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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몽/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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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놀이는 열두 시가 지나서 비로소 마치었는데 한 사람 두 사람씩 흩어지고 다만 남아 있는 사람은 심순애와 학생 복장 입은 남자 한 사람이요. 그 외는 주인 김소사와 그 딸 순이뿐이더라.

처음에 김중배도 그 윷판에 참여하여 한가지로 즐기고자 하니 그 사람의 노는 것은 그 놀음이 재미있어 그리함이 아니오, 다만 심중으로 흠모하는 심순애와 한가지로 지척(咫尺)에 앉아 있어서 서로 수작하는 영광을 얻으면 잠시라도 마음에 만족함을 얻을까 함이라.

그러나 좌중에 있는 여자 등은 모두 그 김중배의 사치한 의복과 서기 뻗치듯 하는 금강석 반지의 광채에 정신이 한결같이 그곳으로만 끌리어 그 신사의 부요한 것과 그 신사의 사나이다운 동작과 그 신사의 연기는 아직 삼십을 넘지 못하였으되, 이미 해외에 유학(遊學)하여 고등학문(高等學問)을 졸업하고 장래가 유망한 일개 청년신사로 금의환향함을 사람마다 모두 흠모하되, 더욱이 이 좌중에 있는 여자 등의 무한한 숭배를 받는다.

좌석 중에 학생복 입은 사람과 또 한 사람의 남자는 김중배의 고만무례(高慢無禮)한 행동을 무이 보아 그 신사를 바라보는 두 남자의 목자는 자연히 곱지 못하여 무슨 기회를 타든지 저와 같이 가증가통(可憎可痛)한 위인의 면피(面皮)를 벗기어 다대한 무안과 욕을 보이리라 하며 남자의 편에서는 은근한 사이에 벌써 사발통문을 돌렸더라.

윷놀기를 시작하여 편을 짜려 할 때에 제비(抽籤)를 뽑아 편을 가르는데 제비의 결과는 공교히 김중배와 심순애가 한편이 되었더라. 김중배는 나의 가장 흠모하는 여자와 한편이 됨을 하늘이 나로 하여금 성공케 도우심인가 하여 은근히 기뻐하되, 그 외의 남자는 더욱 미워하기를 마지 아니한다.

비로소 윷을 놀기 시작하여 반이 지내는데 형세는 김중배의 편이 거의 기울어지게 되었는 고로 김중배는 다른 사람은 업수이 여기고 짐짓 억지를 써서 남에게 지지 아니코자 하다가 처음부터 불호한 마음을 먹었던 남자 등에게 실책(失策)한 바 되어 드디어 다툼이 일어나니 과불적중으로 김중배는 홀로 남에게 무한한 수치만 받고 포두서찬(抱頭鼠竄)하여 돌아가니라.

모두 사람이 돌아간 후 심순애는 벽에 걸렸던 망또(滿套)를 내려 몸에 두르며 그 외숙모 김소사에게 하직하고, 학생 복장 입은 사람도 심순애를 따라서 외투 소매에 팔을 끼우면서 인사하고 한가지로 대문을 나서서 마주치는 찬바람에 몸을 움치고 발을 동동 구르며 두 손은 외투 주머니 속에 집어넣고 뒤에 떨어져 있는 순애가 오기를 기다려 학생은 말을 한다.

『여보, 순애! 아까 그 금강석 반지 낀 놈이 그게 웬 놈이야? 대단히 거만스럽던걸.』

『글쎄요, 그렇지만 여럿이서 너무들 욱박 질러서 무안을 주니까 보기에 너무 불안합디다. 나까지 무안하데.』

『그렇지, 그놈이 바로 교만한 태도를 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나도 어찌 밉살머리스러운지 더 망신을 주려다가 그 주인집 척분되는 사람이라기에 얼마큼 용서를 하였지.』

『글쎄 여보, 그것은 무슨 짓이요?』

『그런 놈은 사나이의 눈으로 보면 아니꼬와서 구역이 나지마는 여편네들은 어떠한지? 아마 여편네는 그런 사나이가 마음에 들지?』

『별소리가 다 많아 내가 알 수 있소?』

『몸에서는 향수 냄새가 훌훌 끼치고 손에는 금강석 반지가 번쩍번쩍하고 모양도 훌륭한 신사 같으니까, 필연 좋아할 터이지.』

하며, 학생은 조롱하듯이 허허 웃는다.

『나는 아니 그래요.』

『아니 그러한 사람이 한편이 되었을까?』

『그것은 제비가 그렇게 되었지, 내가 일부러 그리 했읍디까?』

『아무리 제비가 한 일이라고 말은 하지마는 한편이 되어 가지고는 과히 싫어하는 모양도 못하겠는데 그래?』

『여보, 그런 억지의 소리는 좀 하지 마오.』

『오백 원짜리 금강석 반지는 도저히 우리 같은 놈이야 바라볼 수나 있는 일인가?』

『아니 모르겠소. 아모리나 하오.』

하며 순애는 목도리를 치키며 얼굴을 반이나 가리운다.

『아, 추워.』

하며 학생은 어깨를 추썩거리며 옆으로 가까이 온다. 순애는 오히려 묵묵하고 걸어간다.

『아, 추워.』

순애는 또한 대답이 없다.

『아, 추워.』

순애는 그때야 비로소 그 학생을 돌아보며,

『왜 그리오? 아이고 이상스러워라 그건 무슨 짓이야.』

『추워서 못 견디겠으니 그 속에다가 좀 집어넣어 주게나그려.』

『무슨 속에다가?』

『그 망또 속에다가.』

『아이고머니, 숭해라.』

그 학생은 얼풋이 순애의 입은 망또 자락을 젖히고 몸을 그 속으로 넣는다. 순애는 웃기를 마지 아니하며,

『아이고, 이건 웬일이요? 망측하여라. 거북하여서 어디 걸음이나 걷겠소? 에그 저기서 사람이 오나 보오.』

이와 같이 조금도 꺼리지 아니하고 희롱하는데, 여자도 별로 금지치 아니하고 하는 대로만 그저 두니, 그 남녀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떠하뇨? 다름 아니라 그 학생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연하여 심택(沈澤)의 집에 십여 년 동안 붙어 있는 이수일(李守一)이니, 이해 여름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관비유학생(官費留學生)으로 동경(東京)에 갈 터인데, 이 학교를 졸업하는 날은 심택의 딸 심순애와 전일 언약과 같이 혼례를 이루게 된 사람이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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