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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독립신문/1896년/4월/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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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신문(獨立新聞)
1896년 4월 7일 화요일
36424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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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신문이 본국과 외국사정을 자세히 기록할 터이요, 정부 속과 민간 소문을 다 보고할 터이다. 정치상 일과 농사 장사 의술상 일을 얼만큼씩 이 신문상 매일 기록함. 값은 1년에 1원 30전, 한 달에 12전, 한 장에 동전 1푼. 독립신문 분국이 제물포, 원산, 부산, 파주, 송도, 평양, 수원, 강화 등지에 있다.

신문을 달로 정하든지 일년 간으로 정하여 사보고 싶은 이는 정동 독립신문사로 와서 돈을 미리 내고 성명과 집이 어디라고 적어 놓고 가면 하루 걸러 신문을 보내줄 터이니 신문 보고 싶은 이는 속히 성명을 보내기 바람.

물론 누구든지 물어볼 말이 있든지 세상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이 신문사로 간단하게 귀절 떼어서 편지하면 대답할 만한 말이든지 신문에 낼 만한 말이면 대답할 터이요, 내기도 할 터이니, 한문으로 한 편지는 당초에 상관 안함.

경향간에 물론 누구든지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이 이 신문을 가져다가 놓고 팔고자 하거든, 여기 와서 신문을 가져다가 팔면 열장에 여덟 장만 셈하고 백장에 여든 장만 셈함.

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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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독립신문을 오늘 처음으로 출판하는데 조선 속에 있는 내외국 인민에게 우리 주의를 미리 말씀하여 아시게 하노라.

우리는 첫째, 편벽되지 않는고로 무슨 당에도 상관이 없고, 상하귀천을 달리 대접하지 않고 모두 조선 사람으로만 알고, 조선만 위하며 공평히 인민에게 말할 터인데, 우리가 서울 백성만 위할 게 아니라 조선 전국 인민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지 대언하여 주려 함. 정부에서 하시는 일을 백성에게 전할 터이요, 백성의 정세를 정부에 전할 터이니 만일 백성이 정부 일을 자세히 알고 정부에서 백성의 일을 자세히 아시면 피차에 유익한 일만이 있을 터이요, 불평하는 마음과 의심하는 생각이 없어질 터임.

우리가 이 신문 출판하기는 취리하려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값을 헐(歇)하도록 했고, 모두 언문으로 쓰기는 남녀 상하귀천이 모두 보게 함이요, 또 귀절을 떼어 쓰기는 알아보기 쉽도록 함이다. 우리는 바른 대로만 신문을 할 터이기 때문에 정부 관원이라도 잘못하는 이 있으면 우리가 말할 터이요, 탐관오리들을 알면 세상에 그 사람의 행적을 폐일 터이요, 사사 백성이라도 무법한 일하는 사람은 우리가 찾아 신문에 설명할 터임. 우리는 조선

대군주 폐하와 조선정부와 조선인민을 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편당있는 의논이든지 한쪽만 생각하고 하는 말은 우리 신문상에 없을 터임. 또 한쪽에 영문으로 기록하기는 외국 인민이 조선 사정을 자세히 모르기 때문에 혹시 편벽된 말만 듣고 조선을 잘못 생각할까 보아 실상 사정을 알게 하고자 하여 영문으로 조금 기록함.

그렇기 때문에 이 신문은 똑 조선만 위함을 가히 알 터이요, 이 신문을 인연하여 내외 남녀 상하 귀천이 모두 조선일을 서로 알 터임. 우리가 또 외국 사정도 조선 인민을 위하여 간간히 기록할 터이니 그걸 인연하여 외국은 가지 못하더라도 조선 인민이 외국 사정도 알 터임. 오늘은 처음이기 때문에 대강 우리 주의만 세상에 고하고 우리 신문을 보면 조선 인민이 소견과 지혜가 진보함을 믿는다. 논설 그치기 전에 우리가

대군주 폐하께 송덕하고 만세를 부르나이다.

우리 신문이 한문은 안 쓰고 다만 국문으로만 쓰는 것은 상하귀천이 다 보게 함이다. 또 국문을 이렇게 귀절을 떼어 쓴 것은 아무라도 이 신문 보기가 쉽고, 신문 속에 있는 말을 자세히 알아보게 함이다. 각국에서는 사람들이 남녀 무론하고 본국 국문을 먼저 배워 능통한 후에야 외국 글을 배우는 법인데 조선에서는 조선 국문은 아니 배우더라도 한문만 공부하는 까닭에 국문은 잘 아는 사람이 드묾이다. 조선 국문하고 한문하고 비교해 보면 조선국문이 한문보다 얼마가 나은 것이 무엇인가 하니, 첫째는 배우기가 쉬우니 좋은 글이요, 둘째는 이 글이 조선글이니 조선 인민들이 알아서 백성을 한문 대신 국문으로 써야 상하 귀천이 모두 알아보기가 쉬울 터다.

한문만 늘 써버릇하고 국문은 폐한 까닭에 국문으로 쓴 건 조선 인민이 도리어 잘 알아보지 못하고 한문을 잘 알아보니 그게 어찌 한심치 않으리요. 또 국문을 알아보기가 어려운 건 다름이 아니라 첫째는 말마디를 떼지 않고, 그저 줄줄 내려쓰는 까닭에 글자가 위부터인지 아래부터인지 몰라서 몇번 읽어본 후에야 글자가 어디부터인지 비로소 알고 읽으니, 국문으로 쓴 편지 한 장을 보자하면 한문으로 쓴 것보다 더디어 보고 또 그나마 국문을 자주 아니 쓰기 때문에 서툴러서 잘 못 본다. 그런고로 정부에서는 내리는 명령과 국가 문적을 한문으로만 쓰니 한문 못하는 인민은 남의 말만 듣고 무슨 명령인줄 알고 이편이 친히 그 글을 못 보니 그 사람은 무단히 병신이 된다.

한문 못 한다고 그 사람이 무식한 사람이 아니라 국문만 잘하고 다른 물정과 학문이 있으면 그 사람은 한문만 하고 다른 물정과 학문이 없는 사람보다 유식하고 높은 사람이 되는 법이다. 조선 부인네도 국문을 잘하고 각색 물정과 학문을 배워 소견이 높고 행실이 정직하면, 물론 빈부 귀천간에 그 부인이 한문은 잘하고도 다른 것은 모르는 귀족 남자보다 높은 사람이 되는 법이다. 우리 신문은 빈부귀천을 다름없이 이 신문을 보고 외국 물정과 내지 사정을 알게 하려는 뜻이니 남녀노소 상하귀천 간에 우리 신문을 하루 건너 몇달간 보면 새지각과 새학문이 생길 걸 미리 안다.

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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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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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부 주사 박비혁, 해주 관찰사 윤길구, 공주 관찰사 이건하, 문천군수 이한용, 백천군수 노태우, 영암군수 정원성, 익산군수 정규혁, 덕산군수 조종서, 정읍군수 김연, 봉산군 세무주사 이성건, 진잠군 세무주사 이기풍, 파주군 세무주사 이교열, 안산군 사무주사 한기윤, 정평군 세무주사 박인관, 지방제도 조사위원 김중환, 이해만, 백성기, 윤진석, 한진창, 윤철규, 김재연, 김희상, 이경상, 박윤성, 이승원, 정도영.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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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내부 협판 윤정구, 시종원경 김종한, 회계원 출납과장 이용교, 해주부 제무시찰관 인석보가 3월 3일 장연 땅에서 난민에게 피해하다.

외국 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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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합중국 남쪽에 있는 쿠바라 하는 섬은 스페인 속국인데, 거기 백성들이 자주독립 하려고 일어나서 스페인 관병하고 싸움 시작한 지 벌써 일년이 넘었는데, 합중국 정부에서 쿠바를 독립국으로 대접하자 하는 말이 많이 있는데, 근일에 합중국 의회원에서 쿠바 인병을 스페인 역적으로 대접하지 않고 의병으로 알아주자는 의논이 있었더니, 스페인 신문지들이 합중국을 대단히 험담하고 스페인 인민이 미국 사람들을 대하여 실례하는 자가 많이 있기 때문에, 스페인 정부에서 별로이 조속하고 스페인에 있는 미국 인민을 보호한다고 한다.

이집트 일 때문에 영국하고 프랑스하고 대단히 시비가 있을 모양인데, 영국 군사가 동골라라 하는 데로 군사를 근일에 보냈다는 이유로 프랑스 인민이 대단히 좋아하지 않고, 어떠하면 영불 간에 싸움 되기가 쉽다고 한다.[1][2] 이탈리아 군사는 아비시니아 군사하고 아프리카에서 싸움하다가 대패하였는데 아비시니아 사람들은 프랑스에서 속으로 도와준다고 한다.

잡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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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 가는 공사 민영환 수원 윤치호 참서관 김득련 김도일 제씨는 본월 초일일에 러시아 황제 즉위례에 참례하려고 제물포에서 출발하다. 러시아 황제 즉위례에 각국이 다 별사를 보내는데 일본에서는 육군대장 산현유붕 씨가 가고 청국서는 이홍장 씨가 갔다고 한다.

일본 주경공사 이하영 씨는 그저께 일본으로 갔다고 한다.

순검 1명이 술을 먹고 행실이 마땅치 않아서 총순 하나가 지나가다 그걸 보고 술취한 순검을 꾸짖었는데, 이 순검이 총순에게 불경한 말을 해서 총순이 소지하고 자퇴하라 했더니, 경무청에서 소지를 받지 않고 그저 다니라 했으나, 그 술취했던 순검은 퇴거도 하지 않고 또 그 순검이 총순을 보고 비웃는 말을 해서, 총순이 기어이 사직하고 자퇴한다니 우리가 듣기가 매우 가여웠다.

군수와 순검이 상관께 실례해도 벌이 없고 상관이 도로 벌을 입을 지경이면 규칙은 있어서 무엇에 쓰는지 모르겠더라. 경무서장께서 필경 이 일을 자세히 모르기에 그렇게 처치가 된거니 우리는 경무사 씨께 이 일을 다시 사실하여 만일 그 순검이 누구 유세한 이를 믿고 총순에게 실례를 했으면 그 순검은 곧 퇴거하고 총순은 본직을 환급하길 바란다.

탁지대문 앞에 선혜청 소속 수백명이 모인 뜻은 을유 병술 정해 무자 기축 다섯해[3] 정비쌀 11000여석을 차하하여 달라고 모였는데, 친군영 소속들 정비쌀은 먼저 차하 해주고 선혜청 소속에게는 아직 차하 하여주지 않은 까닭이라고 한다.

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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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상품 한 되 3냥4돈5푼, 중품 한 되 3냥2돈, 하품 한 되 3냥
팥 상품 한 되 2냥9돈, 중품 한 되 2냥8돈
콩 상품 한 되 2냥, 중품 한 되 1냥8돈
서양목 상품 한 자 2냥2돈, 중품 한 자 2냥1돈
무명 상품 한 자 1냥, 중품 한 자 8돈
베 상품 한 자 5냥, 중품 한 자 3냥, 하품 한 자 1냥2돈
모시 상품 한 자 2냥5돈, 중품 한 자 1냥8돈, 하품 한 자 1냥3돈
석유 한 궤 66냥

잡보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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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관이 상관의 명령을 듣지 않으면 각국에서는 두말 없이 그 하관을 퇴거하는 법이요, 그런 고로 법률과 규칙이 국중에 서고 만일 하관이 상관에게 실례되는 말을 하면 하관이 중벌을 입는 법이요, 만일 하관이 상관을 때리든지 손을 걸든지 하면 하관은 몇십년 중역시키는 법이요, 해륙 군속은 군사가 상관을 치든지 하면 그 군사는 포살하는 법이다.

우리가 들으니 갈린 해주 관찰사 이명선이가 정부를 반대할 마음이 있다 해서 벼슬을 갈렸다니, 만일 그 말이 분명할진대 다만 면직만 할 뿐 아니라 중벌을 받아야 마땅하리라.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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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881년 영국이 지배하던 이집트국의 수단 지역에서 봉기가 일어나면서 시작된 마흐디 전쟁의 연장선에서, 1896년 3월부터 영국이 본격적으로 수단 정복에 나선 사건을 말한다. 당시 서아프리카를 근거로 동진하여 식민지 확보에 나서던 프랑스는 영국의 군사행동에 우려를 표했다. w:en:Anglo-Egyptian conquest of Sudan 참고.
  2. 집필자의 우려대로 2년 후인 1898년 7월 파쇼다 사건으로 양국의 긴장은 최고조에 이르렀으나, 이듬해 프랑스의 철수와 타협으로 양국의 긴장관계는 급속히 해소되었다.
  3. 1885년~1889년