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원시조/자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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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자모사(慈母思)


내 「생양가(生養家)」 어머니 두 분이 다 거룩한 어머니다。한 분은 월성이씨(月城李氏)니 외조(外祖)는 청백(淸白)하기로 유명하였다。어머니 열네 살에 시집와서 스물하나에 과거(淸白)하였다。그때 중부(仲父) 또한 궂기고 생가 선인이 겨우 열한 살이요, 조부 삼년 안이라 한집에 궤연(几筵)이 셋이니, 큰집 작은집 사이에도 사위스럽다고 통하기를 꺼리었었다。선인이 말씀하기를, 거의 끊어진 집이 다시 붙어서 이만큼 되기는 큰아주머니 「덕」이라 하였다。이만하여도 어머니 대강을 알 수가 있다。한 분은 나를 낳은 어머니다。대수서씨(大邱徐氏)의 청덕(淸德)은 세상이 알거니와 완영(完營)서 들어오던 그 저녁부터 밥지을 나무가 없었다는 그 어른이 어머니 조부다。열여섯에 새깃씨 되고 선인 직품을 따라서 정부인(貞夫人)까지 봉하였다。두 분 동서 한집에 지내다가 큰동서님보다 여섯해 먼저 진천(鎭川)서 상사났다。예법 유난한 속에서 나고 크고 거기서 평생을 지내고 거기서 세상을 떠났다。말하자면 생어머니는 높고 어머니는 크다。어머니는 「대의」를 잡아 구차하지 아니한 분이라, 작은 그릇이라도 비뚤게 놓인 것은 그냥 두지 못하였다。그러므로 어머니 일생에 참 아닌 말씀은 한 마디도 없었다。회동(會洞) 살 때 「대소가」가 여러 집이 있었는데, 상하 없이 「둘쨋댁 큰마님」 말씀이라면 누구나 다 따랐다。생가 선인이 어느 「공고(公故)」 때인가 밤들게야 나와 안방 웃목에서 저녁상을 받을 때 우리 두 어머니, 숙모, 다 모여 앉았었다。장지가 다 닫히지 아니하여 아랫목에 자리 셋을 깐 것이 보였다。『큰아주머니, 맨 아랫목에 작은 요는 누구요?』 『그건 덕경(내 종형의 아명)이 자리요。』 『그 다음은?』 『그건 둘쨋댁 자리요。방이 겨우 미지근하니 새로 데려온 조카를 뉘고, 둘쨋댁도 추위를 타니 내가 끝으로 누울밖에 있소。』 선인이 그 말씀을 듣고 일어나서 큰형수 앞에 절하고 『아주머니, 참 갸륵하시다』고 하였다。생어머니는 큰동서 섬기기를 시어머니같이 하여, 선인 「성천임소(成川任所)」에 가서 명주 한 필을 사도 큰동서께 기별하고, 항아리 하나를 보아도 큰동서께 기별하고 따로 당신 것이 없었다。만년(晩年)에 아들을 데리고 말씀하다가, 너의 아버지같이 재미 없는 이가 없다고 하는 것을 선인이 지나다가 듣고 나를 불러 웃으며, 『얘야, 내야 참 재미없는 사람이다마는, 젊었을 때 안에서 어려운 것이야 몰랐겠느냐。언제인가 피륙필하고 돈 얼마를 내가 손수 전하여 보았더니라。너의 어머니가 받느냐。사대부의 집은 이런 법이 없다。위로 큰동서가 계시니 드리어 나눠 주신 뒤에 쓰는 것이 옳지 아니하냐 하더라。자기도 이러면서 나더러만 재미 없다면 어찌하니。』 하던 말씀이 지금도 엊그젯일 같다。어머니 한 분을 먼저 여윈 뒤는, 한 분마저 여의면 나는 부지하지 못할 줄로 알았다。그러다가 목천서 어머니 상사를 당했다。그 전해 겨울, 내가 서울 있을 때 병환 기별을 듣고 황급하게 내려가니 어머니 방장(方將) 극중(極重)하여 집안이 둘러앉아 우는 중이다。『어머니 나왔어요。』 『나 아시겠소?』 다 돌아간 어머니가 별안간 정신이 돌아 『암, 알고말고。내 귀동이를 내가 몰라。내가 또 앞에 가 엎드리어 『어머니, 내가 어머니 잡술 것 사가지고 왔소。좀 잡수시려우?』 『어서, 해라。우리 아들이 가져온 것 먹겠다。나를 좀 일으켜라。』 내게 붙들리어 일어앉아 다시 넉 달 동안을 끌었으나 어머니 「자애」가 이러하였다。졸곡 지난 뒤, 그 가을에 서울로 이사하여 오니 갈수록 서러워, 길 가다가도 가끔 혼자 울었다。이 시조(時調)는 병인년(丙寅年) 가을에 지었다。옛날 어떤 효자는 서러우면 퉁소(洞簫)를 불어 퉁소 속에 피가 하나더라는데, 내 이 시조는 설움도 얼마 보이지 못하였거니 피 한 방울인들 묻었으리요마는, 효도야 못하였을망정 설움은 설움이다。어머니 일을 적고, 내 시조를 그 아래 쓰니 시조는 오히려 「의지」가 있는 것 같다。




가을은 그가을이 바람불고 잎「드」는데①
가신님 어이하여 돌오실줄 모르는가
「살뜰」이② 기르신아희 옷「품」준줄③ 아소서

註 ①떨어진다는 말(落)。②정성(精誠)이나 은애(肌愛)가 기육(飢肉) 속에 사무치도록。③흉배(胸背)의 위도(圍度)。




부른배 골리보고 나흔열굴 병만녀겨
하로도 열두시로 곳어떨까 하시더니
밤송인 쭉으렁인채① 그저달려 삼내다

註 ①우리 속담에 쭈그렁 밤송이 三년 달린다는 말이 있다。다병(多病)한 사람이 그대로 부지하는 것을 이에 견주어 말하며, 못생기고 오래 사는 것을 이에 견주어 말한다。




동창에 해는뜨나 님계실때 아니로다
이설음 오늘날을 알앗드면 저즘미리
먹음맘 다된다기로 압떠날줄 잇스리




참아 님의 「낫」을 흙으로 가리단말
「우굿」이① 엉겟스니 무정할손 추초(秋草)로다
「밤」니여 꿈에뵈오니 「편안」이나 하신가

註 ①무성(茂盛)한 모양。




반갑던 님의 「글월」① 설음될줄 알엇스리
「줄줄」이② 흐르는정 「상긔」③아니 말럿도다
받들어 「낫」④에 대이니 「배이」⑤는듯 하여라

註 ①편지。②매행(每行)마다。③여태껏。④얼굴。⑤첨읍(沾浥=젖어서 뱀)。




「뮌」①나를 「고히」②보심 생각하면 「되」③「서워」④라
내양자(樣子)⑤ 그대로를 님이아니 못보심가
내업서 네뮈워진줄 어이네가 알것가

註 ①미운。②어여쁘게。③도리어。④한스러워[悵]。⑤모양。




눈한번 감으시니 내일생이 다덥혀라
「절」①보아 가련하니 님의속이 엇더시리
자던닭② 나래처울면 이때러니 하여라

註 ①저를。②어머니 상사가 새벽이었다。




「체수」①는 적으서도 목소리는 크시더니
「이」②업서 옴으신「입」 「주름」마다 귀엽더니
굽으신 마른허리에 「부즈런」이 뵈더니

註 ①신체의 장단대소(長短大小)。②치아(齒牙)。




생각도 어지럴사 뒤먼저도 바업고야
쓰다간 눈물이요 쓰고나니 한숨이라
행여나 님들으실까 나가「외」①와 봅내다

註 ①외다[誦]。


一○

미다지 다치였나 열고내다 보시는가
중문「턱」 밧비넘어 압안보고 거럿더니
다친팔 「도진」①다마는 님은어대 가신고

註 ①나았다가 때가 되면 다시 앓는 일。


一一

「젓」일흔① 어린손녀 손에키고 등에걸러
「색시꼴」② 백여가니 눈에오즉 밟히실가③
「봉사」④도 님따라간지 아니「든」⑤다 웁내다

註 ①전아내 성씨(成氏) 일찍 궂기고 혈육으로는 큰딸 정완(貞婉)을 두었다。갓나며 할머니께 길렸다。②처자(處子)의 체격(體格)。③보고 싶어서 눈앞에 자꾸 어리어보이는 것을 눈에 밟힌다고 한다。④봉선화(鳳仙花)를 잘못 일컫는 말。⑤소녀들이 봉선화를 짓찧어서 손톱에 홍색(紅色)을 들이니 이를 봉사들인다고 한다。


一二

바릿밥① 남주시고 잡숫느니 찬것이며
두둑키 다입히고 겨울이라 열분옷을
「솜치마」② 조타시더니 「보공」③되고 말어라

註 ①부인네의 밥그릇。②겹치마에 솜을 둔 것。③송종(送終) 때 의복으로 관중공처(棺中空處)를 채우는 것。보공(補空)。


一三

석이신 님의속을 깁히알「이」 뉘잇스리
다만지 하로라도 우음한번 도읍과저
「이저리」① 쓰옵던애가 한꿈되고 말아라

註 ①「이리저리」의 약(略)。


一四

그리워 하그리워 님의신색 하그리워
닮을이 뉘업스니① 어댈향해 차지오리
남으니 두어줄눈물 어려캄캄 하고녀

註 ①나는 어머니의 혈육이 못되므로 어머니의 전형을 닮을 길이 없다。그러니 더 한층 섧다。


一五

불연듯 나는생각 내가어이 이러한고
말갈데 소갈데로 이진듯이 열흘달포
설음도 팔자업스니 더욱늣겨 합내다


一六

안방에 불비치면 「하마」①님이 계시온듯
다친창 밧비열고 몃번이나 울엇든고
산속에 치위일르니 님이어니 하올고

註 ①혹시나。


一七

밤중「만」① 「어매」②그늘 세번이나 나린다네
게서 자라날제 어인줄을 몰랏고여
님의「공」③ 깨닷고보니 님은발서 머서라

註 ①이면。②어머니。③은공(恩功)。


一八

태양이 더웁다해도 님께대면 미지근타
구십춘광(九十春光)①이 한우음에 퍼지서라
멀찌기 아득케나마 바랄날이 언제뇨

註 ①봄 석 달을 이르는 말。


一九

어머니 부를올제 일만잇서 부르리까
젓먹이 우리애기 웨또찻나 하시더니
황천(黃泉)①이 아득하건만 혼자불러 봅내다

註 ①지하(地下)를 이르는 말。


二○

연긘가 구름인가 녯일벌서 희미(熹微)해라
눈가마 뵈오려니 떠오느니 딴낫이라
남업는 거룩한복이 언제런지 몰라라


二一

등불은 어이밝아 바람조차 부는고야
옷자락 날개삼아 훨훨중천 나르과저
이윽고 비소리나니 잠못일워 하노라


二二

풍상(風霜)도 나름이라 설음이면 다설음가
오십년 님의살림 눈물인들 남을것가
「이저다」① 꿈이라시고 내「키」②만을 보서

註 ①이것저것 모두。②신장(身長)。


二三

「북단재」① 「뾰죽집」②이 전에우리 외가(外家)라고
자라신 「경눗골」③에 「밤동산」④은 어대런가
님눈에 비취던「무산」⑤ 그저「열둘」이려니

註 ①종현(鐘峴)의 고명(古名)。②천주교당(天主敎堂)의 속칭。③정릉동(貞陵洞)을 잘못 일컫는 말。④어머니의 외가(外家)가 정릉동이었는데 뒷동산에 율림(栗林)이 있어서 어머니 어릴 적에 내외종형제자매(內外從兄弟姉妹)가 같이 다니며 아람을 주웠다고 말씀하셨다。⑤어머니 소시(少時)에 외조(外祖) 성천임소(成川任所)에 가서 강선루(降仙樓)에 올라가 무산십이봉(巫山十二峰)을 보았다고 늘 말씀하였다。


二四

목천(木川)집 안방인데 누으신양 병중이라
손으로 머리집자 님을따라 서울길로
나다려 말슴하실젠 진천인듯 하여라

註 이 시조는 어느날 밤 꿈을 그대로 적은 것이다。


二五

뵈온배 꿈이온가 꿈이아니 생시런가
이날이 한꿈되어 「소소라쳐」① 깨우과저
긴세월 가진설움을 맘껏「하소」②하리라

註 ①자지러지게 놀라는 모양。②하소연。


二六

시식(時食)도 조컷마는 님께들여 보올것가
「악마듸」① 풋저림을 이업슬대 잡숫더니
가지록 뼈아풉내다 한(恨)이라만 하리까

註 ①억센 것。


二七

가까이 겻헤가면 말로못할 무슨냄새
마시어 배부른듯 몸에품겨 봄이온듯
꼬끗헤 하마남은가 때대마터 봄내다


二八

님분명 계실것이 여긔내가 잇도소니
내분명 갓슬것이 님가신지 네해로다
두분명 다허사왜라 뵈와분명 하온가


二九

친구들 나를일러 집안일에 범연타고
안해는 서워라고 어린아희 맛업다고
여린맘 설음에찟겨 어대간지 몰라라

註 ①연약한。


三○

집터야 물을것가 어느무엇 꿈아니리
「한」깁흔 저남산이 님보시던 녯낫이라
계섯자 눈물이리만 「외오」①보니 설워라

註 ①혼자。


三一

「비」잠간 「산」씻더니 서릿김에 「내」맑아라
열구름 뜨자마자 그조차도 불어업다
맘선뜻 반가워지니 님뵈온듯 하여라

註 우리 생어머니는 얼음보다도 맑은 어른이다。


三二

「마흔」의 「외둥이」①를 「응아」②하자 맛동서께
남업는 자애엿만 정갈릴가 참으섯네
어엇지 범절만이료 지덕(至德)인줄 압내다

註 ①독자(獨子)。②어린애가 나면 곧 「응아」하고 운다。어머니가 사십에 나를 낳아서 곧 큰동서께 바치고, 행여 정이 갈릴까 하여 그 뼈가 녹을 듯한 자애를 참고 짐짓 대범하게 굴었다。


三三

찬서리 어린칼을 의로죽자 내잡으면
분명코 우리님이 나를아니 붓드시리
가서도 계신듯하니 한걸음을 「긔」①리까

註 ①만과(瞞過)。속여 넘김。


三四

어느해 헛소문에 놀라시고 급한편지
네거름 헛드듸면 모자다시 안본다고
「지질」①한 그날그날을 뜻바덧다 하리오

註 ①오죽잖은。


三五

백봉황(白鳳凰) 깃을부처 도솔천궁(兜率天宮) 향하실제
아득한 구름한점 녯강산이 저긔로다
빗방울 오동에드니 눈물아니 지신가

註 ①상상의 상서로운 새。②한량없는 하늘사람들과 미륵보살이 산다는 천계(天界)의 칠보(七寶) 잠엄한 보궁。


三六

「엽둔재」① 놉흔고개 눈바람도 경이랏다
「가마」②뒤 자즌걸음 얘기어이 그첫스리
주막집 어둔등잔이 「맛본상」③을 비춰라

註 ①진천(鎭川)서 성환역(成歡驛)으로 나오려면 이 재를 넘는다。②교자(轎子)。③겸상으로 보아 놓은 밥상。임자년(壬子年) 첫겨울이다。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진천(鎭川)서 성환(成歡)으로 나오는데 엽둔재에 이르니 눈이 오고 바람이 불었다。어머니 「가마채」를 붙들고 겨우 걸어 올라가면서 모자간(母子間) 이야기가 많았다。성환(成歡)에 오니 어두웠다。저녁을 겸상하여 들여왔는데 등잔이라고 켠지만지하였다。그 하루가 지금껏 잊히지 아니한다。


三七

이강이 어는강가 압록(鴨綠)이라 엿자오니
고국산천이 새로이 설워라고
치마끈 드시려하자 눈물벌서 굴러라

註 우리 생어머니야말로 저 명말(明末) 고정림(顧亭林)의 모부인(母夫人)에게 지지 아니할 고절(高節)을 가졌다。임자년(壬子年) 겨울 안동현(安東縣)으로 모시고 갈 제 기차가 압록강을 건너니 어머니 나를 부르며, 「나라가 이 지경이 되어 내가 이 강을 건너는구나」 그 말씀을 이어 눈물이 흘렀다。


三八

개울가 「버들개지」① 바람따러 휘날른다
행여나 저러할라 돌이고도 「굴」지②마라
이말슴 직혓다한들 누를향해 살욀고

註 ①유서(柳絮)。②구르다[轉]。


三九

이만 사실님을 뜻조차도 못바든가
한번 상해들여 못내산채 억만년을
이제와 뉘우치란들 님이다시 오시랴


四○

설워라 설워라해도 아들도 딴몸이라
무덤풀 우군오늘 이「살」①부터 잇단말가
빈말로 설은양함을 뉘나밋지 마옵소

註 ①기육(肌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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