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재가승만고Jaegaseungmango.pd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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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現今 鴨綠 豆滿兩江의南岸 卽北朝鮮六鎭의 故地山間地方에 在家僧이라는 一種特殊部落이 散在하여 殆히原始的生活을 營爲하고 잇다는것은 너무나有名한 事實이나 그所謂在家僧의 由來에對하여는筆者의아는限 아즉定說이 없다. 從來로 學界에잇어서나 市井에잇어서나 主張或은 傳說이 없지아니하며 또 이 問題에對하여 相當한關心을 가지엿는데도 不拘하고 아직까지 그正體를 究明하지못하엿다는 事實에對하여는 學界를爲하여 甚히遺憾事라 아니할수없다. 이러한 意味下에서 簡粗, 無頭緖의感이 不無하나 在家僧에關하여 若干論述하여 諸賢의 參考에供하고저한다.


一, 北朝鮮의史的槪觀

지금 在家僧의 居住하는 咸鏡道一帶地方은 古代에잇어서는 現今의咸興一帶는 東沃沮, 咸鏡道豆滿江沿岸一帶는 北沃沮의 根據地엿다. 그다음 三國時代에 들어와서는 高句麗의 興起에依하여 그故地는 高句麗의 領有하는바가되엇으며 新羅眞興王時代에잇어서는 咸興의 北方黃草嶺以南의 地區는 新羅의 勢力範圍內에 들어갓다. 其後 渤海國이興起하여 新羅의北境을 侵犯하엿고 이어서 契丹(遼)이 建國되여 鴨綠江, 豆滿江의 北方一帶를 領有하게되자 女眞族은 그窟穴을 喪失하고 大擧豆滿江沿岸에 避難하여 今日의咸鏡南道를 占據하엿다. 그다음 高麗, 李朝時代에 잇어서의 情勢는 어떠하엿을까.

高麗[1]는 半島를能히 統[2]合하엿으나 그北境은終始女眞族의 侵犯을 받엇고 따라서 睿宗二年에 元帥尹瓘, 副元帥吳延寵은 十七萬의大軍을 거느리고가 女眞을大破하고 拓地定界하여 英州, 雄州, 福州, 吉州, 咸州, 公嶮鎭, 宜州, 通泰, 平戎等九城을 新築하여 徹底的으로肅淸工作을 斷行하엿다. 이肅淸工作의 成功을 記念하기爲하여 其後, 北靑에는 萬賴祠, 利原에는 侍中臺, 鏡城에는 元帥臺, 慶興에는 征北祠를設置하여 春秋의祭祠를 繼續하여온다고 한다. 如斯히 從來, 北境一帶에蟠居하여 邊民을 괴롭게하는 女眞族은 그根據地를 喪失하는等 高麗에게 徹底的掃蕩을當하엿음에도不拘하고 女眞族은 依然히 連歲來侵하여 北境의情勢를 騷亂케 하엿다. 그러므로 高麗時代에잇어서는 今日의 咸鏡道一帶는 高麗, 女眞의 爭奪地化하엿고 따라서 今日의咸興以北에地區는 結局 女眞族의巢窟化하엿다고 보는便이 穩當한觀察이라 하겟다. 다음 李朝에들어와서는 國初에北境一帶에 孔鍾吉等七州를 設置한以後는 北境一帶는 形式上 朝鮮의領有에歸하엿으나 女眞族의 入寇[3]는 依然不絶하엿음으로 世宗十六年에 金宗瑞를 咸吉道觀察使에任하고 國境一帶에 慶源, 會寧, 鍾城, 穩城, 慶興, 富寧等六鎭을設置하여 防禦의 完璧을期하엿다. 그러나 淸太祖가 鴨綠, 豆滿兩江의 北境을 平定하자, 女眞族은다시 難을避하여 大擧半島北境에殺到하여 國境地方은 又復그들의侵寇를받으나 未久에 淸太祖가 支那中原에 進出함을따라 女眞族과의紛爭은 大端緩和되어 國境의情勢는 小康保持하엿다. 이제 萬機要覽의 記錄을通하여 高麗, 李朝時代에잇어서의 北境地方의情勢一般을 總括的으로 推測할수 잇다고믿는다.

卽 萬機要覽 六鎭開拓條에

『宗瑞密爲書以啓曰, 高麗始祖力能統[4]合三韓, 威不及於朔方, 只以鐵嶺爲界, 其在睿宗, 謀臣騁[5]智, 誘翦[6][7]醜, 遂置九城, 然旋[8]得旋失』이라하엿고 그다음에 『…世宗壬子, 兀狄哈攻斡木河[9]殺管禿父子, 其黨凡察反伊[10]等, 款[11]塞願處慶源近地, 不許, 敎兵曹曰, 我國北界豆滿江, 太祖始置慶源府于孔州, 太宗移府治于蘇多老, 皆所[12]以重肇基之地也…於是, 以金宗瑞爲咸吉道觀察使, 設置慶興, 會寧, 鍾城, 穩城, 慶源, 富寧, 築城實民, 凡六年而鎭之[13]

라하여這間의消息을傳하고잇다.



  1. 원문에는 鹿으로 되어 있다.
  2. 원문에는 流로 되어 있다.
  3. 원문에는 冠으로 되어 있다.
  4. 원문에는 流로 되어 있으나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DB 만기요람 원문이미지를 참고하여 統으로 수정하였다.
  5. 원문에는 聘으로 되어 있으나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DB 만기요람 원문이미지를 참고하여 騁으로 수정하였다.
  6. 원문에는 剪으로 되어 있으나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DB 만기요람 원문이미지를 참고하여 翦으로 수정하였다.
  7. 원문에는 戒로 되어 있으나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DB 만기요람 원문이미지를 참고하여 戎으로 수정하였다.
  8. 원문에는 施로 되어 있으나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DB 만기요람 원문이미지를 참고하여 旋으로 수정하였다.
  9. 원문에는 兒로 되어 있으나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DB 만기요람 원문이미지를 참고하여 河로 수정하였다.
  10. 원문에는 律로 되어 있으나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DB 만기요람 원문이미지를 참고하여 伊로 수정하였다.
  11. 원문에는 欵으로 되어 있으나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DB 만기요람 원문이미지를 참고하여 款으로 수정하였다.
  12. 원문에는 所자가 빠져 있으나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DB 만기요람 원문이미지를 참고하여 삽입하였다.
  13.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DB 만기요람 원문이미지에는 鎭之가 六鎭定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