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강헌대왕실록/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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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태조 이성계 선대의 가계. 목조 이안사가 전주에서 삼척·의주를 거쳐 알동에 정착하다[편집]

太祖康獻至仁啓運聖文神武大王, 姓李氏, 諱旦, 字君晋, 古諱成桂, 號松軒, 全州大姓也。 有司空諱翰仕新羅, 娶太宗王十世孫軍尹金殷義之女, 生侍中諱自延。 侍中生僕射諱天祥, 僕射生阿干諱光禧, 阿干生司徒三重大匡諱立全。 司徒生諱兢休, 兢休生諱廉順, 廉順生諱承朔, 承朔生諱充慶, 充慶生諱景英, 景英生諱忠敏, 忠敏生諱華, 華生諱珍有, 珍有生諱宮進, 宮進生大將軍諱勇夫, 大將軍生內侍執奏諱隣。 執奏娶侍中文公諱克謙之女, 生將軍諱陽茂, 將軍娶上將軍李公諱康濟之女, 生諱安社, 是爲穆祖, 性豪放, 有志四方。 初在全州, 時年二十餘, 勇略過人。 山城別監入館, 因官妓事, 與州官有隙, 州官與按廉議上聞, 發兵圖之。 穆祖聞之, 遂徙居江陵道 三陟縣, 民願從而徙者, 百七十餘家。 嘗造船十五隻以備倭。 旣, 元 也窟大王兵侵諸郡, 穆祖保頭陀山城以避亂。 適前日山城別監, 新除按廉使, 又將至。 穆祖恐禍及, 挈家浮海, 至東北面宜州 【卽(德原)〔德源〕。】止焉。 民一百七十餘戶亦從之, 東北之民, 多歸心焉。 於是, 高麗以穆祖爲宜州兵馬使, 鎭高原以禦元兵。 時雙城以北,【雙城卽永興。】屬于開元路。 元 散吉大王來屯雙城, 謀取鐵嶺以北, 再遣人請穆祖降元, 穆祖不得已率金甫奴等一千餘戶降。 前此, 平壤民聞穆祖威望, 多有附者。 至是與從之, 散吉大喜, 禮待甚厚, 置盛宴歡飮。 將罷, 散吉親以玉杯, 納諸穆祖懷中曰: “公之家人, 安知吾二人相與之至情! 聊以玉杯表吾情耳。” 因相與誓曰: “自後無相忘也。” 穆祖乃以族女妻散吉。 穆祖由水陸路至時利,【卽利城。】 其千戶以兵阻之。 穆祖語以歸順之意, 千戶宴慰甚厚, 穆祖亦以牛馬報之。 遂至開元路 南京之斡東居焉。 寔宋 理宗 寶祐二年, 元 憲宗四年, 高麗 高宗四十一年甲寅也。

태조강헌지인계운성문신무 대왕의 성은 이씨요, 휘는 단이며, 자는 군진이다. 처음 휘는 성계, 호는 송헌이다. 전주의 대성이다. 사공신라에 벼슬하여 태종왕의 10대 손자인 군윤 김은의의 딸에게 장가들어 시중 휘 자연을 낳았다. 시중이 복야 휘 천상을 낳고, 복야가 아간 휘 광희를 낳고, 아간이 사도 삼중대광 휘 입전을 낳고, 사도가 휘 긍휴를 낳고, 긍휴가 휘 염순을 낳고, 염순이 휘 승삭을 낳고, 승삭이 휘 충경을 낳고, 충경이 휘 경영을 낳고, 경영이 휘 충민을 낳고, 충민이 휘 화를 낳고, 화가 휘 진유를 낳고, 진유가 휘 궁진을 낳고, 궁진이 대장군 휘 용부를 낳고, 대장군이 내시집주 휘 인을 낳고, 집주가 시중 문극겸의 딸에게 장가들어 장군 양무를 낳고, 장군이 상장군 이강제의 딸에게 장가들어 휘 안사를 낳으니, 이 분이 목조이시다.

성품이 호방하여 사방을 경략할 뜻이 있었다. 처음에 전주에 있었는데, 그 때 나이 20여세로서, 용맹과 지략이 남보다 뛰어났다. 산성별감이 객관에 들어왔을 때 관기의 사건으로 인하여 주관과 틈이 생겼다. 주관이 안렴사와 함께 의논하여 위에 알리고 군사를 내어 도모하려 하므로, 목조가 이 소식을 듣고 드디어 강릉도의 삼척현으로 옮겨 가서 거주하니, 백성들이 자원하여 따라서 이사한 사람이 1백 70여 가구나 되었다. 일찍이 배 15척을 만들어 왜구를 방비했는데, 조금 후에 원나라 야굴대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여러 고을을 침략하니, 목조는 두타산성을 지켜서 난리를 피하였다. 때마침 전일의 산성 별감이 새로 안렴사에 임명되어 또 장차 이르려고 하니, 목조는 화가 미칠까 두려워하여 가족을 거느리고 바다로 배를 타고 동북면의 의주【듸주는 덕원이다.】에 이르러 살았는데, 백성 1백 70여 호가 또한 따라갔고, 동북의 백성들이 진심으로 사모하여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이에 고려에서는 목조를 의주병마사로 삼아 고원을 지켜 원나라 군사를 방어하게 하였다. 이때 쌍성이북【쌍성은 영흥이다.】 지방이 개원로에 소속되었고, 원나라 산길대왕이 와서 쌍성에 둔치고 있으면서 철령(鐵嶺) 이북 지방을 취(取)하려고 하여, 사람을 두 번이나 보내어 목조에게 원(元)나라에 항복하기를 청하니, 목조는 마지못하여 김보노(金甫奴) 등 1천여 호(戶)를 거느리고 항복하였다. 이보다 먼저 평양(平壤)의 백성들이 목조의 위세(威勢)와 명망(名望)을 듣고 붙좇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때에 이르러 함께 따라오니, 산길(散吉)이 크게 기뻐하여 예절을 갖추어 대우함이 매우 후하였고, 성대한 연회를 베풀어 즐거이 술을 마시었다. 연회가 끝나려 할 적에 산길이 친히 옥배(玉杯)를 목조의 품속에 넣어 주면서 말하기를, “공(公)의 가인(家人)이 어찌 우리 두 사람의 서로 친하는 지극한 정리를 알겠습니까? 부족하나마 옥배(玉杯)로써 나의 정을 표시할 뿐입니다.” 하고, 이내 서로 함께 맹세하기를, “이 뒤로부터 서로 잊지 말도록 합시다.”하였다.

목조는 이에 동종(同宗)의 딸을 산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였다. 목조는 수로(水路)와 육로(陸路)를 지나서 시리(時利) 【곧 이성(利城)이다.】에 이르렀는데, 그 천호(千戶)가 군사로써 막으므로, 목조가 귀순(歸順)한다는 뜻을 말하니, 천호가 연회를 베풀어 위로하기를 매우 후하게 하였다. 목조도 또한 소와 말로써 그에게 보답하고, 마침내 개원로(開元路) 남경(南京)의 알동(斡東)에 이르러 거주하였다. 이때가 송(宋)나라 이종(理宗) 보우(寶祐) 2년(1254)이요, 원(元)나라 헌종(憲宗) 4년이요, 고려 고종(高宗) 41년 갑인이다.


목조 이안사가 알동 천호소의 수(首)천호로서 다루가치를 겸하다[편집]

○明年乙卯, 散吉聞于元帝, 元爲立斡東千戶所, 給降金牌, 爲南京等處五千戶所, 首千戶、兼達魯花赤。 斡東在南京東南九十餘里, 距今慶興府東三十里。 斡東西北百二十餘里, 有豆門城, 又其西百二十餘里, 有斡東沙吾里。 沙吾里, 女眞言站也。 站在斡東管內, 故云然。 其平有大土城, 南京之平, 亦有大土城, 其北七八里, 又有大石城, 皆穆祖管領軍民之所居也。 穆祖雖居斡東, 而往來諸城, 不常厥居。

명년 을묘(1255)에 산길이 이 사실을 원(元)나라 황제에게 알리니, 원나라에서 목조(穆祖)를 위해 알동천호소(斡東千戶所)를 세우고 금패(金牌)를 내려 주어 남경(南京) 등처(等處) 오천호소(五千戶所)의 수천호(首千戶)로 삼고, 다루가치(達魯花赤)를 겸하게 하였다. 알동(斡東)은 남경(南京) 동남쪽 90여 리(里)에 있으니, 지금의 경흥부(慶興府) 동쪽 30리에 떨어져 있다. 알동의 서북쪽 1백 20여 리에 두문성(豆門城)이 있고, 또 그 서쪽 1백 20여 리에 알동 사오리(斡東沙吾里)가 있으니, 사오리(沙吾里)는 여진(女眞) 말로서 참(站)이다. 참(站)이 관동 알동의 관내(管內)에 있는 까닭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 평야(平野)에 큰 토성(土城)이 있고, 남경(南京)의 평야에도 또한 큰 토성이 있으며, 그 북쪽 7, 8리에도 또한 큰 석성(石城)이 있으니, 모두 목조가 관령(管領)한 군민(軍民)이 거처하던 곳이다. 목조는 비록 알동에 거처하였으나, 여러 성(城)에 왕래하여 그 거처가 일정하지 않았다.


목조가 알동 부근의 해도에 석성을 쌓아 소와 말을 방목하다[편집]

○斡東東南三十餘里, 有海島曰者考羅, 北連於陸。 穆祖築石城, 以放牛馬。

알동에서 동남쪽으로 30여 리 떨어진 곳에 바닷섬이 있는데, 자고라라고 한다. 북쪽으로 육지에 잇닿아 있는데, 목조가 돌로 성을 쌓아 소와 말을 놓아 먹였다.


목조가 이춘 등의 8개 백호를 관할하고 흘찰 백호의 직무를 겸하다[편집]

○憲宗八年, 受散吉令旨, 管領李春、文大純、趙奧、魯哥兒、卓靑、尙哉、光奕、張哥等八介百戶之任, 上充兼扢扎百戶句當。

헌종 8년에 산길의 영지를 받아서 이춘, 문대순, 조오, 노가아, 탁청, 상재, 광혁, 장가 등 여덟 개 백호를 관할하도록 임명 받고, 흘찰 백호 직무를 겸하여 맡게 되셨다.


원의 상서성에서 알동 천호소의 구리 도장을 보내오다[편집]

○世祖皇帝 中統二年辛酉六月, 尙書省給降本所行使銅印。

세조황제 중통(中統) 2년 신유 6월에 원나라 상서성(尙書省)에서 본소에 행사하는 구리 도장을 내려 주었다.


목조가 죽자 공주에서 장사지내고 후에 함흥부로 옮겨 덕릉이라 하다[편집]

○至元元年甲子五月, 欽受宣命, 仍充斡東千戶句當。 至元十一年甲戌十二月薨, 葬于孔州 【卽慶興府。】城南五里, 後遷葬于咸興府之義興部 韃靼洞, 卽德陵。

지원(至元) 원년 갑자 5월, 황제의 선명을 받아 그대로 알동 천호(斡東千戶)에 충원 되셨다. 지원 11년 갑술 12월에 훙하시니, 공주(孔州)【곧 경흥부(慶興府)이다.】성 남쪽 5리에 장사지냈다. 후에 함흥부(咸興府)의 의흥부(義興部) 달단동(韃靼洞)에 옮겨 장사지내니 곧 덕릉(德陵)이다.


익조 이행리가 목조의 관직을 이어받다[편집]

○穆祖配孝妃 李氏, 非一李也。 千牛衛長史諱公肅之女, 生諱行里, 是爲翼祖。 至元十二年乙亥三月, 襲職。

목조의 배위는 효비 이씨(孝妃李氏)이신데, 같은 이씨가 아니시다. 천우위장사 공숙(千牛衛長史諱公肅)의 따님이시다. 휘 행리(行里)를 낳으셨으니, 익조(翼祖)이시다. 지원(至元) 12년 을해 3월에 관직을 이어 받았다.


익조가 원군과 함께 일본 정벌에 참여하고, 충렬왕을 알현하다[편집]

○十八年辛巳, 世祖征日本, 天下兵船, 會于合浦。 翼祖蒙上司文字, 將本所人戶, 簽撥軍人, 與雙城摠管府三撒千戶蒙古 大塔失等赴征, 遂見高麗 忠烈王, 至于再三, 益恭益虔。 每謝曰: “先臣奔于北, 實脫虎狼之口耳, 非敢背君父也。 願上釋其罪。” 王曰: “卿本士族, 豈忘本乎? 今觀卿擧止, 足知心之所存矣。”

18년 신사에 세조께서 일본을 정벌하시니 천하의 병선이 합포에서 모였다. 익조께서 상사의 문자를 받아, 본소의 인가에서 군인을 기명하여 뽑아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의 삼살천호(三撒千戶)와 몽고의 대탑실(大塔失) 등과 함께 정벌 길에 올랐다. 드디어 고려 충렬왕(忠烈王)을 뵙고 두 세번 더욱 공손하고 더욱 삼가면서 매번 사과하시기를, "선신께서 북으로 달아나신 것은 참으로 범의 아가리를 벗어나고자 하신 것이고, 감히 군부(君父)를 배반한 것은 아닙니다. 바라건대 임금께서는 이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왕께서 말씀하시기를, "경의 근본은 사족(士族)인데 어찌 하여 뿌리를 잊겠는가? 지금 경의 거지를 보니 마음이 있는 바를 알겠다."


익조가 여진 천호의 협공을 피해 알동의 백성을 거느리고 적도를 거쳐 의주에 정착하다[편집]

○初穆祖時時往峴城, 諸女眞千戶、達魯花赤, 皆願納交, 遂與之從遊。 諸千戶禮待甚厚, 必宰牛馬享宴, 輒留數日。 諸千戶有至斡東者, 穆祖亦如是, 逮翼祖承襲, 遵而不改。 翼祖威德漸盛, 諸千戶手下之人, 多歸心焉。 諸千戶忌而謀害之曰: “李 【翼祖諱。】本非我類, 今觀其勢, 終必不利於我。 盍請兵於深處之人而除之, 且分其財産乎?” 乃謬告曰: “吾等將獵北地而來, 請停會二十日。” 翼祖許之, 過期不來。 翼祖親往峴城, 唯老弱婦女在, 丁壯無一人。 問之一女, 對曰: “貪其獸多, 至今不返耳。” 翼祖乃還。 道見一老嫗, 頭戴水桶, 手持一椀。 翼祖忽渴欲飮, 老嫗淨洗其椀, 取水以進, 因言曰: “公不知乎? 此處之人, 忌公將圖之, 請兵而去, 非獵也, 後三日必來。 貴官威德可惜, 不敢不告。” 翼祖惶遽而返, 使家人船載家産, 順流豆滿江而下, 期會赤島。 自與孫夫人, 渡加陽灘, 登高望之, 則斡東之野, 賊彌滿而來, 先鋒三百餘人, 幾及之。 翼祖與夫人, 走馬至赤島北岸, 水廣可六百步, 深不可測, 所期之船, 亦未至, 無如之何。 北海本無潮汐, 水忽退落約百步許, 其淺可涉。 翼祖遂與夫人, 累騎一白馬而涉, 及從者畢涉, 水復大至, 賊至不得渡。 北方人至今稱之曰: “天之所助, 非人力也。” 翼祖於是陶穴而居, 其基至今存焉。 斡東之民, 聞翼祖所在, 從之者如歸巿, 皆居島內。 久之, 取稷島、楸島、草島之材, 作船十艘, 至元二十七年庚寅, 復以水路, 還居宜州, 孔州之民皆從之。 其所居之地, 至今稱爲赤田, 以其自赤島而來也。


익조의 손 부인이 죽자, 등주 호장 최기열의 딸과 재혼하여 등주에 거주하다[편집]

○孫夫人生二男, 長曰嬀水, 次曰福。 夫人卒, 再配貞妃 崔氏, 登州 【卽安邊。】戶長諱基烈之女。 遂置永業於州之脥村而居, 又以民三十戶, 處於州西十五里。 後稱其地爲三十戶平。

손(孫) 부인은 두 아들을 두셨으니, 맏이는 규수(嬀水)이고 둘째는 복(福)이다. 부인께서 돌아가시자 다시 장가든 정비 최씨께서는 등주【곧 안변이다.】호장 기열의 따님이시다. 드디어 등주의 협촌에 영업전을 두고 살았으며, 또 백성 30호를 등주 서쪽 15리에 살게 하였다. 뒷날 그 땅을 일컬어 삼십호평이라고 불렀다.


의주에서 도조인 이선래를 낳다[편집]

○居數歲無子, 與崔氏禱于洛山 觀音窟, 夜夢有一衲衣僧來告曰: “必生貴子, 當名以善來。” 未幾有娠, 果生子於宜州, 遂名曰善來, 是爲度祖。 窟在今江原道 襄陽府。 時翼祖往來安邊, 而亦或往來於和州、咸州。


익조가 쌍성 등지의 고려 군민을 다스리는 다루가치에 임명되다[편집]

○成宗 大德四年十月, 宣授承仕郞, 管領雙城等處高麗軍民、達魯花赤。

성종(成宗) 대덕(大德) 4년 10월에 선명으로 승사랑(承仕郞)을 제수하여, 쌍성 등의 고려 군민을 다스리는 다루가치가 되게 하였다.


익조가 죽자 안변부의 봉룡역에서 장사지내고 지릉이라 하다[편집]

○某年九月十日, 翼祖薨, 葬于安邊府之瑞谷縣 奉龍驛北洞, 卽智陵。

어느 해 9월 10일에 익조께서 훙서(薨)하셨다. 안변부(安邊府)의 서곡현(瑞谷縣) 봉룡역(瑞谷縣) 북동(北洞)에 장사 지내니, 곧 지릉(智陵)이다.


도조 이춘이 익조의 관직을 이어받다[편집]

○度祖諱椿, 小字善來, 蒙古諱孛顔帖木兒, 受宣命襲職。

도조의 휘는 춘(椿)이시다. 어렸을 적 이름은 선래(善來)이시고, 몽고 이름은 발안첩목아(孛顔帖木兒)이시다. 선명(宣命)을 받아 관직을 이어 받으셨다.


도조가 박광의 딸과 혼인하여 자흥과 환조를 낳고 박씨가 죽자 조씨와 재혼하여 두 아들과 세 딸을 낳다[편집]

○配敬妃 朴氏, 斡東百戶贈門下侍中諱光之女。 生二男, 長曰子興, 蒙古名塔思不花, 次卽我桓祖。 朴氏卒後, 移居和州, 娶趙氏, 雙城摠管之女。 生二男三女, 長完者不花, 次那海。


익조와 도조가 남쪽으로 이주한 알동 사람들을 토지가 비옥한 함주에 정착시키다[편집]

○初翼祖以咸州土地平衍沃饒, 斡東之民南來者, 多處之州之歸州、草古臺、王巨山、雲天、松豆等、都連浦、阿赤郞耳等地。 故稱咸州爲斡東逸彦。【女眞謂民爲逸彦。】及是, 度祖盡有安邊以北之地, 而移居咸州, 爲近於南來之民, 且便於牧養也。


도조가 충숙왕에게 조회하니 물품을 하사하다[편집]

○度祖朝忠肅王, 王錫賚甚豐, 所以勸忠也。

도조가 충숙왕을 알현했다. 하사품이 매우 많았는데, 충성을 권장하기 위해서였다.


조선 왕조 개창을 암시하는 도조의 꿈[편집]

○度祖夢有告之者曰: “我白龍也。 今在某處, 黑龍欲奪我居, 請公救之。” 度祖覺以爲常而不異之。 又夢白龍復來懇請曰: “公何不以我言爲意?” 且告之日。 度祖始異之, 至期, 帶弓矢往觀之, 雲霧晦冥, 有白黑二龍, 方鬪淵中。 度祖射黑龍, 一矢而斃, 沈于淵。 後夢白龍來謝曰: “公之大慶, 將在子孫。”


상서로운 일이 일어나자 도조를 칭송하다[편집]

○度祖嘗在行營, 有二鵲集營中大樹。 度祖欲射之, 去樹幾百步, 麾下士咸謂未必中。 遂射之, 二鵲俱落, 有大蛇出, 銜之置於他樹上, 不自食。 時人異之, 爲之稱頌焉。


도조가 관직을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하다. 원에서 알동 사람을 데려가려 하였으나 보내지 않다[편집]

○順帝 元統二年甲戌, 度祖患風疾, 欲傳職於塔思不花, 趙氏請以其子完者不花承守。 後至元丁丑, 中書省差官, 來刷庚寅年從來斡東之人, 度祖呈省陳乞, 竟不刷還。


도조가 죽자 어린 교주 대신 임시로 환조 이자춘이 관직을 계승하다[편집]

○至正二年壬午七月二十四日, 度祖薨, 葬于咸興府之禮安部 雲天洞, 卽義陵。 塔思不花備由赴告開元路, 本路照勘, 塔思不花是正室之子, 令塔思不花承襲。 九月, 塔思不花卒, 子咬住幼。 那海以其母趙氏 高麗王族, 與其兄完者不花, 皆爲元尹、正尹, 又(籍)〔藉〕趙摠管之勢, 遂生覬覦之心, 乘其哀疚之中, 竊宣命印信而去。 管內軍民咸怒曰: “趙氏非嫡, 那海安可襲職!” 桓祖謂塔思不花妻朴氏曰: “嫂可自往開元路以辨。” 朴氏, 安邊人得賢之女也。 桓祖與咬住, 從朴氏詣開元, 陳訴本路, 具由以奏。 至正三年癸未正月, 元以趙氏非嫡, 咬住幼弱, 令桓祖權襲, 待咬住成丁而與之, 仍遣使來誅那海。 那海聞之, 懷宣命及印, 匿於遮仁寺, 執而殺之。 完者不花, 領敦寧致仕李枝父也。


환조가 교주에게 관직을 돌려주고자 했으나 받지 않다. 교주가 우달치에 속하다[편집]

○桓祖諱子春, 蒙古諱吾魯思不花。 齠齕異凡兒, 稍長善騎射, 及其襲職, 士卒樂附。 咬住稍長, 桓祖欲以職事歸之, 咬住讓而不受。 咬住後從桓祖, 來見恭愍王, 王屬之亏多赤, 官至中順軍器尹。


환조가 공민왕을 조회하다[편집]

○至正十五年乙未, 桓祖來見恭愍王, 王謂曰: “卿祖父, 身雖在外, 乃心王室, 我祖考實寵嘉之。 今卿無忝祖父, 予將玉汝於成矣。”


공민왕이 환조에게 쌍성의 백성을 진무하게 하다[편집]

○初雙城地沃饒, 吏治闊略, 東南民無恒産者多歸焉。 恭愍王聞于元, 中書省、遼陽省, 皆差官來, 王亦遣征東省郞中李壽山往會, 分揀新舊籍民, 謂之三省照勘戶計。 其後撫綏失宜, 稍稍流徙, 王命桓祖鎭之, 民由是得安其業。 越明年丙申, 桓祖入見, 王迎謂曰: “卿撫綏頑民, 不亦勞乎?”


환조가 기철 등의 당여를 물리치고 쌍성을 수복하다[편집]

○時奇皇后之族, 倚后勢暴橫, 后兄大司徒轍, 潛通雙城官吏趙小生、卓都卿等, 結爲黨援謀逆。 王語桓祖曰: “卿且歸, 鎭吾民, 脫有變, 當如吾命。” 是年五月, 平奇氏。 命密直副使柳仁雨, 往討雙城。 仁雨等次登州, 距雙城二百餘里, 逗遛不進。 王聞之, 授桓祖試少府尹, 賜紫金魚袋, 進階中顯, 遣兵馬判官丁臣桂, 傳旨內應。 桓祖聞命, 卽刻銜枚就行, 與仁雨合兵, 攻破雙城, 小生、都卿等, 棄妻子夜遁。 於是, 收復和、登、定、長、預、高、文、宜州及宣德、元興、寧仁、耀德、靜邊等鎭諸城。 咸州以北哈蘭、洪獻、三撒之地, 自高宗時沒于元九十九年, 今皆復之。 王進桓祖爲大中大夫司僕卿, 賜京第一區, 因留居之。


왜구가 출몰하다. 환조가 판군기감사를 거쳐 천우위 상장군에 임명되다[편집]

○時倭寇楊廣道, 京城戒嚴。 桓祖以判軍器監事, 出爲西江兵馬使。 自是再加通議、正順二大夫, 拜千牛衛上將軍。

이때 왜적이 양광도에 쳐들어 왔기에, 서울에 경계를 엄중하게 했다. 환조는 판군기감사로 나가서, 서강병마사가 되었다. 이로부터 통의, 정순 두 대부 벼슬을 올려받고, 천우위 상장군이 되었다.


환조가 동북면으로 돌아가다 죽자 함흥부에서 장사지내고 정릉이라 하다[편집]

○至正二十一年辛丑春, 以榮祿大夫判將作監事, 出爲朔方道萬戶、兼兵馬使。 御史臺上疏以爲: “李 【桓祖諱。】本東北面人, 而又其界千戶也。 不可以爲兵馬使而鎭守。” 王不允, 設宴于忽赤廳, 慰藉之甚厚, 宰樞又餞于會賓門外以慰之。 旣行, 陞爲戶部尙書。 桓祖至北道未幾, 馳報云: “本國人入彼土者, 皆順命出來。” 四月庚戌, 病薨, 壽四十六。 葬于咸興府之信平部 歸州洞, 卽定陵。 王聞訃悼甚, 遣使弔哭, 致賻如禮。 士大夫咸驚曰: “東北面無人矣!”


환조가 영흥부원군 최한기의 딸과 혼인하여 화령부에서 태조 이성계를 낳다[편집]

○桓祖配懿妃 崔氏, 贈門下侍中永興府院君諡靖孝公諱閑奇之女, 以至元元年, 高麗 忠肅王四年乙亥十月十一日己未, 誕太祖於和寧府 【卽永興府。】私第。 太祖生而聰明, 隆準龍顔, 神彩英俊, 智勇絶倫。 幼時遊於和寧、咸州間, 北人求鷹者必曰: “願得神俊如李 【太祖舊諱。】 者。”


태조 이성계가 화살 하나로 다섯 마리의 까마귀를 떨어뜨린 것을 발설치 못하게 하다[편집]

○太祖少時, 定安翁主 金氏見墻頭五烏, 請射之。 太祖一發, 五烏頭皆落, 金氏異之, 謂太祖曰: “愼勿洩此事。” 金氏, 桓王賤妾, 卽義安大君 和之母也。


태조가 20마리의 담비를 쇠살로 명중시키다[편집]

○太祖嘗於盛暑, 浴川水訖, 坐川邊近傍大藪。 有一蜜狗走出, 太祖急取樸頭射之, 中而踣, 又一蜜狗走出, 取金矢射之。 於是相繼而出, 凡二十發皆斃之, 無得逃者。 其射之神妙, 類如此。


태조가 용맹스럽게 멧돼지·범 등을 사냥하다[편집]

○太祖少時, 獵于山麓, 逐一豕, 接筈欲發, 忽臨百仞之崖, 其間不能以尺。 太祖從馬後挺身而立, 豕馬俱墜崖下。 又有人告曰: “有大虎在某藪中。” 太祖執弓矢, 又以一矢揷腰間而往, 登藪之後峴, 令人從下而驅。 太祖忽見虎在側甚近, 卽馳馬避之。 虎逐之, 登馬臀欲攫, 太祖以右手揮格之, 虎仰倒不能起, 太祖回馬射殪之。


동북면 도순문사 이달충이 태조가 비범한 인물임을 말하다[편집]

○東北面都巡問使李達衷行縣至安邊府。 達衷鎭撫一人, 以事不快於太祖, 言於達衷, 達衷召而見之, 不覺下庭, 延坐置酒。 謂鎭撫曰: “愼勿與較。” 桓祖見達衷, 謝其厚待。 及達衷還京, 桓祖餞之于野, 太祖立桓祖之後, 桓祖行酒, 達衷立飮, 至太祖行酒, 達衷跪飮。 桓祖怪問之, 達衷曰: “貴郞, 眞異人, 公殆不及。 昌公家業者, 必此子也。” 因以其子孫屬之。 時對岸有七獐聚立, 達衷曰: “若何而攫一獐, 以爲今日之饌乎?” 桓祖命太祖, 率麾下士往。 太祖令麾下士, 從山後驚之, 七獐卽走下, 太祖五發殪五獐。 又逐一獐, 接矢欲射, 適巨澤當前, 方氷合。 太祖執轡徑度射之, 又斃。 餘一獐, 矢盡而止。 又嘗獵于江陰 酸水之地, 逐一群五獐, 五發盡斃之。 平時連射三四獐, 不可殫記。 射伏雉, 必使驚飛高數丈, 仰射輒中。


무거운 활을 들고 태조가 노루 7마리를 모두 명중시키다[편집]

○太祖好射大哨鳴鏑。 以楛爲幹, 以鶴翎羽之, 闊而長, 用麋角爲哨, 大如梨, 鏃重幹長, 不類常矢, 弓力亦倍於常。 少時從桓祖獵, 桓祖取矢觀之曰: “非人所用也。” 投之於地, 太祖拾之, 揷於矢房, 立於前。 有一獐出, 太祖馳射, 一矢而斃, 又一獐出, 亦如之。 如是者七, 桓祖大悅而笑。


태조의 사냥 솜씨를 야인들이 칭송하다[편집]

○太祖從桓祖出獵, 見獸, 走馬氷崖, 射輒中之, 無一脫去。 野人驚歎曰: “舍人也, 天下無敵!” 又獵于原野, 有大豹伏葭蘆中突出, 欲犯之, 勢迫未暇回勒, 鞭馬避之。 深淵之氷, 始凝未堅, 人尙不可渡, 馬躐氷而走, 蹤穿水湧, 而終不陷。


태조가 22살에 관직에 나가다. 격구하는 방법[편집]

〔○〕高麗 恭愍王五年丙申,【至正十六年。】 太祖年二十二, 始仕。 高麗俗每於端午, 選武官年少者及衣冠子弟, 習擊毬之藝。 至其日, 於九逵, 設龍鳳帳殿, 當路中立毬門, 王御帳殿觀之, 設宴會張女樂, 卿大夫皆從之, 婦女亦結幕於路之左右, 飾以錦段, 名畫彩毯, 觀者如堵。 擊毬者盛服飾, 競尙侈靡, 一鞍之費, 直中人十家之産。 分作二隊, 立於左右, 妓一人執毬, 當殿前唱曰: “滿庭簫皷簇飛毬, 絲竿紅網總擡頭”, 進退皆中樂節。 擲毬道中, 左右隊皆趨馬而爭先, 中者得之, 餘皆退立。 擊毬之法, 先趨馬於場, 以杖之匕內, 挑毬曰排之, 以杖之匕背, 運毬曰持皮。 三回勢畢, 乃馳馬擊行毬。 行毬之初, 不縱擊, 謂之比耳, 言執杖橫直, 與馬耳齊也。 比耳之後, 擧手縱擊, 謂之垂揚, 言手高抗而杖下垂揚揚也。 出門者少, 過門者十之二三, 中道而廢者多。 若有出門者, 同隊之人, 卽皆下馬, 進殿前再拜謝。 太祖亦與其選。 行毬之時, 馳馬太疾, 已垂揚矣。 毬忽觸石而驚, 逆走出馬四足之後, 太祖便仰臥側身, 衝馬尾而擊之, 毬還出馬前二足之間, 復擊而出門, 時人謂之防尾。 又行擊之時, 亦已垂揚, 毬觸橋柱, 出馬之左, 太祖脫右鐙翻身, 擊而中之, 復擊而出門, 時人謂之橫防。 擧國驚駭, 以爲前古無聞。


동북면 상만호인 태조가 친병을 거느리고 반란을 일으킨 독로강 만호 등을 죽이다[편집]

〔○〕恭愍王十年辛丑九月, 禿魯江萬戶朴儀叛, 殺千戶任子富、金天龍, 王命刑部尙書金璡往討之, 璡不能制。 時太祖爲通議大夫、金吾衛上將軍、東北面上萬戶, 王命往援璡。 太祖以親兵一千五百人赴之, 儀已率其黨, 逃入江界, 盡捕誅之。


태조가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 온 홍건적의 무리를 격퇴시키다[편집]

○冬, 紅巾賊僞平章潘誠、沙劉、關先生、朱元帥、破頭潘等二十萬衆, 渡鴨綠江, 闌入西北鄙, 移文于我曰: “將兵百十萬而東, 其速迎降。” 太祖斬賊王元帥以下百餘級, 擒一人以獻。


공민왕이 남쪽으로 피난하고 적이 서울을 점령하다[편집]

〔○〕十一月, 恭愍王南遷, 賊據京城。

11월, 공민왕이 남쪽으로 파천하고 적이 서울을 점령했다.


참지정사 안우 등이 군사 20만을 거느리고 서울을 탈환하다[편집]

〔○〕恭愍王十一年壬寅正月, 參知政事安祐等九元帥率兵二十萬, 進取京城, 斬賊魁沙劉、關先生等, 斬首凡一十餘萬。 時太祖以麾下親兵二千人, 入自東大門, 先登大破之, 威名益著。 攻城之日, 賊雖窮蹙, 築壘固守, 會日暮, 諸軍進圍逼之。 太祖止路邊一家, 夜半, 賊闌圍而走。 太祖馳至東門, 賊及我軍, 爭門雜沓, 不可出。 有後至賊, 以槍刺太祖右耳後甚急, 太祖遂拔劍斮前七八人, 躍馬踰城, 馬不蹉跌, 人皆神之。


태조가 동북면 병마사가 되어 나하추와 대적하다[편집]

○二月, 趙小生誘引元 瀋陽行省丞相納哈出, 入寇三撒、忽面之地。 都指揮使鄭暉, 累戰敗績, 請遣太祖, 乃以太祖爲東北面兵馬使遣之。


태조와 나하추와의 전투[편집]

〔○〕七月, 納哈出領兵數萬, 與趙小生、卓都卿等屯于洪原之韃靼洞, 遣哈剌萬戶那延帖木兒, 同僉伯顔甫下指揮, 率一千餘兵爲先鋒。 太祖遇於德山洞 院平, 擊走之, 踰咸關、車踰二嶺幾殲, 委棄鎧仗, 不可勝數。 是日, 太祖退屯答相谷, 納哈出怒, 移屯德山洞, 太祖乘夜襲擊敗之。 納哈出還韃靼洞, 太祖屯舍音洞。 太祖遣斥候至車踰嶺, 賊登山樵蘇甚衆。 候卒還白, 太祖曰: “兵法當先攻弱。” 遂令擒斬殆盡, 自以精騎六百繼之, 踰嶺至嶺下, 賊乃覺欲逆戰。 太祖率十餘騎衝賊, 射殪其裨將一人。 初太祖至, 問諸將累敗狀, 諸將曰: “每戰酣, 賊將一人, 鐵甲飾以朱旄尾, 揮槊突進, 衆披靡無敢敵者。” 太祖物色其人, 獨當之, 佯北走, 其人果奮前注槊甚急。 太祖飜身着馬韂, 賊將失中, 隨槊而倒。 太祖卽據鞍射, 又殪之。 於是賊狼狽奔北, 太祖追擊至賊屯, 日暮乃還。 納哈出之妻謂納哈出曰: “公周行天下久, 復有如此將軍乎? 宜避而速歸。” 納哈出不從。 後數日, 太祖踰咸關嶺, 直至韃靼洞。 納哈出亦置陣相當, 率十餘騎出陣前, 太祖亦率十餘騎, 出陣前相對。 納哈出紿曰: “我之初來, 本追沙劉、關先生、潘誠等來耳, 非爲侵犯貴境也。 今吾累敗, 喪卒萬餘, 亡裨將數人, 勢甚窮蹙。 乞罷戰, 惟命是從。” 時賊兵勢甚盛, 太祖知其詐, 欲令降之。 有一將立納哈出之傍, 太祖射之, 應弦而倒。 又射納哈出之馬而斃, 改乘, 又斃之。 於是大戰良久, 互有勝負。 太祖迫逐納哈出, 納哈出急曰: “李萬戶也, 兩將何必相迫!” 乃回騎, 太祖又射其馬斃之。 有麾下士下馬, 以(授)〔援〕納哈出, 遂得免。 日且暮, 太祖麾軍以退, 自爲殿。 嶺路盤紆數層, 宦者李波羅實在最下層急呼曰: “令公救人! 令公救人!” 太祖在上層視之, 有二銀甲賊將逐波羅實, 注槊垂及。 太祖回馬射二將, 皆斃之, 卽連斃二十餘人。 於是更回兵擊走之, 有一賊逐太祖, 擧槊欲刺, 太祖忽側身若墜, 仰射其腋, 卽還騎。 又一賊進當太祖而射之, 太祖卽於馬上起立, 矢出胯下。 太祖乃躍馬射之, 中其膝。 又於川中, 遇一賊將, 其人甲胄, 護項面甲, 又別作頤甲, 以便開口, 周護甚固, 無隙可射。 太祖故射其馬, 馬作氣奮躍, 賊出力引轡, 口乃開, 太祖射中其口。 旣斃三人, 於是賊大奔, 太祖以鐵騎蹂之, 賊自相蹈藉, 殺獲甚多。 還屯定州, 留數日休士卒。 先設伏要衝, 乃分三軍, 左軍由城串, 右軍由都連浦, 自將中軍, 當松豆等。 與納哈出, 遇於咸興平, 太祖單騎皷勇, 突進試賊。 賊驍將三人, 竝馳直前, 太祖佯北走, 引其轡策其馬, 爲促馬狀, 三將爭追逼之。 太祖忽又出, 三將馬怒未及控, 直出於前, 太祖從後射之, 皆應弦而倒。 轉戰引至要衝, 左右伏俱發, 合擊大破之。 納哈出知不可敵, 收散卒遁去。 獲銀牌銅印等物以獻, 其餘所獲之物, 不可勝數。 於是東北鄙悉平。 後納哈出遣人通好, 獻馬于王, 且遺鞞皷一、良馬一匹于太祖, 以致禮意, 蓋心服之也。 納哈出之妹, 在軍中見太祖神武, 心悅之, 亦曰: “斯人也, 天下無雙。” 桓祖嘗入朝元朝, 道經納哈出, 稱道太祖之才, 至是納哈出敗歸曰: “李 【桓祖諱。】嚮日言我有才子, 果不誣矣。” 至大明 洪武九年丙辰冬, 辛禑遣開城尹黃淑卿往聘, 納哈出曰: “我本非與高麗戰, 伯顔帖木兒王, 遣年少李將軍擊我, 幾不免。 李將軍無恙乎? 年少而用兵如神, 眞天才也。 將任大事於爾國矣。”


공민왕을 폐위키 위해 최유가 요양성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 오니 이성계 등이 쳐부수다[편집]

〔○〕恭愍王十三年甲辰。 初諸奇伏誅, 奇皇后有憾於恭愍王。 本國崔濡, 在元爲將作同知, 與群不逞說后, 構王廢之, 立德興君 塔思帖木兒爲王。 發遼陽省兵, 正月, 渡鴨綠江, 王遣贊成事安遇慶等禦之, 敗績退保安州。 王復命贊成事崔瑩, 將精兵趣安州, 節度諸軍, 命太祖, 自東北面率精騎一千赴之。 密直副使李龜壽、知密直司事池龍壽、版圖判書羅世及遇慶爲左翼; 判開城 李珣、三司左使禹磾、密直使朴椿及太祖爲右翼; 崔瑩爲中軍, 行至定州。 太祖見諸將退北, 言其怯懦不力戰, 諸將忌之。 時賊已屯隨州之㺚川。 諸將謂太祖曰: “明日之戰, 吾獨當之。” 太祖知諸將忌之, 稍有憂色。 明日, 賊分爲三隊。 太祖居中, 手下老將二人爲左右, 各當其一隊奮擊之。 太祖所乘馬, 陷泥濘甚危, 馬奮躍而出, 衆皆驚異。 太祖射賊將數人, 遂大破之。 太祖望二人, 二人拔劍亂擊之, 賊已奔崩, 唯塵埃蔽空而已。


삼선 삼개가 여진족을 이끌고 함주를 함락시키니, 관군들이 태조가 오기를 고대하다[편집]

○初三海陽 【今吉州。】達魯花赤金方卦娶度祖女, 生三善、三介, 於太祖爲外兄弟也。 生長女眞, 膂力過人, 善騎射, 聚惡少, 橫行北邊, 畏太祖不敢肆。 太祖世長咸州, 恩威素積, 民仰之如父母, 女眞亦畏慕自戢。 至是三善、三介聞太祖往援西北, 誘致女眞, 大肆侵略, 遂陷咸州。 守將全以道、李熙等, 棄軍走還; 都指揮使韓方信、兵馬使金貴, 進兵和州亦潰, 退保鐵關, 和州以北, 皆沒焉。 官軍累敗, 將士喪氣, 日夜望太祖之至。


태조가 삼선 삼개를 격퇴하여 함주를 탈환하고, 그 공으로 밀직 부사로 승진하다[편집]

〔○〕二月, 太祖自西北面, 引軍至鐵關, 人心皆喜, 將士膽氣自倍。 與方信、貴, 三面進攻, 大破走之, 悉復和、咸等州。 三善、三介奔于女眞, 終不返。 王進拜太祖爲密直副使, 階奉翊, 賜端誠亮節翊戴功臣之號, 又賜金帶, 倚賴益重。


태조가 원나라 맹장인 조무를 감복시켜 귀순케 하다[편집]

○趙武, 元將也。 元衰, 率衆據孔州。 太祖謂麾下士曰: “此人終必爲亂, 不可置之。” 乃率衆擊之, 惜其人勇銳, 以高刀里箭, 射中數十, 武下馬而拜, 遂擒之。 武心服, 卒爲厮養, 終身僕役, 後官至工曹典書。

○조무라는 자는 원나라 장수였다. 원나라가 이울어지자 무리를 이끌고 공주를 차지하여 살았다. 태조는 아랫사람들에게 "이 놈은 나중에 꼭 난리칠 것이니, 가만히 두면 안 된다." 하면서, 군사를 이끌고 쳤으나 그가 용감하고 날랜 것이 아까워 고도리 화살로 쏴 몇 십번을 맞추었다. 조무는 말에서 내려 절하고, 사로 잡혔다. 조무가 마음으로 복종하여, 시양[1]이 되어 오랫동안 복역하였다. 나중에 공조전서까지 벼슬을 받았다.


태조가 동북면 원수가 되어 기철의 잔당과 북원과의 관계를 차단하고, 동녕부를 회복코자 하다[편집]

〔○〕恭愍王十八年己酉。【洪武二年。】初奇賽因帖木兒, 轍之子也。 事元爲平章事, 元亡, 與分司遼 瀋官吏平章金伯顔等, 招集亡元遺衆, 割據東寧府, 憾其父見誅, 入寇北鄙, 必欲報仇。 王以臣事大明, 欲擊東寧府, 以絶北元。 十二月, 以太祖爲東北面元帥, 池龍壽、楊伯淵爲西北面元帥。


태조가 군대를 거느리고 동북면의 영토를 확장하다[편집]

〔○〕恭愍王十九年庚戌正月, 太祖以騎兵五千、步兵一萬, 自東北面踰黃草嶺, 行六百餘里, 至雪寒嶺, 又行七百餘里, 渡鴨綠江。 是夕, 京城西北方紫氣漫空, 影皆南。 書雲觀言猛將之氣。 王喜曰: “予遣李,【太祖舊諱。】必其應也。” 時東寧府同知李吾魯帖木兒, 聞太祖來, 移保亏羅山城, 欲據路以拒。 太祖至也頓村, 李原景來挑戰。【原景卽吾魯帖木兒。】俄而棄甲再拜曰: “吾先, 本高麗人, 願爲臣僕。” 率三百餘戶來降。 其酋高安慰猶據城不降, 我師圍之。 時太祖不御弓矢, 取從者弓, 用片箭射之, 凡七十餘發, 皆正中其面, 城中奪氣。 安慰不能支, 棄妻孥, 縋城夜遁。 明日, 頭目二十餘人, 率百姓出降, 諸山城望風皆降, 得戶凡萬餘。 以所獲牛二千餘頭、馬數百餘匹, 悉還其主, 北人大悅, 歸之如巿。 於是, 東至皇城, 北至東寧府, 西至海, 南至鴨綠江, 爲之一空。 皇城, 古女眞皇帝城也。 太祖以元樞密副使拜住及東寧府 李原景、李伯顔、李長壽、李天祐、玄多士、金阿、魯丁等三百餘戶來獻。 太祖之入亏羅也, 聞毁垣中有哭聲, 使人就視之, 有一人裸立而泣曰: “我元朝壯元及第拜住也。 貴國李仁復, 吾同年。” 太祖一聞壯元之名, 卽解衣衣之, 與馬騎之, 遂與俱來, 王賜拜住姓名韓復。 復事太祖甚謹。


태조와 서북면 원수 지용수 등이 동녕부를 공격하다[편집]

○八月, 命我太祖及西北面元帥池龍壽、副元帥楊伯淵, 往擊東寧府。

○8월, 우리 태조와 서북면 원수 지룡수, 부원수 양백연은 명령을 받고 동녕부를 공격하였다.


동북면을 공격하고 나하추 등이 있는 곳에 방을 붙여 기새인첩목아의 행방을 탐문하다[편집]

〔○〕十二月, 太祖以親兵一千六百人至義州, 造浮橋, 渡鴨綠江, 士卒三日畢濟。 至螺匠塔, 去遼城二日程, 留輜重齎七日糧以行。 使裨將洪仁桂、崔公哲等, 領輕騎三千, 襲遼城, 彼見我師少, 易之與戰, 大軍繼至, 城中望見膽落, 其將處明恃驍勇猶拒戰。 太祖使李原景喩之曰: “殺汝甚易, 但欲活汝收用, 其速降也。” 不從。 原景曰: “汝不知我將之才也。 汝若不降, 則一射洞貫矣。” 猶不降。 太祖故射拂其兜牟, 又使原景喩之, 又不從, 太祖又射其脚, 處明中箭退走。 旣而復來欲戰, 又使原景喩之曰: “汝若不降, 卽射汝面。” 處明遂下馬叩頭而降。 有一人登城呼曰: “我輩聞大軍來, 皆欲投降, 官員勒使拒戰, 若力攻城, 可取也。” 城甚高峻, 矢下如雨, 又雜以木石, 我步兵冒矢石, 薄城急攻, 遂拔之。 賽因帖木兒遁, 虜伯顔, 退師城東。 張牓納哈出、也山不花等處曰:

奇賽因帖木兒, 本國微臣, 昵近天庭, 過蒙殊恩, 位至一品, 義同休戚。 天子蒙塵于外, 義當左右先後, 効死勿去。 爾乃背恩忘義, 竄身東寧府, 挾讎本國, 潛圖不軌。 年前國家, 遣兵追襲, 逃不血刃, 又不赴於行在, 退保東寧城, 與金伯顔平章等, 結爲心腹, 松甫里、法禿河、阿尙介等處, 團結軍馬, 又欲侵害本國, 罪在不原。 故今擧義兵以問, 乃其賽因帖木兒、金伯顔等誘脅小民, 堅壁逆命。 哨馬前鋒, 生擒金伯顔外哈刺波豆、德左不花高達魯花赤、大都摠管等大小頭目, 盡行勦捕, 賽因帖木兒, 又復在逃。 仰賽因帖木兒去接各寨, 卽便捕捉飛報。 如有隱匿不首者, 鑑在東寧。

又牓金、復州等處曰:

本國與堯竝立, 周 武王封箕子于朝鮮, 而賜之履西至于遼河, 世守疆域。 元朝一統, 釐降公主, 遼 瀋地面, 以爲湯邑, 因置分省。 叔季失德, 天子蒙塵于外, 遼 瀋頭目官等, 罔聞不赴, 又不修禮於本國, 卽與本國罪人奇賽因帖木兒, 結爲腹心, 嘯聚虐民, 不忠之罪, 不可逭也。 今擧義兵以問, 賽因帖木兒等據于東寧城, 恃强方命。 哨馬前鋒, 盡行勦捕, 玉石俱焚, 噬臍何及? 凡遼河以東本國疆內之民, 大小頭目官等速自來朝, 共享爵祿。 如有不庭, 鑑在東京。

翌日, 師次城西十里。 是夜, 有赤氣射營, 熾如火, 日官曰: “異氣臨營, 移屯大吉。” 遂班師野宿, 令士卒各作溷廁、馬廐。 納哈出躡後行二日曰: “作廁與廐, 師行整齊, 不可襲也。” 乃還。 時中國人曰: “攻城必取, 未有如高麗者也。”


태조를 지문하부사, 이색을 정당 문학에 임명하다[편집]

〔○〕恭愍王二十年辛亥七月, 以太祖知門下府事, 李穡爲政堂文學。 王問近臣曰: “文臣穡、武臣【太祖舊諱。】同日入省, 廷議以爲如何?” 蓋自多其得人也。


태조가 서모의 자식인 이화 등과 우애가 돈독하다. 서모의 노비문서를 불사르다[편집]

○初, 桓祖薨, 太祖迎定安翁主 金氏至京第, 事之甚謹, 每進見, 常跪於階下。 恭愍王敬重太祖之故, 寵待金氏子和, 常令侍禁中, 數辦宴席, 賜和令享母, 且賜敎坊音樂, 以示褒寵。 太祖榮君之賜, 多給纏頭, 又與和及庶母兄元桂, 常相共處, 友愛益篤, 悉焚其母賤案。


태조가 화령 부윤이 되어 동북면에 출몰한 왜구를 방어하다[편집]

〔○〕恭愍王二十一年壬子六月, 倭寇東北界。 以太祖爲和寧府尹, 仍爲元帥以禦之。 遼城將處明, 時年已老, 從太祖往和寧。 一日出獵, 地險仄凍滑, 太祖馳下峻坂, 射大熊數四, 皆一矢而斃。 處明歎曰: “僕閱人多矣, 公才天下一人耳。”


태조가 화살 한개로 노루 두마리를 사냥하다[편집]

○太祖嘗獵于洪原之照浦山, 有三獐爲群而出, 太祖馳射, 先射一獐而斃。 二獐竝走, 又射之, 一發疊洞, 矢著於槎。 李原景取其矢而至, 太祖曰: “爾來何遲也?” 原景曰: “矢深著於木, 未易拔。” 太祖笑曰: “假使三獐, 乃公矢力, 亦足洞貫矣。”


태조가 화살로 쏴 떨어뜨린 배를 가지고 손님을 대접하다[편집]

○太祖嘗盛集親朋, 置酒射侯。 有梨樹立百步外, 樹頭有實數十顆, 相積離離, 衆賓請太祖射之。 一發盡落, 取以供賓, 衆賓歎服, 擧酒相賀。


태조가 잡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슴을 잡다[편집]

○太祖與李豆蘭竝逐一鹿, 忽遇僵樹當前, 鹿從樹下走, 豆蘭勒馬回去, 太祖超踰樹上, 馬出其下, 卽及騎追射獲之。 豆蘭驚歎曰: “公天才, 非人力所及。”


태조가 활을 쏜 것이 백발 백중하니 모두가 감탄하다[편집]

○恭愍王令卿大夫射侯, 親觀之。 太祖百發百中, 王歎曰: “今日之射, 唯李 【太祖舊諱。】一人而已。” 贊成事黃裳仕元, 以善射聞於天下, 順帝親引其臂而觀之。 太祖會諸同列, 射侯於德巖, 置侯於百五十步, 太祖每發盡中之。 日旣午, 裳至, 諸相請太祖獨與裳射, 凡數百發。 裳連中五十後, 或中或不中, 太祖無一不中焉。 王聞之, 乃曰: “李 【太祖舊諱。】固非常人也。” 又嘗出內府銀小鏡十介, 置八十步, 命公卿射之, 約中者與之。 太祖十發十中, 王稱嘆。 太祖常以謙退自居, 不欲上人, 每射侯, 但視其耦能否、籌之多少, 纔令與耦相等而已, 無所勝負, 人雖有願觀而勸之者, 亦不過一籌之加耳。


태조와 최영이 여러 도의 군사를 징발하여 덕적도 등의 왜적을 방비하다[편집]

〔○〕辛禑元年乙卯【洪武八年。】九月, 倭舶大集德積、紫燕二島。 禑徵諸道兵, 以太祖及判三司事崔瑩領之, 耀兵東、西江以備之。


태조가 사냥한 범을 우왕에게 바치니, 우왕이 조심하라고 유시하다[편집]

○十月, 太祖出獵, 射虎以獻, 禑賜衣, 仍諭之曰: “惡獸宜獲。 然亦危事, 後其愼之。”

10월, 태조가 사냥 나가 범을 쏘아 바치니, 우왕은 옷을 내려주며 타일러 말했다.

"포악한 짐승은 잡아야 하오. 그러나 위험한 일이니, 다음에는 그 일을 조심히 하시오."


태조가 환조의 적장자인 이천계에게 대우를 극진히 하다[편집]

○初桓祖薨, 天桂自以爲嫡嗣, 心忌太祖。 太祖奴有訴良者, 天桂與其妹康祐妻合謀, 連結訴良者, 欲作亂不果。 太祖不以介意, 待之如初。 至丙辰夏, 有人奪天桂管下人已媒之妻, 天桂怒, 歐殺之, 遂下獄。 天桂嘗詈辱用事宰相, 宰相遂以前憾, 將殺之, 太祖營救力請, 竟不能得, 甚悼之, 撫育諸孤, 凡婚嫁等事, 皆自主之。 康祐之妻家貧, 太祖憐之, 多給奴婢, 以贍其生。 開國後, 天桂之子, 皆拜高爵。 天桂, 卽咬住。


왜적이 강화부에 침입하니, 태조와 황상 등이 서강에서 군사력을 시위하다[편집]

〔○〕辛禑三年丁巳三月, 倭寇江華府, 京城大震。 以太祖及義昌君 黃裳等十一元帥, 耀兵于西江。


태조가 지리산의 험한 지세에서 왜적을 섬멸하다[편집]

○五月, 慶尙道元帥禹仁烈飛報曰: “邏卒言: ‘倭賊自對馬島蔽海而來, 帆檣相望。’ 請遣助戰元帥。” 時倭賊所在充斥, 命太祖往擊之。 太祖行未至, 人心洶懼, 仁烈飛報繼至, 太祖幷日而行, 與賊戰于智異山下。 相去二百許步, 有一賊背立俯身, 手扣其臀, 示無畏以辱之。 太祖用片箭射之, 一矢而倒。 於是賊驚懼氣奪, 卽大破之。 賊衆狼狽, 登山臨絶崖, 露刃垂槊如蝟毛, 官軍不得上。 太祖遣裨將率衆攻之, 裨將還白, 巖高峻馬不得上。 太祖叱之, 又使上王, 分麾下勇士, 與之偕行。 上王還白, 亦如裨將之言。 太祖曰: “然則我當親往見之。” 乃謂麾下士曰: “我馬先登, 則汝等要當隨之。” 遂鞭馬互馳, 觀其地勢, 卽拔劍用刃背打馬。 時日方中, 劍光如電, 馬一躍而登, 軍士或推或攀而隨。 於是奮擊之, 賊墜崖而死者太半, 遂擊餘賊盡殲焉。 太祖素得人心, 又士卒精銳, 戰無不克, 州郡望若雲霓。


태조가 서해도에 침구한 왜적을 해주에서 격퇴하다[편집]

○八月, 倭寇西海道 信州、文化、安岳、鳳州, 元帥贊成梁伯益、判開城府事羅世、知門下朴普老、都巡問使沈德符等敗績, 請遣將助戰。 禑以太祖及門下評理林堅味ㆍ邊安烈、密直副使柳蔓殊ㆍ洪徵爲助戰。 元帥安烈、堅味等戰於海州, 皆奔潰。 太祖將戰, 置兜鍪於百數十步外試射之, 以卜勝否。 遂三發皆洞貫, 曰: “今日之事, 可知”, 戰於州之東亭子。 戰方酣, 遇泥濘之地丈餘, 太祖之馬一踴而過, 從者皆不得度。 太祖以大羽箭, 射賊十七, 發皆斃之, 乃縱兵乘之, 遂大破之。 是戰也, 太祖初御大羽箭二十, 及戰罷, 餘三矢。 謂左右曰: “吾皆射左目眥。” 左右就視之, 盡驗矣。 餘賊阻險, 積柴自固。 太祖下馬, 據胡床張樂, 僧神照割肉進酒, 命士卒焚柴, 烟焰漲天。 賊勢窮出, 死力衝突, 矢中座前缾。 太祖安坐不起, 命金思訓、魯玄受、李萬中等, 擊之幾殲。 時倭賊擄國人, 必問: “李 【太祖舊諱】 萬戶, 今在何處乎?” 不敢近太祖之軍, 必伺間乃入寇。


태조가 문도리 위의 쥐 3마리를 활을 쏘아 떨어뜨리다[편집]

○禹仁烈嘗謁於邸舍, 太祖對坐西廳, 見遮陽, 三鼠緣楣而走, 太祖呼童取弓及高刀里三, 候之。 一鼠旋過于楣, 太祖以爲: “中之而已, 不至於傷可矣。” 遂射之, 鼠與矢俱墜, 果不死而走, 餘二鼠亦如之。


최영이 해풍군에서 왜적과 싸워 패퇴하였으나, 태조가 합세하여 물리치다[편집]

〔○〕辛禑四年戊午四月, 倭船大集窄梁, 入昇天府, 聲言將寇京城, 中外大震, 兵衛列於闕門, 以待賊至, 城中洶洶, 令坊里軍, 登城望候, 分命諸軍, 出屯東、西江。 判三司事崔瑩督諸軍, 軍于海豐郡, 門下贊成事楊伯淵副之。 賊覘知之, 以爲: “得破瑩軍, 則京城可窺。” 乃經諸屯, 捨不與角, 趨海豐, 直向中軍。 瑩曰: “社稷存亡, 決此一戰”, 遂與伯淵進擊之。 賊逐瑩, 瑩奔。 太祖率精騎直進, 與伯淵合擊大破之。 瑩見賊披靡, 率麾下乃進, 從旁擊之, 賊殆盡, 餘黨夜遁。


태조가 서울의 많은 인명을 해친 범을 쏴 죽이다[편집]

○八月, 虎入京城, 多害人物, 太祖射殪之。

8월, 범이 서울에 들어와서 사람과 짐승을 많이 해하니, 태조께서 쏴 죽였다.


태조가 대규모의 병력으로 침입한 왜적을 격퇴하니 한산군 이색 등이 시를 지어 치하하다[편집]

〔○〕辛禑六年庚申八月, 倭賊五百艘, 維舶於鎭浦, 入寇下三道, 屠燒沿海州郡殆盡, 殺虜人民, 不可勝數, 屍蔽山野。 轉穀于其舶, 米棄地厚尺, 斫所俘子女山積, 所過波血。 掠得二三歲女兒, 剃髮剖腹淨洗, 兼奠米酒祭天。 三道沿海之地, 蕭然一空, 自有倭患, 未有如此之比。 禑以太祖爲楊廣、全羅、慶尙三道都巡察使, 往征之, 贊成事邊安烈爲都體察使以副之。 評理王福命、評理禹仁烈、右使都吉敷、知門下朴林宗、商議洪仁桂、密直林成味、陟山君 李元桂爲元帥, 皆受太祖節度。 師出至長湍, 白虹貫日, 占者曰: “戰勝之兆。” 倭入尙州, 置酒六日, 燔府庫, 經京山府, 駐沙斤乃驛。 三道元帥裵克廉等九元帥敗績, 朴修敬、裵彦二元帥死之, 士卒死者五百餘人。 賊勢益熾, 遂屠咸陽城, 向南原, 焚雲峯縣, 屯引月驛, 聲言: “將穀馬于光之金城, 北上。” 中外大震。 太祖見千里之間, 僵屍相接, 爲之惻然, 不能寢食。 太祖與安烈等, 至南原, 距賊百二十里, 克廉等來謁于道, 莫不懽悅。 太祖休馬一日, 將以厥明戰, 諸將咸曰: “賊負險, 不若(徙)〔待〕其出與戰。” 太祖慨然曰: “興師敵愾, 猶恐不見賊。 今遇賊不擊可乎!” 遂部署諸軍, 詰朝誓而東, 踰雲峯, 距賊數十里, 至黃山西北, 登鼎山峯。 太祖見道右險徑曰: “賊必出此, 襲我後矣, 我當趨之。” 遂自趨之。 諸將皆由坦途進, 望見賊鋒銳甚, 不戰而却, 時日已昃矣。 太祖旣入險, 賊奇銳果突出, 太祖以大羽箭二十射之, 繼以柳葉箭射之, 五十餘發, 皆中其面, 莫不應弦而斃。 凡三遇鏖戰殲之。 地又泥濘, 彼我俱陷, 相顚仆。 及出, 死者皆賊, 我軍不傷一人。 於是賊據山自固, 太祖指揮士卒, 分據要害, 使麾下李大中、禹臣忠、李得桓、李天奇、元英守、吳一、徐彦、陳中奇、徐金光、周元義、尹尙俊、安升俊等挑之, 太祖仰攻之。 賊出死力, 臨高衝突, 我軍分北而下。 太祖顧謂將士曰: “堅控轡, 勿使馬蹶。” 旣而, 太祖復使吹螺整兵, 蟻附而上, 衝賊陣。 有賊將引槊直趨太祖後甚急, 偏將李豆蘭躍馬大呼: “令公視後! 令公視後!” 太祖未及見, 豆蘭遂射殪之。 太祖馬中矢而仆, 易乘, 又中仆, 又易乘。 飛矢中太祖左脚, 太祖抽矢, 氣益壯戰益急, 軍士莫知太祖傷。 賊圍太祖數重, 太祖與數騎, 突圍而出, 賊又衝突太祖前, 太祖立殪八人, 賊不敢前。 太祖誓指天日, 麾左右曰: “怯者退, 我且死賊!” 將士感厲, 勇氣百倍, 人人殊死戰, 賊植立不動。 有一賊將年纔十五六, 骨貌端麗, 驍勇無比。 乘白馬, 舞槊馳突, 所向披靡, 莫敢當。 我軍稱阿其拔都, 爭避之。 太祖惜其勇銳, 命豆蘭生擒之。 豆蘭曰: “若欲生擒, 必傷人。” 阿其拔都著甲胄, 護項面甲, 無隙可射。 太祖曰: “我射兜鍪頂子令脫, 汝便射之。” 遂躍馬射之, 正中頂子, 兜鍪纓絶而側, 其人急整之。 太祖卽射之, 又中頂子, 兜鍪遂落, 豆蘭便射殺之。 於是賊挫氣。 太祖挺身奮擊, 賊衆披靡, 銳鋒盡斃。 賊痛哭, 聲如萬牛, 棄馬登山。 官軍乘勝馳上山, 歡呼皷譟, 震天地, 四面崩之, 遂大破之。 川流盡赤, 六七日色不變, 人不得飮, 皆盛器候澄, 久乃得飮。 獲馬一千六百餘匹, 兵仗無算。 初賊十倍於我, 唯七十餘人, 奔智異山。 太祖曰: “賊之勇者, 殆盡矣。 天下未有殲敵之國。” 遂不窮追。 因笑謂諸將曰: “擊賊固當如是。” 諸將咸服之。 退而大作軍樂, 陳儺戱, 軍士皆呼萬歲, 獻首級山積。 諸將懼治不戰之罪, 叩頭流血乞生, 太祖曰: “在朝廷處分。” 時被擄者自賊中還, 言: “阿其拔都望見太祖置陣整齊, 謂其衆曰: ‘觀此兵勢, 殊非往日諸將之比。 今日之事, 爾輩宜各愼之。’” 初阿其拔都在其島欲不來, 衆賊服其勇銳, 固請而來。 諸賊酋每進見, 必趨跪, 軍中號令, 悉主之。 是行也, 軍士帳幕柱, 皆欲易以竹, 太祖謂曰: “竹輕於木, 便於致遠, 然亦民家所植也, 且非吾裝齎舊物, 不失舊物而還足矣。” 太祖所至, 不犯秋毫, 皆類此。 兀羅之役, 太祖獲處明不殺, 處明感恩, 每見矢痕, 必嗚咽流涕, 終身隨侍左右。 是戰也, 處明居馬前, 力戰立功, 時人稱之。 太祖振旅而還, 判三司崔瑩率百官, 設綵棚雜戲, 班迎東郊天壽寺前。 太祖望見下馬, 趨進再拜, 瑩亦再拜, 前執太祖手揮涕曰: “非公, 孰能爾耶?” 太祖頓首謝曰: “謹奉明公指揮, 幸而得捷。 予何功焉? 此賊勢已挫矣, 儻若復肆, 吾當受責。” 瑩曰: “公乎公乎! 三韓再造, 在此一擧。 微公, 國將何恃?” 太祖讓不敢當。 禑賜金五十兩, 太祖辭曰: “將帥殺賊, 職耳。 臣何敢受!” 韓山君 李穡作詩致賀曰:

掃賊眞將拉朽同, 三韓喜氣屬諸公。 忠懸白日天收霧, 威振靑丘海不風。 出牧華筵歌武烈, 凌煙高閣畫英雄。 病餘不得參郊迓, 坐詠新詩頌雋功。

前三司左使金九容和之曰:

賊鋒摧挫與雷同, 節制無非自我公。 瑞霧葱葱銷毒霧, 霜風洌洌助威風。 島夷墜膽軍容盛, 隣境寒心士氣雄。 滿國衣冠爭拜賀, 三韓萬世太平功。

成均祭酒權近和之曰:

三千心與德皆同, 師律如今盡在公。 許國忠誠明貫日, 摧鋒勇烈澟生風。 彤弓赫赫恩榮重, 白羽巍巍氣勢雄。 一自凱旋宗社定, 須知馬上有奇功。


많은 군사가 태조의 군영에 모여 들다[편집]

○高麗末, 官不籍兵, 諸將各占爲兵, 號曰牌記。 大將若崔瑩、邊安烈、池龍壽、禹仁烈等, 幕僚士卒, 有不如意者, 詬罵無所不至, 或加榜棰, 至有死者, 麾下多怨望。 太祖性稟嚴重簡默, 平居常閉目而坐, 望之澟然, 及至接人, 渾是一團和氣, 故人皆畏而愛之。 其在諸將中, 獨禮接麾下, 平生無誶語, 諸將麾下, 皆願屬者。


태조가 동북면 도지휘사가 되어 임지로 떠나자, 이색이 시를 지어 전송하다[편집]

〔○〕辛禑八年壬戌秋七月, 以太祖爲東北面都指揮使。 時女眞人胡拔都, 擄掠東北面人民而去, 以太祖世管其道軍務, 威信素著, 遣以慰撫之。 韓山君 李穡作詩送之曰:

松軒膽氣蓋戎臣, 萬里長城屬一身。 奔走幾經多故日, 歸來同樂太平春。 如今大勢關宗社, 況是前鋒似鬼神。 聯袂兩朝情不淺, 只將詩律送行塵。


태조가 단주에 침입한 호발도를 격퇴하고 변방을 평안히 할 계책을 올리다[편집]

〔○〕辛禑九年癸亥八月, 胡拔都又來寇端州, 副萬戶金同不花內應, 盡以財貨故後, 陽爲被執。 上萬戶陸麗、靑州上萬戶黃希碩等累戰皆敗。 時李豆蘭以母喪在靑州, 太祖使人召謂之曰: “國家事急, 子不可持服在家, 其脫衰從我。” 豆蘭乃脫衰服, 拜哭告天, 佩弓箭從行。 與胡拔都遇於吉州平, 豆蘭爲前鋒, 先與戰, 大敗而還。 太祖尋至, 胡拔都著厚鎧三重, 襲紅褐衣, 乘黑牝馬, 橫陣待之。 意輕太祖, 留其軍士, 拔劍挺身馳出, 太祖亦單騎, 拔劍馳進, 揮劍相擊, 兩皆閃過不能中。 胡拔都未及騎馬, 太祖急回騎, 引弓射其背, 鎧厚箭未深入, 卽又射其馬洞貫, 馬倒而墜。 太祖又欲射之, 其麾下大至, 共救之, 我軍亦至。 太祖縱兵破之, 胡拔都僅以身遁去。 太祖因獻安邊之策曰: “北界與女眞、達達、遼 瀋之境相連, 實爲國家要害之地。 雖於無事之時, 必當儲糧養兵, 以備不虞。 今其居民, 每與彼俗互巿, 日相親狎, 至結婚姻, 而其族屬在彼, 誘引而去, 又爲鄕導, 入寇不已。 唇亡齒寒, 非止東北一面之憂也。 且兵之勝否, 在於地利之得失。 彼兵所據, 近我西北, 舍而不圖, 乃以重利, 遠啗我吾邑草、甲州、海陽之民以誘致之, 今又突入端州、禿魯兀之地, 驅掠人物。 以此觀之, 我之要害地利形勢, 彼固知之矣。 臣受任方面, 不可坐視, 謹籌邊策以聞。 一, 禦寇之方, 在於鍊兵齊擧。 今也以不敎之兵, 散處遠地, 及寇之至, 倉皇招集, 比其至也, 寇已擄掠而退。 雖及與戰, 其如不熟旌鼓, 不習擊刺何? 願自今鍊兵訓卒, 嚴立約束, 申明號令, 待變而作, 無失事機。 一, 師旅之命, 係於糧餉。 雖百萬之師, 有一日之糧, 方爲一日之師; 有一月之糧, 方爲一月之師。 是不可一日無食也。 此道之兵, 昔運慶尙、江陵、交州之穀以給之, 今以道內地稅代之。 比因水旱, 公私俱竭, 加以遊手之僧, 無賴之人, 托爲佛事, 冒受權勢書狀, 干謁州郡, 借民斗米尺布, 斂以甔石尋丈, 號曰反同, 徵如逋債, 民以飢寒。 又諸衙門、諸元帥所遣之人, 群行傳食, 剝膚搥髓, 民不忍苦, 失所流亡, 十常八九, 軍之糧餉, 無從而出。 乞皆禁斷, 以安百姓。 又道內州郡, 介於山海, 地狹且瘠, 今其收稅, 不問耕田多寡, 惟視戶之大小。 和寧於道內, 地廣以饒, 皆吏民地祿, 而其地稅, 官不得收, 取民不均, 餉軍不足。 今後道內諸州及和寧, 一以耕田多寡科稅, 以便公私。 一, 軍民非有統屬, 緩急難以相保。 是以先王丙申之敎, 以三家爲一戶, 統以百戶, 統主隷於帥營。 無事則三家番上, 有事則俱出, 事急則悉發家丁, 誠爲良法。 近來法廢, 無所維繫, 每至徵發, 散居之民, 逃竄山谷, 難以招集。 今又旱饑, 民心益離, 彼用錢穀, 餌以招納, 潛師以來, 擄掠而歸。 一界窮民, 旣無恒心, 又皆雜類, 彼此觀望, 惟利之從, 實爲難保。 乞依丙申之敎, 更定軍戶, 使有統屬, 固結其心。 一, 民之休戚, 係於守令; 軍之勇怯, 在於將帥。 今之爲郡縣者, 出於權幸之門, 恃其勢力, 不謹其職, 以致軍觖其須, 民失其業, 戶口消耗, 府庫虛竭。 乞自今公選廉勤正直者, 俾之臨民, 字撫鰥寡, 又擇堪爲將帥者, 俾之摠戎, 捍禦國家。”


태조가 안변에서 후에 개국 공신이 된 한충과 김인찬을 처음으로 만나다[편집]

〔○〕九月, 太祖至自東北面。 是行, 太祖回至安邊, 有二鴿集于田中桑樹, 太祖射之, 一發二鴿俱落。 路邊有二人耘, 一韓忠、一金仁賛。 見之嘆曰: “善哉都領之射!” 太祖笑曰: “我已過都領矣。” 因命二人取食之。 於是二人備粟飯以進, 太祖爲之下箸。 二人遂從不去, 皆與開國功臣之列。 太祖(割)〔豁〕達濟時之量、仁厚好生之德, 出於天性, 勳庸燀赫, 愈益謙恭。 且素重儒術, 嘗以家門未有業儒者爲嫌, 令殿下就學。 殿下惟日孜孜, 讀書不倦, 太祖嘗謂曰: “成吾志者, 必汝也。” 妃康氏每聞殿下讀書聲, 嘆曰: “何不爲吾出乎!” 是年, 殿下登第, 太祖拜闕庭, 感極流涕。 及拜提學, 太祖甚喜, 令人讀官敎, 至于再三。 太祖每燕會賓客, 令殿下聯句, 輒謂曰: “我之與客懽娛, 汝力居多。” 殿下成就聖德, 雖自天性, 實由太祖勸學之勤也。


태조가 자유 자재로 활을 쏘다[편집]

〔○〕辛禑十一年乙丑, 太祖從禑畋于海州。 矢人進新矢, 太祖令亂揷紙丸於積稻之上, 射之皆中, 謂左右曰: “今日射獸, 當盡中脊。” 太祖平時射獸, 必中右雁翅骨, 是日射鹿四十, 皆正中其脊, 人服其神。 世人射獸, 獸在左則射獸之右, 獸自右, 橫走出左則射獸之左。 太祖逐獸, 獸雖自右而左, 不卽射之, 必旋折其馬而鞭之, 使獸在左直走, 乃射之, 亦必中右雁翅骨。 時人皆曰: “李公射百獸, 必百中其右。” 禑嘗於行宮, 命諸武臣射, 的用黃紙爲質, 大如椀, 以銀爲小的, 棲其中, 徑纔二寸, 置五十步許。 太祖射之, 終不出銀的, 禑樂觀之, 繼之以燭, 賜太祖良馬三匹。 李豆蘭言於太祖曰: “奇才, 不可多示人。”


태조가 장단에서 노루 사냥하다[편집]

○太祖獵于長湍, 乘五明赤馬, 行高嶺上, 嶺下有絶壁, 有二獐自左而走下, 太祖直馳下, 鞭馬不已, 從者皆失色。 太祖射前獐, 正中而斃, 急回馬而止, 去絶壁數步, 人皆驚服。 太祖笑謂左右曰: “非我, 莫能止之。”


태조를 모함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최영과의 정분을 돈독히 유지하다[편집]

○太祖與崔瑩情好極篤。 太祖威德漸盛, 人有欲構於禑者, 瑩怒曰: “李公爲國柱石, 若一朝緩急, 當使誰與?” 每將宴會賓客, 瑩必謂太祖曰: “我備麪饌, 公備肉饌。” 太祖曰: “諾。” 一日, 太祖爲是, 率麾下士獵, 有一獐自高嶺而走下。 地勢峻絶, 諸軍士皆不得下, 迤從山底, 回馳而集, 忽聞大哨鳴鏑聲, 自上而下, 仰視之, 乃太祖自嶺上直馳下, 勢若迅電, 去獐甚遠, 射之正中而斃。 太祖卽控馬而笑曰: “此兒之拳乎!” 瑩麾下士玄貴命, 亦在軍士中親見之, 以其狀言於瑩, 瑩嗟賞者久之。


송도에서 꿩을 사냥하다[편집]

○太祖嘗獵于松都郊外, 見伏雉, 令人驚飛, 以樸頭仰射之, 中而落。 時王福命與高麗宗親一人, 立於太祖之後, 二人下馬, 叩頭而賀。 福命因請其箭, 太祖與之而笑曰: “箭自中耶? 但在人耳。”


나무공을 만들어 박두로 쏴 맞추다[편집]

○太祖常時作木毬, 大如梨。 令人於五六十步外仰擲之, 以樸頭射之, 輒中。


명 사신이 태조와 이색의 안부를 묻다. 왜구의 침략을 태조가 격퇴하다[편집]

○九月, 大明使張溥、周倬等, 至境上, 問太祖及李穡安否。 時太祖及崔瑩威名聞天下, 不欲使溥等見之, 皆出于外, 瑩出屯于郊。 是時, 倭賊百五十艘寇咸州、洪原、北靑、哈闌北等處, 殺虜人民殆盡。 元帥贊成事沈德符、知密直洪徵、密直副使安柱、靑州上萬戶黃希碩、大護軍鄭承可等, 與戰于洪原之大門嶺北。 諸將皆敗先遁, 唯德符突陣獨入, 中槊而墮, 賊欲復刺, 麾下劉訶郞哈, 馳入射之, 遂連斃三人, 奪賊馬以授德符, 轉戰出陣。 於是德符軍亦大敗, 賊勢益熾, 太祖請往擊之, 至咸州府署。 諸將營中有松在七十步許, 太祖召軍士謂曰: “我射第幾枝第幾箇松子, 汝等觀之。” 卽以柳葉箭射之, 七發七中, 皆如所命, 軍中皆蹈舞歡呼。 明日直至賊所屯兎兒洞, 伏兵於洞之左右。 賊衆先據洞內東西山, 遙聞螺聲, 大驚曰: “此李 【太祖舊諱。】硨磲螺也。” 太祖率上護軍李豆蘭、散員高呂、判衛尉寺事趙英珪ㆍ安宗儉ㆍ韓那海ㆍ金天ㆍ崔景ㆍ李玄景ㆍ河石柱ㆍ李柔ㆍ全世ㆍ韓思友ㆍ李都景等百餘騎, 按轡徐行, 過其間, 賊見兵少行緩, 不測所爲, 不敢擊, 東賊就西賊爲一屯。 太祖登東賊所屯處, 據胡床, 令軍士解鞍息馬。 久之, 將上馬, 百許步有枯槎, 太祖連射三矢, 皆正中之, 賊相顧驚服。 太祖令解倭語者呼謂曰: “今主將, 卽李 【太祖舊諱。】萬戶也。 汝其速降。 否則悔無及矣。” 賊酋對曰: “唯命是從。” 方與其下議降未定, 太祖曰: “當因其怠而擊之。” 遂上馬, 使豆蘭、呂、英珪等引致之, 先鋒數百追來。 太祖陽被逐, 自爲殿, 退入伏中, 遂回兵親射賊二十餘人, 莫不應弦而斃。 與豆蘭、宗儉等馳擊之, 伏兵且起。 於是太祖身先士卒, 單騎衝突賊後, 所向披靡, 出而復入者數四, 手斃之賊無算。 所射洞徹重甲, 或有一矢而人馬俱徹者。 賊徒分崩, 官軍乘之, 呼聲動天地, 僵尸蔽野塞川, 無一人得脫者。 是戰也, 女眞軍乘勝縱殺, 太祖令曰: “賊窮可哀, 勿殺生擒之。” 餘賊入千佛山, 亦盡擒之。 禑賜太祖白金五十兩、五表裏、鞍馬, 又加賜定遠十字功臣號。


태조가 권세를 천단한 이인임 일당을 제거하고, 수 문하 시중이 되다[편집]

〔○〕辛禑十四年戊辰正月。 時, 侍中李仁任用事, 其黨領三司林堅味、左使廉興邦、贊成事都吉敷等分據要途, 賣官鬻爵, 奪人田丁, 肆其貪虐, 公私匱竭。 太祖與崔瑩憤其所爲, 同心協力, 導禑除之, 三韓大悅, 道路歌舞。 堅味等誅, 以太祖守門下侍中。


염흥방·임견미 등이 임용했던 사람들을 파직시키다[편집]

〔○〕二月, 太祖與瑩坐政房, 瑩盡黜林、廉所用之人。 太祖曰: “林、廉執政日久, 凡士大夫, 皆其所擧。 今但問才之賢否耳, 惡咎其旣往!” 瑩不聽。


태조가 형살을 중지하도록 요청했으나, 최영이 듣지 않다[편집]

○瑩以前原州牧使徐信, 乃李成林友壻, 欲幷誅之, 太祖使人言曰: “罪魁已族, 兇徒已誅, 自今宜止刑殺, 以布德音。” 瑩亦不聽。


태조가 무인이면서도 문인과 경사를 토론하고 《대학연의》를 즐겨 보다[편집]

○太祖素重儒術, 雖在軍旅, 每投戈之隙, 引儒士劉敬等, 商確經史, 尤樂觀眞德秀 《大學衍義》, 或至夜分不寐, 慨然有挽回世道之志。


명에서 철령 이북의 땅을 요구하자 요동 정벌을 논의하다[편집]

○初大明帝以爲: “鐵嶺迤北迤東迤西, 元屬開元所管軍民。 漢人、女眞、達達、高麗, 仍屬遼東。” 崔瑩集百官議之, 皆以爲不可與。 禑與瑩密議攻遼, 公山府院君 李子松就瑩第, 力言不可, 瑩托以子松黨附林堅味, 杖流全羅道內廂, 尋殺之。 禑得西北面都安撫使報, 遼東兵至江界, 將立鐵嶺衛。 泣曰: “群臣不聽吾攻遼之計, 使至於此。” 大明復遣遼東百戶王得明, 來告立鐵嶺衛。


우왕과 최영이 요동을 공격하기로 결정하다[편집]

〔○〕三月, 禑獨與瑩決策攻遼, 然猶未敢昌言也。 托言遊獵, 西幸海州。


요동 정벌이 결정되었으나, 4가지 불가한 이유를 들어 태조가 반대하다[편집]

〔○〕四月, 次鳳州。 謂太祖曰: “寡人欲攻遼陽, 卿等宜盡力。” 太祖曰: “今者出師, 有四不可。 以小逆大, 一不可; 夏月發兵, 二不可; 擧國遠征, 倭乘其虛, 三不可; 時方暑雨, 弓弩膠解, 大軍疾疫, 四不可。” 禑頗然之。 太祖旣退, 謂瑩曰: “明日, 宜以此言復啓。” 瑩曰: “諾。” 夜, 瑩入白: “願毋納他言。” 明日, 禑語太祖曰: “業已興師, 不可中止。” 太祖曰: “殿下必欲成大計, 駐駕西京, 待秋出師, 禾穀被野, 大軍足食, 可以皷行而進矣。 今則出師非時, 雖拔遼東一城, 雨水方降, 軍不得前却。 師老糧匱, 祇速禍耳。” 禑曰: “卿不見李子松耶?” 太祖曰: “子松雖死, 美名垂於後, 臣等雖生, 已失計矣, 何用哉!” 禑不聽。 太祖退而涕泣, 麾下士曰: “公何慟之甚也?” 太祖曰: “生民之禍, 自此始矣。” 禑次平壤, 督徵諸道兵, 作浮橋于鴨綠江, 又發僧徒爲兵。 加瑩八道都統使, 以昌城府院君 曺敏修爲左軍都統使, 太祖爲右軍都統使, 遣之。 左右軍共五萬餘人, 衆號十萬。 將出師, 禑醉日晏不興, 諸將不得拜辭。 及醒, 泛舟石浦, 至夕乃還, 飮諸將酒, 諸軍發平壤。 瑩啓曰: “今大軍在途, 若淹延旬月, 則大事不成, 臣請往督之。” 禑曰: “卿行則誰與爲政?” 瑩固請, 禑曰: “然則寡人亦往矣。” 有人自泥城來曰: “近遼東兵, 悉赴征胡, 城中但有一指揮耳。 大軍若至, 可不戰而下。” 瑩大喜, 厚給其人。 禑停洪武年號, 令國人復胡服。 常幸大同江, 張胡樂于浮碧樓, 自吹胡笛, 樂而忘返。 每出遊, 輒奏胡樂, 令倡優呈百戲。 瑩日領軍士, 出入吹笛, 君臣荒淫, 殺戮日甚, 百姓怨咨。 禑遣使賜諸將金銀酒器。


태조가 조민수와 함께 위화도에서 회군하다[편집]

〔○〕五月, 大軍渡鴨綠江, 次威化島, 亡卒絡繹於道。 禑命所在斬之, 不能止。 左、右軍都統使上言: “臣等乘桴過鴨江, 前有大川, 因雨水漲, 第一灘漂溺者數百, 第二灘益深, 留屯洲中, 徒費糧餉。 自此至遼東城, 其間多有巨川, 似難利涉。 近日條錄不便事狀以聞, 未蒙兪允, 誠惶誠懼。 然當大事, 有可言者而不言, 是不忠也。 安敢避鈇鉞而默默乎? 以小事大, 保國之道。 我國家統三以來, 事大以勤。 玄陵於洪武二年, 服事大明, 其表云: ‘子孫萬世, 永爲臣妾。’ 其誠至矣。 殿下繼志, 歲貢之物, 一依詔旨, 於是特降誥命, 賜玄陵之諡, 冊殿下之爵。 此宗社之福, 而殿下之盛德也。 今聞劉指揮領兵立衛之言, 使密直提學朴宜中奉表計稟, 策甚善也。 今不俟命, 遽犯大邦, 非宗社生民之福也。 況今暑雨, 弓解甲重, 士馬俱憊, 驅而赴之堅城之下, 戰不可必勝, 攻不可必取? 當此之時, 糧餉不給, 進退維谷, 將何以處之? 伏惟殿下特命班師, 以答三韓之望。” 禑與瑩不聽, 遣宦者金完, 督令進兵。 左右軍都統使留完不遣, 又遣人詣瑩, 請速許班師, 瑩不以爲意。 軍中訛言: “太祖率麾下親兵, 向東北面, 已上馬矣,” 軍中洶洶。 敏修罔知所措, 單騎馳詣太祖, 涕泣曰: “公去矣, 吾儕安往?” 太祖曰: “予何去矣? 公勿如是。” 太祖乃諭諸將曰: “若犯上國之境, 獲罪天子, 宗社生民之禍, 立至矣。 予以順逆上書, 請還師, 王亦不省, 瑩又老耄不聽。 盍與卿等見王, 親陳禍福, 除君側之惡, 以安生靈乎?” 諸將皆曰: “吾東方社稷安危, 在公一身, 敢不唯命是從!” 於是回軍到鴨綠江, 乘白馬御彤弓白羽箭, 立岸上遲軍畢渡。 軍中望見相謂曰: “自古以來, 未有如此人, 自今以後, 豈復有如此人?” 時霖潦數日, 水不漲, 師旣渡, 大水驟至, 全島墊溺, 人皆神之。 時童謠有木子得國之語, 軍民無老少皆歌之。 漕轉使崔有慶聞大軍回, 奔告于禑。 是夜, 上王與其兄芳雨及李豆蘭子和尙等, 自成州 禑所, 奔于軍前, 禑日午猶未知。 道遇支應守令, 盡奪其馬匹以行, 禑知大軍回至安州, 馳還京城。 回軍諸將請急追, 太祖曰: “速行必戰, 多殺人矣。” 每戒軍士: “汝輩若犯乘輿, 予不爾赦, 奪民一(爪)〔瓜〕, 亦當抵罪。” 沿路射獵, 故緩行師。 自西京至京城數百里之間, 從禑臣僚及京城之人、傍邑之民, 以酒漿迎謁者, 絡繹不絶。 東北面人民及女眞之素不從軍者, 聞太祖回軍, 爭奮相聚, 晝夜星奔, 而至者千餘人。 禑奔還入于花園。 瑩欲拒戰, 命百官兵仗侍衛, 聚車塞巷口。


최영의 군사를 진압하고, 최영을 고봉현으로 귀양보내다[편집]

〔○〕六月朔, 太祖屯崇仁門外山臺巖, 遣柳曼殊入自崇仁門, 左軍入自宣義門, 瑩逆戰, 皆却之。 太祖之遣曼殊也, 謂左右曰: “曼殊目大無光, 膽小人也, 往必北走。” 果然。 時太祖放馬于野, 及曼殊奔還, 左右以白, 太祖不應, 堅臥帳中。 左右再三白之, 然後徐起進膳, 命鞁馬整兵。 將發, 有矮松一株, 在百步許, 太祖欲射松卜勝否, 以一衆心。 遂射之一矢, 松株立斷, 乃曰: “再甚麿?” 諸軍士皆賀。 鎭撫李彦出跪曰: “陪我令公往, 何處不可行乎?” 太祖由崇仁門入城, 與左軍掎角而進。 都人男女爭持酒漿迎勞, 軍士曳車以開路焉, 老弱登山望之, 懽呼踴躍。 敏修黑大旗, 太祖黃大旗。 黑旗至永義署橋, 爲瑩軍所奔, 俄而, 黃旗由善竹登男山, 瑩麾下安沼率精兵先據, 望旗奔潰。 太祖遂登巖房寺北嶺, 吹大螺一通。 時, 行兵諸軍皆吹角, 獨太祖軍吹螺, 都人聞螺聲, 皆知爲太祖兵。 於是軍圍花園數百重, 禑與靈妃及瑩在八角殿。 郭忠輔等三四人, 直入殿中索瑩, 禑執瑩手泣別, 瑩再拜, 隨忠輔而出。 太祖語瑩曰: “若此事變, 非吾本心。 然非惟逆大義, 國家未寧, 人民勞困, 冤怨至天, 故不得已耳。 好去好去。” 相對而泣, 遂流瑩于高峯縣。 侍中李仁任嘗言曰: “李判三司, 須爲國主。” 瑩聞之, 甚怒而不敢言, 至是嘆曰: “仁任之言, 誠是矣。” 兩都統使及三十六元帥, 詣闕拜謝, 韓山君 李穡與留都耆老宰樞謁太祖, 太祖與穡語良久, 還軍門外。 先是, 潛邸里有童謠曰: “西京城外火色, 安州城外烟光。 往來其間李元帥, 願言救濟黔蒼。” 未幾有回軍之擧。


조민수를 좌시중에, 태조를 우시중에 임명하다. 조인옥이 왕씨를 임금으로 추대코자 하다[편집]

○禑以曺敏修爲左侍中, 以太祖爲右侍中。 典校副令尹紹宗, 因鄭地求見太祖, 懷《霍光傳》以獻, 令趙仁沃讀而聽之。 仁沃極陳復立王氏之議。


우왕이 환관 80명을 거느리고 태조·조민수 등을 죽이려고 했으나 실패하다[편집]

○禑夜與宦竪八十餘人, 被甲馳至太祖及曺敏修、邊安烈第, 以皆屯軍門外不在家, 故不得害而還。


우왕 대신 창왕을 세우다[편집]

○禑遜于江華。 太祖欲擇立王氏之後, 敏修以禑舅李琳之族, 欲立禑子昌, 問於李穡, 遂定議立之。


요동 공략에 나선 장수의 가족을 볼모로 삼으려하자, 태종이 포천의 가족을 피신시키다[편집]

○初, 神懿王后在抱川 滓甓洞田莊, 康妃在抱川 鐵峴田莊。 殿下爲典理正郞, 在京聞變, 不入私第, 卽走馬至抱川, 幹事奴僕, 已盡逃散。 殿下陪奉王后及妃, 向東北面而行, 乘馬降馬, 殿下皆親扶持之, 自於腰間, 齎熟食以奉養。 慶愼公主、慶善公主、撫安君、昭悼君, 皆年幼, 亦從之。 殿下自抱之以乘馬, 路險水深處, 殿下亦自牽馬。 行路甚艱, 糧食乏絶, 得食於路傍民家。 過鐵原關, 傳聞官吏欲捕, 以夜潛行, 不敢入人家, 而宿于草野。 至伊川 韓忠家, 聚近里丁壯百餘人, 分部行伍以待變曰: “崔瑩不曉事之人, 必不能追我。 縱來, 吾不懼矣。” 留七日, 聞事定而還。 初, 瑩下令欲囚赴征諸將妻子, 旣而, 事迫不果行。


태조를 동북면 삭방 강릉도 도통사로 삼고 안사 공신에 봉하다[편집]

○昌以太祖爲東北面朔方 江陵道都統使, 賜忠勤亮節宣威同德安社功臣之號。


태조가 병으로 사직했으나 윤허하지 않다[편집]

〔○〕太祖以疾辭職, 不允。

태조가 몸이 아파 물러나려 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태조의 공적을 치하하는 창왕의 교지[편집]

○昌敎, 略曰:

守門下侍中李 【太祖舊諱。】以文武之略、將相之才, 入參鼎鉉, 出將戎兵, 自己亥用兵以來, 三十年間, 大小幾戰, 所至必捷。 其兵大焉者, 歲辛丑, 關賊犯京, 國家播遷, 卿佐大相, 克殲凶醜, 以復京都; 胡人 納哈出, 犯我東北鄙, 諸將敗走, 乘勝奄至高州之境, 卿卷甲兼行, 逐出疆外; 歲癸卯, 庶孽德興君擧兵入西鄙, 卿率輕騎, 挫其鋒銳; 歲丁巳, 倭奴寇海州, 諸相奔潰, 卿獨身先士卒, 擊之幾盡; 歲庚申, 倭奴自鎭浦下岸, 橫行楊廣、慶尙、全羅之境, 焚蕩郡邑, 殺掠士女, 三道騷然, 元帥裵彦、朴修敬等敗死。 卿出萬死不顧之計, 率其麾下, 鏖戰引月之驛, 捕獲無遺, 民賴以安。 其行師也, 動遵紀律, 秋毫不犯, 民畏其威, 民懷其德, 雖古名將, 何以加焉? 卿之豐功偉烈, 在人耳目者, 赫赫如此, 而不自矜伐, 歉然退托, 國人益以倚重。

○창왕이 교지하니, 이런 내용이었다.

"수문하시중 이 【태조의 옛 휘이다.】는 문무를 겸비한 재략과 장군의 재능으로 들어와서는


창왕이 태조에게 경외의 군사를 총관하도록 하다[편집]

○八月, 昌以太祖都摠中外諸軍事。

○8월, 창왕이 태조에게 중앙과 변방의 모든 군사를 맡아 다스리게 하였다.


태조가 판상서사사를 겸임하다[편집]

○十月, 以太祖兼判尙瑞司事。

○10월, 태조가 판상서사사 벼슬을 겸하게 되었다.


이색이 정조를 하례하고 명과 수교하기 위해 경사에 가면서 태조의 변란을 방지하려고 아들인 태종을 서장관으로 데리고 가다[편집]

○自恭愍王薨, 天子每徵執政大臣, 皆懼不敢行。 門下侍中李穡欲昌親朝, 又欲王官監國, 自請入朝。 昌遣穡及僉書密直李崇仁, 如京師賀正, 且請王官監國。 太祖稱穡曰: “慷慨哉, 是翁!” 穡以太祖威德日盛, 中外歸心, 恐其未還乃有變, 請一子從行, 太祖以殿下爲書狀官。 及入朝, 遇一官人於逆旅, 語穡曰: “汝國崔瑩將精兵十萬, 李 【太祖舊諱。】執之易如捕蠅。 汝國之民, 李 【太祖舊諱。】罔極之德, 何以報之!” 至京師, 天子素聞穡名, 從容語曰: “汝仕元爲翰林, 應解漢語。” 穡遽以漢語對曰: “請親朝。” 天子未曉曰: “說甚麿?” 禮部官傳奏之。 穡久不入朝, 語頗艱澁。 天子笑曰: “汝之漢語, 正似納哈出。” 回至渤海, 與二客船同行, 及半洋山, 颶風大作, 二客船皆沒。 殿下所乘船, 亦幾不救, 人皆驚懼顚仆, 殿下神色自若, 竟得全而歸。 穡還語人曰: “今此皇帝, 心無所主之主也。 我意帝必問此事, 則帝不之問。 帝之所問, 皆非我意也。” 時論譏之曰: “大聖人度量, 俗儒可得而議乎?”


사전을 혁파하다[편집]

○恭讓王元年己巳。【洪武二十二年。】是時, 田制大毁, 兼幷之家, 攘奪土田, 籠山絡野, 毒痡日深, 民胥怨咨。 太祖與大司憲趙浚, 議革私田, 以杜兼幷, 以厚民業, 於是中外大悅, 民心益附。


영흥군 왕환에 대한 무망죄로 도망한 이숭인을 용서하여 직무를 보게 하다[편집]

○初宗室永興君 環被擄於倭, 積數十年而還, 國人頗有疑之者。 李崇仁辨環眞僞, 坐誣逃。 獄卒反接其子次若索之, 鞭背流血。 及過梨峴, 適遇太祖, 獄卒匿次若于路傍家。 次若大聲號曰: “願令公活我!” 太祖驚而召問之, 謂獄卒曰: “豈可責子以索父耶?” 卽命釋之, 且使從者一人歸次若于家。 乃與侍中李琳啓曰: “卽位之初, 宜布寬仁, 乞宥崇仁等。 且崇仁侍講書筵, 啓沃有日, 乞令供職。” 於是崇仁乃出。


창왕이 태조에게 칼을 차고 신을 신은 채 궁전에 올라오도록 대우하다[편집]

○昌命太祖劍履上殿, 贊拜不名。 賜銀五十兩、綵段十匹、馬一匹, 下敎奬諭。


태조를 제거할 모의를 꾀하다가 곽충보의 밀고로 발각된 김저를 처형하다[편집]

○十一月, 金佇潛謁禑於黃驪府, 禑泣曰: “吾素善郭忠輔, 汝往圖之。 除去李 【太祖舊諱。】, 吾志可濟也。” 佇來告忠輔, 忠輔陽諾, 奔告于太祖, 逮捕佇及鄭得厚。 得厚與佇同謀, 夜潛詣太祖邸, 爲門客所執, 自刎而死。 囚佇巡軍獄, 辭連邊安烈等。 臺諫請誅安烈, 太祖力救, 昌不聽。


우왕과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세우다[편집]

○初請親朝使尹承順等, 回自京師。 禮部奉聖旨, 移咨都評議使司, 責以異姓爲王氏後, 不許親朝。 至是, 太祖與判三司事沈德符、贊成事池湧奇ㆍ鄭夢周、政堂文學偰長壽、評理成石璘、知門下府事趙浚、判慈德府事朴葳、密直副使鄭道傳會興國寺, 大陳兵衛, 議曰: “禑、昌, 本非王氏, 不可奉祀, 又有天子之命, 當廢假立眞。 定昌君 瑤, 神王七代孫, 族屬最近, 當立。” 詣恭愍王 定妃宮, 奉妃敎, 遷禑于江陵, 放昌于江華, 廢爲庶人, 迎立瑤, 是爲恭讓王。


태조가 임강의 화장산에서 사슴을 사냥하다[편집]

○太祖獵于臨江 華藏山, 逐鹿至絶壁, 高數十尺, 其勢欹仄, 人不能下。 鹿滑下, 太祖策馬亦打滑而下, 至底馬跪未起, 太祖卽射鹿而斃之。


황소들의 싸움을 아무도 말리지 못했으나 태조가 소를 두 손으로 잡고 말리다[편집]

○太祖在咸州, 有大牛相鬪, 衆人止之不得, 或脫衣或然火以投之, 猶不能禁。 太祖以兩手分持之, 牛不能鬪。


태조가 안변의 학포교에서 죽을 말을 구하다[편집]

○太祖往觀通川 叢石亭, 至安邊 鶴浦橋適睡, 馬蹉跌而墜。 太祖卽下立, 以兩手執馬耳及鬣, 馬懸空而終不捨, 令人拔所御刀, 斷去鞍具而後捨之。 馬沈, 復浮游而出。


태조를 수 시중, 심덕부를 시중으로 삼다[편집]

○恭讓以太祖爲侍中, 太祖讓之, 乃以爲守侍中沈德符爲侍中。

○공양왕이 태조를 시중으로 삼으려 하였으나, 거절하였다. 그러나 태조를 수시중으로 삼고, 심덕부를 시중으로 삼았다.


우왕을 죽이다[편집]

○十二月, 司宰副令尹會宗上疏請誅禑、昌, 恭讓歷問諸宰相, 皆默然。 太祖獨曰: “此事不易。 旣以安置江陵, 聞于朝廷, 不可中變。 且臣等在, 禑雖欲爲亂, 何憂哉?” 恭讓曰: “禑多殺無辜, 宜其自及。” 遂誅之。


태조 이성계의 공적을 기리는 공양왕의 교지[편집]

○恭讓下敎, 略曰:

恭愍王不幸無子薨逝, 李仁任欲全政權, 詐以辛禑稱王氏以爲主。 禑乃頑凶狂悖, 將欲凌犯遼陽, 侍中李 【太祖舊諱。】等以社稷大計, 諭衆回軍, 議立王氏。 曺敏修以仁任之黨, 沮衆議立禑子昌, 王氏絶祀十有六年。 李 【太祖舊諱。】奮忠倡義, 乃與德符、夢周等決策, 上奉天子明命, 謀及宗親耆老、文武臣僚, 啓奉恭愍王 定妃之命, 廢禑、昌父子, 以予於王氏最親, 俾承祖宗之統, 惟予寡德, 未堪負荷。 李 【太祖舊諱。】正名復興, 再造王室, 其功實不在太祖開國功臣之下。 帶礪難忘, 壁上圖形, 父母妻封爵, 子孫蔭職, 宥及十世。


9공신의 녹권을 내리고, 태조 이성계를 개국 공신 배현경의 예로 중흥 공신에 책록하다[편집]

○恭讓告孝思觀, 賜九功臣錄券。 以太祖爲奮忠定難匡復燮理佐命功臣, 爵和寧君 開國忠義伯, 食邑一千戶, 食實封三百戶, 田二百結、奴婢二十口。 其錄券依開國功臣裵玄慶例, 稱中興功臣, 父母妻封爵。 子孫蔭職, 直子超三等, 無直子, 甥姪女壻超二等。 子孫政案, 皆稱中興功臣某之幾世孫, 宥及永世。 丘史七名, 眞拜把領十名, 許初入仕。


태조를 영경연사로 임명하고 8도의 군마를 거느리게 하다[편집]

〔○〕恭讓王二年庚午正月。 恭讓置經筵官, 以太祖領經筵事。 又命領八道軍馬, 置軍營, 分番更宿, 廩以軍資。


태조가 병으로 사직하다[편집]

〔○〕三月, 太祖以疾辭。


태조의 공적을 치하하는 교서[편집]

〔○〕四月, 恭讓遣中使問疾, 强起之, 賜敎書于九功臣, 褒美之, 給廐馬一匹、白金五十兩、帛絹各五端、金帶一腰, 仍慰宴于內殿。 其賜太祖敎曰:

嗚呼! 除非常之變者, 必待命世之才; 樹萬世之功者, 必享無(彊)〔疆〕之報。 昔我太師佐太祖, 肇一三韓, 與享太室, 式至于今, 垂五百年。 往者李仁任陰導玄陵影殿之役而取上相, 歸怨于上, 卒致甲寅之變而無嗣。 仁任乃用不韋盜秦之計, 以玄陵朝妖僧辛旽所生兒禑, 詐稱玄陵宮人所出而立之。 玄陵母后以爲不可, 宰相李壽山請立宗親, 仁任不從, 國人失望, 黃霧四塞, 日光不現。 禑之主喪而葬玄陵也, 虹圍太陽; 其主烝也, 鴞鳴太室, 霆奮地震; 其齋玄陵之考毅陵之忌也, 大風以雨, 雷電且雹; 其襲爵也, 風拔祧廟寢園松栢, 太室鷲折, 廟門仆, 御廩災。 是祖宗之靈, 動威以絶禑也。 戮禑母般若以滅口, 而司平新門自頹; 葬枯骨曰禑母, 而柩幄一日再災, 是天示萬歲以禑之爲般若子也。 禑立二年, 而其母名氏未定, 宰相金續命曰: “天下未辨其父者, 或有之矣, 未辨其母者, 我未聞也”, 而幾見戮, 以玄陵母后力救, 得不死; 金庾言禑非王氏於帝, 而還見戮, 國人寒心結舌。 禑妻仁任姪女而生昌, 於是王氏興復之望, 絶矣。 仁任專國, 毒痡生靈十五年, 而禑又狂悖, 謀攻遼東, 欲擧三韓百萬生靈而糜爛之。 卿副曺敏修以行軍過鴨江, 卿諭諸將以社稷存亡之計而回軍, 是卿肉吾民於旣骨也。 社稷之不墟, 惟卿是賴。 卿勇冠三軍, 位崇兩府, 功名蓋世而不矜; 好讀《綱目》、《衍義》, 感留侯、絳侯、武侯、梁公之忠, 故回軍之際, 議興復, 敏修亦以爲然, 旣還而黨於其族仁任、李琳, 沮卿議而立昌, 自爲冢宰, 王氏興復, 失一大機。 卿隱忍就職, 而以公義開諭敏修, 乃極臺諫之選, 以振紀綱。 於是憲司劾敏修以貪婪撓法而擊去之。 卿坐而待旦, 求賢如渴, 疾惡如讎。 凡民一毫之利, 必欲興之; 一髮之害, 必欲去之。 開言路而達下情, 擧逸民而布公道, 向者苞苴奔競之風、鬻官貨獄之習, 一朝而變, 野無遺賢, 朝無倖位。 遣使授鉞, 觀察黜陟, 而藩鎭不敢養寇, 牧守不敢殃民。 排群小之邪說, 革私田於諸道, 拯民湯火之中, 躋之富壽之域。 用圭田采田之制, 給京甸仕者之田。 優君子而嚴守衛, 爵之而非私, 罰之而非怒。 卿之誠心, 光明正大, 如靑天白日, 愚夫愚婦之所共見, 其所營爲, 無非所以爲興復王氏之地也。 己巳冬, 昌所遣請朝尹承順齎禮部欽奉聖旨咨文來, 曰: “高麗君位絶嗣, 以異姓假王氏, 非三韓世守之良謀。 果有賢智陪臣在位, 定君臣之分, 雖數十世不朝, 亦何患哉? 連歲來朝, 又何厭哉? 童子不必赴京。” 此聖天子念玄陵當四海未定之際, 率先稱臣, 使天下知天命之有歸, 大有功於佐運, 故憫其絶祀, 而望復興於王氏臣子者切矣。 昌外祖李琳以冢宰, 秘聖旨而不發, 兇謀不測。 辛氏之變, 不朝卽夕, 王氏已爲鼎中之魚, 存亡在於呼吸, 而卿不顧萬死, 躬秉大義, 爲我王氏, 定萬世策, 德符、夢周、湧奇、長壽、石璘、浚、葳、道傳八將相從而贊之。 十一月十五日, 宣天子旨于玄陵 定妃之庭, 迎予宗邸, 俾後玄陵, 不刑一人, 不崇朝而除十有六年南面之辛氏。 其姻親支黨根據盤結于三韓, 環觀破膽, 革面向順而不敢動, 人無變色, 日如陽春。 上以紹三十一代相承之序, 下以開千萬億世無疆之休, 卿興復之功, 非絳侯、五王所擬倫也。 卿世積忠義, 乃心王室, 德厚流光, 發于卿身。 經文緯武, 王佐之才; 國爾忘家, 社稷之臣。 天地祖宗之所篤生, 三韓安危之所注意。 遇知玄陵, 殲紅賊而收兩京, 驅孼僧而安王氏, 走納氏而威沙漠, 敗倭寇而保西海, 擊引月而懾扶桑, 而卿感玄陵之知遇, 痛宗廟之絶祀, 誓取日於虞淵, 至誠徹乎天地, 至忠通乎祖宗。 至公至正, 有以服三韓之心; 至仁至恩, 有以結萬姓之歡。 天祐大順, 人助大信, 故興復如是其易也。 卿於是信報玄陵之知矣。 昔周公勳勞, 而俾侯于東。 予嘉卿忠, 分茅世封, 圖形銘功, 宥胤無窮。 予率元子, 告于閟宮。 嗚呼! 卿活我兆民, 紹我宗祀。 再造我三韓之功, 以不腆之褒, 何報萬一哉? 卿爲中興元臣, 名侔乎裵太師, 任重乎商 阿衡。 立經陳紀, 爲萬世程, 旁求俊彦, 重我朝廷, 弼予涼德, 保我社稷, 與天無極, 於萬斯年, 與享烝嘗, 則予涼德與有光焉。 卿之子孫, 象卿忠良, 永世不忘, 股肱我後嗣王, 與國咸休, 顧不韙歟!

又錄回軍功, 下敎褒奬, 賜田一百結。


윤이·이초가 공양왕의 즉위에 대해 명나라에 무고하여 옥사가 일어나다[편집]

○五月, 順安君 王昉、同知密直司事趙胖回自京師曰:

“禮部謂臣等曰: ‘爾國人有坡平君 尹彛、中郞將李初者來訴于帝, 言: 「高麗 李侍中立王瑤爲主, 瑤非宗室, 乃李侍中姻親也。 瑤與李 【太祖舊諱。】, 謀動兵馬, 將犯上國, 宰相李穡等以爲不可。 卽將李穡、曺敏修、李琳、邊安烈、權仲和、張夏、李崇仁、權近、李種學、李貴生等殺害, 將禹玄寶、禹仁烈、鄭地、金宗衍、尹有麟、洪仁桂、陳乙瑞、慶補、李仁敏等遠流。 其在貶宰相等, 潛遣我等, 來告天子。」 仍請親王, 動天下兵來討。’ 乃出彛、初所記穡、敏修等姓名以示。 胖與彛等對辨曰: ‘本國事大以誠, 安有是乎!’ 因問彛曰: ‘爾位至封君, 頗知我乎?’ 彛愕然失色。” 於是下玄寶、仲和、補、夏、仁桂、有麟及崔公哲等于巡軍獄, 逮繫穡、琳、仁烈、仁敏、地、崇仁、近、種學、貴生等于淸州獄鞫之。


청주에 수재가 나자, 윤이 사건과 연루된 죄인의 방면을 논의하다[편집]

〔○〕六月, 恭讓以淸州水災, 召太祖及沈德符, 議放罪囚。 遣吏曹判書趙溫于淸州, 下敎, 略曰:

如尹彛等所言, 其敎令之人罪涉叛逆, 在所推明。 乃命有司, 究問彛親尹有麟, 自知其罪, 不食而死, 同謀崔公哲伏辜, 金宗衍在逃, 其餘人等, 情狀未明。 苟加榜問, 恐有陷於詿誤。 將上項人等除已見伏招外, 宜於各處安置。


태조가 윤이 이초 사건으로 사직하다. 태조를 죽이려는 사건과 연루된 심덕부 등을 논죄하다[편집]

〔○〕十一月, 太祖以彛、初之獄, 上書辭職, 以太祖領三司事。 金宗衍至西京, 與千戶尹龜澤及德符麾下繕工判官趙裕同謀, 欲害太祖。 龜澤恐謀洩, 潛詣太祖告變曰: “宗衍與沈侍中池湧奇等有異謀。” 趙裕又言曰: “沈侍中令鎭撫曹彦及裕等將擧兵, 此必不利於公也。” 太祖以其言密告德符, 德符下裕獄。 太祖啓曰: “臣與德符同心奉國, 本無猜貳。 請勿問趙裕, 令我二臣終始保全。” 恭讓將釋之, 憲府上疏請鞫之。 裕乃伏處絞, 德符、湧奇、曹彦等, 竝流于外。


여러 원수(元帥)들의 인장을 회수하다[편집]

○恭讓以憲府之請, 悉收諸元師印章。


태조를 다시 문하 시중에 제수하였으나 사양하는 전문을 올리자 윤허하지 않다[편집]

〔○〕十二月, 復以太祖爲門下侍中都摠中外諸軍事。 太祖上箋辭曰:

惟度德而授位, 是爲君上之明; 罔以寵而居功, 乃合人臣之義。 如冒榮而貪進, 或速禍而招尤。 是以召公憂盛滿難居, 蔡澤云功成者去。 況我朝侍中之任, 實周家冢宰之官。 均邦國之旣難, 燮陰陽之不易。 伏念臣局量褊淺, 學術疏荒。 當假姓流毒之時, 有興師猾夏之擧, 神人共憤, 宗社幾傾。 乃與諸將而還, 敬奉天子之命, 僭僞之種, 自底滅亡, 正派之傳, 克致興復。 斯乃祖宗之陰相, 固非臣力之所能, 特霑爵邑之恩, 仍領中外之事。 無補垂衣之化, 常懷覆餗之憂, 於今年春, 有尹彛、李初逃入中國, 竊弄天子, 請親王動天下兵, 欲移社稷。 金宗衍爲其謀首, 自惑逃竄。 此係王室之安危, 非關臣身之利害。 乃有人匿且故縱, 惟不軌陰相與謀。 慮惟臣之寵利使然, 念至此而兢惶無已。 近得免於右揆, 私自幸於中心, 今又除臣侍中, 降命自天, 措躬無地。 矧今國家再造, 文物重興, 自非宏材, 曷足贊襄國政, 不有重德, 何能鎭服人情! 伏願諒臣至誠, 釋臣重負。 臣謹當避賢者路, 無貽曠職之譏; 送老于家, 專貢祝釐之懇。

王不允批答曰: “(拔)〔撥〕亂反正, 實爲命世之材; 論道經邦, 必待代天之相。 故其身之去就, 係於國之安危。 惟卿志勵風霜, 氣鍾光嶽。 惟自昔而功在王室, 式至今而德被生民。 逐納氏于朔陲, 殲倭寇于四境。 由先王薨逝以後, 有僞姓假竊其間。 荒于遊畋, 耽于酒色, 恣行殺戮, 大肆頑兇。 至興軍師, 將犯華夏, 而卿明知逆順, 倡義回還。 謀及宗親與諸臣庶, 遂乃廢黜僞姓, 推戴寡躬, 而使邦基幾危而復安, 宗祀旣絶而再續。 較功度德, 耀古光今。 當永輔於我家, 傳榮享於後嗣, 何期群小, 潛肆奸謀? 此實在余, 非卿之故, 深有志於責己。 將欲正其刑章, 而卿遽貢牋章, 規免職任。 卿雖思之審矣, 余所望則不然。 元首股肱, 旣同一體, 山河帶礪, 敢忘吾心! 毋煩固辭, 速踐乃職。”


5군을 없애고 3군 도총제부를 만들어 태조를 도총제사로 삼다[편집]

〔○〕恭讓王三年辛未正月, 省五軍爲三軍都摠制府, 統中外軍事, 以太祖爲都摠制使。


사직을 청하는 태조의 전문과 윤허치 않는 비답이 오가다[편집]

○三月, 太祖上箋辭職曰:

臣以庸劣, 特蒙殊遇之恩, 位極將相, 尙無絲毫之補, 宜避用賢之路, 以開聖明之治。 肆竭卑悰, 再瀆天聰, 每被不允, 戰兢尤深。 竊以國有大小, 事殊古今, 其君臣相遇之難則不異。 漢之高祖以創業之主, 知人善任, 至於待功臣, 則識者有憾其缺; 光武以中興之主, 網羅豪傑, 匡復漢室, 且善處功臣, 以保其終, 後人咸稱其美。 其功臣則韓信、周勃, 終不如張良之保; 寇恂、鄧禹猶不及子陵之高。 臣雖不學, 願効張良、子陵, 伏惟殿下, 願如光武。 臣於丙申六月, 陪先父臣【桓祖諱。】, 受命玄陵, 平雙城復舊疆, 憑藉餘力, 拓土至靑州, 以爲藩鎭, 使無東顧之憂。 玄陵是嘉其功, 拜臣父以榮祿大夫判將作監事, 仍爲朔方道萬戶。 又擢臣以不次, 年未三十, 位至宰輔, 然無所補, 夙夜憂懼。 至戊辰年間, 假姓發兵猾夏, 人無敢諫, 將覆社稷。 臣首倡大義, 有回軍之擧, 再安宗社, 是則人以爲擅兵; 復於己巳, 欽奉聖旨, 滅僞姓復眞, 克正宗祀, 是則人以爲執權; 今爲諸軍事, 養兵守靜, 鎭服奸雄, 潛消外寇, 是則人以爲耗軍資, 物議紛紜, 難以辨明。 臣有三不幸, 功微賞鉅, 爲人所忌, 一不幸也; 保社稷、復正統、弭盜賊等事, 未嘗無涓埃之助, 因以居寵, 二不幸也; 自古功過不能相掩, 執迷不能勇退, 三不幸也。 念至於此, 誠惶誠恐。 伊尹曰: “臣罔以寵利居成功。” 蔡澤云: “四時之序, 成功者去。” 是乃自然之理, 臣不宜久阻賢路。 乞歸田里, 以保餘齡, 臣之願也。 伏望上慈, 俾保全功臣之德, 不獨專美於光武。

王不允批答曰: “大臣一身, 關國家之興衰, 係生民之休戚。 職任如此其重, 去就未可以輕。 是以召公有告歸之心, 周公有篤棐之義。 卿山川間氣, 社稷元臣。 徇公忘私, 忠誠貫日; 仗義安信, 功業柱天。 爰自先王之時, 以至寡人之日。 勉出乃力, 輯寧我邦。 遏戊辰猾夏之師, 定己巳撥亂之策。 國祚以之而復續, 生民由是而再蘇。 且鍊養其戎兵, 以捍禦于王室。 事皆合於天理, 心何恤乎人言! 居寵若驚, 卿之自處則善; 協謀共政, 予所任者爲誰? 於戲! 子陵之高, 光武不任以事; 留侯之去, 漢室以致其安。 以古視今, 勢殊事異。 宜安厥位, 以副予心。”


사직을 청하는 태조의 전문과 윤허치 않는 비답이 오가다[편집]

○六月, 臺諫上言: “禹玄寶罪同李穡。 今穡旣貶, 宜幷竄逐。” 疏凡三上, 皆留中。 我殿下時爲右代言, 恭讓命遣太祖邸, 請令禁止臺諫, 太祖嘆曰: “曾謂我指嗾臺諫乎?” 遂上箋辭職曰:

庶政惟和, 在明主之擇相; 百責所萃, 宜具臣之推賢。 苟忘義而好榮, 是徇私而累德。 伏念臣器小任大, 事修謗興。 雖非管仲之得專, 恐爲曾西之不取。 肆殫卑懇, 再瀆宸聰。 三月日, 再除臣門下侍中, 寵渥卽優, 淸議可愧。 每承違允之敎, 慙懼實深; 益貽曠職之譏, 畏憂彌重。 矧本有疾, 又當戒盈。 觀萬物之生成, 由四時之代序。 伏望廓包荒之度, 垂惻隱之心, 憐臣至情, 許臣乞骨, 則臣謹當投閑養疾, 永保中興之功; 守分安心, 恒貢上壽之祝。

王命左代言李簷往諭旨, 仍賜批答曰: “一國安危, 所係者重, 大臣去就, 未可以輕。 何勵節於戒盈, 欲全身而求退? 卿山川間氣, 日月孤忠。 仗義回軍, 則國家再安; 正名定策, 則神人載悅。 及玆新造之隙, 煩卿篤棐之材。 方將共政以致平, 豈可托辭而窺免? 謗興則可以理遣, 病革則當用醫治。 不必釋位以居安, 乃能怡神而善保。 旣煩三讓, 惟冀小安。” 太祖曰: “國有大事, 使之與謀, 邊境有急, 使之禦侮。 責臣以所能, 則臣何敢辭? 今臣任大責重, 旣不能堪, 加以疾病交攻, 願就醫藥, 以自保養。” 恭讓不允, 强起之。 太祖辭不就, 又上箋曰:

臣於戊辰, 仗義回軍, 廢僞立眞, 因被國人猜忌。 又立昌迎禑, 彛、初同謀, 證驗已明, 故臺諫自上章請罪耳。 臣何敢指嗾! 今命臣禁止臺諫, 是疑臣嗾之也。 臣顧不才, 不宜當大任, 宜選賢良代之。

恭讓覽箋, 謂我殿下曰: “侍中箋中所陳, 皆出予意表。 予以無能, 濫居大位, 惟侍中推戴之力是賴, 仰侍中如父, 侍中何負我乎? 立昌迎禑, 彛、初同謀之人, 已於前年, 議謂情迹未明, 特赦之, 侍中亦然之。 今臺諫更擧赦前事請罪, 故使卿往告侍中, 若見臺諫, 請諭此意耳。 卿言於侍中謂何, 侍中堅欲辭退? 若侍中辭職, 予亦豈敢安此位乎?” 因泣下, 指天爲誓, 辭(指)〔旨〕甚切。 卽令我殿下往諭就職, 太祖竟不視事。


공양왕이 대간에게 우현보의 죄를 논하지 말도록 하다[편집]

○恭讓又諭臺諫曰: “玄寶罪狀(瞹眛)〔曖昧〕, 且在赦前, 勿復請。” 使司楯黃雲起召太祖, 太祖以疾不能朝。 雲起强之, 太祖使人啓曰: “臣以疾不能朝, 今雲起强之, 不知所以, 恐懼無地。” 恭讓怒, 下雲起于巡軍獄。


태조를 참소하는 말이 돌자 정도전 등과 거취를 논의하다[편집]

○太祖謂鄭道傳、南誾、趙仁沃等曰: “吾與卿等戮力王室, 而讒言屢騰。 恐吾輩不得容, 吾當東歸以避之。” 先令家人促裝。 將行, 道傳等曰: “公之一身, 宗社生靈之所係, 豈可輕其去就! 不如留相王室, 進賢退不肖, 以振綱紀, 則讒言庶幾自息矣。 今若退居一隅, 則讒言益煽, 禍必不測。” 太祖曰: “昔者子房從赤松子, 高祖不之罪。 我心無他, 王豈罪我哉?” 相與議論未決。 家臣金之景白康妃曰: “道傳、誾等, 勸公東歸, 事將非矣。 不如去此數人。” 康妃信之, 告于我殿下曰: “道傳、誾等皆不可保。” 對曰: “公困於讒說, 有引去之志。 道傳、誾等力陳利害, 以止其行者也。” 乃責之景曰: “數人, 與公同休戚者也。 汝勿更言。”


공양왕이 태조의 집에 가서 연회를 즐기다[편집]

○七月, 恭讓幸太祖第, 置酒張樂, 夜分乃罷。

○7월, 공양이 태조의 사저에 가서 술자리를 벌이고 음악을 베풀다가 밤중이 되자 마쳤다.


태조가 공양왕과 술을 마신 후 마음대로 궁궐의 문을 열고 나가다[편집]

○太祖與康妃享恭讓。 恭讓賜太祖衣(對)〔襨〕、笠子、寶纓、鞍馬, 太祖卽服以拜謝。 及夜, 柳曼殊鎖門, 殿下潛白太祖請出, 乃以太祖命, 使金直【掌管鑰者, 卽今司鑰。】開門, 侍太祖還邸。 馬上顧謂殿下曰: “纓實奇品, 吾將傳之於汝。” 明日, 王怒, 囚金直。 太祖詣闕, 謝以不勝桮杓, 使開門, 王赦金直。


태조를 판문하부사로 삼다[편집]

○九月, 以太祖判門下府事。

○9월, 태조를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로 삼았다.


이색이 유배지에서 돌아와 태조를 사저에서 만나다[편집]

○十一月, 李穡承召, 自貶所還京, 謁太祖于私第。 太祖驚喜, 迎之上座, 跪進酒, 請穡立飮, 穡皆不讓, 人皆非之。 極歡而罷。

○12월, 이색을 임금이 불러, 귀양간 땅에서 서울로 돌아와 태조를 집에서 만났다. 태조가 아주 기뻐하여 윗자리에 앉히고 꿇어앉아 술을 올리며 이색이 마시기를 청하니 이색이 거절하지 않아 사람들이 이 일을 그르게 여겼다. 아주 즐겁게 놀고 파했다.


태조에게 안사 공신의 칭호를 더 내리다[편집]

○十二月, 加賜太祖安社功臣之號。

○12월, 태조에게 안사 공신의 칭호를 더 내렸다.


올량합과 알타리가 조회와서 다투다가 화해하다. 태조가 집에서 이들을 대접하다[편집]

○兀良哈及斡朶里來朝爭長。 斡朶里曰: “吾等之來, 非爭長也。 昔侍中尹瓘平吾土立碑曰: ‘高麗地境。’ 今境內人民, 皆慕諸軍事威信而來耳。” 遂不與爭。 太祖享兀良哈、斡朶里於邸, 以其誠服也。

○올량합 사람과 알타리 사람들이 조정에 찾아와서 서로 다투었다.


술에 취해 공양왕에게 예절을 갖추지 않은 밀직사 이염을 귀양보내다[편집]

○恭讓王四年壬申正月, 密直使李恬因醉不禮於王, 諫官請置極刑。 太祖啓曰: “恬雖有罪, 其言出於狂直, 請貸之。” 遂杖流之。


공양왕과 권문 세족이 태조를 꺼려하다[편집]

○太祖功高, 且得衆心, 恭讓忌之。 又舊家世族怨革私田, 知恭讓忌之, 多方誣毁, 禑、昌之黨, 連姻王室, 朝夕譖訴。 恭讓反信讒言, 日夜與左右潛圖除之。 太祖麾下士, 憤其所爲, 欲上書辨其誣妄, 書成未上。 太祖庶兄壻卞仲良居中觀變, 知恭讓猜嫌已極, 恐禍及己。 素與恭讓壻益川君, 王緝, 結同庚契, 至是, 以麾下士成書告緝, 欲爲他日之地。 故恭讓知之, 謂太祖曰: “聞卿麾下士欲爲書論禹玄寶等, 卿亦知耶?” 太祖愕然對以不知。 退召麾下士, 始知其情, 止之。


세자가 명에서 돌아오다. 정몽주가 태조를 견제하기 위해 태조의 측근을 탄핵하다[편집]

○三月, 世子奭朝見而還, 太祖出迎于黃州, 遂畋于海州。 將行, 有巫方兀言於康妃曰: “公之此行, 譬如人升百尺之樓。 失足而墜, 幾至于地, 萬人聚而奉之。” 妃深憂之。 及太祖射獵逐禽, 馬陷泥淖而蹶, 遂墜失豫, 肩輿而還。 恭讓連遣中使問候。 初鄭夢周忌太祖威德日盛, 中外歸心, 及聞太祖墜馬, 有喜色, 欲乘機去之, 嗾臺諫曰: “先剪羽翼趙浚等, 然後可圖也。” 乃劾太祖所親信三司左使趙浚、前政堂文學鄭道傳、前密直副使南誾、前判書尹紹宗、前判事南在、淸州牧使趙璞, 恭讓下其書都堂。 夢周從中扇之, 將浚等六人, 竝流遠地; 分遣其黨金龜聯、李蟠等, 就浚、道傳、誾貶所鞫問, 欲殺之。 龜聯等臨發, 我殿下方居(外)〔內〕憂, 廬于粟村墓側。 李濟具茶果以往, 殿下語濟曰: “夢周必不利於我家, 當先除之。” 濟唯唯。 及太祖至碧瀾渡次宿, 殿下馳至告曰: “夢周必陷我家。” 太祖不答。 又告以宜卽入京, 不可留宿。 太祖不許。 强請, 然後太祖力疾夜行, 殿下扶侍至邸。


밀직 제학 이성중이 가보인 보검을 태종에게 바치다[편집]

○殿下爲代言時, 達衷之弟密直提學誠中使其子携, 進家傳金飾寶劍, 殿下與王妃同坐受之。 王妃笑曰: “不知送寶劍何意耶?” 翌日, 殿下至誠中家謝曰: “吾, 儒生也。 何爲送寶劍乎?” 誠中對曰: “寶劍, 非小人所用也, 明公所當用也, 敢進。”


정몽주가 조준 등을 처형코자 하니, 태종이 정몽주를 죽이고 일당을 탄핵하다[편집]

○夢周嗾省憲, 交章請誅浚、道傳等。 太祖遣子【恭靖王諱。】、弟和壻李濟及麾下黃希碩、趙珪等, 詣闕啓曰: “今省憲論浚於立殿下之際, 有立他之議, 而臣沮之。 浚之所議者何人? 聞臣之沮之之言伊誰? 請召浚等, 與臺諫廷辨。” 往復再三, 恭讓不聽。 群小讒構愈急, 禍且不測。 我殿下請殺夢周, 太祖不許。 殿下出, 與上王及和、濟議, 又入白太祖曰: “今夢周等遣人鞫道傳等, 欲其辭連我家也。 勢已急矣, 將若之何?” 太祖曰: “死生有命, 但當順受而已。” 命我殿下速還廬次, 終汝大事。 殿下請留侍疾再三, 竟不許。 殿下不得已出, 至崇敎里舊邸, 坐於斜廊, 憂虞未決。 俄有叩門聲, 急出視之, 廣興倉使鄭擢也。 擢極言: “生民利害, 決於斯時, 而群小之構亂如彼, 公何去也? 王侯將相, 寧有種乎?” 殿下卽還太祖第, 與上王及和、濟欲使李豆蘭擊夢周。 豆蘭曰: “我公不知之事, 予何敢爲!” 殿下曰: “父公不聽吾言, 然夢周不可不殺。 我當任其咎。” 召麾下士趙英珪曰: “李氏之有功於王室, 國人皆知之, 今爲小人所陷。 若不自辨, 束手就戮。 彼小人必加李氏以惡名, 後世誰能知之? 麾下士多矣, 其無一人爲李氏効力者乎?” 英珪慨然曰: “敢不惟命!” 使英珪、趙英茂、高呂、李敷等, 入都評議使司, 擊夢周, 卞仲良洩其謀於夢周。 夢周知之, 詣太祖第問疾, 實欲觀變也, 太祖待之如初。 和白我殿下曰: “誅夢周, 此其時矣。” 旣定計, 和復曰: “公怒可畏, 奈何?” 議未決。 殿下曰: “機不可失。 公之怒, 吾當陳大義以慰解之。” 乃謀擊於路上。 殿下更命英珪至上王邸取劍, 直抵夢周家洞口以要之, 呂、敷等數人隨之。 夢周入, 不留卽出。 殿下恐事不濟, 欲親往指揮出門, 有麾下士之馬具鞍在門外, 遂乘之, 馳至上王邸, 問: “夢周過否?” 曰:“未也。” 殿下更授方略而還。 時前判開城府事柳源死, 夢周過弔其家遲留, 故英珪等得備兵器以候之。 夢周至, 英珪馳擊不中, 夢周叱之, 策馬而走。 英珪追擊馬首, 馬蹶, 夢周墜地, 起而急走, 呂等追殺之。 英茂還白殿下, 殿下入告。 太祖震怒, 力疾而興, 謂殿下曰: “吾家素以忠孝聞。 汝等擅殺大臣, 國人以我爲不知乎? 父母敎子經書, 欲其爲忠爲孝也。 汝乃敢爲不孝乃爾? 予欲仰藥而死也。” 殿下對曰: “夢周等將陷我家, 豈合坐而待亡! 此乃所以爲孝也。” 太祖怒氣方盛, 康妃在側不敢言。 殿下曰: “母何不解說?” 妃厲色告曰: “公常以大將軍自處, 何乃驚懼至於如此?” 殿下謂宜集麾下士, 以備不虞, 卽召張思吉等, 率麾下兵環守。 明日, 太祖不得已召黃希碩曰: “夢周等, 黨比罪人, 陰誘臺諫, 誣陷忠良, 今已伏罪。 宜召浚、誾等, 與臺諫辨明, 卿其往白于王。” 希碩疑懼, 默然仰見。 李濟在側, 厲聲叱之, 希碩詣闕具告。 恭讓曰: “臺諫不可與被劾者對辨。 吾將出臺諫于外, 卿等勿復言。” 時太祖因怒病劇, 至不能言。 殿下曰: “事急矣。” 密遣李子芬諭浚、誾等以召還之意, 又與上王及和、濟等議, 遣上王白恭讓曰: “若不問夢周之黨, 請罪臣等。” 恭讓不得已下臺諫巡軍獄。 且曰: “宜流于外, 不必鞫問。” 旣而, 命判三司事裵克廉、門下評理金湊、同巡軍提調金士衡等鞫之。 左常侍金震陽曰: “夢周、李穡、禹玄寶遣李崇仁、李種學、趙瑚, 謂臣等曰: ‘判門下李 【太祖舊諱。】, 恃功專擅, 今墜馬病篤。 宜先剪羽翼趙浚等, 然後可圖也。’” 於是, 囚崇仁、種學、瑚于巡軍。 旣而, 流震陽及右常侍李擴、右諫議李來、左獻納李敢、右獻納權弘、司憲執義鄭熙、掌令金畝ㆍ徐甄、持平李作ㆍ李申及崇仁、種學于遠地。 按律者言: “震陽等罪當斬。” 太祖曰: “予之不嗜殺人久矣。 震陽等承夢周指嗾耳, 豈可濫刑!” 曰: “然則宜痛杖之。” 太祖曰: “旣已寬之, 何杖之有!” 震陽等由是得免。


조준 등을 소환하고 태조를 문하 시중으로 임명하다[편집]

○召還趙浚等。 以太祖爲門下侍中。 太祖辭職, 不允。

조준 등을 불러냈다. 태조를 문하시중으로 삼았다. 태조가 사직하고자 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공양왕이 태조의 집에 가서 위문하다. 조인옥 등 52명이 태조를 추대하기로 결정하다[편집]

○六月, 恭讓幸太祖第問疾。 南誾自威化島回軍之時, 與趙仁沃等密議推戴, 及還, 以告殿下, 殿下曰: “此大事, 不可輕言。” 時衆心爭相推戴, 或有於稠人廣衆中揚言曰: “天命人心, 已有所屬, 何不亟爲勸進?” 至是, 殿下乃與誾定計。 誾密與素相歸心趙浚、鄭道傳、趙仁沃、趙璞等五十二人協謀推戴, 然畏太祖震怒, 不敢以告。 殿下入告康妃, 以達于太祖, 康妃亦不敢告。 殿下出謂誾等曰: “宜卽備儀勸進。”


공양왕이 태종과 사예 조용을 시켜 태조와의 맹약을 위한 초안을 잡게 하다[편집]

○初恭讓命召殿下及司藝趙庸曰: “予將與李侍中同盟。 卿等以予言, 就傳侍中, 聽侍中言, 草盟書而來。” 且曰: “必有故事。” 庸對曰: “盟不足貴, 聖人之所惡。 若列國同盟, 則古有之, 君與臣同盟則無經籍故事可據。” 恭讓曰: “第草之。” 庸與殿下就太祖, 傳如王敎, 太祖曰: “予何言哉? 汝當以上敎起草。” 庸退, 草之曰: “不有卿, 予焉至此! 卿之功與德, 予敢忘諸! 皇天后土在上在旁, 世世子孫無相害也。 予所有負於卿者, 有如此盟。” 庸與殿下, 進草於恭讓, 恭讓曰: “可。” 庸時兼史官, 書曰: “上於侍中, 扶立之功未報, 反害之意已萌。 天命已去, 人心已離, 區區之盟, 不可賴也。”


  1. 나무하고 말 먹이는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