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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한(卞韓) 백제(百濟) 또한 남부여(南扶餘)라고도 하니, 즉 사비성(泗泚城)이다. |
新羅始祖赫居世即位十九年壬午。卞韓人以國來降。新舊唐書云。卞韓苗裔在樂浪之地。後漢書云卞韓在南馬韓在西辰韓在東。致遠云。卞韓百濟也。按本記溫祚之起。在鴻嘉四年甲辰。則後於赫世東明之世四十餘年。而唐書云。卞韓苗裔在樂浪之地云者。謂溫祚之系出自東明故云耳。或有人出樂浪之地。 立國於卞韓。與馬韓等並峙者在溫祚之前。爾非所都在樂浪之北也。或者濫九龍山亦名卞那山。故以高句麗為卞韓者蓋謬。當以古賢之說為是。百濟地自有卞山。故 |
신라시조 혁거세 즉위 19년 임오(壬午)년((기원전 39년))에 변한 사람이 나라를 바쳐 항복해 왔다. 《신·구당서》(新舊唐書)에 이르기를 변한의 먼 후손들은 낙랑(樂浪) 땅에 있다 한다. 《후한서》(後漢書)에 이르기를 변한은 남쪽에, 마한은 서쪽에, 진한(辰韓)은 동쪽에 있다 한다. 최치원(崔致遠)이 이르기를 변한은 백제라 한다. 《본기》(本記)에 의하면 온조(溫祚)가 홍가(鴻嘉) 4년 갑진(甲辰)년((기원전 17년))에 일으켰으므로, 혁거세·동명의 세대보다 40여년 늦은 것이다. 그런데, 《당서》(唐書)에 이르기를 변한의 먼 후손은 낙랑의 땅에 있다고 하는데, 이는 온조의 계통이 동명에서 나온 것이기에 이렇게 이른 것일 뿐이다. 혹은 어떤 사람이 낙랑의 땅에서 나와 변한에 나라를 세웠고, 마한 등과 더불어 대치한 것은 온조 이전에 있었던 것이고, 낙랑의 북쪽에 도읍을 삼은 바는 아니었다. 혹자는 함부로 구룡산(九龍山)이 또한 변나산(卞那山)이라고 지칭한다고 하여 고구려를 변한으로 보는데, 이는 대개 잘못 본 것이다. 마땅히 옛 현인의 말씀이 맞는 것이다. 백제의 땅에는 변산(卞山)이 있었으므로 |
페이지:三國遺事 卷第一 1512年 奎章閣本.pdf/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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