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55년)/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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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記


東柱兄이 악착스런 원수의 형벌에 못견디어, 차디 찬 돌 마루 바닥에서 차마 감기우지 않는 눈을 감고 마지막 숨을 거둔지 벌써 十년이 된다. 이 十년동안 우리의 뼈를 저리게 하는 그의 詩는 조국의 문학사를 고치게 하였고, 조국의 문학을 세계적인 물줄기 속으로 이끌어 넣는데 자랑스런 힘이 되었다. 독재와 억압의 도가니 속에서 가냘픈 육신에 의지한 항거의 정신, 아니 인간으로서의 처음이자 마지막의 권리이며 재산인 자유를 지키고자 죽음을 걸고 싸운 레지스땅스의 문학이 어찌 유우롭의 지성인들에게만 허락된 특권일 수 있었으랴!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숨맥히는 현실 가운데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었던」 東柱는 이 세상에 태여 나면서 詩人이었기에 「詩人이란 슬픈 天命인줄 알면서도 한줄 詩를 적어」야 했다. 아니 「한줄 詩를 적」는다기보다 뼈를 꺾어 골수에서 솟아나는 髓漿으로 눈물없는 통곡을 종이에 올린 그의 詩는 진정 「슬픈 族屬」의 血書였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던 東柱의 詩魂은 「파아란 하늘」에서 독재와 억압의 거센 「바람에 스치우」며 조국과 자유를 밤새워 지키는 「별」을 노래하였다. 「어느 욕된 王朝의 遺物」인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을 「밤이면 밤마다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으면서 「내일이나 모래나 그 어느 즐거운 날」을 기다리던 그는, 드디어 「불 도적한 죄로 목에 맷돌을 달고 끝없이 沈澱하는 푸로메디어스」의 뒤를 따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괴로웠던 사나이, 幸福한 예수·그리스도에게 처럼 十字架가 許諾된다면, 목아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어가는 하늘밑에 조용히 흘리」기를 각오한 그는, 「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最後」의 날에 「눈물과 慰安으로 잡는 最初의 握手」를 남기고 「眞正한 故鄕」을 찾어 「白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故鄕에 가자」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 어둠에서 胚胎되고 이 어둠에서 生長하여서, 아직도 이 어둠 속에 生存」하는 자기자신을 증오하고 저주하지는 않았다. 오직 그가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은 「밤」과 「어둠」과 「타협」과 「굴복」이었다. 그렇다고 그는 또한 그가 그렇게 기다리고 꼭 오리라고 굳게 믿던 「아침」과 「봄」을 소경처럼 덮어놓고 믿는 범용한 詩人은 아니었다. 東柱의 민첩한 감각과 투명한 예지는 우리로 하여금 일찌기 우리 겨레가 가져보지 못했던 놀라운 靈感의 詩人을 얻게 하였다. 보라! 다음에 드는 이 무서운 예언을.

이제 닭이 홰를 치면서 맵짠 울음을 뽑아 밤을 쫓고 어둠을 즛내몰아, 동켠으로 훤—히 새벽이란 새로운 손님을 불러온다 하자. 하나 輕妄스럽게 그리 반가워 할것은 없다. 보아라 假令 새벽이 왔다 하더라도 이 마을은 그대로 暗澹하고 나도 그대로 暗澹하고 하여서, 너나 나나 이 가랑지 길에서 躊躇 躊躇 아니치 못할 存在들이 아니냐. 이 얼마나 놀라운 예언이냐! 천성을 詩人으로 태여난 그는 「電信柱가 잉잉 울어 하느님의 말씀」을 정녕 들을 수 있었던가 보다.

다구어오는 새 시대를 믿고 앞날의 역사를 내다보는 靈感의 詩人 尹東柱, 모든 詩人들이 붓을 꺾고 문학을 포기하며 현실과 담을 쌓아 헛된 한숨만 뿜고 있을 때에, 「詩人이란 슬픈 天命인줄 알면서도」 오직 혼자서 꾸준히 「주어진 길을 걸어」온 외로웠던 詩人 尹東柱, 조국을 팔아 영예와 지위를 사고 자유를 바꾸어 굴욕과 비굴을 얻어 날뛰는 반역자들이 구데기처럼 들끓는 시궁창 속에 오직 한 마리 빛나는 은어인양 淸新하였던 詩人 尹東柱, 급기야는 조국과 자유와 문학을 위하여 「꽃처럼 피여나는 피를 어두어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며 원수의 땅위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 殉節의 詩人 尹東柱. 이리하여 그는 드디어 원수의 발굽에 짓밟혔던 日帝末期의 조국의 문학사를 빛나게 하는 역사적 詩人으로써 움직이지 못할 자리를 잡게 되었고 독재와 억압의 횡포한 폭력에 끝까지 항거하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하여 싸운 온 세계의 레지스땅스의 대열 가운데에 조국의 문학이 어엿이 끼울 자리를 차지하는 영광을 누리게 하였다.

슬프오이다 東柱兄. 兄의 노래 마디마디 즐겨 외우던 「새로운 아침」은, 兄이 그 쑥스러운 세상을 등지고 떠난지 반년 뒤에 찾아왔고, 兄(형)의 「별」에 봄은 열번이나 바뀌어젔건만, 슬픈 조국의 현실은 兄의 「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게 하였을 뿐 「새로운 아침 우리 다시 情다웁게 손목을 잡」자던 친구들을 뿔뿔이 흩어버리고 말았읍니다. 그러나 兄의 「이름짜 묻힌 언덕 우에는 자랑처럼 풀이 무성」하였고, 兄의 노래는 이 겨레의 많은 어린이 젊은이 들이 입을 모두어 읊는 바 되었읍니다. 조국과 자유를 죽음으로 지키신 兄의 숭고한 정신은 겨레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뼈에 깊이 사무쳤삽고, 조국과 자유와 문학의 이름으로 불어 당신의 이름은 영원히 빛나오리니 바라옵기는 東柱兄, 길이 명복하소서. 焚香.

東方의 위대하신 先聖이 우리에게 가르치시와 「哀而不傷」이라 하시었다. 이제 故 尹東柱兄의 十週忌를 맞이하매, 우리의 文學을 위하여 못견디게 아까운 마음 禁치 못하며, 故人의 親知들의 뼈를 여위는 듯한 슬픔 또한 둘곳 없으나, 이 한卷의 遺稿集을 세상에 내어 놓고, 이 한卷의 책이 우리 文學史의 空白을 메꾸는 唯一한 자랑임을 생각할 때에 「哀而不傷」이란 先聖의 가르치심에 충실하겠다기 보다 슬픈 마음을 눌러야겠다.

여기 모운 五部의 遺稿集은 우리가 오늘날 얻을 수 있는 그의 作品 全部이다. 第一部는 故人이 延禧專門學校 文科를 卒業할 무렵에 卒業을 記念코자 七十七部 限定版으로 出版하려던 自選 詩集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를 그대로 실었고, 第二部는 日本 東京時代의 作品인바 第一部 以後 約半年間에 쓴 것이다. 그 後의 作品은 모든 日記와 함께 日警에 被檢되었을 때에 押收되었으니, 오늘 날 아깝게도 찾을 길이 杳然하다. 第三部는 그의 習作期 作品集 「나의 習作期의 詩 아닌 詩」 및 「窓」의 二卷을 비롯한 詩稿를 整理하여 年代順을 逆으로 配列하였으며 그중에 年代가 記入되지 않은 作品은 適當하다고 認定되는 곳에 넣었다. 第四部는 童謠로써 역시 年代順을 逆으로 配列하였고, 第五部는 그의 散文을 作品年代에 關係없이 編輯하였다.

끝으로 이 全集을 欣快히 맡아 出版하여 주신 故人의 先輩이신 正音社 崔暎海 先生에게 感謝의 뜻을 이기지 못하는 바이며, 또 故人이 生前에 즐겨 거닐던 길목에 하루 빨리 詩碑가 서서 故人의 藝術과 精神을 길이 빛낼 날이 오기를 빌어 마지 않는다. 故人의 十週忌를 맞는 해 正月二十五日에 鄭炳昱은 焚香 哭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