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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 안됨: 새 문서: {{더 크게|二, 由來}} 今日, 咸鏡北道의 邊境一帶에 居住하는, 所謂 在家僧은 一便 僧侶로 行世를하면서 一便 俗人과같은 生活을 營爲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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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說, 高麗尹瓘<ref>원문에는 權으로 되어 있다.</ref>驅逐女眞, 其殘落者造寺院, 以安處之, 使之奉佛, 族居爲僧…』이라하엿다. 只今, 그由來에對한所說을보건대女眞邊人을僧侶로變換시켯다는데, 그根據를찾고저하는說이다. 또盧□<ref>판독 불가.</ref>氏는그著 淸津府一方面茂山郡會寧郡鍾城郡穩城郡各管內及間島古蹟調査의顚末에서
 
『又說, 高麗尹瓘<ref>원문에는 權으로 되어 있다.</ref>驅逐女眞, 其殘落者造寺院, 以安處之, 使之奉佛, 族居爲僧…』이라하엿다. 只今, 그由來에對한所說을보건대女眞邊人을僧侶로變換시켯다는데, 그根據를찾고저하는說이다. 또盧□<ref>판독 불가.</ref>氏는그著 淸津府一方面茂山郡會寧郡鍾城郡穩城郡各管內及間島古蹟調査의顚末에서
   
『初金宗瑞之驅出女眞也, 其窮不能徒去者, 歸化則斷髮區別之, 旣斷髮則, 屬之寺刹, 謂之在家僧, 戰時則運搬軍需(軍幕等)而在前驅, 平時則, 造黃紙以供官用, 極賤不可與平民同等故, 土豪亦皆以奴隸使之, 諸般討索, 罔有紀極, 距今前西北經略使魚允中, 革袪其賤役, 然慣習猶存故, 官每欲復其身役則, 渠自呼訴于京司, 僅民造紙之役, 然在鄕役不得免焉…』이라하여 女眞遺民을 政策上 斷髮시켜, 邊境各寺刹에分屬시켯다는데서 그由來를찾고저하는說이다. 勿論, 이女眞遺族의僧侶說도 充分히 在家僧 由來問題檢討上 그對衆이될만한 說이라하겟으나 이說을 肯定하기까지에는 아즉 相當한根據와時日이要하지안흘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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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金宗瑞之驅出女眞也, 其窮不能徒去者, 歸化則斷髮區別之, 旣斷髮則, 屬之寺刹, 謂之在家僧, 戰時則運搬軍需(軍幕等)而在前驅, 平時則, 造黃紙以供官用, 極賤不可與平民同等故, 土豪亦皆以奴隸使之, 諸般討索, 罔有紀極, 距今前西北經略使魚允中, 革袪其賤役, 然慣習猶存故, 官每欲復其身役則, 渠自呼訴于京司, 僅民造紙之役, 然在鄕役不得免焉…』이라하여 女眞遺民을 政策上 斷髮시켜, 邊境各寺刹에分屬시켯다는데서 그由來를찾고저하는說이다. 勿論, 이女眞遺族의僧侶說도 充分히 在家僧 由來問題檢討上 그對象<ref>원문에는 으로 되어 있다.</ref>이될만한 說이라하겟으나 이說을 肯定하기까지에는 아즉 相當한根據와時日이要하지안흘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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