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탑/2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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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胡弓의 女人

『어서 그 다음을 이야기해 보라.』

하고 재촉하는 백진주 선생의 말에 성칠은 다시금 다음과 같은 긴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예, 내가 이층 골방에서 방바닥에 뚫러진 조그만 구멍으로 밑층을 내려다 보고 있을때, 위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남포로 보석감정(寶石鑑定)을 갔던 박돌이가 보석장사를 다리고 돌아오며 아까 낮에 그 중이 주고간 금강석이 진짜라는 말을 하여 마누라를 놀래게 하였습니다.

「아니 그럼 이것이 정말 五만원짜리 금강석이에요?」

하고 외치는 마누라에게 남포서 온 보석상은 가난으로 말미암아 짜들은 이 초라한 여인숙 안을 한번 의심스러운 눈으로 둘러보면서

「그래 아주머니, 대체 이런 훌륭한 금강석이 어떻게 당신네들의 손으로 굴러들어 왔다는 말이요? 주인한테는 아까 말을 들었소만, 어디 아주머니 말하구 들어맞나 안맞나 한번 더 들어 봅시다.」

「아, 글세 우리 주인이 그전에 친했던 이봉룡이라는 사람이 감옥에서 병이 들어 죽을때 아, 이 금강석을 주인한테 전해달라구 했었대요. 그래 그 친절한 중이 오늘 이것을 가지고 오지 않었겠소? 아이 참, 고마워라!」

「예, 그만하면 이야기는 들어맞소만 그러나 五만원은 너무 비싸오. 四만원만 드리지요. 四만원이면 한세상 밑천은 잘 되지요.」

「그래도 아까 그 중은 五만원은 넉넉히 받는다구 그랬다우. 그러지 않었소, 여보?」

마누라는 물욕에 번득이는 눈초리로 남편 박돌을 바라 보았습니다.

「아, 그러구말구요. 어딜 가던지 五만원 짜리는 된다구요.」

그때 보석상은 역시 안심이 안된다는 눈치로 박돌이 부부를 번갈아 처다보며

「대체 그 중이란 사람의 이름이 뭣이라구 합디까?」

「국보(國保)라고 하는 중이예요.」

「국보!」

하고 보석상은 한번 코웃음을 치면서

「여하간에 내가 四만원을 본것도 잘본것이요. 당신네처럼 가난한사람이 이런 훌륭한 보석을 가지고 있다는것을 알면 경찰서에서 이내 조사를 와서 당신네 말이 정말인지 거짓말인지, 그 국보라는 중을 찾아오라구 할것이 분명한데, 듣자니 그 고마운 중은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지 않소? 잘못하다가는 콩밥 먹고 메주똥 싸리다.」

그말에 그만 박돌이 부부는 적지않은 불안을 느끼며 결국 서로 반반하여 四만 五천원에 락착이 되여 박돌이 부부는 희미한 등잔밑에서 돈셈 하기에 여념이 없고 보석상은 또 보석상대로 금강석을 불빛에 이리저리 비치여 보는 것이었습니다. 실상 나는 바로 내 눈밑에서 전개되는 그 꿈같은 사실에 놀래여 숨소리를 죽여가면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지요.

바깥은 여전히 무서운 폭풍우가 댓줄기처럼 쏟아져 내리였습니다. 그래서 보석상은 하는수없이 하루밤을 그 여인숙에서 쉬고 가기로 하였지요. 그러나 보석상이 곧 남포로 돌아가지않고 그 쓸쓸한 외따른 주막에서 하루밤을 새우게 된것이 도대체 잘못이었습니다.』

하고 성칠은 거기서 잠깐 말을 끊었다가

『나는 그만 피곤하여 그대로 잠깐 잠이 든 동안에 아랫방에서 무서운 일이 생겼습니다.』

『무서운 일?』

백진주 선생은 저윽히 호기심을 느끼는 모양이다.

『네, 물욕의 노예가 된 박돌이 부부는 곤히 잠든 보석상을 죽이고 금강석을 도로 빼앗었답니다. 아니올시다, 서로 격투를 하는 동안에 그만 박돌이의 마누라도 보석상의 칼에 찔려 죽고 말았지요. 박돌이는 그래서 돈과 보석을 가지고 폭풍우가 쏟아져 내리는 캄캄한 밖으로 도망을 쳤지요. 나는 그만 무서워서 골방에서 뛰여나와 아래층으로 내려왔을 때, 아아, 선생님, 저는 말하자면 운이 나빴지요. 박돌이가 밀수입자와 무슨 관계가 있는상 싶다해서 때때로 순찰을 하는 주재소 경관에게 발각이 되었답니다. 아모리 변명하여도 통 마이동풍, 나는 하는수 없이 살인범으로서 감옥살이를 하지않으면 안되게 되였지요. 그렇습니다. 나를 구해줄 사람은 저 보석을 갖고 온 허국보라는 중 한사람 뿐이었지요. 아모리 내가 듣고 본 이야기를 하여도 그런 허황한 말에는 귀도 기우리지 않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때 나를 담당한 친절한 판사에게 허국보라는 중을 찾아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판사가 곧 허국보라는 중을 전국으로 찾아본 결과, 그것은 결코 박돌이가 지어낸 허황한 이야기가 아니고 정말이었지요. 그후 석달만에 국보라는 중이 나를 형무소로 찾아와서 박돌이에게 보석을 준것이 사실이라는 증명을 하여 나는 무죄방면이 되고 그후 박돌은 만주에서 붙잡히는 몸이 되였답니다. 선생님도 아시다싶이 국보라는 분은 참으로 친절하신 어른이지요. 그분은 내가 앞으로 살아나갈 길이 막연하다고 하시면서 자기에게는 백진주 선생이라고 부르는 훌륭한 친구가 있으니, 소개장을 써줄터이니 갖고가면 모든것을 잘 돌보아 주실것이라고요. 선생님, 그래서 저는 그때부터 선생님 곁에서 이처럼 행복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음, 그만했으면 잘 알었다!』

백진주 선생은 성칠이의 기구한 반생의 역사를 흥미진진한 태도로 끝까지 듣고 있다가

『허국보씨의 소갯장에도 그런 말은 대략 씨여있었지만...... 음, 듣고보니 기구한 반생이다. 그래 바루 이 앵두나무 밑에 저 유동운의 불의의 자식이.......』

그러면서 백진주 선생은 발로 땅을 두서너번 쿵쿵 울려본다.

『그렇습니다. 바루 그 발밑에 저 선동이가...... 아니 내가 쓰러트린 유동운이가 땅속에 파묻혀 있을런지도 모를 일입죠.』

『그래 유동운 검사의 사생아인 선동이는 아직도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말인가?』

『모릅니다. 아니올시다. 안대도 제가 피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대에게는 단한가지 불찰이 있었다. 그대는 어째서 선동이를 그의 어머니 한테 돌려보내지 않었는가? 거기에 죄의 실마리가 있는것이야.』

『그렇습니다. 도대체 잘못은 거기 있었습니다.』

백진주 선생은 묵묵히 천공을 처다보며 혼잣말 비슷이

『음, 이 정원, 이 앵두나무 밑, 그리고 저 안방― 그렇다! 연극의 무대로는 다시없는 장소다!』

이윽고 별장을 나와 자동차를 타면서 중얼거린 한마디는 이러하였다.

『유동운과 심봉채는 멀지않어 이 다시없는 무대위에 설 주인공이다!』

얼마후 백진주 선생은 혜화동 저택으로 돌아왔다. 마중나온 아리를 따라 현관을 들어서니 저편 깊숙한 안방에서 애련한 호궁소리가 절절히 들려온다. 지나간 성탄젯날 밤, 송준호와 신영철이가 상해 『카세이 • 호텔』 일실에서 문득 귀에 담은 바루 그 호궁소리다.

『춘앵(春鶯)이가 도착했는가?』

백진주 선생은 아리를 처다보았다. 벙어리 아리는 그렇다고 머리를 끄덕거린다.

백진주 선생은 만족한 얼굴을 지으며 긴 복도를 천천히 걸어가더니, 호궁소리가 흘러나오는 춘앵의 방문을 두서너번 녹크를 하면서 열었다.

『오오, 패이 션숀!(백선생)』

호화로운 침대위에 비스듬이 몸을 던지고 가느다란 노래와 함께 호궁을 즐기던 한사람의 어여쁜 중국 여인이 얼른 몸을 이르키며 들어오는 백진주 선생을 정중히 마지하였다.

나이는 아직 열여덟인가, 열아홉인가― 춘앵은 인제방금 석판화(石板畵)에서 빠져나온듯한 어여쁜 얼굴을 갖고 있었다. 백진주 선생도 역시 중국말로

『춘앵, 먼 길에 피곤하지 않은가?』

『아뇨.』

『한국에 대한 감상은 어떤가?』

『제 돌아가신 아버지는 한국사람이 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아버지의 피를 받은 춘앵이도 한국이 마음에 든다는 말인가?』

『네에.』

춘앵은 애교가 넘쳐흐르는 고운 웃음을 가느다랗게 입가에 지었다.

『그러나 춘앵이.』

『네?』

『이 한국 땅에는 그대의 아버지를 해친 원수가 살고있는 것이야.』

『그렇소이다. 하로바삐 그 원수의 얼굴이 보고 싶소이다.』

『원수를 갚고 싶으냐?』

『그래서 선생님을 따라온것이 아니오니까?』

『춘앵이.』

『네?』

『참어야 하는 법이야. 기회는 참는데서 오는것이니까.』

『네—.』

『그러면 그대는 원수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가?』

『네, 어렸을 때의 일이지만, 만나면 틀림없이 알아 볼듯 싶소이다.』

그러면서 춘앵은 약간 어두운 얼굴로 백진주 선생을 처다보았다.

『정말 틀림없이 알아 보겠나?』

『틀림없이 알아 보겠소이다!』

『원수의 이름을 설마 잊지는 않었겠지?』

『선생님, 제 이름은 잊을지 몰라도 원수의 이름을 어찌 잊겠소이까!』

『그러면 원수의 이름을 잊지 않도록 내 앞에서 한번더 외여 보는것이 어때?』

『외이겠소이다. 천번이고 만번이고 외이겠소이다!』

『어디 한번 외어 보라.』

『송만식(宋萬植)이, 송만식이, 송만식이 올시다!』

『음, 송만식!』

백진주 선생은 그러면서 춘앵의 타오르는듯한 어여쁜 얼굴을 빤히 처다보며

『난 또 춘앵이가 요지음 와서는 원수의 이름을 잊은 줄로만 알었더니.......』

『선생님, 원수를 찾아 주십시요! 원수를.......』

『춘앵이, 너무 조급스레 그러면 안되는 법이래두.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것이고 또 때가 있는 것이야. 그러니까 오늘밤은 편히 쉬고 상쾌한 마음으로 내일을 다시 마지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듯 싶어.』

『네에.』

『마음이 울적하거든 호궁을 즐기는것도 무방한 일이고.......』

『그러면 선생님, 안녕히 주무십시요.』

춘앵은 공손히 허리를 꿉히어 백진주 선생을 방문밖까지 전송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춘앵을 가리켜 백진주 선생의 애인이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오늘밤에 있어서의 두사람의 대화를 듣는 사람들은 그보다 좀더 깊은 그어떤 관계가 두사람 사이에 서리여 있는것을 보았을것이다.

그것은 하여튼 이름이 너무도 비슷하다! 춘앵의 원수 송만식과 봉룡의 원수 송춘식의 두사람은 과연 별개의 인물이었던가? 그렇지 않으면 동일한 인물이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