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몽/29장
슬프다, 순애는 드디어 성광(成狂)하였도다.
삼월 십사일 교교한 달 아래 대동강에서 이수일을 버리고 순애는 김중배의 집으로 출가한지 이미 육 년이 되었더라.
순애는 김씨의 문하에 발을 들여놓는 날부터 한갓 결심한 마음이 있어 다시 수일의 허락을 듣지 아니한 후에는 몸은 어떠한 사람에게든지 허락지 아니하리라 하고 날로 수일의 소식 듣기를 기다리나, 그러나 수일의 소식은 묘연하여지고 다만 해를 따라 즐거움은 없어지며, 더하여가는 것은 뉘우침이요, 춘풍추우에 다만 수심을 거듭하여 누흔(淚痕)이 날로 새로우며, 일시는 대동강수에 몸을 던지다가 여의치 못한 후 친가로 돌아와 병든 몸을 부모에게 의탁한 후로부터는 더욱 증세 험악하며, 우수사려가 몸을 떠날 사이가 없이 드디어 잠을 이루지 못하며 조석을 입에 대지 못하고 정신상(精神上)에 갖가지 이상(異常)을 더하여 입으로 하는 말도 전후가 착란하며 때없이 웃으며, 때없이 체읍하고, 그 동작도 변환이 무상하여 이미 일개 보통 병인으로 일정치 못함에 이르렀더라.
순애는 드디어 총독부의원 정신병 환자실에 수용한 바 되었으며, 병명은 「메랑고리아」의 급성이러라.
심택의 부부는 주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병원의 간호를 지극히 하니, 순애의 정신은 이미 흩어져 보아도 분간치 못하며 들어도 해석치 못하고, 살아 있는 시체와 같은 순애 베갯머리를 떠나지 못하는 늙은 부부의 상심하는 모양은 모르는 사람의 눈으로 보아도 눈물 흘리지 아니할 사람은 없을지라.
순애는 간혹 기운이 내릴 때는 진정하여 전일과 같이 고요히 잠든 모양을 지었다가 홀연 기운이 오르면 얼굴은 술에 취한 사람과 같이 붉어지며 다만 입으로 부르 는 말은 수의 이름이다.
처음에 병원으로 입원할 때에는 의사의 말이 삼사 개월만 치료하면 쾌히 나으리라 하더니 날이 갈수록 점점 더하여 몸이 더욱 쇠약하여 가고 증세는 만성(慢性)으로 향하여 때때로 기운을 수습치 못하고 혼미하여 자리에 몸을 버리었다가, 증세가 발작하는 때는 얼굴에는 무슨 두려운 물건이 엄습하여 오는 듯이 겁하는 모양이 보이 며, 몸을 주체치 못하여 흐트러진 머리를 두 손으로 잡아 뜯으며 부르짖으며 우는 모양은 사람의 눈으로는 차마 보지 못할지라.
이러한 때에 순애의 이르는 바는 모두 수일의 이야기라. 그 두려워하는 것은 수일의 노한 얼굴이요, 수일에게 대한 자기의 죄목이며, 그 설워하는 것은 자기 허물이요, 자기에게 대한 수일의 원망이라 하는 말 뿐이요, 또는 홀연 수일이가 자기를 데리러 왔다 하여 기꺼워하며, 혹은 수일과 한가지로 가겠다 하며 문 밖으로 뛰어나가려 하여 웃기도 하여 울기도 하여 정경은 가능하나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하다.
이와같이 증세가 발작하는 때 적고 진정하는 때가 많으나, 진정한 후에는 오히려 맑은 정신이 없고 다만 울울침침하여 푸른 얼굴과 파리한 몸은 거의 인사를 깨닫지 못하며 의사와 간호부가 무슨 말을 물어도 결코 입을 벌리지 아니한다.
그러나 약이나 음식을 권하면 대답이 없어도 다만 점두할 뿐이요, 주야를 떠나지 아니하는 모친에게 대하여는 어린아이와 조금도 다름없이 의복을 입는 것이든지, 미음을 마시는 것이든지 모두 모친의 손을 기다리며, 그렇지 아니한 때에는 한구석에 머리를 숙여 의지하고 조용히 앉아 있으나, 만일 남의 위로하는 말을 들으면 그 말이 감촉된 결과로 반드시 발작되는 고로 병원에서는 문병하는 사람을 금하는 터이라.
모친이 순애의 가슴에 맺혀 있는 것은 수일의 일인 줄을 알며, 또는 증세가 발작할 때마다 부르는 것은 수일의 이름인 고로, 어찌하면 수일을 한 번 만나게 하여 그 원이나 한번 풀어주고자 간절이 생각한다.
사랑하는 여식의 병을 근심하여 요사이로 안절부절 못하는 심택의 부부 두 사람이라. 모친이 잠시도 순애를 떠나지 아니하고, 심택은 비가 오든지 바람이 불든지 반드시 하루에 한 번씩은 병원에 와서 순애의 곁에 와서 병의 증감을 의사에게 의논하여 순애의 동정을 살피는 터이라. 그 모친은 항상 말하고자 하다가 조용한 틈을 타지 못하였다가, 이날은 심택을 병실에서 조용히 만나는 것을 기회 삼아 비로소 입을 연다.
『여보, 영감은 저 애 병을 어찌 알고 계시오?』
『어떻게 알다니?』
하며 말하는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는 모양으로 아내의 얼굴만 바라본다.
순애는 아까부터 역시 그 증세가 발작하여 방안으로 돌아다니다가 이제야 비로소 진정하여 와상 위에 몸을 버리고 자는 듯이 누웠는데, 모친은 혹시 잠이나 들었나 하여 잠이 깨지 않토록 나직한 목소리로,
『글쎄, 저 모양을 좀 보오. 영감은 마음에 잔인치 아니하오?』
『어찌하여서 불쌍한 생각이 없겠소? 창자가 끊어지는 듯하오.』
『영감은 그 모양으로 간간이 보시지요마는, 나는 주야로 그 모양을 보고 있으니 그 마음은 어떠하겠소?』
하며 눈물을 짓는다.
『그저 우리 내외의 팔자소관이지, 보나 아니 보나 마음은 어찌 잠시인들 놓이겠소.』
『하필 올에 와서 한낱 자식을 이 모양 만들어놓을 줄은 몰랐구료.』
심택은 이윽토록 대답이 없이 다만 유리 영창으로 먼 산을 바라보고 앉아 있다.
『지금 그런 말을 하면 무엇하오. 딸도 불쌍하지마는 모두 우리 팔자가 기박하여 그러하지 더 말할 것 있소? 내가 일상 하는 말이지마는 우리 집안에는 전부터 실성한 사람은 없으니까 순애도 병으로 하여서 잠시 그러한 것이지 정말 실성이야 하였겠소? 이 여름이 지나고 초가을이 되면 병도 좀 낫겠지. 너무 근심하지 마오. 우리가 근심한다고 아니 나을 병이 나을 리도 없을 것이요, 이 병원에는 유명한 의사가 하나 둘이 아니니 의원 지휘하는대로만 하고 있으면 나을 때는 낫겠지. 마누라도 일상 이렇게 붙들고만 있을 수가 있소? 하루 이틀에 나올 병도 아닌데 차라리 저 애는 아주 병원 의사에게 맡기고 며칠간 동정을 보아서 마누라도 집으로 갔다가 하루에 한 번이든지 이틀에 한 번이든지 와서 보면 좋지 않겠소?』
『대체 영감은 일상 그렇게 늘어진 소리만 하십디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면 낫겠다 하니, 그 애가 저 모양이 되어가지고 가을까지 살아 있을 듯하오? 살아 있다 하더라도 병은 점점 더할 터이요. 의원의 말도 아마 고치기가 어려운 모양입디다. 그러하니 조금이라도 병이 더하기 전에 어떻게든지 해주어야지 그렇지 아니하면 필경 미쳐서 죽을 모양이니 어찌하면 좋단 말이요?』
『글쎄, 나도 그런 염려가 없는 것은 아니야. 의원의 말도 병 증세가 요사이같이 한 모양으로 오래되면 대단히 위태하겠다고 하기에 나도 그것으로 하여 큰 근심이요. 그러나 화타·편작 같다는 의사들이 그렇게 말하는데 나더러 어떻게 하라니 내가 어찌한단 말이요?』
하며 심택은 수미를 찡기고 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만 자주 씻는다.
하늘은 눈이 부시도록 청랑하며 뜰 앞의 나뭇가지에는 매미소리가 비로소 들리나, 아직도 땀을 흘리도록 더움에는 이르지 아니하였더라.
멀리 격하여 있는 시료실(施療室)에서는 여러 환자가 요란히 출입하는 소리 때때로 바람을 따라 들린다.
『어떻게 하시라는 것이 나는 다른 말이 아니라, 저 애는 병중에 정신을 몰라도 노상 부르는 것은 이수일이니, 어떻게든지 한 번만 수일이를 만나게 하여 주었으면…….』
요사이로 순애의 모친은 간절히 말하고자 하던 바는 이 말이라.
심택은 그 말을 들은 후에는 문득 길게 한숨을 지으며 고개를 숙인다.
『글쎄, 아까도 순애가 이수일의 이름만 부르지 아니합디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보고 싶어 하니 한번 보게 하였으면 저 병이 혹시 나을는지 아오.』
심택은 오히려 고개를 들지 아니하고 이윽토록 침음하더니 홀연 드는 얼굴에는 눈물이 양협에 젖어 있다.
『아, 지금 이 모양이 되어서 한탄한들 후회막급이요. 모든 일은 다 내 잘못이지, 누를 한하겠소? 딸 자식을 이 모양 만들어놓은 것도 내 허물이지. 김중배라 하는 자가 그렇듯 부랑한 줄은 모르고 부자의 집안이요, 어려서부터 일본 가 유학을 하였다 하기에 얼마큼 나는 어리석은 마음에 후일을 바라고 억지의 일을 하였다가 인제는 그 벌역을 내가 당하는가보오. 이혼까지 하였으니까 그 사람하고는 남남이 되었으니 다시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그렇다고 지금에 다시 이수일을 불러오자 하면 내 가죽을 벗기는 것이 낫지, 무슨 면목을 들고 이수일의 얼굴을 본단 말이요.』
하며 늙은 눈에 흐르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씻는다.
『이왕 그릇된 일을 말씀하면 무엇하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도리 하는 것이 제일 상책이지요. 그 애 말을 들으니까 오륙 년 동안을 두고 밤낮으로 이수일을 생각하고 근심으로 지내다가 이 병이 난 것이니, 조금이라도 병이 더치기 전에 이수일이가 와서 보고 정답게 말 한마디만 하여주면 곧 정신차리고 병이 나을지도 알 수 없지요. 의원이든지 약이든지 할만큼은 다 하여 보았건마는 그래도 효험이 조금도 없으니 인제는 별수 없이 내 말대로 그렇게 하는 수밖에는 없을 듯하오. 영감 생각에는 어떠하신지?』
『마누라 말과 같이 그렇게 해서 딸의 병만 나을 것 같으면 내 얼굴은 뜨거운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자식 하나 살릴 욕심에 수일이를 찾아보고 절이라도 하고 데려오려고 하겠소마는, 이수일이가 그렇게 얼른 올는지 모르겠소. 요전에도 딸의 청으로 마지못해서 병원으로 찾아갔을 때도 수일의 하는 모양이 대단하고 눈도 거듭떠보지를 아니하던데…….』
『그때는 그랬더라도 그것은 벌써 이태나 되지 않았소? 수일이도 그간에 분한 마음이 좀 풀렸겠지요. 그리고 순애의 몸이 지금과 그때와는 아주 다른 거지요. 그뿐 아니라 지금 순애가 이러저러해서 병으로 죽게 되었으니 한 번만 와서 보아달라고 간절히 말을 하면 철석간장이 아닌 다음에야 저인들 어찌 못하겠다고 대답하겠소. 저도 순애와 한집안에서 남매같이 십여 년을 자라나서 그 생각을 한들 순애가 이 지경이 되었다 하는데 어찌 회심이 되지 아니하겠소. 대체 영감은 마음이 너무 약하십니다. 제가 우리를 원망하는 것은 원망이고, 우리에게 은혜진 것은 은혜지요. 은혜진 생각을 하기로 제가 어찌 우리의 말을 거역한단 말씀이요. 저도 가만히 생각하면 의리에 걸려서라도 감히 못하겠단 말은 아니하오리다.』
『마누라의 마음에는 내면으로만 당기어 말을 하니까 그렇지마는, 저런 사람은 또 제 생각이 따로 있다오. 그러하니까 내 생각 하나만 가지고 좌우를 용이하게 판단하여 말할 것은 아니외다.』
하며 다시 고개를 대고 전일에 수일을 병원으로 찾아갔을 때에 심한 냉대를 받고 수치당한 일을 우연히 생각하여 지금에도 오히려 이마에서 땀이 흐름을 깨닫는다.
이때에 홀연 병상에 누워 있던 순애는 소리를 지르고 몸을 벌떡 일어 병상 아래로 뛰어내리며 옷끈을 풀어 헤 치며 백설 같은 가슴을 드러내놓고 바른 손 둘째 손가락 을 깨물며 선이 흐르듯 하는데, 눈을 천정을 향하여 보며 두 손을 모아 무엇을 받을 듯이 하고 방안으로 돌 아다닌다.
순애의 부르짖는 소리에 놀라 밖으로서는 의사와 간호부가 일제히 들어와 병인의 기운 가라앉을 방법을 베풀며, 심택의 부부는 순애의 옷을 붙들며 팔을 잡고 순애 돌아다니는대로 한가지로 따라다니며,
『이애, 이게 웬일이야? 정신 좀 차려라 어서 저기가 눕지,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