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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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이라 밤 하늘에
달은 높이 켠 등불 같아라
임아 홀로 가신 임아
이 몸은 어찌하라 홀로 두고
임만 혼자 훌훌히 가셨는고

아으 피 맺힌 내 마음
피리나 불어 이 밤 새우리
숨어서 밤에 우는 두견새처럼
나는야 밤이 좋아 달밤이 좋아

이런 밤이사 꿈처럼 오는 이들
달을 품고 울던 '벨레이느'
어둠을 안고 간 '에세이닌'
찬 구들 베고 눈 감은 古月 尙火…

낮일랑 게인 양 엎디어 살고
밤일랑 일어나 피리나 불고지고
어두운 밤의 장막 뒤에 달 벗삼아
임이 끼쳐주신 보밸랑 고이 간직하고
피리나 불어 설운 이 밤 새우리

다섯 손가락 사뿐 감아 쥐고
살포시 혀를 대어 한 가락 불면
은쟁반에 구슬 굴리는 소리
슬피 울어 예는 여울물 소리
왕대숲에 금바람 이는 소리…

아으 비로소 나는 깨달았노라
서투른 나의 피리소리이언정
그 소리 가락가락 온 누리에 퍼지어
메마른 임의 가슴속에도
붉은 핏방울 방울 돌면
찢기고 흩어진 마음 다시 엉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