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역임하고, 1958년 미국 템플 대학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귀국 후, 1961년 이화여대 총장에 취임하였고, 동 대학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아시아 반공연맹 이사, 한국 4H 클럽 이사, 한국 연구원 이사를 거쳐 세계 대학 봉사회 한국 위원회 이사를 역임하고, 이화여대 총장을 재임하였다. 예수의 생애와 교훈에 관한 연구를 꾸준히 하였다.
김요섭金耀燮(1927~ 1997)시인·아동문학가. 함북 청진 출생. 청진교원대학 수학. 1941년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동화 「고개 너머 선생」이 당선 되었으며, 이어 「연」 「은행잎 편지」를 발표하였다. 1947년 시 「수풀에서」가 동인지 『죽순(竹筍)』에 추천됨으로써 문단에 데뷔했다. 1957년 마해송(馬海松)·강소천(姜小泉) 등과 한국동화작가협회를 발족하고 1961년 자매학교 결연운동을 벌였으며 1970년 계간지 「아동문학사상」을 발행하였다. 동화집으로 『오, 멀고 먼 나라여』 『깊은 밤 별들이 울리는 종』 『날아다니는 코끼리』 등 30여 권이 있다. 시집으로 『체중(體重)』 『빛과의 관계』 『달을 몰고 다니는 진흙의 거인』 등이 있다. 소천문학상, 5월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한국시인협회상 등을 수상했다.
김용기金容基(1908~1988)목사·농촌 운동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나 광동학교를 졸업하였다. 1940년 경기도 양주군에 봉안 이상촌을 건설하고, 1955년 경기도 광주군에 가나안 농장을 설립하였다. 1962년 가나안 농군학교를 설립하여, 많은 농촌 일꾼을 길러 내는 요람으로 만들었다. 1962년 농림부 장관상·향토문화 공로상을 수상했고, 1964년 공군 참모총장 감사장과 협조 상패를, 1966년 막사이사이상 복지 부문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참 살 길 여기 있다』 『가나안으로 가는 길』 등이 있다.
김 유(1571~1648)조선 인조 때의 공신. 자는 관옥, 호는 북저, 본관은 순천이다. 아버지인 김여물이 임진왜란 때 전사했으므로 순절자의 아들로 참봉이 되었다. 1596년, 문과에 급제하여 검열·강계 부사 등을 지냈다. 1623년, 이 귀·이 괄 등과 함께 인조반정에 성공하여 벼슬이 대제학에까지 올랐다. 이듬해 이 괄의 난이 일어나자 왕을 모시고 공주로 피란했으며, 정묘호란 때에는 강화로 왕을 모시었다. 환도 후 영의정이 되었다. 그는 문장과 필법이 뛰어났으며 저서로 『북저집』이 있다.
김유신 동상
김유신의 묘
김유신金庾信(595~673)신라의 장군. 김수로왕의 12대손으로 15세 때 화랑이 되어 낭벽성 싸움에서 처음으로 고구려 군사를 격파하였다. 그 후 백제 및 고구려와 여러 차례 싸워 공을 세운 후, 김춘추를 왕으로 세우고 삼국 통일을 이룩할 준비를 하였다. 666년, 소정방이 거느린 당의 13만 군과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켰다. 그러나 백제의 유민들이 곳곳에서 부흥운동을 일으켰으며 고구려는 이들과 연합하여 북한산주에서 기세를 올렸다. 668년, 다시 당 군사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그러나 고구려·백제의 영토가 모두 당의 지배에 들어갔을 뿐 아니라, 신라까지도 당의 지배하에 두려고 하자, 김유신은 당과 대항하였다. 그 후 당과 여러 차례 싸워 백제의 옛 터를 모두 탈환하고 대동강 이남의 땅을 도로 찾았으나 고구려 땅의 대부분은 잃고 말았다. 문무왕은 그의 공적을 높이 사 태대각간의 벼슬을 주었으며 죽은 후 흥무 대왕이라 추증하였다.
김유정의 문인비
김유정金裕貞(1908~1937)소설가.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하였으며,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중퇴하였다. 1933년 이효석·현진건·이 상·이무영 등과 종래의 카프 문학에 대항하여 순수 문예운동을 표방하는 '구인회'를 조직하였다. 193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