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時神遺霊艾一炷蒜二十枚曰爾軰食之不見日光百日便得人形熊虎得而食之忌三七日熊得女身虎不能忌而不得人身 熊女者無與爲婚故每於壇 樹下呪願有孕 雄乃假化而㛰之孕生子號曰壇君王倹以唐髙即位五十年庚寅唐堯即位元年戊辰則五十年丁巳非庚寅也疑其未實都平壤城今西亰始稱朝鮮又移都於白岳山阿斯逹又名弓一作方忽山又今旀逹御國一千五百年 周 虎王即位己卯封箕子於朝鮮壇君乃移於藏唐亰後還隠於阿斯逹爲山神壽一千九百八歳 |
이에 환웅은 신령한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개를 보내며, 말했다.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 곰과 범은 이를 받아서 먹었다. 삼칠일(三七日, 21일)간 금기를 지킨 곰은 여자로 변했으나, 범은 금기를 지키지 못해 사람이 되지 못했다. 웅녀(熊女)는 혼인할 상대가 없었으므로, 항상 단수(壇樹)[1] 아래에서 잉태하기를 기원했다. 환웅은 이에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결혼하였더니, (웅녀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가 곧 단군 왕검(壇君 王倹)이다. (그는) 당고(唐高)[2][3]가 왕위에 오른 지 50년이 되는 경인(庚寅)년 당(唐)의 요(堯)임금 즉위 원년은 무진(戊辰)인즉 50년은 정사(丁巳)요 경인이 아니다. (사실이) 아닐까[4] 의심스럽다.에 평양성(平壤城) 지금의 서경(西亰)이다.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국호를 조선이라 불렀다. 다시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白岳山阿斯逹)로 옮겼다. 그 곳을 궁홀산(弓忽山), 혹은 방홀산(方忽山)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 불렀다. 그는 여기서 1천5백 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주나라 무왕(武王)[5][6]이 왕위에 오른 기묘(己卯)년에 무왕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封)하니, 단군(壇君)[7]은 이에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겨갔다가, 후에 돌아와 아사달에 숨어서 산신(山神)이 되었는데, 이때 나이가 1908세였다. |
唐裵矩傳云高麗本孤竹國今海州周以封箕子爲朝鮮漢分置三郡謂玄莬樂浪 |
당(唐)나라의 《배구전(裵矩傳)》에 이르기를, 고구려〔高麗〕는 본디 고죽국(孤竹國)지금의 해주(海州)[8] 이었는데 주(周)나라가 기자(箕子)에게 봉함으로써 조선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漢)나라가 이를 삼군(三郡)으로 나누어 다스렸는데, 이 삼군이 현도(玄菟)·낙랑(樂浪) |
- ↑ ≪제왕운기(帝王韻紀)≫와 ≪세종실록(世宗實錄)≫지리지에서 인용한 ≪단군고기(檀君古記)≫에는 檀으로 되어 있다.
- ↑ 중국 신화의 오제(五帝) 중 하나인 요(堯) 임금을 말한다.
- ↑ 원문 髙. 고려 3대 임금인 定宗의 이름인 堯를 피휘하였다.
- ↑ 원문 未. 서울대규장각본과 만송문고본에는 末로 되어 있다.
- ↑ 서주 무왕 희발(西周 武王 姬發, ? ~ 기원전 1043년?)은 주나라(周)의 초대 군주로서, 성(姓)은 희(姬), 이름은 발(發)이다.
- ↑ 원문 虎. 고려 2대 임금인 혜종(惠宗)의 이름인 武를 피휘하였다.
- ↑ ≪제왕운기(帝王韻紀)≫와 ≪세종실록(世宗實錄)≫지리지에서 인용한 ≪단군고기(檀君古記)≫에는 檀으로 되어 있다.
- ↑ 서울대규장각본은 마멸되어 판독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