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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몽/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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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장 사죄(謝罪)
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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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문밖 냉동 이수일의 집에는 적적히 빈 집같이 인적이 없는데, 수일은 홀로 방안에서 책상을 의지하고 손에는 두어 발이나 되는 편지 한 장을 들었더라. 이 편지는 순애가 자기의 허물을 회개하고 수일에게 용서하기를 바라는 뜻으로 호원(呼寃)하는 제이차의 편지라. 처음에 보낸 편지는 이 주일 전에 수일의 수중에 들어왔으므로 글자 하나도 빠치지 아니하고 보았더라. 그러나 편지 속의 사실은 향자에 백낙관과 문답할 제 수일의 대답한 바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뜻으로 순애의 호소하는 서찰을 일일이 보았더라.

그러나 지금에 제이차로 보낸 편지는 전에 부친 뜻과 조금도 다름이 없으리라 하여 자세한 뜻은 보지도 아니하고 겉봉만 떼어 편지를 펼쳐놓았다가 마음만 상하고 눈만 더러울 터이니 무슨 필요로 그 편지를 자세히 보리요 하는 뜻으로 편지를 구깃 구깃하여 한편 구석으로 내던졌더라. 순애의 마음은 그 슬픔이 어떠하였으리요.

두 번째 부치는 편지는 순애의 터지는 가슴을 발표하고 간절한 정경을 다하여 세상과 몸을 잊어버리고 자기의 죄를 자복하였을 뿐이요, 한 장 편지로 능히 수일의 마음을 돌이키리라는 생각은 뜻한 바이 아니라. 그런 고로 며칠을 지내되 다시 수일의 회보가 없음을 보고 순애는 더욱 슬픈 마음을 억제치 못하여 세 번째 편지를 보냈더라.

그러나 수일은 두 번째 편지도 자세히 보지 아니하였거늘, 비록 천백 번을 부치기로 수일은 어리석게 순애의 뉘우친 말을 보지도 아니하기로 결심하였더라. 그 후 며칠 지내어 순애의 필적이 우체로 다다랐으나 수일은 피봉도 떼지 아니하고 불 속에 넣었으며 그 필적이 눈에 띌 제마다 순애의 현형이 눈앞에 나타나며 평양 만수대에서 김중배와 한가지로 밀회하던 당시를 생각하고 분한 마음이 다시 일어난다. 그러함은 조금도 알지 못하고 하늘에 축원하여 이 몸의 천만 가지 마음의 만분 일이라도 그 사람에게 통함이 될까 하는 마음으로 조용한 틈만 있으면 반드시 수일에게 향하는 붓을 잡고, 한이 없는 회포를 종이 위에 늘어놓는다.

순애는 대동강에서 백낙관에게 구함을 입은 후 다시 김중배에게로는 가지 아니하고 그날로 평양을 등지고 서울로 향하여 친가 부모의 집으로 돌아왔더라. 처음에는 심택 내외가 지각없음을 꾸짖었으나 한가지로 먹고 있는 순애의 마음은 능히 변하지 못하고 날과 달을 친가에서 심란하게 보낼 제, 다만 주야로 바라는 바는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수일의 얼굴을 한 번 다시 보고 용서하여 주겠다는 말 한 마디를 기다린다. 이와같은 마음으로 네 번째 부친 편지도 수일은 돌아보지 아니하고 또한 불 속에 집어넣었더라.

그후 이삼일 지내어 순애의 필적은 다시 수일의 수중으로 들어오니, 다섯번째 오는 편지는 일이 손에 들고 안팎으로 뒤집어보며 피복을 떼려 하다가 다시 멈추고 혼자 생각이라.

(용서하여 달라는 말이겠지. 그 외에야 이 편지를 뜯어보아야 할 일이 있을 까닭은 없지. 만일 불가불 필요한 일이 있다 하여도 그 일은 필연 대답하기 어려운 일이겠지. 용서하여 달라하면 용서하여 주지. 또는 내가 용서하지 않는다 하여도 벌써 스스로 용서를 받은 사람 아닌가? 제가 회개를 하였다 하니, 회개하였으면 더욱 좋지. 회개하였으니 용서하여 달라는 말이나, 내가 입으로 용서하여 주마 하기로 그 말 한 마디가 무슨 필요가 있나? 그 말이 오늘날 이수일과 순애 사이에 무슨 영향이 있을 수가 있나? 회개하였다 하기로 여자의 한 번 더럽힌 몸이 다시 회복될 일도 아니요, 내가 용서하여 주마 하기로 김중배에게로 가지 아니하였던 전일 순애는 될 수 없지. 그러나 이수일이라 하는 사람은 십년 전 이십년 전 이수일이로 조금도 다름이 없는 사람이다.)

수일은 홀연 노기가 얼굴에 오르며 편지로 기둥을 탁 친다.

『이년 순애야…… 너는 죽어서 썩어도 더럽힌 몸은 썩지 아니하리라. 일이 모두 그릇된 오늘날이야 와서 회개니 용서니 하니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 일이냐? 아주 쓸데없는 일이다. 전일에는 결백한 몸으로 있는 순애니까 사랑하였지. 그렇던 몸을 네가 네 손으로 더럽혔으니까 인제는 내가 너같은 년을 원망하는 것이다. 또는 한 번 몸을 더럽힌 이상에는 그보다 몇 십배나 되는 덕행(德行)을 닦았다 하기로 그 더럽혔던 몸이 다시 결백한 몸으로 돌아오지는 못한다. 그러하기에 내가 무엇이라고 말을 하더냐? 대동강변에서 우리가 헤어질 때에 너더러 말하기를, 너에게는 내가 말해도 알 사람이 없으니 내 목숨이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우리의 인연을 끊을 수 없으니 내 마음을 가련히 여기어서 네가 결심을 하여달라고 명색이 사나이자식의 말 같지도 못한 말을 하여서 너더러 애걸하다시피 하였는데, 그렇든 이수일이를 배반하고 가서…… 무슨 면목으로 지금 다시 회개…… 그릇은 깨지고 물은 엎질러졌다. 사이만의(事已晩矣)라.』

수일은 다시 편지를 기둥에 두서너 번이나 때리며 두 손으로 비비 꼬며 있다. 그 후에도 계속하여 순애의 편지가 일 주간에 한 번씩은 반드시 오는지라, 보지도 아니하고 있는 편지는 보내고 보내건마는 보지 아니하는 순애의 편지가 거의 십여차에 이르렀더라. 수일은 그 편지가 올 제마다 피봉과 한가지로 불속에 들어가지마는 거의 잊어버려가는 순애의 이름이 어느 곳에 있어서 뉘우치고 슬퍼하는 줄을 은근히 잊어버릴 날이 없었더라. 여러 가지로 감구지회에 몸이 피곤한 수일은 방안 한가운데에 번듯이 누웠다가 홀연 잠이 들어 현세의 사실을 꿈속에서 배회하는데, 창 밖에서 녹음을 재촉하는 봄비는 처마에서 낙수 듣는 소리만 뚝뚝 듣는다. 때는 오후 일곱 시니 저녁을 짓느라고 부엌에 있던 노파는 곤히 잠이 들어 있는 수일의 몸을 흔들어 깨우는데 놀라 깨달은 이수일은 노파를 치어다보며,

『왜 그래?』

『밖에 손님이 오셨습니다.』

『어떤 손님?』

『백낙관씨라요.』

『응, 백낙관이…….』

하며 이수일은 급히 일어나며,

『어서 사랑방으로 들어가 앉으시라고 하게. 곧 나가오리다고.』

이수일은 백낙관을 한 번 작별한 후로 두서너 번이나 백낙관의 집을 찾았더라. 그러나 어느 때든지 가는 날마다 면회를 얻지 못하고 돌아와서 집을 안 후에는 이삼차에 이르도록 편지를 보내되 소식도 돈연히 그치는 고로 그 후의 여하를 최만경에게 물즉, 다른 일은 없이 그곳에서 거주한다 하는 고로, 과연 그 사람은 전일에 하던 말과 같이 절교코자 하는 사람인가 하여 부득이 심방하지도 아니하고 일삭이 넘도록 지냈더라. 그러나 오늘날 홀연히 그 사람이 스스로 찾아옴은 비록 절교는 한다 하였을지라도 전일의 구의를 거연히 그치지 못하고 이와같이 무한한 근심에 괴로이 지내는 이 몸을 생각하고 찾아옴이니, 붕우라 하는 것은 이와같이 서로 버리지 아니하는 정리가 있음이로다 하며, 수일은 물을 떠오라 하여 세수를 하고 총총히 밖으로 나아가서 방문을 열치니 백낙관은 있지 아니하고 아름답게 단장한 일위 여자가 부끄러움을 머금고 벽을 향하여 돌아서서 있다. 수일은 여자가 있는 모양을 보고 들여놓으려 하던 발길을 멈추고 자세히 좌우를 살펴보며 알지 못하는 사람이 방안에 들어와서 있음을 괴이히 여겨 아래로 위로 살펴보며,

『어떠한 여자신지는 모르지요마는 어찌하여 오셨소? 당신이 백낙관이라고 하시는 양반이요?』

그 여자는 대답을 이르지 못하고 얼굴을 들려 하였다가 다시 숙이고 몸을 돌이키려 하였다가 다시 구석으로 피하여 들어간다. 수일은 가까이 가서 그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홀연 목소리를 크게 지르며,

『무슨 볼일이 있기에 여기까지 찾아왔어?』

수일은 분기를 이기지 못하는 모양으로,

『응, 순애로구나. 네가 내 집에를 무슨 일이 있어서 왔느냐?』

순애는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가슴에 다닷치며 반가운지 슬픈지 알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호읍한다.

『글쎄, 무슨 일로 내 집을 찾아왔어.』

이때에 수일의 마음은 노할는지 원망할는지 욕을 할는지 슬퍼할는지 부르짖을는지 책망을 할는지, 일시에 만감이 교집하여 자기의 몸이 어떠함을 알지 못하고, 전신은 다만 떨리고 있을 뿐이라.

『수일씨, 제발 용서하여 주시오.』

하며 순애는 간신히 얼굴을 들어 수일을 향하여 바라보다가 노기가 가득한 수일의 모양을 감히 바라볼 근력이 없이 도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어서 가오.』

『……….』

『순애…….』

몇 해 동안을 주리고 듣지 못하던 그 사람의 음성은 홀연 반가우므로 순애는 수일의 얼굴을 향하여 바라본다. 수일은 분기가 가득한 눈으로 순애의 모양을 내려다보는데, 그 눈에는 님의 눈물이 가득하였으니 그 눈물은 알지 못게라, 누를 위하여 흘리는 것이뇨?

『지금 와서 우리가 다시 만나볼 필요가 없는 일이다. 또는 네가 무슨 얼굴로 내 얼굴을 대하니? 요전부터 여러 번 부치어 보내는 편지는 모두 내 손으로 받았으나 한 번도 떼어본 것은 없다. 편지가 오면 오는 즉시에 불에 살라버리었으니 이후에는 다시 편지를 부치지도 말고, 나를 찾아보러 올 생각도 하지 말아. 나도 일상 병으로 하여서 남하고 오래도록 수작을 할 수가 없으니, 어서 가요.』

무엇이라 말을 이루지 못하고 눈물에 어리운 순애를 내버려두고 수일은 홀로 문 밖으로 나아가 몸을 피코자 한다.

『수일씨, 내가 오늘 여기까지 찾아온 것은 아주 마지막 뵈옵고 죽으려고 왔으니, 당신 마음대로 죽이든지 살리든지 임의로 하여 주오. 전일은 어찌하였든지 오늘은 잠 동안만 용서를 하시고 내 말씀을 잠깐 들어 주시오.』

『말이 무슨 말이냐?』

『나는 정말 회개하였소. 여보시오 수일씨, 나…… 나는 인제야 후회가 납니다. 자세한 말씀은 요전에 편지로 써서 보냈건마는 도무지 한 장도 보시지 아니하였다니 후회한 내 마음이 어떠한지 아마 자세히 아실 수가 있습니까? 뵈옵고 입으로 말하자 하나 입으로는 다 말씀하지 못할 일 뿐이요, 편지는 쓸 줄 모르고 두서가 없이 하였지마는, 그래도 그 편지를 자세히 보아 주셨더면 대강이라도 내 마음이 어떠한지 알으셨을걸. 여러 가지로 당신 앞에서 사죄하는 말씀이라도 여쭙고 싶으나 막상 얼굴을 이렇게 대하면 무안하고 슬픈 마음 뿐이니, 목이 막히어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그려. 내가 오늘 이렇게 찾아온 것은 죽자고 작정하고 온 길이니 그렇게 알아주십시오.』

『그러하니 어찌하라는 말이냐?』

『이렇듯 굳게 결심하고 꼭 할 말이 있으니 아무리 괴로우시더라도 잠깐만 말씀을 들어주시오.』

눈물을 흘리며 두 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서서 있는 수일의 다리 아래에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수일은 오직 그 모양만 내려다본다.

『육년 전 삼월 열나흗날 그 날을 생각하겠지?』

『……….』

『그때를 생각 못하겠다는 말이야?』

『내가 잊어버릴 리가 있습니까?』

『응, 그러면 그때의 이수일이 마음을 오늘이야 네가 알겠지?』

『그저 내가 잘못하였으니 용서하여 주십시오.』

홀연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걸음을 빨리하여 밖으로 나아간 수일은,

『할멈, 할멈.』

부르는 소리 자주 들리며 마루로서 순애의 엎더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방안으로 향하여 오는 발자취 나더니, 노파는 방안으로 들어와 순애의 어지러이 울고 있는 모양에 놀라는 듯이 한참이나 말은 없고 들여다보고 있다. 이렇듯 아름다운 귀부인이 주인과 무슨 사단이 있어서 이렇듯 슬퍼하는고 하며, 가까이 나아가 순애의 어깨를 흔든다.

『여봅시오, 아씨, 주인 나리께서는 요사이 병환으로 하여서 노 자리에 누워 지내시던 터인데, 지금도 별안간에 근력을 차리실 수가 없어서 저편 방안에서 누워 계시니 이 다음에 또 오시더라도 오늘은 그저 가십시오.』

순애는 비로소 얼굴에 대었던 수건을 떼며 느끼며 나오는 목소리로,

『녜, 그러면 가지요.그러나 잠깐만 기다려 주셔요. 가슴을 좀 진정하여 가지고 가겠소.』

『녜, 그렇게 하십시오. 비도 아까보다는 더 쏟아지는 것 같으니 조금 그치거든 떠나시지요.』

하고 노파는 밖으로 나간 후 순애는 다시 솟아나오는 눈물을 억제치 못하고 실심하고 앉아 있다. 한참 동안을 지내나 손은 가려 하는 기색이 보이지 아니하는 고로 노파는 부엌으로서 다시 나와 본다. 순애는 그제야 비로소 흐트러진 매무새를 고쳐 하며 노파를 바라보고,

『그러면 나는 가겠습니다. 그러나 잠깐만 보고 인사나 하고 가겠으니 어떤 방에 누워 계신지요? 가르쳐나 좀 주세요』

『아니오, 관계치 않습니다. 그저 가셔도…….』

『잠깐 두어 마디 인사만 할 터이야요.』

『정 그러하시면 이리로 나를 따라오셔요.』

주인이 보내라 하는 손을 데리고 주인 거처하는 방으로 인도함이 심히 아름답지 못하다 생각하면서, 노파는 하릴없이 수일의 홀로 거처하는 방으로 지도하였더라.

어젯날 저녁에 깔아놓았던 자리를 날이 밝도록 걷지 아니하고 수일은 옷 입은 대로 그 자리 위에 쓰러져 누웠는데, 자리옷은 구깃구깃하여 한편 발치로 차내던지고 중병 후에 간신히 정신 차린 사람같이 무거운 고개를 베개 위에 던졌다. 생각지 아니한 때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애의 얼굴을 치어다보더니 몸을 일어 피하려 하는 수일의 옷은 벌써 순애가 쫓아와서 잡힌 바 되었으니, 순애는 수일의 옷자락을 두 손으로 더위잡고 그 앞에 꿇어 앉아 말을 이루지 못하고 눈물만 흘린다.

『이게 무슨 요사스러운 짓이야?』

하며 수일은 옷자락을 뿌리치려 하는 손을 순애는 두 손으로 붙들고 매달리며,

『수일씨.』

하며, 다시 운다.

『글쎄, 이것이 무슨 모양이야? 부끄러운 줄도 알지 못하고.』

『내가 잘못이니 다 용서하여 주시구료.』

『예엣, 듣기 싫어. 이 손을 놓아요, 안 놓을 터이야?…』

『수일씨.……』

『그래도 이 손을 놓지 못할 데야? 응?』

순애는 죽을 힘을 다하여 붙들고 있는 수일의 손을 더우기 놓지 아니한다.

두 사람의 얼굴은 점점 가까와 수그리고 있는 순애의 머리는 수일의 가슴에 닿았고, 수일의 고개는 순애의 어깨 너머로 나타났다.

(일평생을 다시 만나지 아니하리라 맹세하였던 그 여자의 얼굴을 이렇듯 가까이 접하여 앉아 있으니 아름답던 그 얼굴은 오히려 변하지 아니하고 전일 태도를 갖추어 있건마는, 실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순애는 이름은 순애로되 전일 순애는 아니로다. 내가 어찌하여 그 여자를 대하여 보리요…….)

이렇듯 생각하는 수일의 어지러운 가슴은 몽중도 아니요 현세도 아닌데, 다만 순애의 숙이고 있는 목 뒤만 내다보고 있다. 순애는 여러 해 동안을 두고 서리어 있던 회포가 수일을 향하여 앉아 있으니 거의 어지러운 마음이 미칠 지경에 이르지 아니함이 다행이라. 그 여자는 광채가 영롱한 금강석을 구하기 위하여 이와같이 따뜻한 수일의 손을 뿌리치고 돌아보지 아니하였도다. 크고 다시 큰 금강석이여…….

아무리 크고 다시 영롱한 금강석이라도 사람의 정성다운 마음보다는 가장 적고 다시 영롱한 광채에는 따르지 못함을 비로소 순애는 깨달았도다. 슬프다, 전일에 그와 같이 따뜻하던 기운이 지금은 어디 있느뇨? 진실한 전정으로 이 몸을 보호하던 따뜻한 손이 이제는 어느덧 없어지고 얼음같이 식어버렸도다. 한갓 수일의 얼음같이 찬 손을 두 손으로 더위잡고 호읍하는 순애의 슬픈 마음이야 어느곳에 비하여 말하리요.

『어서 가, 가라고 하여도 가지 아니하고 이게 무슨모 양이야?』

『두 번 다시는 뵈오러 오지 아니하고 오늘 마지막 뵈올 터이니 제발 내 죄를 용서하여 주셔요. 때리시든지 죽이시든지 마음대로 하셔서 나로 하여서 분하시던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버리시고 내가 회개한 말씀을 들어주시오.』

『예엣, 귀치않어.』

『그러면 분하신 마음대로 때리시든지 아주 죽여주시든지…….』

하며 순애는 더욱 손을 붙들고 매달린다.

『여간 그까짓 것을 가지고 내 가슴이 풀릴 줄 아느냐? 죽여도 시원치 않다.』

『그리게 죽여주셔요. 나도 당신 손에 죽고 싶어요. 어서 죽여주시오. 차라리 죽어 모르는 것이 좋겠으니.』

『죽을 터이거든 네 손으로 죽어라.』

수일은 이 몸을 손을 대어 죽이는 것도 오히려 손이 더럽다 생각함일까 하여 순애는 더욱 슬픈 마음을 진정치 못한다.

『죽어, 죽어, 어서 죽어…… 너도 한 번 내버린 사나이일 것 같으면 지금 와서 다시 이런 짓을 하지 말고 평생을 한 마음으로 왜 지내가지 않고 이것이 무슨 어리석은 짓이야.』

『나는 처음부터 당신을 저버리려는 마음은 없었읍니다. 지금까지라도…… 그러기에 자세한 말씀을 하겠다는 말이지요. 죽으라고 말씀을 하시지요마는 그 말씀이 없더라도 나는 벌써부터 죽은 사람이나 다름이 없고 속은 다 썩어서 숯검정같이 되었습니다.』

『그까짓 소리는 다 듣기 싫으니 어서 가. 가라면 갈 것이지 웬일이야?』

『나는 갈 수 없어요. 죽어도 이 자리에서 죽지요. 그대로는 갈 수 없어요.』

순애는 수일의 손을 더욱 단단히 붙들며 연연한 마음은 전후를 생각할 여가이 없고, 다만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수일의 몸을 떠나지 않고자 생각한다.

마침 문밖으로 발자취 들리면서 노파가 들어오는 기색이 있으므로 수일은 붙잡히고 있는 손을 뿌리치려 하매, 비록 여자의 약한 근력이라도 한마음을 굳게 먹고 일신의 기운을 두 팔에 모아 굳이 잡은 손은 조금도 움직이지 아니한다.

발자취는 문 앞에 와서 뚝 그친다.

『글쎄, 이 손 좀 놓아, 사람이 들어오니.』

『……….』

순애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오려 하던 노파는 의외에 그 모양을 보고 들여놓았던 한 발을 도로 밖으로 내놓고 다시 닫으며 영창 밖으로서,

『최만경씨가 지금 저 방에 와서 계십니다.』

수일은 홀연 진퇴유곡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는 모양이라.

『지금 곧 갈 터이니 거기 계시라고 하게.』

하며 수일은 다시 잡혀 있는 손을 흔들며,

『자, 인제는 놓아. 손님이 왔다는데 좋게 말할 때에 들어야지. 어서 놓아. 손님을 보고 와야지.』

『그러면 내가 여기서 기다리고 앉아 있을 터이니.』

『몰라, 있거나 말거나.』

하며 수일은 몸을 빼치고 밖으로 달음질하여 나아간다. 순애는 손을 뿌리치는 처음에 그 자리에 기운없이 엎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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