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탑/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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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暗黑街의 王者

『백진주 선생, 중대한 사건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뛰여 들어오는 신영철 청년을 의미 깊은 눈초리로 물끄럼이 쳐다보며

『중대한 사건이라니요?』

『백선생, 이 편지를 한번 읽어 보십시요.』

백진주 선생은 편지를 읽고 나서

『오오! 아침 일곱시까지 三十만원을 제공하지 않으면 송군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방우호...... 음—』

『백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요구한 금액대로 내줄수 밖에 없지요. 그래 그만한 돈은 마련 되었습니까?』

『두 사람의 돈을 모두 합해야 겨우 六七만원 밖에 안됩니다. 그래서 밤중에 선생을 찾아온 것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서 백진주 선생은 금고를 열고 일금 三十만원의 지폐뭉치를 청년에게 내주었다.

『고맙습니다! 태산같은 은혜는 백골난망이올시다! 만일 선생의 이렇듯 고마우신 은혜를 송군의 양친이 안다면 아아,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사소한 일을 가지고 너무 과칭하시면 도리여 내편이 민망스럽습니다.』

아주 태연스런 대답이었다. 그러나 그 태연스런 대답 어느 한구석에 자연스럽지 못한 한오락의 감정이 무섭게 도사리고 있는것 같았을뿐 아니라, 그 어떤 웅대한 계획을 실행하기 위하여 한발 한발 목적지를 향하여 걸어가고 있는 사람과도 같았다.

그러나 신영철로서는 단지 백진주 선생이라는 칭호로 불리우는 이 수상한 인물에 대한 하나의 호기심과 저 진주섬 동굴 속에서부터 지니고 온 깊은 의혹만이 관심의 전부였을 뿐, 백진주 선생이 그림 그리는 하나의 위대한 설계도(設計圖) 속에서 자기네 두 청년이 자리잡고있는 극히 중요한 역할을 짐작할 수는 꿈에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생각하면 三十만원의 돈도 필요가 없을런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백진주 선생은 무엇을 생각했는지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네? 三十만원의 돈을 제공하지 않어도 된다고요?』

하고 신영철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렇습니다. 방우호 청년으로 말하면 나를 은인이라고 부르는 사람 가운데 하나이지요.』

『아, 그럼 선생은 방우호를 아십니까?』

신영철은 또한번 놀랐다.

『알지요.』

『아, 그러셔요?』

현대의 홍길동이라고 불리우는 저 진주도의 주인은 자기 자신을 단지 하나의 자선가(慈善家)에서 더 지나지 못한다고 겸손한 적이 있었던것을 신영철은 그순간 불연듯 생각하였다.

『지금으로부터 四五년 전의 일입니다. 방우호는 그때 스물이 될락말락한 청년이었지요. 그런데 그때 방우호가 살인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것을 내가 구해 주었답니다.』

『살인범이라고요?』

『그렇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범인은 어떤 악덕법률가로서 그가 방우호에게 공교롭게 범죄를 뒤집어 씌웠던 것이지요. 그때부터 방우호는 현대의 법률이 얼마나 무자비 하다는것을 알았을뿐 아니라, 악에 가담하는 현대의 법률을 저주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방우호가 대체 무슨 이유로 송준호군을 유괴하여 갔는지, 도무지 추측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편지를 갖고온 인편은 어디 있습니까?』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말을 듣자 백진주 선생은 들창문을 열고 캄캄한 행길을 내려다보았다. 저편 전선대 앞에 수상한 사나이의 그림자가 하나 서 있는것이 보인다.

백진주 선생은 그때 두어번 이상한 휘파람을 불었다. 그랬더니 그 휘파람 소리를 듣고 수상한 그림자는 행길 한복판으로 걸어와 三 층을 올려다 보면서 백진주 선생을 향하여 허리를 굽히는것이 보이였다.

『염녀말고 올라오라!』

백진주 선생은 명령하듯이 그렇게 말하였다.

이윽코 문을 녹크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편지를 갖고 온 수상한 사나이가 들어오자

『아, 나는 누군가 했더니 진수일(陳秀日) 군인가?』

하고 백진주 선생은 그 수상한 사나이를 친절히 맞이하였다.

『오오, 배이 • 센셩(白先生)!』

하고 감격에 넘치는 부르짖음과 함께 진수일은 역시 중국식으로 정중한 국궁예를 하였다.

『여기 계시는 이분은 한국서 오신 분이니까 중국말을 그만두고 한국 말을 사용하는것이 예의가 아닌가?』

하고 진수일은 곧 한국말로 대답을 한후에 어지간히 경계하는 눈초리로 신영철을 바라보았다.

『진군, 이분은 나의 친구되시는 분이니까 조금도 염녀할것은 없어.』

그리고 이번에는 신영철을 향하여

『이 진군으로 말하면 인제 말한 방우호가 가장 신임하는 부하로서 역시 방우호 살인죄의 방조죄(幇助罪)로 징역 十년을 졌던 사나입니다.』

하고 설명을 한후

『그런데 진군, 송준호군이 대체 무슨 이유로 방우호의 수중으로 들어갔다는 말인고?』

『네. 그것은 선생님, 송선생이 가장무도회에서 수령의 애인되는 여자를 너무 지나치게 따랐던 때문입니다.』

『아, 그러면 저 빨간 복장을 한 여자가 바루 그 수령의 애인이었던가?』

하고 이번에는 신영철이가 놀랬다.

『그렇습니다. 그이가 바루.......』

『그러면 수령도 무도회에 왔었던가?』

『그렇습니다. 송선생과 수령의 애인이 여러번 춤을 같이 추는것을 멀리서 보고 계셨답니다.』

『신군!』

하고 백진주 선생은 힘있게 부르며

『그만했으면 사정은 알았습니다. 자아, 그러면 빨리 방우호의 소굴을 방문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백선생, 감사합니다!』

이리하여 백진주 선생과 신영철은 진수일이가 인도하는 대로 깊어가는 환락의 밤거리를 일로 방우호의 소굴을 향하여 부살같이 자동차를 몰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이윽고 천고(千古)의 역사(歷史)를 실은 채 유유히 흘러내리는 황포강(黃浦江) 물위에 푸른 등 붉은 등의 황홀한 일루미네이슌의 연속이 딱 끊긴 컴컴한 강변 거리에서 자동차는 멎었다.

『백선생님, 여기서 내리시지요.』

그리고 진수일은 발밑에서 물소리가 출렁출렁 들리는 커—다란 양옥 지하실로 두 사람을 인도하였다.

『흥, 약간 무시무시한 곳인걸!』

백진주 선생은 컴컴한 층층대를 내려가면서 혼잣말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때 지하실 문밖에 서있던 문직이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고함을 치면서

『누구냐?』

하고 무기를 겨누었다.

『진수일!』

하고 대답을 한후에 진수일은 문직이의 귀에다 두어마디 무엇인가를 속삭이고 나서 두 사람을 안으로 인도하였다.

컴컴한 복도를 한참 걸어들어 가노라니까 또 한사람의 문직이가 있었고 그 문직이를 통과하여 들어간 방이 소위 무서운 수령 방우호가 있는 방이다.

『누구냐?』

사나운 얼굴을 가진 네사람의 부하가 일제히 권총을 겨누우면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허어, 방군!』

하고 백진주 선생은 태연자약한 태도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며

『유붕이자원방낸(有朋而自遠方來)데, 어찌 이처럼 상스럽지 못한 무기로서 사람을 대접하는고?』

그 목소리를 듣자 저편에서 책을 읽고있던 수령 방우호가

『무기를 걷우어라!』

하고 일동에게 명령을 한후에 정중히 허리를 굽히며

『백선생님, 용서하십시요. 선생이 이런데를 찾아오실줄은 정말 꿈 밖이올시다.』

『하하...... 그러나 방군은 약속을 지킬 줄을 모르는 사람 같애!』

그말에 젊은 수령은 놀래면서

『아니, 선생, 무슨 말씀이오니까? 저는 아직까지 사람과 바꾸운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군은 나 자신뿐 아니라, 나의 친구에게도 손까락 하나 안대겠다고 한 약속을 잊었다는 말인가?』

『그러나 선생, 저는 지금까지 선생과의 약속을 한번도 어긴 적이 없습니다.』

그때 백진주 선생은 불쾌하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지으며 엄숙한 어조로

『송준호군을 다려오지 않었는가? 송군은 나의 친구의 한사람—』

『아, 그랬었던가요?』

하고 이번에는 부하를 향하여 꾸짖는 소리로

『너이들은 어째 그런 말을 나에게 전하지 않었느냐? 너이들은 이 방우호가 백선생의 덕택으로 무죄방면이 된 사실을 잊었다는 말인가? 응?......』

부하 네사람은 몸을 움츠리며 비슬비슬 뒷걸음질을 하였다. 뒤이어 수령은

『선생, 용서하십시요. 일은 저놈들이 저질러 놓았으나 책임은 오로지 제게 있습니다.』

『그래 송군은 대체 어디 있는가?』

『네. 이리 오십시요.』

하고 수령은 앞장을 서서 다음 방으로 두사람을 인도하였다.

송준호는 낡은 요 하나를 덮고 쿨쿨 잠이 들어 있다.

『흥, 일곱시에는 총살을 당할지 모르는 판인데 한가로히 잠을 잔다?......』

하고 백진주 선생은 대담한 송준호의 태도에 적지않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송군, 일어나게, 일어나!』

신영철이가 송준호를 깨웠다.

『아, 신군이 아닌가?...... 그리고 아, 백진주 선생!』

『송군, 오늘밤 군이 이처럼 안전하게 호텔로 돌아갈수가 있게 된것은 모두가 여기 계시는 백선생의 힘이었네. 치사를 하게.』

『오오, 백선생! 선생은 정말 친절하신 분이 올시다! 저는 선생의 이 바다처럼 넓은 혜덕을 일생두고 잊지 못하겠습니다.』

송준호는 황송하고 감격하여 악수를 청하고저 백진주 선생 앞에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때, 신영철은 이상한 사실을 하나 발견하였던 것이니, 그것은 백진주 선생이 송준호가 청하는대로 악수를 할려고 손을 내밀었을 그순간, 어찌된 셈인지 백진주 선생의 온 몸이 부르르 떨리는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재 三十만원을 던져서까지 송준호를 구해내려던 백진주 선생, 아니 몸소 이러한 불미로운 장소에까지 찾아와서 송준호를 구해내는 백진주 선생의 친절을 생각할때, 단한번 송준호의 손을 잡기를 주저하는, 아니 무서워하는, 아니 한걸음 더 나아가서는 생리적으로 무척 싫어하는것 같은 백진주 선생의 태도가 신영철 청년에게는 적지않게 수상스러웠다.

그러나 결국 백진주 선생은 송준호의 손을 잡지 않을 수 없었던것이니 남달리 미목이 수려한 송준호 청년의 손바닥을 통하여 느끼는 아아, 나의 사랑 계옥분과 나의 원수 송춘식이의 피여, 살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