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이 수여되었다. 저서로 『삼일신화』 『신단실기』 등이 있다.
나혜석의 그림 「불란서 마을 풍경」
나혜석羅蕙錫(1896~1946)여류 화가. 호는 정월, 본관은 나주이며 수원에서 출생하였다. 1918년 일본 도쿄 여자미술학교 유화과를 졸업하였다. 1921년 우리나라 여류 화가로서는 최초로 개인전을 가졌다. 조선미술전람회에서 1회부터 5회까지 특선하는 등 서양화의 개척자로서 활약하였다. 그 후 세계 일주를 하였고 파리에서 그린 「정원화」를 도쿄 미술전에 출품하여 입선하였다.
한편 1918년 「경희」 「정순」 등의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여류 소설가로도 활동하였다. 1929년 남편 김우영과 이혼하고 충남 공주 마곡사에 들어가서 수도 생활로 일생을 마쳤다. 작품으로 「나부」 「봄」 등이 있다.
나혜석
나혜석의 「누드」
낙랑 공주樂浪公主(?~32)낙랑 태수 최 리의 딸이다. 고구려 태무신왕의 왕자 호동과의 사랑 때문에, 무기고에 들어 있던, 적이 나타나면 스스로 소리를 낸다는 자명고를 찢어 고구려에게 정복당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남건男建고구려의 정치가. 일명 천남건이며 연개소문의 둘째 아들이다. 666년 형 남생을 쫓아내고 막리지가 되었다. 남생이 당에 들어가 고구려 공격을 꾀하자, 당 고종은 신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침입하였다. 평양성에서 왕이 항복하였지만, 남건은 계속 싸우다가 부하 신성의 밀고로 잡혀 당에 끌려간 뒤에 금주로 귀양갔다.
남 곤의 필적
남 곤南袞(1471~1527)조선의 문신. 자는 사화, 호는 지정, 본관은 의령이다. 성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헌·대제학·영의정에 이르렀다. 김종직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는데, 문장과 글씨가 뛰어났다. 평생 좋은 옷을 입지 않았으며 언제나 바른 말만 하였다. 그러나 심 정 등과 기묘사화를 꾸민 것으로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으며, 그도 잘못을 깨닫고 죽을 때 자신의 원고를 불살라 버렸으며, 문경이란 시호는 박탈당하였다.
남구만南九萬(1629~1711)조선의 정치가. 숙종 때 소론의 거두로 자는 운로, 호는 약천, 본관은 의령이다. 효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한성부 좌윤을 지냈다.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윤 휴·허 견 등 남인들의 횡포를 상소하였다가 오히려 남해로 유배되었다. 1680년, 남인이 몰락하자 영의정까지 지냈다. 숙종이 희빈 장씨에게 사약을 내릴 것을 결정하자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조용히 일생을 보냈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라는 시 한 수가 『청구영언』에 전한다.
남궁 벽南宮璧(1895~1922)시인. 호는 초몽, 본관은 함열, 평북에서 출생하였다. 일본 도쿄에서 공부한 후 귀국하여 오산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창조』 『폐허』 등의 문예 동인지에 인도주의적인 시를 발표하여 천재 시인이라 불리었으나 28세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작품에 「별의 아픔」 「대지의 찬」 등이 있다.
남궁 억南宮檍(1863~1939)독립운동가·교육자·언론인. 자는 치만, 호는 한서이며 본관은 함열이다.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며 묄렌도르프의 견습생으로 있다가 전권대신 조민희의 수행원으로 상하이에 다녀왔다. 그 후 흥화학교에서 영문법과 국사를 가르쳤다.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1898년에 투옥되었다가 석방되어 황성신문사 사장이 되었다. 1906년, 양양 군수로 있으면서 현산학교를 설립하였으며 『교육월보』를 간행하는 한편, 관동학회 회장이 되었다. 1910년부터 배재학당 교사로 10년 간 재직하면서 『가정교육』 『신편 언문체법』 등의 교과서를 만들고 영문법 시간에 국사를 가르쳤다. 1918년, 강원도 홍천의 모곡에 교회와 학교를 세우고 무궁화 묘포를 만들었다. 1933년, 무궁화와 한국 역사 사건으로 체포되어 2년 간 복역하였다. 저서로 『동사략』 『조선의 노래』 등이 있다.
남생南生고구려의 재상. 일명 천남생으로 연개소문의 맏아들이다. 연개소문이 죽자 대를 이어서 대막리지가 되었다. 국정을 맡고 있을 때, 형제간의 사이를 이간시키려는 사람 때문에, 동생 남건이 남생의 아들을 죽이고 공격해 왔다. 남생은 국내성으로 쫓겨 당에 구원병을 청하였다. 당에서는 계필하력 장군을 보내어 그를 구하였으며 당에 들어가 랴오둥 대도독·현도군공 등을 지냈다. 당의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에 침입하여 신라 군사와 연합하여 평양을 함락시켰다. 그 후 우위 대장군 변국공신에 올랐다.
남승룡南昇龍(1910~ )마라톤 선수. 전라남도 순천 출생. 일본 메이지 대학을 졸업하였다. 1934년 미·일 경주대회(500m)에서 15분 40초의 기록으로 우승하였다. 1936년 손기정과 함께 베를린에서 열린 제11회 올림픽대회 마라톤 경기에 나가 3위를 차지하였다. 광복 후 전남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