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탑/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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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숨은 愛國者

기미년 三월 一일은 마침내 왔다. 민족자결과 자주독립의 기빨을 휘둘으며 악착한 쇠사슬로부터 벗어나려고 우렁차게 일어선 이천만민중의 끌른 피줄기여!

그날 오전 열한시 四十분경, 왜성대(倭城臺) 호화로운 총독실에는 장곡천(長谷川) 총독이 경시총감을 대동하고 한사람의 청년과 마조앉아 있었던것이니, 그 청년이야말로 야망에 불타는 가슴을 부여안고 멀리 진남포로부터 밤을 새워 상경한 검사대리 유동운 이었다.

『그대가 저지방의 명망가인 오붕서군의 사위!』

긴 소갯장을 읽고난 총독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청년을 바라보았다.

『각하, 틀림 없삽니다.』

유동운은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또 그대가 바루 저 유민세군의 아들.......』

『그렇습니다. 각하. 틀림 없삽니다.』

『음, 오붕서군의 사위는 괜찮으나 유민세군의 아들은 좀 재미가 없는걸. 아다싶이 군의 부친은 일본의 조선통치에 반감을 가진.......』

『그러하오나 각하. 아들은 반다시 아버지를 닮으라는 법은 없을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낳을수 있사오나 아들의 사상을 낳을수는 없을것입니다. 그때문에 아버지와 저는 어렸을적부터 사상적 충돌이 많었고 현재는 서로가 각자의 생활로선을 걷고 있삽니다.』

타오르는듯한 기백과 굳세인 신념이 젊은 검사대리의 이마에 아로새겨져 있음을 총독은 보았다.

『음, 군의 그 굳은 신념에 대해서는 이 소갯장에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지만...... 그래 군이 멀리서 가지고 온 중대한 보고라는것은?......』

『아, 각하!』

총독이 마침내 마음을 움지겨 자기의 보고에 귀를 기우리려 하는것을 본 유동운은 감격에 넘치는 어조로

『각하, 소생의 보는바로서는 사태는 몹시 절박한것 같삽니다. 멀지 않어 조선천지를 진동시킬 불상사가.......』

『응? 조선천지를 진동시킬 불상사라구 군은 지금 말했었나?』

총독의 눈섭이 움지기었다. 옆에 배석하고 있던 총감도 긴장한 얼굴을 지었다.

『각하, 틀림없이 그렇게 여쭈었소이다!』

『음, 어서 이야기를 계속하게.』

『각하, 월손 대통령의 잠꼬대로 알았던 민족자결의 문은 마침내 조선 이천만 민중을 일어서게 하였습니다!』

『응? 일어서다니?......』

총독과 총감은 놀래여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각하, 실로 놀라운 일이 올시다. 해외해내(海外海內)를 막론하고 동일동시에 이천만 민중은 일어설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인가?』

『각하, 실로 유감된 일이오나 사실이올시다.』

『음, 일전에도 시내 모처에서 독립운동자들의 비밀회합이 있었다지만 그러나 그처럼 광범위의 반역사건이 우리의 귀에 들어오기 전에 군의 입으로부터 들을줄은 뜻밖이다!』

그러면서 총독은 직무태만을 질책이나 하듯이 총감을 바라다 보았다. 총감은 적지잖은 불만의 표정을 지으며

『군은 자기의 그 중대한 보고에 책임을 가저야 하는것이다! 알겠나?』

하고 유동운의 얼굴을 무서운 눈초리로 쏘아 보았다.

『황송하옵게도 총독각하 앞에서 이러한 중대사건에 대하여 허위의 보고를 아뢰는 죄과가 어떠한 것이라는것쯤은 불초 검사의 말석을 더럽히는 소생으로서 가히 추측하지 못할배는 아니올시다!』

신념에 넘치는 유동운의 대답이었다.

『그러면 좀더 자세한것을 각하께 여쭈어 보라.』

총감은 미안한듯이 얼굴을 붉혔다.

『각하, 실은 전부터 불온한 사상의 소유자로서 소생이 감시의 눈을 게을리하지 않던 젊은 선원 한사람이 최근에 열릴 파리강화회의(巴里講和會議)에 타전(打電)할 대한독립선언서(大韓獨立宣言書)를 비밀리에 상해 가정부(假政府)에 운반한 사실이 발각되였습니다.』

『뭐, 독립선언서?......』

총독과 총감은 벌렸던 입이 잘 닫혀지지 않음을 안타까워하였다.

『그렇습니다. 날짜는 분명치 않으오나 모일 모시 모처에서 독립선언서를 세상에 공포하고 해내해외가 상호하여 민족자결, 자주독립을 부르짖으려는 굉장한 운동이 올시다.』

『음. 그래 모일모시라는것만 알고 분명한 날짜는 모르는가?』

『대단히 유감된 일이오나 날짜는 분명치 않소이다.』

그때 총감은 적지않은 적의(敵意)를 젊은 검사대리에게 느끼며 물었다.

『그래 군은 그러한 중대사건의 단서를 잡은데 있어서 무슨 서면같은 증거물을 손에 넣었다는 말인가?』

『그런것은 없습니다. 모두가 그 젊은 선원의 입으로부터 직접 들은 사실이 올시다.』

그러면서 유동운은 자기 아버지의 성명삼짜가 씌여있던 불에 태운 신서를 문득 머리에 그려 보았다.

『그 젊은 선원은 지금 어데 있는가?』

『감옥에 있습니다.』

『음, 그것이 사실이라면 실로 중대한 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건과 신판사(申判事) 암살사건 사이에 그어떤 관련성이 있는것이 아닐까?』

『신판사 암살사건이라고요?』

유동운은 마음속으로 적지않게 당황해 하였다. 유동운의 선배요 서울 법조계에서도 세도가이던 신상욱(申象旭) 판사를 암살한 범인이 누구인지를 유동운은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총감, 범인을 한시바삐 체포하도록 하시요. 신판사로 말하면 총독정치에 충성을 맹세한 사람이요.』

『네, 엄중한 수배를 하도록 명령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날밤 신판사를 불러낸 수상한 인물의 인상(人相)만은 포착하였습니다. 나이는 五十미만, 검은 외투를 입고 콧밑에 카이젤 수염을 길르고 단장을 든 사나입니다.』

그말을 들은 유동운은 숨이 막힐것 같았다. 그 범인이 체포를 당하는 순간 무서운 야망을 품은 유동운의 전도는 다시금 캄캄해질것이 분명하다. 아아, 아버지, 당신은 하나밖에 없는 이 아들의 출세를 어이하여 이처럼도 방해하시나이까?...... 젊은 검사대리는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저주하였다.

『그것은 하여튼 총감, 일 변방에 있는 하급 사법관의 입으로 이처럼 중대한 사건의 보고가 있는 사실을 총감은 어떻게 생각하시요?』

총감은 괴로운듯이 책임감을 느끼며

『그러나 저로서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 올시다. 그처럼 광범한 불상사가 발생할것을 나의 충실한 부하가 지금까지 모르고있을 리는 만무하니까요.』

바루 그때였다. 비서관 한사람이 커—다란 봉서를 들고 얼굴이 새파래저서 뛰여들어 왔다.

『각하, 실로...... 실로 놀라운 일이 올시다! 이것을...... 이것을 보십시요!』

『그것이 뭣인고?』

『각하께 보내온 독립...... 독립선언서 올시다!』

『뭐, 독립선언서?』

똑 같은 말이 총독과 총감의 입으로부터 무섭게 튀여나왔다. 총독은 떨리는 손씨와 떨리는 목소리로 봉서를 뜯어 읽기 시작하였다.

『...... 독립선언서(獨立宣言書)—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조선(我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하노라. 차(此)로써 세계만물(世界萬物)에 고(告)하야 인류 평등(人類平等)의 대의(大義)를 극명(克明)하며.......』

총독은 채 읽지 못하고

『장소는 어데냐?』

하고 방안이 떠나갈듯이 고함을 쳤다.

『명월관 지점 태화관(泰和館)이 올시다!』

『태화관?...... 총감! 아아, 이 어찌된 일이요?』

총독은 전신을 부들부들 떨면서 총감을 쏘아 보았다.

『면목없는 일이 올시다! 용서하여 주십시요! 곧 적당한 수배를하겠습니다!』

그 한마디를 남겨놓고 총감은 당황히 뛰처나갔다.

이윽고 왜성대에서 내려다 볼수있는 서울장안의 거리거리에는 우렁찬 만세성이 글짜 그대로 천지를 진동시키기 시작하였다. 경관대, 헌병대, 기마대가 총검을 비껴들고 열광된 군중을 무섭게 제지하고 있는것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오오!』

하고 총독은 비명도 아니요 감탄사도 아닌 일종의 괴상한 목소리를 연거퍼 내면서 실신한 사람처럼 멍하니 섰다가

『아, 유군!』

하고 유동운의 손목을 꽉 부여잡았다.

『군의 공로와 충성은 잊을수가 없다! 수많은 경관과 수많은 기밀비(機密費)를 가진 총감의 공로보다도 변방에 있는 한사람의 사법관의 공로가 이처럼 크다는것을 나는 비로서 알았다!』

『각하, 그것은 분의 넘치는 말씀이 올시다!』

마침내 하늘의 별을 딴 유동운이었다.

『자아, 그럼 군은 먼 길에 피곤할테니 돌아가 쉬게. 아마 부친이 계신 곳으로 돌아갈테지?』

『아니 올시다, 각하. 저는 금강 「호텔」에 들어 있습니다.』

『그럼 아직 부친은 못만나 뵈었는가?』

『각하, 저는 오늘 아침 여덟시차에 내려서 각하를 뵐려구 세시간 동안을 문밖에서 기다렸습니다.

『아아, 그랬던가! 수고가 많았네! 그러나 부친을 만나 뵐테지?』

『만나지 않고 곧장 내려가겠습니다.』

『음, 그게 좋와. 그러는것이 좋와! 군은 부친과 사이가 좋지 못하니까. 군의 충성을 잊지 않고 있을테니 안심하고 내려가게.』

『각하, 소생은 각하의 그 후의만으로 충분하옵니다! 그이상 각하께 바라는것이 무엇이 있사오리요?』

『음, 잘 알겠네, 어서 돌아가 쉬게.』

『그럼 각하, 소생은 물러가겠습니다.』

거리에는 대한독립만세를 불으는 흥분한 군중이 물결처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그 우렁찬 만세성이 유동운의 가슴 한복판을 아프게 찔르는것 같았으나 그러나 단 한번의 만세 소리를 입에 담은적이 없이 숙소인 금강 「호텔」로 총총히 돌아 와서 식사를 하고 있을때, 검은 외투에 단장을 들고 카이젤 수염을 길른 五十객이 유동운을 찾아왔다는 말을 사환애가 가지고 들어왔다.

『카이젤 수염을 길르고 단장을 든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구?』

그것은 아버지 유민세씨의 풍채임에 틀림 없었다. 유동운은 놀랬다.

『아니, 아비를 이처럼 기다리게 하여야만 검사대리의 체면이 서는가?』

그러면서 사환 아이의 등뒤로 아버지가 따라 들어왔다.

『아, 아버지! 아버지가 어떻게.......』

『왜 아비가 아들을 찾아와서는 뭐 않되는 이유가 있는가?』

『아니 아버지 그런것은 아니지만.......』

『아모리 봐두 넌 날 만나는게 그리 달갑지 않은 모양이로구나.』

그러면서 아버지는 담배를 부친다.

『원, 아버지두 별 말씀을.......』

『그래 어저께 약혼식을 한다던 사람이 오늘은 벌서 서울에 와 있다?......』

『아버지, 그것은 모두가 아버지를 위해섭니다.』

『흥, 날 위해서라구? 어디 재판장의 말씀을 좀 들어볼까?』

『상해 안도산선생으로부터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가 다행히 제 손에 들어왔답니다. 만일 그것이 다른 사람의 손으로 발각이 됐던들 아버지는 지금쯤은.......』

『왜, 지금쯤은 총살을 당했을것 같으냐?』

『총살은 모르지만...... 그런데 아버지는 오늘 태화관에 않 가셨습니까?』

『태화관에 뫃인 사람만이 큰 일을 하는것은 아니야! 그런데 그 편지는 어떻겠는가?』

『불살려 버렸습니다. 그대루 두었다가는 아버지의 몸이.......』

『흥, 대단히 고마운걸. 넌 제 몸보다 항상 아버지의 몸을 더잘 돌보아주는 효자였으니까!』

숨은 애국자 유민세씨의 대답은 무척 날카롭다.

『그러나 아버지, 신판사를 암살한 범인은 검은 외투를 입고 카이젤 수염을 길르고 단장을 든 五十객이라는 사실을 당국은 짐작하고 있답니다!』

그리면서 아들은 아버지의 표정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응? 놈들이 벌서 그것을 안다구?』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인 유민세씨도 아들이 배앝은 그 한마디에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행길밖에는 끈칠줄 모르는 만세성이다.

『자아, 그러면 나두 오늘은 좀 바뿐 날이니까 가 보야겠다. 내 아들이 총독각하와 교제를 하는데, 그런 아들을 내가 박대해서는 않되겠기에 바뿐 틈을 타서 찾아 본것이다. 앗다! 이놈의 수염과 단장과 검은 외투가 말썽이래지?』

유민세씨는 젊은이와 같은 가벼운 손씨로 아들의 면도칼을 빌어 수염을 깎고 아들의 회색 외투를 빌어 입고 단장을 그대루 두고 문을 나서면서

『자아, 이만했으면 됐는가?』

『네, 깜쪽 같습니다!』

『그런데 마즈막으로 네게 한마디 해둘 말이 있다. 그것은 멀지않어 세상이 바꾸어저 네가 나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아니될 때까지 너와 나와는 영원한 적(敵)이라는 그 한마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