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三國遺事 卷第一 1512年 奎章閣本.pdf/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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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봉(元封)은 중국 전한(前漢) 무제(武帝)의 여섯 번째 연호이다. 기원전 110년에서 기원전 105년까지 6년 동안 사용하였다.
  2. 원문 馭. 《사기(史記)》 〈卷一百一十五 朝鮮列傳 第五十五〉에는 “馳”로 되어 있다. 문맥상, “馳”가 타당하다.
  3. 裨王: 관직명이다.
  4. 여기서 천자는 곧 전한 무제를 말한다.
  5. 원문 遼東之部都尉.《사기(史記)》 〈卷一百一十五 朝鮮列傳 第五十五〉와 《한서》(漢書) 〈卷九十五 西南夷兩粵朝鮮傳第六十五〉에는 之가 아니라, “東”으로 되어 있다. 문맥상, “東”이 타당하다.
  6. 원문은 樓舡. 舡은 船의 오기(誤記)로 보인다. 이하 오기에 대한 지적을 생략한다.
  7. 원문은 그저 “齊”라고만 되어 있으나, 이 제나라는 기원전 1046년부터 기원전 221년까지 존속한 나라이므로, 옛 제나라 땅이라고 풀이했다.
  8. 보하이 해, 즉 발해는 제나라 땅이던 산동반도와 요동반도 사이에 있는 바다이다. 곧, 산동반도에서 요동반도로 건너갔다는 뜻이 된다.
  9. 순체(荀彘)는 좌장군(左將軍)이었던 바, 원문의 “尤”는 “左”의 오자일 가능성이 있다.
  10. 사마천(기원전 1세기),《사기》〈권115 조선열전(朝鮮列傳)〉“天子募罪人擊朝鮮。其秋,遣樓船將軍楊仆從齊浮渤海;兵五萬人,左將軍荀彘出遼東:討右渠。右渠發兵距險。左將軍卒正多率遼東兵先縱,敗散,多還走,坐法斬。樓船將軍將齊兵七千人先至王險。右渠城守,窺知樓船軍少,即出城擊樓船,樓船軍敗散走。將軍楊仆失其眾,遁山中十餘日,稍求收散卒,復聚。左將軍擊朝鮮浿水西軍,未能破自前。” (천자는 죄인을 뽑아 조선을 쳤다. 그 해 가을, 누선장군(樓船將軍) 양복(楊僕)을 파견하여, 옛 제(齊)나라 땅으로부터 보하이 해〔渤海〕를 건너니 군사가 5만에 달했다. 좌장군(左將軍) 순체(荀彘)는 우거(右渠)를 토벌하고자 요동(遼東)에서 나왔다. 우거는 군사를 풀어 험한 곳에서 막았다. 좌장군의 졸정(卒正) 다(多)가 요동(遼東)의 병사를 이끌고 먼저 방종(放縱)하다가, 패하여 흩어지고, 다(多)는 달려서 되돌아오니, 법에 따라 참수되었다. 누선장군은 옛 제나라 땅 출신의 병사 칠천명을 거느리고 먼저 왕검(王險)에 도달하였다. 우거는 성(城)을 지키다가 누선장군의 군사가 적은 것을 알고 꾀를 내어 누선장군을 물리치니 누선장군은 패하여 달아났다. 장군 양복은 무리를 잃고 산(山) 속에서 십여일을 숨었다가, 점차, 흩어진 병졸을 구하고 거두니, 다시 갖추어졌다.좌장군은 조선 패수의 서쪽 군을 공격하였으나, 능히 깨뜨리지 못했다.)
  11. 서울대규장각본에는 “大”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