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몽/2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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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한몽
- 이수일씨 전 상장
- 부모의 은덕으로 세상에 출생한 이후로 오늘날까지라도 하나님과 부처에게 기도와 축원하여 본 적이 없던 이 몸으로 요사이는 일심으로 정성을 천지신명에게 드리와 존체의 복록을 주야로 축원하오며, 이곳은 멀지 아니한 목숨으로 병중에 떨리는 붓을 억제하고 흉중에 쌓인 회포 중 만분 일을 적사오니 다행히 이곳의 바라는 마음이 신명의 도우심을 입사와 이 편지를 한 번 보아 주시면 이 몸은 당장에 이 세상을 영결하와도 조금이라도 유한이 없겠사오며, 전일의 죄과로 하여 아무리 이 몸을 미워서 하실지라도 이제는 뉘우치고 목숨까지 끊으려 하는 가련한 계집이요, 죽을 때에 임하여 유언으로 아옵시고 이번 편지는 자세히 보아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 우리가 평생에 다시 만나뵈올 날이 없을까 하였삽더니 우연히 전일에 잠깐 만나뵈온 것은 하늘이 도우심인 듯하오며, 그 시에 이곳의 반갑던 마음은 어디다가 비유하올는지 몇 해 동안을 두고 가슴에 쌓이고 쌓였던 말씀은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먼저 앞서는 것은 눈물이오니 죽기는 원통치 아니하오나, 그때에 자세히 말씀 못한 일이 한이 되오며 눈물 사이로 잠시 바라뵈온 얼굴이 오늘날까지 눈에 잊히지 않사오며,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아도 모두 당신의 형용 같사오며 더욱이 요사이로는 슬픈 마음을 잠시도 억제치 못하와 눈물과 탄식으로 세월을 보내옵나이다. 여러 해 만에 얼굴 뵈오니 전 일의 화려하시던 모습은 조금도 없으시고 놀랍도록 수척하셨사오니 그때의 이곳 마음은 어떠하였겠사오며, 그간에 무슨 병환이 계셔 그러하심인가, 나의 허물로 하여서 근심으로 그러하심인가, 그 후로는 더욱 마음이 놓이지 않삽고 밤이면 흉한 몽사만 보이오니 아무쪼록 존체를 무병장수하읍도록 보중하옵시기를 축수발원하옵나이다.
- 이곳은 여자의 몸으로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알지 아니하옵고 뜨거운 얼굴을 무릅쓰고 댁에까지 가서 흉중이 지원하도 말씀이나 다 하올까 하였삽더니, 그때 여의히 말씀할 기회를 얻지 못하옵고 돌아와 할일없이 지필을 받자와 수자 아뢰오니 자세히 이곳의 마음을 살펴주시옵소서. 이곳의 죄악은 지금 다시 말씀하올 것도 없삽거니와, 우리가 하도 거연히 이별을 하와 그날로 이내 병이 든 몸이 하루도 깨끗할 날은 없삽고 눈물로 세월을 보내옵다가, 날이 갈수록 점점 병은 더하여 가옵고 가슴에 설움은 점점 쌓이어 수일 전부터는 자리에 누워 일지 못하옵고, 다만 마음에 생각나고 눈에 보이는 것은 낭군의 정상과 낭군의 얼굴이옵나이다.
- 이제는 이곳의 목숨이 멀지 아니하였사오니 비록 생전에는 지은 죄로 일만 가지 형벌을 당한다 하옵더라도 조금도 싫지 않사오나, 목숨이 없어질 때에 당하와서는 못 잊어하는 낭군의 앞에서 눈을 감을까 하였삽더니 죄악이 지중한 이 몸은 그도 여의치 못하오니, 이제는 다시 낭군의 얼굴도 뵈옵지 못하고 죄를 사하여 주신다는 말씀도 듣지 못하옵고 지하로 돌아가는 이 몸을 불쌍히 여기어 주시옵소서. 이 몸은 비록 자작지얼이라 하겠사오나 이와같이 고생과 근심을 면치 못하고 회개한 후에도 다시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되었삽건마는 이와같이 가련한 사정이 낭군에게는 조금도 통하지 못하옵고 지하로 돌아가옵기는 지극히 원통하와 이곳의 평생의 마음을 이 한 장 편지에 다 말씀하와 영결로 부치옵나이다.
- 평생을 두옵고 생각할수록 원통하고 한되옵는 것은 대동강변에서 이별하던 일이오며, 그 후에 우연히 서강 박보국 집에서 잠깐 만나뵈올 때 남 모르게 흘리온 눈물이 얼마나 되었겠삽나닛가. 그 후에 평양에서 죽으려 하는 이 몸을 구하여 주오신 백낙관씨도 우연히 만나뵈옵고 이곳의 설운 사정을 낱낱이 여쭈었사오나, 낭군께오서는 그 말씀을 듣자오셨는지 알지 못하옵거니와, 그 후로 사오차 편지마다 자세히 말씀하였건마는 한 장도 보신 일이 없다 하오니 아마도 모르실 듯하며, 이곳은 도리어 낭군의 그토록 무정하심을 원망하옵나이다. 쓸데없는 말씀을 여러 번 하는 것 같사오나 간절히 원되는 마음과 산란한 정신으로 지향할 곳이 없사와 박명한 이 몸의 실상 사정을 생각나는대로 대강을 적사오니, 다만 바라건대 이 목숨이 없어지기 전에 안녕히 지내신다는 글발 하나를 뵈옵고자 주소로 바라오며, 필연코 낭군은 이 세상 거친 물결에 괴로움과 근심으로 지내시는 듯이 생각할 때마다 이곳의 가슴은 일천 조각으로 무너지는 듯하오이다.
- 이곳은 사람의 철을 비로소 안 이후로는 첩첩한 근심이 몸에 떠날 때가 없이 지내오니 전생에 무슨 죄로 이 고생을 받삽는지 아침저녁으로 날아갔다 들어왔다 하는 까막까치도 제 낙이 있고 뜰 앞에 서서 있는 초목까지라도 제 즐거움은 모두 각각 있건마는 이 몸은 어찌 타 인생으로 태어나서 초목·금수만도 못하오며 하늘의 온화한 햇발을 보지 못하고, 옥중에 갇히어 있는 죄인이라도 기한이 차고 보면 다시 돌아오는 일을 바라는 마음이 있사오되, 이 몸은 목숨이 없어지기 전에는 이 근심과 이 설움을 잊을 날이 없사오니 이 사정을 어찌하면 좋사오리까?
- 하해같이 넓으신 낭군의 도량으로 가련한 이 몸의 신세를 살펴주옵소서. 이런 말씀은 하는 것이 도리어 부끄럽사오나 죽어가는 목숨으로 무슨 말씀을 못하오리까. 본래 김중배에게로 갔사옴은 이곳의 마음으로 하온 일이 아니옵고 원수를 맺느라고 그리 되온 일이오며, 수삼년을 김중배와 부부간으로 지내었사오나 애정이라 하는 것은 하루도 두어본 일이 없고, 날이 갈수록 그 얼굴을 보면 원수를 대한 것 같사와 이름이 내외간이라 하였삽지 실상은 부부간 정의를 허락한 일이 없삽다가, 하루는 그 원수의 흉계에 빠지와 몸을 더럽히고 십년 공부가 허사에 돌아갔사오니 이곳의 마음에도 부끄럽거니와 지하에 가서라도 이후에 낭군을 무슨 면목으로 뵈오랴 하는 생각으로 죽기를 결심하고 대동강수에 몸을 던졌삽더니, 액운이 미진하였삽던지 마침 그 강에서 백낙관씨가 낚시질을 하시다가 잔명을 구하여 주신 연고로 다시 구차한 목숨을 오늘날까지 보존하였사오며, 그날로부터 평양을 버리고 친부모의 집에 의탁하여 오늘날까지 지내오니, 김중배와 인연은 이미 끊어진 지가 오래 되었삽나이다. 그때에 백낙관씨는 이곳의 의리 없음을 질책하옵시고, 본래부터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연고로 처음에는 이수일을 속이고 이제는 다시 김중배에게 정절을 지키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와 같은 여자를 어디다가 쓰겠느냐 말씀하셨사오나, 처음에도 낭군에게 그렇듯 큰 죄를 지었삽건마는, 그 시에는 죄가 되는 줄을 알지 못하고 이제 와서 비로소 깨닫사온 어리석은 이 몸으로 지금에 절개 잃는 것을 어찌 깨닫삽나이까?
- 본래부터 어리석은 계집이온 고로 산을 넘고 물을 격하여 멀리 내다버리듯 하였사오되 무엇이라 감히 말 한마디를 못하고 죽은 사람같이 있삽건마는, 어떠한 사람이 이 몸을 불쌍히 여기어 건져주고자 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생각할수록 지원하오며, 낭군께오서는 이곳의 정상을 어찌 알고 계시옵나이까? 어리석은 사람으로 알지 못하옵고 지은 죄와, 민첩한 사람으로 알고도 일부러 지은 죄와, 그 죄의 경중을 비교하오면 어떠한 펀이 중하다 하겠나이까? 어리석은 물건으로 감히 이러한 말씀을 하는 것은 도리어 부끄러운 일이오나, 백 가지 천 가지로 생각을 하와도 다만 의심하옵는 것은 낭군의 마음이옵나이다. 태산이 무너지고 하해가 마를지언정 낭군의 순량하시던 천품으로 그와같이 악한 직업을 구하여 그 길로 발을 들여놓으실 줄은 실로 몽상하던 밖이오며,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낭군을 지목하여 악한 무리라 하오며 원수같이 볼 뿐 아니라, 이곳은 서강 박보국 집에서 잠시 만나뵈올 때에 비로소 그 말씀을 듣삽고, 이곳은 며칠 동안은 따로이 낭군의 신분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지내었삽나이다. 낭군께서도 여러 가지로 생각하신 일이 있어서 그러하심인 듯하오나 이 세상의 사람이라 하는 것은 높아졌다 낮아지기도 하오며 낮았다 높아지는 일이 있사오니, 아무쪼록 예전에 뵈옵던 이수일씨가 되어주시기를 지성으로 바라옵나이다. 이 세상에는 낭군보다 민첩치 못한 사람들도 높은 지위를 얻사와 명성이 혁혁하옵는데 무슨 연고로 낭군은 이와같이 좋지 못한 영업을 고르고 고르오셔 남보다 뛰어난 재질을 진애중에 버리고자 하시옵는지 이곳은 실로 원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옵나이다. 어리석은 이 몸이라도 그때에 마음이 잘못 들지 아니하옵고 낭군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옵고 모시고 있었던 그러한 의사를 두실 때에 즉시 간하고 말리어 못하시도록 하였사오련마는 이미 그릇된 일을 지금 다시 말씀하온들 무슨 유익이 있겠삽나이까? 이곳은 제 몸의 일평생을 스스로 그르쳐 놓았을 뿐이 아니오라 장래가 구만리 같은 낭군의 몸까지 그르쳤사오니, 그 생각을 하면 눈에서 피가 흐르며 무엇이라 사죄하올는지 하늘이 두렵삽나이다. 아무쪼록 이곳의 지은 죄를 널리 널리 용서하여 주시고 다시 또 용서하옵시기를 천만 번 바라옵나이다. 이곳은 그때에 무슨 연고로 김중배를 쫓아갔사오며 어찌하와 그 말을 거절치 못하였사오며, 또는 어찌하여 낭군의 말씀을 복종치 못하였는지 이제 이르러 그 일을 생각하면 일장춘몽과 같사오며, 그때는 전혀 맑은 정신을 잃고 일시 동안은 악마에게 홀리어 제 몸으로 능히 제어치 못하옵고 즐기어 스스로 비참한 운명을 행하고 좇아갔사오니, 모두 다 이곳의 팔자 소관이옵고 신운이 불행한 연고인 듯하오이다. 그때 대동강에서 이별하고 어디로 가오실 때 낭군의 분하오시던 마음으로 사 나이의 힘으로 이곳의 목숨을 낭군의 손으로 없이하셨더면 지금 와서 이런 근심이 없사올 것이요, 만일 그렇지 못하오면 낭군의 손으로 이곳을 끌고 산중으로라도 데리고 가셨으면 지금에는 얼마나 신세가 다행하와 한집안에서 화목히 지내고 있을 것을 하오며, 어리석은 이곳은 이렇듯 항상 어리석은 생각만 나옵나이다. 낭군이 이제라도 이곳의 허물을 용서하옵시고 피차에 흉금을 푸와 화조월석에 서로 이끄옵고 전일의 대동강 이별하던 일을 고담에 붙이오면 그 즐거운 마음이 어떠하겠삽나닛가?
- 세상도 귀치 않삽고 목숨도 중치 않삽건마는 다만 날로 몸에 떠나지 않고 시시로 품속으로부터 내어보는 보배는 당시에 낭군이 두고 가신 낭군의 사진이옵나이다. 세상에 아무리 좋다 하는 것을 보아도 눈에 즐거움이 없사오나, 다만 낭군의 사진을 뵈오면 일만 근심이 사라지옵고 다시 어렸을 때부터 낭군과 지내오던 일을 생각하오면 하염없이 흐르는 것은 눈물이옵나이다.
- 그러하오나 그 사진이 여러 해가 되어가옵는 고로 점점 빛이 변하여 가옵는 것이 아깝사오나 그 사진조차 목숨이 오래지 못한 사람의 보배인 줄 짐작하고 그러하옴인 듯, 이곳이 죽어 지하로 가올 때는 그 사진도 한가지로 관 속에 넣어달라고 모친에게 유언을 하였사오며 옥을 잃고 다시 돌을 구하려 하오나 얻지 못하옵고 근심으로 지내옵던 이곳은 우연히 일전에는 낭군의 댁에서 신시대의 일 미인을 만나보옵고 그 미인에게 여러 가지로 수치를 당하였사오나, 이미 이곳이 잃어버린 보배가 그 여자의 수중에 있사오니 다시 무엇이라 항거하여 말씀하오리까? 모두가 이곳의 잘못이오니 수원수구(誰怨誰咎) 하오리까? 처음부터 그러하오신 줄 알았삽더면 이곳이 댁에까지 갔을 리가 만무하올 것을, 이곳은 조금도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하옵고 도리어 낭군에 근심을 끼치고 왔사오니 깊이 용서하여 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이 외에도 하올 말씀은 산과 바다 같사오나 한이 없는 이곳의 가슴을 지필을 받자와 어찌 다 하오며 단문한 필법으로 무엇이라 형용하여 아뢰오리까? 기운은 시진하옵고 잡은 손은 떨리와 원통한 이 가슴을 다 말씀 못하오며, 영결로 아뢰옵고 붓을 던지오니, 원컨대 낭군은 내내 존체를 보중하옵시고 지원극통하게 지하로 돌아가는 이곳을 불쌍히 여겨 주옵시기 유명지중(幽明之中)에서 바라옵나이다.
- 오월이십오일
- 목숨이 조석에 있는 심순애 상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