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와 전망/사회주의의 제반 선행조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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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는 사회주의를 과학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이것이 어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마르크스주의를 하나의 공상으로 변질시키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사회화 및 협동 생산에 관한 강령을 반박하면서 로슈꼬프(Rozhkov)는 "마르크스에 의해 확고하게 제시된, 미래 사회에 필요한 선행 조건들"이라는 것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해석한다.

개인적인 이윤 추구의 동기, 금전욕〔?〕, 개인적인 노력 및 진취성과 모험심 등을 최소화시켜 줄 수 있고, 따라서 사회화된 생산방식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부각시켜 줄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져 있어야만 하는데, 현재 그러한 객관적인 물질적 선행 조건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한 기술 수준은 경제의 모든〔!〕 분야에서 대규모 생산방식이 완전히〔!〕우세하게 되는 것과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러한 단계에 이미 도달했는가? 프롤레타리아 속에서의 계급의식의 성장과 같은 주관적, 심리적 선행 조건들조차도 아직 결여되어 있는 상태이다. 즉, 압도적인 대다수 인민들의 정신적 통일을 이룰 수 있을 정도로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의 수준이 성장해 있지 못한 것이다. 프랑스 알비(Albi)에 있는 유명한 유리 제조업과 같은 생산자 조합과 역시 프랑스의 몇몇 농업생산의 협동 형태들 및 프랑스 전체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프랑스와 같은 선진국의 제반 경제적 조건들조차도 협동생산 방식이 우세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발전돼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아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 같은 협동 기업들은 단지 평균 수준 정도의 규모이며, 그들의 기술 수준도 일반 자본주의 기업들의 수준을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한 협동기업들은 선두에서 산업 발전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평범한 평균 수준에 접근해 가고 있는 것이다.
개별적인 협동 기업들이 경제 활동 전반에 걸쳐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에 이르렀을 때에만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경제 체제에 접근해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또한 그러한 체제의 존재에 필요한 제반 조건들이 마련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N. 로슈꼬프, 『농업 문제에 대해서』, pp. 21~22.)

로슈꼬프 동지의 원래 의도는 충분히 존중해 줄 수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유감스럽게도 사회주의의 선행 조건들로 알려진 것과 관련해서 그가 드러낸 것과 같은 혼란된 견해는 부르조아의 문헌에서조차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혼동에 대해서 어느 정도 자세히 다뤄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로슈꼬프 동지를 겨냥해서가 아니라 적어도 문제 자체의 본질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개인적인 이윤 추구의 동기, 금전욕(?), 개인적인 노력 및 진취성과 모험심 등을 최소화시켜 줄 수 있으며 사회화된 생산방식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부각시켜 줄 수 있을 정도의 단계까지 기술의 발전이 아직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로슈꼬프는 선언하고 있다.

이 구절이 함축한 뜻을 정확히 찾아내는 일은 아주 어려운 것 같다. 그러나 아마도 로슈꼬프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말하고자 한 것 같다. 첫째, 현대의 기술은 공업 분야에서 인간의 노동력을 축출하는 것을 아직까지 충분히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이러한 축출 작업이 확고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경제의 전 분야에 걸쳐 대규모의 국가 기업들이 '거의' 완전한 지배 형태를 이루어야 하며, 따라서 한 나라의 인구 전체의 '거의' 완전한 프롤레타리아화가 이루어져야 만다. 이 두 가지 점이 소위 “마르크스에 의해서 확고히 제시되었다”는 사회주의의 선행 조건들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로슈꼬프에 따른다면 사회주의가 도래할 때 그것이 마주치게 될 자본주의적 관계들이라는 배경을 상상해 보자. "산업 전 분야에 걸쳐 대기업이 거의 완전히 장악한다"는 것은 자본주의하에서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농업과 공업 분야에서의 모든 중소 생산자들의 프롤레타리아화, 즉 전 인민의 프롤레타리아화를 의미하다. 그러나 대기업들에서 자동생산 기술이 완전히 지배적인 것으로 될 경우 인력 고용은 최대한으로 축소될 것이며, 따라서 한 나라의 인구 중 압도적인 다수가-가령 90% 정도-국가의 비용으로 빈민 구제소에서 살아가는 노동 예비군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인구의 90% 정도가 그렇게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해 봤는데, 그러나 논리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면, 생산의 전과정이 단 하나의 자동화된 기계 장치로 구성되어 있고 또 이것은 단 하나의 연합 기업이 소유하며 산 노동( living labour)으로는 단 한 마리의 훈련된 오랑우탄만이 필요하게 되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조차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우리가 알다시피, 바로 이러한 논리가 뚜간- 바라노프스끼(Tugan -Baranovsky) 교수의 현란하고도 일관된 이론인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라면 '사회화된 생산방식'은 '전면'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전 분야를 지배하게 된다. 더구나, 이러한 상황에서라면 트러스트를 소유하고 있는 10%를 제외하곤 국민 전체가 공공비용으로 빈민 구제소에서 살 것이라는 사실로 인해서 소비 또한 자연적으로 사회화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로슈꼬프의 뒤에는 뚜간 - 바라노프스끼의 낯익은 얼굴이 웃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 사회주의가 무대에 등장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한다면, 국민들은 모두 빈민 구제소로부터 탈출해서 소유 집단의 재산을 몰수한다. 물론, 여기서는 어떠한 혁명이나 프롤레타리아 독재도 필요치 않다.

한 나라가 사회주의를 위해 성숙되어 있다는 두 번째 경제적 표지는, 로슈꼬프에 따른다면, 그 나라에서 협동생산 방식이 지배적일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러나 프랑스에서조차도 알비에 있는 유리 공업과 같은 대규모적 협동생산 방식은 다른 자본주의 기업들보다 더 높은 단계에 와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사회주의 생산방식은 협동 생산활동이 선도 기업으로서 공업 발전의 전면에 자리잡을 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그의 논거 전체는 시종일관 공허한 순환논법에 기초하고 있다. 협동생산 활동이 공업 발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경제 발전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경제 발전은 협동생산을 위한 토대를 창출해 준다. 그러나 어떠한 종류의 협동생산을 위한 토대인가? 물론, 임노동에 기초한 자본주의적 협동생산을 위한 토대이다. -모든 공장 하나 하나가 우리에게 그러한 자본주의적 협동생산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그러한 협동생산의 중요성 역시 증가한다. 그러나 어떠한 방식으로 자본주의의 발전이 협동생산 방식의 기업들을 '공업의 중심부'에 위치시킬 수 있겠는가? 대체 무엇에 근거해서 로슈꼬프는 협동생산 방식의 기업들이 신디케이트와 트러스트들을 누르고 공업발전의 주도적인 위치를 대신 차지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을까? 만일 이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협동생산 방식의 기업들이 단지 다른 모든 자본주의적 기업들을 자동적으로 몰수해 버리기만 하면 될 것임이 분명하다. 이후로는, 협동생산 방식의 기업들이 모든 시민들에게 직장을 제공할 수 있도록 노동 시간을 충분히 단축하고, 공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상이한 생산 분야들의 생산량을 조절하는 것밖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사회주의의 주된 특징들이 정착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어떠한 혁명이나 노동계급 독재도 전혀 필요치 않을 것이라는 점이 재차 명백해진다.

세 번째 선행 조건은 심리적인 것이다:"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이 민중의 압도적인 다수를 정신적으로 단결시킬 수 있는 단계까지 도달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정신적 단결"이라는 것은 명백히 의식적인 사회주의적 유대를 의미하는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따라서 사회주의의 심리적인 선행 조건을 "인민의 압도적인 다수"가 사회민주당 내에서 조직화된 상태라고 로슈꼬프 동지는 생각하는 것 같다. 요컨대, 명백히 로슈꼬프는 자본주의가 소생산자들을 프롤레타리아화시키고 또한 프롤레타리아 대중을 노동 예비군으로 전락시킴으로써 사회민주주의가 인민의 압도적인 다수(90% 정도?)를 정신적으로 단결시키고 계몽할 수 있는 가능성이 발생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는 것 같다.

자본주의 경쟁의 틀 내에서 협동생산 방식의 우세가 불가능하듯이, 야만적인 자본주의 세계 내에서 이것은 실현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만일 이것이 실현될 수 있다면, 그렇다면 물론 의식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단결된 국민의 "압도적인 다수"는 전혀 아무런 어려움 없이 극소수의 거대한 자본의 제왕들을 분쇄할 것이며, 또한 혁명과 독재를 거치지 않고 사회주의 경제를 조직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다음과 같은 의문들이 발생한다. 로슈꼬프는 마르크스를 자신의 스승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자선언』에서 "사회주의를 위한 필수적인 선행 조건들"을 요약한 후에 1848년 혁명을 사회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서곡으로 간주했다. 물론 60년이 지난 오늘날, 마르크스가 당시에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많은 통찰력이 요구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세계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떻게 마르크스가 이 잘못을 저지를 수 있었겠는가? 그는 대체 당시에 대기업들이 산업 전반에 걸쳐서 아직 지배적으로 되지 못하고 있던 사실을 간파하지 못했단 말인가? 생산자들의 협동조합은 아직 대기업의 선두에 있지 못했고 인민의 압도 다수가 아직 『공산주의자 선언』에 제시되어 있는 사상에 기초해서 단결되어 있지 못했다는 사실을 간파하지 못했단 말인가? 우리의 시대에서조차도 이러한 사실들을 찾아볼 수 없는데, 대체 어떻게 마르크스가 1848년 당시에 이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간과할 수 있었겠는가?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의 많은 완벽한 자동인형들과 비교해 볼 때, 아마도 1848년의 마르크스는 한낱 공상적인 젊은이였나 보다!

따라서, 비록 로슈꼬프 동지가 결코 마르크스를 비난하는 자들 속에는 포함되지 않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회주의의 필수적인 선행 조건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완전히 폐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로슈꼬프는 물론 우리 당의 양대 경향(즉,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 역주) 안에 있는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지니고 있는 공통된 견해들을 단지 아주 논리정연하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가 저지른 오류들의 원칙 및 방법적 기초들을 좀더 자세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얼핏 보기에는, 협동생산의 필연적인 발전에 관한 로슈꼬프의 논거는 그 자신의 독창적인 견해인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생산의 집중화 및 인민의 프롤레타리아화 현상이 어쩔 수 없이 증가할 것이라고 믿으면서, 그와 동시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앞서 우선 생산자 협동조합들이 지배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사회주의자들을 우리는 결코 어디서도 만나 본 적이 없다. 처음의 두 선행 조건들을 통합하는 것은 실제 경제 발전의 과정 속에서는 머리 속에서보다도 훨씬 더 어려운 것이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맨 마지막 선행 조건은 언제나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보다 더 전형적인 편견을 심어 주고 있는 처음 두 개의 "선행 조건들"을 취급해 보고자 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생산의 집중화, 기술의 발전, 그리고 대중 속에서의 의식의 성장은 사회주의를 위한 필수적인 선행 조건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들은 동시에 발생하며, 따라서 각자 서로 다른 과정을 상호 촉진시킬 뿐만 아니라 또한 서로를 억제하고 제한시켜 주는 것이다. 이 과정들 중 어느 하나가 좀 더 높은 수준에 위치해 있을 경우 그것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나머지 과정들이 어느 정도 일정한 수준으로 발전하도록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어느 한 과정의 완전한 발전은 나머지 다른 과정들의 완전한 발전과 양립할 수 없다.

의심할 여지없이 기술 발전의 이상적인 극한점은, 자연계라는 모태로부터 원료를 추출해서 그것을 완성된 소비재의 형태로 인간의 발 아래 던져 놓은 단일한 자동화 생산 장치에 있다. 만일 자본주의 체제의 존속이 계급관계 및 그것으로부터 발생하는 혁명적 투쟁에 의해서 제한되지 않는다면, 기술은 자본주의 체제의 틀 내에서 단일한 자동생산의 그러한 이상에 근접해 감으로써 자본주의 자체를 자동적으로 폐기시킬 것이라고 추측할 근거가 어느 정도 있을지도 모른다.

경쟁의 법칙으로부터 발생하는 생산의 집중화 현상은 그 자체로 전 인민의 프롤레타리아화를 촉진시키는 내재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 경향을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경우, 자본주의가 자신의 이상적인 종말을 맞이하기까지 계속해서 자신의 과제를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도 일리가 있을 것이다. 즉, 만일 프롤레타리아화 과정이 혁명에 의해서 중단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일정한 세력 관계가 존재하는 이상, 자본주의가 국민의 대다수를 감옥과도 같은 막사에 수용된 노동 예비군으로 전락시켜 버리기 훨씬 이전에 혁명은 이미 불가피한 것으로 등장할 것이다.

더구나, 일상적인 투쟁의 경험과 사회주의자 당의 의식적인 노력 덕택에 의심할 나위 없이 의식은 계속 성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의 성장 과정을 따로 분리시켜 생각할 경우, 민중의 대다수가 노동조합과 정치조직에 포섭될 때까지, 그리고 그렇게 해서 정신적 유대감과 단일한 목적으로 단결될 때까지 계속 의식이 성장해 갈 것이라고 상상할 수도 있다. 만일 실제로 이러한 과정이 질적인 변화 없이 단지 양적으로만 확대되어 간다면, 사회주의는 아마도 21세기나 22세기쯤 돼서 '시민의 만장일치의 결의'라는 의식적인 행위에 의해서 평화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요점은, 사회주의를 위해서 역사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과정들이 서로 고립적으로 발전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제약적이고 어떤 일정한 단계에 도달해서는 많은 상황 변수를 매개로 해서 질적인 변화를 겪는다는 사실에 있다. 더구나 그러한 질적 변화의 단계는 이 과정들의 수학적 극한점과는 전혀 동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이 과정들의 복합적인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그러한 질적인 변화는 우리가 통상 사회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끝으로, 제일 나중에 언급된 과정, 즉 의식의 성장 과정에 대해서 살펴보자. 우리가 알다시피, 이 과정은 학술 활동들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는 프롤레타리아를 50년이나 백 년 아니면 오백 년 동안이라도 인위적으로 붙잡아 매두는 것이 가능할 법하다. 의식의 성장은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의 다양한 일상 생활 과정에서,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계급투쟁을 기반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역으로,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의식의 성장은 이러한 계급투쟁을 변화시킨다. 즉, 계급투쟁에 보다 심도 있고 보다 합목적적인 성격을 부여하게 되는데, 여기에 맞서 지배계급도 적극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부르조아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은 대기업들이 산업 전 분야를 장악하기 시작하기 훨씬 이전에 그 결말을 볼 것이다.

물론, 정치적 의식의 성장이 프롤레타리아의 수의 증가에 달려 있음은 사실이며, 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프롤레타리아의 수가 부르조아 반혁명의 저항을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많아야 함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인구의 '압도적인 다수'가 프롤레타리아이어야만 하고 프롤레타리아 중의 '압도적인 다수'가 의식적인 사회주의자이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계급의식으로 무장된 프롤레타리아 혁명 진영이 자본의 반혁명 진영보다 강할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 반면, 인구 중에서 중간적이거나 자신이 없는 계층 및 무관심한 계층은 유보적인 입장을 취할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강력한 프롤레타리아 독재 체제는 그러한 계층들을 반혁명 쪽으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혁명 쪽으로 끌어들이게 될 것이다. 당연히 프롤레타리아 정책은 이 점을 의식적으로 고려해야만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농업에 대한 공업의 헤게모니 및 농촌에 대한 도시의 지배를 전제로 한다.


이번에는 사회주의의 제반 선행 조건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그리고 보다 복합적으로 검토해 보자.

1. 사회주의는 평등한 분배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또한 계획 생산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회주의, 즉 대규모 협동생산 방식은 생산력의 발전이 소기업보다 대기업이 훨씬 더 생산적인 단계에 도달했을 때만 비로소 가능해진다. 대기업들이 소기업들보다 큰 비중을 차지해 감에 따라, 즉 기술이 더욱 더 진보해 감에 따라, 사회화된 생산방식은 더욱 더 경제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계획생산에 기초한 평등한 분배의 결과로서 인구 전체의 문화적 수준은 더욱 향상될 것임에 틀림없다.

사회주의를 위한 이러한 객관적인 첫 번째 선행 조건은 이미 오래 전부터-사회적 노동 분업이 매뉴팩처에서의 노동 분업을 초래한 때부터-존재해 오고 있다. 그리고 매뉴팩처가 공장, 즉 기계 생산으로 대체된 후부터는 이러한 선행 조건은 훨씬 더 큰 범위에서 존재하게 되었다. 대기업 방식은 더욱 더 유리해져 갔으며, 이 사실은 또한 그러한 대기업들의 사회화를 통해서 사회의 부를 더욱 더 증대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수공업적인 작업장이 수공업 종사자들의 공동 소유로 전환될 경우, 노동자들은 단지 약간의 여유만이 생기게 될 것임이 명백하다. 반면, 매뉴팩처들을 거기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공동 소유로 전환하거나 또는 공장들을 그렇게 할 경우-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서, 대공장들의 모든 생산수단을 국민 전체의 손에 넘겨 줄 경우-국민의 물질적 수준은 명백히 향상될 것이다. 그리고 대규모 생산방식이 더욱 더 높은 단계에 도달해 있을수록 이러한 향상의 폭은 더욱 커질 것이다.

사회주의 문헌들 속에서는 영국의 하원의원 벨러스(Bellers)(존 벨러스는 하원 의원이 아니라 퀘이커교를 신봉한 지주였다. 그는 하원에 대한 청원의 형태로 자신의 계획을 발표했다.)의 예가 자주 인용되곤 하는데, 그는 1696년, 즉 바뵈프의 음모보다도 1세기 전에 하원에다 독자적으로 자신들의 필요한 모든 물품들을 생산해 낼 수 있는 협동적인 단체들의 설립안을 제출한 사람이다. 그의 제안에 따른다면, 각 생산자 조합은 200명~300명 사이의 인원들로 구성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여기서 그의 주장을 검증할 수 없으며, 또 그것은 우리의 목적에 전혀 필요하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집산 경제가 이미 17세기 말에 벌써 -비록 그것이 단지 100, 200, 300 또는 500명 단위의 집단으로 구상되었다 할지라도 - 생산의 관점에서 볼 때 보다 유리 한 것으로 여겨졌다는 사실이다.

19세기 초에 푸리에(Fourier)는 생산자·소비자 연합체인 '팔랑스떼르'(phalanstere;공상적 공산주의 형태의 집산촌 - 역주)에 대한 계획을 설계했는데, 여기서는 구성 인원의 수가 2,000명~ 3,000명 사이로 불어나 있다. 푸리에의 이러한 계산이 정확한지 어떤지는 결코 판별되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간에, 그 때까지의 매뉴팩처의 발전은 그에게 벨러스의 구상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큰 경제적 집산체의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명백하게도, 존 벨러스의 공동체와 푸리에의 팔랑스떼르 양자 모두는 그 성격상 무정부주의자들이 꿈꾸고 있는 자유로운 경제 공동체와 아주 흡사하다. 그리고 거기에 담겨 있는 공상적인 이념은 그러한 공동체들이 '불가능'하거나 '인간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미국에 존재하고 있는 공산주의적인 공동체들은 그러한 것들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시켜 준다-오히려 그들이 주장하는 공동체들은 경제 발전이 이루어 놓은 진보에 비추어 볼 때 100년 내지 200년 정도 뒤 처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노동의 사회적 분업의 발달이,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계적 생산방식의 발달이, 결국 다음과 같은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오늘날 대규모의 집단적 생산방식의 장점들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협동체는 바로 국가라는 것이다. 더욱이 사회주의적인 생산방식은 정치적․경제적 이유들로 인해서 개별 국가들의 제한적인 범위 내에 갇혀 있을 수가 없다.

독일의 사회주의자로서 마르크스의 관점을 채택하지 않았던 아틀란티쿠스(Atlanticus:G. Jaeckh - 영역자 주)는 19세기 말에 독일과 같은 단위 국가들 내에 사회주의 경제를 적용시킬 경우 발생하게 될 장점들을 계산해 보았다. 아틀란티쿠스는 결코 유별난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생각은 전반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의 일상적인 순환 과정 내에서 이루어졌을 뿐이다. 그는 현대의 권위 있는 농업학자들과 기술자들의 저술에 근거해서 자신의 논거를 세웠다. 이것은 그의 논거를 약화시켜 주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강화시켜 주었다고 볼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부당한 낙관주의를 멀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간에, 아틀란티쿠스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즉, 사회주의 경제를 알맞게 조직화함으로써, 그리고 1890년대 중반의 기술적 자원들을 활용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수입은 2배 내지 3배로 증가할 수 있으며 노동 시간은 반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경제적 장점들을 최초로 입증해 준 이가 아틀란티쿠스였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아틀란티쿠스의 사회주의적인 부기법보다도 훨씬 더 설득력 있게 사회주의의 필연성을 입증시켜 주고 있는 것은 바로 대기업들 내에서의 엄청난 노동생산성과 또한 생산의 계획화에 대한 필연성이다. 아틀란티쿠스의 공헌이라면 단지 그가 이러한 장점들을 개략적인 수치로 나타내 주었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해 온 것들로부터 당연히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즉, 인간의 기술 수준이 앞으로 더욱 발전할수록 사회주의는 더욱 더 자본주의보다 유리한 것으로 부각될 것이다. 그리고 집단 생산을 이룩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기술적 선행 조건들은 이미 백년이나 이백 년 전부터 존재해 오고 있다. 더구나 현 시점에서 사회주의는 일국적인 틀 내에서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나라들을 포괄하는 세계적인 차원에서도 기술적으로 유리한 것이 되고 있다.

사회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지닌 단순한 기술적인 장점들만으로는 충분하지가 못하다.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서 대규모 생산방식의 장점들을 입증시켜 온 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인 것이다. 벨러스의 생각이나 푸리에의 생각은 결코 실천되지 않았던 것이다. 대체 왜 그랬을까? 그것은 바로 당시에는 그들의 생각을 실천할 준비가 되어 있고 또한 그럴 능력이 있는 사회 세력이 결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 여기서는 사회주의의 생산·기술상의 선행 조건들로부터 사회․경제적인 선행 조건들로 이야기를 바꿔 보자. 만일 우리가 여기서 계급적 적대 관계로 분열되어 있는 사회가 아니라 어떤 동질적인 공동체, 즉 의식적으로 자신의 경제적 형태를 선택할 수 있는 동질적인 사회를 취급하고 있다면, 사회주의의 건설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의심할 여지없이 아틀란티쿠스의 계산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아틀란티쿠스 자신도 통속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에 실제로 자신의 작업을 그러한 목적을 위한 것으로 여겼다. 오늘날 그 같은 견해는 단지 어느 한 개인이나 회사의 사적 영리추구 활동의 한계 내에서나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기계류나 원료, 새로운 형태의 경영이나 보수 체계 등의 도입과 같은 개별적인 경제 개혁안은, 그것이 가져다주는 상업적 이점이 입증되기만 한다면, 언제나 기업 소유주들에 의해 채택될 것이며, 또한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어떠한 잘못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사회 전체의 경제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한, 그러한 관점만으로는 충분하지가 못하다. 여기에서는 대립적인 이해관계들이 서로 상충하고 있는 것이다. 즉, 어느 한 계급에 유리한 것이 다른 계급에게는 불리한 것으로 되는 것이다. 어느 한 계급의 이기주의는 다른 계급의 이기주의에 적대적인 것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사회 전체에 불리한 것으로도 작용한다. 그러므로,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적대적인 계급들 중에서 자신의 객관적인 조건 때문에 사회주의의 실현에 관심을 갖는 사회 세력이 존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세력은 사회주의의 실현에 적대적이며 저항하는 다른 세력을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과학적 사회주의가 이룩한 중요한 공헌들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점에 있다. 즉, 과학적 사회주의는 그 같은 사회세력이 프롤레타리아임을 이론적으로 밝혀 놓았다. 그와 동시에 또한 과학적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와 더불어 필연적으로 성장하는 프롤레타리아는 오직 사회주의 안에서만 구원받을 수 있으며 프롤레타리아가 처한 총체적인 조건은 그들로 하여금 사회주의를 지향하도록 만들고 사회주의 이론은 궁극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의 이데올로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틀란티쿠스가 얼마나 후진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단언했던 것이다: “생산수단을 국가의 수중에 이전시킴으로써 일반적인 복지뿐만 아니라 노동 시간의 단축도 확보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이상 자본의 집중 및 사회의 중간 계층들의 소멸에 관한 이론이 사실로 판명되는가 또는 그렇지 않게 되는가 하는 문제는 상관없는 일이다.”

아틀란티쿠스에 따른다면, 사회주의의 장점들이 일단 입증된 이상, "경제 발전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에, 희망을 거는 것은 쓸모없는 일이며 사람들은 사적 생산 제도로부터 국가 또는 사회화된 생산 제도로의 이행을 위해서 광범위한 연구를 하고 또한 포괄적인 철저한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아틀란티쿠스, 『미래의 국가』, 젤로(Dyelo ; 일 - 역주) 출판사, 뻬쩨르부르끄, 1906, pp. 22~23.)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순전히 비판적이기만 한 전술을 반박하면서 그리고 사회주의로 전환할 준비를 즉시 '시작'할 것을 촉구하면서, 아틀란티쿠스는 그렇게 하는 데 필요한 권력을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아직 장악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빌헬름 2세를 위시해서 뷜로프(Bülow)및 독일 의회의 다수파가 그들의 손에 권력을 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를 도입할 의사가 티끌만치도 없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푸리에의 도식들이 복위된 부르봉(Bourbon) 왕가에게 전혀 설득력이 없었듯이, 마찬가지로 아틀란티쿠스의 도식들은 호엔쫄레른(Hohenzollern) 왕가에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푸리에는 경제 이론의 분야에 대한 열정적인 환상에 입각해서 자신의 정치적 공상주의를 내세웠다. 반면에 아틀란티쿠스는 그 이상의 공상적인 정치학을 가지고, 설득력 있으면서도 냉담하고 속물적인 부기 활동에 근거해서 자신의 의견을 내세웠던 것이다.

사회주의를 위한 두 번째 선행 조건이 실현될 수 있기 위해서는 사회적 분화 과정은 어떤 수준에 도달해야만 하는가? 다시 말해서, 프를로레타리아의 상대적인 수적 우세는 어느 정도가 되어야만 하는가? 인구의 절반 또는 3분의 2 아니면 10분의 9가 되어야만 할까? 여기서 단순히 산술적인 한계를 규정지으려 노력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무익한 작업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만일 우리가 그러한 도식적인 노력을 한다면, 우리는 누가 ‘프롤레타리아’ 의 범주에 속하는가 하는 질문을 해결해야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우리는 반(半)프롤레타리아적인 반(半)농민들로 구성된 광범위한 계층을 포함시켜야 할 것인가? 또한 도시 프롤레타리아 출신의 실업자 집단들도 포함시켜야할까?(이들의 일부는 도둑이나 거지와 같은 기생적인 룸펜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하며, 또 다른 일부는 경제 체제 전체에 대해서는 기생적인 역할을 하는 소매 상인으로서 도시의 거리에 나서게 된다.) 결국 이러한 문제는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닌 것이다.

프롤레타리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적으로 그들이 대규모의 생산활동에서 수행하는 역할에 달려 있다. 부르조아지는 정치적 지배를 위한 자신들의 싸움에서 그들이 지니고 있는 경제력에 의존한다. 정치 권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기에 앞서, 부르조아지는 나라의 생산수단을 자신의 손아귀에 집중시킨다. 이것이 바로 사회 내에서 그들이 지니는 특별한 비중을 결정짓는 것이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는 그 모든 주마등과도 같은 협동생산의 환상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이 발생할 때까지는 여전히 생산수단을 박탈당한 채로 있게 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의 사회적 위력은 부르조아지의 손안에 있는 생산수단들이 오직 프롤레타리아에 의해서만 가동될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나온다. 부르조아지의 관점에서 본다면, 프롤레타리아 역시 생산수단들 중의 하나로서 다른 것들과 결합해서 하나의 단일화된 기계장치를 구성하는 일종의 부속품일 뿐이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는 이러한 기계장치 내의 유일한 비자동적인 부분으로서, 아무리 부르조아지가 애를 쓴다 하더라도 결코 자동인형의 상태로 축소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의 이러한 객관적인 조건은 부분 파업이나 총파업을 통해서 사회 전체의 경제적 기능을-부분적으로 또는 전체적으로-마음대로 차단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해 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로 인해서, 프롤레타리아의 중요성은 명백히-그들의 수가 고정되어 있다고 가정할 경우-그들이 가동시키는 생산력의 양과 비례해서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큰 공장에서 일하는 어느 한 명의 노동자가 다른 모든 것들이 동일한 경우 수공업에 종사하는 어느 한 명의 노동자보다 더 큰 사회적 비중을 차지하며, 도시 노동자가 농촌의 노동자보다 더 큰 사회적 비중을 갖는 것이다. 즉, 프롤레타리아의 정치적 역할은, 대규모 생산이 소생산을 지배함에 따라, 공업이 농업을 지배하고 도시가 농촌을 지배함에 따라, 더욱 더 중요한 것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영국이나 독일의 프롤레타리아가 전체 인구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에서 현재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가 차지하는 비율과 동일한 수준에 있던 시기의 그 나라들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당시에 영국이나 독일의 프롤레타리아는 오늘날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가 행하고 있는 것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객관적인 중요성으로 미루어 보아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미 제2장에서 보았던 것처럼, 도시에 관해서도 동일한 설명이 적용될 수 있다. 독일에서 도시의 인구가 전체 인구 중의 15%만을 차지하고 있던 당시에-오늘날 러시아가 그와 동일한 수준에 와 있다 -독일의 도시들은 나라의 정치 및 경제 활동에 있어서 오늘날 러시아의 도시들이 수행하고 있는 것과 같은 역할을 결코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규모의 공업 시설 및 상업 시설들이 도시에 집중됨으로써, 그리고 또한 철도망을 통해서 도시들과 시골들이 연계됨으로써 러시아의 도시들은 전체 인구에 대한 도시 거주자들의 단순한 수적 구성비율을 훨씬 능가하는 중요성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즉, 러시아 도시들의 성장은 그 중요성에서 도시 거주자들의 단순한 수적 증가를 훨씬 앞지르고 있고, 도시 인구의 증가율은 나라 전체의 자연적 인구 증가율을 앞지르고 있는 것이다.‥‥‥ 1848년 당시 이태리의 경우, 수공업자들의 수효는-프롤레타리아들뿐만 아니라 독립 장인들도 포함해서-전체 인구의 약 15% 정도였다. 즉, 오늘날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와 수공업자들이 차지하는 비율과 동일한 수준이거나 그 이상의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행한 역할은 현재 러시아의 공업 프롤레타리아가 행한 역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정치 권력을 쟁취할 시점이 되려면 전체 인구 중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 되어야만 하는가를 미리 결정하려는 노력이 무익한 것임을 명백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노력 대신에, 우리는 현재 선진국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차지하고 있는 상대적인 수적 강세를 보여 주는 일차적인 수치들을 몇 개 제시하고자 한다. 1895년 독일에서 일정한 직업을 가진 인구는 2,050만 명이었다. (이 숫자에는 군인과 국가 공무원, 그리고 일정한 직업이 없는 사람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 중에서 프롤레타리아는 1,250만 명이며(농업, 공업, 상업 분야의 임노동자들 및 하인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 가운데 농업과 공업 노동자들의 수효는 1,075만 명이다. 나머지 800만 명중의 많은 부분도 실제로는 프롤레타리아들로서 가내 공업이나 가족 단위의 작업장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농업 분야의 임노동자들만을 따로 파악할 경우 그 수효는 575만 명이다. 그리고 농업인구는 이 나라의 전체 인구 중에서 36%를 차지하고 있다. 거듭 반복해서 말하건대, 이 수치들은 1895년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그 후로 11년이 흘렀으므로, 그 사이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을 것임에 틀림없다.-즉, 1895년과 비교해서, 농촌 인구에 대한 도시 인구의 비율이 증가했을 것이며(1882년에 농촌 인구는 전체의 42%였다), 농업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공업 프롤레타리아의 비율이 증가했을 것이고, 또한 마지막으로 공업 노동자 1명당 차지하는 생산 자본의 양도 증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1895년을 대상으로 한 수치들조차도 독일의 프롤레타리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 나라의 지배적인 생산력을 이끌어 왔음을 보여 주고 있다.

700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 벨기에는 전적으로 공업 국가이다. 직업을 갖고 있는 인구 중에서 100명당 41명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공업 분야에 고용되어 있으며 단지 21명만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형태이다. 불규칙적인 보수를 받고 있는 300만 명의 고용인들 가운데 약 180만 명이, 즉 60% 가량이 프롤레타리아이다. 만일 첨예하게 분화되어 있는 프롤레타리아의 수효에 그들과 사회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계층들, 즉 소위 외형상으로만 독립적일 뿐 실제로는 자본에 예속되어 있는 "독립" 생산자들과 하급 장교들이나 사병들 등을 추가한다면 이 수치는 훨씬 더 의미심장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경제의 공업화 과정 및 인구의 프롤레타리아 과정과 관련지어서 제일 먼저 주목해야 할 나라는 틀림없이 영국일 것이다. 이 나라의 경우 1901년에 농림 어업에 종사하는 인구의 수는 230만 명이었다. 반면, 상공업 및 운수업에 고용된 인구의 수는 1,250만 명이었다. 우리가 보다시피, 유럽의 주요 국가들의 경우 도시의 인구가 수적으로 농촌의 인구를 압도하고 있다. 그러나 도시 인구의 이처럼 엄청난 압도적인 양상은 단지 그들이 만들어 내는 막대한 양의 생산력뿐만 아니라 그들의 질적인 인적 구성에도 근거하는 것이다. 도시는 농촌으로부터 가장 활력적이고 지적이며 능력 있는 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을 통계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단지 도시 인구와 농촌 인구의 연령 구성을 비교해 보면 간접적인 증거가 나타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도 그 자체로 어떤 의의를 지니고 있다. 1896년 독일의 경우 농업 인구와 공업 인구는 각각 800만 명으로 추산되었다. 그러나 연령 분포에 따라 인구를 분할해 보면, 14세와 40세 사이에 위치하는 활동력 있는 인구의 경우, 도시가 농촌보다 100만 명 이상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은 우선적으로 농촌에 남는 인구는 '노인과 어린이'들임을 보여 주고 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로부터 우리는 결국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즉, 경제 발전은 -공업의 성장, 대기업들의 증가, 도시의 성장, 프롤레타리아 일반 및 특히 농업 프롤레타리아의 성장 등- 정치 권력을 위한 프롤레타리아의 투쟁뿐만 아니라 그러한 권력의 정복을 위한 싸움터를 이미 마련해 놓고 있는 것이다.


3. 마지막으로, 사회주의의 세 번째 선행 조건인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자. 정치는 사회주의의 객관적인 선행 조건들이 주관적인 선행 조건들과 서로 맞물리는 분야이다. 어떤 일정한 사회․경제적 조건들 하에서 어떤 하나의 계급은 스스로 일정한 목적 -정치 권력의 쟁취 -을 추구하게 된다. 즉, 그 계급은 자신의 힘을 결집시키고 적의 힘을 가늠해 보며 상황을 평가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조차도 프롤레타리아는 절대적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주관적인 요인들 -의식, 각오, 선제주도력(이니셔티브) 등의 발전 과정 역시 자신의 고유한 논리를 지니고 있다 -외에도, 프롤레타리아는 자신의 정책을 수행할 때 지배계급의 정책이나 기존의 국가 제도들(군대와 계급적인 도구로서의 학교, 국가, 교회 등과 같은 것들), 그리고 국제 관계 등과 같은 많은 객관적인 요인들과 부딪혀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주관적인 조건들 - 사회주의혁명을 위한 프롤레타리아의 각오-을 다뤄 보고자 한다. 물론, 기술 수준이 사회적 노동생산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사회주의 경제를 보다 유리한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기술에 기초한 사회적 분화가 수적인 측면이나 경제적인 역할에 있어서 주된 계급으로 부각되는, 그리고 객관적으로 사회주의와 이해를 같이하는 프롤레타리아를 창출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이 계급이 자신의 객관적인 이익을 의식하는 것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프롤레타리아가 사회주의 말고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어떠한 다른 출구도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나. 또한 이 계급이 단결해서 충분히 강력한 군대를 이룸으로써 공공연한 전투를 통해서 정치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프롤레타리아가 이러한 방식으로 혁명을 준비할 필요성을 부인한다면 그것은 이제는 어리석은 태도일 것이다. 오직 구태의연한 블랑끼스트들만이 대중과 유리되는 고립적인 방식으로 형성된 음모적인 조직들의 지도 하에 혁명이 성공하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그들과는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는 무정부주의자들은 대중의 자발적이고 원초적인 폭발에 희망을 걸겠지만, 그러한 자생적인 폭발이 어떻게 끝날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으리라. 이들과는 달리,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권력의 쟁취를 혁명적인 계급의 의식적인 행동으로서 이야기한다.

그러나 많은 사회주의적인 관념론자들은(즉, 모든 것을 형이상학적으로 파악하는 자들은) 프롤레타리아가 도덕적으로 재생된다는 의미로서의 사회주의를 노동자 대중에게 이야기하려 든다. 즉, 프롤레타리아와 "인류" 전체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들의 낡은 이기주의적인 본성을 벗어 던져야 하며 애타주의(愛他主義)가 사회 생활을 지배하는 원리로 되어야 한다는 등의 소리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 같은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아직 요원한 일이며 '인간 본성'은 대단히 느리게 변화하기 때문에, 사회주의는 그 말대로 라면 수세기 뒤에나 가능할 법하다. 이러한 관점은 아마도 대단히 현실적이고 진화론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단지 얄팍한 도덕론 이외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사회주의자적인 심리가 사회주의가 도래하기 이전에 발전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다시 말해서, 대중이 자본주의하에서 사회주의자적인 심리를 습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사회주의를 향한 의식적인 노력을 사회주의자적인 심리와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경제 활동에 이기주의적인 동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다. 반면 사회주의를 향한 노력과 투쟁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심리로부터 발생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심리와 무계급적인 사회주의자적 심리 사이에 아무리 많은 접촉점들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어떤 깊은 심연이 둘을 여전히 갈라놓고 있는 것이다.

착취에 맞선 공동 투쟁은 이상주의, 동지적 유대, 그리고 자기희생의 찬란한 새싹들을 돋아나게 한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생존을 위한 개인적인 투쟁, 언제나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궁핍의 심연, 노동자들 자체 내의 계층적 분화, 아래로부터 나오는 무지한 대중들의 압력, 그리고 대중을 타락시키는 부르조아 정당들의 영향력 등은 이러한 찬란한 새싹들이 충분히 성장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적인 노동자는 그가 여전히 속물적인 이기주의자로 남아있을지라도, 그리고 '인간적인' 가치에서 부르조아 계급의 평균적인 대표치를 능가하지 못할지라도, 경험을 통해서 그의 가장 단순한 요구나 자연적인 욕망조차도 오직 자본주의 체제의 몰락 위에서만 충족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상주의자들은 사회주의에 값할 만한 먼 훗날의 미래 세대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데, 그것은 기독교인들이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구성원들에 대한 모습을 그려내는 일과 하등의 차이도 없는 행위이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의 심리 상태가 어떠한 것이었든지 간에 -사도행전을 통해서 우리는 공동 재산의 횡령에 관한 이야기들을 알고 있다-그리스도교는 더욱 더 확산되어 감에 따라 결국 국민 전체의 영혼을 소생시키는 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타락하였으며 물질주의적이고 관료제적인 것으로 변질되었던 것이다. 즉, 박애적인 상호 가르침의 실천으로부터 교황제일주의로, 그리고 방랑의 구걸 고행으로부터 수도원의 기생주의로 변질하였던 것이다. 요컨대, 그리스도교는 자신이 성장해 온 환경의 사회적 조건들을 지배하는 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 스스로가 그러한 환경들에 의해서 예속 당했던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의 사제들과 교부들의 능력이 모자랐거나 탐욕스러웠기 때문에 야기된 결과가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의 심리는 사회적 생활과 노동의 제반 조건들에 종속되어 있다는 냉혹한 법칙으로부터 기인된 결과였다. 그리고 교부와 사제들은 몸소 이러한 종속의 법칙을 입증시켜 주었던 것이다.

만일 사회주의가 기존 사회의 한계 내에서 새로운 인간성을 창조해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그것은 도덕론자들의 새로운 형태의 공상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사회주의는 사회주의에 대한 선행조건으로서의 사회주의자적인 심리를 창조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주의자적 심리에 대한 선행 조건으로서의 사회주의적인 생활 조건을 창조해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