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之 倶至卒本川 魏書云 至升骨城 觀其土壤肥美 山河險固 遂欲都焉 而未遑作宮室 但結廬於沸流水上居之 國號高句麗 因以高爲氏 一云 朱蒙至卒本扶餘 王無子 見朱蒙知非常人 以其女妻之 王薨 朱蒙嗣位 時朱蒙年二十二歳 是漢孝元帝建昭二年 新羅始祖赫居世二十一年甲申歳也 四方聞之 來附者衆 其地連靺鞨部落 恐侵盜爲害 遂攘斥之 靺鞨畏服 不敢犯焉 王見沸流水中 有菜葉逐流下 知有人在上流者 因以獵往尋 至沸流國 其國王松讓出見曰 |
함께 졸본천에 이르렀다. 위서에 이르기를 승골성에 이르렀다 한다. 〔주몽이〕 그 토양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산과 강이 험하고 굳은 것을 보고는, 나아가 도읍으로 삼고자 하였으나 미처 궁실을 지을 겨를이 없어, 다만 비류수 위에 임시거처를 짓고 거기에 머물러 국호를 고구려(高~)라 하였는데 이는 고(高)씨를 성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혹은 주몽이 졸본부여에 이르렀는데 왕에게 아들이 없어 주몽을 보고는 비상한 사람임을 알고 그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고, 왕이 죽자 주몽이 후사를 이었다고도 한다. 이때 주몽의 나이는 스물두 살, 한 효원제 건소 2년, 신라 시조 혁거세 21년 갑신년(기원전 37년)이다. 사방에서 듣고 와서 따르는 자가 많아 그 땅이 말갈 부락에 닿았는데 (그들이) 침임하고 노략질하여 해가 될까 두려워, 마침내 그들을 물리치자, 말갈이 두려워서 복종하고, 감히 범하지 않았다. 왕이 비류수 가운데 나물과 이파리가 떠내려가는 것을 보고는 상류에 사는 사람이 있음을 알고서 사냥을 하다 찾아가 비류국에 이르렀다. 그 나라 왕 송양이 나와서 보고는 이르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