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朝鮮史硏究草1946.pdf/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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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을 譯用한 것이 없은즉 명의의 원류를 찾는 동시에 매양 전후 際斷의 憾이 없지 아니하니 그 곤란이 두번째요.

삼국사기나 기타 史冊에 이두문으로 쓴 당시의 본명으로 실록에 記치 아니하고 후래에 譯用한 한자의 명사를 記하였으니 예를 들건대 백제가 쓰던 한강의 이름인 욱리하(郁里河)가 겨우 개로왕기에 일견한 이래에는 오직 신라가 고친 이름인 한강이 온조 초년부터 보이었으며, 고구려가 쓰던 요동성의 이름은 오렬홀(烏列忽)이거늘, 삼국사기에 오렬홀이 겨우 地誌에 일견한 이외에는 모두 隨唐사람이 칭호한 요동성으로 적히었을 뿐이니, 그러면 아주 可考할 수 없이 된 본명도 허다할 뿐더러 어떤 것은 당시의 본명인지 후래의 譯名인지 알 수 없이 된 것도 적지 아니하리니 그 곤란이 세번째다.

조선의 사책은 從古로 저자만 있고 독자는 없는 서적이라, 무슨 사책이든지 訛字, 誤字, 첩자(疊字), 누자(漏字)가 지폭(紙幅)에 충만한 중에, 더욱 古地名과 古官名같은 것은 夷言으로 배척하여 그 訛, 誤, 疊, 漏를 거의 등사자(謄寫者)나 인판자(印版者)의 자유에 방임하여 정정자가 없었으며, 支那24사 중 이른바 조선열전 혹 동이열전에 적힌 명사가 傳聞으로 음역한 것도 있지만, 직접으로 당시 이두문의 본명을 그대로 가져다가 쓴 것도 적지 않으나, 그러나 수백년래로 고서고증에 늙은 중화문사들이 남의 역사에는 사정도 격막일 뿐더러 노력도 좀 아긴지라, 그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