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몽/32장
때는 이미 오후 십일시라.
총독부의원 정신병환자실 수부구(受付口)에 남자 두 사람이 명함을 전하며 환자 중 한 사람에게 면회하기를 청하는 고로 처음에 밤이 깊었다 하여 면회를 사절하는지라. 그러나 그 부득한 사세가 있음을 고하매 수부하는 곳의 사람은 즉시 명함을 들고 환자실로 들어간 후 이수일 두 사람은 회보 있기를 기다리고 문 앞에 서서 있을 때에 그 안으로 좇아 환자실에서 들리는 소리는 우는 소리, 웃는 소리, 부르짖는 소리가 잠시도 끊일 사이가 없이 추추(啾啾)하여 현세 인간의 목소리 같지 아니하다.
다시 한편을 바라보니 사무실 옆으로 철책을 둘러 실성한 광인을 수용하는 병실이 눈에 뜨인다.
슬프다, 순애도 귀곡성과 같은 목소리로 부르짖기를 마지 아니하며 감옥보다 더욱 엄하게 경계하는 속에 갇히어 있는가 생각하매 두 사람은 홀연 모발이 송연함을 깨닫겠더라.
두 사람은 흡사 음부(陰府) 문 앞에 서서 있는 듯하여 다시 들어간 사람이 나와 회보하기만 기다리고 있다.
조금 있더니 두 사람을 안내하는 자가 있어 순애의 거처하는 병실로 향하매, 문 앞에 이미 나와서 두 사람의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심택은 반가운 눈물을 금치 못하며 수일의 손을 잡더니 말을 이루지 못하고 다만 눈물만 흘릴 뿐이라.
백낙관은 이수일과 심택의 두 사이를 헤치며 위로하듯이,
『이리 할 것이 아니라 우선 급한 일부터 먼저 해야지. 그러나 좌우간 병인은 지금 어떠한 모양이오니잇가?』
심택은 비로소 눈물을 거두며,
『지금은 조금 진정하여 정신을 모르고 앉아 있으니 어서 들어가서 보아주오.』
『자, 그러면 수일이, 어서 들어가세.』
하며 백낙관은 이수일을 재촉하여 순애의 병실로 들어간다.
보건대 와상 위에 살아 있는 순애의 시체는 대리석상(大理石像)과 같이 앉아 있다.
그 모친은 남자 둘이 들어옴을 보고 순애의 흐트러진 머리와 풀어놓은 옷깃을 수습하여 준다.
순애는 전일 미혼 시대의 얼굴은 거의 없어지고 다만 다년 풍상에 마음의 고초를 받던 나머지 흔적은 현연히 얼굴에 나타난다.
그러나 지금의 순애의 형용은 피어오르던 꽃이 서리에 이울어 마음과 같아여 거의 생기는 일점이 없고, 전기등불 아래에 보이는 얼굴은 더욱 푸르고 희며 근육이 얼굴에 솟아 전일의 아름답던 모양은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다. 인사의 변천이 이러하도다. 육년 전 춘광은 이미 예전이 되고, 한 번 웃으매 백태를 자랑하던 화려한 빛을 이제는 장차 어디서 구하여 보리요!
이수일과 백낙관은 한가지로 눈물을 머금으며 다만 순애의 변한 얼굴을 바라볼 뿐이요, 한 방안에는 적적하여 담화하는 소리는 잠시 동안 들리지 아니한다.
『여보 순애씨, 나는 백낙관이요. 여기 이수일씨도 데리고 왔소.』
하며 백낙관의 웅장한 목소리는 한 방안의 적막한 기운을 깨친다.
『이애 순애야, 네가 기다리고 보지 못하여 하던 수일씨가 여기 왔는데 알지 못하니?』
두 사람에게 인사할 기운도 없이 얼굴을 가리고 다만 와상 옆에 쭈구리고 앉아 있던 그 모친은 참지 못하여 순애의 몸을 흔들며,
『순애야, 수일씨가 여기 왔어. 좀 보아라. 밤낮으로 수일씨 말만 하더니 수일씨가 이렇게 와도 몰라보는구나. 그렇게 기다리던 수일이도 몰라보니…….』
하며 그 모친은 다시 치마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만 흘린다.
『여보 순애씨, 내가 이수일이요. 얼굴을 자세히 보오.』
하며 수일은 순애의 옆으로 가까이 나아가 순애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순애의 수척한 손목을 고요히 잡는다.
그러나 순애의 보는 눈은 다른 곳을 향하며 잡히어 있는 손을 뿌리치고 무엇이라 홀로 중얼거린다.
백낙관은 위연히 길게 한숨을 진다.
『아, 언제든지 우리가 평양 대동강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에 순애씨 말이, 「어떻게 하였으면 이 죄의 용서를 받겠느냐」고 나더러 가르쳐달라 할 제, 내 말은 「그대가 결심하기에 달렸다」고 하고는 인하여 작별하였더니 그때는 아마 순애씨가 그 말의 의미를 못 알아들었나 보오. 그러나 순애씨, 순애씨는 그 뜻을 못 알아들었어도 자연히 다 알아졌구료. 지금은 순애씨가 죽은 사람이나 다를 것이 없소. 죽은 사람에게 무슨 죄가 있겠소. 당신은 벌써 용서를 받은 사람이니 인제는 안심하고 예전 순애씨가 다시 되어주오. 응 순애씨!』
그러나 순애는 조금도 맑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므로 심택은 여러 사람의 심려함을 불안히 여긴 모양으로,
『지금은 아마 정신이 없나 보오. 조금 있으면 맑은 정신이 돌아올 때가 있으니까 잠깐 저편 방으로 가서 담배나 한 대 태웁시다. 수일이도 저편 방으로 가자.』
하며 병실에는 그 모친만 남기어두고 세 사람은 한가지로 문을 열고 나아가려 할 즈음에 순애는 소리를 지르며,
『수일씨!』
하며 부르는 소리가 괴상히 나오는데 세 사람은 일시에 발길을 멈추고 모두 순애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러나 순애의 향하여 보는 눈은 수일의 얼굴을 향함이 아니라.
『수일씨, 수일씨!』
하며 순애는 다시 부르짖는다.
수일은 드디어 참지 못하여 순애의 옆으로 급히 나아가 두 손으로 순애의 어깨를 껴서 붙들며,
『수일이가 여기 있소, 순애 순애…… 수일이가 여기 와서, 응, 알겠소?』
한 방안은 다시 고요하여지고 순애의 목자는 점점 움직여 수일의 얼굴로 향하며 이윽토록 바라보더니 홀연 흰 얼굴에 일점 붉은 기운이 돌며,
『아이구머니, 수일씨…….』
그제야 순애는 비로소 정신이 돌아왔음이라. 그 목소리는 슬프고 그 양안에는 구슬 같은 눈물이 흐르며 수일의 팔에 머리를 숙이고 섬섬한 두 팔은 수일의 옷자락을 더위잡았다.
『용서해 주오, 용서해 주어요. 수일씨, 제발!』
『응, 용서하지!』
『어서 용서해 주시오.』
『용서해, 용서. 순애, 벌써 용서하였소. 염려 마오.』
『용서하셨어요? 아, 좋아라. 수일씨, 인제는 죽어도 내가 원혼이 아니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