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세월호가 침몰한 후인 11:35경에야 현장에 도착하였는데, 당일 선내에 진입하지 못하였다.
당일 09:00경은 조류의 흐름이 바뀌는 시기로서 인근 해역의 조류의 세기는 0.2노트 또는 0.5노트였고, 10:00경은 0.4노트 또는 1.9노트였으며, 10:30경까지 그 곳 조류의 세기는 2노트를 넘지 않았다. 바다로 뛰어든 승객들은 큰 움직임 없이 떠 있다가 구명뗏목이 펼쳐지자 그쪽으로 헤엄쳐 다가갈 수 있었다. 구조헬기에서 바다로 내려가 구명뗏목을 이동시켰던 권○준은 법원에서 구명뗏목을 이동시키는 데에 조류의 영향은 크게 느끼지 못했고 세월호의 선체가 조류를 막아주는 역할을 했다고 진술하였다. 실제로 세월호가 전복될 당시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해양경찰(이하 ‘해경’이라 한다) 또는 어선에 의해 구조되어 다른 선박으로 옮겨졌다. 123정에는 약 50명의 인원이 승선할 수 있었는데 측면에 사다리가 있어 바다에 표류하는 인원이 쉽게 승선할 수 있었다. 세월호 주변에는 전라남도 소속 전남 201호가 10:06경 도착하였으며, 당시 10척 정도의 선박들이 근처에서 대기하였다. 전남 201호보다 먼저 도착한 어선 중에는 50명 정도의 인원이 승선할 수 있는 것들도 있었고, 어선들의 높이가 낮아 어선에서 바다에 표류하는 사람을 쉽게 올릴 수 있었다. 그밖에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둘라에이스호와 드래곤에이스11호도 세월호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나) 국가안보실은 당일 09:19경 와이티엔(YTN)이 보도한 세월호 사고 관련 속보를 보고 09:20경 및 09:22경 해경에 유선으로 문의하여 ‘승선인원 474명의 배가 침수되어 기울었다’는 답변을 들었다. 국가안보실은 09:24경 청와대 주요 직위자에게 업무용 휴대전화로 “474명 탑승 여객선 침수신고 접수, 확인 중”이라는 문자메시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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