鞨之別種。 |
갈의 별종(別種)이다. |
但開合不同而已。按指掌圖。渤海在長城東北角外賈耽郡國志云。渤海國之鴨淥南海扶餘橻城四府。並是高麗舊地也。自新羅泉井郡地理志。朔州領縣有泉井郡。今湧州至橻城府三十九驛又三國史云。百濟末年。渤海靺鞨新羅分百濟地據此。則鞨海又分為二國也羅人云。北有靺鞨。南有倭人。西有百濟。是國之害也又靺鞨地接阿瑟羅州又東明記云。卒本城地連靺鞨或云今東真羅第六祇麻王十四年乙丑靺鞨兵大入北境。襲大嶺柵過泥河後魏書靺鞨作勿吉指掌圖云。挹屢與勿吉皆肅慎也 |
단지, 개국과 합병〔에 관한 내용이〕 같지 않을 뿐이다. 《지장도》(指掌圖)[1]에 의하면, 발해는 만리장성 동북쪽 모서리 바깥에 있었다. 가탐(賈耽)[2]의 《군국지》(郡國志)에 이르기를 발해국의 압록·남해·부여·추성(鴨淥·南海·扶餘·橻城) 4부(部)는 더불어 고구려의 옛 땅이고, 신라 천정군(泉井郡)지리지(地理志)에, 삭주(朔州)에 속한 현에 천정군(泉井郡)이 있다. 지금의 용주(湧州)이다.에서 추성부(橻城府)에 이르기까지 39역(驛)이 있다고 하였다. 《삼국사기》에 이르기를 백제 말년에 발해·말갈·신라가 백제의 땅을 나누었다. 이에 의하면, 말갈과 발해가 또한 나뉘어 두 나라가 되었다. 신라인들이 말하기를, “북쪽에는 말갈, 남쪽에는 왜인, 서쪽에는 백제가 있으니, 이것이 나라의 해악이다. 또한 말갈은 아슬라주(阿瑟羅州)에 접한다.”라고 하였다. 또한, 《동명기》(東明記)에 이르기를 “졸본성(卒本城) 땅은 말갈혹은 지금의 동진(東真)과 붙어 있다”고 하였다. 신라 지마왕(祇麻王) 14년을축(乙丑)년(125년) 말갈 병사가 크게 북쪽 국경을 넘어, 대령책(大嶺柵)을 습격하고, 니하(泥河)를 건넜다. 《후위서》(後魏書)는 말갈을 물길(勿吉)이라 하였다. 《지장도》에 이르기를 파루(挹屢)와 물길은 모두 숙신(肅慎)이다. |
黑水沃沮 |
흑수와 옥저 |
按東坡指掌圖。辰韓之北有南北黑水按東明帝立十年滅 |
페이지:三國遺事 卷第一 1512年 奎章閣本.pd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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