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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몽/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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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자탄(自歎)
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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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한 세상에 홀로 내친 바 되어 한 사람의 골육지친도 없거늘, 하물며 따뜻한 애정(愛情)을 몸에 받지 못하는 수일은 거친 뜰에 홀로 누워 있는 바윗돌과 같이 차고 적막하다.

수일이가 심택의 집에 붙여 있을 때는, 순애를 사랑하여 그 아름다운 음성과 부드러운 손과 따뜻한 마음을 혼신에 받고 지낼 때는 그 즐거움이 다시 어느 곳에 비할 바이 없었더라.

수일은 그렇듯 사랑하는 순애로 하여금 아내로도 알고, 또는 자기의 생명으로도 알며, 고단한 사람의 신세로 어머니로도 생각하며, 누이로도 생각하며, 아버지로도 알고, 형으로도 믿어서 순애 한 사람으로 부모·형제·친척·붕우를 한꺼번에 얻음과 같이 즐거워하며 미덥게 알아 단란한 가정에 즐거운 세상을 보내고자 하였더라.

그런 고로 이 세상에 천백만 인의 아내되는 사람이 그 수효가 가히 세어 말하지 못하겠으되, 자기의 바라는 마음과 생각하는 바는 자기의 몸에 적당함을 깊이 믿었으므로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의 순애를 얻음으로 일만 나무에 일시에 꽃이 핌과 같아여 거친 들에 놓여 있던 바위로도 물에 젖고 안개에 취하여 따뜻한 봄해에 편안히 잠들어 있는 것 같다. 그 사랑과 그 정의가 점점 날이 갈수록 더하여갈 때에 어느 곳에 경쟁하는 자이 있어 잠시 동안에 나의 아내를 빼앗기를 손길 한 번 뒤집는 것보다도 용이히 하였으니, 수일의 그 마음이 어떠하였으리요.

한 몸과 한 마음을 모두 그 사람에게 맡기어 조금도 거짓함이 없던 사람이 홀연 변하여 대적과 같이 배반하고 타인에게로 기꺼이 좇아가는 것을 목격한 수일의 마음은 더욱 어떠하였으리요. 어렸을 때에 골육지친도 없고 한 점 사랑을 몸에 받지 못하고 고단하고 적막히 지낼 때의 마음보다 더욱 실망(失望)과 원한(怨恨)이 골수에 사무쳐 거친 들에 놓인 바위가 서리맞고 눈에 덮이고 그 위에 찬바람이 엄습하여 살과 뼈를 에이는 듯하고 통만 감동할 뿐이라.

실로 수일이가 순애를 남에게 빼앗긴 일은 비유하건대 남에게 얻었던 보배를 빼앗길 뿐 아니라 그 위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보배까지 앗아감이 되었더라.

수일은 이와같은 원망과 한이 가슴에 쌓여 하루 한시라도 잊을 수 없다. 이 고통을 잊어버리고 이 한을 헤치고자 하여 자기의 하고자 하는 바이 아니로되 억지로 이와 같은 직업을 구하여 혹독한 행동을 스스로 함이라. 그러나 수일은 순애와 김중배와 심택에게 향한 한을 보복코자 하면 그 사람을 직접으로 공격하여도 능치 못함은 아니로되 그와같이 협하게 일은 하고자 함이 아니라, 널리 세상에 대하여 한을 풀고자 함이니, 깊은 밤 외로운 등잔 아래에 홀로 고요히 누워 전일에 지내던 회포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베개를 적시며 혼잣말로,

『아, 이렇게 내가 속만 태우는 보다 차라리 한 번 죽어버리는 것이 낫지. 한 번 죽어버리면 만사를 다 잊어버리고 이런 근심을 아니할 터인데, 그런 것을 목숨이 아까운 것도 아니언마는 죽지도 못하고…… 죽기는 쉽지마는 죽지 못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하여도 너무도 원통하여서 이 원통한 마음을 이대로 가슴 속에 서리어 담아두고 죽을 수는 없어. 내가 돈이 많으면 무엇이 재미있을꼬. 남더러 내 말을 물어보면 한 사람의 여자, 순애 대신은 될 만하다고 말하겠지마는…… 나는 그 마음은 없어. 제일 돈을 많이 모을 생각도 없는데 한 번 실망한 마음을 다시 돌이킬 보배는 이 세상에 없어. 그 보배는 아무리 생각하여도 다시 돌이킬 방법은 없어. 순애가 지금 와서 죄를 사하고 다시 부부가 되어서 살자고 울고 사과를 한다 하더라도 한 번 마음이 변하여 남의 물건이 된 순애는 결단코 이전 순애는 아니요, 벌써 이수일의 보배는 아니야. 이수일의 보배는 사 년 전에 있던 순애요, 지금 순애는 아니야. 그 순애는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순애야. 아무리 생각하여도 연연(戀戀)불망할 사람은 순애야. 이렇게 있을 때도 순애는 잊을 때가 없어. 잊혀지지를 아니하여. 그러나 잊지 못하는 순애는 지금 김중배의 계집된 순애는 아니라 심택의 딸 순애, 사년 전에 있던 순애, 그때 순애를 한 번만 다시 보았으면. 내가 지금 백만 원 재산을 모아놓기로 이전 순애는 다시 얻을 수가 없지. 아, 돈이 있으면 무엇을 하나? 지금 있는 돈이 비록 얼마 되지는 못하지마는 사 년 전에 순애를 쫓아서 평양 갔을 때에 내 수중에 있었더면…… 아!』

이와 같이 천사만념에 싸여 있는 수일은 스스로 내 몸이 세상에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이렇듯 생각할 제마다 부벽루 아래에서 울며 쓰러져 있던 심택의 딸 순애와 서강 박용학의 집 정원에서 소요(逍遙)하던 김중배의 아내된 순애의 형용이 서로 얽히어 수일의 신변에서 방황한다. 슬프다, 수일은 세상과 서로 어그러진 사람이라, 나아가면 사람의 피를 마시고 들어오면 나의 창자만 끓이는도다. 있는 곳에는 음풍(陰風)이 항상 배회하며, 백일(百日)을 능히 보지 못하며, 가고 또다시 갈지라도 침침한 장야로 오늘날까지 일천사백육십 일을 만나더라도 정다운 친구의 얼굴을 알지 못하고 사귀더라도 일찌기 꿀보다 더욱 단 맛을 알지 못하며, 꽃이 피어도 봄날의 따뜻한 기운을 받지 못하며, 즐거움이 있어도 등지고 기꺼움을 알지 못하며, 길이 있어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복이 있어도 부르지 아니하며, 은혜가 있어도 누리지를 못하고, 한갓 이욕에 사로잡히어 뜻을 잃고 다만 마음만 수고로 할 뿐이라. 슬프다, 수일은 이와같이 금전을 탐하여 마침내 무엇에 쓰고자 함이뇨. 수일은 점점 동업자 사이에 나타나서 그 사람의 장래를 누가 아니 주목하리요. 그러므로 수일은 자기의 분하고 원통한 마음을 일반 세상 사람에게 풀고자 하여 잔인·각박한 행동이 한두 곳이 아니라. 그런 고로 채무자 중에 원망을 사고 한을 받는 곳이 처처에 생겼더라. 그러므로 동업자 사이에도 수일의 심히 하는 수단으로 조금도 채무자에게 용서함이 없음을 과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더라. 그러나 김정연은 홀로 기꺼워하여 강한 장수 아래에 약한 군사 없음을 스스로 자랑한다.

김정연은 오늘날같이 저축 재산이 다만 그러한 수단으로 능히 만족다 하지 못하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음특한 방법이 있음을 말하며, 또는 그 전례를 들어서 수일을 깨우쳐 그 마음을 더욱 더욱 강경하고 맹열케 한다.

그러나 수일은 그 말로 인하여 잔인·강박한 행동을 능히 즐기어 함이 아니라.

사람의 행할 길이 아니요, 그 직업이 또한 법률에 벗어지는 불법한 일인 줄 모름이 아니로되, 이미 나의 원통한 설분을 이곳에서 하기로 결심한 이상은 어디까지든지 굳세게 나가자 결단하였더라.

사 년 전 평양 부벽루 아래에서 이수일과 한가지로 눈물을 흘리고 이별한 후에 김중배에게로 출가한 순애의 소식을 전하리로다.

삼월 십사일 몽롱한 월하에서 이수일과 서로 슬프게 작별한 후에 순애는 사월 초십일을 택하여 김중배의 집으로 출가하였더라. 하룻밤 사이에 수일은 홀연 종적을 숨긴 후 심택의 한집안으로 말하면 도리어 꺼리던 물건을 떼어버린 것같이 생각하였으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한 집에서 수일을 위하여 염려 아니치 못한다.

그러나 그 부친 심택보다도 또는 그 모친보다도 순애의 근심이 더욱 심하였더라. 순애가 근심함은 다만 버리지 못할 남편을 헌신같이 버린 일을 뉘우치고 슬퍼할 뿐 아니라, 의탁할 곳이 없이 고독한 수일의 몸을 생각하여 그 신상 안부를 알지 못함을 주야로 근심하기를 마지아니한다.

처음에는 분한 마음으로 잠시 동안은 어디로 갔다 할지라도 며칠을 지난 후에는 필연 다시 돌아오리라 하여 은근히 심중으로 초조히 손꼽아 기다리기를 마지 아니하였더니, 마침내 그렇듯 기다리던 마음은 조금도 효험이 없고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며 한 달 두 달이 지날수록 인하여 소식이 묘연하여지매 순애는 이에 이르러서는 다만 한 번이라도 다시 만나보기를 주소로 축원한다.

일시의 분기로 인하여 어디로 나갔다 할지라도 우리 두 사람의 굳게 맺은 언약은 변치 아니하겠거늘, 지금에 이르러서는 서로 만나보기는 고사하고 종적까지 이제는 알지 못하게 되었으니 도리어 수일을 원망하며 또는 자기의 실책을 뉘우치며 그 부모까지도 다시 원망한다.

그러나 택일한 사월 초십일은 점점 박두하며 부모의 명령은 거역하기 어려운 터이라, 좌우로 결단하기 어려운 몸으로 푸주에 들어가는 소의 마음으로 일신을 부모의 하는대로 맡겨두었더라.

그러나 깊이 잠들기 전에는 잊지 못하는 수일의 얼굴을 망연하여 다시 보기 어려우니, 비록 가슴 속에 무슨 회포가 있다 하기로 어찌 능히 그 사람의 속에까지 통하리요.

홀로 마음만 태우다가 정히 견디기 어려운 때에는 부모가 알지 못하는 틈을 타서 무꾸리도 하여보고 소경에게 문복도 하였으며, 물어본 후에 그 복자(卜者)의 대답은 지금 몇 해 동안은 서로 만나기 어려우나 멀지 아니하여 그 사람의 소식은 지필로 하여금 원망하는 뜻을 전하여 오리라 하는지라, 순애는 소식을 전하리라 하는 말도 천지에 없이 반갑게 생각하여 하루가 십년 같은 생각으로 아침이면 저녁에나 소식이 있을까 기다리고, 저녁이면 아침을 기다리며 문앞에서 사람이 찾아도 그 사람의 소식을 전하려는가? 체전부가 지나가도 혹시 그 사람의 편지를 전하여 주려하는가 하는 마음이 골수에 박혔더니, 무꾸리도 헛된 일이요 판수의 점도 거짓말이라. 세월이 점점 갈수록 나를 꾸짖고 나를 원망하는 글발 한 장도 보이지 아니한다.

만일 내가 이 사람을 다시 보지 못하고 이 사람의 소식을 듣지 못하면 죽기를 맹세하고 내 몸을 다른 사람에게 허락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니, 택일한 사월 십일은 점점 가까와지고 그 부모는 수일이 있지 아니함을 오히려 다행히 여기어 수이 출가하기를 재촉한다.

슬프다, 심지 연약하고 믿지 못할 이 세상의 금전을 생각하던 순애는 드디어 부모가 옆에 있어 선동하는 말에 어기지 못하고 처음 사랑을 내던지고 다시 김중배를 따라 대례(大禮)를 평양에서 지냈더라.

순애는 수일과 이별한 후에는 새로이 그 사람과 정이 얼마큼 깊었던 일을 깨달았더라.

순애는 수일의 나간 후부터 더욱 그 사람의 얼굴이 눈에 밟히어 아침이든지 저녁이든지 그 사람의 형용만 가슴에서 왕래하여 깊은 밤에 고요할 때마다 품속으로 좇아 수일의 사진을 내어 들여다보다가는 홀연 눈물이 사진을 가리우며 서로 향하여 말이라도 할 듯하다가는 한갓 사진이요, 대답이 없으면 다만 길게 한숨짓고 손에 들었던 사진이 기운없이 무릎 위에 떨어진다.

만일 이 사람이 지금이라도 다시 정다운 소식 전하여 줄 것 같으면 집과 부모라도 다 돌아보지 아니하고 그 사람을 좇아가리라 생각하여 대례를 지내는 날에도 얼굴에는 성적(成赤)하고 원삼 당의 초례청에 서서 김중배와 이성지합의 큰 예를 이룰 때까지도 가슴 속에는 내가 김중배의 아내라 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고, 다만 부모의 명령을 어기기 어려워 이렇게 되었으나, 외양으로는 비록 허락한 것 같을지라도 마음까지는 결단코 허락하지 아니하리라 결심하였더라. 이와같이 생각할 때에 순애의 가슴은 얽힌 실마리와 같이 어지러웠더라.

이수일과 이별한 후에 이렇듯 잊지 못하고 생각하건마는, 자기의 전일 망령되이 돈에 눈이 어두웠던 일을 뉘우치고 계집 사람의 행실을 지켜 남녀간 정당한 연애를 온전히 할 마음은 전혀 없지 아니하고 항상 동록의 냄새가 코 아래에 떠나지 못하여 수일을 사랑하는 마음은 간절하되 한편으로는 재물을 욕심하는 마음도 적지 아니하며 그 부모의 권하는 바도 심하였는 고로, 한결같은 마음을 결심치 못한 아녀자의 마음으로 좌우를 모두 어찌치 못하고 행례하는 날을 당하였더라.

이날과 이 밤에 김중배의 집안과 순애의 부모는 그 즐거움이 비하여 형용키 어렵되, 홀로 순애의 마음은 큰 죄를 짓고 감옥(監獄) 안에 몸이 있는 것 같아여 지금에라도 천벌이 이마 위에 내려지는 듯하여 순애의 마음은 이미 이수일에게 허락하였으니 다시 김중배라 하는 남편이 있지 못할 일은 분명하겠거늘, 공교히 이날부터 몸은 김중배에게 의탁하고 마음은 멀리 수일에게 향하여 잊지 못한다.

대례를 이룬 날부터 순애는 더욱 자기의 허물을 뉘우치며 비록 정식으로 이루었을지라도 김중배에게 마음을 허락하는 남편으로는 알지 못한다.

김중배는 그 아내된 순애를 사랑하기에 정신을 잃을 지경에 이르렀고, 그 아내에게 향한 마음은 전력을 다하였더라.

순애는 날로 그 남편의 사랑을 점점 더 입을 때마다 심중에 있는 사람의 형용은 점점 보기 어려워지고 마음은 더욱더욱 즐겁지 못하여, 그 남편 김중배는 한낱 기계적 남편에 지나지 못하게 생각하나, 김중배는 순애의 옥 같은 얼굴과 꽃 같은 태도에 신정의 기꺼움이 어떻다 하리요.

그러나 순애의 항상 즐겁지 못한 마음은 김중배로 하여금 불없는 화로를 옹위하고 있음과 같으되, 그를 능히 깨닫지 못하고 다만 순애의 미색을 탐하여 거의 미쳤던 사람이라, 오히려 그 심중은 깨닫지 못하고 본대 천성이 그러함인가 하여 심히 묻지도 아니하였더라.

이렇듯 김중배의 사랑을 받고 있으되, 순애는 조금도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고 그 마음을 받지 아니하며, 도리어 그곳으로 출가한 일까지 깊이 속으로 뉘우치고 탄식하기를 마지 아니하며, 비록 몸을 어찌한 잘못으로 이곳에 파묻히게 되었으나 나의 마음과 나의 몸은 이곳에 허락지 않으리라 하고 혀를 깨물고 맹세하였는 고로 좌우로 칭탁하고 김중배에게 몸을 허락지 아니하기를 삼사 년 동안이나 지나되 그 굳게 먹은 마음을 온전히 이루었더라. 그러므로 김중배는 심중으로 항상 앙앙불락할 때가 없지 아니하되 항상 수심과 병색이 얼굴에 개일 날이 없음을 보고 순애의 즐거워할 것은 모두 하여주며, 하고자하는 것은 임의로 하게 맡겨두어 아무쪼록 순애의 환심(歡心)을 사고자 한다. 날이 갈수록 순애의 마음은 점점 즐겁지 못하며 진심으로 축원하고 기도하는 마음은 이수일의 몸의 평안함을 원함이라. 지금에 이르러서는 순애의 더욱 뉘우치는 마음은 이렇듯 괴로울 줄을 전혀 깨닫지 못함은 아니로되, 무슨 일로 이 집안에 들어왔던고 하며 자기를 책망한다. 기계적으로 남편을 섬기고 한 물건과 같이 방안에 놓여 있어, 나의 몸을 내가 스스로 속이고 남의 아내된 본의가 없이 한갓 농 속에 들어 있는 새의 몸과 같아여 다만 높이 광활한 하늘을 바라볼 뿐이로다.

처음에 바라던 금강석 반지는 무엇에 쓰며, 넉넉히 생활하는 재산은 무엇에 유익하며, 이목의 소호를 능히 다 하겠으며, 사령이 앞에 족족하건마는 삼사 년 이래로 가슴을 태우는 생각이야 어찌 능히 고치리요.

다만 생각하는 사람은 대동강변에서 적을 잃어버린 수일의 형용이라. 우연히 박용학의 집에서 얼굴만 보았을 뿐이요, 또한 소식은 알지 못하며 보지 못하여 태울 때의 마음보다 그렇듯 뇌봉전별(雷逢電別)한 후의 마음은 더우기 구곡간장을 녹이는도다.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더니 이외에 이날 수일을 서강에서 만나보매 순애의 더우기 터지는 것 같으나 마음에 쌓인 말을 임의로 하지도 못하고 헤어지니, 진실로 이는 사 년을 밥에 주리었던 사람이 음식을 보고 먹지 못함과 같음이라.

경성 새문 밖 냉동 김정연의 집에 몸을 붙여 있다 하는 말은 정희에게 그날 들었으나, 그 이튿날로 다시 멀리 평양으로 내려왔으므로 김중배의 눈을 속여 몸소 가서 보지도 못하고 편지로 가슴에 있는 회포를 말하자 하니 통호도 자세히 알지 못하니 어찌 그 사람에게 소식을 전하리요. 마음은 오백오십 리 되는 새문 밖 냉동 있는 이수에게 향하여 있고 몸은 김중배에게 붙여 있으니, 초조하고 미칠 것 같은 마음은 잠시도 자리에 편안히 앉아 있을 때가 없고, 심사를 정할 수가 없으면 공연히 벼루집을 향하여 눈물에 어리운 얼굴로 길고 길게 수일을 향하여 편지를 쓰고 있다.

그러나 그 편지는 써서 손에 들고도 어디를 향하여 능히 붙이지 못하고 공연히 방으로 마루로 들어왔다 나갔다 하며 한숨 사이에 그 편지는 도로 솜과 같이 피어버린다.

김중배는 가장 욕심하던 심순애를 맞아다가 아내로 삼았으나, 그 아내는 다만 이름만 아내요, 실로 아내의 정은 알지 못하며 항상 근심에 싸여 보이는 순애의 얼굴은 삼사 년이 지나도록 쾌락한 형용과 기꺼운 모양은 한 번도 보지 못하였으며, 평양이라 하는 곳은 자고로 물색이 좋은 곳이요, 하물며 은행의 주인이 되어 뉘 아니 흠앙(欽仰)하리요.

자주 연회도 있고 원유도 있으며 놀이가 있을 때에는 반드시 기악이 있는 법이라.

김중배는 순애의 재미있는 얼굴을 보지 못함을 한하여 자기의 온화한 애정을 뉘에게 향하여 줄 곳이 없더니, 하루는 평양서 일등 가는 기생으로 유명한 사창동 사는 옥향이라하는 기생과 서로 추파 송정하여 하룻사이에 깊이 든 정이 칼로 베려 하여도 능히 떨어지지 못할 사이에 이르렀더라. 그런 고로 김중배의 순애에게 향한 애정이 옮기어 옥향(玉香)에게로 향하였으니, 순애는 그 일을 은근히 알지 못하는 것도 아니로되 짐짓 김중배가 옥향을 얻어서 침혹하여가는 것을 오히려 다행히 여겨 아무쪼록 김중배는 멀리하고 옥향에게로 정을 옮기게 하고자 힘을 쓴다. 그러므로 김중배의 마음은 날이 갈수록 점점 옥향에게로 향하는 마음은 많아지고 순애에게 향한 마음은 엷어 간다.

그러나 순애에게 마음이 적음은 결단코 순애를 사랑하지 않음이 아니라, 순애가 김중배의 향한 마음은 조금이라도 반가이 받지 아니하는 연고이니라.

순애는 수일을 위하여 몸의 편안함을 기도하는 뜻으로 집안 사람이 모두 깊이 잠이 들고 계견지성(鷄犬之聲)이 들리지 아니하는 야밤 삼경에 홀로 일어나 수족을 정히 씻고 모란대 아래 영명사(永明寺) 앞에 있는 부도(浮屠) 앞에 이르러서는 정안수 한 그릇 떠다놓고 한참 동안을 엎디어 심중 소원을 축원하였더라.

지성이면 감천이라, 그 정성이 감동됨이런지 우연히 그 사람의 형용은 잠시 만나보았으나 오히려 이 몸을 원망하는 그 사람의 마음은 풀리지 아니하고 노기가 가득한 눈으로 자기의 얼굴을 흘겨보던 일은 오늘날까지라도 실상 자기의 참된 마음이 이러함은 자세히 알지 못하고 그렇듯 분노하는 마음을 어찌하여 돌리리요.

서로 종용히 만나면 목숨을 끊더라도 그 사람의 앞에서 심중사를 설파하련마는 그 기회는 다시 얻기 어렵고, 다만 바라는 것은 영명사 부처님의 자비하신 은택으로 이 마음을 밝게 살피시고 도와주시면 그 사람의 지금 마음을 돌이킬까 하여 그 후로는 더욱 부도 앞에 엎디어 축원하기를 하루도 게을리하지 아니하고, 비가 오는 날이나 눈이 오는 날이나 바람이 부는 날이나, 추위가 있든지 더위가 있든지 조금도 사양치 아니하고 부도 앞에 정성 드리기를 한결같이 하였더라.

순애는 다시 수일을 생각할 때마다 부벽루 아래에서 슬피 이별하던 날을 더욱 잊지 못한다.

다시 생각하여 볼지어다. 해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삼월 십사일은 그날이 돌아올 적마다 순애 가슴은 터지는 것만 같고, 순애 뉘우치는 생각은 더욱 새롭도다.

『십 년 후 삼월 십사일 밤이라도 나의 눈물로 이 달빛을 흐려놓을 터이니, 이 달이 만일 흐리거든 이수일이가 어느 곳에서 너를 원망하고 오늘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줄 알아다고.』

귀를 가리고 마음으로 생각지 아니코자 하나 공연히 그 소리는 귀에 울리며 들어오는 것 같고, 그 모양이 가슴 속에 사진박인 것같이 눈앞에 나타난다.

순애는 삼월 십사일을 당할 제마다 과연 달빛이 흐려지는가 시험하여 본즉, 그 사람은 어느 곳에서 전일 말과 같이 울고 있지를 아니하는지 달빛은 변하지 아니한다.

그 사람이 이제는 이 몸을 원망도 아니하고 이 몸을 무이 여기는 마음도 없어지고 전혀 이 몸의 생각은 잊어버렸는가? 만일 그러면 지금은 어느 곳에 있는가 하여 마음을 수고로 하기를 한두 번이 아니러라.

이날은 순애가 이수일을 이별하고 네 번째 삼월 십사일을 당하였더라.

아침부터 청명하던 일기가 오후에 이르는 하늘에 구름이 덮이고 조금씩 때때로 부는 바람은 비록 조춘 천기라 할지라도 심히 음랭한 날이라.

순애는 다른 날보다 일 년 내에 이날을 당하면 더욱 심사가 산란하여 진정키 어려운 날이니, 순애는 앞뒤의 영창문을 굳이 닫고, 몸에는 비단옷을 걸쳤고, 자리에는 비단요를 깔았으며, 침침한 방안에 혼자 누워 천정만 향하여 있다.

한 집안 안주인으로 시부도 그곳에 있지 아니하며 야심스러운 시누이도 있지 않고 울고 보채는 어린아이도 없고, 다만 사오십 먹은 노파 한 사람과 안팎으로 잔심부름하는 계집아이 두 사람과 사나이 하인 사람을 두었으니 제반 일은 모두 여러 하인이 능히 다 하고, 순애는 하룻동안 일 년 동안을 아무 일도 하는 것이 없이 편안히 있어 들어오면 금의 옥식에 싸여 있고, 나아가면 마차·인력거가 등대하며 한 마디의 말이 입밖에 떨어지면 모두 서로 다투어 들으며, 하는 일은 모든 사람보다 칭찬하여 세상에 무슨 부족함이 없는 몸이 되었더라.

세상에서 남녀를 물론하고 원하고 바라는 것이 이에서 지나지 못할인가 하여 스스로 한심함을 이기지 못하였더라.

슬프다! 이 몸이 오늘날 이 지위를 누리고자 하여 전에 미경력한 철모르는 마음으로 바라고 원하고 부러워하다가 다시 얻기 어려운 마음 가운데의 사람을 잃었도다. 그러나 이 몸이 다섯 해 전에 바라던 일은 극히 즐거우리라 하였더니, 오늘날 이르러서는 오히려 슬픈 씨를 뿌림이 되었도다.

이에 이르러서 순애는 비로소 수일의 전일 꾸짖던 말이 금석(金石)보다 더함을 깨달았더라.

이에 이르러서는 한갓 마음만 수고롭고, 다시 보기 어려운 사람을 기다리고 있으니 가슴은 터지고 한숨은 눈물과 한가지로 스러져 나올 뿐이라. 근심을 가슴에 싸고 누워 있던 몸을 벌떡 일어 화에 띈 사람같이 영창 문을 열어제끼고 대동강 흐르는 물을 향하여 바라보니, 나뭇가지에는 꽃봉오리가 발긋발긋하게 담안에 서서 있는 매화는 장차 웃고자 하건마는, 초춘에 찬 바람을 좇아 덮여 내려오는 눈은 눈앞에 보이는 곳은 모두 은세계를 이루었는데, 지정하여 바라보는 곳은 없으나 망연히 서서 삼월 십사일 된 이날을 생각하니 가슴 속에 무한한 감동이 얽히어 일어난다.

이때에 김중배는 은행에서 퇴사하여 돌아오는 길에 옥향을 찾아보고 저물게 집에 돌아오나, 적적한 큰 방 안에 홀로 문을 열고 정신없이 바깥을 내다보던 순애는 김중배가 돌아옴을 알지 못하고 서서 있는데, 홀연 뒤로서 어깨를 두 손으로 꽉 붙드는 사람이 있는 고로 깜짝 놀라 뒤로 고개를 돌려보려 할 즈음에 화로수 냄새가 촉비하는 것을 맡으매 이는 의심없는 김중배라. 순애가 기운없는 목소리로,

『인제 오십니까?』

『아, 추워! 으슴푸레한 날이 겨울날같이 추운걸.』

하며, 김중배는 아랫목으로 내려가 요 밑에 손을 넣고 서서 있는 순애를 치어다보며,

『술 있거든 한잔 데워다 주오. 따뜻한 안주나 좀하고.』

순애는 대답도 아니하고 문을 열고 마루로 나가려 하는지라 김중배는 벌떡 일어나서 순애의 손목을 붙들고 아랫목으로 내려오며,

『추운 날 손수 나가 할 것 없이 하인을 불러서 시키구려.』

하며 초인종을 눌러 하인을 부른다.

순애는 반갑지 아니한 기색으로 손목을 끌려 아랫목으로 내려오며,

『이건 왜 이리셔요? 손목 놓으셔요, 아픈데.』

김중배는 못 들은 체하고 다시 팔을 벌려서 허리를 끼어안으며,

『글쎄 여보, 어쩐 일로 몇 해를 두고 보아야 하루도 얼굴을 펼 날이 없이 청년과부 같이 수심이 얼굴에 가득 하여 있으니.』

몸을 끌리어 내려온 순애는 거의 쓰러질 뻔하다가 보료 위에 털썩 주저앉는다.

김중배는 뒤로 돌아앉으며 두 팔로 순애의 가는 허리를 꽉 쥐어잡고 얼굴은 순애의 어깨너머로 넘기어 두 코가 서로 마주 닿도록 순애의 얼굴을 정신없이 들여다보며,

『얼굴이 암만하여도 전과 달라. 내가 마누라에게 하는 것이 정답지 아니해서 그리하오? 정말 무슨 병이 있어 그러하오? 무엇이든지 마음에 불합한 일이 만일 있거든 내외간에 말을 하여 주어야 하지 않소.』

순애는 남은 보기에 남편이라 하지마는 자기는 홀로 남편으로 생각지 아니하는 김중배가 마누라라고 부를 제마다 스스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불편하거늘, 한가지로 몸을 부딪치고 얼굴을 댄 것이 더욱 무섭고 싫은 생각이 조금도 진정키 어려운지라, 두 팔로 김중배의 가슴을 떠밀치고 김중배의 앞을 벗어나고자 애를 쓰며,

『망측하게 이게 무슨 짓이요? 오늘은 어째서 여느때보다도 일찌기 오셔서 이 고약을 부리시오? 옥향이 데리고 하던 짓을…….』

하며 몸을 뽑아 나오려 하나 사나이 힘을 어찌 당하리요. 이때에 지게문 밖으로서 하인이 부르는 소리에 들어오는 발자취 소리가 들리는지라 김중배는 하인이 들어옴을 보고 할일없어 안았던 손을 풀어놓는지라, 순애는 그물에 벗어난 새의 생각으로 얼른 일어서서 웃간으로 멀찌기 나가 앉는다.

지게문을 펄쩍 열고 계집하인이 들어오며,

『불러 계십니까?』

『영감 잡수시게 술 두어 잔만 데워 오너라.』

하고 순애는 웃간 영창 유리로 바깥 마당에 꽃송이 같이 떨어지는 눈발을 턱을 고이고 앉아서 내다보고 있다.

해는 이미 서산에 넘어가고 방안은 뜰앞에 가득히 쌓인 눈빛에 방안이 비치어 아직도 어두운 것같지 아니하다.

김중배는 순애에게 무안을 당하고 무료하며 또한 분하여 아무 말 없이 보료 위에 길게 누워 두 손으로 머리를 고이고 있다.

계집하인은 남포에 불을 켜서 방안으로 가지고들어오며, 하인 하나는 술상을 받들고 들어와 김중배의 앞에 들고 서서,

『영감마님, 약주상 들여왔습니다. 일어납시오.』

김중배는 감았던 눈을 번쩍 뜨며,

『응, 술상이냐, 거기 놓아라. 그러나 이 마님은 어디 가셨니?』

『저, 웃간에 계십니다.』

김중배는 몸을 기울여 순애를 내려다보며,

『여보, 이리 들어오우. 추운 날에 왜 웃간에 혼자 앉았어?』

순애는 부르는 소리에 깜짝 내 정신이 돌아와서 마지못하여 아랫간으로 돌아온다. 김중배는 하인을 보며,

『너희들은 밖에 나가 있거라, 이따 부르거든 들어오게.』

하며 계집하인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다시 순애를 치어다 보고,

『여보, 술 한 잔 따라주시오. 마누라 손으로 따른 술 한 잔 먹어봅시다그려. 외국사람들은 으례 사나이가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저녁밥의 반주는 아내가 상머리에 앉아서 따라주는 법이언마는, 아직 조선은 그런 재미를 알지 못하고 만일 저의 마누라더러 술을 좀 치라면 공연히 쌀쌀을 부리면서 흉해라, 망측해라, 내가 색주가인가 하면서 살풍경을 부리지. 그러나 우리 마누라는 학교 출신이니까 그렇지는 아니하겠지, 허허허.』

순애는 마지못하여 술상 옆에는 앉아 있으나 귀먹은 사람같이 못 들은 체하고 턱을 고이고 웃간을 향하여 있다.

김중배는 순애의 대답 아니함을 갑갑히 여기어 손을 들어 순애의 어깨를 잡아 몸을 돌이키며,

『여보, 남은 애를 써서 말을 하는데 왜 대답이 없소? 참 야속하구려, 어서 술이나 한 잔 따라주오.』

순애는 턱 괴었던 손을 기운없이 들어 주전자를 잡아다가 술을 가득히 따라놓고 역시 입을 벌려 말이 없다.

김중배는 따라놓은 술을 마신 후에 순애의 몸을 흔들며,

『여보, 글쎄 대답 좀 해요. 안에 무슨 성이 났고. 아아 내가 옥향이 하고 가까이 지낸다고 시기가 나서 그리하지. 그것도 뉘 죄요? 마누라가 이렇게 몰풍정하게 나를 대접하니까 어따가 마음을 붙이겠소, 자연히 다른 계집이라도 보고 싶은 생각이 나는 것이지 지금이라도 마누라가 내게 잘만 굴어주면 옥향이가 다 무엇이 요. 월궁 항아가 오더라도 소용이 없을 터인데.』

순애는 마지못하여 말하는 대답으로,

『내가 왜 옥향이니 금향이니 그까짓것을 내가 왜 말을 해요? 내 천성 본래 이 모양이라 그러하지요.』

『천성이 그러하면 전에는 그닥지 않더니 날이 갈수록 점점 더하여 가니 천성도 변하여 가는게지.』

『……….』

『또 벌써 저 모양이야. 간신히 말 한마디 하고는 도로 고개를 늘어뜨리고 근심이야. 여보, 술이나 어서 더 따르오. 화나는데 술이나 잔뜩 먹어줍시다.』

바람에 날리던 눈발은 이미 그치고 하늘에 덮였던 구름은 모두 흩어졌는데, 삼월 십사일 밝은 달은 동녘에서 돋기 시작하더니 홀연 대동강 상에 높이 떠서 잔잔한 물결이 금비늘이 울렁거리며, 지나가는 배에서는 노젓는 소리가 삐걱삐걱 들린다.

김중배는 수삼 배 술에 흥취가 도도하여 강편으로 향하여 있는 영창문을 모두 열어제끼고 눈 아래 보이는 강색을 바라보며,

『여보, 마누라! 여보, 순…… 순애씨, 이런 경치가 어디 있소? 술 아니 먹고 무엇하겠소? 그러나 나만 혼자 먹으니까 재미가 있어야지. 마누라도 한 잔 먹구려.』

하며 술을 가득히 부어 바른손으로는 잔을 들고 왼손으로는 순애의 어깨를 짚고 권한다.

『아이고, 내가 술이 무엇이야? 여편네도 술 먹나요. 남을 죽여놓으려고 그러시네.』

『여보, 다른 청은 아니 들을지언정 술 한잔 먹으라는 것을 그 청도 못 듣겠다? 아서라, 이놈은 야속치 않소.』

순애는 심히 권함에 이기지 못하여 술잔을 받아가지고 입만 대었다가 다시 도로 상 위에 올려놓는다.

『여보, 한 잔만 먹어요. 다시는 권하지 아니할 터이니. 만일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나도 몇 해 동안을 두고서 마누라의 말을 들어오던 일도 인제는 아니 들을 터이야. 정말 안먹을 터이요? 그러면 나도 강제로 행동을 할 터이니까.』

하며 위협한다. 순애는 술취한 사람의 위협을 당할까 두려워 술 한 잔을 죽기로 작정하고 받아 마셨더라.

『한 잔 먹고 나는 한 잔 아니 따라주오?』

순애는 술이 이미 전신에 퍼져 가슴은 울렁거리고 머리는 무거우며 얼굴은 뜨거워 바람을 쏘이고자 영창문 앞으로 가려는 다리가 이리저리 헛디뎌진다.

순애는 술 한 잔을 받아 마시고 웃간 영창 앞에 앉아 있으니, 이는 순애가 진실로 술이 취하여 그리함이 아니라 괴로이 하는 김중배의 옆을 떠나고자 하여 술취함을 핑계함이라.

그러나 전혀 술이 아니 취함도 아니니 영창문을 열고 더운 얼굴을 밖으로 내밀어 문지방에 이마를 대고 짐짓 술취한 모양을 짓는다.

김중배는 순애가 옆에 있지 아니하고 피하여감을 보고 오히려 분히 여기는 모양으로 웃간을 향하여 한참 바라보더니,

『여보, 이리 들어오우. 왜 그리로 나가 앉았어? 아 이 사람도 재미도 없다. 얼굴이 저만치 똑똑한데 쓸쓸도 하다. 얼굴과 성품은 아주 딴판이야.』

하며 혼자 말하듯이 하고 있다.

그러나 순애는 잠든 사람같이 몸도 움직이지 아니하고 가만히 엎디어 있음을 김중배는 더욱 갑갑히 여기어 몸을 벌떡 일어서더니 때릴 듯이 달려들어 순애의 엎디어 있는 모양을 한참이나 내려다보고 서서 있다.

백설 같은 그 목 뒤에는 붉은 기운이 올라선 앵두가 이슬에 젖은 것 같고, 한줌 만한 어깨와 밀가루로 빚은 듯한 두 손은 맥없이 문지방에 걸치고 있는데, 다만 보이는 것은 급한 숨결이 자주 색색할 제마다 가는 허리는 늘었다 줄었다 할 뿐이라.

이와같은 모양을 보고 섰던 김중배는 처음에는 적이 노한 기운도 없지 아니하였으나, 처음의 노여운 마음은 따뜻한 봄바람에 눈 스러버리듯 하고 도리어 다정한 마음이 일어나며 다시 그 사람의 아름다운 태도가 새로와진다. 김중배 가까이 옆으로 나아가 앉으며 순애의 어깨를 흔든다.

『여보, 술이 취했소? 술 한 잔을 먹고 그러한담. 내 옆에 앉았기가 싫으니까 공연한 핑계이지. 다시는 내가 술을 권하지 아니할 터이니 아랫간으로 내려갑시다, 응.』

순애는 오히려 대답이 없다.

김중배는 순애의 몸을 흔드나 죽은 사람과 같이 조금도 몸을 움직이지 아니하고 대답이 없으매 진정으로 술이 그다지 취했는가 의심하여 한 손으로 순애의 수그리고 있는 고개를 들고 들여다본다. 순애는 그때야 비로소 눈을 뜨고 다시 눈살을 찌푸리고, 두 손으로 김중배의 어깨에 붙든 손을 뿌리치며,

『글쎄 왜 이렇게 쫓아다니면서 귀치않게 굴으시오. 먹을 줄도 모르는 술을 한 잔이나 억지로 먹여 놓고 지금 속이 두근거려 못견디겠는데.』

『그러게 술은 다시 권하지 아니하겠다는데 그러한단 말이요?』

『술은 먹으란 말 아니하여도 술상 옆에 앉아 있기도 싫어요.』

김중배는 성난 모양을 지으며,

『어째서 그러해! 까닭을 말해야지.』

『술 냄새가 맡기 싫어서 그렇지요.』

하며 치마꼬리를 휩싸가지고 자리를 조금 피하여 앉는다.

김중배는 기가 막히는지 성난 얼굴이 다시 웃음으로 변하여 허허 웃으면서,

『아무리 아직 지각이 없기로 여편네는 여편네된 직분을 알아야지. 그렇게 내 옆이 잠시라도 싫어서 피하려고만 하면 내가 피해서 어디로든지 가리다.』

하며 분연히 웃옷을 떼어 입고 밖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순애는 조금도 겁내지 아니하고 그 사람의 하는 모양을 보고만 있을 뿐이라.

김중배가 밖으로 나아간 후 순애는 교교한 달빛을 향하여 마루끝에 나앉았으니 서늘한 바람에 아까까지 덥던 얼굴은 서늘하게 식었으며 가슴 속으로는 전사와 장래사가 서로 얽히어 생각난다.

순애는 달을 우러러 원정이나 하는 듯이 앉았으니 말은 없고 다만 길게 한숨만 쉬며 짧게 탄식할 뿐이요, 시시로 한 방울 두 방울씩 떨어지는 눈물은 치마를 적신다.

순애는 이미 재물도 원치 않고 영화로움도 반갑지 아니하며, 다만 뉘우치는 것은 전일 어린 마음으로 부귀라 하는 생각이 가득하였을 때요, 바라는 바는 소식이 돈절한 이수일의 안부 뿐이라.

이때 계집하인이 중문으로 좇아 달음질하여 들어오며,

『서울마님, 내려오셔요.』

하고 마루 앞으로 오는 소리에 순애는 깜짝 정신이 난다.

『무엇이라고 그리했니? 나는 무슨 큰 야단이나 줄 알았구나, 요란도 부리지.』

『아이, 마님은 그래도 못 알아들으신걸세. 서울 다방골 노마님이 오셨어요.』

『무엇이야! 마님이…….』

하며 말도 다 그치지 아니하여 오십여된 부인 하나와 그 뒤로는 십여세 먹은 계집아이가 조그만 봇짐을 들고 마당으로 좇아 들어온다.

순애는 그 모친이 내려옴을 보고 반가이 발바닥으로 마당까지 쫓아 내려가서 모친의 손을 붙들고,

『아이고, 어머니…….』

그 모친은 순애를 김중배에게로 출가시킨 후로 큰 성공이나 한 것같이 알 뿐 아니라, 사람의 어버이된 직분을 다하여 자식을 상당한 가문으로 보내어 출세케 하였으며, 또한 영화를 받게 하였다 하여 스스로 자랑하기를 마지아니하며, 다만 순애의 몸이 태평하고 그 집이 번창하여 날로 운수가 통길(通吉)하기를 축수한다. 그러하므로 일 년 동안이면 그 모친이 일이차씩은 반드시 그 딸의 얼굴을 보기 위하여 그 내외와 화합히 사는 모양을 보고자 내려오며, 순애도 또한 그 부모의 얼굴을 보고자 할 제마다 일없고 항상 한가한 몸으로 서울 친정에 왕래하기를 임의로 하는 터이라. 이날 그 모친이 내려옴을 보고 순애는 심히 반기었더라.

그러나 그 가운데에는 다시 반가이 기다리는 일이 있으니, 그 동안에 혹시 이수일의 소식을 듣고 전하여주고자 함이 아닌가 하여 은근히 기다린다.

그 모친과 순애는 방으로 들어와 좌정한 후 보통 하는 인사의 말은 모두 마치고 등잔 아래에 앉아 있는 순애의 얼굴이 혈색이 없어지고 심히 수척한 모양을 보고 염려되는 부모의 마음으로,

『이애야, 네 얼굴을 가만히 보니까 작년만도 못하였구나. 볼 제마다 얼굴이 나아가야 할 터인데 점점 못하여 가니 웬일이란 말이냐?』

순애는 모친의 묻는 말에 비로소 자기의 얼굴이 그렇듯 못하였나 하여 은근히 놀랐다.

『그래도 나는 어디 아픈 데는 없는데요. 너무 집안에만 혼자 들어앉아 있으니까 그런가요? 요사이는 마음이 울적하고 심란할 때는 많아요.』

『그러면 혼자만 끙끙거리고 있지 말고 너의 영감더러 말을 하고 의원을 보아야지. 그대로 두었다가 큰 병 되기 쉬울라. 우석우석 앓치는 아니한다 하더라도 저렇게 수척하여 갈 지경이면 속에는 무슨 병이든지 있게 그러하지.

순애는 대답이 없는데, 그 모친은 다시 무슨 생각이 깜짝 나는 듯이

『옳지, 그러면 태기가 있는 게로구나, 달구실은 거른 일이 없니?]

순애는 웃음을 보인다. 그러나 웃음이 그 말을 부끄리어 웃는 웃음이 아니라 그 말이 하도 우스워서 비웃는 웃음이 현연히 보인다.

『아이고, 어머니는 별소리를 다 하시지, 망측하여라.』

『그래서야 쓰겠니. 큰 병신 아닌 전에야 그다지 소식이 없을 리가 있나? 정말 있니 없니?』

『글쎄, 있기는 무엇이 있어요. 쓸데없는 말씀 작작해 두오.』

『여편네라는 것은 자식 낳는 것이 제일 큰 직분인데, 너는 없는 것을 큰 공이나 세운 듯이 아는구나. 지금은 아직도 젊은 마음이라 네가 우습게 아나보다마는 몇 해만 더 지내어 보아라. 큰 후회하는 날이 있을 터이니. 다른 사람 같으면 지금 네 낫세에 벌써 형제는 두었을 이다. 그런데 너는 당초에 소식도 묘연하니 그것으로 보면 몸에 무슨 병이 있기에 그러한게지, 병없는 사람이야 그럴 이치가 있느냐? 병이 있으면 한 나이라도 젊었을 제 고쳐야지. 너는 젊은 마음에 그까짓것이라고 우습게 알지마는 배우개 너의 시집에서도 너의 시부모가 어찌 태기 있기를 기다리는지 모른다더라. 너의 아버지도 일상 그 말씀이지, 그 애는 웬일인지 사오 년이 되도록 태기가 없으니 큰 걱정이라고.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은 계집의 수치라고 대단히 염려를 하시더라. 전에 집에 있을 때에는 동리집 어린 아이들이라도 어찌 귀여워하는지 모르겠더니 제 자식은 낳아서 귀여워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게지.』

순애는 얼굴에 부끄리는 빛이 나타나며,

『어머니는 다른 이야기는 아니하시고 그런 말씀만 하셔? 아이를 날 때 되면 어련히 낳을라구요.』

『그러기에 네 몸을 돌아보아서 몸에 병이 없도록 해야지, 몸에 병이 있고야 아이를 낳을 수가 있니?』

『어머니는 무슨 병이 있느냐고 말씀을 하시지마는 나는 생각에 병은 없어요……… 그렇지만 어머니, 나는 벌써부터 어머니를 뵈오면 말씀하자 하자 하면서도 이내 말씀을 못했지요마는 정말 나는 속으로 근심되는 일이 있어서요, 날이 갈수록 더해요. 그러느라니까 자연히 마음이 편할 날이 없어서 그 까닭으로 몸도 깨끗지 못하고 얼굴도 병 있는 사람같은 것이야요.』

그 모친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순애의 앞으로 무릎을 내밀어 가까이 나가 앉으며,

『응, 근심이 있어? 네가 근심이 무슨 근심이냐?』

순애는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는 치마끈만 가지고 폈다 접었다 하며, 그 모친의 묻는 말을 대답하기에 심히 주저하다가 눈에 눈물이 흐를 듯한 얼굴로 간신히 고개를 들며,

『나는 작년 가을에 이수일씨를 만나보았어요.』

『응, 수일이를 만나보았어?』

하며 그 모친은 크게 비밀한 일이나 들은 듯이 대답도 가만히 목소리를 낮추어 하며 그 안에는 하인들도 없고 다만 데리고 내려온 어린 계집아이만 한구석에 앉아 있건마는 모친은 고개를 휘휘 돌려 외인이 들을까 겁나는 모양이라.

『어디서 만나보았니?』

『작년에 서울 올라갔을 때에 서강 박보국집에서 만나 보았어요. 그 후에는 집에서도 소식을 모르시지요?』

『한 번 그렇게 나간 후에야 당초에 어디 소식이 있니.』

『조금도 소식이 없어요?』

『그렇지.』

하며 모친은 한편으로는 소식 들음이 반갑고 또 한편으로는 순애와 서로 만났다 함을 괴이하게 생각하였더라.

『거기서 어찌해서 만났더란 말이냐? 만나서 너더러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이나 하더냐?』

『말도 못하여 보았어요.』

하며 순애는 눈물을 씻는다. 그 모친은 만감(萬感)이 물레바퀴 돌 듯한다.

순애는 고개를 다시 들고 그 모친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런데 아버지도 수일씨의 소식을 모르신대요? 은근히야 아시겠지만 당초에 말씀을 아니하시는 것이지요.』

『아니다, 그렇지 않다. 알면 네 아버지라도 집에서 말씀을 하시겠지 숨기실 리가 있느냐마는, 정말 도무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 너는 박보국집에서 만나보았다니 어떻게 만났더란 말이냐?』

순애는 그때 만나던 일을 대강을 말하였더라.

그 모친은 듣기를 다하고 수일과 같이 만날 때에 다행히 남의 눈에 뜨이지 아니함을 심히 요행히 여기서 비로소 등에 졌던 큰 짐을 벗어놓은 것같이 숨을 돌렸더라.

『그래서 이수일은 어찌하더란 말이냐?』

『서로 모르는 체하고 지났더랬지요. 그렇지만…….』

『그리고 어찌 하였어?』

『그렇게 서로 헤어졌지요. 그렇지만 그 후로는 나는 더욱 근심이 되어서 못견디겠어요. 그 후에라도 그이가 잘된 모양을 보았으면 그래도 좀 낫겠어요. 그렇지만 의표도 남루하고 얼굴도 몰라보도록 수척하였어요. 나는 차마 자세히 보지도 못하고 잠깐 눈결에 한 번 보았어도 어찌 가엾은지 몰라요. 그런데 누구더러 조용히 물어보니까 새문 밖 사는 김정연이라고 하는 집장사와 돈놓이 하는 사람의 집 차인으로 가서 있대요. 그러느라니 자연히 고생만 되지요. 어렸을 때부터 서로 같이 자라나던 사람이 지금 그 모양이 된 것을 보니까 자연히 전 생각이 나서 마음이 좋지 못하고 나는 똑 설워서 못견디겠어요.』

하며 순애는 다시 치마자락으로 눈물을 씻는다.

『남매같이 자라나다가 그런 꼴을 보니까 네 마음인들 좋겠니?』

그 모친의 얼굴에도 수일의 말을 듣고 긍측히 여기는 기색이 가득하다.

『그런데 어머니, 내 말씀 좀 들으시오. 그 전이기로 그 생각을 아니한 적이 없었지요마는, 작년에 만난 이후로는 더욱 심사가 이상하고 근심이 되어서 하루 한시도 마음의 펴일 날이 없고, 저녁이면 그이의 꿈만 뀌고, 이리하다가는 마음이 숯검정 같이 타서 죽을 것 같애요. 아버지나 어머니를 뵈오면 소상히 말씀을 한 번 하자 하자 하면서도 말씀하기가 졸연히 어렵고 부끄러워서 지금까지 이내 말씀을 못하였지요마는, 그 일로 일상 근심을 하고 마음을 태우니까 자연 몸에도 해가 되겠지요. 병은 없어도 얼굴은 못되어가요.』

모친은 말을 들으면서 고개만 끄덕인다.

『그러기에 나는 어머니께 의논하고 수일씨를 어떻게든지 하여서 집으로 다시 와서 있게 하였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는 어디 있는지 있는 곳을 몰라서 그리하였거니와, 지금은 알았으니 아버지께서 가보시고 다시 들어오도록 하였으면 좋겠어요. 있는 곳을 알면서도 우 리는 모르는 체하고 있으면 우리가 인정없는 사람이 아니되요? 그렇게만 어머니·아버지가 해주셨으면 나는 지금 죽어도 원이 없겠어요.』

순애는 입으로는 말을 하나 그 목소리는 울음에 섞이었더라.

『그는 너로 말만하더라도 그렇겠지마는, 수일의 일로 말하면 집에서도 일상 하는 말이다. 어디서 지금 어찌나 하고 있는지, 헐벗고 굶지는 아니하는지, 너의 아버지하고 모여 앉았으면 항상 하는 말이다. 그렇지마는 수일의 하는 것이 정말 밉살맞어. 처음에는 너와 혼인하기로 상약하였던 일은 파의하니까 젊은 아이들의 일이라 골에 틀리어서 분한 마음은 없지 않겠지마는 아무리 성이 난다고 제 몸 생각은 도무지 조금도 아니한단 말이냐. 어린것을 데려다가 친자식이나 다름없이 그만치 장성하게 길러 놓으니까 그런 은혜는 조금도 생각지 아니하고 슬그머니 집에서 한 번 나아간 후는 일절 소식을 끊고 아니오니, 그런 인정없고 의리없고 영독한 놈의 짓이 어디 있단 말이냐. 그리고 또는 우리 딸은 너를 안줄 터이니까 너는 우리 집에 소용없는 사람이니 너는 네 마음대로 어떻게든지 하라고 우리가 무정한 말을 한 것도 아니오, 너의 아버지가 조용히 불러서 집안 사세의 말로 다 하시고 학교 졸업한 후에는 일본으로 유학까지 보내주마고 하셨더니 그게 제게는 좀 고마운 말이냐? 그런데 고마운 생각은 조금도 없고 도리어 원망을 하여서 그 모양을 하였고나그려. 가령 잠시는 성도 나겠지마는 저도 제 생각을 자세히 앞뒤를 헤아려서 보면 그닥지 할 일은 아닌데 너무 과했지. 제가 우리 집안 일을 아주 모르는 것도 아니오, 사리가 뻔한 자식이 그런 지각없는 짓을 한단 말이냐? 그것도 너의 아버지가 전에 수일의 부친께 크게 신세진 일이 있어서 그 은혜 갚겠다고 아무데도 갈 곳이 없는 어린 것을 데려다가 기른 것이 아니냐. 그러니까 저를 그만치 길러서 학교까지 졸업을 시키게 하여주었더니 그만하면 저의 부친의 은혜는 넉넉히 우리는 갚았겠다. 그런데 또 무엇을 제가 더 바라며 큰소리할 것이 무엇이냐? 우리가 너무 수일의 뜻을 길러주어서 그러하겠지마는 너의 아버지시든지 나든지 제가 한 일을 가만히 생각하면 조금도 귀여운 마음은 없고 미웁기만 하여. 그런데 지금 와서 다시 우리가 먼저 찾아다닌단 말이냐. 너의 아버지가 매우도 그리 하겠다.』

하며 그 모친은 단연히 거절한다.

『어머니, 아버지께서는 그렇게도 생각하시겠지요마는, 나는 암만하여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서, 지금 와서 가만히 생각하여 보니까 수일씨도 나무랄 수가 없고 어머니 아버지도 잘못하신 일이 없고 모두 다 내 잘못한 죄로 하여서 수일씨는 어머니 아버지를 원망하여 놓고, 어머니 아버지는 수일씨를 고얀놈으로 아시게 하였으니까, 속담에 매듭은 맺은 사람이 푼다고 나로 하여서 그리된 일을 내가 사이에 들어서 풀어야 할 것이야요. 그러니까 수일씨의 잘못한 죄는 내 죄로 알아주시고 수일씨는 다시 전과 같이 집에 와서 있게 하여주셔요. 만일 내 소원대로 그렇게만 하여주시면 내 가슴속에 근심이 없어지고 얼굴도 펴일 터이야요. 아버지께도 그렇게 말씀을 하여주셔요, 응 어머니. 만약 그렇게 해서주지 아니하시면 나는 이 근심을 이내 벗어보지 못하고 죽을 터이요.』

이와 같이 말하는 순애의 가슴은 자기의 지은 허물을 자백하는 것같이 생각이 되어 다소간 흉중이 시원한 것 같다.

『그닥지나 네가 말을 하니 집에 올라가거든 너의 아버지께 말씀을 하여 보겠다마는 아무러기로 그까짓 일에 근심을 하여서 병이 나도록 될 게야 무엇이냐?』

『아니야요. 정말 나는 그 일로 해서 점점 모양이 이 꼴이 되어가요. 밤낮으로 그 일만 근심이 되고 생각하면 속이 타는 것 같애서 도무지 견딜 수 없어요. 요전에 만나보기 전까지는 그래도 지금같이 근심은 되지 아니하더니 한 번 만난 이후로는 점점 더하고 애가 말라서 못 견디겠어요. 어떠한 때는 내가 무슨 팔자로 이 모양이 되어서 남의 몸까지 저 모양을 만들었는고, 나를 오죽이나 원망을 하랴 하는 생각이 나면 수일씨는 불쌍하다 할지, 가없다 할지, 나는 자나 깨면 일상 설운 마음 밖에는 없어요. 내 소원은 이외에 다시는 없으니 자식 하나 살려주시는 셈으로 수일씨를 전처럼 데려다가 집에 함께 있게 하여주셔요. 언제든지 서울가면 내가 아버지를 뵙고라도 말씀을 줄 터이지요마는, 어머니가 먼저 잘 말씀을 여쭈시오. 나도 쉬 올라갈 터이지만.』

그 모친은 아직도 쾌히 허락하는 대답이 없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개를 돌리어 다른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암만해도 내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다시 불러들이는 것은…….』

『어머니는 그닥지나 수일씨를 미워하실 것이 무엇이요? 일껀 아버지께 말씀을 잘 하여달라고 청하는 어머니까지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 어디 아버지인들 잘 말씀을 하시겠소?』

『네가 그렇게 말을 하니까 내야 듣지 아니할 리가 없겠지마는…….』

『그러면 그만두시요. 아니 들으시면 고만이지요. 아버지도 역시 어머니같이 수일씨를 미워하여서 그 말을 들어주시겠소? 그러니까 나도 믿지는 아니해요. 안 들으시면 그만이지요.』

하며 순애는 그 모친을 야속히 여기는 모양으로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다.

모친은 순애의 그 모양을 보고,

『애, 글쎄 좀 내 말을 들어라. 그리 말고…….』

순애는 몸을 돌리어 벽을 향하고 앉으며,

『그만두시오. 못 듣겠대서도 관계치 않아요. 그만두어요.』

『글쎄 이애야, 왜 이리하느냐? 아니 듣는 말이 아니다…….』

『그러기에 그만두시라는 말이야요. 나를 자식으로 알면 그리시겠소?』

하며, 순애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느껴가며 체읍한다.

『글쎄, 그까짓 일로 이렇게 울 것이 무엇이냐? 이상한 사람도 다 있지. 네 말은 내가 자세히 알아들었으니, 집에 가거든 너의 아버지께 잘 여쭈어줄 터이니.』

『그만 두…… 두어요. 나도 내 생각이 있으니까. 부모에게라도 청할 것 없고 내 손으로 내가 하지요.』

『내가 한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네가 무엇을 어찌한단 말이냐?』

『……….』

『서울 올라가면 자세히 여쭈어줄 터이다. 그다지 울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렇기에 어머니는 내 속마음은 자세히 알지도 못한다는 말이지요.』

『아이그나, 나는 알지 못하겠다.』

하며 그 모친은 적이 성품이 일어났는지 담뱃대로 재털이만 땅땅 두드리고 모녀 두 사람은 한참이나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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