後守從五位下丹墀眞人氏永。散位大宅朝臣年雄等爲西大寺使。散位從五位下高階眞人信澄。在原朝臣善淵等爲法隆寺使。散位從五位上百濟王慶世。從五位下橘朝臣三夏等爲藥師寺使。 |
경진일에 육칠일의 재회를 준비하였다. 종5위상 사카우에노 마사노, 좌경량 종5위하 이이다카노 나가오 등을 동대사사로 하였다. 산위 종5위하인 구다라노고니키시 교후쿠, 미나모토노 히이즈 등을 원흥사사로 하였다. 형부소보 종5위하 후지와라노 세키오, 산위 미나모토노 오나지 등을 흥복사사로 삼았다. 산위 종5위하 다지이노 다다누시, 훈야노 하타마로 등을 대안사사로 삼았다. 에치고 전태수 종5위하 다지이노 우지나가, 산위 오오야노 도시오를 서대사사로 삼았다. 산위 종5위하 다카시나노 노부스무, 아리와라노 요시후치 등을 법륭사사로 삼았다. 산위 종5위상 구다라노고니키시 게이세, 종5위하 다치마나노 미나쓰 등을 약사사사로 삼았다. |
辛巳。嵯峨太皇太后崩。 |
신사일에 차아태황태후가 붕어하였다. |
壬午。葬太皇太后于深谷山。遺令薄葬。不營山陵。先是。民間訛言云。今茲三日不可造餻。以無母子也。識者聞而惡之。至于三月。宮車晏駕。是月亦有大后山陵之事。其無母子。遂如訛言。此間。田野有草。俗名母子草。二月始生。莖葉白脆。毎屬三月三日。婦女採之。蒸擣以爲餻。傅爲歳事。今年此草非不繁。生民之訛言。天假其口。 |
임오일에 태황태후를 후쿠야 산에 장사지냈다. 조촐하게 장례를 치를 것을 유언하여 산릉을 만들지 않았다. 이전에 민간의 헛소문에 이르기를 올해 3월 3일에 떡을 빚을 수 없었던 것은 모자풀이 없었기 때문이라 하였다. 상식이 있는 사람은 이를 나쁘게 여겼다. 3월에 이르러 천황께서 붕어하셨는데 그 달에 또 태후의 산릉을 만들었는데, 그 모자풀이 없었던 것이 마침내 헛소문이 된 것이다. 이 때에, 밭과 들에는 풀이 있었는데, 속명이 모자풀이다. 2월에 싹이 터, 줄기와 잎은 희고 연하다. 매 3월 3일에 이를 처녀가 캐어 찌고 빻아 떡을 만들었다. 전해오는 일에는, 금년에 이 풀이 번성하지 못했다 한다. (이에) 민간에 헛소문이 생겨난 것이니 하늘이 그 입을 속인 것이다. |
太皇太后。姓橘氏。諱嘉智子。父清友。少而沈厚。渉獵書記。身長六尺二寸。眉目如畫。擧止甚都。寳龜八年高麗國遣使修聘。清友年在弱冠。以良家子、姿儀魁偉。接對遣客。高麗大使獻可大夫史都蒙見之而器之。問通事舍人山於野上云。彼一少年。爲何人乎。野上對。是京洛一白面耳。都蒙明於相法。語野上云。此人毛骨非常。子孫大貴。野上云。請問命之長短。都蒙云。卅二有厄。過此無恙。其後清友娶田口氏女。生后。延暦五年爲内舍人。八年病終於家。時年卅二。驗之果如都蒙之言。后爲人寛和。風容絶異。手過於膝。髮委於地。觀者皆驚。嵯峨太上天皇。初爲親王納后。寵遇日隆。天皇登祚。弘仁之始。拜爲夫人。先是數日。后夢出自針孔立左市中。六年秋七月七日后亦夢著佛瓔珞。居五六日。立爲皇后。十四年天皇禪位於淳和皇帝。尊天皇爲太上天皇。皇后爲皇太后。仁明天皇受禪。尊皇太后。爲太皇太后。追贈后父太政大臣正一位。母正一位。后自明泡幻。篤信佛理。建一仁祠。名檀林寺。遣比丘尼持律者。入住寺家。仁明天皇助其功徳。施捨五百戸封。以充供養。后亦與弟右大臣氏公朝臣。議開學舍。名學宦院。勸諸子弟。誦習經書。朝夕濟濟。時人以比漢鄧皇后。初法華寺有苦行尼。名曰禪雲。見后未笄就把其臂云。君後當爲天子及皇后之母。后竊記之。遂生仁明天皇及淳和太皇太后。后追想尼言。訪其所在。尼時既亡。及仁明天皇不豫甚篤。后哀戚毀容。遂剃髮爲尼。求冥救也。天皇崩後。相尋而后亦崩。時年六十五。 |
태황태후는 성이 다치바나씨이며 휘는 가치코이다. 아버지는 다치바나노 기요토모로 어려서는 침후했고 책을 섭렵했다. 키가 6척 2촌이었고 얼굴이 그림과 같았으며 행동은 문아했다. 보귀8년 고려국(즉, 발해)의 사신이 찾아왔는데, 기요토모의 나이가 약관이었다. 좋은 가문의 자제와 용모가 특히 뛰어난 자로 하여금 사신을 접대하게 하였다. 고려의 대사 사도몽이 기요토모를 보고 그릇으로 여겨 통역사 사인 山於野上에게 일러 묻기를 “저 소년은 누구인가.”라 물었다. 野上가 대답하였다. “그는 도읍에 있는 한 백면서생일 뿐입니다.”대사가 관상에 능통하여 野上에게 말했다. “저 사람의 모골이 비상하니 자손 중에 크게 귀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野上이 그의 목숨의 장단을 청하여 물었다. 대사가 말하기를 “32세에 액이 있으니, 이를 넘기면 병이 없을 것이다.”그 후에 기요토모는 다구치 씨의 딸을 얻어 결혼해 태후를 낳았고 연력 5년에 내사인이 되었다. 연력 8년에 집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 때 나이가 서른둘이었다. 과연 고려대사가 말한 것과 같았다. 태후는 사람됨이 너그럽고 온화했으며 기풍과 용모가 뛰어났다. 손이 무릎 아래에 닿았고 머리카락은 땅에 닿아 보는 이들이 경이하게 생각하였다. 차아태상천황이 처음 친왕이 되었을 때 왕후로 맞았고, 날로 갈수록 더욱 총애하여 천황에 즉위한 홍인 초에 부인으로 삼았다. 이보다 앞서 며칠 전, 바늘귀에서 나와 좌시 가운데에 서는 꿈을 꾸었다. 6년 가을 7월 7일 황후가 또 부처의 영락을 만드는 꿈을 꾸었다. 5,6일이 지나 황후가 되었다. 14년 천황이 순화천황에게 선양하였다. 천황은 태상천황이 되었고, 황후는 황태후가 되었다. 인명천황이 선양을 받자 황태후는 태황태후가 되었고, 아버지를 태정대신 정1위 태정대신, 어머니를 정1위에 추증하였다. 태황태후는 세상이 몽환포영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고 불교를 독실하게 믿었다. 절을 하나 세우고는 단림사라고 이름을 붙였다. 비구니를 보내고, 절에 들어가 살았다. 인명천황이 그 공덕을 닦는 것을 도와, 오백 호의 봉지를 내려 공양하였다. 황후는 또 동생 우대신과 함께 학사를 열 것을 상의하여 학환원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다치바나 자제들에게 권하여 경서를 송습하고 아침저녁으로 여럿이 공부하였다. 그 때 사람들이 이를 한나라의 등황후와 비교하였다. 처음에 법화사에 고행하는 비구니가 있었는데, 이름은 선운이었다. 황후가 비녀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는 팔을 잡으며 말하기를, “임금께서 분명 천황과 그 황후의 어머니를 만들 것입니다.” 황후가 이를 몰래 기록하였다. 마침내 인명천황과 마사코 내친왕이 태어났다. 황후가 이 비구니의 말을 돌이켜 생각하고는 그 소재를 찾았다. 비구니는 이미 죽어 있었다. 인명천황이 병색이 깊어져 붕어하자 태황태후는 깊이 슬퍼하여 안색을 해쳤다. 마침내 체발하고 비구니가 되어 명복을 구했다. 천황이 붕어한 후에, 그리워하던 끝에 태황태후도 붕어하였다. 나이 65세였다. |
后正位之後。專務化導。宮闈之内。陰教邕穆。朝野稱之。嵯峨天皇特加敬重。意愛甚密。故老相傳。伊豫國神野郡。昔有高僧名灼然。稱爲聖人。有弟子名上仙。住止山頂。精進練行。過於灼然。諸鬼神等。皆隨頤指。上仙甞從容語所親檀越云。我本在人間。有同天子之尊。多受快樂。爾時作是一念。我當來生、得作天子。我今出家。常治禪病。雖遣餘習。氣分猶殘。我如爲天子。必以郡名。爲名字。其年上仙命終。先是。郡下橘里有孤獨姥。號橘嫗。傾盡家産。供養上仙。上仙化去之後。嫗得審問。泣涕横流云。吾與和尚、久爲檀越。願在來生。倶會一處。得相親近。俄而嫗亦命終。其後未幾。天皇誕生。有乳母姓神野。先朝之制。毎皇子生。以乳母姓。爲之名焉。故以神野爲天皇諱。後以郡名同天皇諱。改名新居。后時夫人。號橘夫人。所謂天皇之前身、上仙是也。橘嫗之後身、夫人是也。后甞多造寳幡及繍文袈裟。窮盡妙巧。左右不知其意。後遣沙門惠萼、泛海入唐。以繍文袈裟。奉施定聖者僧伽和上康僧等以寳幡及鏡奩之具。施入五臺山寺。 |
태황태후가 정위한 이후에 전무가 도로 이끌어졌으며 궁궐의 안이 화목했다. 조정과 민간에서 이를 칭하기를 차아천황이 특히 경중을 더하며 뜻과 사랑이 심밀하다 하였다. 옛날에 대대로 전하기를 이요국 간노군에 적연이라는 고승이 성인이라 칭해졌다. 상선이라는 제자가 있어 산 정상에 머물러 살며 수행에 정진하였다. 적연을 뛰어넘어 그 여러 귀신들을 모두 쉬이 부렸다. 상선은 이전에 조용히 친한 바가 있는 단월에게 이야기하기를, “나의 근본은 세간에 있으나 천자와 같은 존귀함이 있어. 여러 쾌락을 얻었다. 지금 이 때 일념을 발하니, 내 다음 생에서는 천자의 지위를 얻을 것이다. 나는 지금 출가해 항상 좌선하고 병을 다스릴 것이다. 그러나 남은 세속의 습관으로 하여금 혼은 오히려 남아, 내가 천자가 되면 필히 군(郡)의 이름으로 이름을 삼을 것이다.” 그 해 상선은 죽었다. 이에 앞서, 같은 군 아래의 다치바나 마을에 홀로 사는 할미가 있었는데, 다치바나 할미라고 불렸다. 가산을 기울여 상선을 공양하였다. 상선이 화거한 이후 의심을 얻고 슬퍼하며 말했다. “나와 스님은 오래 함께하여 오래 스님께 공양하였다. 다음 생에서는 한 곳에서 만나 가까이 지냈으면 좋겠다.” 곧 할미도 그 명을 마쳤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차아천황이 태어났다. 유모를 두었는데 성이 간노였다. 선조의 제도에 황자가 태어나면 유모의 성으로 이름을 삼았다. 고로 간노가 차아천황의 휘였다. 나중에 군명이 천황의 휘와 같았으므로 군의 이름을 니이군으로 고쳤다. 뒷날 부인은 다치바나 부인이라 불렸다. 소위 천황의 전생이 상선이며, 다치바나 할미의 후신이 다치바나 부인이다. 황후가 일찍이 많은 보번과 경문을 수놓은 가사를 만들고 그 기예를 다하였다. 좌우가 그 뜻을 몰랐다. 후일 사문 혜악을 보내어 바다를 건너 당에 갔다. 그 경문을 수놓은 가사를 정성자, 승가화상, 강승 등에게 봉시하였고 보번과 경렴을 오대산사에 시입하였다. |
丙戌。莊嚴清凉殿。安置金光明經地藏經各一部。及新造地藏菩薩像一躯。屈請百僧。修先皇七七日御齋會。解座之後。便於大極殿。限三箇日。轉讀大般若經。以祈甘雨也。應時雨降。』是日。有制。爲諸名神。令度七十人。各爲名神。發願誓念。其得度者。皆以神字被於名首。 |
병술일에 장엄히 청량전에서 금광명경과 지장경 각 한 부를 안치하였다. 새로이 지장보살상을 하나 만들었다. 여러 승려들에게 굴청하여 먼저 선황의 칠칠일 재회를 준비하였고 칠칠일 재회가 끝난 후에 대극전에서 편히 머물었다. 3일을 기한으로 대반야경을 전독하여 감우를 기도하였다. 응하여 시우가 내렸다. 이 날 여러 명신을 위해 칠십 사람에게 생각할 것을 명했다. 각각 명신을 위해 발원하고 삼가 읊었다. 그 득도자는 모두 神자를 이름의 앞에 하였다. |
丁亥。終日陰雲。入夜雨降。 |
정해일. 종일 구름이 끼었다. 밤이 되어 비가 내렸다. |
戊子。加雨。水潦奔溢。時人以爲。諸僧苦請之誠、感動龍王也。 |
무자일. 비가 더욱 와 비가 넘쳤다. 그 때 사람들이 이를 일러 여러 중들의 정성스러운 청이 용왕을 감동시켰다고 하였다. |
庚寅。請僧五十口。分配東宮中宮。限三箇日。轉讀大般若經。 |
경인일에 중 오십명에게 청하여 동궁과 중궁에 나누어 3일간 대반야경을 전독하게 하였다. |
壬辰。追贈流人橘朝臣逸勢正五位下。詔下遠江國。歸葬本郷。逸勢者。右中辨從四位下入居之子也。爲性放誕。不拘細節。尤妙隷書。宮門榜題。手迹見在。延暦之季。隨聘唐使入唐。唐中文人。呼爲橘秀才。歸來之日。歴事數官。以年老羸病。靜居不仕。承和九年、連染伴健岑謀反事。拷掠不服。減死配流伊豆國。初逸勢之赴配所也。有一女。悲泣歩從。官兵監送者、叱之令去。女晝止夜行。遂得相從。逸勢行到遠江國板築驛。終于逆旅。女攀號盡哀。便葬驛下。廬于喪前。守屍不去。乃落髮爲尼。自名妙冲。爲父誓念。曉夜苦至。行旅過者、爲之流涕。及詔歸葬。女尼負屍還京。時人異之。稱爲孝女。 |
임진일에 유배되었던 다치바나노 하야나리를 정5위 하에 추증하였고 도오토우미 국에 조령을 내려 고향에 돌려보내 장사지내게 하였다. 하야나리는 우중변 종4위하 다치바나노 이리이의 아들이다. 성격이 방탄하고 세세한 것에 얽매이지 않았다. 예서체에 더욱 뛰어났는데, 궁문 방두에 그 손길이 지금도 있다. 연력 때에 당나라 사신을 따라가 당에 들어갔다. 당나라의 문인이 하야나리의 뛰어난 재능에 감탄하였다. 돌아온 날에 여러 임금을 섬겨온 관리 여럿이 늙어 파리하고 병들었다. 세상일을 떠나 한가히 지내며 벼슬에 종사하지 않았다. 승화 9년, 도모노 고와미네의 모반사건에 연루되었는데 고문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사형을 감하여 이즈 국에 유배보냈다. 처음에 하야나리가 유배지에 가는데 딸이 하나 있었다. 슬피 울며 따라오기에 호송하던 관리와 군인들이 영법으로 꾸짖었다. 딸이 낮에는 멈추고, 밤에 따라와 마침내 상봉하였다. 하야나리가 도오토우미 국 한치쿠 역에 다다라 목숨이 끊어졌다. 딸이 매달려 울부짖으며 깊이 슬퍼했다. 역 아래에 임시로 장사지냈다. 그 앞의 여막집에서 머물며 시신을 지키며 떠나지 않았다. 마침내 머리카락을 깎고 비구니가 되어 스스로를 묘충이라고 하였다. 아버지를 위하여 서념하고 아침과 밤으로 애썼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 눈물을 흘렸다. 조칙이 내려와 돌아가 장례를 치렀다. 그 비구니 딸이 시신을 지고 수도로 돌아왔다. 그 때 사람들이 이를 특이하게 여겨 효녀라고 칭하였다. |
甲午。四品時康親王爲中務卿。二品仲野親王爲式部卿。三品賀陽親王爲彈正尹。四品人康親王爲上總太守。四品本康親王爲上野太守。一品葛原親王爲大宰帥。正六位上藤原朝臣興世。石川朝臣豐河。布勢朝臣眞吉。伴宿禰須賀雄並授從五位下。從五位下中臣朝臣逸志爲神祇大副。從五位下藤原朝臣諸藤爲侍從。從五位下春日臣雄繼爲大學博士。 從五位上高階眞人清上爲彈正少弼。從五位上丹墀眞人門成爲大和守。從五位下丹墀眞人貞岑爲駿河守。正四位下坂上大宿禰淨野爲相摸守。右兵衞督如故。從四位下伴宿禰成益爲丹波權守。從五位上橘朝臣貞根爲安藝守。從四位上源朝臣冷爲讃岐守。從四位下清原眞人長田爲大宰大貳。從四位下藤原朝臣氏宗爲右近衞中將。右中辨如故。 |
갑오일에 4품 도키야스 천황을 중무경에, 2품 나카노 친왕을 무부경에, 3품 가야 친왕을 탄정윤에, 4품 히토야스 친왕을 가즈사 태수에, 4품 모토야스 천왕을 가미쓰케 태수에, 1품 가즈라와라 친왕을 대재사로 하였고, 정6위상 후지와라노 오키요, 이시카와노 도요카와, 후세노 신기치, 도모노 스가오에게 종5위하를 주었다. 종5위하 나카토미노 이치시를 신기 대부에 하였고 종5위하 후지와라노 모로후지를 시종으로 하였고 종5위하 오오하루카노 오쓰구를 대학박사로 하고 종5위상 다카시나노 기요카미를 탄정소필에 하고, 종5위상 다지이노 가도나리를 야마토 태수에 하고, 종5위 하 다지이노 사다미네를 스루가 태수에 하고, 정4위하 사카우에노 기요노를 사가미네 태수로 하고 우병위독은 이전과 같게 했으며 종4위하 도모노 나리마스를 단바 권수로 하였고, 종5위상 다치바나노 사다네를 아키 태수로 했으며 종4위상 미나모토노 스즈시를 사누키 태수로, 종4위하 기요하라노 나가다를 대재대이에, 종4위하 후지와라노 우지무네를 근위중장에 하였다. 우중변은 이전과 같다. |
丙申。從五位下藤原朝臣菅雄爲民部少輔。』詔。以武藏國奈良神列於官社。先是。彼國奏請。検古記。慶雲二年、此神放光如火熾。然其後。陸奧夷虜反亂。國發控弦。赴救陸奧。軍士載此神靈。奉以撃之。所向無前。老弱在行。免於死傷。和銅四年神社之中。忽有湧泉。自然奔出。漑田六百餘町。民有疫癘。祷而癒。人命所繋不可不崇。從之。 |
병신일에 종5위하 후지와라노 스가오를 민부소보로 하였다. 조칙을 내리시기를 무사시 국의 나라 신사를 관사가 되게 하였다. 이에 앞서 무사시 국이 주청하여 옛 기록을 검토하였다. 경운 2년에 이 신사에서 불길과 같은 빛살이 나왔다. 그러한 후에 무쓰에서 오랑캐가 반란을 일으켰다. 나라에서 활시위를 당겨 무쓰를 구원했다. 군사가 이 신령을 받들어 (반란 무리를) 쳤다. 향하는 곳에는 무적이었고 나이들거나 어린 자가 가도 사상을 면했다. 화동 4년에는 신사 한 가운데에 갑자기 샘물이 자연히 솟았다. 밭 육십여 정보에 물을 대었다. 백성들이 전염병을 앓을 때에 기도하니 치유되었다. 인명에 관계된 것은 소중히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하여, 이를 따랐다. |
戊戌。石見國言上。甘露降。 |
이와미 국에서 감로가 내림을 아뢰었다. |
癸卯。雨雹。大如鴨卵。 |
계묘일에 우박이 내렸는데 오리알만큼 컸다. |
六月戊申。能登國氣多大神授從二位。 |
6월 무신. 노토 국의 게타 대신에게 종2위를 주었다. |
己酉。雷震西寺刹柱。剥取其竿。中央一許丈。去落於右馬頭藤原朝臣春津宅。』詔以武藏國廣瀬神。常陸國鴨大神御子神主玉神。並列於官社。』安房國國造正八位上伴直千福麻呂授外從五位下。 |
기유일에 뇌진이 쳐 서사의 나무를 죽였다. 그 조각을 취해 보니 중앙은 한 장이나 되었다. 우마료의 우두머리 후지와라노 하루쓰의 집에서 낙착하였다. 조칙을 내려, 무장국의 히로세 신사와 히타치 국의 가모노오오카미노미코카미누시타마 신사 둘을 관사로 지정하였다. 아와국의 국조 정8위상 도모노 지호마로에게 외종5위하를 수여하였다. |
庚戌。伊豆國阿米都和氣命。伊太氐和氣命。阿豆佐和氣命。佐岐多麻比咩命。伊賀國佐佐神。津神等。並授從五位下。壹岐嶋角上神列於官社。 |
경술일에 이즈 국 아메쓰와케노미코토 신사, 이타테와케노미코토 신사, 아즈사와케노미코토 신사, 사키타마히메노미코토신사, 이카 국 사사 신사, 쓰 신사 등에 종5위하를 내렸다. 이키시마쓰노카미신사를 관사에 포함하였다. |
丁巳。美作國獻靈龜。雪白可愛。 |
정사일에 미마사카 국에서 영험한 거북을 바쳤다. 눈과 같이 하얘 사랑할 만 했다. |
乙丑。從五位下藤原朝臣關雄爲諸陵頭。從四位下藤原朝臣諸成爲右京大夫。從五位上藤原朝臣大津爲備前守。外從五位下山田宿禰文雄爲備後介。 |
을축일에 종5위하 후지와라노 세키오를 제릉료의 수장으로, 종4위하 후지와라노 모로나리를 우경대부로, 종5위상 후지와라노 오오쓰를 히젠 태수로, 외종5위하 야마다노 후미오를 히젠 후개로 하였다. |
丙寅。夜有流星。頭尾轉行。 |
병인일에 유성이 있었다. 머리와 꼬리가 서로 뒤집어졌다. |
丁卯。遣散位從五位下利見王。神祇少副正六位上中臣朝臣稗守等。參伊勢太神宮。告以即位之由。百官齋戒。廢務三日。 |
정묘일에 산위 종5위하 이견왕과 신기관 소부 정6위상 나카토미노 히에모리에게 이세신궁을 참배하게 하여 즉위 사유를 고하였다. 백관이 재계하여 3일간 일하지 않았다. |
甲戌。出羽國奏言。境接夷落。動爲風塵。至有嫌疑。必資占驗。請省史生一員。置陰陽師一員。許之。 |
갑술일에 데와 국에서 아뢰었다. “경계에 오랑캐가 난동하고 있어 싫어하고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반드시 노략질하여 재물을 빼앗을 것입니다. 청컨대 사생 한 사람으로 하여 살피고 음양사 한 사람을 두게 하십시오.” 이를 허락하였다. |
日本文德天皇實錄券第一 |
일본문덕천황실록권제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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