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탑/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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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怨讐의 正體

이 해상감옥에서 미치광이라고 불리우는 늙은 중 우월대사의 탈옥(脫獄)의 계획은 전연 수포로 돌아가고 말었다. 조그만 계산의 차이로 말미아마 감옥밖으로 뚫으고 가노라는것이 같은 지굴감방인 봉룡의 방으로 나오게 된것이다.

『아아, 이것이 모다 주님의 뜻인가 보오!』

그러면서 우월대사는 미칠듯이 신음을 하면서 자기 발밑에 꿇어앉은 봉룡을 물끄럼이 내려다 보았다. 놀라움과 감격과 기쁨에 어쩔줄을 모르는 봉룡이었다.

『아아, 당신은 누구시오니까? 당신은 저를 위로하여 주시고 제게 힘을 주시였습니다! 누구시오니까?』

『나는 우월대사— 미치광이 중 우월대사다.』

그러면서 우월대사는 입까에 슬푸고도 쓸쓸한 우슴을 지었다.

『그래 대사는 무슨 죄로 이 무서운 감옥에 들어 오셨습니까?』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비밀결사(秘密結社)를 조직하고 삼천리 강토에서 왜인을 일소하려다가...... 음, 그대보다 五년이나 먼저 이 감옥으로 들어왔다. 음...... 일이 이렇듯 되고보니 인제는 모든것을 단념할수밖에 없다!』

『대사께서는 어째 그리 락망을 하십니까? 한번 해서 않되면 두번 하고 두번 해서 않되면 세번하고.......』

『음, 그러나 그대는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다는것을 모를것이다. 송굿과 논저같은 도구를 만드는데 四년이 걸렸고 한아름 되는 돌을 파내는데 二년이나 걸렸다. 그뿐인가? 파낸 흙과 돌을 감추기 위해서 천장을 뚫으고 그속에다 올려 쌓다. 아아, 지나간 十년동안의 피눈물 나는 노력이여! 그러나 하늘은 나를 돕지를 않으셨다! 나는 인제는 자유로운 몸이 되기를 단념할수밖에 없는것이다.』

봉룡은 머리를 숙였다. 년이라는 긴 세월을 걸려 五十척이나 되는 땅속을 파내서 그것이 성공한댓자, 바다에 깎은듯이 솟아있는 쉰길, 여쉰길, 아니 백길이나 되는 험준한 벼랑턱이 아닌가. 거기서 내리뛰여서 바위에 머리를 부디치지 않고 요행 바다에 떨어진다 하여도 거기서 十리나 二十리를 헤엄처 나가야 될것이 아닌가. 그 모든 위험을 각오하고까지 늙은 우월대사가 이 거대한 계획을 세운것을 생각할때, 젊은 봉룡은 지금까지 한번도 가져보지못한 그 어떤 굳세인 용기와 강렬한 히망을 품기 시작하였다.

이윽코 봉룡은 우월대사를 따라 굴속을 지나서 우월대사의 감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봉룡은 이 우월대사가 실로 훌륭한 학자라는것을 알았다. 불교와 크리스토교를 비롯한 종교학(宗敎學)의 대가일 뿐만 아니라 철학, 문학, 과학, 심리학등에 관한 심오한 조예를 갖고 있는 사실을 알고 봉룡은 놀랬다.

생선 가시로 펜을 만들고 연기 꺼미로 잉크를 만들어서 힌 샤쓰를 종이 삼아 한국독립에 관한 일대 론문(論文)을 기록했을뿐 아니라 미치광이라고 불리우는 이 늙은 승려(僧侶)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한마디 한마디의 그 심오한 인생철학은 젊은 봉룡이의 풍부한 감수성과 명민한 이성을 극도로 자극하였다.

봉룡은 그순간, 우월대사가 이렇듯 훌륭하고 총명한 어른이라면 혹시 자기 자신도 헤아릴수 없는 자기의 불행한 운명의 실마리를 분석하여, 무슨 이유로 자기가 이 무서운 감옥에 부뜰리여 왔는지를 가르켜 줄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한줄기 히망을 품기 시작하였다.

『대사, 저는 정말 아모런 죄도 없이 이런 불행한 몸이 되었습니다. 어째서 이런 불행한 몸이 되었는지, 저는 이 불행을 그 누구에게...... 나를 이 무서운 모함에 넣은 그 누구에게 돌려보내주고 싶소이다.』

『그래. 그대는 정말로 아모런 죄도 없다는 말인가?』

『없습니다. 맹세하겠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와 옥분이의 이름으로 맹세하겠습니다!』

『정말로 그렇다면 군의 과거를 한번 이야기해 보게.』

거기서 봉룡은 그어떤 기쁨과 히망을 한아름 안고 자기가 경관에게 부뜰려 올때까지의 이야기를 쭉 하였다.— 대련을 떠난지 몇시간 만에 태양환의 김선장이 죽은것— 김선장으로부터 상해 안도산 선생에게 보낸 편지와 봇다리— 안도산 선생으로부터 서울 유민세씨에게 보내는 편지— 태양환의 진남포 도착— 불상한 아버지와의 회견— 옥분이와의 사랑의 속삭임— 예장을 싸던 날의 즐거운 술좌석— 그리고 경관에게 구인되여 검사대리 유동운에게 신문을 받고 이 해상감옥으로 호송되였다는 이야기를 한줄기도 빼놓지않고 말하였다.

이말을 듣고 난 우월대사는

『음...... 잘 알겠네.』

하고 한참동안 묵묵히 앉었다가

『여기 이런 말이 있어.— 범인을 찾을려면 먼저 그 범죄로 말미아마 이익을 받는 자를 찾어라!...... 알겠나? 그대가 없어 저서 제일 이로운 자가 누군지 잘 생각해 보라.』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저같은 보잘것 없는 몸이 하나 있으나 없으나.......』

『그건 틀린 말이야. 세상 사람은 모다 서로 상대적(相對的) 관계를 맺고 있는것이니까. 왕이 죽으면 왕자가 왕위에 오를것이요, 과장이 죽으면 주임이 과장이 될것이요, 사원(社員)이 죽으면 견습생이 사원이 될것이다. 그러면 그대의 이야기로 돌아가세. 그대가 태양환의 선장이 되는것을 좋지않게 여기던 사람은 없었던가?』

『없습니다. 저는 배에서도 선원들에게 귀염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번 저하고 싸흠을 한 사람은 있었지요.......』

『옳지 옳지! 그의 이름이 뭣이던고?』

『장현돕니다. 배에서 회계를 보던 사람인데, 어딘가 그의 회계사무에 무슨 부정한 사건이 있는것 같았습니다.』

『음, 그러면 다음에는 김선장과 그대가 최후의 이야기를 할때 옆에 누구가 있었던가?』

『없었습니다. 단두사람 뿐이었습니다.』

『그러면 누군가 그대들의 이야기를 엿들은 사람은 없었던가?』

『아, 아...... 있습니다, 있습니다! 가만 계세요...... 아, 그렇다...... 바루 선장이 도산선생에게 갖다드릴 봇다리를 제게 내주던 그땝니다. 장현도가 문밖으로 지나가는것을 보았지요.』

『음! 그만했으면 알법한 일이고...... 그런데 도산선생에게서 받은 편지를 그대는 어디서 주머니에 넣는가? 잘 생각해 보라.』

『부두에서 편지를 받아가지고 배에 올라 탈때 주머니에 넣습니다.』

『그러면 선원들은 그대가 편지를 쥐고있는것을 보았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보았을것입니다.』

『그리고 물론 장현도도 보았을테지?』

『물론 보았을 것입니다.』

『음, 그러면 다음은 그대가 본 그 고솟장을, 그대는 외일수가 있는가?』

『있습니다.』

『그것을 한번 내 앞에서 외여보라.』

『네, 이렇습니다—! 검사각하. 대일본제국에 대하여 충성을 아끼지 않는 소생은 대련과 상해를 거처, 오늘 아침 진남포에 귀항한 태양환의 일등운전사 이봉룡이라는 자가, 상해부두에서 안창호씨에게 신서를 전달하고, 다시 동씨로부터 서울로 향하는 신서를 받은 사실이 있다는것을 아뢰입니다. 그 죄상의 증거품인 신서는, 리봉룡 자신이나, 또는 그 부친의 처소나, 그렇지 않으면 태양환 그의 선실에서 발견될것이라 믿는 바 올시다—....... 대개 이렇습니다.』

봉룡이가 외이는 고솟장을 듣고난 우월대사는 흥! 하고 한번 어깨를 추며

『아아, 그대는 너무나 순정하고 정직한 젊은이었다. 바루 장현도라!』

『장현도라고요?』

봉룡은 숨이 막힐듯이 부르짖었다.

『그렇다. 그런데 고솟장의 필적은 어떻던가?』

『바른편 어깨가 내려간 필적인데 아주 유치한 글씨었습니다.』

『그러면 장현도의 필적은?』

『아주 훌륭한 달필이었지요.』

그때 대사는 생선가시로 맨든 펜을 왼손에 들고 샀쓰 한편구석에 왼 글씨로 고솟장의 맨 머리를 몇줄 써 보히면서

『왼편 손으로 쓴 글씨는 대개가 다 비슷비슷하다. 어때? 이와 같은 글씨였었지?』

『아아, 대사! 그렇습니다! 꼭 같은 글씹니다!』

봉룡은 또한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면 다음, 옥분이가 그대의 안해가 되는것을 좋지않게 여기던 사람은 없었던가?』

『있습니다. 송춘식이라는 청년인데.......』

『장현도와 송춘식은 서로 아는 사인가?』

『서로 모를것입니다. 아니, 아니...... 아, 그렇습니다! 제가 옥분이를 다리고 억낭틀 길까 주막 앞을 지나갈때, 장현도와 송춘식과 그리고 저 박돌이가 술상 앞에 마조 앉아있는것을 보았습니다. 박돌이는 아주 무척 취했었구, 장현도는 송춘식을 자꾸만 놀려대구 있던것을 분명히 보았지요. 그런데 아, 아, 잠깜만 기다려주세요! 아, 난 어째서 그것을 잊어먹었던고?...... 그때 술상 옆에 붓과 벼루와 그리고 종이가 놓여 있었던것을 저는 분명히 이 두 눈으로...... 아아, 악마! 악마들!』

봉룡은 미칠듯이 부르짖으면서

『당신은...... 당신은 모든것을 눈으로 보신것처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면 한가지만 더 가르켜 주십시요! 저는 어째서 단 한번 신문을 받었을 뿐으로 재판도 않 열고 판결(判決)도 없이 이런 악착한 형을 벌받게 되었을까요? 그것을...... 그것을 가르켜 주십시요!』

『음, 그러면 먼저 그대를 신문한 사람은 누군고? 검산가? 검사대린가? 예심판산가?』

『검사대립니다.』

『젊은인가? 늙은인가?』

『젊은입니다. 아직 스물 일여듧밖에 않되는 젊은 사람입니다.』

『그대를 취조하는 태도는?』

『아주 친절했었습니다. 그는 그 유일한 증거품인 도산선생의 편지를 불태워 버렸으니까요.』

『뭐, 불을 태워?...... 편지를?......』

『그렇습니다. 저의 불행을 무척 동정하며 그처럼 증거품을 불살려 버렸으니 안심하라고요.』

『그래 그가 편지를 보는 순간 어떤 태도를 취하던가?』

『무척 괴로워 하였습니다. 마치 나의 불행을 동정하며 괴로워하는것 처럼.......』

『흐흥! 그 사나이로 말하면 그대가 생각하는것 처럼 그렇게 친절한 사람이 아니야. 그대를 이 감옥으로 보낸 악당이야!』

『오오, 대사님!』

『그래 그 편지의 수신인의 이름은 무었이었지?』

『서울 안국정 十三번지 유민세씨었습니다.』

『유민세?...... 유민세라면 나두 알법한 이름인데...... 그는 우리 비밀결사의 일원으로서 소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숨은 혁명가인데...... 그래 그 젊은 검사대리의 이름은 무엇인가?』

『유동운이란 사람입니다.』

그순간 우월대사의 입에서 하하하...... 하는 웃음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래 그 검사대리는 그대에게 유민세라는 이름을 절대로 입밖에 내면 않된다고 다졌겠지?』

『그렇습니다...... 여러번 다짐을 받었습니다.』

『하하하...... 그러나 그대는 너무나 정직한 젊은이!』

『네?』

『유민세로 말하면 유동운의 아버지라는 말이야!』

『엣? 아버지라고요?』

그것이야말로 청천에 벽력이었다. 봉룡은 아아, 사람을 의심할줄 모르는 순정한 청년 이봉룡은 인제야 자기 눈앞에 안개처럼 가리여있던 두꺼운 장막을 헤치고 똑바루 세상을 바라볼수가 있었던것이니, 어리석은 젊은이 이봉룡의 인생철학이 돌변하는 무서운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