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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몽/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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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 수루불견(垂淚不見)
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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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일이가 병원에 들어온지 이미 수삭이 넘었는지라.

심한 추위는 지나가고 일맥 양기가 돌아오는 초춘 천기가 되었더라.

뜰앞에 늘어진 수양(垂楊)은 푸른 기운이 선연히 나타나고 철쭉·신이화는 꽃망울이 붉고자 하는데, 여러 달 동안 치료받던 수일은 상처는 평복이 되어가나 몸은 자연히 수척하여 근력을 수습하기 어려운 터이라. 홀로 병실에 누워 창밖으로 멀리 봄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가 눈이 부신지 다시 옆에 놓였던 책을 집어서 한참 보니 기운 없이 책은 얼굴에 가리워지고 수일은 황연히 꿈결같이 무슨 생각이 왕래한다.

깬 것도 아니오 꿈도 아니오, 다만 운무에 싸인 몸과 같이 벗어나지 못할 때에 베개머리에서 사람의 부르는 소리에 깜짝놀라 고개를 번쩍 들고 치어다보니 와상 옆에 서서 있는 사람은 곧 최만경이라.

이날은 더욱 단장을 곱게 하고 눈결 같은 손목에 광채가 영롱한 금고리 낀 손으로 수일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반은 웃음을 머금고 내려다보는 얼굴은 더욱 아름다운 태도가 형언하기 어렵더라.

『곤히 주무시는 것을 깨워서 불안합니다. 오늘 온 것은 잠깐 당신께 할 말씀이 있어서 십분 동안만 말씀하고 갈 터이니 어찌 알지 마시오.』

하며 만경이는 허락하기를 기다리고 서서 있다.

『글쎄, 일전에도 그만치 알아듣도록 말을 하였는데 왜 또 왔단 말이요?』

『다른 말씀이 아니라 김정연으로 하여서 나는 아주 참 졸리어 못견디겠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씀이요. 나더러 이렇게 말을 한단 말이야요.』

『그런 이야기는 나는 듣지 않소.』

만경이는 원정한듯이 또는 어리광부리듯이,

『글쎄, 왜 그러시오? 너무 야속하구료.』

『아니, 오늘은 상처가 더 아파서 못 견디겠어요.』

『어째서 그리셔요, 도로 도지시는가요? 그럼 편안히 누워 계셔요.』

하며 일어 앉아 있는 수일을 등을 받들고 고개를 받들어 자리에 편안히 누이고 자기도 그제야 비로소 교의에 걸터앉는다.

『당신 앞에서 내가 이런 말씀을 여쭙기는 안되었지요마는 일전에 김정연씨를 여기서 만나서 같이 갔지요. 문밖에 나가서는 나는 다른 데 어디를 잠깐 다녀가려고 했더니, 김정연씨가 의논할 말이 있으니 제발 나하고 함께 가서 점심을 먹자고 해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끌려 갔지요. 일본 국수집에를 들어가서 점심을 사먹으면서 나더러 별 망측스러운 소리를 다 하겠지요. 그리고 제일 당신을 의심합디다. 나하고 당신하고 서로 좋아지내는 줄로 말을 자꾸 해요. 어찌 대답하기가 성가시러운지 몰랐어요. 그 양반도 나이로만 말을 하여도 그만 경우는 알 듯한데, 나를 무엇으로 알고 하는 말인지, 내가 기생 삼패와 같이 매음하는 계집 데리고 하듯이 하니,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일상 만나는 때마다 그렇게 나를 대접하니 나는 어찌해서 마음이 좋겠소? 엊그제는 너무도 분하고 원통하여서 울었지요. 그리고 다시 그런 말을 아니하도록 내가 그 자리에서 김정연씨를 보고 대단히 말을 하였지요. 그렇지마는 그 양반이 성품이 또 이상하여서 노갑이을(怒甲移乙)로 당신에게로 무슨 책망이 갈는지 알 수 없으니 내일로 인연하여서 당신이 그 양반에게 시비를 듣게 되면 내 마음에 불안치 않소. 그러기에 미리 내가 이러한 말씀을 하여두는 것이니, 이후에 혹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 가지고는 책망을 마시오. 이 다음에 김정연씨가 무슨 말을 당신더러 할는지 모르지마는 미리 생각을 하여 두었다가 잘 대답하여 주시구료. 당신이 조금이라도 나같은 것을 마음에 두고 계시는 것 같으면 그런 말을 들으시더라도 오히려 낫겠지요마는, 원수같이 싫어하는 내몸으로 하여서 남에게 말을 들으시는 것이 얼마큼 당신의 마음에는 불쾌하시겠지요마는, 당초에 나같은 것이 생겨나서 당신을 잊지 못하고 이렇듯 따르는 것이 전쟁의 무슨 업원(業寃)인 줄로 알아주시구료. 당신도 내 업원이요, 나도 당신의 업원이지요. 무슨 까닭으로 우리 두 업원이 이 세상에 생겨났던지 알 수 없소그려.』

하며 궐련 한 개를 내어 물고 기운없이 먼 산만 바라보고 심란한 기색이 얼굴에 가득하다.

수일은 보지도 아니하며 대답도 아니하고 목우인(木偶人)같이 누워 있을 뿐이라.

『여보 수일씨, 당신더러 전에 한 번 내가 이렇도록 당신을 잊지 못하고 생각을 하니 그런 줄이나 잊지 말고 알아달라 하니까 당신 말씀이 결단코 잊어버릴 리가 없다고 하셨지요? 그 생각을 하시오, 녜 수일씨? 설마 잊기야 하셨겠소.』

만경은 점점 앞으로 다가왔으며 책망하듯이 묻는 말에 수일은 예사로이 대답한다.

『잊어버렸을 리가 있소.』

만경은 수일의 얼굴을 원망하는 듯 미워하는 듯 사랑하는 듯이 들여다보고 있다.

이때에 사람의 소리가 있으며 밖으로부터 문이 열린다. 간호부 한 사람이 방안으로 들어서며 문밖에 서서 있는 늙은 남자 한 사람을 인도하는데, 그 노인은 고개를 기울여 방안을 들여다보더니 젊은 여자가 있음을 보고 다시 밖으로 나서며, 간호부를 손짓하여 부르더 니 무엇이라 가만히 말을 이르고 명함 한 장을 내어준다.

만경이는 어떠한 사람이 찾아왔는가 하고 잠깐 그 얼굴을 살펴보니 깎은 머리에 백발은 성성하고 얼굴은 수척하고 주름이 여기저기 잡히었으나 의포와 외양은 잠깐 보아도 점잖은 노인이라. 만경이는 어떠한 사람인지는 자세히 알지 못하나 귀빈이 문병을 옴인가 하여 얼른 몸을 일어 자리를 사양하고 한편 옆에 서서 있다.

수일은 간호부가 전하는 명함을 받아가지고 무심히 들여다보니 심택(沈澤)이라. 수일은 홀연 얼굴이 변하며 놀라기를 마지 아니하고, 몸을 돌이켜 벽을 향하여 누우며 명함 들었던 손이 스스로 떨리어 나오며 불일 듯하는 분기는 가슴이 메어질 듯하다.

그러나 한량없는 회포를 대표하는 눈물 한 점은 베개머리에 떨어진다.

간호부는 수일의 기색이 이상함을 보고,

『그 손님이 이리 들어오시래요?』

『나는 몰라.』

『녜?』

『이런 사람을 나는 모르겠다는 말이야.』

사람의 이목이 없을 것 같으면 찢어서 버릴 명함이라. 더럽다 하며 내던지매 명함은 홀홀 날아 마루 위에 떨어진다.

수일은 솟아나오는 분기와 끓어오르는 피를 간신히 진정하고 입을 악물고 눈을 감았는데, 몸에 덮여 있는 이불은 바람 앞의 나무 잎새같이 흔들린다. 간호부는 수의일 베개머리로 얼굴을 가까이 하며 목소리를 나직이 하여

『모르시는 양반이에요?』

『응, 나는 그런 사람을 도무지 알지 못하여. 다른 사람을 찾는 것을 잘못 안 것이지. 어서 나가서 모른다고 가라고 해요.』

『그래도 그 손님이 당신 함자를 알고 찾으시든데요?』

『글쎄, 아무렇든지 그렇게만 말을 해서 보내요.』

하며 간호부를 핀찬주듯이 하는 말에 간호부는 무료하여,

『그러면, 그대로 말하겠습니다.』

간호부는 마루에 떨어져 있는 명함을 다시 집어가지고 주저주저하면서 밖으로 나아가 수일의 말을 전한다. 심택은 문밖에 있어 들어오라 하기만 고대하고 있다가 그와같은 회보를 듣더니 명함도 받지 아니하고 한참 동안은 탄식하고 있다.

『허허, 나를 모를 리가 없는데 여러 해가 된 일이니까 잊었는지도 알 수 없지마는…… 그러면 내가 좌우간 직접으로 들어가 보겠소. 이수일이 쓰는 방이 이 방은 정연하지요?』

하며 문을 열고 들어간다. 교의에 걸터앉았던 만경이는 의외에 그 손이 들어옴을 보고 자리를 피하여 한편으로 가서 섰다.

심택은 수일의 누워 있는 옆으로 가까이 가서,

『이애, 수일아, 오래 만나지를 못하여서 내 이름까지 잊어버렸느냐?』

수일은 못 들은 체하고 돌아누워 있다.

만경이는 그 거동을 보고 무슨 연유는 있는 일이나 수일의 매정한 성품을 저 손님은 아직 모름이로다 하고 은근히 속마음으로 웃기를 마지 아니한다.

『이애, 수일아, 나다, 나야. 좀 내 얼굴을 보아라. 내가 벌써 찾아왔겠지마는 네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하여서 항상 걱정으로 지냈더니 일전에야 비로소 네 거취를 알았다. 그러나 그간에 몸을 대단히 다쳤다더니 좀 나으냐?』

오히려 수일은 대답이 없다. 심택은 방안을 돌아보며 다른 사람은 없고 다만 양복입은 젊은 여자 한 사람이 있으므로 마지못하여 만경을 향하여,

『이 사람이 아마 잠이 들었지요?』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는 만경이는,

『글쎄, 웬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며 만경은 수일의 와상 옆으로 가까이 와서 들여다 보니, 수일은 눈물이 두 뺨에 흘렀는데 느껴 나오는 울음은 소리만 머금고 두 어깨는 올랐다 내렸다한다. 만경이는 무슨 연고가 있음인지 알지 못하나 괴이한 일이라 생각하였더라.

『여보시오, 손님 오셨어요.』

수일은 간신히 입밖에 나오는 목소리로,

『아까도 말하였거니와 도무지 나는 알지 못하는 양반이니 어서 돌아갑시사고 여쭈어 주오.』

만경이는 수일의 뜻을 짐작하고 다시 깊이 묻지도 아니하고 심택의 얼굴을 바라보며,

『혹시 잘못 찾아오지 않으셨는지 모르겠으나, 이 양반께서는 당초에 아시지 못하겠다고 하시는데요.』

심택은 긴 수염을 두 손으로 비비면서 탄식하듯이 웃음을 짓는다.

『허허 내가 아무리 늙었기로 오륙 년 동안에 그다지 망령은 나지 아니하였는데, 아는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인지 그것도 분간을 못하고 찾아왔을 리가 있소? 그렇지마는 내얼굴을 당초에 모르겠다 하면 할 수 없지마는 늙은 것이 일부러 네 얼굴을 볼 양으로 이렇게 찾아왔으니 그 생각을 하고 잠깐이라도 내 얼굴을 바라보아다고.』

무엇이라 대답이 있을는지 귀를 기울이고 기다리니 수일은 도무지 대답이 없고 숨소리도 들리지 아니한다.

『이렇도록 간절히 말을 하여도 너는 듣지 않는단 말이냐? 성품도 편협도 하다. 그러나 수일아, 잘 다시 생각하여 보아라. 네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마는, 네가 지금까지 한 일과 오늘 내게 하는 짓이 아무리 생각을 하여도 온당하다 할 수가 없다. 사실의 잘잘못은 고사하고 네가 이 늙은 심택에게 대하여서 이렇게 할 수가 있느냐? 물론 너도 네 경위껏은 할 만한 말이 있을 터이니까 그 말도 내가 오늘 자세히 듣고자 하여서 찾아왔고, 나도 조그만치 너더러 할 말이 좀 있다. 그러나 오늘 일부러 찾아온 것은 너를 책망하려는 뜻으로 온 길이 아니라, 네 몸을 위해서 의논차로 온 길이다. 너는 아무리 나를 버릴지언정 나는 차마 너를 버리지 못하고 이렇게 늙은 몸을 끌고 왔구나. 당초에도 나는 조금도 너에게 섭섭히 한 일이 없다. 오늘날이나 오 년 전이나 내 마음은 일상 한 모양이다. 어찌하여서 조금인들 변하였겠니. 젊은 사람의 혈기로 전후를 깊이 생각지 아니하고 단지 한결같이 오해한 것을 나는 진정으로 가엾이 생각하였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라도 그 마음이 풀리지 아니하고 있는 것을 보니까 더욱 의외로구나. 처음부터라도 내가 네게 은혜 갚기를 바라고 있던 터는 아니로되, 네게 도리어 원망 받을 줄은 정말 뜻밖이다. 부자같이 서로 화목히 지내다가 늙은 몸이 살면 얼마나 살겠느냐? 우리 내외가 죽은 후에는 집안일을 네게다가 의탁하자 하였더니, 하치않은 일을 가지고 감정을 내어서 집안에서 나아간 후 소식까지 끊어버리니 내 마음이 어떠하겠니. 우리 내외가 모여 앉았으면 네 말이요, 자나 깨나 네 생각이다. 내 마음 같으면 지금이라도 전과 같이 집에 와있어서 함께 지내고 싶으나 네 마음이 어떠한지? 아직도 네 마음이 풀리지 아니하여서 듣지 아니하면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까 나인들 어찌하겠느냐. 너의 아버지 산소에라도 가서 너를 어려서 데려다가 오늘날까지 양육하던 내력과 사실을 말씀하고, 나는 지금까지라도 이렇듯 생각을 하지마는 수일이는 그 마음을 받지 아니하고 이리이리하니 본뜻은 아니로다, 인력으로 어찌할 수가 없으니 이 후에는 관계를 끊겠노라고 지하에 계신 너의 선친께 이런 말씀을 고할 터이다. 나는 또 한 가지 생각한 일이 있으니, 다른 말이 아니라, 가령 이 늙은 심택이가 잘못한 일이 있다 할지라도 이수일이라 하는 사람은 의리로 말을 할지라도 심택의 한번 실수쯤은 어떻게든지 참고 용서할 만하다. 만일 또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으면 온당하게 일을 조처할 것이지…… 나도 말을 하면 넉넉히 할 말이 이렇게 많이 있다. 그러나 오늘 온 일은 이 말을 하고자 온 것이 아니라, 내가 아무리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용서하여서 마음을 풀어버리기를 바라는 바요, 또는 전이나 지금이나 내 마음은 일반이니 제일 그 마음을 알아달라 하는 말이 다. 이애, 수일아, 오래간만에 만났으니 이 늙은 것의 얼굴이나 좀 치어다보려므나?』

수일은 오히려 입을 벌리지 아니한다. 심택은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여 몸을 일어 돌아누워 있는 수일의 얼굴을 들여다보고자 하여 자리 앞으로 가까이 나아간다.

최만경은 사실의 내용은 자세히 알지 못하나 그 손의 이야기에 인하여 듣건대 대강은 사리가 당연히 생각하였고, 또는 수일이가 눈물만 흘리고 대답이 없음을 보매 가장 익히 아는 사람을 짐짓 모르는 체함이니, 이는 필연코 깊은 사정이 있음이 분명한 줄로 헤아리고 사모하는 수일을 위하여 난처한 경우를 구원하리라 생각하였더라. 수일의 베개머리를 들여다보며 만경이는 심택이 말하기 전에,

『저는 여기 이 양반 병 구원자로 와서 있는 사람이올시다. 당신께서는 누구신지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마는 요사이 며칠째는 병인이 열기가 심해서 가끔 섬어(纖語)도 하고 울었다가 성냈다가 어떤 때는 미친사람 같애요.』

고개를 기울이고 만경의 얼굴을 바라보며,

『허허, 병이 그닥지 중하게 들었단 말씀이요?』

『녜, 때때로 그 증세가 있어요. 아까부터 듣자오니까 이수일씨하고는 연래로 친하신 사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서 대단히 실례가 되었습니다마는, 그것도 원정신이 없어서 한 일인 듯하니 아무쪼록 미타히 아시지는 마십시오. 그리하다가도 원정신이 돌아올 때가 있으니까 훗날 어려우시더라도 한 번 다시 오시면 좋을 듯하오이다. 오늘은 당신 명함이나 한 장 주시면 제가 가지고 있다가 정신이 돌아온 후에 보이고 자세히 말씀을 하겠습니다.』

『네, 그렇도록 말씀을 하시니 고맙습니다. 만일 수일의 병이 그러하면 말을 하여도 알아듣지는 못할 터이니 이 다음 날 다시 오지요. 나는 심택이라 하는 사람이요. 명함은 이러하니 수일이가 정신이 나거든 나 왔더란 말씀이나 하여주시오. 그러나 당신은 누구신지 모르겠으나 김정연씨 하고 친척되시는 양반이신가요?』

『아니올시다. 친척관계는 없습니다마는 김정연씨와 이수일씨와는 연래 한집안같이 정다이 지내서 오히려 서투른 친척보다도 낫지요. 그리고 우리 집이 요 근처에 있는 까닭으로 가끔가끔 문병 와서는 시중도 들고 하지요.』

『네, 그러시오. 나는 다섯 해 동안을 서로 어긋나서 수일이와 만나지를 못하였더니, 요사이 들으니까 수일이가 작년에 장가를 들었다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이 정말인지요?』

심택은 최만경의 아름다운 얼굴이 능히 사람의 정신을 현혹케 할지니, 수일의 병을 위하여 친히 와서 간호함을 내심으로 의심하였는 고로 없는 말을 지어서 물음이라.

『그런 줄을 몰라요. 수일씨가 장가를 가졌으면 우리가 모르고 있었을 리가 있습니까?』

『나는 장가를 든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요.』

하며 심택은 내렴에 생각하되, 그 미인의 용모와 동작을 보건대 어떤 사람의 딸도 아니오, 아내도 아니오, 학도도 아니라. 찬찬한 의복은 몸을 파는 계집인가 의심이 일어나기도 하나, 인사행동을 보면 그토록 천한 인물은 아니니, 심택은 용이히 그 여자의 내력을 알고자 하나 얻지 못한다.

그러나 정다이 지내노라 병구원하노라 함은 모두 실상이 아니오, 정당한 도리로 서로 아는 사람이 아니라 깊이 사람은 알지 못하도록 추한 관계를 맺은 자라 생각한다.

만일 그러하면 수일의 몸은 더욱 타락함이니 어찌 즐겨 전일 인연을 다시 이루리요.

좌우간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서 그 내용을 자세히 탐지하고 깊이 연구한 후에 다시 옴도 늦지 아니하리라 생각하였더라.

『그러면 나는 가겠습니다. 일간 한번 또 오지요. 그러나 입때까지 서로 말씀은 하였어도 뉘신 줄은 모르고 있었소그려.』

하며 심택은 교의에서 몸을 일어선다.

만경이는 손가방을 열더니 조그마한 여자의 명함을 내어주며,

『제 이름은 그것이올시다.』

『녜, 최만경씨라 하는구료.』

심택은 명함을 받아보고는 더욱이 최만경의 위인을 의심한다. 계집의 몸으로 방자히 명함을 가지고 있으며, 또는 영서(英書)로 최만경이라 써서 있음이 더욱 가증(可僧)하다.

응대가 여류하며 교제가 익숙함을 본즉 혹은 서양가서 유학하고 건너온 여자인가 의심한다. 그러나 마침내 일정한 이허는 해득치 못하고 병원을 나서 심택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손을 문밖까지 전송하고 만경이는 방안으로 들어오매 지금껏 죽은 듯이 누워 있던 수일이가 열기에 띈 사람같이 와상 위에 오뚝이 일어 앉아 있는데 수척하여 뼈만 남아 있는 손으로 주먹을 힘껏 쥐고 두 눈에 핏발이 왕래하며 원통하고 분한 기색이 얼굴에 가득히 나타난다. 만경이는 수일의 모양을 보고 깜짝 놀라 앞으로 가서 붙들며,

『여보, 왜 이리하오? 누워 계시오.』

『글쎄, 왜 이리오, 귀치않게.』

만경이는 핀찬을 오히려 달게 여기고 아양부리는 웃음으로 수일을 들여다보며,

『지금 내가 임시변통으로 대답을 좀 잘합디까. 그런 공은 모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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