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잠정합동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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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선국(大朝鮮國)과 대일본국(大日本國)정부는 조선력으로 개국(開國) 503년 6월 21일, 일본력으로 명치(明治) 27년 7월23일 두 나라 군사(軍士)들이 한성(漢城)에서 우연히 충돌한 사건을 타당하게 조정하고 또 조선국의 독립(獨立), 자주(自主)의 큰 터전을 더욱 공고히 할 것을 꾀하고 아울러 통상 무역(通商貿易)의 길을 극력 장려하고 발전시켜 두 나라 사이의 우의를 더욱 두터이 하기 위하여 잠정한 합동 조관은 다음과 같다.

1. 이번에 일본국 정부(日本國政府)는 조선국 정부(朝鮮國政府)에서 내정(內政)을 바로잡을 것을 절실히 바랐고 조선국 정부에서도 그것이 바로 급하고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고서 권고에 따라 힘써 시행하게 되었다. 각 조항을 분명히 믿고 착실하게 시행한다.

1. 내정을 바로잡을 조목 가운데서 경성(京城)과 부산(釜山) 사이, 경성과 인천(仁川) 사이에 철도를 건설하는 문제는 조선 정부 재정이 넉넉하지 못함을 고려하여 본래 일본 정부 또는 일본국 공사(公司)와 합동할 것을 약속하고 제때에 공사를 시작하려고 하였으나 조선 정부의 현재 복잡한 사정으로 처리하기 어렵다. 다만 좋은 방법을 계획하여 될수록 기약한 바를 빨리 성취시켜야 한다.

1. 경성과 부산 사이, 경성과 인천 사이에 일본 정부에서 이미 설치한 군용 전화선(軍用電話線)은 지금의 형편을 참작하여 조항을 협의하여 정하고 그대로 둘 수 있다.

1. 앞으로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될수록 화목하게 하고 통상(通商) 업무를 장려할 것을 고려하여 조선국 정부는 전라도(全羅道) 연해 지방에 한 개의 무역항(貿易港)을 열도록 승인한다.

1. 금년 7월 23일 대궐 가까운 곳에서 두 나라 군사가 우연히 충돌한 일을 양측이 각각 추후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언명한다.

1. 일본 정부는 평소 조선국을 도와서 독립과 자주의 대업을 성취하게 할 것을 희망하므로 앞으로 조선국의 독립과 자주를 공고히 하는 문제는 일의 적의성에 상관되므로, 따로 두 나라 정부에서 파견하는 관리들이 모여서 협의하여 대안을 결정한다.

1. 이상에 열거한 잠정 조항을 수결하고 도장을 찍어 정한 후에 적당한 시기를 참작하여 대궐을 호위하는 일본 군사를 일체 철수시킨다. 이상의 잠정 합동 조관 안에서 영원히 준수할 것은 뒷날 다시 조약을 맺고 준수한다. 이를 위하여 두 나라 대신(大臣)들은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어서 증빙 문건으로 삼는다.

대조선국(大朝鮮國) 개국(開國) 503년 7월 20일 외무 대신(外務大臣) 김윤식(金允植)

대일본국(大日本國) 명치(明治) 27년 8월 20일 특명 전권공사(特命全權公使) 오토리 게이스케〔大鳥圭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